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30

이병도, 이영훈, 그리고 뉴라이트 - 오마이뉴스

이병도, 이영훈, 그리고 뉴라이트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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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라이트 계열 지식인들이 출간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ㆍ현대사'.
ⓒ 오마이뉴스
일본제국주의의 한국강점은 서구의 제3세계 강점과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유럽의 아프리카 정복이 힘과 문화의 강자와 약자간의 일방적 케이오 게임이었다면, 일본의 한국강점은 다르다.

한일관계는 오히려 전통적으로는 한국이 큰형으로서 일본을 문화적으로 '개화'시켜주었던 관계였다.

포함외교(gunboat diplomacy) 영향으로 서구문명의 주도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근세의 과정에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을 뿐이다. 마치 마당쇠에게 오히려 사지를 결박당한 주인 신세처럼. 이 말은 일본이 한국을 식민화시키는 일이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화시키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는 말이다.

문화의 힘이 없는 무력으로만의 정복은 결코 오래가지 못할 뿐 아니라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 준다.

그러니 일본의 한국 강점은 일본 측에서도 골칫덩어리였다. 무력 외엔 한국을 정신문화적으로 굴복시킬 수 없었던 일본은, 그래서 제갈공명이 맹획을 7번 사로잡아 7번을 놓아주니 그 때서야 복종했다는 교훈의 실천이 무엇보다도 절실했을 것이다.

정신적인 굴복을 받아내지 않고 무력만으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계속 억압하고 그 강요된 체제를 유지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간이란 신비한 존재는, 김구 앞에 섰던 윤봉길이나 이봉창처럼, 왜장의 열손가락을 잡고 남강에 투신했던 논개처럼, 거대한 정신을 대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자신의 몸과 마음을 그저 초개(草芥)와 같이 버린다.

'조선정신 죽이기' 앞장선 조선사편수회

그래서 일제는 일왕칙령으로 거액의 자금과 고급인력을 대대적으로 동원, 한국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말살하고, 조선인에게 복종을 강조하는 일본 혼을 심어주는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즉 황국신민 만들기인 정신개조 작업이다. 이러한 일제의 야심에 걸맞게, 조선사편수회가 만들어지는데, 그 구성원 대부분은 동양최고의 대학이라던 도쿄제국대학 출신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사편수회를 위해 당시 일본학계의 최고두뇌들을 총동원한다. 이것은 식민지 조선을 철저히 굴복시키기 위한, 요즈음 말 많은 대운하 프로젝트보다, 더 거대하고 막강한, 일제강점기 최대국가사업이었다.

그래서 일본의 조선사료 강탈기간 중이던 1916년 1월, 중추원 산하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를 발족한다. 이 위원회는 조선인에 대한 왜곡된 역사교육을 통해 일본민족의 '우수함'을 고취하는 한편 조선인의 열등성·타율성·정체성·사대주의성 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조선전통 민족정신이나 역사의식은 배제하였다. 그러다 학문적으로 더욱 권위 있는 기구로 만들기 위하여, 1925년 6월 일왕칙령에 의해 조선사편수회로 명칭을 바꾸고 독립된 관청으로 격상하면서 조직을 확대, 개편하였다.

그 후 총 35권, 전체 2만 4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조선사>를 제작하는 데 일본정부의 막대한 자금과 최고 두뇌의 역사학자가 퍼부은 시간은 무려 16년이었다. 그 결과 1932년 일제는 마침 <조선사>를 마친다. 제작비용으로 100만 엔이라는 거액을 들여 편찬한 <조선사>는 이렇게 일왕명령으로 만들어지고 조선총독부에 의해 직접관리, 운용됐던 당시 일제의 "조선정신 죽이기"를 시도한 최대국가사업이었다.

일본은 현명하게도 조선인을 무력으로 굴종시키기보다는 정신적으로 복종시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의 일환으로 이렇게 한국사를 대폭 축소하고, 한민족의 역사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항상 지배를 받는 피지배의 연속이라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역사를 당쟁으로 얼룩진 부패한 역사로 규정지으며 일본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필연성'을 내세운다.

역사학계를 좌우한 '친일식민사관'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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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사관' 역사학자 이병도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이 당시 일제하 국가기관의 설치, 조직 및 직무범위 등을 정한 제도인 관제(官制)를 보면 일제가 얼마나 한국사 왜곡 편찬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조선사편수회 고문에 이완용, 권중현을 앉히고 박영효·이윤용을 비롯해 일본인 거물들과 어용학자들을 위촉하였다. 위원회 회장은 조선총독부 총독과 맞먹는 막강한 권력자인 정무총감이 맡아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일본인들을 참여시켰다. 고문·위원·간사와 편찬사무를 담당하는 수사관 3명, 수사관보 4명, 서기 2명을 두었다.

