왕오천축국전 - 혜초, 천축 다섯 나라를 순례하다
혜초 (지은이),지안 (옮긴이)불광출판사2010-10-15원제 : 往五天竺國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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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10,500원
책소개
<왕오천축국전>은 1,200년 전 ‘100명이 떠나도 돌아오는 이는 하나도 없다’는 멀고도 험난한 천축으로 구법 여행을 떠났던 신라의 혜초 스님이 남긴 여행기록이다. 즉,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 아랍 등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를 해로와 육로로 일주하면서 당시의 문화에 관한 사실적인 기술을 담은 견문록이다. 이를 오랫동안 교학 연구와 수행 정진을 하면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계신 지안 스님의 정갈하고 담백한 우리말 번역으로 다시 번역하고 해설을 붙여서 소개하고 있다.
목차
서문
일러두기
해제
『왕오천축국전』
01. 나체 외도를 보다
02. 부처님의 열반지, 구시나국
03. 최초의 설법지, 피라날사국
04. 마하보리사
05. 중천축국
06. 오천축의 풍습
07. 네 개의 큰 탑
08. 달밤에 고향 길 바라보니
09. 노래를 잘 하는 서천축국 사람들
10. 북천축의 사란달라국
11. 설산 너머 작은 나라 소발나구달라국
12. 절과 스님이 많은 탁사국
13. 중현(衆賢)의 고향, 신두고라국
14. 용지(龍池)가 있는 가라국
15. 토번의 관할 아래 있는 세 나라, 대발률국?양동국?사파자국
16. 설산 계곡에 있는 토번국
17. 남자들이 모두 머리를 깎고 사는 소발률국
18. 해마다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여는 건타라국
19. 왕이 삼보를 공경하는 오장국
20. 불교를 믿는 구위국
21. 대승불교를 믿는 람파국
22. 산에 나무가 없는 계빈국
23. 재를 잘 올리는 사율국의 왕과 수령
24. 군사력이 강한 범인국
25. 가죽 외투를 입고 사는 토화라국
26. 교역을 좋아하는 파사국
27. 살생을 좋아하며 불법을 모르는 대식국
28. 보물이 많이 나는 대불림국
29. 근친 혼인을 하는 호국(胡國)
30. 왕이 두 사람인 발하나국
31. 발하나국 동쪽에 있는 골돌국
32. 절도 스님도 없는, 돌궐족이 사는 곳
33. 객수(客愁)를 달랬던 호밀국
34. 약탈을 일삼는 식닉국
35. 중국 군사가 진을 치고 있는 총령진
36. 소륵국에도 중국 군대가 있다
37. 안서대도호부가 있는 구자국
38. 육식을 하지 않는 우전국
39. 안서에 도착하다
40. 속치마를 입는 오기국
『일체경음의』 『혜초왕오천축국전』
01. 해제
02. 『일체경음의』 『혜초왕오천축국전』
접기
책속에서
다른 어떤 기행서보다도 혜초의 글은 순례길에서 몸으로 직접 체험한 현장감이 살아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그 점에서 다른 글보다 생동감이 있었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방향, 왕의 이름, 언어와 기후, 풍습, 왕이 소유하고 있는 코끼리의 수, 종교적 성향, 불교가 전파된 곳일 경우에는 대승인지 소승인지, 어떻게 행해지고 있는지 등에 대한 지극히 단편적인 기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초가 그곳에서 보고 들은 현장의 사정이 어떤 글보다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왕오천축국전』의 매력이다. 문학적인 수사가 거의 없고 장황한 설명이나 해설도 별로 없는 단순한 기록물 같은 이 글이 우리나라 사람이 쓴 가장 오래된 여행기라는 점에서 갖는 문헌적 가치 이전에 한 구법자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다라니(陀羅尼)로 느껴지기도 했다.
- 7~8쪽. 『서문』 중에서 접기
절 안에 한 구의 금동상(金銅像: 금으로 도금한 불상)이 있다. 여기 마갈타국(摩?+?+國, 마가다Magadha)에는 옛적에 왕이 한 명 있었는데, 이름이 시라율저(尸羅栗底, 실라디탸?l?itya)였다. 그가 이 금동상과 함께 금동 법륜도 만들었다고 한다. 바퀴가 둥글고 반듯하며 둘레가 30여 보(步)나 된다.
