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범 선생께서 음악비평에 대해 회의적인 글을 쓰신 덕분에, 요시다 히데가즈(吉田秀和,1913-2012)를 떠올렸다. 혹시나 번역이 있나 찾아봤는데 없는 거 같다.
요시다는 근현대 일본에서 음악평론이라는 장르를 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이고 이 사람의 이름이 붙은 상이 존재할 만큼 독보적인 존재다. 이제는 일본의 많은 분야 사람들이 소개되고 알려졌는데 이 사람이 아직 안 알려졌다니 놀라울 정도. 음악 뿐 아니라 미술비평(마네론)으로 요미우리문학상이라는 굵직한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사람이다.
자신의 방대한 전집도 있지만 영/불/독어가 가능해 번역서도 한두권이 아니다. 심지어 인생 후반기에 FM라디오방송 진행을 맡아 그야말로 작고직전까지 수십년을 이어갔다. 말 그대로 ‘거인’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
전에 짧게 쓴 적이 있지만 나는 학부때 클래식 음악 동호회활동을 했다. 일요일이면 누군가의 집에 모여서 음악을 듣거나, 관심있는 연주회에 제일 싼 학생용 티켓 사서 같이 가는 게 활동의 전부. 물론 방학이 되면 합숙이라는 이름으로 고원 같은 곳에 놀러가 지치지도 않고 음악 얘길 했었다. 움직이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딱인 동아리였다.
바로 그 시기에 요시다히데가즈 전집이 나왔고 대학원 이후에 열광했던 가라타니 고진에 지지 않을 만큼 학부땐 이사람의 글을 좋아했다.
찾아 보니 말년의 영상이 있다. 들어보니, 직장 때려치고 글을 쓰게 됐는데, “이런 걸(음악을 언어로 표현)한 사람이 세계에 아직 없다”는 생각을 한 게 컸다고. 그만큼 쓰고 싶은 욕망이 강했던 듯.
다른 나라에 음악 평론가로 유명한 사람이 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쉽게 있기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본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깊고 넓다.
영상은 일본어지만 분위기라도 보십사고.
도쿄 사람들이 여유가 생기면 살고 싶어하는 가마쿠라 자택에서의 인터뷰. 제목은 “언어로 연주 하는 음악”.
108고영범, 李昇燁 and 10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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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連載「いま読む「音楽展望」 吉田秀和 没後10年」一覧ASAHI.COM連載「いま読む「音楽展望」 吉田秀和 没後10年」一覧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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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h
- Park YuhaSatoshi Shimada お、こういう連載があったんですね.新聞読んでも特集まで読まないことが多く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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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h
- Hyonggun Choi“일본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본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깊고 넓다” 심심히 공감합니다! 음악과 영화 매니액이셨군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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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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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k YuhaHyonggun Choi 네, 비디오도 없던 시절이라, 자주 수업 빼먹고 영화관에 가곤 했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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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h
- Hyonggun ChoiPark Yuha 뭐든 열심히 하는 일본에서도 땡땡이가 있었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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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h
- Park YuhaHyonggun Choi 대학은 노는 곳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어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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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h
