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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4월 25일 자정 대전교소도 앞에서 최기영 씨의 출소를 축하하는 환영식이 열렸다. 그러나 이날은 보안관찰법의 족쇄가 채워진 날이기도 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지난 24일은 내겐 참으로 뜻 깊은 날이었다. <보안관찰기간갱신결정>에 대한 고법의 결정을 대법이 파기 환송한 것이다. 사실상의 승리였고 막판 극적인 뒤집기였다. 전혀 예상도 기대도 하지 않았던 소식이 나를 울컥하게 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응어리가 터지듯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6년 만에 찾아온 마음의 자유였다.
2010년 10월 출소 이후, 보안관찰법에 대항해 싸워왔지만 솔직히 말해 승리를 예감하지 못했다. 매년 1백만원의 벌금형이 내려지고 또 소송을 하고 노역형을 가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것 같지 않았다. 다들 쉽게 승소하거나 벌금액이 확 줄어들 때도 나는 예외였다. 단 한 푼의 벌금도 줄지 않았고 나홀로 패소를 당했다. 의아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통합진보당의 간부로 활동하고 정당해산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고법 결정문에 잘 나와 있다. 심지어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결정문을 장문 그대로 인용했다. 그래서 아래의 대법 판결문은 특히 의의가 있다.
원고가 내란관련 사건 등 통합진보당의 위헌적 활동에도 관련이 되었는지 등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기술되어 있지는 않고, 이른바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원고의 사고와 태도를 알 수 있는 내용도 없다. 그리고 원고가 통합진보당 활동과 관련...그 행위의 외형은 대중정치활동이나 소속 정당을 위한 변론준비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원고가 통합진보당 내에서 주요 직책을 맡아 수행한 구체적 활동 내용을 심리하여 그것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통합진보당의 정당 활동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었는지, 통합진보당의 위헌적 활동이 상당 부분 원고의 책임과 연계된다고 볼 만한 사정이 있는지...원심은 그와 같은 점에 대한 충분한 심리 없이 그 판시와 같은 사정만을 들어 원고의 재범의 위험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단정하였으니...(대법원 제3부 전원일치 2016.8.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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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소한 최기영 씨가 지인과 포옹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통합진보당 간부에게만 특히나 가혹했던 왜곡된 법 논리와 부당한 행정행위가 파탄난 때문이다. 이제 나에게 마음의 감옥은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
1. 빨간색 감시팔찌 - 보안관찰의 감옥
3년 6월의 만기 출소만 하면 되리라 믿었다. 큰 어려움 속에서도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있었고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도 가득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바램이었다.
또 다른 감옥이 나를 기다렸다. 보안관찰의 감옥이다. 그런 법률을 들어는 봤지만 내가 그 적용을 받으리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교도소의 공안담당이 알려 주고 서명여부를 물어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출소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경찰에 출석해 누구랑 술을 먹었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그리고 어디로 놀러 가는지를 시시콜콜 문서로 신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거주의 자유는 완벽하게 제한되었다. 이사를 하거나 여행을 할 경우는 사실상의 허가제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사상전향 여부 신고가 결정적이다. 한마디로 이것은 사상범에게 주어지는 ‘빨간색 감시팔찌’였다.
2. 옥죄임의 고통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정식신고든 부정기신고든 하지 않았다. 보안관찰법 자체가 실정법을 위반해 위법하게 운영되고 있었고 또 폐지돼야 할 법률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실제로 보안관찰법의 시행령과 규칙에는 이미 폐지된 ‘사상전향 여부’를 묻게 되어있다. 명백한 위법이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경고장과 전화 연락이 속출하더니 결국 일이 나기 시작했다. 이정훈 선배는 아들의 대입 수능시험일에 아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에 끌려갔고, 이진강 선배에게는 경찰이 노모를 찾아가 온갖 협박을 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심각한 인권침해였다.
나도 분기별 정기신고일이 지나면 어김없이 경고장이 오고 보안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리고 8월이 되면 그 연락은 부쩍 잦아졌다. 9월초까지 ‘용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해 검찰에 제출하도록 지휘명령이 오는 탓이다. 9월에는 검사의 신문을 받아야 하고 그 결과는 11월의 보안관찰처분심의위원회에 회부되었다.
불응하면 임의동행하거나, 수배와 금융계좌 압류가 이뤄졌다.
실제로 일년내내 신경전을 벌이다가 결국은 검사 앞에 끌려갔다. 검사가 내미는 3~4백 쪽의 조서에는 페북과 홈피의 글들이 남김없이 첨부되어 있었다. 내 생각과 활동을 모두 서류로 기록하고 있다는 섬뜩함이 밀려왔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옥죄임의 고통이 일년내내 계속되었다.
