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
2 Feb · Public · …이영훈을 알아봐줬다. 레퍼런스가 박유하 교수와 지만원, 조선일보도... 이제보니 한국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부정과 혐오지형을 잘 알고 있는 지한 겸비 지일파다. 웃고프다.
Intack Im's post
존 마크 램지어(J. Mark Ramseyer)라는 하버드 로스쿨 일본법학자가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라고 주장한 논문이 최근 일본 매체에 소개되며 논란이 되고 있다. 궁금해 찾아보니 이미 2019년 3월 토론(논)문 형태(30쪽 분량)로 발표되어 쉽게 검색해 볼 수 있는 학술자료를 토대삼고 있는 걸로 보인다. 당시 제목은 <COMFORT WOMEN AND THE PROFESSORS(위안부 여성과 교수들)>, 이번 논문 제목은 <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태평양 전쟁에서의 성계약)>이다. 1. 당시 제목의 '교수들'은 뭘까.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교수와 그밖의 교수들을 말한다. 어떤 주장이 배척되는 정통과 이단적 관계를 함의한달까. 토론문의 계기는 박 교수와 그러한 주장에 대한 한국에서의 논란, 좁혀서는 그에 대한 형사처벌이다. 마지막 비블리오그래피에 눈에 띠는 한국학계 레퍼런스로 개인 경우, 이영훈, 박유하, 지만원 등이 있고, <조선일보> 기사도 두셋(위안부는 매춘부였다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을 보도한 04년 기사 포함), 그리고 다수의 일본 학계와 각국 기관자료나 기사가 있다. (저자는 초록에서 특별히 "Il-young Jung"에게 고맙다고 밝혔는데 누군지 추정하기 어렵다. 어쨌건 위 정일영은 2019년 초 위 논지를 인지했을 수 있겠다.) 램지어는 위 소고에서 특히 위안부에 관한 문서상 증거가 없음, 피해자들 주장이 소송과 정치적 이유로 바뀜을 강조하고 한국에서 주류논지와 다른 주장을 하는 교수를 처벌까지 한 데 대단히 비판적이다. 2. 램지어는 하버드 로스쿨엔 1998년 임용됐는데 일본법학 미쓰비시 교수란 직함(Mitsubishi Professor of Japanese Legal Studies)을 갖고 있다. 아무렴 연구후원이 미쓰비시 기업과 관련 있어 그런 건 아닐까 궁금했는데, 의미가 확실히 찾아지진 않았다. 과문해 직함이 저런식으로 된 교수직을 본 적이 없다. 식품영양학 어떤 교수 직함이 농심신라면 교수, 라면 좀 이상한데..내 선입견이다. 3. 그는 일본 백그라운드가 많은데 '지일'이라 소개하면 똥싼 걸 침뱉었네 말하는 꼴일 법한, 말 그대로 미 학계를 대표하는 친일파 학자다. 그경우 스폰서십의 경로를 의심하지 않는 건 모든 교수들이 학문적 열정으로 땅파서 연구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가령 석사생 때 경험인데, 한국의 녹색성장 전망, 평가 논문이 엠비시절 가장 많이 해외 소개되어 있는 건 -즉, 2010년대초 해외 어느 선진국 버금갈 정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논문들대로라면 한국은 지금 그린G5정도는 되있어야한다.) 물론 모든 스폰서십이 정치경제교육문화적으로 불순할 순 없겠다. 위 경우는 추정의 근거가 좀더 있다. 마크 램지어의 2019년 1월 인터뷰(인터뷰어는 레이타쿠대학의 제이슨 모건)를 보니 "(미쓰비시 징용공 보상 판결에 대해) 판결문을 보지 않았다"면서도 한국정부가 과거 한일협정으로 관련한 일체의 주장을 포기한 것이란 생각을 표명한다. (혹 국제사법소송 가게되어 또 혹 이 사람 만나면 무조건 지겠다..) 램지어는 그리고 어떤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미쓰비시 공장에 보내진 이들은 운이 좋았다." 아니면 전쟁터에 보내졌을 거란 게 맥락상 이유다. (The ones sent to MHI were lucky. Young Japanese men (and some young Korean men) were sent to front in the Burmese jungle.) 또다른 교수라는 자가 당초 던진 질문이 뭐였을까. "전쟁 중 공장 징용이 원고들 삶을 부양시켰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working in a wartime factory may have soared the lives of the plaintiffs?) 난 이 국면 램지어가 일본의 광나는 어용학자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아카데믹/사쿠라적 데마고그? 그가 당초 일본이 아닌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면? 달 대신 달 가리키는 손가락을 흉본달 수도 있겠다. 더 심각해질 용의는 없다. 한국인(학자)들도 하는 주장 아닌가. 어쨌건 잠 다 잔 것 같다..
강성현
1 Mar · Public · …출간하길 바란다. 그리 되면 박유하 교수 책에 대해 일본 메이지가쿠인 정영환 교수가 반론서를 출간한 것과 여러 차원에서 비교하고 싶다.) 언론이 영어권 글로벌 학술장의 선망에서 그런 구도로 이 사태를 만들었다. 이는 한국 연구와 활동에 대한 훈수와 지적질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 또한 비틀린 현실을 만드는 것이고 심지어 왜곡이다. 그리고 부정이다. 그 밖에도 여러 질문이 가능할텐데, 이거야말로 논문 여럿 나오겠다. 나중에 책을 쓰던지 해야지... 이거 원...
강성현
1 Mar · Public · …반복된 것이다. 그 전으로 박유하 교수의 책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더 긴 시간이다. 역사수정주의, 더 노골적으로 역사부정과 혐오에 맞서 나온 성과들이 한국과 일본에서 책으로만 해도 꽤 된다. 에커트, 고든, 스탠리 교수 등이 적시한 반박 내용들이 새로운게 아니라는 말이다. 애초 하버드라 문제가 점화되었고, 또 하버드 내지 그 버금가는 명망으로 그 문제를 진압해가는 구도다. 램지어 교수는 산케이 영문판인 재팬 포워드의 단골이었고 해당 논문 뿐 아니라 여러 사안에 대해 부정과 혐오로 일관한 글과 인터뷰를 해왔다. 램지어의 논문을 요약한 산케이신문의 기사를 비판 없이 소개한 기사를 초반에 한국에 내보낸 게 조중동이었다. 나로선 기가 차지도 않은 일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작년 정의연을 공격할 때 그 신문 기자들이 받아썼던 이영훈, 이우연 류의 부정론과 혐오에 입각한 주장들이 다 그런거였다. 새삼스럽지 않았다. 다른 게 있다면 램지어가 투고한 저널은 하버드에 sci급 간판이 있다는 것. 역사부정의 세력에게도 램지어는 sci급 저널에 쓰레기 수준의 논문을 제출해도 ‘피어 리뷰’(논문심사)를 문제없이 통과하고 공식 학술장에 역사부정과 혐오의 주장을 학계의 주장으로 포장해 낼 수 있는 희소하고 소중한 ‘파이프’라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학술장과 명성치 대한 이상한 선망이 이 문제를 증폭시키고 또 진압하고 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여러 역사부정과 혐오 현안에 대해 다양한 전공을 배경으로 한 글로벌 지식인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 분들은 이 사안이 연구윤리 문제에 중대한 위협이라 생각해서 더욱 그럴 것이다. 한국에선 3월 12일 정의연과 일본군’위안부’연구회가, 일본에선 14일 파이트 포 저스티스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램지어 사태’를 다루는 학술회의를 갖는다. 올해만 놓고 봐도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연구자 및 활동가들은 지난 2주 램지어 사태뿐 아니라 지난 한국법원의 판결과 그 의미를 심화시켜 의미화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었다. ‘램지어 사태’의 학술적/대중적 체크도 그 연장에서 계속 해오던 일이고, 무엇보다 일회성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계속할 일이다. 언론도 이슈 메이킹하고 단타로 빠지는 방식으로 다루지 말고, 꾸준히 이슈 키핑하고, 글로벌 역사부정과 혐오 사태를 꾸준히 종합적으로 심도 있게 다뤄주길 바란다. 단순히 제2의 램지어 교수 없나 혈안이 되어 찾지 말고 부정과 혐오의 백래시 구조를 드러내는 취재와 보도를 해주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그간 축적해온 노고와 성과도 존중하고 참조해가길 바랄 뿐이다.
