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아니 그제)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하는 사회디자인 연구소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여했습니다. 발제하신 세 분 모두 민주화 운동에 직접 참여하셨던 분들이라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홍진표 선생님의 발표를 통해 민주화 운동이 80년대 들어와 급진화되고 좌익화, 친북화된 과정의 사상적 배경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왜 운동권 정부가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는지, 탈북자들에게 냉담한지, 왜 성희롱 문제가 지속적으로 좌파 운동권에서 터지는 지 궁금했었습니다. <신양반사회>에서 저는 민주화 운동을 서구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조선후기 양반사회의 유교정치와 관련지어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홍진표(이하 존칭생략)의 발제를 통해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세력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선 별로 공부하지 않았고 따라서 운동권의 행태가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에 기반한 서구민주주의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이념서클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 좌파 이론들만 공부했을 뿐입니다. 홍진표에 따르면 80년대 운동권은 명백히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한 혁명주의를 추구했으며 80년대 중반부터는 자생적 주사파가 나타나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주사파(NL) 운동권에게 민주화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민주화가 아니라 공산화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민주화운동은 공산화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이제야 왜 문재인 정부 아래서 인권문제,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이 진영논리에 갇혀있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NL 운동권의 혁명주의는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자 영향력을 잃고 거의 소멸되었습니다. 하지만 운동가들이 자기성찰없이 일반사회에 편입되어 대중들은 운동권적 사고방식을 그대로 갖게 되었는데 현 586세대와 40대 세대내에서 좌파성향이 득세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민경우 선생님의 발제는 한국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당시 북한의 주체사상이 대학생 사회에서 열렬히 받아들여졌음을 잘 보여줍니다. 동구권과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이후에 오히려 NL의 역사인식은 영화나 연극의 대중예술을 통해 시민사회에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그전에 대한민국은 유엔합의 하에 국제적인 승인을 받고 세워진 나라였습니다. 이제 대다수 신세대는 남한은 친일파가 세운 나라이고 북한은 빨치산, 즉 무장 항일투쟁을 했던 독립운동가가 세운 나라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정통성이 있으며 북한을 중심으로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북한주도통일론이 당시 학생들의 머리속에 각인되었다고 합니다. 그 세대가 지금 586세대와 40대 들이라고 합니다.
사회주의의 붕괴에 대한 NL의 대응은 북한의 사회주의는 소련식 사회주의와 다른 '진정한 사회주의' 라고 강변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이념에 매달리는 NL의 대응 방식은 저에게는 조선후기 양반유학자들이 명나라가 멸망한 후 조선이 천하의 중심이 되었다는 '소중화 사상'과 너무도 비슷해 보입니다.
김대호 선생님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후발 민주국가들과 비교하였는데 참신한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목하게 되는 것은 한국의 민주화는 국가주도 수출지향 공업화 정책에 의해 촉진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수출지향정책을 통해 한국은 세계와 물적, 인적, 정신문화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북한이나 미얀마같이 독재적 정치행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이 점에 있어 박정희와 전두환이 민주화에 공헌했다고 김대호는 보고있습니다. 즉 전두환이 1987년에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를 수용한 것은 생명자원을 해외에 의존하는 한국이 대규모 살상을 하며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전두환 정권이 알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해석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토론을 하며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는 문화체제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예컨대 서구의 민주주의와 법치의 개념은 개인은 평등하고 자유롭게 태어난다는 계몽주의적 인간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서구문화에서 말하는 평등이 뭔지 자유가 뭔지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모릅니다. 문화적 존재인 한국인은 한국문화의 필터를 통해서 외국의 사상을 받아들입니다. 이 과정에서 문화적 오해가 일어납니다. 문화변동의 과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현재 민주화운동의 문제점을 (이를테면 운동권 정부의 '반지성주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되고 우리 자신의 문화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왜 80년대 한국의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할 때 지식인 사회와 대학가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이 확산되었을까요? 홍진표는 '기이한 현상'이라고 지적하지만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설명되어져야 합니다. 저는 민주화운동은 근대화, 산업화에 대한 문화적 반동의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책 <신양반사회>에서 저는 조선후기의 역사와 문화까지 거슬러 올라가 현재까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양반의식을 파헤쳤고 서구의 민주주의와 어떻게 다른가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지금 민주주의의 위기를 느끼고 과거의 민주화운동을 성찰하는 데 있어 우리 자신에게 '민주주의는 우엇인가' 부터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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