- Hyonggun ChoiPark Yuha 짜슥들 고것은 비슷하게 하네요! 하하 참 비슷한듯 다르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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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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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seok Woo정말 음악 저변을 보면 일본 따라가려면 멀었습니다. 전 클래식은 잘 모르지만 대중음악계만 보더라도, 왜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일본은 반드시 방문해서 공연을 하는 지만 봐도 답 나옵니다. 세계 음악 시장 2위 답게 팬들이 가득찹니다. 한국은 그렇지 않죠. 4년전 신주쿠에 있는 Union Disk를 방문했을 때, 8층 건물 각층마다 온갖 장르별 CD로 꽉꽉 채워져 있는 걸 보며 정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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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h
- Park YuhaMinseok Woo 제 생각에 일본이 특별히 훌륭해서라기보다 세속적 욕망이 비교적 적고,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일 듯 합니다. 이른바 덕후=오타쿠가 일본에서 나온 말인 것도 그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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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h
- Changsoo Ryu말러에 대한 아도르노 저서 서문에 보면그간 음악 평론이라는게 한 극단은 철저히 악보만을 중심으로 화성적 형식적 측면에 대한 기술적 분석에 매몰된 글이 있는가 하면 다른 극단은 곡의 역사적 사회 문화적 인문학적인 맥락에서 문학적 은유가 가득한 글이 있는데..아도르노는 어느쪽도 결여되지 않는 평론을 목표로 한다고 한바 있지요..사실 쉽지 않는 작업이고..요시다 히데가즈는 저도 명성만 많이 들어봤는데 번역이 되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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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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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k YuhaChangsoo Ryu 아도르노가 말러론도 썼군요. 고바야시히데오(小林秀雄)라고 요시다와 비슷한 시기를 산, ‘비평’의 선구자 같은 사람이 있는데 이사람의 <모짜르트>론에 대해 요시다가 불만을 말해요. 그야말로 ‘문학적’이고 겉돈다면서. 그걸 넘어서고 싶었던 거 같고 실제로 고바야시의 글은 아주 화려하지만 깊이 와 닿는 게 별로 없었어요.아도르노가 지향한 건 그런 화려함만은 아닐 거 같은데 어떻게 다른지 관심이 갑니다.요시다의 모짜르트론은 문고로 나와 있을만큼 대중적이예요. 독자가 많지 않을테니 출판사로선 부담스럽겠지만 어딘가 내 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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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h
- Dongjin Kim평론문화가 발달해서인지 문화생활이 저같은 사람에게도 저변화가 되었답니다. 주말이면 공연이나 음악, 미술, 문화생활에 둘러쌓이게 되지요. 상황이 이런데 한국의 눈에는 일본도 그렇고 프랑스도 유럽짱개라며 자기보다 한수 아래라고 생각하던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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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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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k YuhaDongjin Kim 음 일본 훌륭하다고 쓰려 한 글은 아닌데 그 부분에 관심 두는 분이 많네요.^^별 의미없는 책들이 다 번역되는 상황이라, 그런 것보다 더 관심 둘 만한 존재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네요.그런데 프랑스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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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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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히데카즈
출처 : 무료 백과 사전 "Wikipedia (Wikipedia)"
요시다 히데카즈 (요시다 히데카즈) | |
---|---|
탄생 | 1913년 9월 23일 도쿄시 니혼바시구 (현· 도쿄도 주오구 ) |
사망 | 2012년 5월 22일 (98세몰)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 |
직업 | 음악평론가 수필가 |
언어 | 일본어 |
국적 | 일본 |
기르다 | 학사 ( 문학 ) |
최종 학력 | 도쿄 제국 대학 문학부 불문과 졸업 |
활동기간 | 1946년 -2012 년 |
장르 | 음악평론 문예평론 미술평론 수필 번역 |
주제 | 서양 음악 |
걸작 | 『머니의 초상화』(1993년) |
주요 수상 경력 | 오불 지로상 (1975년) 시선포장 (1982년) 훈삼등 서보장 (1988년) NHK방송문화상 (1988년) 아사히상 (1990년) 가나가와 문화상 (1990년) 요미우리 문학상 (1993년) 문화훈 (2006년) |
배우자 | 바르바라 크래프트 (후부) |
위키 포털 문학 | |
템플릿 보기 |
요시다 히데카즈 (요시다 히데카즈, 1913년 ( 다이쇼 2년) 9월 23일 - 2012년 ( 2012 년) 5월 22일 )는, 일본 의 음악 평론가 , 수필가 .