강성현
1 Mar · Public · …것이다. 그 전으로 박유하 교수의 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더 긴 시간이다. 역사수정주의, 더 노골적으로 역사부정과 혐오에 맞서 나온 성과들이 한국과 일본에서 책으로만 해도 꽤 된다. 에커트, 고든, 스탠리 교수 등이 적시한 반박 내용들이 새로운게 아니라는 말이다. 애초 하버드라 문제가 점화되었고, 또 하버드 내지 그 버금가는 명망으로 그 문제를 진압해가는 구도다. 램지어 교수는 산케이 영문판인 재팬 포워드의 단골이었고 해당 논문 뿐 아니라 여러 사안에 대해 부전과 혐오로 일관한 글과 인터뷰를 했다. 램지어의 논문을 요약한 산케이신문의 기사를 비판 없이 소개한 기사를 초반에 한국에 내보낸 게 조중동이었다. 나로선 기가 차지도 않은 일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작년 정의연을 공격할 때 그 신문 기자들이 받아썼던 이영훈, 이우연 류의 부정론과 혐오에 입각한 주장들이 다 그런거였다. 새삼스럽지 않았다. 다른 게 있다면 램지어가 투고한 저널은 하버드에 sci급 간판이 있다는 것. 역사부정의 세력에게도 램지어는 sci급 저널에 쓰레기 수준의 논문을 제출해도 ‘피어 리뷰’(논문심사)를 문제없이 통과하고 공식 학술장에 역사부정과 혐오의 주장을 학계의 주장으로 포장해 낼 수 있는 희소하고 소중한 ‘파이프’라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학술장과 명성치 대한 이상한 선망이 이 문제를 증폭시키고 또 진압하고 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여러 역사부정과 혐오 현안에 대해 다양한 전공을 배경으로 한 글로벌 지식인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 분들은 이 사안이 연구윤리 문제에 중대한 위협이라 생각해서 더욱 그럴 것이다. 한국에선 3월 12일 정의연과 일본군’위안부’연구회가, 일본에선 14일 파이트포저스티스 연구와 활동가들이 ‘램지어 사태’를 다루는 학술회의를 갖는다. 올해만 놓고 봐도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연구자 및 활동가들은 지난 2주 램지어 사태뿐 아니라 지난 한국법원의 판결과 이의 의미를 심화시켜 의미화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었다. ‘램지어 사태’의 학술적/대중적 체크도 그 연장에서 계속 해오던 일이고, 무엇보다 일회성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계속할 일이다. 언론도 이슈 메이킹하고 단타로 빠지는 방식으로 다루지 말고, 꾸준히 이슈 키핑하고, 글로벌 역사부정과 혐오 사태를 꾸준히 종합적으로 심도 있게 다뤄주길 바란다. 단순히 제2의 램지어 교수 없나 혈안이 되어 찾지 말고 부정과 혐오의 백래시 구조를 드러내는 취재와 보도를 해주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그간 축적해온 노고와 성과도 존중하고 참조해가길 바랄 뿐이다.
firenzedt.com
[김수형 칼럼] 미국은 하버드 교수의 ‘위안부 역사왜곡 폭동’을 어떻게 제압했나 | 피렌체의 식탁
강성현
9 Dec 2017 · Public · …다케시 선생님 글 ㅡㅡㅡㅡㅡㅡㅡ 박유하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이라는 게 만들어졌다. 언론 보도에서는 참여자 명단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박유하가 스스로 만든 사이트에는 참여 호소문과 함께 명단이 나와 있다. 한국이나 일본 측에서 참여한 이들이야 새삼스럽게 한탄할 것도 없는 면면이지만, 미국 측에서 커밍스, 셀든, 그리고 사카이 나오키 같은 이름을 보게 되는 것은 참 괴로운 일이다. 이들은 지금 한국사회 분위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기자회견에서 김향훈 변호사가 했다는 "극단적 민족주의와 광기 어린 반일이라는 폐기돼야 할 여론"이라고 현재 분위기를 표현한 것을 보면서 기시감이 들었다. 노무현 시절 친일위원회 등에 대한 비판 역시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뉴라이트는 이런 토양에서 출현했다. 사실 이런 한국 사회 인식은 혐한 담론과 공명을 일으키면서 해외에서 잘 먹히는 듯하다. 김철 같은 사람이 일본 같은 데 가서 헛소리를 하고 다니는 효과는 확실히 있는 셈이다. 그들의 민족주의에 대한 강한 혐오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비판을 할 때 항상 동원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적인' 논리라는 점에 대해 이들은 고민을 안 하는 걸까. "의견의 옳고 그름의 판단은 국가기관이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이 오가는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그들은 말하지만, 이 '자유로운 토론이 오가는 사회적 공론의 장'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가? 리버럴의 문제는 결국 이런 데서 드러난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움직임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그 기득권에서 제외된 이들과 함께 그 작업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보수적인 운동일 뿐이다.
parkyuha.org
『제국의 위안부』 소송 지원동참 호소문 |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광장으로
강성현
6 Jul 2016 · Public · …성찰로 하는 것이다. 박유하 사태만을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모든 종류의 열광을 뒤로 하고 성찰적인 자세로 역사를 마주해 대면하고 응답해야 하며, 그 바탕 위에 정치 및 외교, 사회적 실천 및 운동으로 전개해야 한다. 당위를 말함이 아니다. 현실을 어설프게 고려하고 재단해 봉합했던 것은 결국 그것이 균열될깨 더 큰 문제로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부디 박우하 교수의 재반박은 그런 견지에서 진행될수 있기를 바란다.
v.media.daum.net
'제국의 위안부' 비판서 출간..박유하 "재반박하겠다"
강성현
5 Jul 2016 · Public · …분출하리라 생각됩니다. 박유하 현상을 지탱하는 한일(미)의 지식사회에 대한 장진범의 지식사회학적 분석이 앞으로 기대된다. ㅡㅡㅡㅡㅡㅡㅡ 박유하 교수에 대한 정영환 선생의 비판서가 출간되었고, (아래 퍼온)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여친이 책을 얻어와서 일부를 읽어 봤고, 이 출판기념회에 박유하 교수의 참석을 둘러싸고 벌어진 해프닝도 건네보게 되었는데, 두 가지 점에서 크게 놀랐다. . 정영환 선생 책 후기(202쪽)에 보면 "그 후 '위안부'로 끌려갔던 피해자들이 <제국의 위안부>의 기술을 이유로 저자를 고소했다는 것을 알고 읽기 시작했다."라는 문장이 있다. 나는 한국의 피해자들이 고소를 한 후 정영환 선생이 이 책을 읽었고, 그 다음 본격적인 비판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박유하 교수가 '본인은 한국에서 고소됐지만 그 뒤에 재일 [조선인] 지식인들이 있다'고 말한 바 있고(http://mainichi.jp/articles/20151203/mog/00m/030/021000c), 이 주장의 참을 수 없는 부도덕성과 별개로, 이 주장으로써 정영환 선생의 작업이 피해자들의 고소에 선행한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지금껏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후사정을 잘 아는 사람은 이런 오해를 하지 않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저 문장을 들으면 그런 오해를 하지 않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 이게 박유하 교수의 수법이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달까. . 또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해프닝이다. 박유하 교수는 "어제 참석을 결정한 건 "초청공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404187426274834&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theater). 7월 2일에 그가 올린 이 포스팅만을 보면, 마치 주최측에서 박유하 교수를 먼저 오라고 해 놓고, 정작 참석을 하니 왕따를 시켰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우연히 푸른역사 쪽 페이지에 들어가게 되었고, 7월 1일에 올린 출판사 측의 포스팅에 박유하 교수가 "오늘 기자회견에서는 저에 대한 언급을 빼 주시고, 저녁 강연회에 저를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이제라도 제게 공정한 처사일 것입니다."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44902062266912&set=a.108011875955940.16239.100002413843550&type=3&theater). 그러니까 박유하 교수가 "비판은 본인이 있는 자리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비난을 "학술적비판"이라고는 하지 못할 것입니다."