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30

곽분이-서신 > 서신 | 바보새함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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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분이-서신
작성자 바보새  14-04-09 08:46 조회6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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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분이-서신

겸손한 마음먹고

분이께.
편지 받은 지 오래됐고 회답도 못해 궁금할 줄 알지만 새삼 회답을 해야만 아니요, 내가 할 말은 벌써 다 해둔 것이니 네 마음에 생각하면 자연 알 것이다.
나는 이제 많이 늙었고 이제 갈 날이 멀지않을 것이다. 조금만 하면 피곤기가 오는 일이 있다. 어제 오늘도 그렇다. 눕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정신이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한다. 해야 할 것은 많은데 하지 못하니 답답한 마음이 없을 수 없지만, 그래도 스스로 믿음만은 확실한 것을 아니 걱정, 비관은 아니 한다. 인생이 참 잠깐이다. 늙어서의 생각을 젊어서 미리 짐작해야 지혜가 있다고 할 것인데 그것을 못 한다. 이제 해줄 말 있다면 그것이지 별것 없다.
부탁할 것이 있다. 내일이 주일이고 3일부터는『성경』모임을 또 해야 할 터인데. 나하는 일이 늘 미지해서 집일(執ᅳ)을 내지 못하는 것이 결점이다. 거기 좋은 점도 있다. 집심(執心) 냈다는 사람들 늘 잘못이 많기도 하다. 하여간『성경』을 좀 진지한 태도로 가르쳐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한다.
지난해 갔을 때 백명찬이『성경주석』을 한 질 사주었는데. The Anchor Bible인데 아직 전질이 다 나오지는 못했고, 몇 권 더 있어야 할 것인데, 이번 봄부터 창세기에서 시작해볼까 해서 오늘 아침 첫 권을 펴놓고 보다가 거기서 필요를 느낀 것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천지창조 설화에 관해 설명하는 중에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던 신화 이야기인데(성경 해석에 직접 관계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대사에 본래 흥미를 많이 가지고 있는 고로 거기 관련된 길가메시(Gilgamesh) 신화를 좀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났다. 신학자들에게 알아보아서『The Epic of Gilgamesh』가 영문으로 나온 것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그것을 구할 수 있나 알아보아서, 그리 굉장한 분량이 아니라면 사서 보내주길 바란다. 대영백과를 찾으면 그 항목에 나와 있으니 알 수 있을 것이다.
 FOR 2월호에 내 이야기가 났으니 읽어보아라. 잘 아는 이야기지. 얼마 전에 거기 입회했다. 앞으로 여기서도『FOR』를 조직했으면 한다.
이상기후에 사람이 동사했다는데 별일 없었느냐?
여기도 좀 봄이 늦어지는 것 같다.
그저 겸손한 마음먹고 자기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가는 것이 좋다. 꿈만 꾸다 세월 다 보내면 무엇 하느냐. 하나님도 예수도 하늘나라도, 자신의 체험 속에서 보는 거다.
                                                               1984년 3월 3일


싸움은 결국 너도 나도 망하는 것

분이께.
참 오래됐다.
나도 못 했지만 너는 왜 소식 없냐?
추천서 만들어 보낸다던 것 어찌 됐느냐?
여기는 평안이 없다. 학생들이 많이 잡혀갔고 엊그제는 민통(民統)이 강제 해산되고, 왜 이러는 나라인지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도 거울을 들여다보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이 나라야말로 제 얼굴 들여다볼 줄 모른다. 정치란 것이 그렇게 서로 못살게 구는 것일까? 나라는 그런데 내 몸은 건강하다.
어제는 멀리 용인을 가서 거기 있는 외국어 대학에서 강연을 하고 왔다. 강연을 해보면 말 잘 듣는 학생들인데 정치하는 사람들 그 학생을 잘 쓰지 못하고 싸움만 하나 싸움은 결국 너도 나도 망하는 것인 줄 모르나? 답답하다.
                                                         1986년 2월 12일, 바보새