이 성은 갠지스 강을 굽어볼 수 있는 북쪽 언덕[北岸]에 있다. 녹야원(鹿野苑, 므리가다바Mgad?a)과 구시나(拘尸那, 쿠시나가라Ku?nagara), 사성(舍城, 라자그리하R?agha), 마하보리(摩訶菩提, 마하보디Mah?odhi) 등 4대 영탑(靈塔)이 마갈타국 왕의 영토 안에 있다. 이 나라에는 대승과 소승이 함께 행해지고 있다. 마하보리사(摩訶菩提寺)에 도착하고 나니 내가 본래 원하던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아 너무나 기뻤다. 간략히 나의 뜻을 서술하는 오언시를 지었다.
보리대탑 멀다지만 걱정 않고 왔으니
녹야원의 길인들 어찌 멀다 하리오.
길이 가파르고 험한 것은 근심 되지만
개의치 않고 업풍에 날리리라.
여덟 탑을 보기란 실로 어려운 일
세월에 타서 본래 그대로는 아니지만
어찌 이리 사람 소원 이루어졌는가.
오늘 아침 내 눈으로 보고 말았네.
- 40~41쪽. 『4. 마하보리사』 중에서 접기
토화라국(토카리스탄)에서 동쪽으로 7일을 가서 호밀(胡蜜, 와칸Wakhan) 왕이 사는 성에 이르렀다. 오다가 마침 토화라에서 번(蕃: 서쪽 이역 변방)으로 들어가는 중국 사신을 만났다. 이에 간략하게 넉 자의 운을 맞춘[四韻] 오언시(預言詩)를 지었다.
그대는 서쪽 이역이 멀다고 한탄하지만
나는 동쪽 길이 멀다고 탄식한다네.
길은 험하고 산마루엔 눈이 잔뜩 쌓였는데
험한 골짜기 길엔 도적떼가 들끓고
새도 날다가 솟아 있는 산봉우리에 놀라며
사람은 가다가 조심조심 외나무다리도 건너야 한다네.
평생 눈물을 훔쳐본 적 없었는데
오늘따라 하염없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구나.
겨울 어느 날 토화라(토카리스탄)에서 눈을 만난 소회를 오언시로 읊었다.
차디찬 눈이 얼음 위에 쌓이고
차가운 바람이 땅이 갈라질 듯 매섭게 부는구나.
바다마저 얼어붙어 발라놓은 단(壇)인 듯하고
강물은 벼랑을 갉아먹고 있네.
용문(龍門)엔 폭포수마저 얼어 끊기고
우물 가장 자리도 도사린 뱀처럼 얼어붙었는데
불을 벗하여 층층대를 오르며 노래하지만
어떻게 파밀(播密, 파미르 고원)을 넘을 수 있을까?
호밀 왕은 군사가 적고 약해 스스로를 지켜낼 수가 없어서 대식의 관할 하에 있다. 해마다 비단 3,000필을 세금으로 보낸다. 주거지가 산골짜기여서 처소가 협소하고 가난한 백성이 많다. 옷은 가죽 외투와 모직 적삼이며, 왕은 비단과 모직 옷을 입는다. 빵과 보릿가루만을 먹는다. 이곳은 매우 추워 다른 나라들보다 추위가 훨씬 더 심하다. 언어도 다른 나라들과 같지 않다. 양과 소가 나는데, 아주 작고 크지 않다. 말과 노새도 있다. 스님들도 있고 절도 있으며, 소승법이 행해진다. 왕과 수령, 백성들 모두가 불교를 섬기며 외도(外道)에 귀의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 나라에는 외도가 없다. 남자는 모두 수염과 머리를 깎으나, 여자는 머리를 기른다. 주거지가 산 속이기는 하나, 그곳 산에는 나무와 물 그리고 풀조차 없다.
