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30

"함석헌기념관 반대, 있을 수 없는 일" - 오마이뉴스

"함석헌기념관 반대, 있을 수 없는 일" - 오마이뉴스

신창용 구의원(도봉구) 등 반대로 그동안 도봉구 주민들이 공모를 통해 서울시에서 받아낸 함석헌기념관 건립예산 15억 원을 다시 반납해야 할 형편에 놓였다.

함석헌기념사업회와 씨알재단 관계자들은 지난 22일 기자에게 "정부에서 인정한 독립운동가 이자 민주화운동가인 함석헌 선생이 국체를 부인했다"며 "'이념문제'로 기념관 건립을 반대한 신창용 의원에 대해 의원직 제명추진과 고인(함석헌)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재자 박정희기념관을 위해서 정부는 이미 208억 원의 혈세를 썼고 학살범 전두환을 기념하는 일해공원 건립을 위해서는 68억 원의 혈세가 투입됐다. 그러나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 함석헌 선생을 위해서는 이미 배정된 15억 원 조차 새누리당 신창용 구의원 등에 의해 지금 반납될 형편에 놓여있다.

독재자와 학살범은 기념하고 '한국의 간디'라고 불리던 우리나라 최초 노벨평화상 후보자를 박대하는 오늘날 현실이 너무 초라하다. 지난 22일, 평생 함석헌사상을 연구해온 '씨알재단 연구소장' 박재순 박사를 만나, 위기에 처한 함석헌기념관 건립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박재순 박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도봉구에 내년 7월 열기로 한 함석헌기념관 설립사업에 대해 도봉구 구의회 새누리당 신창용의원 등이 제동을 걸어 지금 무산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사업 예산은 도봉구 주민들이 공모를 통해 서울시에서 받아낸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시는가?
"함석헌 선생은 민주정신과 철학을 가지고 민주화 운동을 이끈 분이다. 위대한 민주사상가이고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던 함선생의 기념관을 세우는 것은 꼭 필요하다. 함 선생께서 사셨던 도봉구에서 주민들이 예산을 받았는데, 새누리당 구의회의원들이 당리당략으로 반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주정신과 민주주의의 가치는 우리나라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토대이고 힘이다. 새누리당은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당인가? 신창용 구의원을 비롯한 새누리당 구의회의원들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가? 도봉구 구민들의 뜻을 거스르는 구의회 의원들은 구의회 의원으로서 존재가치가 없다. 도봉구에 함석헌기념관을 세우면, 도봉구와 구민들에게 큰 자랑이 되고 큰 유산이 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함석헌의 확고한 이념이고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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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순 소장
ⓒ 박재순
- 도봉구 재무건설위원장인 새누리당 신창용 구의원은 함석헌 선생의 "이념문제"를 제기 하고 있다. 신창용 구의원은 평화주의자였던 함 선생의 6·25전쟁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국체를 부인하고, 북한괴뢰와 대한민국을 동일시했다"고 지적했다.
"함석헌 선생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함 선생은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인 6·25 전쟁을 가슴 아프게 생각했고 민족 전체의 자리에서 동족상잔의 어리석음을 비판한 것이다. 함 선생님은 북한 공산당의 박해를 피해서 남한으로 내려온 분이다.

자유민주주의가 함 선생의 확고한 이념이고 가치다. 헌법 전문에서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선언했다. 함석헌 선생보다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에 충실하고 헌법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헌신한 분이 누가 있는가? 신창용 구의원은 헌법전문을 다시 읽어보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 함석헌기념관 설립반대 이유에 대해 새누리당 신창용 의원은 또 "예산낭비"라고 지적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그의 발언이 어느 정도 일 리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조금도 동의할 수 없다. 오늘 우리나라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함 선생과 같은 큰 사상가, 지성과 양심을 가지고 민주정신과 가치를 구현하고 생명과 평화와 통일을 추구하신 분을 기리는 것은 민주사회 토대를 든든히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삼성전자나 현대차와 같은 기업을 일구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군대에 전투기나 탱크를 사오는 것보다 값지다. 정신이 부패하고 민주주의가 훼손되면 정치도 경제도 국방도 속으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민주정신을 바로 세우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다."

