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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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허 June Huh | |
본명 | 준 허 (June Huh) |
한국명 | 허준이 (許埈珥) |
출생 | |
국적 | |
가족 | |
학력 | 서울방일초등학교 (졸업) 이수중학교 (졸업) 상문고등학교 (중퇴)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 (합격)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천문학 / 학사)[3] 서울대학교 대학원 (수학 / 석사) 미시간 대학교 대학원 (수학 / 박사) |
현직 | |
경력 | 클레이 수학연구소 펠로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베블런 펠로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방문교수 스탠퍼드 대학교 수학과 교수 |
링크 |
1. 개요[편집]
2. 주요 이력[편집]
2.1. 학력[편집]
- 2009 서울대학교 대학원 수학 석사(M.S. in Mathematics)
- 2007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천문학부 학사(B.S. in Physics and Astronomy)
2.2. 경력[편집]
- 2020-2021 스탠퍼드 대학교 수학과 교수
- 2019-2020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펀홀즈 방문교수
- 2017-2019 고등과학원 방문교수
- 2014-2017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베블런 펠로우
- 2014-2019 클레이 수학연구소 클레이 펠로우
3. 생애[4][편집]
3.1. 늦깎이 시절[편집]
허준이의 부모는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명예교수 허명회와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 이인영이다. 부모가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스탠퍼드에서 박사 과정을 진행 중일 때 그곳에서 태어났고, 2살때 가족과 한국으로 돌아와서 초중고부터 대학교를 거쳐 대학원 석사까지 교육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 시인이 되고 싶어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보았다.
수학 영재들은 흔히 어렸을 때 두각을 드러내고, 어릴 때 싹수가 보이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세간에 알려져 있지만, 허준이는 어린 시절 구구단을 외우는 것도 버거워했으나 반전에 성공한 케이스이다. 그래서 수학에 대한 적성과 재능이 나타나기까지 한참 시간이 걸렸다. 허준이는 대학 4학년이 돼서야 수학을 시작하였다.#
어렸을 때는 학교 공부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중1 시절, 수학을 업으로 삼는 아버지가 수학 문제집을 풀라고 하자 몰래 답지를 보고 베꼈고 이를 안 아버지가 답지를 없애버리자 허준이는 서점에 가서 답지를 보고 베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수학을 전공했고 교수이기도 한 아버지는 아들을 포기하였다.[5] 중3이 되어서야 수학 경시대회나 과학고에 가볼까 생각했지만 선생님이 너는 이미 늦었다고 해서 포기하고 동네 일반고에 진학하였다. 건강상의 문제가 있기도 했고 야간학습으로 얽매인 생활이 싫었다. 또 한편으로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고등학교를 1년 만에 자퇴했다. 자퇴 후 일년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이런저런 문학책을 읽으며 지냈다. 나머지 일년은 재수학원을 다녔는데 거기서 실력이 급상승하였다. 결국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하여 수리과학부, 물리천문학부를 복수전공하여 졸업하였다. 서울대 학부시절에는 주변에 뛰어난 친구들이 많았고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아 성적표엔 F가 가득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수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6][7]
학부 시절엔 과학기자가 되고자 했다. 4학년이 될 때까지 그랬다. 그의 인생은 학부 4년때 서울대 초빙석좌교수로 들어온 히로나카 헤이스케[8]를 만나면서 달라졌다. 자신의 첫번째 과학기사를 히로나카로 하겠다는 생각으로 히로나카의 대수기하학 강의를 수강하였다. 이렇게 히로나카를 만나게 된 허준이는 그로부터 감명을 받고 그의 조언을 받아들여 전공을 수학으로 바꾸기로 한다. 허준이는 서울대학교 수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2년 석사과정 내내 히로나카는 지도교수이자 멘토로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9]