- 152~154쪽. 『33. 객수(客愁)를 달랬던 호밀국』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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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혜초 (蕙超)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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蕙超 704(700?) ~ 787 어려서 고국인 신라를 떠나 당나라에 갔다. 중국 광주(廣州)에서 인도 출신의 밀교승 금강지(金剛智)를 사사(師事)하고, 이십대 초반에 스승의 권유로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났다. 약 4년 동안 인도를 비롯한 서역 여러 지방을 순유하고 당시 안서(安西) 도호부(都護府) 소재지였던 구자(쿠차)를 거쳐 장안으로 돌아왔다. 80여 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여 년간을 당에서 밀교 연구와 전승에 전념하여 밀교의 정립에 크게 기여한 대덕 고승이다. 저작으로는 <왕오천축국전>이 있다.
최근작 : <왕오천축국전>,<왕오천축국전>,<혜초의 왕오천축국전 2 (보급판 문고본)> … 총 6종 (모두보기)
지안 (옮긴이)
통도사 불교전문강원 강주, 조계종 종립 승가대학원장,
직지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 교육원 역경위원장, 고시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통도사 반야암에 주석하면서 교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쓰는 한편 재가 불자들을 위한 경전 강좌 모임도 이끌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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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우리는 지금쯤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다
왕오천축국전(역서)
연꽃잎 달빛 향해 가슴 열고(선시 해설집)
마음의 정원을 거닐다
대승기신론 신강
마음속 부처 찾기(선가귀감)
성지에서 쓴 편지
최근작 : <바람의 자유>,<안부>,<성지에서 쓴 편지> … 총 32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종교와 사상, 시대의 벽을 넘어 8세기의 인도와 중앙아시아로 안내하는
혜초 스님의 구법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의 새로운 번역과 해설
1908년 어느 날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는 중국 감숙성 돈황에 있는 천불동 제17 석굴을 탐사하던 중 동굴 천장 구석진 곳에서 낡고 오래된 종이 두루마리 하나를 발견했다. 무려 1,200년 동안 깊은 어둠 속에서 숨 죽이고 있던 보물이 세상 밖으로 나오던 순간이었다.
가로 42cm, 세로 28.5cm의 황마지 9장을 이어붙인 두루마리에는 총 227행 5,893자의 한문이 손으로 적혀 있었다. 두루마리를 발견한 펠리오는 두루마리의 내용이 8세기 당나라 승려 혜림이 지은 불교어휘사전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 제100권에 실려 있는『혜초왕오천축국전』 편에 주석된 어휘와 일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원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상·중·하의 3권이었기 때문에 『일체경음의』『혜초왕오천축국전』도... 더보기
평점 분포
9.2
세계 5대 여행서라고 불리는 왕오천축국전! 표지도 참 예뻐서, 소장할만 하다! 구매
꽤꽤기 2014-08-2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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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시간을 거슬러 떠나는 인도여행 새창으로 보기
시간을 거슬러 떠나는 인도여행
이름이 너무 익숙해서 마치 잘 알고 있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배워 기억되고 살아오며 많은 사람들에게 들어서 익숙하기에 잘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그 본래의 내용에 접근하지 못하고 마는 것들이 그것이다. 그중에는 아마도 유명한 고전 문학작품이나 역사서 등 책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요사이 문학 작품을 읽어가며 새삼스럽게 놀라게 되는 것이 바로 익숙하지만 실은 그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책 중에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도 포함된다.
‘왕오천축국전’은 신라 땅에서 태어나 자신이 믿는 종교의 깨달음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고 그곳에서 접한 밀교를 공부하다 스승의 권유에 의해 인도까지 다녀온 혜초 스님의 구법 여행기라고 한다. 지금 전해지는 원래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은 원래 상, 중, 하의 3권으로 구성되어 있던 것을 전체 내용을 축약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200여 년 전의 이야기라고 하니 까마득한 시간이지만 혜초 스님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오늘날 사람들이 어떻게 그 시대를 알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숙연함 마저 든다. 또한 이 왕오천축국전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던 일화 또한 심상치 않음이 있어 보인다. 중국 돈황 석굴에 묻혀 있다가 20세기 초 제국주의의 문화적 약탈과정에서 폴 펠리오에 의해 프랑스까지 가게 된 것이다. 이후 일본 사람에 의해 신라인 혜초 스님의 오천축국 구법 여행기임이 밝혀졌다.