이라는,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하다는 말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논거로 당일 있는 행사에 자신을 불러달라고 먼저 주장하였고, 이 요구에 따라 주최측에서 초청 메일(그러니까 무슨 토론자로 섭외한 게 아니라 그냥 오라는 메일)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박유하 교수의 포스팅만을 본 사람은, 심지어 그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경우라도(가령 나처럼), 출판사가 좀 너무했다는 오해를 할 공산이 높다. 하물며 그의 '팬'이라면... 이 역시 박유하 교수의 수법이 뭔지를 이해하게 해 주는 탁월한 사례였다. . <제국의 위안부>를 결국 읽어 본 내 입장에서, 이상과 같은 박유하의 대응 방식은, 책에 나타난 수사법을 반복하는 것이다. 즉 그는, 실제 사료나 증언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속기 딱 좋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는 학자라는 지위에 수반되는 '직업윤리', 그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이용하여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사기를 친다. 아울러 그는 끊임없이 이율배반적인 수사법을 사용하여, B를 문제삼는 사람들에게, 내 책에 보면 A라는 언급도 있다고 대답한다(그런데 그 A라는 얘기는 사실 다른 작업들에 있는 내용을 박유하 교수가 갖고 온 것이다. 즉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A는 박유하 교수의 독자적인 업적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 그러나 그의 학자적 소양을 의심하지 않는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속아 넘어가게 된다. . 정영환 선생 등의 노력으로, 이제 박유하의 작업은, 적어도 학문적으로는 완전히 파산했다고 판단한다. 박유하 교수가 특히 정영환 선생에게 그렇게 신경증적으로 반응한 것은, 그 역시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박유하 현상', 즉 한국과 일본(그리고 미국 등지)에서 박유하가 일으킨 열광과 지지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제 그 열광과 지지가 '학문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질 따름이다. 애초부터 진정한 논점은 박유하라는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에 열광한 '주체'였으며, 이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대상의 학문적 가치가 파산했기 때문에 더욱 굳건한 토대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필요한 것은, 많은 이들이 말한 것처럼, 박유하에게 열광한 주체들에 대한 '지식사회학', 또는 '이데올로기 분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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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환(鄭栄桓) 저,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출판기념강연회 2016.7.1
강성현
7 Feb 2016 · Public · 박유하 반박글에 대한 길윤형 기자의 재논평 1. 저는 위안부의 다양한 모습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8월 29살에 취업사기로 위안부가 됐던 배봉기 할머니의 사연을 신문 1면과 3면에 다뤄던 것이구요. 제 강조점은 위안부 제도는 일본의 국가범죄라는 것입니다. 위안부가 소녀의 이미지에게 고정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고정할 의도도 없습니다. 제가 인용한 1944년 미군의 포로 조사 자료도 20명의 조선인 위안부 중에 12명이 미성년이니 8명은 성년이었고, 그 중의 일부는 성매매 경험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소녀든, 나이든 여성이든, 성매매 경험이 있는 여성이든 이것은 일본의 국가범죄입니다. 단, 나치 범죄를 강조하는 이들이 안네 프랑크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일본 정부가 납치 피해자로 요코다 메구미를 전면에 내세우듯 한국의 운동도 소녀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측면은 있지요. 그게 가장 흉악한 범죄의 모습이고, 일본 정부가 위안부 제도가 국가 범죄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봅니다. 현재의 위안부 운동이 소녀라는 어떤 고정된 이미지를 고수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의 지적은 박 교수의 제멋대로 비판. 2. 위안부는 동지적 관계인가? 동지적 관계인지를 살피려면 두가지 요소를 봐야 합니다. 하나는 주관적 감정이겠고, 둘은 객관적 조건 즉 구조이겠죠. 박 교수는 자신이 동지적 관계라고 말한 이유를 몇몇 할머니들의 증언집에서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증언을 "일찍 만났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네요. 이 구절을 보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얼마 전 문제가 된 김규항씨도 제가 지난해 8월 쓴 배봉기 할머니의 증언을 인용해 이런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는데. 배봉기 할머니가 당시 "일본군이 이기길 바랬다"는 증언을 했으니 둘이 동지적 관계라는 겁니다. 그러나 배 할머니가 일본군이 이기길 바란 것은 일본군이 이겨야 자신의 안전이 보장되는 측면이 있겠고, 일제시대 태어나 그런 황민화 교육의 분위기 속에서 살아온 그런 영향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나중에 배봉기 할머니는 '일왕이 우리에게 사죄를 해야 한다"고 생각이 바뀝니다. 그럼 언제의 배 할머니의 심정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요? 이건 매우 어려운 문제가 됩니다. 당시 할머니가 일본이 이기길 정말로 바랬을 수 있습니다. 그건 사실이겠죠. 그러나 나이가 들어 여러 사람들과 교류를 하면서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것은 "내 팔자"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책임이라고 사고가 깊어가죠. 아무튼 이렇게 주관적 감정이라는 것은 매우 판단이 어려운 문제기 때문에 우리는 객관적 조건 즉 구조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 지점이 와다 교수가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론을 비판하는 핵심 지점입니다. 1938년 2월 내무성 통첩에 따르면, 일본에선 21살 이상의, 성매매 경험이 있는 여성이 친권자의 동의와 본인의 신청에 의해 위안부로 동원된데 견줘, 조선에선 그런 통첩이 없기 때문에(그 이유는 관련 국제조약을 조선에선 유보했기 때문) 21살 이하의 성매매 경험이 없는 여성이 취업사기로 동원된 예가 매우 많습니다. 이런 차별적인 구조가 있었는데 여성들이 직접 자신을 '제국의 위안부'라 생각했느냐는 겁니다. 박 교수는 자신이 책에서 그런 차별의 구조에 대해서도 말했다고하는데, 어디에서 지적했나 잘 못찾겠네요. 몇몇 할머니들이 당시엔 일본군의 승리를 바랬다. 그런 케이스가 증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박 교수는 이것이 위안부 제도의 '본질'이라고 하죠. 그럼 왜 그게 본질인지 자신이 여러 자료를 통해 입증을 해야 하는데, 그런 엄밀한 입증 과정은 없습니다. 그냥 두세개의 증언이 입증의 전부인데, 그렇다면 이것이 본질이라고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박 교슈의 자료 인용상의 편협함과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죠. 짧은 글로 보니 그런 박 교수의 오류가 더 잘 드러나네요. 3.위안부 제도는 일본의 국가범죄인가? 박 교수는 국가 범죄가 아니라는 논증에서도 한두개의 자료의 단편적인 이용을 통한 반박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즉, 일본이 소녀들의 취업사기를 단속하기도 했다는 것을 "제국 일본의 군부와 업자는 언제나 공범은 아니었다. 속아서 위안소에 온 경우 군부가 다른 곳에 취직시켰다는 케이스는 그것을 보여준다.(나가사와 겐이치, <한구위안소>) 혹은 너무 어리면 돌려보내기도 했다.(<제국의 위안부>)"고 한두개이 예로 논증하려 합니다. 제국 일본의 군부와 업자는 "언제나 공범은 아니었다"고 하면, 대체로 공범이었다는 얘기가 되는데. 대체로 공범이면 둘 모두에게 법적 책임이 있는 것이죠. 너무나 뻔한 논리적인 오류를 태연하게 저지르고 계시니 읽다가 좀 헉하는 느낌마저 듭니다. 4. 마지막으로 "나는 위안부를 조선인 일본군과 같은 징병과 같은 틀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은, ‘군인’은 보호했지만 ‘위안부’는 보호하지 않았다. 일본인 위안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글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 이 같은 구절에서 박 교수의 자기 모순이 폭발한다고 생각합니다.그는 "위안부를 일본군과 같은 징병과 같은 틀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동의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전시동원입니다. 