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인간첩사건 피해자 | |
ⓒ 진실화해위 |
1974년 문인 61명이 박정희의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개헌지지 성명을 냈다. 이에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는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헌지지 성명에 참여한 문학평론가 임헌영·소설가 이호철·대학교수 김우종·대학강사 장병희·대학교수 정을병 등을 불법으로 연행하여 구금했다. 그 후 보안사의 어두운 지하실에서 이 문인들에 대한 가혹하고 야만적인 고문이 시작되었다. 문명사회에서는 펜이 칼보다 무서워야 하지만 박정희 군사독재체제에서는 칼이 펜을 부러뜨리고 군화발이 문인들의 손을 짓밟는 암흑의 시대였다.
"매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가혹한 고문과 몽둥이를 사용한 구타에 못이긴 문인들은 '빨갱이'와 교류했다는 등 조폭과도 같은 수사관들이 원하는 각본대로 허위자백서를 썼다. 그리고 보안사는 마침내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수사한 형식으로 허위 수사서류를 꾸며 검찰의 조사, 법원의 판결을 거쳐 죄 없는 문인들을 감옥에 보내 처벌하는 반문명적 인권침해를 자행했다. 일말이 양심이 있었던지 당시 검찰은 사건의 핵심인 간첩죄는 빼고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등 혐의만 적용해 기소, 이들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지난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이하 진실위)는 이 사건을 보안사의 불법 수사사건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지난 5월 12일과 19일 서울중앙지법은 이 사건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은 문학평론가 김우종(82), 소설가 이호철(79), 문학평론가 고 장병희에 대한 재심에서 마침내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죄 없는 문인들을 간첩으로 몰아 처벌했던 이른바 '문인간첩단 조작사건'의 피해자가 37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다.
- 이 분 문인들이 일본에서 발행된 <한양>지에 기고문을 썼다고 간첩죄로 몰았는데, 당시 <한양>지에 기고한 국내 문인들은 수백 명이고 주일공보관, 한국국회도서관 등에도 <한양>지가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이 잡지 필진에는 예술원회장 박종화, 연세대 명예총장 백낙준, 한국펜클럽본부 회장 백철, 국회의원 모윤숙, 문인협회장 김동리 등 당대의 유명한 문인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박정희 정권은 유독 위의 문인 5명만 연행하여 간첩죄로 처벌했다. 명백한 표적수사이고 조작사건 아닌가?
"이미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이 나와 있다. 사실 위원회의 조사에서 '표적수사'라는 말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어휘였다. 표적수사라는 말 자체가 주체의 주관의 경향을 의미하는 것인 만큼 주체의 고백이 아닌 한 이를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조사관의 직책에서 조심스러움에 공감이 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심지어 위원회 말기에는 '조작'이란 어휘도 '감히' 쓰기 어려웠다. 한동안 조사관들이 '조작'이라는 어휘의 뜻을 놓고 온갖 문헌을 뒤지는 등 혼란에 빠지기도 했을 정도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쓰는 관점에 따라 전혀 문제가 없을 어휘다. 그리고 백보 양보해서, 수사관들이 굳이 정말 자신들은 진실로 간첩이라고 믿고 자백을 받기 위해 가혹행위를 좀(?)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사건을 조작하였다'고는 못 써도, 수사관들의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과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들이 이에 의하여 얻어진 것들임이 확인된다면 피해자의 측면에서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다. 물론 주어가 없지 않느냐고 되묻는다면 나는 수사관 말고도 여러 주어를 댈 수 있다. 정권, 정치적 상황, 우리 사회 등등. 비법률적이라거나 모호하다고 비판한다면 사건 판결문을 한번 읽어보라고 응수할 밖에. 아마 판결문 속의 범죄사실과 이에 대한 증거요지를 맞춰본 사람은 절대 기본적인 인간의 양심상 그 따위 비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사건 역시 그렇다. 법률상 수사권도 없는 기관에 불법적으로 연행되어, 협박과 매질 속에서 자신이 인정하는 사실과 다른 내용의 진술을 강요받았다. 그 결과 협박과 매질의 주체가 강요하는 내용의 진술을 인정해 주었다. 그리고 이상의 경과는 위원회의 조사과정과 법원의 재심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이제 "이 사건은 조작된 것이다"고 말고 다른 결론이 있을 수 있을지. 아, 때마침 정권이 아주 싫어하는 개헌지지 성명을 만천하에 공표한 직후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표적수사라는 결론도 나쁘지 않을 수 있겠다."