내력·인물 [ 편집 ]
클래식 음악 의 풍부한 체험·지식을 바탕으로, 음악이 가지는 매력이나 깊은 통찰을 뛰어난 감각적인 말로 표현, 일본의 음악 평론에 있어서 선도적 역할을 한다. 음악뿐만 아니라 문학 이나 미술 등 폭넓은 분야에 걸친 평론활동을 이어 일본의 음악평론가로서는 최초의 개인전집이 간행되어 제2회 오부지로상 을 받았다. 큰 스모 좋아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사히신문 석간에 '음악전망'을 기고했다. 매월 기고는 일시기, 중단하고 있었지만, 2006년 11월에 복귀, 이후, 연 4회의 페이스로 게재. 약 2년의 장기 중단의 이유는, 2003년 11월에 부인 요시다=크래프트·바르바라(1927년 베를린 출신으로, 독일어로 일본 문화·문학의 연구 소개를 하고 있었다)가 사망한 것에 의한 정신적 충격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재 집필이나, NHK-FM 방송 에서 1971년 부터, 약 40년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명곡의 삶』의 프로그램 구성·사회를 계속해 실시하는 등, 2012년에 98세로 죽을 때까지 정력적으로 활동 계속했다. 독, 불, 영어로 통하여, 특히 독일어와 프랑스어의 번역서는 수많다.
이른바 빌투 오조 에는 비판적이며 조르주 시프라 의 1964년 일본 연주와 마르칸드레 암란 의 쇼팽의 에튜드에 의한 연습곡 을 혹평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약력 [ 편집 ]
- 도쿄시 니혼바시구 신이즈미쵸(현· 도쿄도 츄오구 니혼바시 닌교초 )에서 태어나 4~5세에 니혼바시구 호각초로 이사. 아버지의 히데는 와카야마현 출신으로, 외과의 개업의. 어머니의 눈은 도쿄 후카가와의 부엌집의 딸로, 아오야마 여학원(현 아오야마 학원) 제1기생. 어머니의 영향으로 서양 고전 음악에 친해지고 자란다.
- 1922년 생활에 오모리로 이주해 관동대지진 의 피해를 위태롭게 면한다. 아버지가 홋카이도 오타루 의 병원의 원장에 취임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6년의 가을에, 일가에서 오타루에 전거. 구제 중학교 의 오타루시 중학교(현·오타루 시립 나가하시 중학교)에서 2학년 때까지 이토 마사히 에게 영문법과 영작문을 가르친다. 이 무렵, 비올라 를 연주하는 고바야시 타키 지가 요시다 가문을 12번 방문하여 히데와의 어머니와 합주한 적이 있다(요시다 히데카즈 『영원의 고향 밤』 p.24, 슈에이샤).
- 1930년 봄, 4년 수료로 구제성성 고등학교 문과 갑류( 영어 클래스)( 현성성 대학 )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보내는 것도, 동년 가을, 문과 을류( 독일어 클래스)로 전환함과 동시에, 독일어 의 스승인 아베 로쿠 로의 성성 의 집에 동거(~ 1931년 1월까지). 이 무렵 나카하라 나카야 에게 프랑스어 의 개인 교수를 받고, 그것이 계기로 동거하고 있던 타카모리 후미오 가 나카야와 친해진다. 고바야시 히데오 와 오오 카 승평 과도 교류했다. 같은 가마쿠라시 에 거주하고 있던 고바야시는 후년에 이르러 요시다를 라이벌 시, 그 자택을 방문했을 때, 방금 나온 「혼이 선장」을, 요시다의 눈앞에 내놓고 「너, 나왔어」라고 토해 버리기도 했다(아사히 신문 연재의 칼럼보다). 요시다 자신도 너무 위세가 좋은 단정조의 고바야시의 비평에는 비판적으로 되어 갔다.
- 1936년 , 도쿄 제국 대학 (현·동대) 문학부 프랑스 문학과 졸업. 1937년 부터 1938 년경, 나카지마 켄조 의 소개로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 미술대학 )에 근무해, 반년 못해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었던 적이 있다 [1] .