병사처럼 국가가 필요를 느껴 동원한 것이죠. 그 무한 책임은 일본국 정부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죽은이들에겐 연금을 주죠. 국가의 책임입니다. 위안부도 기본적으로 국가의 필요에 의해 동원합니다. 군대를 위해 여성을 동원한 것이죠. 그리고 박 교수가 잘 지적하듯 법은 군인은 보호했지만 위안부는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일본인 위안부에 대해서도 그렇죠. 그렇다면 국가의 필요에 의해 동원한 위안부 제도에 대해 일본 정부에게 법적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조선인 위안부들이 동원 과정엔 더 노골적인 범죄적 구조가 있었고, 일본군 여성들에게 대해선 그 정도가 덜합니다. 그러나 일본인이든 조선인을 가리지 않고, 군이 필요에 의해 동원했고, 더구나 이들을 보호하지 않았으면, 우린 그런 국가에게 엄격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죠. 국가가 병사들을 동원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고 우린 인식합니다. 그러나 군대에 성을 공급하기 위해 여성들을 동원하는 것은 논자에 따라 그 자체로 범죄라는 사람이 있겠고, 조선인 여성들의 동원과정에서 이뤄진 당시 일본 형법 226조의 위반 등 구체적인 범죄 구조를 주목해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무튼 박 교수가 말하듯 국가가 징병처럼 여성들을 동원해 놓고 이들을 전혀 보호하지 않은 것이지요. 이런 얘기를 써가며 기어코 일본에겐 법적 책임이 없다고 하고, 결국 이는 일본의 국가 범죄가 아니라고 하니, 이분은 도대체 무엇이며, 이분의 논리구조는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이런 형편 없는 분의 형편 없는 언설에 한국 사회 전체가 놀아난 것이니, 얼마나 창피합니까. 그런 생각이 들고. 더 자세한 내용을 쓸 게 많지만 일단 여기서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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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강제연행, 박유하 교수의 반론
강성현
26 Jul 2017 · Public ·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도. 박유하 교수와 그들의 관계 및 욕망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21세기 역사수정주의의 내용과 성격 맥락에서 고민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박유하 교수를 예외와 일탈로 간주하고 외면하는 순간 역사수정주의의 파도는 언젠가 쓰나미가 될지도 모르겠다. 대화, 화해, 치유, 심지어 정의 키워드를 탈맥락적으로 들먹거리며 발흥하는 역사수정주의, 그리고 이를 수용하는 다종다양한 욕망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아래 글은 정영환 선생님 글 ㅡㅡㅡ <대화를 위해서>에 관한 단상 ■이 책은 2016년3월에 도쿄대학에서 열렸던 <제국의 위안부>에 관한 토론회 발제자 및 토론자 중 '옹호측'에서 발언한 사람들만을 모아 여기에 다른 필자를 덧붙여서 출판한 책이다. '비판측' 실행위원은 이 날의 기록전부의 출판을 요구했으나 '옹호측'은 거부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비판측 의견을 완전히 제거한 채 펴낸 책에 <대화를 위해서>란 제목을 달 수 있는 정신에는 경악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필진에서 비판자를 제외할 뿐만 아니라 비판 자체를 왜소화하고 있다. 옹호를 위해 비판에 반론하기는 커녕 그간의 <제국의 위안부>비판의 구체적 쟁점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졸저<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는 이 책에서 단 한번도 언급이 되지않았다. 제 주장에 동의해야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물론 그랬으면 좋겠지만).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해도 공론장에서 제기된 비판에 대해서는 이를 참조하여 반론을 시도하는 것이 논쟁적 서적을 둘러싼 '대화'를 위해 필요한 태도가 아닌가 싶다. 지적 성실함의 결여라고 평가할 수 밖에 없다. ■그 반면 이 책에는 일면적이고 희화적인 '비판자' 표상이 넘치고 있다. 비판자들의 고유명 대신에 '재일한국인'이나 '재미한국인', '운동단체'에 관한 억측과 예단을 여기저기서 찾아낼 수 있다. 즉 이 책은 비판자를 동등한 '대화'의 상대로 인정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표상은 비판자들의 주장은 '언론'으로서의 최저한의 존중조차 받을 가치가 없는 황당한 비방이다고 독자들에게 암시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이런 권위적이고 모욕적이며 지극히 오만한 글쓰기 방식--<제국의 위안부>의 저자가 자주 쓰는 방식인데--에는 솔직히 말해서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책에는 흥미러운 부분도 있다. 그간의 나를 포함한 비판자들의 <제국의 위안부>이해가 결코 '오독'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많은 찬사들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요모타 이누히코는 "박유하의 분석의 뛰어난 점은, 피식민자인 조선인 위안부가 그 내면에 있어 일본인에게 과잉되게 순응해 외지에서 때로 일본인처럼 행동한 점을 지적한 데에 있다."(일어판, p.103)고 찬양하고 있는데 이 건 '동지'란 당시의 국적이 일본이었음을 환기시켤려고 썼을 뿐이다는 박유하의 변명에 대한 유력한 반론이 될 것이다. 카노 미키요는 "'제국의 위안부'로 있다는 것은 그런 병사들의 '악행'[전장에서의 강간]을 떠받쳤다는 것이기도 하다"(p.206)고 주장한다. 이것이야말로 피해자들이 분노한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주장이다. 이외에도 동종의 찬사는 이 책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무튼 일본의 자칭 비판적 지식인들의 민낯을 엿볼수 있는 책이다. 한번 도서관에서 흝어보시기를 권한다.
강성현
8 Jul 2016 · Public · 박유하가 말하는 박유하 자기 기록은 한 사람의 말과 행위를 이해하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와 맥락을 제공해준다. 박유하의 자기 이야기는 당연히 편집된 서사일거다. 최근 냉전학지의 형성이라는 기획 속에서 한국전쟁기 '9.28수복' 이후 '도강파'와 '잔류파'의 이야기들을 한참 들여다 보고 있었다. 박유하의 이야기는 잔류파 중 자신의 행적을 입증한 이른바 잠적 잔류파의 서사 구조와 많이 닮았다. 박유하의 자기 기록은 여러 의미에서 읽고 분석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팩트와 서사구조 분석 차원에서. 또한 유시민이 기와집의 '박'의 정신분석과 내재적 접근을 취하듯, 이 '박'에게도 그런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강성현
14 Aug 2019 · Public · …더 나아가 이에 근거한 박유하 주장이 왜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김부자 선생님이 잘 논의해주었습니다. 증언 1집의 한계가 없는 건 아닙니다. “담담하게 피해 사실을 중심으로” 편집하자는 안병직의 주장이 관철된 1집의 문제는 ‘위안부’ 피해 사실 확인을 위한 질문들이 내포하는 문제, 그 질문에 답하는 구술 증언의 선별 기준 문제를 둘러싸고 증언 1집 팀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증언에서 피해 사실을 중심으로 구성한 실증주의적 태도와 방법의 한계에 대해 그간 왜 비판이 없었겠습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증언 1집의 한계는 차츰 분명히 드러나게 된 건 맞습니다. 그러나 이 한계의 배경으로 손쉽게 정대협의 민족 담론 또는 반일민주주의의 의도로 단정하는 것은 악의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할머니, 그런 내용 말고 피해 사실 있잖아”라고 면담자가 묻는 것을 두고, 면담자의 질문 의도가 ‘위안부’ 증언자를 순수하고 고정된 피해자로 만드는 데 있고, 이게 모두 정대협 문제라는 식의 지목이야말로 음모론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증언 4집의 존재는 참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증언 1, 2, 3집이 있었기에 구술의 방법론과 인식론적 태도 면에서 ‘연속 속 단절’을 이루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 앞 증언집이 피해 사실을 중심으로 편집 발간되면서 드러난 한계들이 분명해졌고, 2000년 국제여성전범법정의 경험, 새로운 구술사 연구 방법이 여러 분과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던 배경 등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증언자는 단순정보제공자가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범주로 끌고 가는 사람이므로 면접의 주도권을 증언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 증언을 들으려는 연구자는 반(semi)구조화된 질문지를 면접의 나침반으로 삼고 증언자의 말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 질문하라는 팁, ‘위안부’ 피해 생존 증언자를 고정된 피해자상에 가두지 말고 ‘위안부’ 경험뿐 아니라 전 생애(삶)에서 개성과 주체성을 조감해가며 피해 증언자의 ‘관계‘(가족, 친지, 공동체)에 주목하라는 당부, 피해 사실의 증거를 실증주의적으로 찾지 말고 상처 받고 분절된 타자들의 자기 서사지만 섬세하고 명료한 피해 증언자의 기억 지도가 있으니 그것을 상상하고 구술 작업에 대해 공동 연구의 방법을 고민하라는 제안은 지금까지도 유효하고 소중한 선행 논의들입니다. 