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에 대해
그저께, 내가 10년전에 뵙고 이후 친분을 맺어 온 오야마 레이지(尾山令仁)목사님이 재건한 수원의 제암리교회가 지금은 파괴되고 없다는 걸 알고 크게 충격 받았다. 진작부터 한번 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못 갔던 곳이다.
‘사죄하지 않는 뻔뻔한 일본’이라는 이미지가 우리 안에 정착된 건 이런 모든 일들의 결과다.
최근에도 일본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주체하지 못하는, 3년전에 쓰인 글을 봤는데, 그런 이들에겐 사실 큰 죄가 없다. 죄는, 그렇게 만든, 잘못된 정보와 편파적 해석을 제공해 온 이들—-선동자들에게 있다.
그렇게, 용서를 타협으로 혼동하거나 왜곡하는 그런 이들에게 선동당해,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양산된다. 그들은 가슴을 증오로 채우고 있기 때문에 한발 물러서서 생각하거나 이해해 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렇게 증오만 반복재생산하는 이들이, 이 30년동안 한국사회의 역사인식과 역사감정을 만들어 왔다.
일본어로 “고코로나이=心ない=심장(마음)이 없는”이라는 표현이 있다. 오야마 목사님이 아직 젊을 때 시도했던 사죄와 결실을 파괴할 수 있는 이들 역시 그런 이들일 것이다.
나역시 제암리 교회에 대한 사죄가 필요하다고, <제국의 위안부>에도 썼다. 내가 의미했던 건 더 많은 이들이 알고 정부사죄도 필요하다는 얘기였지만, 그렇다고 민간인들의 사죄가 의미 없는 건 아니다.
이 역시 여러번 쓴 얘기지만 <제국의 위안부>의 부제목은 <식민지 지배와 기억의 투쟁>이다. 식민지시대때 일어났던 일을 과거 그대로—역사와 마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이들이 자기 편리할 대로(그 대부분은 냉전 시대와 포스트 냉전시대에 만들어졌다) ‘해석’해 대립중인 양상에 대해 썼던 것.
목소리 컸던 좌우 양극단에 대해서 썼는데 나를 비난한 건 좌파쪽이었다. 물론 그때까지 형성된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의 투쟁=파괴와 조작은 옛날에 멈추지 않고 현대까지 대상이 된다. 과거와 함께 과거를 다루어 온 자신들마저 성화(聖化)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시도들이 파괴되는 것. 비슷한 일이 여기저기서 허다하게 일어났고,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역사부정’’역사수정’’반역사’라는 말을 다용해 온 이들에 의해.
재건된 제암리 교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 파괴되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주체들이, 작지만 진심이 담긴 마음들을 태연히 짓밟을 수 있는 이들이었다는 점이다.
“기념”의 중심엔 계승해야 할 ‘정신’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가 과거가 아닌 현대를 위한 것으로 기능하는 공간에 ‘정신’따위가 존재할 여지는 없다.
이 모든 건 가해피해 관계라는 불균형 관계를 역으로 이용해 언제까지고 우위에 있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천황을 무릎꿇리고 싶다는 말이 이들의 영향력 아래 있던 이의 입에서 나온 건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폭력적 강자지향성은 바로 근대일본이 남긴 것이기도 하다.
내가 선거때 윤석열을 지지한 건 그런 이들—폭력적 조리돌림이나 ‘응징’인터뷰를 주도하고 가짜뉴스에 환호하는 이들을 자양분삼아 득세해 온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관계개선 시도를 민족문제연구소니 정의연이니가 연대해 “굴욕외교”라고 주장하는 걸 봤다.
나역시 작금의 제스처엔 문제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하도록 만든,
개인에게도 영향을 미칠 만큼 악화된 한일관계를 만든 책임에 대해, 먼저 생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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