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새로운 눈으로 전통을 다시 만나야
우리는 성리학과 다시 화해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킨 성리학의 폐단과는 영결(永訣)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로서는 집집마다 사당을 세울 이유도 없고, 신분적 위계질서라든가 남성 위주의 가부장주의도 필요로 하지 않다.
그럼 우리가 기꺼이 계승할 성리학이란 무엇인가. 그 안에 들어 있는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사상의 씨앗이다. 알다시피 맹자는 사회정의를 힘껏 강조하였다. 또, 공자는 학문적 수련과 실천을 ‘내 안에서’ 일치하려고 노력했다. 그뿐만 아니라, 주자는 단편적 지식으로서의 유교가 아니라 하나의 일관되고 체계화된 사상으로 유교를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제자인 조선의 성리학자들도 훌륭한 점이 많았다. 그들은 사람이 본래 타고난 사회적 지위와 그 위세를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 그 대신에 누구라도 끊임없는 학습과 수련을 통해서 인격을 연마하고 지식을 키우면, 혼란한 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조선의 성리학자는 신비주의에 빠져 미신을 숭상하는 법도 없었다. 그들은 만물이 지닌 저마다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이 제도화된 차별과 불의에 늪에 함몰되는 것을 항상 경계하였다.
이런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가며, 우리 역사에는 많은 선구자가 나타나 힘껏 노력하였다. 그들의 머리와 가슴에서 새로운 사상과 문물제도가 찬란한 모습으로 피어났다. 삼봉 정도전, 정암 조광조, 율곡 이이,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추사 김정희, 담헌 홍대용, 혜강 최한기, 환재 박규수 등 고귀한 사상가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왔던가.
전통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도 물론 경계할 지점은 분명히 있다. 우리의 문화전통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앞서 살았던 선구자의 사상이라고 하여 교조적으로 떠받드는 것은 도리어 많은 폐단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허물이 있기 마련이고, 시대적 한계도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 점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아버리면 우리는 다시 역사의 절벽에서 추락하게 될 것이다.
나는 하필 성리학만 우리의 전통사상이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불교도 좋고, 도교 또는 도가도 부족함이 조금도 없다. 무교라고 안 될 일도 아닌 것이다. 전통문화와 사상 및 종교를 일방적으로 깎아내리거나, 그와 반대로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태도를 멀리하는 것이 좋겠다.
누구의 역사든 그것을 공부한다는 행위는, 결국 과거의 경험과 전통 가운데서 보편적 타당성을 가진 유산을 캐내어 다시 살리는 일이다.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우리는 아름다운 새 문화의 싹을 길러내고자 한다. 거기에 역사를 배우는 깊은 뜻이 있다. 역사의 목적이 이 한 가지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역사 연구의 중요한 과제인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내가 하필 위에서 성리학을 말한 것은 한 가지 예를 든 것일 뿐이다. 불교도, 도교도, 무교도, 동학도, 가톨릭도, 그리고 이제는 개신교도 이미 우리의 것이 되어버린 사상이요 문화이다. 우리는 이 모두를 고유문화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고, 그로부터 자양분을 섭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자면 전통문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아니 눈부터 깨끗이 씻어야 할 것이다. 맹목적인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균형 잡힌 시선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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