- 도봉구에 함석헌기념관을 설립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
"도봉구에는 함 선생 가족들이 오래 살았던 집이 있다. 함 선생께서 원효로 생활을 끝내고 도봉구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다가 돌아가셨다. <씨알의 소리>를 발간하던 원효로 집에서 함 선생이 가꾸던 큰 온실의 화초들을 모두 도봉구 집으로 옮겨다가 가꾸셨다. 지금도 그 화초들과 온실이 도봉구 집에 있다. 원효로 집은 건설업자에게 팔려서 다세대 주택을 지었고 함 선생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독일에는 '하마터면 괴테가 묵고 갈 뻔한 집'이라는 간판을 붙인 여관이 있다고 한다. 함석헌 선생의 사상과 정신 그리고 민주화운동의 업적은 괴테를 훨씬 능가한다고 생각한다. 함 선생이 사셨던 도봉구 집을 기념관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하다. 도봉구 가까이에 4·19혁명 기념공원이 있고 도봉구와 이웃인 강북구에는 많은 민주인사들과 문화인물들이 있다. 도봉구를 민주정신과 문화의 향기가 나는 곳으로 만들면 도봉구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큰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절망, 체념, 두려움을 모르던 실천가이자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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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
ⓒ 함석헌기념사업회
- 요즘 함석헌을 모르는 젊은 세대 들이 많이 있다. '함석헌은 이런 분이었다'라고 간략히 소개 한다면?
"함석헌은 평양고등학교에 다닐 때 삼일독립운동에 앞장섰다가 오산학교에서 유영모를 만나 동서정신문화를 회통하는 큰 사상가가 되었고, 안창호와 이승훈의 교육입국(敎育立國)운동을 계승하여 민족을 깨워 일으켜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평생 헌신하였다.

일제 식민통치와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고 억압과 박해를 받았으나 절망이나 체념 두려움을 모르고 민족의 곧고 바른 기운을 세상에 드러냈다. 그는 위대한 실천가이면서 큰 사상가다.

함선생은 <성서조선>, <사상계. <씨알의 소리>를 통해서 주옥같은 글을 쓰고 민중과 지식인을 깨워 일으켰다. 그는 민중을 씨알이라 부르며 '생각하는 씨알이라야 산다'고 함으로써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이끌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는 그의 위대한 사상과 정신, 이상과 실천을 보여주는 저서들이다."

- 소장님은 왜 함석헌 선생이 한국현대사에서 좀 더 주목 받아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한국현대사가 동서문명의 깊은 강물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이고 민중의 자각이 이루어지는 민주화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현대사는 문화주체성을 가지고 서구정신과 기술문화를 받아들여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이다.

함석헌 선생은 한국현대사 중심과 선봉에 서셨던 분으로서 동서정신문화를 회통하는 사상과 철학을 이루었고 민주정신과 민주화를 이루는데 앞장섰다. 그런 의미에서 함 선생의 사상과 실천은 한국현대사를 실현하고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함 선생처럼 현대적이면서 크고 깊은 정신과 사상세계를 확립한 분은 없다고 단언한다. 안창호, 이승훈의 교육입국운동을 계승하고 삼일운동과 4·19정신을 구현하고 실천했다는 점에서 그의 삶과 정신은 한국현대사를 구현하고 있다."

- 함석헌 선생과의 인연은?
"서울대 철학과 1학년 때 함 선생 강연을 듣고 감동한 일이 있고 4학년 봄 학기 때 친구와 함께 함 선생 댁을 찾아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후 함 선생의 성경공부모임, 노자, 장자공부모임에 참여하면서 씨알사상을 공부하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

- 과거 70-80년대 함석헌을 따르던 인사 중에 지금은 수구파나 뉴라이트 측에 선분들이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함 선생은 정파나 당파를 싫어하셨고 늘 영의 깊은 자리에서 그리고 전체의 자리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다. 그러나 늘 민중의 자리 씨알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함 선생은 안창호·이승훈의 민중교육입국운동과 삼일운동과 4.19혁명 정신을 이어서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힘썼다. 수구파나 뉴라이트 진영의 사람들이 민족사의 큰 흐름을 거스르고 민중의 심정과 처지를 외면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함석헌 선생을 배신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씨알 (민중)이 정치주체이자 주역"

- 오늘 한국사회에 함석헌 선생이 남긴 유산이 있다면.
"함석헌 선생은 성서조선, 사상계, 씨알의 소리 등 수많은 지면에 글을 쓰고 강연을 했으며 그 글들이 저작집 30권으로 출간됐다. 1970년대 이후 성경공부, 노자, 장자공부 모임에서 강의한 내용이 녹음되어 테이프로 남아 있다. 함석헌 선생은 1950~60년대에 일찍이 씨알 (민중)이 정치주체이고 주역이라고 말씀하셨다. 촛불시위를 비롯해서 민중이 정치와 사회변혁의 주체로 움직이는 일들은 함석헌 선생 가르침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된다.

함 선생의 글과 강연을 통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아직 우리나라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남아있다. 정치, 언론, 교육, 문화, 학술, 종교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함석헌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받고 옳은 길로 가려고 애쓰는 이들이 많다. 오늘 민주, 평화통일, 생명사랑의 길로 가려고 애쓰는 사람들 가운데 함석헌의 정신과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이들이 많다."
덧붙이는 글 | * 박재순 소장은 서울대 철학과와 한신대에서 공부하고 한신대 성공회대에서 가르쳤다. 함석헌 기념사업회의 씨알사상연구회 회장을 지내고 현재 재단법인 '씨알' 상임이사, 씨알사상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다석 유영모의 철학과 사상', '유영모 함석헌의 생각 365',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민중신학에서 씨알사상으로', '씨알사상', '다석 유영모: 동서를 아우른 창조적 생명철학자', '한국생명신학의 모색', '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 '유영모의 천지인 명상'(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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