- 제국 미술 학교 퇴직 후, 지유가오카 의 언니의 집에 기후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책을 읽거나 요시다 이치호 의 집에 놀러 가고 있었지만, 전국의 악화에 따라 유식 생활이 곤란해져, 요시다 이치호의 소개로 내무성 지방국 서무계에 근무, 영독불어의 번역에 종사 [1] . 근무중은 대충 책을 펼쳐 직무외의 사적인 일( 슈만 의 「음악과 음악가」의 번역. 나중에 카와카미 테츠타로 의 소개로 창원사로 부터 간행)를 한 적도 있다 [1] . 전시중은 정보국 (내각 정보국) 소관의 일본 음악 문화 협회 에 이구치 기성 의 추천으로 출향. 당시의 신분은 촉탁으로 피아노 원료의 강철이나 철근을 음악산업을 위해 확보하는 것과 음악가의 군사징용을 멈추도록 설득 하는 것이 직무내용이었다 . 당시 직장에서 상사에게 싸움적인 발언을 하고 꾸짖어 사람 앞에서 울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 . 전후는 문부성 의 소속으로 옮겨졌지만, 패전 후의 혼란기에 「자신의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해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모여 근무를 그만두고, 여성 잡지의 별책 부록 「세계의 명곡」에 기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 평론의 길에 들어간다.
- 1946년 '음악예술'지( 음악유우사 )에 ' 모차르트 '를 연재, 본격적으로 평론활동을 시작한다.
- 1948년 사이토 히데오 , 이구치 기성 , 이토 타케오 , 시바타 미나미오 , 스즈키 노부코 등과 「어린이를 위한 음악 교실」을 개설해 초대 실장. 일기생에는 오자와 정자 ( 지휘자 ), 나카무라 히로코 ( 피아니스트 ), 제방강 ( 첼리스트 , 키리모토 학원 대학 전 학장) 등이 있다 . ' 어린이를 위한 음악교실 '은 나중에 키리호학원 음악부문의 모체가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요즘 스와네 자자 에 있었다고 한다.
- 1957년 시바타 미나미오 등과 「 20세기 음악연구소」를 설립, 소장이 된다.
- 1964년 키리모토학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던 바르바라 크라프트(Barbara Krafft)와 교토에서 결혼.
- 1967년부터 서 베를린에 약 1년여 체재. 기간 내에 거주하는 것만을 조건으로, 나라의 예술가나 문화인을 초빙해 일정의 보수와 주거를 제공하는 동시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동안 많은 콘서트나 오페라, 연극에 다니고, 또 동서독 의 텔레비전, 라디오에 의한 음악 프로그램에 접한다.
- 1975년, 「요시다 히데카즈 전집」(제1기 10권까지)로 제2회 오오지지로상 수상.
- 1982년,紫綬褒章을 수장.
- 1983년, 블라디미르 홀로비츠 가 처음 방문했을 때, 그 연주를 「과연, 이 예술은, 과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품이었지만, 지금은──가장 겸손하게 가도──균열이 들어가 있다. 1개나 2개의 금이 아니다”(『음악 전망』 1983년 6월 17일 “홀로비츠를 듣고”)라고 평가해 화제가 되었지만, 1986년의 홀로비츠 재래일 때는, “이 사람 는 지금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건반상의 마술사인 것과 동시에, 이 개념 그 자체가 얼마나 깊고 19세기적인 것인가라고 하는 것과, 당시의 명수대가의 어느 쪽인지를 전하는 귀중한 존재라고 말해야 한다”고 칭찬했다(『음악 전망』1986년 7월 3일 「피아니스트 홀로비츠」).
- 1988년 미토 예술관 관장으로 취임. 훈삼 등 서보장을 수장 [3] . NHK방송문화상 수상.
- 1990년, 미토 예술관관 개관과 함께, 그 전속 악단으로서, 오자와 정작을 음악 고문으로 하는 미토 실내 관현악단 을 창설. 또 음악· 연극 · 미술 등 각 분야에서 뛰어난 예술평론을 발표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 요시다 히데카즈상 '이 설립됐다. 같은 해에 아사히 상, 가나가와 문화상을 수상.
- 1993년, 「머니의 초상화」로 제44회 요미우리 문학상 수상.
- 1996년 문화공로자가 된다.
- 2004년, 「요시다 히데카즈 전집」전 24권 완결.
- 2006년 문화훈장 수장.
- 2007년, 가마쿠라시 명예 시민 [4] 및 미토시 명예 시민 [5] .
- 2012년 5월 22일, 가마쿠라 시내의 자택에서 급성 심부전 때문에 사망. 98세몰 [6] . 일몰에 종삼위에 서렸다.