2001년 후 증언 4집 연구팀 성원들이 논문과 책으로 쌓아나간 결과물들은 ‘위안부’ 피해 생존자 증언의 구술 방법론의 한 축을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만으로도 토론할 게 많은데, 오늘 김수아와 최기자 선생님의 발표, 그리고 최정무 선생님의 발표는 이런 방법론 위에 편집된 <증언 4집>의 번역 방법론과 프로세스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양현아 선생님의 ‘trans-pacific translation‘이라는 용어가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세 발표를 들으면서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서울대팀과 UCI팀이 넘나들었던 공동 번역 작업의 과정에서 겪었을 노고들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지난 6월 6-7일 UCI의 워크샵에 발표자로 참가했기 때문에 이 과정을 나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다시 발표문으로 보니 공동 연구로서 번역 작업 과정과 절차 속에서 두 연구팀이 서로 고민하고 논쟁했던 방법론과 인식론 상의 쟁점들이 절실하게 제 고민으로 다가옵니다. 최정무 선생님이 “번역시 고려 사항”에서 구체적으로 정리한 내용들, 김수아 선생님 등이 구체적으로 다룬 증언 번역 작업에서의 쟁점들을 다시 제가 요약하지는 않겠습니다. 한국어(방언들)와 영어의 언어적 특성, 구술성과 수행성, 번역과 주체성, 구술 텍스트성 등의 주제와 관련된 ’열린‘ 논쟁과 정리들은 향후 증언의 번역 작업과 연구에 큰 힘을 실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3. 마지막으로, 일본군 ‘위안부’ 연구소가 발주한 증언 4집 영문 번역 프로젝트를 위해 서울대 팀과 UCI 팀이 일종의 “문화 번역” 공동 작업과 연구를 위한 모델을 만들고, 프로젝트 최종 산출물인 번역 텍스트를 토대로 두 팀의 연구자들의 첫 단계 연구가 서울시가 후원하는 오늘의 국제컨퍼런스로 공유되는 이 상황에 대해서 저는 큰 기대를 갖고 지켜보게 됩니다. 중앙/지방정부, 공공기관, 대학 등이 지원하는 공공재원을 바탕으로, 독립성을 확보하고 이루어지는 연구소/연구팀의 공동 작업과 연구는 단지 증언/구술 텍스트 자료의 생산과 증언 번역집 출간으로 그치지 않고, 소리/영상 형식의 구술 자료들과 매칭해 아카이빙이 이루어지는 작업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궁극적으로는 다른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증언/구술 자료들을 (높은 수준/낮은 수준으로) 네트워킹하는 ‘위안부’ 관련 (디지털) 구술 아카이브 플랫폼의 구축으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홀로코스트기념관의 아카이브 구축과 활용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는 단지 자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결과에 그치지 않고, 전시와 교육 컨텐츠의 재생산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주지하듯이, 미국과 독일의 ‘홀로코스트 전시’와 ‘홀로코스트 교육’에서 주목되는 건 바로 사람입니다. 피해자입니다. 피해자의 가족, 친지가 연결되고, 공동체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피해자의 이야기는 텍스트/소리/영상으로 재현됩니다. 피해자와 관련된 유물과 피해의 맥락을 보여주는 문서/사진/영상 자료들이 증언과 만나면서 이야기는 다층적으로 전개됩니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피해자‘들’의 피해에 국한하지 않고 전 생애를 보게 되면서 그 이야기들은 더욱 풍부해집니다. 그런 지층들을 탐사하듯 따라가다 보면, 폭력을 어떻게 대면하고 응답해야 하는지에 대한 책임을 감각하게 됩니다. 그 감각이 평화에 뼈대와 살점을 붙이고 신경들을 구성하게 합니다. 1세션에서 곽귀병, 김소라 선생님의 발표도 그런 고민과 공동 작업 및 연구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라 생각합니다. 서울대 팀과 UCI 팀의 작업도 최정무 선생님의 구상처럼 그런 길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강성현
21 Jun 2020 · Public · …맞는 주장이 있다. ‘몇년 전 박유하 씨가 집중공격당할 때 그것을 도운 정의연과 윤미향이 이제와서 무슨 자격으로 괴롭다며 반발하냐’는 것이다. 일단, 당시에 박유하 씨에게 쏟아진 비판을 지금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에 대한 공격과 단순비교하는 것은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당시에 박유하 씨는 2차가해성 표현들을 담은 책과 주장 때문에 ‘위안부’ 피해당사자들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했다. 그러면서 일부 누리꾼들에게 과도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처럼 수많은 의혹이 쏟아지면서 전사회적 마녀사냥과 조리돌림의 표적이 됐다고 볼 수는 없다. 당시의 수구보수언론들은 박유하 씨를 비난하는 편이 당연히 아니었고, 개혁언론들도 대체로 양쪽의 주장을 다 소개하며 논란으로 접근하는 스탠스였다. 무슨 괴상한 시민단체가 박유하 씨를 고소하고 검찰이 대대적 압수수색에 돌입하고, 기성정당들이 한목소리로 사퇴를 촉구하면서 인생전체와 존재 자체가 탈탈 털리고 부정당하는 그런 일은 없었다. 문제가 된 것은 단지 책과 주장뿐이었고, 박유하 씨의 주장은 당시 수구보수언론이나 박근혜 정부의 입장에서도 동조하고 이용하고 싶은 편에 가까웠다. 물론 피해자들의 고소를 검찰이 기각하지 않아서 기소가 이뤄졌다. 그리고 성범죄 피해자들이 2차가해에 법적소송으로 대응하는 것은 단순하게 잘못이라고 탓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럼에도 당시에 이용수 님을 포함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박유하 씨를 고소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본다. 정의연은 그 고소에 관여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고소를 지지하는 입장도 아니었다고 한다. 고소를 주도한 것은 정의연이 아니라 요즘 내부고발로 문제가 드러난 '나눔의 집'이다. 실제로 박유하 씨에게 매우 비판적인 지식인들(윤정옥, 양현아, 이나영, 강성현, 박노자 등)도 당시에 고소는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발표했었다. 2차가해적 표현에 대한 피해자들의 분노에 공감하면서도 학문적 비판보다 엉뚱한 쟁점으로 번지는(실제로 그렇게 됐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당시에 고소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박유하 씨를 비판하는 글을 따로 쓰지는 않았고, 비판하는 글을 쓰는 동지에게 표현을 좀 완화하자고 제안했던 것도 기억난다. 이미 많은 비판들이 있는데 굳이 덧붙이고 싶지 않았고, 비판을 넘어서 막말과 여혐적 욕설까지 담은 댓글들은 심해 보였기 때문이다. 분명 그런 악성댓글들은 박유하 씨에게 상처가 됐을 것이고, 그 심정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 경험이 공감과 역지사지가 아니라 ‘너희도 한번 더 크게 당해봐라’로 나온다면 기막힐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앞서 말했듯, 지금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은 당시 박유하 씨처럼 정제된 학문적 비판 속에 일부 악성댓글을 겪고 있는 게 아니다. 거의 전 언론이 합심해 온갖 무책임한 의혹들을 쏟아내며 파렴치한 사기꾼 집단으로 낙인찍고 있다. 상식적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방을 비판하다가도 일단 멈추고 다음 기회를 보는 게 맞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숨이 넘어가는 사람의 머리를 물 속으로 지그시 눌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박유하 씨는 최근 몇몇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 반대 태도를 취하며 ‘옳다구나’하듯이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에 대한 공격에 가담하고 있다. 씁쓸한 태도가 아닐 수 없는데 그 주장조차 매우 모순적이다. 지금은 박유하 씨가 더욱 분명하게 이 사회 강자와 다수파의 편에서 더 큰 마이크를 잡고 있으니 부담없이 비판하고자 한다. 먼저 박유하 씨는 정의연이 콩고의 피해자들과 연대해 온 것도 비판했다. “'내전 성폭력'과 '위안부'를 같은 것처럼 이해하도록” 했기에 “어떻게 보면 '기만'”이라는 것이다. 