‘왕오천축국전’에는 4년여에 걸친 혜초 스님의 여정은 오늘날의 눈으로 봐서도 만만치 않은 길이었음을 알게 한다. 8세기 무렵의 인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아랍 등 아시아 대륙을 바닷길과 육로를 통해 여행하면서 직접 방문했던 나라나 전해들은 나라들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비롯하여 종교적 특성, 사회풍속, 나라의 크기나 주요 생산되는 품목, 옷 입는 모습 등을 짧은 글을 통해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이를 기록한 혜초가 스님이라는 구법자였기 때문인지 기록에는 주로 그 나라들의 불교수용여부와 국왕과 관리들의 불교에 대한 태도 그리고 이미 폐허가된 사찰의 모습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먼 나라 이질적인 문화를 바라보는 혜초 스님의 시각을 통해 전해지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생각만큼 낯설지는 만은 않다. 또한 구법자라고는 하지만 먼 여행길에서 느끼는 여행자의 감회가 나타나는 시구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까지 전해진다.
이 책에는 역자의 해설이 돋보인다. 원문을 해설하는 것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주석을 달아 잘 알 수 없는 불교의 교리적 측면이나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왕오천축국전의 원본과 이와 긴밀한 관련이 있는 일체경음의를 부록으로 실어놓아 그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왕오천축국전을 읽어가며 기록문화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새삼스럽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같은 기록물이 없었다면 소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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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無盡 2010-11-0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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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등불은 주인을 잃고 새창으로 보기
대략 1200여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거쳐 마침내 세상속으로 나온 <왕오천축국전>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여행기문이다. 반도의 한쪽 귀퉁이에 자리잡아 우여곡절 끝에 삼국일부를 통일한 신라는 고구려, 백제 보다 뒤늦게 불교를 받아들였다. 물론 신실한 종교적인 입장보다는 당시는 지정학적 고려가 불교수용의 최대 관건이었고 이는 왕권강화라는 시대적 소명과 결부되어 더욱더 필요한 조치였다. 하지만 불교는 당시 통일이라는 대과업이후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던 불협화음을 하나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고 정권은 정권나름대로의 회유책으로 그리고 민중은 민중들 나름대로의 화합의 장으로 승화시켰다. 당시 불교는 그 기원인 천축국보다는 당에서 더 융성하였고 이 영향은 고스란히 신라로 유입되었으며 의상,원효등을 필두로한 엘리트층의 고승들에게 당나라 유학은 부처에서 한발자국더 나아가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사실 혜초 역시 남아 있는 그에 대한 기록이 미비해서 정확한 출신성분에 대한 이견이 있지만 아마도 일반서민층은 아니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어떻게 불교에 입문했고 어떻게 당나라로 유학을 갔는지에 대한 추측만이 있지만 아마도 당시 승려들과 같은 당나라 유학 경로와 절차를 밟았을 것이다. 하지만 혜초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귀국후 보장된 지위에는 하등의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혜초는 당 유학중 만나 스승의 권유도 있었겠지만 그만의 구법에 대한 갈망이 유독 강했고 이러한 열정은 그를 당시로서는 목숨을 건 구법의 길로 이끌게 했다. 그리고 후대에 길이 남을 <왕오천축국전>이라는 대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비단 지금은 이역만리에서 애타게 고국을 그리면서 입적한 혜초와도 너무나 흡사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그의 분신인 기록물 역시 이역만리에서 애타게 그를 기다리고 있듯이