강연 부탁은 가능한

분이께.
미안한말 다 할 수 없다. 궁금 정도가 아니라 나무래도 알았지. 하지만 바빴다. 아무리 바쁘기로서니 하겠지만 하겠지만. 만일 와서 본다면 너도 이해할 거다. 이제는 정신 활동이 민활치 못해 글을 쓸 수가 없다. 시국이 어렵지 사방에서 글을 부탁하는 것을 일일이 다 거절하기도 쉬운 일 아니고, 그 대신 문답을 하면 시간은 적게 가나 시원히 되지를 않지. 강연 부탁은 가능한 한 들어주었다. 그래서 여러 곳 갔었다.
요새 마지막 다녀온 데가 대전이다. 거기 한남대학이라 전에 숭전 대학이라던 것을 몇 해 전에 갈라져 독립하고 지금 한남대학이라 하는데, 이번부터 종합대학 됐다고 했다. 개교 30주년 기념에 와 달라 해서 갔었는데, 학생들이 열심이었다. 나는 이때껏 서서 말을 하지 앉지 않는데, 지난주가 부산 가는 차례여서 부산 장 박사네게 갔었는데 대구 조그만 교회에서 강연을 청했으므로 부산에서 성경시간을 끝내자 곧 대구로 가서 말을 했는데 중간 좀더 가서 맹장 부위가 결리기 시작해서 겨우 참으며 말을 끝내고 은선네게 가서 자고 돌아왔는데 이번 대전서 강연하자니 또 그렇지 않아!
그래서 자고 일어나 이튿날 서울로 왔는데, 노자 시간에 나가려니 또 그렇지 않아? 그래 모두 병원에 가보라 해서 최태사 의사한테 갔더니 맹장은 아니고 신경 때문이라 해서 주사를 맞았더니 곧 멎어서 근심 놨다.
그리고 2일분 먹는 약을 주어서 오늘 저녁이면 다 먹게 된다. 아마 그 동안 두 달을 쉬는 날 없이 매일 여기저기 나가므로 일시적으로 좀 피곤 했던 듯하다. 그러나 아무 일은 없을 것이다. 너도 무리하면 도리어 결국으로 손해된다.
어제가 4·19. 아침 7시경 떠나 4·19탑에 갔더니 길에 안박사 만났고, 그 외에 여러분도 만나 경배 필하고 돌아오는 길 안 박사 댁으로 가서 아침 파티를 하고 왔다. 그저 본다. 퍽 나은 모양이어서 고마웠다.
학생들은 날마다 큰 데모다. 여전히 최루탄 사격을 한다. 오늘 예배를 마치고 와서 뜰을 손질하고 지금 몇 달 만에 처음 이 편지를 쓴다. 부디 잘 있기 바란다.
                                                    1986년 4월 2일. 알바트로스



시국은 여전하다

분이께.
편지 받은지 여러 날 됐다. 거기는 겨울이 없지만 여기는 아주 춥다. 어제는 비가 오더니 오늘은 맑은 날씨다.
공부할라기 수고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80년인가 70년 이래의 모든 불법입국자를 다 허락하게 된다니 이번에나 빠지지 않기 바란다.
나는 잘 있고, 일은 밀려서 아주 바쁘다. 금년 5월 15일에는『남강 선생 전기』를 다 써서 가져다놔야 하는 것이므로 모든 일을 제쳐놓고 써야 하는데 아직 시작도 못 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안 박사는 괜치않고 김재준 목사가 걱정이다. 걱정이랄 것도 없이 누구도 다 가야 하는 길인데, 그 동안 몇 번을 병원에 입원했다 댁으로 돌아왔다 했는데, 요새 또 입원했다고 하니 언제 일이 있을지 모르는 형편이다. 의사는 벌써부터 간암이라고 선언했으니, 그들 말대로 한다면 앞으로 4~ 5개월의 문제지.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건강하다고 하니 고마운 일이지만 언제 그날이 올지 모르는 일이요, 무엇보다도 기억력이 쇠퇴하고 새로운 생각이 별로 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누구만 그러냐? 인생이 그런 거지. 그런 것을 알고 있는 날까지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일이요 그것이 또 이 세상에 왔다가 남기고 하는 일이지 무엇이 있겠느냐?
시국은 여전하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할 일은 민족 전체가 회개하는 문제인데, 민주 투쟁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느냐 하면 안 그렇다. 그것이 참 문제다.
깊이 생각해야 한다.
                                                          1987년 1월 17일, 바보새


서신 1984.3.3.-1987.1.17
저작집30; 없음
전집20;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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