수학 영재들은 흔히 어렸을 때 두각을 드러내고, 어릴 때 싹수가 보이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세간에 알려져 있지만, 허준이는 어린 시절 구구단을 외우는 것도 버거워했으나 반전에 성공한 케이스이다. 그래서 수학에 대한 적성과 재능이 나타나기까지 한참 시간이 걸렸다. 허준이는 대학 4학년이 돼서야 수학을 시작하였다.#
어렸을 때는 학교 공부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중1 시절, 수학을 업으로 삼는 아버지가 수학 문제집을 풀라고 하자 몰래 답지를 보고 베꼈고 이를 안 아버지가 답지를 없애버리자 허준이는 서점에 가서 답지를 보고 베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수학을 전공했고 교수이기도 한 아버지는 아들을 포기하였다.[5] 중3이 되어서야 수학 경시대회나 과학고에 가볼까 생각했지만 선생님이 너는 이미 늦었다고 해서 포기하고 동네 일반고에 진학하였다. 건강상의 문제가 있기도 했고 야간학습으로 얽매인 생활이 싫었다. 또 한편으로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고등학교를 1년 만에 자퇴했다. 자퇴 후 일년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이런저런 문학책을 읽으며 지냈다. 나머지 일년은 재수학원을 다녔는데 거기서 실력이 급상승하였다. 결국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하여 수리과학부, 물리천문학부를 복수전공하여 졸업하였다. 서울대 학부시절에는 주변에 뛰어난 친구들이 많았고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아 성적표엔 F가 가득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수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6][7]
학부 시절엔 과학기자가 되고자 했다. 4학년이 될 때까지 그랬다. 그의 인생은 학부 4년때 서울대 초빙석좌교수로 들어온 히로나카 헤이스케[8]를 만나면서 달라졌다. 자신의 첫번째 과학기사를 히로나카로 하겠다는 생각으로 히로나카의 대수기하학 강의를 수강하였다. 이렇게 히로나카를 만나게 된 허준이는 그로부터 감명을 받고 그의 조언을 받아들여 전공을 수학으로 바꾸기로 한다. 허준이는 서울대학교 수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2년 석사과정 내내 히로나카는 지도교수이자 멘토로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9]
허준이는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대학교 12곳에 박사과정 지원을 하였는데 일리노이 대학교 UIUC를 제외한 모든 지망 대학에서 거절당했다. 허준이는 UIUC 수학과 박사과정에서 엄청난 열의로 학업에 임하였다. 박사과정 1학년 말에 리드 추측(Read's conjecture)을 증명했다. 완전히 풀고나서도 자신이 푼 문제가 정작 유명한 난제였는지 몰랐다고 한다. 리드 추측이 해결되었다는 소문이 미국 수학계에 퍼졌다. 미시간 대학교 수학과의 러브콜을 받고 학교를 옮겨 미시간 앤아버에서 박사공부를 마쳤다.
3.2. 쾌속발전 시기[편집]
허준이박사는 전세계 수학분야 New Ph.D. 중에서 매년 2명 정도만 뽑힌다는 Clay Research Fellow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IAS (Institute for Advanced Study)에서 포스트닥(박사후연구원)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IAS는 2년 후 그에게 Long-Term 펠로우 제의를 하였다. 이런 제의를 받은 수학자는 허준이 이전에는 역사상 3명이었으며 그 중 2명은 필즈상을 수상했다.[10] 그런데 Long-Term 펠로우는 IAS의 교수보다 낮은 직급이긴 하다. 어린 나이에 IAS의 정교수 제의를 받은 동양계 수학자로 싱퉁 야우(1979년 30세에 제안 수락)와 테렌스 타오(2008년 32세에 제안 거절)가 있다. 야우와 타오 모두 30대 극초반 필즈상을 수상하였다. 허준이는 2017년 뉴욕과학아카데미에서 수여하는 Blavatnik Awards for Young Scientists (U.S. Regional)를 받았다. 허준이는 2018년 ICM (세계수학자대회) 초청 강연을 하였다. [11]
3.3. 다양한 수학계 난제 증명[편집]
박사학위를 받고나서 3년이 지난 2017년, Eric Katz, Karim Adiprasito와의 공동연구에서 로타 추측(Rota's conjecture)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는 Quanta Magazine의 기사가 나왔으며, 이는 필즈상 수상이 가능할 정도의 업적이었다. 그러나 2018년에 수상하지 못했다.[12] 아직 업적이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도 있다. 어차피 필즈상은 40세까지가 제한이므로 2022년까지 기회가 있기 때문에,[13] 당장 필즈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되는 학자이다. 다른 연구자들이 로타 추측을 증명했다는 얘기는 이전에도 몇 번 있었다. 허준이 박사가 연구하는 분야는 밀레니엄 문제인 호지 추측과 관련이 있다.