현장의 <대당서역기>처럼 왕오천축국전의 내용은 당대하질 않다. 이유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듯이 그 원본을 필사한 필사본으로 그나마나도 훼손되어 현재 전하는 분량은 6000자 정도로 미비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부처의 열반지인 구시나국 처음으로 속치마를 입는다는 안서의 오기국까지 약 40여개국을 돌아본 여정을 양적인 면에서 다소 부족함이 있을수도 있지만 그 내용만은 각국의 특색만을 기록한 핵심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주변의 잡다함을 걷어낸 내용들이 오히려 더 실감나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체로 수도하는 수도승의 나라 페사리국(바이샬리)는 불교의 성지이자 불교와 비슷한 자이나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혜초는 이곳 풍습중 가장 인상적인 노예문제를 언급한다. 노비를 두는 한이 있더라도 노비를 매매하지는 않는다 이는 어쩌면 혜초에겐 다소 낯선 광경이었을 것이다. 혜초의 신분이 구도를 구하는 승려이기에 그의 주된 관심사는 부처와 관련된 불교에 집중되어 있지만 혜초의 눈에는 중생이 부처라는 말처럼 모든이들의 삶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여건들이 구법 못지 않게 가슴에 와닿을 것이다. 왕오천축국전은 그 전하는 양적인 내용은 비록 적지만 실질적인 내용면에서는 그 어느 여행기에 비해서 결코 부족함이 없다. 천축국들의 지리 인문적 태양을 비롯하여 각종 신분계층의 습성을 비롯한 의식주와 생활방식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복잡다난한 서술식 기술이 아닌 한눈에 봐도 알수있는 엑기스만을 모와 놓고 있어서 그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물론 불교적인 시각에서 천축국을 불국토로 바라본 그였기에 노비문제에 대한 환상과 토번국에서 관찰했던 불교전파에 대한 곡해의 부분도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오류들이 존재하더라도 왕오천축국전이라는 기록물 전반을 훼손시키지는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몇 편의 시를 통해서 혜초는 구도승이나 관찰자의 입장을 초탈한 순수한 일개 개인의 심정도 담아내고 있다. "달밤에 고향 길 바라보니"와 "고향의 등불은 주인을 잃고" 등의 시를 통해서 아무리 속세를 떠나 구법의 도를 찾는 승려의 몸이지만 수구지심마저도 떨굴수는 없었고 굳이 혜초는 득도자의 자세 또한 보이지 않아 일개 개인으로서의 인간미를 물씬 담아내고 있다. 왠지 이 시는 향후 자신이 어쩌면 달밤의 흩날리는 구름처럼 어쩌면 영원히 그리운 고향땅을 밟지 못한 운명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아 읽는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함과 쓸쓸함을 자아내게 한다.
1200년전 한반도 작은 나라의 일개 승려가 구법의 열망을 안고 불법의 발상지인 인도를 두 발로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것을 <왕오천축국전>이라는 기록으로 남겼다. 비록 그 자신은 고국에서 잠들지 못하고 중국땅에서 입적했고 그의 분신인 <왕오천축국전> 역시 너무나 먼 곳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왕오천축국전>은 짧다면 짧은 기행문일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남아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우리 선조의 문자 기록물이다. 비록 불교라는 종교적인 색체가 강해게 내재되어 있으나 당시 그들의 삶과 생활방식등을 간략하게 인지할 수 있는 희귀한 문건이고 중국인의 시각이 아닌 신라인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대단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세계 각지에서 애타게 고국의 품으로 귀환되길 고대하고 있듯이 <왕오천축국전>역시 하루빨리 우리 품으로 돌아오길 다시한번 기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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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향 2010-11-0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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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왕오천축국전 새창으로 보기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여행기이자 견문록으로 알려진 신라시대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
그 존재에 대해서 국사 교과서에서 짧은 몇 줄의 언급으로만 배우고, 실제 내용에 대해서는 기억이 잘 나질 않았으니 안타까울 노릇이었다. 사실 저자와 책 명만 달달 암기하고, 그 책이 주는 의미등만 짧게 기억할뿐, 교과서에 실린 이런 작품 들에 대해 실제로 읽어본 경우는 많지 않아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기회가 닿아 이름만 알았던 많은 책들을 직접 읽을 여유가 생겨서, 의미만 기억하기 보다 내용까지 내 것으로 만드는 그런 시간이 마련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할 시간이 모자란 우리나라의 많은 학생들이 그와 같은 책들을 모두 읽어보기란 힘든 일이겠지만, 왕오천축국전만 해도 무척 얇은 두께의 책이기에 (요약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국사에 관심이 많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행기가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볼 것을 추천해주고 싶다.