정의연이 ‘민족주의’라고 비판해 오더니, 국제적 연대를 한 것은 또 ‘기만’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여기서 박유하 씨는 ‘위안부’를 전시 성폭력의 하나로 보지 않는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또 박유하 씨는 “일본도 잘못을 인정하고 완벽하지 못했을지 모르나 두 번에 걸쳐 사죄하고 보상했다”고 말한다. 진정성이 없어서 피해자들 스스로가 거부한 사과를 ‘두번이나 한 사죄’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처럼 성폭력 피해당사자가 인정하고 받아들인 적이 없는 사과를 계속 ‘이미 사과했다’고 우기는 가해자들을 많이 봐왔고, 그것이 얼마나 피해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지도 봐 왔다. 이같은 박유하 씨의 주장은 ‘정의연과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기존 입장과 연결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정말 침묵을 강요당해 온 것은 일본의 전시 성범죄를 고발하고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목소리였다. 위안소가 국가의 제도적 강간이자 전쟁 무기였다는 고발이다. 그 목소리는 피해자들의 용기와 연대자들의 투쟁 끝에 반세기 넘게 강요당했던 침묵을 뚫고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입을 다물 것을 강요받고 있다. 반면, ‘강제로 끌려간 소녀는 없었고 대부분 자발적으로 돈벌러간 성매매 여성이었다’는, ‘일본은 이미 사과와 보상을 했고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이제는 한일간 화해로 가자’는 목소리들은 침묵을 강요당했다고 보기 어렵다. 떳떳하지 못하거나, 설득력이 없어서 스스로가 위축됐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한국사회의 주류세력에게는 항상 그들의 내심을 반영하는 환영할만한 목소리였다. 따라서 “현재 한일관계 악화 배경에는 위안부 문제가 있다”는 박유하 씨는 과연 누구의 관점에서 어떤 목소리를 삭제하고 어떤 목소리를 복권하려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한미일 동맹과 한일화해의 관점은 보이지만 피해자의 관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 만약 베트남에서 어느 학자가 ‘베트남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과 전시 성폭력에 대해 한국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면 그게 피해자의 관점이겠는가. 덧붙여, 요즘 정의연 마녀사냥에 동조하는 '노동자연대' 동지들에게도 한마디하고 싶다. '노동자연대'는 거의 특집 수준으로 정의연 비판글과 동영상 강연까지 계속 쏟아내고 있는데, 그 근거는 대부분 수구언론들이 제기하는 의혹들을 기정사실화하는데 바탕하고 있다. 정의연 활동가들의 연봉 수준을 거론하더니, 심지어 고 손영미 소장님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고 검찰을 변호하는 주장까지 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아가, 정의연만이 아니라 고 노회찬 의원도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아니라 부정이 문제였다고 우긴다. 이것이 과연 반자본주의 급진좌파가 취할 태도란 말인가? 90년대, 정치적 차이점을 뛰어넘어 누구보다 앞장서 한총련 마녀사냥에 반대하던 모습으로 나에게 커다란 매력을 줬던 극좌파 조직이 왜 이렇게 급변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재정과 회계의 철저하고 투명한 보고와 공개를 말하며 정의연을 비난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그런 잣대를 적용해 보면 어떨지 의문이 들지도 않는가. #힘내라정의연
전지윤's post
요즘 정의연에 대한 마녀사냥과 조리돌림에 숟가락을 얹고, 쏟아지는 돌더미 속에 작은돌 하나라도 같이 던지려는 비겁한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특히 부당하고 사실과도 안 맞는 주장이 있다. ‘몇년 전 박유하 씨가 집중공격당할 때 그것을 도운 정의연과 윤미향이 이제와서 무슨 자격으로 괴롭다며 반발하냐’는 것이다. 일단, 당시에 박유하 씨에게 쏟아진 비판을 지금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에 대한 공격과 단순비교하는 것은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당시에 박유하 씨는 2차가해성 표현들을 담은 책과 주장 때문에 ‘위안부’ 피해당사자들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했다. 그러면서 일부 누리꾼들에게 과도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처럼 수많은 의혹이 쏟아지면서 전사회적 마녀사냥과 조리돌림의 표적이 됐다고 볼 수는 없다. 당시의 수구보수언론들은 박유하 씨를 비난하는 편이 당연히 아니었고, 개혁언론들도 대체로 양쪽의 주장을 다 소개하며 논란으로 접근하는 스탠스였다. 무슨 괴상한 시민단체가 박유하 씨를 고소하고 검찰이 대대적 압수수색에 돌입하고, 기성정당들이 한목소리로 사퇴를 촉구하면서 인생전체와 존재 자체가 탈탈 털리고 부정당하는 그런 일은 없었다. 문제가 된 것은 단지 책과 주장뿐이었고, 박유하 씨의 주장은 당시 수구보수언론이나 박근혜 정부의 입장에서도 동조하고 이용하고 싶은 편에 가까웠다. 물론 피해자들의 고소를 검찰이 기각하지 않아서 기소가 이뤄졌다. 그리고 성범죄 피해자들이 2차가해에 법적소송으로 대응하는 것은 단순하게 잘못이라고 탓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럼에도 당시에 이용수 님을 포함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박유하 씨를 고소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본다. 정의연은 그 고소에 관여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고소를 지지하는 입장도 아니었다고 한다. 고소를 주도한 것은 정의연이 아니라 요즘 내부고발로 문제가 드러난 '나눔의 집'이다. 실제로 박유하 씨에게 매우 비판적인 지식인들(윤정옥, 양현아, 이나영, 강성현, 박노자 등)도 당시에 고소는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발표했었다. 2차가해적 표현에 대한 피해자들의 분노에 공감하면서도 학문적 비판보다 엉뚱한 쟁점으로 번지는(실제로 그렇게 됐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당시에 고소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박유하 씨를 비판하는 글을 따로 쓰지는 않았고, 비판하는 글을 쓰는 동지에게 표현을 좀 완화하자고 제안했던 것도 기억난다. 이미 많은 비판들이 있는데 굳이 덧붙이고 싶지 않았고, 비판을 넘어서 막말과 여혐적 욕설까지 담은 댓글들은 심해 보였기 때문이다. 분명 그런 악성댓글들은 박유하 씨에게 상처가 됐을 것이고, 그 심정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 경험이 공감과 역지사지가 아니라 ‘너희도 한번 더 크게 당해봐라’로 나온다면 기막힐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앞서 말했듯, 지금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은 당시 박유하 씨처럼 정제된 학문적 비판 속에 일부 악성댓글을 겪고 있는 게 아니다. 거의 전 언론이 합심해 온갖 무책임한 의혹들을 쏟아내며 파렴치한 사기꾼 집단으로 낙인찍고 있다. 상식적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방을 비판하다가도 일단 멈추고 다음 기회를 보는 게 맞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숨이 넘어가는 사람의 머리를 물 속으로 지그시 눌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박유하 씨는 최근 몇몇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 반대 태도를 취하며 ‘옳다구나’하듯이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에 대한 공격에 가담하고 있다. 씁쓸한 태도가 아닐 수 없는데 그 주장조차 매우 모순적이다. 지금은 박유하 씨가 더욱 분명하게 이 사회 강자와 다수파의 편에서 더 큰 마이크를 잡고 있으니 부담없이 비판하고자 한다. 먼저 박유하 씨는 정의연이 콩고의 피해자들과 연대해 온 것도 비판했다. “'내전 성폭력'과 '위안부'를 같은 것처럼 이해하도록” 했기에 “어떻게 보면 '기만'”이라는 것이다. 정의연이 ‘민족주의’라고 비판해 오더니, 국제적 연대를 한 것은 또 ‘기만’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여기서 박유하 씨는 ‘위안부’를 전시 성폭력의 하나로 보지 않는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또 박유하 씨는 “일본도 잘못을 인정하고 완벽하지 못했을지 모르나 두 번에 걸쳐 사죄하고 보상했다”고 말한다. 진정성이 없어서 피해자들 스스로가 거부한 사과를 ‘두번이나 한 사죄’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처럼 성폭력 피해당사자가 인정하고 받아들인 적이 없는 사과를 계속 ‘이미 사과했다’고 우기는 가해자들을 많이 봐왔고, 그것이 얼마나 피해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지도 봐 왔다. 