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눈 떠야 공존의 길 열린다 - 주간경향
긍정의 눈 떠야 공존의 길 열린다2022.07.22 11:16
ㆍ고정관념 타파 등 관점의 근본적 변화 필요… “복잡한 체류자격 제도 통합” 목소리도
한국사회가 본인 또는 부모가 외국으로부터 이주한 경험이 있는 ‘이주배경 청년’과 공존하는 법을 모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관점의 근본적인 변화다.
이주배경 청년들이 서울 효자동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내 카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간 한국사회의 이주민 2세대에 대한 관점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에 있는 이들을 방치하면 2005년 프랑스 파리 외곽(방리유) 이민자 소요 사태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 사전에 ‘관리’하자는 쪽에 가까웠다. 이주민 2세대에 대한 그릇된 고정관념 때문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고정관념과 다른 이주배경 청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의뢰를 받아 지난해 12월 발표한 ‘이주배경 청소년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주배경 청소년이 비(非)이주배경 청소년에 비해 모든 측면에서 취약할 것이라는 일반적 생각과 달리, 현실적 측면에서 열악함에도 긍정적이고 건강한 심리적 특성을 지니고 있고, 다문화 수용성이나 통일 관련 의식이 높은 등 매우 긍정적인 집단이라는 점이 객관적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 결과가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이주배경 청소년들이 성장하면 언젠가는 갈등을 유발할 ‘시한폭탄’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실제 이주배경 청소년들의 실태와 맞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책의 지향점을 모든 사회구성원이 인권을 침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보다 긍정적 방향으로 둘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2009년부터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지원활동을 해온 강은이 시흥시 가족센터장은 “패러다임 전환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패러다임 전환이 없으면 이주배경 청년 지원 논의는 지속적으로 역차별 논란에 휘말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앞으로 이민자를 더 수용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인재를 수용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일정 부분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주배경 청년들이 가장 적합한 이들이다. 기존에는 이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비행을 저지르거나 하층 노동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므로 어쩔 수 없이 도와줘야 한다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양성해 배출한다는 개념으로 시선을 바꿔야 한다.”
엄한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해 학술지 ‘지역사회학’에 게재한 논문 ‘이민 2세대 개념을 통해서 본 한국의 이주배경 청소년 문제’에서 “2세대 또는 이주배경 개념은 통합의 어려움을 배경으로 등장한 것이기 때문에 부족하고 위험한 존재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러한 표상은 이주배경 주민의 긍정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위험성을 과장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부정적이고 과장된 인식이 사회에 위협이 되는, 부정적인 양상을 낳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동화나 역량강화 전략을 넘어 제3의 존재로서의 특수성을 보존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주배경 청년에 대한 관점 변화의 필요조건은 공교육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다문화교육’이다. 베트남 출신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안혜진씨(26)는 “부모 중 한명이 동남아시아에서 왔을 경우 자녀가 그걸 부끄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다. 어린 친구가 ‘엄마는 왜 코가 그렇게 생겼어?’라고 묻는 걸 본 적이 있다”며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려면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부터 다문화교육을 제대로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보수적인 체류자격 제도
이주배경 청년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은 불안한 체류자격 문제 해결이다. 안정적인 체류자격을 얻지 못하면 늘 쫓기는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어서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법무부는 한국인 노동시장을 보호한다는 보수적 관점에서 외국인 고용을 허용하고 있다.
이주민센터 ‘친구’ 이진혜 변호사의 말이다. “성년이 되기 전 한국으로 온 이주배경 청년에게 F-1(방문동거) 비자만 준 뒤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할 게 아니라 취업할 수 있는 비자를 줘야 한다. 1년 6개월 이상 국적 심사를 기다리거나 취업할 수 있는 비자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자괴감에 빠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강은이 센터장은 “국제결혼가정의 초청 자녀는 들어올 때부터 지속가능한 비자를 주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입양되는 친구들도 많은데 열네 살이 넘으면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귀화신청을 하고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 가정법원에서 입양이 확정되면 바로 국적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거나 적어도 영주권을 부여하는 등 안정적 정주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세분화돼 있고 복잡한 체류자격 제도를 통합해 이주배경 청년이 폭넓게 취업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시장에 프리랜서나 플랫폼 노동 등 다양한 유형이 확대되고 있는데 ‘무조건 하지 말라’는 식의 법무부 태도”(이진혜 변호사)도 문제로 꼽힌다.
아울러 이주배경 청년의 취업 지원을 위한 전달체계를 촘촘하게 구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주배경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진로, 취업 등의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가 많다.
임선일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주배경 청년들은 출신국 커뮤니티나 친구들과의 소통에서 얻은 협소한 정보를 바탕으로 일자리를 찾는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소질, 역량과는 무관한 취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나중에 이직하거나 실직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주배경청소년문화교류센터 ‘투소프카’ 신혜영 센터장은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청년들은 당장 10만원, 20만원이 아쉬우니 단기 아르바이트부터 찾아나서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주배경 청년이 겪는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이들이 처한 조건, 진로·취업·체류자격에 대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고, 이 인력이 학교·이주배경 청년 지원 민관 조직에서 이주배경 청년에게 ‘맞춤형 안내’를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다문화정책’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이민청 신설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 내용이 나온 상태는 아니다. 다만 이민청의 목적이 인구절벽에 대응하기 위한 ‘우수인력 유입’에만 그친다면 이주배경 청년 정책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