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4월 19일, 4·19혁명 10주년에 함석헌(1901-1989)은 남들 같으면 은퇴 후 조용한 삶과 여가를 꿈꿀 때 70세의 나이로 <씨알의 소리>라는 월간지를 창간했다. 언론의 자유가 얼어붙은 험악한 시절에 그는 “자유언론 없으면 죽음”이라는 일념으로 “돈도 되지 않는 잡지를 사재를 털어서” 시작한 것이다.
시대정신을 읽는다는 차원에서, 언론의 자유가 억압되던 이 시대, 그는 “신문은 현대의 성경”이라며 정의감이 팽팽한 배고픈 언론인의 역할을 극찬했다. 그러나 물론 이 말은 현재 가진 자들의 대변자로 변절된 재벌언론들에게 적용되는 표현은 결코 아니다.
하여간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을 남긴 독일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처럼, 인간의 언어는 인간의 사고, 생각, 존재자체 그리고 인간관계를 결정한다. 그래서 자유로운 언어가 없는 곳에서는 자유롭고 기발한 생각, 사상, 감정표현이 싹틀 수 없다. 이래서 나는 자유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온 삶과 정열을 던진 함석헌의 덕에 오늘 우리가 ‘한류’를 누리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모차르트의 생애를 다룬 <아마데우스>를 보면 권력자(국왕)의 수준에 의해 예술의 수준이 결정된다. 모차르트가 천재성을 발휘해 작곡한 <피가로의 결혼>은 음악의 문외한인 국왕의 허가가 없으면 제대로 공연 한 번 못하고 곤경을 겪는다. 즉, 한 시대 예술의 수준이 '예술엔 일자무식'인 권력자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만다.
한국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말살되던 시절엔 그래서 신동이라 불리던 하명중의 형 영화감독 하길종(1941-1979)도 질식할 것 같은 창작의 제한에 화병으로 요절 할 수밖에 없었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록 가수, 작곡가 신중현(1940- )도 무자비한 국가폭력과 정보부원의 고문과 압력으로 음악생활을 중단하는 길 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래서 인간정신과 문화의 활발한 발전을 위해선 자유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꼭 필요한 절대적 요소다. ‘북괴’를 ‘인간’으로 그리는 <공동경비구역>이나 <웰컴투 동막골>, 군사정권의 부조리를 그대로 묘사하는 <박하사탕>과 <실미도>, 부모를 죽이는 장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공공의적>, 유부녀의 정사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같은 방화들은 모두 표현의 자유가 이룩한 쾌거다.
철저한 표현의 자유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는 인간정신은 극대화 될 수 없다. 아름답고 멋있고, 다양, 엉뚱, 당돌한 생각의 꽃은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공기를 마시지 않고는 질식하고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 결국 노벨문학상은 요원한 꿈이 되고 만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이룩하기 위한 선봉에서서 불의한 독재 권력에 저항하는 함석헌의 모습은 마치 그를 '싸우는 사람'처럼 보이게도 한다. 그러나 사실 함석헌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함석헌은 궁극적 선을 향한 가장 치열한 저항의 한 복판에서도 생각하는 일을 끈질기게 멈추지 않았던 사상가였다.
20세기의 한반도에서 벌여졌던 국가폭력의 폭풍 앞에서 한 닢 낙엽처럼 바람에 날려 다닐 수밖에 없는 함석헌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 뉴라이트교과서를 쓴 서울대 이영훈 교수는 일제의 조선강점이 조선을 근대화시켜주었기에, 일제의 조선 지배는 오히려 축복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논리를 가진 사람을 우리가 내는 소중한 세금으로 꼬박꼬박 월급과 연구비를 챙겨준다. 이것이 바로 오늘 한국이 직면해 있는 현주소다.
얼마나 우리들의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인가! 이런 적반하장의 소리를 하고도 당당히 한국최고의 지성이 모였다는 국립대학의 교수를 하며 넉넉한 월급, 연구비를 받고, 가장 많이 팔린다는 수구재벌 일간지에 칼럼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정리되지 않은 과거역사는 이렇게 반드시 오늘 현실에 독이 되어서 돌아온다. 그래서 과거사 정리가 필요 없는 일이 아니라 역사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너무도 중요한 것이다. 역사를 경멸하는 민족은 반드시 그 역사로부터 경멸을 받는다. 잘못된 과거를 가지고 잘된 미래를 꿈꿀 수는 없다.
인간은 싫으나 좋으나, 긍·부정에 무관하게, 어쩔 수 없이 역사적인 존재다. 콩 심은 곳엔 반드시 콩이 난다. 박정희가 5·16을 심은 곳에는 곧 전두환의 5·17이 나온다. 이것이 역사의 필연이다.
하여간 인간사의 도덕성을 철저히 무시한 이런 위험한 괴변은 600만의 유대인학살을 정당화한 히틀러의 선전상 괴벨스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가난한 이웃집 아빠를 내가 때려죽이고, 그 집 아내와 딸을 강탈, 강간한 후, 근대화를 시켜주고, 돈을 많이 벌어다주면, 그 살인, 강탈, 강간행위가 정당화 되고 ‘축복’이 되는가?
일제식민지정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우리를 근대화시켜주고 잘 살게 해주었기 때문에 불가피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었다"고 정당화 하는 것은, 곧 인간생명과 존엄성을 벌레같이 짓밟으며 히틀러, 스탈린이 거둔 소위 경제적 성공을 정당화하고 축복이었다고 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우주보다 귀한 한 인간의 생명”을 도구화하고 마음대로 빼앗은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고, 정당화 되어서도 안 된다. 인간사회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하나도 도덕성, 둘도 도덕성, 셋도 도덕성이고, 그리고 함석헌 사상의 뿌리도 역시 도덕성이다.
자아를 상실한 지식인은 그저 혼돈과 갈등 속에서 방랑 할 수밖에 없다. 염상섭의 <만세전>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인화는 함석헌과 동시대인이다. 그는 암울한 일제무단통치하에서, 그저 자신의 공허함과 번민을 달래기 위해 일본매소부(賣笑婦)를 찾아 희희낙락 찻집에서 시간을 보낼 뿐, 실의에 빠진 민족의 앞날을 위해 아무런 비전과 희망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실로 연약하고 기죽은 식민지지식인의 전형을 우리는 이인화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지식인의 책무 중 에 하나가 절망과 실의에 빠진 민중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의 권리와 입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면, 함석헌은 절망과 실의에 빠진 조선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의 사명을 일깨워 주기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함석헌의 삶과 정신은 작게는 각 씨알의 작은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크게는 한국민족의 거대한 앞날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물량주의와 기회주의의 가치관이 팽배하는 이 시대 속에서도, “건국 후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운동가”로 함석헌(77%)이 1위로 선정되고 (<중앙일보> 2008.1.23), 대학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 20종에도 <한국역사>는 선정된다 (<뉴시스> 2008.1.31). 심지어 경제논리만 앞세우고 시의 세계와는 멀어 보이는 이명박 당선인조차 함석헌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를 애송시라고 답하는 현실이다. “시를 읽는 계절”, <노컷뉴스> 칼럼. 2007.11.20
그래서 감히 단언 할 수 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함석헌의 사상과 그가 추구했던 가치는 씨알의 가슴을 울리고 한국역사와 더불어, 영원한 ‘씨알의 소리’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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