요즘 나는 여행서에 무척 많은 관심을 갖고 읽는다. 대부분은 재미나게 쓰였거나 아니면 실제 여행 정보를 알수 있게 상세한 정보들이 나온 책들이 현대의 여행 에세이들이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직접 발로 걸어서 천축 5국을 걸어 다니면서 4년간 여행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책이다. 신라 시대 승려인 혜초가 16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그 곳에서 수학을 하다가 인도로 구법여행을 떠난 것이다. 요즘처럼 교통수단이 발달하거나, 하다못해 말로 다닐 형편이 아니었는지 발로 걸어 여행을 하였다 나와 있다. 무려 1200년 전인 8세기에 쓰여진 여행기. 이 책이 발견된것은 최근 20세기 초 둔황 석굴에 있던 문서 중에서 프랑스 학자 페리오가 발견한 것으로 현재 프랑스에 보관되어 있으며, 처음에는 중국 스님의 문서인줄 알았다가 1915년 일본 다카쿠스 준지로에 의해 혜초가 신라사람으로 밝혀져 혜초의 생애가 새롭게 조명받게 되었다.
4년간 혜초는 광주에서 해로로 먼저 동천축에 들어가 중천축, 남천축, 서천축, 북천축을 지나 카슈미르 지방으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북부로 해서 러시아 영인 중앙아시아를 경유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국의 신강성으로 들어와 727년 11월에 장안에 돌아왔다. 17p 이 책에는 토번(티베트), 대불림국(동로마, 비잔틴제국),대식국(아랍),파사국(페르시아)등의 인도 외에도 수많은 나라들을 경유해 여행하였음이 잘 나타나 있다. 걸어서 그 먼거리들을 돌고 돌아왔음이 얼마나 고된 여행이었을지, 그가 오언시로 마음을 표현한 글에 보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의 마음이 전해진다.
여행을 계속하면서 그때그때 보고 들은 것을 간명하게 요약, 기술한 것으로 기후와 지형, 특산물과 음식, 복장과 풍습, 언어와 종교를 기술하면서 마지막으로는 불교의 행해지는 정도와 소승과 대승의 유무 등을 같이 다루고 있다.천축국에서는 왕의 재력과 무력을 갖고 있는 코끼리 수로 나타내기도 하였다.
천축국전을 연구한 여러 학자들은 혜초의 기록에 대해 불교의 입장에서 너무 의도적으로 천축을 불국토로 기술한 경향이 있다고 보는 관점이 있고 또 여행길에서 보는 피상적인 관찰이 그 당시 사회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88p
그 머나먼 옛날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얻은 지식을 기록한 내용은 지금 읽기에 재미나게 느껴지지는 않겠지만, 그가 발로 걸은 그 행적이 얼마나 대단한 여정이었는지는 최근 얼마전 방영된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중간에 본 프로그램이라 정확히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 그 다큐 프로에서 혜초의 여정을 따라 직접 피디가 여행을 다니며 그의 흔적을 찾는 과정이 나타나 있었다. 그때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는데, 읽어보지 못한 혜초의 신간이 지안스님에 의해 보다 더 읽기 쉽게 부연설명이 곁들여져 나왔다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을 우선 있는 그대로 번역하고, 그에 대해 요즘과 달라 이해하기 힘든 용어들에 대해서 다시 설명을 해주고,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되는 역사적 사건과 시대적 배경에 대한 언급이 잘나와 있어서 그대로의 책을 읽을때보다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건타라국 왕은 해마다 두 차례씩 무차대재를 열어 몸에 지니고 애용하던 물건과 처, 코끼리, 말 등을 모두 희사하여 시주를 한다. 오직 처와 코끼리만은 스님들에게 가격을 매기게 하고 그 값을 치르고 도로 찾아온다. 그 밖의 나머지 낙타와 말, 금과 은, 옷가지, 가구는 스님들이 팔아서 스스로 이익을 나누게 한다. 99p
내가 잘못 읽었나 싶어 다시 읽어보기도 했던, 어느 나라의 시주 이야기, 전재산은 물론이고 아내까지 시주를 하는 왕의 이야기는 아주 이색적이었다. 지안스님이 들려주는 사자국에 대한 이야기도 새로운 이야기였다. 8세기때의 각 나라의 모습은 어땠을까? 우리나라를 벗어나 다른 나라, 특히 아시아의 생활 상에 대해 간략하게라도 알수있는 여행기기도 했다는생각이 든다.
여행기를 좋아하다가, 최고 오래된 여행기까지 읽고 나니 웬지 뿌듯함이 든다. 이제야 비로소 초석이 완성되었다는 느낌도 받고..