- 2012년 7월 14일의 NHK-FM에서 「명곡의 즐거움」(=내 시청실을 포함) 「라후마니노프의 그 음악과 평생」 27회째(동시리즈 최종회)를 생전의 녹음으로 방송했지만, 사실상 요시다 스스로의 목소리에 의한 방송은 이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저작 [ 편집 ]
전집·선집 [ 편집 ]
- 「요시다 히데카즈 전집(전 24권)」( 시라미즈 샤 , 1975-2004), 4기로 나누어 간행
- 1975년에 1~10권, 1979년에 11~13권, 1986년에 14~16권, 2001-04년에 17~24권
- 1) 모차르트 베토벤 / 2) 주제와 변주 / 3) 20 세기 음악 / 4) 현대 연주 / 5) 지휘자에 대해 / 6) 피아니스트에 대해 / 7) 명곡 300 선 / 8) 음악과 여행 / 9) 음악 전망 / 10) 에세이 / 11) 내가 좋아하는 곡 / 12) 카이에 드 크리티크 I / 13) 음악가 / 14) 디스크 즐거움 / 15) 카이 드 크리티크 II / 16) 예술 수상 17) 조화의 환상 툴루즈=로트렉/18) 세잔느/19) 음악의 시간 1/20) 음악의 시간 2/21) 음악의 시간 3/22) 음악의 시간 4/23) 음악의 시간 5/24 ) 디스크 재설정
- 『요시다 히데카즈 작곡가 논집(전 6권)』( 음악노우사 , 2001-2002)
- 제1권 「브루크너, 말러」 / 제2권 「슈베르트」 / 제3권 「쇼팽」 / 제4권 "슈만" / 제5권 "브람스" / 제6권 "JS바흐, 하이든"
- 『요시다 히데카즈 명곡의 즐거움(전 5권)』(니시카와 아키라 편, 학연 , 2013), 편자는 프로그램 치프 프로듀서
- 『모차르트 그 음악과 평생 명곡의 즐거움(전5권)』(니시카와 아키라 교정, 학연, 2014-2015), 속편
단저 [ 편집 ]
- 『주제와 변주』( 창원사 , 1953 → 중공문고, 1977 개판 2011)
- 『음악가의 세계』(창원사, 1953)
- 『20세기의 음악』( 이와나미 신서 , 1957)
- 『음악기행』( 신 시오샤, 1957 신판 1968 → 중공문고, 1993)
- 『내 음악실―LP300선』(신시오샤, 1961 신편 1966→ 신시오 문고 (개정판), 1982)
- 『비평 초지――일본을 보는 눈』(음악노유사, 1965)
- 『비평초지 계속』(음악유우사 , 1965)
- 『현대의 연주』(신시오샤, 1967)
- 「모차르트」( 코단샤 , 1970 → 코단샤 학술 문고 , 1990)
- 『오늘의 연주와 연주가』(음악유우사, 1970)
- 「솔로몬의 노래」( 가와데 서방 신사 , 1970 → 아사히 문고 , 1986)
- 「한 장의 레코드」( 중앙 공론사 , 1972 → 중공 문고, 1978)
- 『유럽의 히비키, 유럽의 모습』( 신쵸샤 , 1972 → 중공문고 , 1988)
- 『세계의 지휘자』(라디오 기술사, 1973 → 신시오 문고, 1982)
- 『하나의 나무』(오니시 서점, 1975)
- 「레코드의 모차르트」(중앙 공론사, 1975 → 중공 문고, 1980)
- "현대 음악을 생각한다"(신시오샤, 1975)
- 『세계의 피아니스트』(라디오 기술사, 1976 → 신시오 문고, 1983)
- 『레코드와 연주』(음악유우사, 1976)
- 『내가 좋아하는 곡』(신시오샤 전 2권, 1977 → 신시오 분고 전 1권, 1985)
- 『내 속의 음악·음악 속의 나』(음악노유사, 1977)
- 『음악 전망(전 3권)』( 고단샤 , 1978-1985)
