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9

생명평화결사 :: [순례일기] 결국 마음의 병을 고쳐야 하나니

생명평화결사 :: [순례일기] 결국 마음의 병을 고쳐야 하나니

[순례일기] 결국 마음의 병을 고쳐야 하나니

서울순례일기/9주_강서.양천 2008/11/09 18:00 생명평화결사
[08/11/06/목/강서/흐림]
이수어린이공원/허준박물관/즉문즉설_김경재목사님

= 일정 : 양화교 아래(100대 절명상) - 이수어린이공원 - 양동중학교 - 탑신초등학교 - 허준박물관 - 구암공원 - 등촌자동차시장(근처에서 점심식사) - KBS 88체육관 - 우장산 근린공원(100대 절명상) -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차량이동/즉문즉설) - 화곡동 인자교회(잠자리)
= 걸은거리 : 9km
= 글쓴이 : 백선희(강릉등불)



탁발순례를 따르는 순례자의 자세

“아, 이 거지들 때문에 미치겠네”
짐을 정리하시는 경찬님의 짜증섞인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허나 이내 웃으시며 “차 속에 있는 짐정리 좀 제대로 안하나” 하셨지요. 열 명이 넘는 인원이 짐반 사람반 하는 차 안에서 매일 이동하고 짐을 넣고 빼고 하려니 힘이 드신게지요. 부산 어투로 말씀하시는 아저씨 모습이 참 좋습니다. 말씀 나누다 보면, 어느새 유쾌해진 순례자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복작거리는 아침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아침 출근시간대에 걸리면 차가 밀려 시간이 지체된다고 하여서 오늘은 공부를 하지 않고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영등포구 양화동에 도착하였지요. 차는 쌩쌩 달리고 육교 밑에 내려서 육교를 건너 양화교 밑에 다다랐습니다. 앗! 그전에 한 인공폭포를 보았습니다. 80년대에 우리나라 최초로 지어졌다는 인공폭포였습니다. 나이드신 순례자 분들은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을 더듬어 말씀해주십니다. “지금 보면 볼품없고 별것 아니었는데, 그 당시에는 뉴스에도 나오고 사람들이 얼마나 붐볐는지 몰라. 서울에 오면 꼭 들러야할 관광코스였다니까” 하시지요. 폭포 앞은 절명상 자리로 마땅치 않아서 양화교 밑으로 갔습니다. 현장상황에 대처하는 자세는 이제 습관처럼 재빠르게 되어버렸나 봅니다. 정성스럽게 한 배 한 배 절을 올렸습니다.



절명상이 끝나니 서글서글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주인공 이연규님께서 오셨습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김밥을 싸오셨지요. 다들 아침식사 누룽지를 먹었는대도 배가 고프셨는지 허겁지겁 달려드렸습니다. 김밥 두통 금새 동이나버렸습니다. 든든한 배를 움켜쥐고 오전순례를 출발하였습니다.

열린사회 강서양천시민회 변광영님의 안내로 엄마 둘과 손잡고 온 아이 둘도 함께 걸었지요. 양화교를 건너 이수어린이공원, 양동중학교, 세현고등학교를 지나 가양9단지, 탑신초등학교를 지났습니다. 쉬는 시간 없이 주욱 걸었지만, 힘들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몸도 함께 반응하는 것 같았습니다. 허준박물관에 들어섰습니다. 미리 섭외하지 않았으므로 매표소에서 입장료 탁발을 요청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매표소 직원은 아무 죄가 없었지요.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구암공원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옛날 뛰어난 의원은 사람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미리 병이 나지 않도록 하였는데
지금의 의원은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사람의 마음은 다스릴줄 모른다
이것은 근본을 버리고 끝을 좆으며 원천을
캐지않고 지류만 찾는 것이니 병이 낫기를
구하는 것이 어리석지 않는가
- 구암 허준선생 <동의보감> 중에서 


구암 허준 선생님의 철학이 현대인의 삶에, 지금 순례자의 삶에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박물관 앞에 새겨져 있던 이 글귀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여전히 우리네 삶에, 적어도 순례자 자신의 삶에 희망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어서 참 좋았습니다. 괜시리 위안이 되었지요.

점심시간이 다 되어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는데, 근처 식당까지 가는 거리가 꽤 오래 걸렸습니다. 등촌자동차시장을 지나 설농탕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배가 고픈 나머지 숨도 쉬지 않고 먹었습니다. 허겁지겁. 요즘 밥먹는 습관이 점점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줄은 아는 것 같으나 허겁지겁 먹고 많이 먹는 습관을 들인게지요. 덕분에 애꿎은 위만 늘었다 줄었다 주체할 줄 몰라 늘 속앓이를 해야 했나 봅니다. 설농탕을 먹고 있으니 동대문구 순례할 때 가보았던 선농단이 생각났습니다. 농사짓기 전후에 하늘에 제사를 비는 곳이었지요. 제사 직후에 많은 사람들이 끓여먹었다는 데서 유래한 선농탕. 설농탕을 서울순례 때는 처음 먹어보았습니다.