이같은 박유하 씨의 주장은 ‘정의연과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기존 입장과 연결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정말 침묵을 강요당해 온 것은 일본의 전시 성범죄를 고발하고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목소리였다. 위안소가 국가의 제도적 강간이자 전쟁 무기였다는 고발이다. 그 목소리는 피해자들의 용기와 연대자들의 투쟁 끝에 반세기 넘게 강요당했던 침묵을 뚫고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입을 다물 것을 강요받고 있다. 반면, ‘강제로 끌려간 소녀는 없었고 대부분 자발적으로 돈벌러간 성매매 여성이었다’는, ‘일본은 이미 사과와 보상을 했고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이제는 한일간 화해로 가자’는 목소리들은 침묵을 강요당했다고 보기 어렵다. 떳떳하지 못하거나, 설득력이 없어서 스스로가 위축됐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한국사회의 주류세력에게는 항상 그들의 내심을 반영하는 환영할만한 목소리였다. 따라서 “현재 한일관계 악화 배경에는 위안부 문제가 있다”는 박유하 씨는 과연 누구의 관점에서 어떤 목소리를 삭제하고 어떤 목소리를 복권하려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한미일 동맹과 한일화해의 관점은 보이지만 피해자의 관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 만약 베트남에서 어느 학자가 ‘베트남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과 전시 성폭력에 대해 한국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면 그게 피해자의 관점이겠는가. 덧붙여, 요즘 정의연 마녀사냥에 동조하는 '노동자연대' 동지들에게도 한마디하고 싶다. '노동자연대'는 거의 특집 수준으로 정의연 비판글과 동영상 강연까지 계속 쏟아내고 있는데, 그 근거는 대부분 수구언론들이 제기하는 의혹들을 기정사실화하는데 바탕하고 있다. 정의연 활동가들의 연봉 수준을 거론하더니, 심지어 고 손영미 소장님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고 검찰을 변호하는 주장까지 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아가, 정의연만이 아니라 고 노회찬 의원도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아니라 부정이 문제였다고 우긴다. 이것이 과연 반자본주의 급진좌파가 취할 태도란 말인가? 90년대, 정치적 차이점을 뛰어넘어 누구보다 앞장서 한총련 마녀사냥에 반대하던 모습으로 나에게 커다란 매력을 줬던 극좌파 조직이 왜 이렇게 급변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재정과 회계의 철저하고 투명한 보고와 공개를 말하며 정의연을 비난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그런 잣대를 적용해 보면 어떨지 의문이 들지도 않는가. #힘내라정의연
강성현
4 Mar 2019 · Public · …말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유하 세종대 교수도 ”빨갱이(일본어는 아카)라는 말은 조선인이 아니라 자국인인 일본인을 탄압하며 생긴 말”이라며 “일본은 1910년 천왕암살 음모를 꾀했다며 일본의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들을 탄압했다. 사회주의ㆍ공산주의자들이 아카(빨갱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그런 과정에서의 일”이라며 “(조선에서의 ‘빨갱이’ 탄압도) 그것은 ‘조선인’을 겨냥한 것이기 이전에 ‘공산주의자’를 겨냥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한다. 좀 어이 없다. 박유하 교수는 일본 말고 식민지 조선의 사상통제는 보이지 않나 보다. 조선인이 아닌 공산주의자를 겨냥했다는 말에는 조선은 안보겠어라는 의지마저 느껴진다. 그랬다. 일제 때 “아카”라는 말이 있었다. 빨갱이도 이 단어에서 유래했다. 둘 다 사람의 속성을 ‘빨강’(赤)이라는 색깔로 지시한다. 이 색깔은 ‘주의자’(主義者), 더 좁게는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가리키지만, 그것에 한정되지 않고 의미가 완전히 열린 채 부정적 낙인으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똑같다. 일제 때 조선독립을 추구하는 사상은 그게 공산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민족주의, 심지어 자유주의, 또는 종교적 신념 그 무엇이든 과격위험사상이었다. 독립운동가와 도움을 주었던 모든 이는 어떤 사상을 갖고 있든 상관없이 사상범이었다. 덮어놓고 고문했고 “투옥”시켰다. 1935년 이후에는 질적으로 아카와 사상범의 용법에 변화가 생겼다. 한 사상검사는 “공산주의자가 합법적으로 대중을 빨아들이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주의는 공산주의의 온상”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1935∼36년이 지나면서 ‘아카’(赤)라는 적(敵)이 만들어졌다. 과거 용법과 달리 ‘주의자’에 강조점이 있지 않고, 이들이 합법 영역으로 “침투하고 섞여버려 구별할 수 없다”는 인식이 투영되었다. ‘아카’는 더 이상 정의될 수 있는 용어라기보다 부정적인 낙인의 정치가 되었다.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뿐 아니라 반전주의자, 평화주의자, 자유주의자 등도 ‘아카’의 낙인을 피하지 못했다. 6. 해방 전 특히 아시아태평양 전쟁기 ‘아카’와 1948년 ‘빨갱이’ 용법에서 유사점과 차이점이 무엇일까? 아니 다시 질문하면 그 둘 간에 연속과 단절은 무엇일까? 포섭을 거부하는 아카(비전향자)는 예방구금을 통해 격리시키는 방식으로 배제했다.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이들에 대해 ‘배제’와 ‘박멸’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것이 실제 아카로 낙인된 조선인 비전향자들을 죽음으로 동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조선이 전장화될 것에 대비한 학살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45년 4월 초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일선 경찰서에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 ‘요시찰인’(要視察人)을 예비검속하고 “적당한 방법으로 처치”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는 미수로 그쳤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유예되었을 뿐이다. ‘제주 4·3사건’ 이후 “제주도에 거주하는 사람은 전부 빨갱이”로 몰렸다. ‘여순사건’ 직후에는 빨갱이가 “잔인무도하고 천인공노할 귀축, 짐승, 마귀”로 비인간화·악마화되었고, ‘손가락총’으로 낙인되면 학살되었다. 지역(민) 자체가 죽여도 되고, 죽여야만 하는 빨갱이로 호명되었고, 이는 ‘반공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의 구심력으로 작동했다. 절멸해야 할 절대적 적을 호명하는 빨갱이 증오정치는 한국전쟁 때 절정에 달했다. ‘보도연맹 사건’은 그런 맥락에서 발생한 자국민 대량학살 사건이었다. 7. 이와 관련해 한 사례만 짤막하게 얘기하고 싶다. 진화위 조사로 발굴된 한 보도연맹원 명부가 있다. 결과적으로 살생부로 작용했다. 그 명부의 표지는 여러 장으로 합쳐져 있었다. 다 분리해 보니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알고 보니 보도연맹원 명부는 그 지역의 식민지 시절 요시찰인 명부이기도 했다. 명부 표지의 시간성을 분석해보니 식민지 시절부터 시작되어 해방후, 정부수립, 한국전쟁, 그 이후까지 말그대로 지층들이 되어 하나의 표지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의 시각에서도 그렇다. 유족이 떠올리는 피해자의 삶의 이야기, 시간성은 학살 시점 전후가 아니라 식민 시절 때 피해자의 역할과 활동에서 출발할 때가 많다. 8. 대통령의 말은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색을 말하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 완전히 그 누구로부터 인정되는 사실, 진실만을 대통령이 말해야 권위가 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런가? 대통령의 입에서 가짜뉴스가 나와서는 안된다는 점에는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이번 기념사의 내용이 그런건가? 이미 한국근현대사에서도 논의가 상당히 진행되어 정립되어가는 내용들이다. 사실의 논리적 구성과 뉘앙스의 차이는 논해볼 수 있겠다. 대통령의 말은 정치이자 통치 행위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말은 정부와 집권여당에게 정치와 정책 방향을 설정해준다. 이에 대한 민주적 토론들이 벌어질 수 있고 갈등적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그걸 정치와 통치의 차원에서 수렴해가는 힘이 작동할 것이다. 구심력일 수도 있고, 원심력일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다루어지는 역사적 사실 중 아주 오랫동안 금기시되어왔던 빨갱이로 몰려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 족보를 “작정하고” 끄집어냈다. “친일 반성, 독립운동 예우, 정의로운 공정한 나라”세우기 라는 맥락에서 친일잔재를 청산하고 지금도 계속되는 빨갱이 죽이자 혐오/증오 타령을 그만하자는 호소였다. 