- 『비평의 소경――현대의 수상』(일본 서적, 1979)
- 『음악의 여행・그림의 여행』( 중앙 공론사 , 1979 → 중공 문고, 1982)
- 『음악의 빛과 날』(가마쿠라 서방, 1980 → 중공 문고, 1989)
- 『울림과 거울』( 문예춘추 , 1980 → 중공문고, 1990)
- 『조화의 환상』(중앙공론사, 1981)
- 「모차르트를 요구해」( 시라미즈사 , 1982 → 시라미즈 U북스, 2005)
- 「레코드 음악의 즐거움」(음악 노토모사, 1982)
- 『내 시간』(해룡사, 1982 → 중공문고, 1985)
- 『툴루즈=로트렉』(중앙공론사, 1983)
- 『레코드의 사계』(음악노우사, 1983)
- 『음악에서 들려오는 것』(음악노유사, 1984)
- 『베토벤을 찾아라』(시라미즈샤, 1984)
- 『이 레코드가 좋다·25선』(신시오샤, 1985)
- "다른 시간"(카이류샤, 1985), 선문집
- 『세잔 이야기』( 중앙 공론사 전 2권, 1986 → 치쿠마 문고, 2009), ※아래 참조
- 『이 디스크가 좋다·25선』(신시오샤, 1987)
- 『세잔은 무엇을 그렸는가』( 시라미즈샤 , 1988)
- 『음악의 시간――CD25선』(신시오샤, 1989)
- "두 번째 뉴욕"( 요미우리 신문사 , 1989)
- 오페라 노트(시라미즈사, 1991 → 시라이즈 U북스, 2009)
- “신·음악 전망 1984-1990”( 아사히 신문사 , 1991)
- 『이 CD, 이 LD・25선』(신시오샤, 1992)
- 『인생을 깊게 즐기기 위해――자연과 예술과 인생과』(해룡사, 1992), 선문집
- 『머니의 초상』(시라미즈샤, 1993)
- “신·음악 전망 1991-1993”(아사히 신문사, 1994)
- 『때의 흐름 속에서』( 요미우리 신문사 , 1994 → 중공문고 , 2000)
- 「문학 때 에세이의 소경」(시라미즈사 < 시라미즈 U북스 >, 1994), 재편본
- 『음악이 있는 장소――CD・LD30선』(신시오샤, 1995)
- 『다시 다시 만나는 기쁨――신·음악 전망 1994-1996』( 아사히 신문사 , 1998)
- 『음악의 20세기―CD・LD30선』(신쵸샤, 1998)
- 『물에는 정해진 게 아니야…』(요미우리 신문사, 1999)
- 『반송 듣기, 반복 읽는다――신·음악 전망 1997-1999』(아사히 신문사, 2000)
- 『 브람스의 음악과 평생 』
- 『이번 달의 한 장――CD・LD36선』(신시오샤, 2001)
- 「천년의 문화 백년의 문명」(해룡사, 2004), 선문집
- 『비록 세계가 부조리였다고 해도――신·음악 전망 2000-2004』(아사히 신문사, 2005)
- 「유키를 즐기는 사람에 관계없이」(신시오샤, 2009)
- 『내 오페라』(해룡사, 2010), 선문집
- 『영원의 고향-밤』( 슈에이샤 , 2008)
- 『영원의 고향-박명』(슈에이샤, 2009)
- 『영원의 고향-한낮』(슈에이샤, 2010)
- 『영원의 고향-유에이』(슈에이샤, 2011)
- 「말의 푸가 자유롭게, 정밀하게」(4명 서원, 2011), 29편을 정선한 문업
재편 문고 [ 편집 ]
- 『음악――비평과 전망』( 아사히 문고 (전 3권), 1986)
- 『이 한 장』( 신시오 분고 , 1992) - 『이 레코드가 좋다·25선』+『이 디스크가 좋다·25선』
- 『이 한 장 part2』(신시오 분고, 1995) - 『음악의 시간』+『이 CD, 이 LD・25선』
- 「솔로몬의 노래 하나의 나무」( 고단샤 문예 문고 , 2006)