3. 싸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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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진보연대와 민가협, 양심수후원회는 최기영 씨의 강제노역형을 계기로 2014년 7월 11일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보안관찰법 폐지를 요구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내가 보안관찰법에 맞서 신고거부, 정보공개청구, 정식소송, 행정소송을 하고 그러다 패하면 노역형을 살고 사회봉사명령을 받자 누군가는 내게 왜 싸우냐고 했다. 할 일도 많은데 힘 빼지 말고 적당히 하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싸워야 했다. 누군가는 싸워야 보안관찰법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 법의 폐해를 느끼고, 이 법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누군가는 법의 부당성을 축적하고 이를 통해 폐지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했다. 내가 만일 열 번, 스무 번의 노역형을 살게 되면 이 법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될 것이다. 오직 그런 신념이었다.
그런데 진보진영조차 보안관찰법을 모른다. 심지어 보안관찰법과 보호관찰법을 전혀 구분 못한다. 대상자가 적어 피해자가 적은 탓도 있다. 하지만 공안탄압을 당사자 운동으로 받아들이는 관성 탓도 적잖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의 문제다. 무시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이 사실상 사문화되었다고 여겼다가 얼마나 큰 코를 다쳤는가?
4. 감시의 재개
본격적으로 투쟁하자 뜻하지 않는 일들이 벌어졌다. 너무나 당연한 투쟁이 법무부와 검경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보안관찰처분심의위원회에 출석해서 직접 발언하겠으며, 안되면 그 이유를 서면으로 통보해 달라는 등의 공격적 대응에 적잖이 당황해 했다.
심지어 경찰서 수 십 곳과 검찰 여러 곳, 심지어 교정청과 교도소마다 자료 제출요구를 이어갔다. 결국에 경찰청은 일괄적으로 대응 공문을 내려 보냈다. 물론 그들의 답변은 보안관찰법의 위법 운영만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보안관찰법이 위법 운영되므로 신고 요구 자체가 불법행위가 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불똥이 엉뚱하게 튀었다. 수십년간 아무 일이 없었던 장기수 어른들에게 보안관찰 신고를 하라는 압력과 경고장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민혁당 관계자들, 한상렬 목사님 등에게도 압박이 가해졌다. 조금 당혹스러웠다.
이때 권낙기 선생님께서 원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아니었다면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선배들에게 피해가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이 일로 인해 원칙적 입장을 다잡게 되었고 대상자들의 연대도 확산할 필요를 절감하게 되었다. 감시가 재개되면 연대도 재개되는 것이다.
5. 보안관찰법 폐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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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7월 11일 보안관찰법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최기영 씨와 함께 이른바 '일심회' 사건으로 실형을 살고 나온 손정목 씨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나는 머잖아 보안관찰의 감시감독에서 벗어날 것이다. 하지만 모두의 승리가 아니다. 앞으로도 내란과 외환죄, 국가보안법으로 3년 이상의 형을 살고 출소한 모두에게는 ‘빨간색 감시팔찌’가 채워질 것이다.
범민련, 왕재산, 내란음모조작 사건의 당사자들의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빨간색 감시팔찌를 혼자 끊는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아예 그 감시팔찌 자체를 없애야만 한다. 승리의 가능성은 크게 열려있다.
□ 법 위반 사항(전향제도 폐지 이후에도 불법적으로 사용)
-. 보안관찰법시행령 제8조(출소통보등) ①항의 6.사상전향여부
-. 보안관찰법시행규칙 중
1) 별지 제6호서식 보안관찰처분대상자관리부(경찰서용) - 전향여부, 일자, 교도소
2) 별지 제8호서식 보안관찰처분대상자출소통보(교도소용) – 전향여부, 일자, 교도소
3) 별지 제18호서식 보안관찰처분사안인지서(검찰청) - 전향여부 |
무엇보다 보안관찰법 자체가 위법 운영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가히 국가배상 감이라고 할 만하다. 아직도 사상전향 여부가 경찰서와 교도소에서 버젓이 시행되고 있다.
다음으로 위법 운영되고 있는 보안관찰법에 전혀 응할 필요가 없다. 위법행위에 응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도리이자 헌법적 권리이다. 위법사항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원상복구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안관찰법 폐지를 각 당의 대선 공약으로 만들어야 한다. 보안관찰법은 검찰조차 미운 오리새끼 취급한다. 각 당의 대선공약이 되는 순간에 보안관찰법의 수명은 사실상 끝이다. 이제 ‘빨간 감시팔찌(보안관찰법)는 필요 없다’는 희망의 연대를 조직할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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