KBS 88체육관로 이동하여 달콤한 단잠을 잤습니다. 흐린 날씨에 노곤했는지 다들 찌뿌둥한 얼굴로 일어났습니다. 양천주민이신 황남채님과 조광명님께서 함께 순례를 하십니다.

오후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하고 계신 콜트악기를 들르려고 했으나 시간과 여건이 여의치 않아서 우장산을 향해 걸었습니다. 큰 건물 앞에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비스듬한 기둥을 밟고 올라가는 사람들의 조각이 있었습니다. 순례자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그 궁극의 지점이 땅일까요? 하늘일까요? 순례자의 마음일까요? 아니면 그도저도 아닌 우주 자연 속에서의 공(工)으로 존재하려는 것일까요? 모든 선택이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하겠지요. 어찌되는 별 상관없다는 자세로 걸음마다 새깁니다.

강서구민회관을 지나 우장산 근린공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순례단원 장경훈님은 메타세콰이아 낙엽을 한줌 쥐어 가을 여인 최성진님과 가을남자 이성구님께 뿌리셨습니다. 가을여인과 가을남자는 한껏 다가온 가을 정취에 푹 빠지셨더래요.



우장산 낮은 언덕 위 공원에서 쉴 무렵, ‘가난하다는 것은’ 안도현의 시를 읽고 눈감고 서서 바람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얼마나 비어있는가. 나는 얼마나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는가. 채울준비가 되었는가’ 생각하며, 공원에서 한껏 쉬었습니다. 운동기구를 이것저것 해보며 도담님과 달님과 최성진님과 저는 유쾌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메타세콰이나 낙엽으로 가면을 만들어 서로의 얼굴에 대어주고 사진을 찍으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지요. 참 오랜만에 이렇게 실컷 웃어보고 실컷 장난쳐보고 실컷 여유로움을 느껴보았습니다. 우장산에서 내려와 공연장 같은 장소에서 절명상을 하였습니다.

순례를 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소풍나온 하루였다는 가을 사람 최성진님, 낙엽을 가지고 장난도 치고 재미있었다는 달님, 감기에 걸려 모두 걱정되었는지 “아프지맙시다! 순례단 파이팅!”을 외치는 수영님, 여유로운 순례 길이었다는 경찬님, 같이 있을때는 몰랐는데 아팠다가 오랜만에 오니까 참 정겹다는 성구님의 소감이 이어졌습니다.
도법스님께서는 인간은 자기생애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데, 나뭇잎은 뿌리로 자연스럽게 제자리로 돌아간다 하십니다. 싹트고 잎이 피어나고 한해를 잘 살고 고향으로 본래의 품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편안할 것 같다 하시며, 인간도 생을 마감할 때 흐뭇하고 편안하게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셨습니다. 도법스님도 순례단원 각자 자기 자신도 여유로움을 느끼고 가을의 정취에 푹 취했던 하루가 아닌가, 서로가 서로를 역할에 메인 긴장된 상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던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순례자의 관점

탁발순례를 따르는 순례자의 관점에 대해 스스로 물었던 하루였습니다. 순례자 자신이 보고 듣는 것이 세상의 모든 입장을 대변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항상 진리에 기준하여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시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연습과 실전을 하고플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60여일 순례를 하면서 서울의 현장을 두발로 걷고 눈으로 직접 보면서 생생하게 들은 이야기들이 기억 속에 체화되어 순례자의 관점을 부릅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내고픈 마음과 순례자의 어설픈 관점은 늘 일기를 쓰는데 보는 이들로 하여금 헷갈리게 하지 않았는지 여쭈어 봅니다. 순례자의 관점과 현장의 다양한 입장은 늘 공부거리요, 고민거리이기도 합니다.



강서구민회관 근처로 이동하여 남지심 작가님을 만나서 저녁식사를 탁발 받았습니다. 평생 오롯이 불교관련 소설만 쓰신 분이라 하셨습니다. 실상사 관련된 두분과 강서양천환경운동연합 선상규님도 오셔서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어둑어둑해지자, 함께 있던 지역 분들게 인사를 드리고 저녁시간에 있을 김경재 목사님의 즉문즉설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차를 타고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생명은 고난을 통해 자란다 

김경재 목사님을 모시고 교육관에 가득찬 청중들의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목사님은 한신대에서 오랫동안 신학에 대한 연구를 해오셨고, 삭개오 작은교회를 함께하시며 작은 교회의 진리실험운동을 하고 계셨습니다. 다석 류영모 선생과 한국의 진보적 신학계를 대표하는 장공 김재준 목사님과 함석헌 옹의 정신을 따르는 제자이기도 하였지요.