- 『내가 좋아하는 곡 요시다 히데카즈 컬렉션 1』( 치쿠마 문고 , 2007)
- 『세계의 지휘자 요시다 히데카즈 컬렉션 2』(치쿠마 문고, 2008)
- 『세계의 피아니스트 요시다 히데카즈 컬렉션 3』(치쿠마 문고, 2008)
- 『모차르트를 키는 요시다 히데카즈 컬렉션 4』(치쿠마 문고, 2008)
- 『명곡 300선 요시다 히데카즈 컬렉션 5』(치쿠마 문고, 2009)
- 『세잔 이야기의 요시다 히데카즈 컬렉션 6』(치쿠마 문고, 2009)
- 『세계의 연주가 요시다 히데카즈 컬렉션 7』(치쿠마 문고, 2010)
- 『음악의 여행・그림의 여행, 음악의 빛과 翳 요시다 히데카즈 컬렉션 8』(치쿠마 문고, 2010)
- 『말러』( 가와데 분고 , 2011, 증보판 2019), 논고·CD평 등을 집성
- ' 후르트 벤글러 '(가와데 분고, 2011), 관련 논고 집성
- 『바흐』(가와데 분고, 2019)
- ' 글렌 구르드 '(가와데 분고, 2019), 관련 논고 집성
- 『카라얀』(가와데 분고, 2019)
- 『홀로비츠와 거장들』(가와데 분고, 2019)
- 『브람스』(가와데 분고, 2019)
- 『클라이버, 체리비다케, 번스타인』(가와데 분고, 2020.2)
- 『베토벤』(가와데 분고, 2020.4)
- 『내 모차르트』(가와데 분고, 2021.4)
공동 저술 [ 편집 ]
- 『우리의 가곡집』(쓰쿠마 서방, 1951)
- 사사키 히데야 , 타카야 히데아키 공저 『세계의 명화 5 머니와 도가』(중앙 공론사, 1972) - 작가론을 기고(신판간)
- 『음악을 말한다――대화에 의한 음악 입문』(예술 현대사(상하), 1974-75)
- 와타나베호 공저·S.Lauterwasser 사진 “바이로이트 음악제--니베르그의 지환”(음악 노우토사, 1984)
- Buhs Remmler 외 사진 “베를린·독일·오페라”(음악 유우사, 1987)
- 사사키 키히사 공저·오쿠보 미치지 사진 “오자와 정희=미토 실내 관현악단――기적의 오케스트라 유럽을 간다”(음악 노우토사, 1998)
- 오자와 정치 와 공술·모노이시 유키오, 음악 유토모사 구성·편 “이상의 실내 오케스트라란! ――미토 실내 관현악단에서의 실험과 성취」(음악노우사, 2002)
- "음악의 요로코비"(가와데 서방 신사, 2020.10) - 11명과의 대화집
- 『예술의 요로코비』(가와데 서방신사, 2021.3)- 대화집
편저 [ 편집 ]
- 제이 사부로, 노무라 요시오 공편 「음악 사전」(가와데 서방, 1953)
- 이리노 요시로 공편 「청춘의 가곡집」(가와데 서방, 1954)
- 이리노 요시로 공편 「세계 민요 곡집」(수도사, 1955)
- "젊은 날의 음악"(가와데 서방, 1956)
- 『음악유학생』(음악유우사, 1957)
- 다카하시 히데로 공편 「모차르트 봉」(시라미즈샤, 1966, 신장판 1995)
번역 [ 편집 ]
- 리하르트 벤츠 '영원한 음악가'(창원사, 1943)
- 슈만「음악과 음악가」(창원사, 1948 → 이와나미 문고 , 1958, 개판 2007)
- 앨런『철학 입문 사상』(상·하, 아르스, 1949-51)
- 할리히 슈나이더 '현대 음악과 일본 작곡가'(창원사, 1950)
- 『 모오차르트 의 편지』( 편역 , 다비드사, 1951)
- 개정판 「모차르트의 편지」(고단샤, 1974 → 코단샤 학술 문고, 1991)
- 안드레 오데르 '음악의 형식'(시라미즈샤 문고 쿠세쥬 , 1952, 개판 1973)