이때 수사관 3명중엔 후일 국립서울대학교 교수를 하며 일본식민사관을 계승한 역할을 톡톡히 했던 이병도(1896~1989)가 포함되어있다. 훗날 함석헌이 '재야사학자'로 감옥 문을 드나들며 생활고에 허덕이며 갖은 탄압과 핍박을 받는 동안, 이병도는 심지어 1960년 허정(1896~1988) 과도정부 하에서도, 문교장관 등을 지냈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는 5·16민족상,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 등 국사학계에 미친 그의 '공로'가 대외에 알려졌다. 이래서 함석헌이 한국역사를 "중추·등뼈가 부러진 역사"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뿐이 아니다. 1960년대 이병도는 학술원회장을 비롯하여 각종 대학의 명예교수를 독차지했다. 한국사 발전에 기여한 '빛나는 공로'로 그는 충무무공훈장·서울시문화상·문화훈장대한민국장·학술원상·국민훈장무궁화장·인촌문화상 등등을 싹쓸이하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학계의 대부로 자리를 굳혔다. 그런 이유로 이병도에 대한 비판의 소리는 숨도 쉴 수 없었고, 제대로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아니 고개를 들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이병도의 정신적 제자라고 할 수 있고 뉴라이트교과서의 집필자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일제의 조선강점이 조선을 근대화시켜 주었기에, 일제의 조선지배는 오히려 축복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논리를 가진 사람을 국민들이 내는 소중한 세금으로 꼬박꼬박 월급과 연구비를 챙겨준다. 이것이 바로오늘 한국이 직면해 있는 현주소다. 얼마나 우리들의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인가! 이런 적반하장의 소리를 하고도 당당히 한국 최고의 지성이 모였다는 국립대학의 교수를 하며 넉넉한 월급, 연구비를 받고, 가장 많이 팔린다는 수구재벌 일간지에 칼럼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정리되지 않은 과거역사는 이렇게 반드시 오늘 현실에 독이 되어서 돌아온다. 그래서 과거사 정리가 필요 없는 일이 아니라 역사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너무도 중요한 것이다. 역사를 경멸하는 민족은 반드시 그 역사로부터 경멸을 받는다. 잘못된 과거를 가지고 잘된 미래를 꿈꿀 수는 없다. 인간은 싫으나 좋으나, 긍부정에 무관하게, 어쩔 수 없이 역사적인 존재다.

콩 심은 곳엔 반드시 콩이 난다. 이병도를 심은 곳에는 이영훈이 나오고, 박정희가 5·16을 심은 곳에는 곧 전두환의 5·17이 나온다. 이것이 역사의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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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 총학생회 산하 일제청산위원회는 2005년 3월 대학본관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병도를 비롯한 친일인사 명단 10명을 1차로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역사의 도덕성 무시한 '뉴라이트 교과서'와 함석헌

인간사의 도덕성을 철저히 무시한 뉴라이트교과서 집필자들의 위험한 궤변은 600만의 유대인학살을 정당화한 히틀러의 선전상 괴벨스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가난한 이웃집 아빠를 내가 때려죽인 뒤 돈을 많이 벌어다주면, 그 살인, 강탈행위가 정당화되고 '축복'이 되는가? 일제식민지정권, 박정희·전두환 정권을, "우리를 근대화시켜주고 잘 살게 해주었기 때문에 불가피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었다"고 정당화하는 것은, 곧 인간생명과 존엄성을 벌레같이 짓밟으며 히틀러·스탈린이 거둔 소위 경제적 성공을 정당화하고 축복이었다고 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일제가 조선사편수회 프로젝트를 통해서, 일방적으로 조선정신을 말살시키는 상황에서, 식민지 지식인 함석헌은 무력감 속에서, "나는 누구이고 조선인은 누구인가?"라는 처절한 자아발견의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민족 정체성의 위기, 자아상실의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자아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곧 정체성, 정신의 파괴이고, 한 개인과 민족의 총체적 몰락이다. 아무리 용맹한 장수도 실성한 상태에선 전쟁터에서 제대로 싸울 수 없고 오합지졸이 될 수밖에 없다.

"불의와 편법이 강물처럼" 융성했고, 국가폭력이 난무했던 20세기 한국역사는 한국인들을 허무주의나 기회주의로 젖어들게 한 면이 강하다. 한평생 옳은 일을 추구한 의인의 끝은 결국 자기희생과, 풍비박산이라는 냉소주의적 풍토를 초래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합천 '일해공원'이나 '박정희기념관' 소동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의 생명을 지렁이처럼 밟아버리는 독재자들을 여전히 수용하고 향수에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 닭 같은 감상주의가 이 땅을 지금도 휩쓸고 있다.

기본적 도덕성마저 상실한 탈세한 억만장자가 선거에 압승하는 철저한 처세술과 도덕의 공동화가 오늘 한국인의 성공신화와 바람직한 가치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른바 '엘리트'들의 상당수는 일신과 가정의 행복을 위한 가치를 사회정의나 진리추구를 위한 가치보다 더 '숭고하다'고 여기며, 철저하고 이기적인 기회주의자로 자리 잡았다. 저지른 범죄에 대한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잃은 지 오래고 오히려 당당하고 뻔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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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 선생.
ⓒ 김성수
그래서 함석헌은 고민했을 것이다. "군사력, 무력, 돈이 없는 개인이나 민족은 과연 열등한 존재일까?"

그리고 그는 깨달았을 것이다. 사명감·문화·역사의식 없이는 한 민족의 자의식·정체성이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역사의 도덕성을 강조한다. "우주보다 귀한 한 인간의 생명"을 도구화하고 마음대로 빼앗은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고, 정당화되어서도 안 된다.

인간사회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하나도 도덕성, 둘도 도덕성, 셋도 도덕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성의 가치를 경멸하고 이른바 실용성의 가치만 내세울 때 제2·제3의 뉴라이트교과서는 언제고 다시 우리 앞에 등장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수 기자는 <함석헌 평전>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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