재미를 추구하기는 힘든 책이었지만,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이다 보니, 현존하는 세계 4대여행기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니 한국인으로써 꼭 한번 그 내용을 살펴봐야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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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캣 2010-11-0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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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오천축국전] 40개국 여행을 한 혜초의 흔적 찾기 새창으로 보기
# 김연수, 혜초, 왕오천축국전
이상문학상을 받은 김연수 작가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는 왕오천축국전에 주석을 다는 여교수가 나온다. 국사시간에 혜초의 이름과 왕오천축국전만 알고 있다가,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으로 이어지는 누군가의 절망에서 희망을 찾는 사랑이야기를 통해, 혜초의 이름을, 천년도 넘은 옛날에 하나의 꿈을 위해, 40개국의 나라를 헤맸던 구도승의 모습을 상상했다.
김연수 책의 135페이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교수님은 혜초를 다 이해하시잖아요. 어머니를 아내로 삼는 나라에 대해서도 다 이해하시잖아요. 혹시라도 이해하지 못할까봐 주석을 다 달아놓으시잖아요. 저는 제 여자친구가 왜 자살했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거든요.(...) 하지만 교수님은 다 아시잖아요. 고작 227행뿐인 두루마리를 가지고 한권의 책을 쓰시잖아요.
매우 짧은 분량의 기행문이라는 사실만 알고 접했던, 왕오천축천이다. 역주를 보니, 4년간의 여행동안 40개국의 나라를 둘러보면서, 여행을 한 기록이 담긴 책이다. 감정이라던지, 느낌이 담긴 부분은 거의 없고, 어떤 방향으로 여행을 떠났고, 그 나라가 불교를 믿고 있는지, 그 나라만의 풍습이 어떤지에 대해 간략하게 적혀있다. 간간히 있는 시에는 감격과 외로움, 고향을 그리는 마음으로 먼 길 떠난 수행자의 마음을 더듬어 보았다.
# 풍부한 역주가 좀 더 많은 사실을 보게 하는 책.
결자라고 해서, 글자가 빠진 부분도 있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역주자는 꼼꼼한 정보를 바탕으로 혜초가 방문한 나라와 그 당시 종교와 특색에 대해 이야기한다. 앞에 소개된 어머니를 아내로 삼는 나라는 호국과 페르시아이고, 페르시아는 배화교, 조로아스터교를 숭상해서 실제로 남아있다는 정보는 역주자가 독자를 배려한 좋은 정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200개가 넘는 나라들과 셀 수 없는 부족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천년 전에도 구도의 마음으로 말이 통하지 않음에도 여행을 한 이가 있었는데, 난 뭐가 두려워서 가까운 이웃나라도 떠날 생각을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가라는 자책의 마음도 들었다.
뭔가 준비되어야 떠나는 것도 아니고, 마음 속의 강렬한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떠날 수 있다는 걸, 매우 짧은 두루마기에 적힌 글을 통해, 이해했다.
# 그리고 슬픈,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현실.
왕오천축국전의 원본은 아직도 프랑스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제 나라 문화의 소중한 유산을 지키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이 눈에 보였다. G20을하고, 아무리 국민소득이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문화의 소중함을 지키려는 노력이 없다면, 욕망에 빠져, 언제든지 경제가 어려워지면 피폐해지는 가련한 인생을 살거라는 생각을 했다. '생존'과 '경쟁'이라는 이름의 노예가 되어, 꼭 지켜야하고, 많은 관심이 필요한 부분을 쉽게 잊고살아가는 한국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원문인 일체경음의와 남아있는 원본을 출판본으로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다른 3대 여행기 중의 하나인 현장법사가 쓴 대당서역기, 서유기의 내용도 궁금해진다. 김연수 작가에서 시작해서, 서유기로 넘어가는 길목에 혜초스님이 징검다리가 되었다. 고증된 사실을, 상상력과 역주의 풍부한 내용을 함께 음미하며 읽기 좋은 책이다. 여행의 두려움이 생길 때, 서가에 두고, 힘을 얻기 위해 가까운 곳에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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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2010-11-0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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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천축 다섯나라를 순례하다 새창으로 보기