이 밖에도 호가 추측, 메이슨-웰시 추측, 강한 메이슨 추측, 다우링 윌슨 추측, 브리로스키 추측, 도슨-콜번 추측, 오쿤코프 추측, 딤카-파파디마 추측, 엘리야스-프라우드풋-웨이크필드 추측 등 다양한 난제를 해결했다.
이 밖에도 호가 추측, 메이슨-웰시 추측, 강한 메이슨 추측, 다우링 윌슨 추측, 브리로스키 추측, 도슨-콜번 추측, 오쿤코프 추측, 딤카-파파디마 추측, 엘리야스-프라우드풋-웨이크필드 추측 등 다양한 난제를 해결했다.
3.4. 필즈상 수상[편집]
2022년 7월 5일, 필즈상을 수상하였다. 기사1 기사2 JTBC 뉴스 MBC 뉴스 SBS 뉴스 시상식 라이브 스트리밍
모교인 서울대학교에서는 공식 인스타그램 및 홈페이지에 '수리과학부 허준이 동문, 수학계 최고 영예 필즈상 수상'이라는 제목으로 축하 글을 게시했다. 서울대학교 상산수리과학관에서는 학생들이 모여 시상식 스트리밍을 지켜보며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수상 소감으로는 "필즈상 수상자 명단엔 제가 하는 분야인 대수기하학에 큰 공헌을 하신, 저에겐 영웅 같은 분들도 이름이 줄줄이 있다. 그 명단 바로 밑에 내 이름이 한 줄 써진다고 생각하면 이상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인터뷰 MBC 인터뷰 SBS 인터뷰 KBS 인터뷰
물론 이것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의 수상으로 기록되며 대한민국과는 무관한 기록이다. 다만, 그가 대한민국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학부 과정과 석사 학위를 거쳤다는 점이 그의 수학적 학문 세계의 밑바탕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확대하여 대한민국의 교육 제도와 교육과정이 세계적으로 인정 받았다거나 그의 필즈상 수상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는 식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14] 허준이가 박사 학위를 받아 독립된 학자로서 공인 받은 곳은 미국이며, 30대 초반에 연구기관과 대학에서 전임(full-time) 연구원, 교원으로 안정적인 연구 기반을 확보한 것도 미국이기 때문이다.
[ICM 2022 필즈 메달 인용] 허준이는 2022년 필즈 메달을 다음 업적으로 받았다. 1) Hodge 이론을 조합론에 끌어옴, 2) 기하적 격자에서 Dowling-Wilson 추측의 증명, 3) 매트로이드에서 Heron-Rota-Welsh 추측의 증명, 4) Lorentzian 다항식의 개발, 5) 강한 Mason 추측의 증명. #
[ICM 2022 필즈 메달 Laudatio(치사)] 허준이의 업적에 대한 보다 자세한 기술은 Gil Kalai가 쓴 다음 proceedings paper에 있다. #
모교인 서울대학교에서는 공식 인스타그램 및 홈페이지에 '수리과학부 허준이 동문, 수학계 최고 영예 필즈상 수상'이라는 제목으로 축하 글을 게시했다. 서울대학교 상산수리과학관에서는 학생들이 모여 시상식 스트리밍을 지켜보며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수상 소감으로는 "필즈상 수상자 명단엔 제가 하는 분야인 대수기하학에 큰 공헌을 하신, 저에겐 영웅 같은 분들도 이름이 줄줄이 있다. 그 명단 바로 밑에 내 이름이 한 줄 써진다고 생각하면 이상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인터뷰 MBC 인터뷰 SBS 인터뷰 KBS 인터뷰
물론 이것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의 수상으로 기록되며 대한민국과는 무관한 기록이다. 다만, 그가 대한민국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학부 과정과 석사 학위를 거쳤다는 점이 그의 수학적 학문 세계의 밑바탕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확대하여 대한민국의 교육 제도와 교육과정이 세계적으로 인정 받았다거나 그의 필즈상 수상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는 식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14] 허준이가 박사 학위를 받아 독립된 학자로서 공인 받은 곳은 미국이며, 30대 초반에 연구기관과 대학에서 전임(full-time) 연구원, 교원으로 안정적인 연구 기반을 확보한 것도 미국이기 때문이다.
