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서울의 생활상을 수채화처럼 그려낸 성장소설
등록 :2022-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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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동에서 죽다
고영범 지음 l 가쎄(2021)
종종 사람들에게 묻는다. 최초의 기억이 몇 살 즈음인가요? 주로 서너 살, 혹은 대여섯 살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다시 묻는다. 그럼 그 이전의 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모르겠다거나, 무의식에 남아 있으리라거나, 왜 그런 걸 생각하느냐고 반문해오거나. 예전부터 이 부분이 궁금했다. 우리가 기억이라는 형태로 간직하고 있지 않은 경험, 아주 어릴 때의 경험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라져버렸을까? 아니면 몸 어딘가에 남아 나름의 작용을 하고 있을까?
심리학자들은 이를 ‘언어’와 결부시켜 추론한다. 생애 초반의 일들은 언어가 아닌 형태로 남기에 사람의 기억은 대부분 언어를 배운 이후의 일들로 국한된다고. 언어를 배우기 이전에 겪었던 일들은 기억 저편에 잠복해 있다가 특정 계기를 타고 눈짓, 몸짓, 말실수, 충동적인 행동의 형태로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성장기’는 원시 상태로 태어난 한 생명체가 인간 사회가 만들어놓은 정교하고 오랜 구조 속으로 들어가 적응해가는 과정이다. 달리 말하면 ‘나’와 ‘나’가 아닌 존재를 구분하여 ‘나’의 감정과 욕망을 알맞은 농도로 희석해 표출하는 법을 익혀가는 여정이라 하리라. 그 거대하고 복합적인 여정에 발을 들이는 데 언어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된다.
안타깝게도 최초의 관문이라 할 수 있을 언어는 태생적으로 많은 오해와 불통의 여지를 품고 있고, 당연한 결과로 우리는 첫 관문에서부터 걸려 넘어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그 언어를 계속 품고 다니며 거대한 구조 안에서 헤매고 다녀야 한다. 성장기가 달콤하면서도 쓰라린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언어 이전과 이후의 세계가 혼란스럽게 섞이고, 내가 아닌 다른 인간들을 발견하고 공명하는 데서 오는 달짝지근함을 맛보지만, 그와 동시에 나와는 너무 다른 이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고초를 혼자 삭혀야 하니, 그에서 오는 혼란이 얼마나 크겠는가.
그런 견지에서 보면 성장소설을 읽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뭉클한 덩어리가 불쑥불쑥 솟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허겁지겁 틀어막듯 건너와 버린 시절을 돌아보며, 아, 그때,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그 시절, 왜 그렇게 순간순간 뜨겁고 아팠는지. 언어 이전 시기의 순수함을 타인과 부대끼면서 강제로 잃어가는 과정을 아무런 아픔 없이 매끄럽게 넘어가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서교동에서 죽다>는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으로 넘어가는 한 소년의 마음을 생생하게 그린 성장소설이다. 매 순간 손가락 사이로 많은 것들이 빠져나가고, 또한 많은 것들이 다가와 들러붙는 시기를 건너가는 십대 소년의 자아가 날것처럼 손에 잡혀온다. 1970년대 서울의 지형과 생활상을 맑은 수채화처럼 깔고 있는 이 소설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스멀스멀 서로에게 스미는 상황을 유려하고 애틋하게 그려낸다. 은희경 <새의 선물>, 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정원>, 제임스 조이스 ‘애러비’를 읽을 때와 비슷한 마음의 파동을 자아내는 이 장편소설의 백미는 무엇보다 소년과 ‘구희누나’의 마주침, 그에서 파생된 음악과의 만남일 것이다.
정아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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