- 진실위에서 이 사건을 조사당시 보안사 수사관인 이○○는 "일반적으로 보안사는 군법회의에 기소할 피의자가 아니라면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내사 단계부터 중정(중앙정부부)에 통보를 하고 중정의 승인을 얻어서 한다"고 진술했다. 보안사 이씨 주장에 따르면 중정의 승인을 얻으면 마치 민간인에 대한 수사가 가능하다는 식으로 들리는데 보안사는 원천적으로 민간인에 대해 수사권이 없는 것 아닌가?
"맞다, 보안사는 원칙적으로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다. 관련 법령을 보면, 국군보안부대령 제1조에 의하면 보안부대의 경우 군법회의 관할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있고, 군법회의법 제2조에 의하면 군법회의는 군형법 등에 대한 재판권이 있으며, 당시 군형법 제1조 제1항에 의하면 동법이 원칙적으로 군인에게 적용되나, 군형법 제1조 제4항은 동법 제13조 제3항 범죄에 대하여는 민간인 수사권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민간인으로 반공법 제5조제1항(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통신죄), 동법 제4조 제1항(찬양․고무죄), 동법 제7조(편의제공죄), 국가보안법 제5조 제2항(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부터 금품수수죄), 외국환관리법 제23조 및 동법 제7조1항의 위반으로 조사를 받았으므로 위 군형법 제1조 제4항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수사권이 없는 보안사로부터 불법적인 수사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 사건뿐만 아니라 다수의 재심법원의 판결문들에서도 확인하고 있는 사항이다.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보안사의 불법수사라는 점에 대하여 재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중정의 사전승인의 문제는 보안사 수사관들 본인도 사전승인은 실제로 없었다고 하기도 하고, 해당명의의 중정 수사관도 사건관여를 부인한다. 실제 기록상으로도 중정의 사전수사 승인서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반면 당시 다른 경찰 수사 사건들의 경우에는 기록에 중정의 사건 조정지휘서 같은 것이 존재한다). 당시 보안사과 중앙정보부와 상하관계라기보다는 경쟁관계였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의문이 좀 풀릴 수 있을 것이다."
- 진실위 보고서를 보면 보안사가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음을 알고도 중정 수사관의 명의를 빌어 공문서인 수사기록을 허위로 작성하고, 중정과 서울지방검찰청은 보안사의 위법 사실을 알고도 이를 방조하거나 묵인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는데 그 판단의 근거가 뭔가?
"수사기록상 피의자신문조서나 참고인 진술조서에 조사장소가 국군보안사령부로 되어 있다. 그리고 피의자들은 보안사 수사관들의 인솔에 의하여 검찰에 출석하였던 것이 보통의 관례였다. 다른 사건의 경우에는 참고인들조차 보안사 수사관이 인솔하기도 했었다. 때문에 만일 검찰에서 이러한 불법수사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면 형사소송법 교과서에 나오는 검사의 '공익담당자'로서의 최소한의 직분조차 저버리는 처사일 것이다. 이미 저버렸다고 봐야 할까...."
- 문인들을 연행한 보안사 수사관 변○○은 진실위 조사에서 "나는 이 사건을 모르고 누가 내 이름을 도용하여 거기에 기록한 것이며 필체도 내 필체가 아니다. 누가 이들을 연행하였는지는 잘 모르지만 기록상의 글씨로는 아마 이○○(사망) 수사관의 글씨 같다"고 진술했다. 보안사에서 이 사건 수사관의 이름도 조작한 것인가? 했다면 왜 조작했다고 보나?
"이 사건의 경우 위 이○○ 수사관이 사망하여 확인되지 못한 부분인데, 다른 보안사 사건의 경우를 보면 여러 사람의 필체임에도 주 담당자의 명의로 통일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중정 수사관 1인의 명의로 통일해 작성하였으나 필체는 다 다른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조서는 주로 하급의 군인이 쓴다는 것이 주된 답변들이었고, 후자의 경우에는 수사권의 문제로 중정의 수사관 이름으로 한 것인데 자신들도 그 수사관의 얼굴도 본 적이 없다고 하고(이 사건에서도 당시 보안사 수사관들은 수사기록상 명의자는 중정의 김○○는 한 번도 본 적도 들을 적도 없는 사람이라고 진술했다), 해당 중정 수사관도 이 사건에 관여한 바 없다고 답변한다."
- 일부 문인들 증언에 따르면 수사관들이 "무릎 위를 구둣발로 까면서 진술을 강요했다. 뺨이나 손찌검을 당했다. 발길질이나 주먹으로 구타를 했다. 원산폭격 등을 시키면서 간첩이라고 시인하라고 했다. 각목으로 두들겨 팼다. 군견을 끌고 와서 물라고 했다" 등등 군대훈련소 훈련병보다 험악한 '대우'를 대학교수들에게 했는데 보안사 수사관들은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나?
