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비폭력·평등·평화 실천한 '퀘이커 신앙' 배워야"
입력 2014. 09. 02 07:09 | 수정 2014. 09. 02 07:09
이정순 교수, 1일 한국민중신학회 월례 세미나에서 '퀘이커 신학' 집중조명
"나만 구원받겠다고 하는, 그러면서 쉽게 남을 정죄하는 그런 극단적인 종교적 이기주의란 '퀘이커(Quaker) 교도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기독일보 이동윤 기자] 1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열린 한국민중신학회 월례 세미나에서, 이정순 한신대학교 초빙교수는 '민중의 하나님과 내면의 빛(민중신학과 퀘이커 신학의 대화)'라는 주제의 발제에서 "민중신학은 외형적인 규모로는 너무나 작지만, 종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회 역사 속에서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고, 복잡한 교리 대신 단순한 신학을 내세우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퀘이커의 생명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퀘이커 신학의 장점에 대해 설명했다.
퀘이커(Quaker)는 17세기 중반 영국 랭커셔 지방에서 조지 폭스(1624~1691, George Fox)에 의해 창설된 기독교의 한 종파다. 친우회(형제들의 단체, Society of Friends)란 뜻을 가지며, 대한민국에서는 '종교친우회'라고 칭한다. 퀘이커라는 이름은 하느님(하나님) 앞에서 떤다는 조지 폭스의 말에서 유래했다. 1650년대에 영국의 조지 폭스가 제창한 '명상운동'으로 시작했다.
퀘이커교는 특히 사회 개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여러 세대에 걸쳐 노예제 철폐, 여성들의 권리 신장, 금주령, 사형제도 폐지, 형법 개혁, 정신병자들에 대한 보호 등을 주장해왔다.
이 교수는 먼저 이날 발제에서 한국교회의 현실을 진단했다. 그는 "온 나라가 세월호 사건으로 시끄럽다. 안전불감증에 빠져버린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죄없는 어린 학생들이 희생제물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 무엇에서부터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이 시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모두들 머리 숙여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또 이웃과 사회를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엄숙한 시기에 이른바 사회의 지도층이라고 하는 자들의 계속된 망언으로 희생자 유가족들의 마음에 이중삼중으로 아픔을 안겨주고 있다. 특히 종교계의 지도자라고 할 일부 목사들의 무분별한 망언은 사회의 소외되고 아픈 자들을 위로하고 보듬어야 할 종교의 본분을 잊고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에게 더 큰마음의 상처만을 안겨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또 다른 죄악을 범하고 있지 않는가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민중신학의 공헌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는 "1970년대 한국 민중의 고난과 억압의 현장에서 발생한 민중신학은 한반도에 가톨릭과 개신교가 전래된 이래로 가장 뚜렷한 자기 목소리를 낸 신학으로 인정받았다"며 "무엇보다 민중신학의 태동으로 인해 그동안 관념에만 머무르던 하나님 개념이 역사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개념으로 바뀌게 됐으며, 이것이야말로 민중신학의 가장 큰 공헌"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동안 주로 개인적인 신앙관계에서만, 또 교회라는 울타리에서만 존재하는 하나님에서 벗어나 민중이 고통당하는 역사의 현장에 함께하는 하나님으로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민중신학은 가톨릭 전통 안에 확고히 뿌리내리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한 전통들과의 활발한 대화를 통해 그런 작업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며 "퀘이커 신학은 그중 대표적인 대화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세월호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 앞에서 여전히 하나님의 심판을 운운하는 그런 몰지각하고 종교인들에게 피해자의 가족과 함께 울고 위로하며 세상을 희망으로 헤쳐나가는 퀘이커의 신앙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더 나아가 퀘이커 사상과 신학이야말로 고난당하는 민중의 실체를 발견하고 신학적 주제로 삼았던 민중신학을 한낱 과거의 유물로만 간주하게 되고 더이상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신학적 현실 속에서 귀중한 신학적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퀘이커는 종교공동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사회 역사 속에서, 심지어 한국 사회 곳곳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이점 역시 민중신학이 과거의 유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배워야 할 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퀘이커는 362년이라는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세계에 30여만 명이라는 매우 적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하지만 여전히 사회 역사에 끼치는 영향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1940년 미국에서의 군복무에 대한 양심거부 및 대체복무제 도입과 194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들이 그 대표적인 예"라며, "퀘이커 사상가 파커 파머를 통해 한국에 소개되고 있는 '마음비추기 피정', 한국 샬렘영성연구소가 채택하고 있는 그룹 영성지도, 폭력을 대신하는 비폭력 평화프로젝트 등등, 이 모든 것들이 퀘이커 전통에서 나온 것들이거나 퀘이커 교도들이 소개 및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물론 퀘이커 신앙이 기존의 그리스도교와는 달리 교리와 조직을 거부하기 때문에 다른 교파의 조직이나 신학과 일일이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며 "하지만 적어도 서구의 관념적인 신학, 지배자 위주의 신학을 거부하고 민중을 성서의 근본주제요 신학개념으로 발견한 민중신학에는 더없이 좋은 배움의 상대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초기 퀘이커 교도들이 주로 무식한 농민이었다는 점, 당시 정치와 종교를 지배하던 영국 국교회의 타락한 현실에 반기를 들고 제도와 형식의 굴레를 벗고 모든 인간의 영적인 평등성을 외쳤다는 점, 때문에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떠한 권위에도 복종하지 않았고, 그 어떠한 폭력에도 비폭력 투쟁으로 맞서왔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더불어 "퀘이커에서 강조하는 '속 생명'이나 '내면의 빛'과 같은 용어들은 단순히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인간 밖에서 인간 안으로, 사회 역사 안으로 뚫고 들어오시는 초월적인 하나님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바로 그 하나님이 이미 인간 안에 존재의 근거로, 삶의 인도자로 존재한다는 자각을 통해 내재적인 하나님으로 더 철저히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퀘이커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장점을 거듭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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