신라의 스님 혜초가 법을 구하기 위하여 천축의 다섯 나라와 중앙 아시아, 그리고 아랍을 여행한 시기가 8세기라고 합니다. 기간은 4년여가 걸린 것으로 보고 있으며, 처음 출발한 뱃길 여행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여행은 도보로 하는 순례의 길이었을 것입니다. 현재의 더 나은 교통편과 숙박 등의 여건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지역을 4년여에 걸쳐서 순례한다는 것, 또는 4년이 아니라 며칠 만에 스님 혜초가 돌아보았던 지역을 현대적인 방식의 여행 수단을 통해서 동일하게 여행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 시기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오로지 불법을 얻기 위해 나서서 순례의 길을 마무리한 것은 분명 대단한 용기와 각오, 그리고 인내의 시간들을 쌓아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사 시간의 초반에 우리 대부분은 불교의 전래에 대해서 배우고, 원효와 의상대사에 대해서 배우고, 또 하나 불교와 관련해서 빠지지 않는 부분이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었습니다. 내용을 알지는 못했지만, 그 시기에 인도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그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는 자체가 배우는 입장에서는 멋있어 보이고 흥미롭게 여겨졌던 기억입니다. 배울 당시에는 그런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었지 그 내용이 무엇인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가르치던 선생님들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았고 찾아서 읽어보라 권하던 이도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늦게나마 이리 관심이 생겨 손에 들고 읽는 <왕오천축국전>은 학생때 제목만 듣고서 느꼈던 그런 경이로움을 주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지내온 순례의 길을 너무도 간결하고 담담하게 기록한 내용은 자신의 여행에 대한 단순한 기록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도 만듭니다. 누군가에게 보이려고 이리저리 꾸미기 보다는 자신이 보고 들을 것을 성실히 옮겨 적은 기록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이런 저런 여행서가 가지고 있는 독특함과 색깔들을 생각한다면 초라하게도 느껴질 수 있겠지만, 혜초 스님은 자신의 여행을 나라의 위치와 국가의 문화나 풍속, 왕의 권력, 불교의 번성 유무, 대/소승 불교의 번성 유무 등에 대한 틀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만 치고 본다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혜초 스님이 그 몇줄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몇날 며칠을 더위 또는 추위속에, 아무도 아는 이 없는 노상을 헤매고 되돌아가는 고행의 시간을 거쳐야 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 기록 한 글자, 한 글자에는 단순히 책상 앞에서 써내려 간 화려한 문장이 가지지 못할 삶의 이면을 담고 있음을 기억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또 한 가지, 이 기록이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레오에 의해서 돈황의 막고굴에서 발견되었고, <일체경음의>의 혜초전에 수록된 단어와 일치하는 단어가 있는 것을 근거로 <왕오천축국전>이라고 추정하기에 이른 것인라고 하는데, 실제 <일체경음의>에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상/중/하권으로 나누어 실려 있고, <일체경음의>에 설명된 단어 중에서 이 필사본에 나오는 것이 17개 정도라고 하니, 적어도 우리가 지금 읽는, 그리고 한편으로는 너무 단순한 기록이라고 실망하기도 하는 이 기록이 <왕오천축국전>의 온전한 내용이라기 보다는 극히 일부이거나 그보다는 전체 내용을 축약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한다면 더 방대한 원본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고, 간단한 축약본만 보고서 미리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시대에 몸을 아끼지 않고 법을 구하기 위해 천축을 찾아 나서는 고행을 마다하지 않았던 스님 혜초의 용기와 삶에 대해서 더 집중하며 읽어 내려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달밤의 고향 길 바라보니 / 뜬 구름만 흩날리며 돌아가고 있네. / 편지라도 써서 구름 편에 부치고 싶건만 / 바람이 급해 구름은 돌아보지도 않는구나. /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는데 / 남의 나라 땅 서쪽 모퉁이에 와 그리워하네. / 더운 남쪽 천축은 기러기도 없으니 / 누가 고향의 숲을 향해 날아가려나.
月夜瞻鄕路 浮雲颯颯歸 (월야첨향로 부운삽삽귀), 緘書參去便 風急不聽廻 (함서참거편 풍급부청회), 我國天岸北 他邦地角西 (아국천안북 타방지각서), 日南無有雁 誰爲向林飛 (일남무유안 수위향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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