목사님께서는 2천년 전 이스라엘 땅의 갈릴리 바닷가 조그만 어촌마을에서 민초들과 함께 울고 웃으셨던 갈릴리 생애 예수의 원초적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라고 하는 33년의 생을 살았던 유대인과 말씀의 기억을 담아둔 성경을 통해 교리화 되고 신성시된 예수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 문명권의 유일신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진리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하시며, 하느님 ․ 비로자나불 ․ 알라 등등으로 각 나라의 풍토와 문화에 따라 다른 이해로 표현된 종교의 신들의 말씀은 오직 진리 하나를 가르키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세는 자기가 믿는 종교의 신이 절대적으로 유일무이한 신이라 믿고 있다 하시지요. 한국사회의 기독교 유일 신앙은 오해된 측면이 많다 하셨습니다. 또, 씨알사상과 고난철학은 생명평화운동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함석헌 옹의 씨알사상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종교는 궁궐이 아니라 자라나는 나무라고 합니다. 나무는 천천만만의 가지를 뻗치며 넘치는 생명력으로 나뭇잎을 자라나게 해고 새들을 쉬게 한다 하셨지요.

씨알사상에서 말하는 생명의 두가지 원리는 이렇습니다.
1. 생명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두발을 땅에 딛고 섰을 때부터 스스로 하는 인격적인 책임과 결단, 자기가 뿌리를 내려서 자기 힘으로 서기 전에는 나무 역할을 하지 못한다.
2. 생명은 고난을 통해서 자란다. 고난은 생명의 제2원리이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고난이 동반되는 것이다. 교육과 철학 ․ 종교에 있어서 고난을 면제해주려고 하는 것들을 믿지마라.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고난이 오면 정면 돌파해서 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 지혜를 얻으려는 것이다.



목사님께서는 인도에 갔을 때, 간디묘소에 가서 묘소 옆에 있는 화강암 벽 글귀를 보셨다고 합니다. 7가지 사회악에 대해 써있었으며, ‘자기희생과 고난을 기쁜 마음으로 감내하는 종교의 본질’에 대해보고 많은 것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생명평화운동을 할 때, 삶을 정화하는 고난을 기쁜 마음으로 영광스럽게 받아들이라 하셨습니다.
70평생 느끼지 못했던 우주 자연 속에서의 나, 관계 속에서 이 다양한 생명들이 각자 자기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 너무나 아름다운 세상에서 죽어도 다시 돌아오리라 돌아 오리라 간절한 마음을 갖고 계셨습니다. 이 땅에 고통당하는 생명체들, 특히 같은 동료인간이 고통 속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함께 옆에 있는 것만이라도 좋다 하셨습니다.
자신이 보는 사람과 상황의 어느 한 측면을 가지고 그 전체를 속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찾는 구도자들의 자세가 아니까 하시며 이야기를 정리하셨습니다.

69년 닐 암스트롱이 밟았던 달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 50년 전 광주 무등산에서 바라보았던 성냥곽 같은 도청의 모습. 고통 속에서 관계하며 복잡하게 살아가는 인간 세상은 이렇게 작고 작기만 한 모습이라. 변하지 않는 것은 수없이 다양한 생명 하나하나 그물코처럼 연결된 관계 속에서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을 두고 살아간다는 생명의 진리일 것입니다.
이렇게 더불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생명의 진리, 아름다운 지구 속에서의 나를 인식하고 생을 살아가야 하겠다고 또 다짐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김경재 목사님 말씀을 들으며 돌아보는 오늘 하루는 추위를 느낄 수 있어 감사했고, 낙엽이 지는 나무의 생을 볼 수 있어 감사했고, 나무와 나와의 관계 속에서 생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어 충만한 하루였습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차로 이동할 때나 화곡동 인자교회에 도착할 때까지도 즉문즉설에 대해 여운을 남기는 대화를 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 함께한 사람들
= 도법, 최성진, 이성구, 장경훈, 이도담, 정수영, 김영지, 이상환, 김경찬, 백선희
= 유이상(구로구), 이연규(오산), 변광영(열린사회 강서양천시민회), 허인영/박강빈/김숙희/정이은/황남채(양천구), 김경재(목사/삭개오 작은교회)
** 감사합니다!
순례안내(변광영), 점심식사(열린사회 구로시민회), 저녁식사(남지심), 잠자리(인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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