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함석헌, 조봉암, 유인촌 | |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유성호 |
2008년 3월 12일 유인촌 문화부 장관의 취임 후 첫 강연은 자유민주사회를 살고 있다고 믿고 있던 내게 어떤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나름의 철학과 이념, 자기 스타일과 개성을 가진 분들로 그런 분들이 새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자리를 지키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다. 30여개 산하기관장들 중 철학·이념·개성이 분명한 사람들은 본인들이 알아서 물러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문화계 수장이라는 유씨의 말을 접하면서 드는 생각은 "글쎄 그럴까?"이다. 한국의 문화가 30여년간의 군사독재 시절을 지내면서도 그나마 한류를 이루어낸 것은 "문화예술계 분들이 어떤 정치권력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철학과 이념, 자기 스타일과 개성을 가진 분들"이기 때문에 가능했었다는 확신이 든다.
"나는 갈수록 퀘이커가 좋습니다. 좋은 이유는 그들은 형식을 차리지 않기 때문이요, 교리나 신학 토론에 열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사도 없고 신부도 없고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겠다는 것도, 누가 뉘게 배우겠다는 것도 없이, 그저 살림을 통해서 하는 전도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은 종교 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연스럽고, 속이 넓으면서도 정성스럽습니다. 누가 와도, 불교도가 오거나, 유니테리언이 오거나, 무신론자가 온다 해도, 찾는 마음에서 오기만 하면 환영입니다. 그러니 참 좋지 않습니까?" - 함석헌 <씨알의 소리> 1978년 2월호 -
난 마치 유인촌씨의 글이 30년 전 박정희군사독재시절에 나온 글이고 함 선생의 글이 21세기 한류를 주도하는 대한민국 문화계에서 나온 글이라는 착각이 든다. 그리고 자문한다, 정말 유씨의 말과 함 선생의 말씀중에 어느 것이 '자연스러울까'? 그러면서 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50년 전인 1958년 한국 현대사의 악몽 같던 두 사건이 떠오른다.
함석헌(1901-1989)과 조봉암(1898-1959)은 6.25전쟁 후 냉전 하 한반도에서 평화통일을 옹호한 1950년대 후반의 대표적 지성인들이었다. 조봉암은 진보적 정치인이었고 함석헌은 종교사상가였다. 둘은 매카시즘이 날뛰는 비슷한 시기에, 그 당시로서는 금기였던 남북평화통일론을 주장했다.
1956년 5월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의 조봉암이 216만 표를 얻자 이승만은 자신의 장기집권체제에 큰 위협을 느꼈다. 이에 이승만 정권은 1958년 1월 13일 진보당사건을 발표, 진보당 간부들을 구속하고 곧이어 정당 등록을 취소하였다. 이승만 정권은 정적인 조봉암을 비난하며 "진보당은 북한의 주장과 유사한 국제연합 감시하의 남북한 총선거를 주장하였고, 북한간첩들과 접선하여 공작금을 받았으며, 공산당 동조자들을 국회의원에 당선시켜 대한민국을 음해하려고 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재판 결과 이승만정권이 주장한 대부분의 사실이 허위, 조작되었음이 밝혀졌고 한동안 씨알들은 사법부가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연이어 1958년 7월 선고공판과 1959년 2월 대법원 판결에서 대부분 진보당 간부들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당수 조봉암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조봉암은 변호인단을 통하여 재심을 청구하였으나 기각되었고, 1959년 7월 31일 조봉암에게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의 명예는 불과 최근 진실화해위원회에 의해서 회복되었다.
하여간 '조봉암 죽이기'가 한창 진행 중인 1958년, 함석헌은<사상계> 8월호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 6.25 싸움이 주는 역사적 교훈"이란 글을 발표한다. 이글에서 함석헌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숙제를 통일정신, 독립정신, 신앙정신이라고 했다. 그는 일찍이 신라의 통일을 요절이라 보았고 외세의 힘을 빌려서 한 통일을 제대로 이룬 통일이 아니고 오히려 분할이라 지적하고 그때부터 한민족의 비극은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함석헌은 이승만 정권을 비판하며, "내세우는 것은 북진통일의 구호뿐이요, 나 비위에 거슬리면 빨갱이니. 통일하는 것은 칼밖에 모르니?…칼을 가지고는 나라는 못 잡을 것이다" 며 이승만의 북진통일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그리고 이 필화사건을 계기로 함석헌은 지금도 살아 있는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20일간 수감되어 매를 맞는 등 갖은 곤욕을 치렀다.
