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31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 — 들어가면서 |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 법정에서 광장으로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 — 들어가면서 |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 법정에서 광장으로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 — 들어가면서

박유하
들어가면서 — 누구를 위한 불화인가
내가 쓴 책,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에 대해 써 보려 한다. 정말은 진작 써야 했다. 하지만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5일 후면 2013년에 낸 나의 책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책임>을 ‘범죄’로 치부하려 하는 재판이 열린다. 그리고 이 기간동안 페이스북에 그때 그때 일어난 일이나 생각은 어느 정도 써 왔기에 ‘기록’은 어느 정도 해 온 셈이기는 하다. 동시에 이런저런 인터뷰와 몇개의 공식적인 글들에도 이 기간동안의 나의 생각은 쓰여 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글은 쓰지 못했다. 나는 이미 <화해를 위해서>의 일본판이 2007년에 한 재일교포여성연구자와 그 주변 몇몇 사람들의 비판을 받았을 때부터 한일지식인들의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에 대해 쓰려 했었다. 하지만 다른 일들에 치여 차일파일 하는 사이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더이상 미루면 안될 것 같아 쓰기 시작한다. 재판을 앞두고 있지만, 아니 재판을 앞두고 있기에 더더욱.
과거를 돌아보는 이 글은 앞으로의 재판과 함께 진행될 것이고, 사태에 대한 내 나름의 정리와 분석과 반성을 담는 글이 될 것이다. 물론 그동안 나를 향해 쏟아진 수많은 비판과 비난과 의혹에 대답하는 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너무 늦었지만, 특히 비판자들이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제국의 위안부>는 세 개의 소송의 대상이 되었다. 명예훼손이니 처벌해 달라고 국가(검찰)에 호소하는 형사재판, 이 책으로 인해 손해를 입었으니 배상하라고 하는 민사소송, 그리고 이 두 개의 재판의 결론이 나기 전에 빨리 이 책의 문제되는 부분을 삭제해 달라는 가처분소송 (다시 쓰겠지만 처음엔 전면 출판/판매금지 요구였는데 후에 요구내용이 바뀌었다), 이 세가지 소송이다. (간단한 경과설명을 이 홈페이지에 해 두었다.)
그리고, 2015년 2월에 가처분소송에서, 2016년 1월에 민사소송에서 나는 패소했다. 두 재판에 대해 곧바로 항소했지만 이 재판들의 2심은 형사재판 1심 판결 이후로 미루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에 현재는 형사재판만 진행 중이다. 그리고 반년 가까이 ‘준비재판’만을 해 왔고, 이제 형사본재판이 시작되는 것이다.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10월 10일에 형사재판 1심이 끝나게 된다.
내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쓴 책이 ‘심판’ 대상이 된다는 것도 그렇지만, 내가 이 재판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나를 벌해 달라고 국가에 호소한 주체가 전 ‘위안부’ 할머니들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자세히 쓰겠지만, 이 고발과 기소는,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지식인들(운동가 포함)간의 생각차이가 만든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 말은 할머니의 주체성을 부정하기 위한 말이 아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할머니들 중에는 이 사태를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가능한 분들이 분명히 계신다. 그런 한 고소주체가 할머니들이라는 생각은 틀린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학자들조차, 결국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에 따라 책에 대한 평가가 갈린다. 더구나 법원에는 그동안 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해 지원단체 등이 해온 활동관련 자료와 연구자들의 글이 다수 인용되거나 직접 제출되어 있다. 할머니들이 고발주체라 해도 재판자료는 모두 주변인들이 만든 것이고,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자료들을 반박해 왔다. 물론 앞으로도 써야 한다.
그런 한 이 재판이 어떻게 시작되었든, 실상은 재판을 돕는 주변인과 나의 생각이 대립되고 있는 장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사건 최대의 아이러니는, 나를 처벌하고 싶어 하는 학자들이 법원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공간에서, 그들과 나의 생각이 법조인들에 의해 대변되고 있고, 이제 곧, 결론마저 학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려질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어떤 과정이 있었건 할머니들의 분노 혹은 슬픔, 당혹감을 유발한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기에, 나는 고발당한 직후, ‘할머니들께 죄송하다’ (2014년 6월 16일 페이스북. ‘이번 소송의 주체는 실제로는 나눔의집 소장으로 여겨지지만 그에게 왜곡된 설명을 들었거나 책의 일부를 봤을 지도 모르는 할머니들의 분노는 이해합니다. 그리고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되었다 하더라도 아무튼 저로 인해 할머니들이 마음아프셨다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고 썼다.
그리고 최근에, 할머니들께 직접 편지를 쓰려 했다. 아니 나는 이미 세 번이나 편지쓰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 편지들을 쓰고, 또 가까운 이들에게 보여주는 과정에서 나는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선은 이 글을 먼저 쓰기로 했다.
고발 이후 나의 행동과 글은, 주목받고 감시당하고, 의구심으로 가득한 ‘해석’의 세례를 받았다. 그런 식으로 나의 말이 변형되어 온 이상, 그 편지가 쓰여졌던 들, 그 또한 그런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들께 편지쓰는 일을 잠시 유보하기로 한다. 그리고 나의 언행들이 ‘해석’의 폭력아래 놓이지 않는 날을 기다리기로 한다.
우선은, 이 사태를 시간들여 천천히 돌아보고자 하는 이 작업이, 할머니들과 비판자들을 향한 편지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싶다.
위안부문제는 단순한 한일문제가 아니다. 20년 이상에 걸친 한일 양국의 운동과, 관계학회와, 이 문제를 오래 보도해 온 언론, 이 문제를 둘러싸고 발언해 온 지식인들, 그리고 현실의 국가정치마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문제다. 위안부문제에 대해서 쓴 나 역시 그 구도 안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렇게 복잡하게 꼬여 있는 문제들을 내가 얼마만큼 잘 풀어놓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시도하기로 한다.
그런 나의 시도가, 이 문제에 깊이 관여해 온 이들에게 작더라도 어떤 울림을 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나의 글이 계기가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보였던 일들과 생각이, 더 많이 세상에 보여지기를 바라고 싶다. 그런 일들이 이루어질 때, 아마도 위안부문제는 우리 안에서 우리 시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처음으로 되어 줄 것이다. 그 때 우리는, 갈등과 상처로 얼룩진 4반세기 과거를 비로소 긍정적으로 껴안을 수 있지 않을까.
이하는 현재 구상중인 글 내용. 이른바 반론은 3부에서 쓸 생각이다.
앞으로의 시간들은, 고발이후 2년 2개월 동안의 메일과 페이스북을 되돌아보며, 내가 쓴 글과 나와 대화나눈 이들을 떠올리는 시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해야 한다고 늘 생각하면서 못했던 일이다.
이 2년 여는, 그런 간단한 일조차 할 수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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