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개인적인 취향인데, 영화든 문학이든 연극이든, 텍스트 안에서 근거를 찾아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는 평론은 신뢰하지 않는다. 평자가 뭘 봤는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그 위에 유명한 사람들, 특히 정신분석학자들 이야기를 덮어씌우기 시작하면 그 순간이 대충 이별의 순간이다.
.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는 음악, 특히 서양의 고전음악을 꽤 오래 들어왔지만 인상비평 수준으로도 말하는 게 어렵다. 근거를 마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음악의 근거라면 악보--악보를 보고 음으로 치환시키는 능력, 그리고 그 역의 경우--를 이해하는 능력일텐데, 나는 음을 듣고 악보를 구성해내는 능력은커녕, 악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음악을 듣는 즉시 악보를 꺼내서 비교해보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악보를 읽으면서 따라가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만, 그야말로 따라가기 급급할 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수십 년 가까이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음악을 들으며 지냈는데도, 음악이라는 언어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공부를 좀 했는데도 그렇다. 그리고, 소리/음에 관한 한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는 게 거의 없다.
.
그래서, 정말 신기한 게, 곡도 곡이지만, 곡을 넘어서서 연주에 대해 평을 하는 경우들이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지, 나로선 정말 알 수 없다. 아무리 익숙한 곡을 아무리 인상깊게 들어도, 일이분 이상 되는 분량의 연주를, 그것의 인상을, 그 인상에 대한 내 생각을 정확히 기억하는 건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몇 명의 특징 있는 연주자의 연주를 악보를 옆에 놓고 한 열 번쯤 반복해서, 비교해 가면서 들으면 가능해지려나?
.
얼마 전에 있었던 클라이번 경연에서는 서른 명의 참가자들이 예선에서 모두 Hough의 Fanfare Toccata를 연주해야 했다. 그리 길지 않은 곡이고 구조가 매우 선명해서(바로 이 점 때문에 나는 현대음악을 자주 듣는 편이다. 현대음악은 대개 구조가 더 선명하게 부각되고, 구조가 선명하면 좀 더 분명하게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연주자 별로 비교해 보기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떤 이의 연주를 들을 때에는 그의 특징적인 표현을 조금 알아먹을 거 같았다가, 다른 연주자의 같은 곡을 들으면 앞의 연주자의 연주에 대한 기억이 바로 사라진다.
.
이런 걸 두고 막귀라고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기억력이 버들치 수준인 건지. 아무튼, 어떤 연주자의 연주가 어떻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무슨 소린지 알 것 같다가도 사실은 그냥 막막하다. 대신 좋은 점도 있다. 웬만하면 다 괜찮다는 거.^^ 예선 탈락자들 몇 명의 연주를 들었는데, 매우 재미있다. 길을 내주는 대로 따라가면서 듣고, 즉시 다 까먹었지만. 근데, 사실은 뭘 듣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면서 이렇게 계속 듣는 거, 이거야말로 신기한 일이다. 오늘도 음악을 두 시간 정도 들은 거 같은데, 도대체 뭘 들은 건가?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