동시대 평화통일론에 관련된 이 두 사건을 놓고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왜 조봉암은 사형 당했고 함석헌은 무사했을까? 조봉암과 다르게 함석헌은 정치인이 아니었고 조직된 정당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정치적 조직력이 전혀 없었던 함석헌의 이런 무조직 능력이 바로 어떤 권력 하에서도 함석헌의 목숨을 부지하게 할 수 있었던 요소가 아니었을까? 정치조직이 없는 함석헌을 이승만 정권은 당연히 위협으로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정적이 못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함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권력으로부터의 '업신여김'이 권위주의시대에 함석헌의 다양한 활동을 지탱해 줄 수 있는 비결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결국 이승만 정권하에서는 평화통일을 옹호하는 한 지성인의 생사를 갈라놓는 결정적 요인이었을 것이다. 비정치인에 대한 이승만 혹은 권력집단의 '차별' 덕에 역으로 함석헌은 그 글과 말을 통해서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시켜 나갈 수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처럼.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사이를 보더라도, 좌우익을 막론하고, 김구[1876~1949], 여운형[1886~1947], 장덕수[1895~1947], 송진우[1889~1945] 등 주요한 좌우정치지도자들이 권력집단에 의해 수시로 제거되는데, 함석헌은 이때도 정치인이 아니었고 가지고 있는 정치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다행히 권력집단의 살생부에서 빠질 수 있었다.
결국 함석헌이 정치사회문제를 끊임없이 비판하는 사회비평가나 종교사상가가 아닌 정당인이나 정치지도자로 한국현대사에 등장했더라면 그의 목숨을 89세까지 부지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우리는 70년대 박정희에 의한 김대중 납치사건도 기억한다). 이런 면에서 함석헌은 "약으로 강을 제하는" 노장사상의 원리를 매카시즘이 창궐한 냉전시대 한반도에 적용한 가장 현실적인 평화주의자가 아니었을까.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던 고인이 된 정치지도자와 살아있는 사회비평가(혹은 종교사상가) 그 두 그룹 중 현실정치사회에 영향을 더 미치는 집단은 누구일까? 정치인 김대중의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이 가능했던 뿌리에는 1989년 김일성과 '통일3단계방안원칙'에 합의한 종교인 문익환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 비록 단기적으로는 문익환의 무허가 방북이 공안정국을 초래했던 것은 사실이다. 평화통일에 대한 함석헌의 사상이 남북통일의 물꼬를 트고 간 통일운동가 문익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문익환이 함석헌에 관해 손수 짓고 낭송한 아래 시에서 더욱 명료하게 나타난다.
"자주와 통일을 온 몸으로 외치신 당신이
민족주의는 못마땅하셨죠
국가주의는 더욱 질색이었고요
그것은 평화의 적이었으니까요
당신이 자유만큼 사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평화였죠
주의가 싫어 무교회주의마저 떠나신 당신이지만
비폭력 평화는 당신의 신조였죠"
- 문익환, "우리의 멋쟁이, 겨레의 어버이, 만인의 벗, 함석헌 선생님!" 중 -
정치인이 아니었던 함석헌이 20세기 한반도에 평화통일을 위해 미친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서 혹자는 아주 회의적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함석헌이 비록 지금은 사라진 표현인 '재야의 지도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서 활동했던 당시 그는 정치인의 범주에 끼지도 못했고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차라리 처절한 '실패자'였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의 길을 위해 그가 어떤 의미로든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막대한 영향력을 한국사회에 미쳤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이다.
하여간 문화계의 수장이라는 유인촌씨가 보여준 최근의 "비문화적, 몰예술적" 발언은, 다양한 생각과 이념을 가진 분들이 자리해야 할 오늘의 문화예술계에 차라리 1970년대식 전체주의나 획일주의, 심지어 매카시즘의 돌품을 불러오는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그리고 차제에 자유민주사회와는 맞지 않는, 철학·이념·개성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유씨가 차라리 알아서 물러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김성수 기자는 <함석헌평전>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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