- 클로드 로스탄 '현대 프랑스 음악'(시라미즈 사 문고 쿠세쥬, 1953)
- 아르투르 오네겔『저는 작곡가이다』(창원사, 1953 → 음악노우사, 1970, 신판 1999)
- 베르나르 샴피뇽 『음악의 역사』
- 로랑·마뉴엘 『음악의 삶』(시라미즈사, 전 4권 1953-55, 신판 전 3권 1966・1979 → 시라이즈 U북스 전 4권, 2008)
- ※각 권 타이틀은, 제1권 「음악의 요소」, 제2권 「음악의 아유미 1(베토벤까지)」
- 제3권 「음악의 아유미 2(베토벤으로부터 오늘까지)」, 제4권 「오페라」
- 안드레 오데르 『현대 음악――프랑스를 제외하다』(시라미즈샤 문고 쿠세쥬, 1956)
- 슈투켄슈미트 『현대 음악의 창조자들』(신쵸샤, 1959, 신판 1968)
- 슈트우켄슈미트 ' 셰인베르크 '(음악유우사, 1959)
- 로버트 크래프트 / I 스트라빈스키 '118의 질문에 답한다'(음악유우사, 1960)
- 로만 로랑「베토벤 연구」(「전집 24」미스즈 서방 , 1962, 신판 1980 → 「베토벤 위대한 창조의 시기」, 1970), 분담역
- 레너드 번스타인 '음악의 요로코비'(음악노유사, 1966)
- 클로드 로스탄 '독일 음악'(시라미즈샤 문고 쿠세쥬, 1966)
- 슈투켄슈미트 『20세기 음악』(평범사〈세계대학선서〉, 1971)
- 『파블로 카자르스 —기쁨과 슬픔』(앨버트 E. 칸편, 신시오샤, 1973 → 아사히 신문사 < 아사히 선서 >, 1991), 향지 케이고 공역.
- 『모차르트』(쿠르트·파렌편·해설, 아사히 출판사, 1975), 아라이 히데나리, 스즈키 위공역
- 바르바라·요시다=크래프트 『일본문학 의 빛 과 그림자
번역 [ 편집 ]
- 슈베르트 작곡 「겨울의 여행」(도쿄 음악 서원)
- 슈베르트 작곡 “아름다운 수차가게의 처녀”(도쿄 음악 서원)
- 슈만 작곡 『사스라이노민』(도쿄 음악 서원)
- 제델만 작곡 「혼례의 축하」(도쿄 음악 서원)
- 멘델스존 작곡 「3개의 민요」(카와이 악보), 그 외 다수.
요시다 히데카즈론 [ 편집 ]
- 오카야마 만리코『요시다 히데카즈 사론――또 말하는 소리』(楽、1992)
- 개정판 「요시다 히데카즈――소리 쫓아와」(알히프, 2001)
- 「요시다 히데카즈――고고 불멸의 음악 평론가」 카와데 서방 신사 「KAWADE 무크 문예별책」, 2019
출연 [ 편집 ]
각주 [ 편집 ]
[ 각주 사용법 ] |
- ↑ a b c d 레코드 예술편 「요시다 히데카즈 음악을 마음의 친구와」p.34
- ↑ 레코드 예술편 “요시다 히데카즈 음악을 마음의 친구와”p.35(음악 노우토시, 2012년)
- ↑ 「가을의 서위 서훈 4538명, 맑은 수장 숨은 공로자, 사상 2위의 1741명」 「요미우리 신문」 1988년 11월 3일 조간
- ↑ 가마쿠라시 명예시민 - 가마쿠라시 , 2022년 7월 12일에 확인함
- ↑ 미토시 명예 시민 - 미토시 , 2022년 7월 12일에 확인함
- ↑ “문화 훈장 수장의 음악 평론가, 요시다 히데카즈씨 사망” . 요미우리 신문 . (2012년 5월 27일) 2012년 5월 27일 열람. Archived 2012-05-30 at the Wayback Machine .
- ↑ NHK-FM 방송「명곡의 즐거움」으로 방송한 「브람스의 음악과 평생」을 재구성한 저작.
외부 링크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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