"수사관들이 자신의 가혹행위를 전면적으로 인정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해당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 경우, 가혹행위를 부인하는 경우, 뺨을 몇 대 때리기는 했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이 있는데, 뺨을 때렸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도 대부분 그 정도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그 정도는 상대보다 위압적인 위치라는 것을 과시(?)하는 수준에서의 진술이다. 다만 자신은 안 그랬지만 다른 수사관 누구는 그랬다는 식의 진술을 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면서, 아울러 진실위 조사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이나 애로 사항, 아쉬웠던 것 중 몇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 달라?
"생각하니 웃음이 좀 나기도 하는데, 처음에 신청인에게 연행당시의 상황에 대한 진술을 받기 위해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몇 마디 오고가지도 않았는데 버럭 화를 내시며, "아니, 다 조사해 보면 나오는 사실들인데, 내가 다 이야기해 줘야 하는가"라고 분노하셨다.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지당하신 말씀이나, 일반 형사사건도 피해자의 진술을 수사의 출발점으로 삼는데, 가해자에게 먼저 물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난날의 수모도 치가 떨리는데, 조사하라 했더니 다시 그걸 꺼내 이야기하라는 조사관의 요구에 성이 나신 것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어서 그날은 그냥 그렇게 물러났던 기억이 난다.
아쉬운 점이라면 아무래도 당시 담당 수사관들이 현재 조금 더 생존해 있었더라면 수사과정에 대한 진실위 조사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 문인간첩사건의 피해자들은 그래도 대학교수 등 문학인들이라서 일반 무명 피해자보다 진실규명과 그에 따른 재심과 무죄선고가 상대적으로 쉬었다고 보나?
"특별히 그렇지는 않았다고 본다. 일부 참고인들의 소재 파악이라든가 하는 부분에 유명인들이신지라 일반인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이외에는 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러한 점은 법원의 재심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이건 심각한 사회 제도상의 오류인데, 그럴 이유도 없고 그런 현상도 없었다."
▲ 김은희 전 진실위 조사관 | |
ⓒ 김은희 |
"끝없는 아쉬움들이 꼬리를 물고 서 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을 다 꺼내면 그로 인해 밀려드는 자책감을 처리할 방법이 없기에 그 꼬리의 어딘가를 내가 입에 꼭 물고 서 있는 형세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 될까?
현재 진실위 사건 중에는 법원에 의한 확정판결 사건이 난 사건도 있고 지금까지도 재심이 진행되고 있는 사건도 많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면서 또 여러 측면에서 가슴이 답답하다.
첫째, 매번 재판에서 묵묵히 앉아 있다가 무죄판결 앞에 고개 들기조차 어려워하는 검사님들을 본다. 곤혹스러워 보인다. 나라도 죽을 맛이겠다. 내가 이런 데 앉아 있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고시공부 했나...라는 회의도 드실 것 같다. 근데 막상 무죄판결이 나고 나면 또 검찰에서 항소, 상고를 예외 없이 다 한다. 항소나 상고심에서도 검사님은 묵묵히 앉아만 계신다. 궁금하다, 검찰 내부지침인가? 성과와 관련해 불가피한가? 그런데 이전 노무현 정부에서 난 무죄판결은 검사의 항소 없이 무죄판결이 확정되었다. 이번 이명박 정권에서는 왜 그러는지, 누구에게 물어보면 이놈의 진실을 알 수 있을까? 왜 예산까지 낭비해가면 이제 억울한 국민뿐만 아니라, 우리 검사님들의 인권까지 침해하는지 말이다.
둘째, 진실위에서 확정판결과 관련한 진실규명결정을 내는 것과 관련해 재심사건의 승산을 노리는 변호사들의 조정이라도 있는 양 음해하는 기사 따위를 볼 때가 있다. 참 화가 나는 일이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것은 그런 오욕스런 비난까지 받아가며 맡은 사건, 무죄판결만 받으면 변호사의 직무를 다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인권침해 희생자분들이 받은 대국가적 피해와 잃어버린 자신과 가족의 삶에 대한 아픔, 진정한 법률서비스는 이런 아픔까지 돌볼 줄 알아야 한다고 변호사님들에게 간절하게 당부와 부탁을 모두 해 본다."
김은희씨는
이화여대 법대졸, 이화여대 법학대학원 헌법 전공 수료
사법고시 41회, 44회 1차 합격
국가인권위 인권상담관
진실위 인권침해사건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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