[ICM 2022 필즈 메달 인용] 허준이는 2022년 필즈 메달을 다음 업적으로 받았다. 1) Hodge 이론을 조합론에 끌어옴, 2) 기하적 격자에서 Dowling-Wilson 추측의 증명, 3) 매트로이드에서 Heron-Rota-Welsh 추측의 증명, 4) Lorentzian 다항식의 개발, 5) 강한 Mason 추측의 증명. #
[ICM 2022 필즈 메달 Laudatio(치사)] 허준이의 업적에 대한 보다 자세한 기술은 Gil Kalai가 쓴 다음 proceedings paper에 있다. #
4. 가족[편집]
아버지는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 허명회, 어머니는 서울대 인문대학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 이인영이다.# 아버지 허명회는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前응용수학과, 後컴퓨터공학부, 통계학과)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통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84년부터 2020년 정년퇴임까지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성신여자대학교 석좌교수이다. 어머니 이인영은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러시아어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84년 11월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조교수로 부임하여 2010년 교수직에서 퇴직했다. 허준이 본인은 스탠퍼드에서 태어났고 1년간 수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코오롱생명과학·코오롱티슈진 대표 이우석[15]이 외삼촌[16]이다. 현대 한국 최고의 조각가 권진규(할머니 권경숙의 오빠)의 조카손자이기도 하다. 아내 김나영은 서울대 수학과 대학원 동기라고 한다.
코오롱생명과학·코오롱티슈진 대표 이우석[15]이 외삼촌[16]이다. 현대 한국 최고의 조각가 권진규(할머니 권경숙의 오빠)의 조카손자이기도 하다. 아내 김나영은 서울대 수학과 대학원 동기라고 한다.
5. 여담[편집]
- 위 항목들의 내용은 Quanta Magazine의 첫번째 기사 를 참고한 것이다. Quanta는 허준이의 놀라운 성취를 '18세에 테니스 라켓을 잡기 시작해 20세에 윔블던 우승을 이룬 것'이라고 비유했다. Quanta Magazine은 필즈상 수상 이후 허준이에 대한 두번째 기사를 냈다.
- 한국과 미국 이중국적자였으나 18세 때 한국 국적을 포기하였다. 병역을 이수하기에는 건강 문제로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 2018년 5월 Numberphile 강의 "g-conjecture" 영상, 2022년 3월 현재 조회수 55만회.
- 2017년 Regional Blavatnik Prize Winner Interview 영상
- 2019년 Breakthrough Foundation "What motivates us is the pursue of beauty" 영상
[1]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이며 KD운송그룹 허명회 회장과는 동명이인이다.[2]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3] 수학 복수전공[4] 이하의 내용은 대부분 퀀타매거진의 기획 기사를 참고한 것이다.[5] 허준이의 아버지는 서울대 응용수학과의 전신인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출신이다.[6] 만약 허 교수가 학사제도가 매우 엄격해진 현대에 학부 과정을 밟았다면 성적으로 인해 서울대 석사 입학조차 어려웠을 것이다.[7] 그가 2살 때부터 한국에서 성장하며, 대학 학부 및 석사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교육이 학문적 업적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정작 본인은 한국식 수학 교육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8] 한국에서는 '학문의 즐거움' 이라는 책으로 알려져 있으며, 필즈상 수상자이자 교토대학 출신이다. 하버드 박사로 이 사람 역시 늦깎이 수학자로 유명하다.[9] 히로나카의 수업이 너무 어려운 탓에 드랍하는 학생들이 95%였지만 허준이는 끝까지 수업을 들었으며 혼밥하는 히로나카에 다가갔다.[10] 블라디미르 보예보드스키(Vladimir Voevodsky), 응오바오쩌우(Ngô Bảo Châu)가 그 두 사람이다.[11] 그해 ICM 초청강연을 한 한국계 수학자는 금종해, 박병욱, 허준이 이렇게 3명이다. 금종해 교수는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박병욱 교수는 서울대학교 통계학과 교수이다.[12] 2018년 필즈상은 페터 숄체(Peter Scholze) 외 3명에 수여되었다.[13] 1983년생이므로 해당 년도 생일이 지나면 39세이다.[14] 허준이는 대한민국의 수학 교육과 교육제도에 대해서 그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15]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와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산업자원부에 근무하다 벤처기업인을 거쳐 전문경영인이 되었다.[16] 이인영의 남동생[17] 당시 봉준호도 같은 자리에서 예술상을 수상했다.[18] 사실 허준이 교수는 미국 국적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사라고는 볼 수 없는데 그래도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대한민국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편지를 남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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