그런 의도하에 새로운 100년을 구상하며 종전과 항구적 평화를 위한 신한반도체제를 선언했다. 엄청 추상적이긴 하지만 기미독립선언서에서 펼쳐지는 한반도 및 아시아의 평화론에 기댄 것이다. 이걸 위협하고 있는게 무엇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9. 2008년 이후 9년 내내 대대적인 ‘종북몰이’가 계속되었음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신종 빨갱이 증오정치가 유령처럼 활개쳤다. 여기저기 빨갱이 감별사들도 등장했다. “자나 깨나 나라 걱정만 하는 애국자” 고영주는 그 중에서도 최고였다. 친북 반국가행위 인명사전도 편찬했고, 전교조도 ‘이적단체’로 몰았으며, 통합진보당 해산에도 큰 공을 세웠다. 백미는 감별 주특기를 잘 살려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공산주의자로 몰이한 것이었다. 2017년 초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이 타오르던 광화문광장 저편에서 ‘태극기집회’가 연이어 열리고,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선동과 집단폭력이 발생했다. 짧게는 9년 동안, 길게는 반세기 작동한 빨갱이 증오정치의 결과가, 퇴적된 지층들이 마치 단층작용처럼 튀어나온 것이다. 대한민국의 겨울을 환하게 밝힌 촛불은 빨갱이 증오정치의 적폐를 청산할 수 있을까? 난 이 질문을 2017년 여름에 하면서 “빨갱이 증오정치의 청산은 언제쯤”이란 글을 경향에 투고했다. 지금이 그 때보다 어떤 면에선 더 암울하다. 광화문에 저 태극기부대 뿐 아니라 공당인 자한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태들을 보라! 공안정치와 적폐의 상징인 황교안이 제1야당의 대표가 되어 다음 총선의 공천권을 쥐었다. 김진태와 극우 백래쉬 경쟁을 하는 것을 이미 목도했다. 당선된 최고위원들의 면면은 어떤가? 얼핏 보면 광주 5.18마저 부정하는 자들이 판치고 있다. 10. 난 100주년 3.1절 기념사가 작전상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의도한 것이라 판단한다. 작년 3.1절, 제주4.3, 광주5.18, 광복절 등 여러 대통령 기념사와 비교해보아도 후퇴로 보인다. 현재화된 과거사의 내용이 바뀔리는 없으니 기념사가 놓인 국내외 정치, 외교,안보 환경이 달라서일거다. 단적으로 이번 2차 북미회담의 결과가 기념사 톤과 초점의 수정에 영향을 주었을 거라 추정한다. 그러나 난 나중의 이보 전진을 확신할 수 없기에 당장의 일보 후퇴한 이 기념사가 다소 아쉬울 따름이다. * 강성현, 2013, “아카(アカ)와 "빨갱이"의 탄생 -"적(赤-敵) 만들기"와 "비국민"의 계보학”, 한국사회사학회, <사회와 역사> 100호. * 강성현, “빨갱이 증오정치의 적폐청산은 언제쯤”, <주간경향> 2017.8.9
강성현
4 Sep 2019 · Public · …일본의 하타 이쿠히코였다.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정도를 제외하면, 이영훈이 자신의 책에서 참고문헌으로 밝힌 2차 연구서는 대부분 그가 거짓말이라고 판정내리는 연구물들이었다. 그에겐 한국에선 정진성, 박정애 등이, 일본에선 요시미 요시아키, 송연옥, 김부자, 김영 등이 거짓말 학자들이다. 이영훈이 하타 이쿠히코를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는 하야시 히로후미나 나가이 카즈 선생님을 언급하지 않는 건 여러 생각이 들게 한다. 우선 이영훈에게 두 분은 비판해 넘어서기 어려운 상대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야시 선생은 미국과 영국 자료까지 능숙하게 폭과 깊이를 확보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해왔고, 나가이 카즈 선생은 일본 자료를 발굴하고 역사적 방법에 입각해 꼼꼼히 해석하는데 일가견이 있다. 설마 이런 분들을 이영훈이 듣보잡 취급한 건 아닐거라 믿는다. 그렇다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2000년대 이후 진행된 성과들에 대한 공부가 전혀 안된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1999년 하타의 <위안부와 전장의 성>의 내용과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영훈의 글들을 보면, 그런 것 같다. 2. 이영훈이 하타보다 공부(?)를 한 부분이 더 있다면, 일본의 ‘내지(본토) 공창제’가 이식된 식민지 조선의 공창제(대좌부창기취체규칙 등으로 제도화된)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왕조의 기생제를 계보적으로 연결했다는 점이다. 이영훈 주장의 내용을 살피기 전에 그 의도가 너무 뻔해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오수창 교수가 한겨레신문에 기고를 해가며 점잖게 비판하셨다. 더 언급하지 않겠다. “기생이 위안부 원류? 이영훈 전 교수는 춘향전을 거꾸로 읽었다”(한겨레 신문, 2019.8.24) 공창제의 성립과 시행과 관련해서 이영훈은 일본 공창제에서 더 나아가 식민지 조선의 공창제를 대상으로 삼는다. 그는 “조선풍의 공창제”란 표현까지 쓴다. 그는 공창제의 법적 근거인 “대좌부창기취체규칙”을 잠깐 살펴보고 창기, 예기, 작부 통계 수치를 간단히 시계열적으로 제시하면서 조선의 공창제가 예기를 매개로 전통 기생업에서 일본식 공창제로, 더 나아가 조선도 1930년대가 되면 “대중 매춘사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세세하게 비판할 대목이 많은데 여기선 넘어가겠다. 다만 이영훈은 이보다 이 조선풍 공창제로 흘러들어온 여성, 사실은 그 배후의 “호주제 가족”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할애하고 있다. 이영훈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런 거다. 공창제는 합법이고, 성매매업은 일종의 노동시장이며, 주선업(자)는 모집한 여성을 지역 내, 지역 간, 국경 밖 외국으로까지 “송출”하였다. 이 때 여성이 창기로 취업하려면 보호자의 취업승낙서가 필요했는데, 아버지, 어머니, 오빠나 다른 친족이 “호주”의 자격으로 했고, 이를 증명하는 호적등본과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아 관할 경찰서장으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그렇게 “호주권력”의 책임 아래에 “딸은 울면서 주선업자 손에 끌려갔다. 이것이 공창제를 둘러싼 이른바 인신매매의 실태다.” 그러면서 이영훈은 조선시대에는 그런 류의 인신매매는 없었다고 첨언한다. “아버지가 딸을 주선업자에게 창기나 예기로 넘기는 것은 단순히 빈곤에 쫓겨서만은 아니었습니다. 가족을 양육하고 보호할 가부장의 의무가 빈곤 계층의 가정윤리로 성숙해 있지 않은 까닭이기도 했습니다.” 이쯤 되면 이영훈의 의도가 분명하지 않은가? 이승만 TV를 봐서인지 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기분나쁘게 들린다. ‘위안부’ 제도도 공창제입니다. ‘위안부’도 이렇게 합법적으로 모집되었는데, 여기서 문제를 따진다면, 여성의 아버지 등 호주의 문제입니다. (이건 이영훈 인용이 아니라 내가 빙의해서~) 군 ‘위안부’ 제도를 기획 설립하고 운영하는데 직접적으로 관여한 일본 군과 정부는 온데 간데 없고, 모든 책임은 식민지 조선의 여성을 “방매”한 아버지 호주에게 전적으로 돌려진다. 게다가 이영훈은 매일신보에 난 김초향이라는 기생의 사연을 소개하며, 딸이 공부하고 싶어 몰래 학교에 간 걸 아버지가 끌어내 죽어라고 두들겨 패고 학대한 것이 가부장이었다며, 결국 그 소녀는 공부도 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게 해준다는 사람의 꾐에 빠져 가출을 감행했는데, 이 길로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다고 소개한다. 이 사연은 여러 정보를 담고 있고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데, 이영훈은 아주 단순하게 이렇게 정리한다. “무지막지한 가부장의 폭력이 신여성으로서 자아실현을 꿈꾼 한 소녀를 위안부로 내몬 원인이었습니다.” 이런 수준의 자료 선별과 일방의 비틀린 해석, 왜곡에 가까운 단순한 주장을 보고 있다보면, 왜!!! 내가 자료들을 찾아서 전체를 보여주고 다른 분명한 자료도 읽어주고 친절하게 논리적으로 해석해서 여러 풍부한 함의를 담은 논의를 정리해줘야 할까 깊은 회의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3. 이영훈은 “일본군 위안부제는 민간의 공창제가 군사적으로 동원되고 편성된 것”이라 주장한다. 일본군 위안부제도를 전쟁/점령 지역의 확대된 공창제도/시설로 바라보는 하타의 시각에 절대적으로 영향 받았다고 판단한다. 하타의 주장은 학자연 하는 역사수정주의/부정론 입장의 우익 연구자 및 저널리스트에게 전시 위안소가 “확대된 공창제이고 합법”이라는 무기를 심어준 자다. 그러니까 그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공창제의 시각에서 보는 이유는 역사적 사실이 그러하다는 주장 이면에 이것이 “합법”이었고 “과연 성노예였나”를 주장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그는 강제연행에 대해서도 노예사냥을 당한 것이 아니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걸 입증한답시고 “원 위안부의 증언”도 조작에 취약하다고 강조하면서 역사학자들은 그걸 자료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용감무식한 발언까지 한다. (이쯤되면 실증주의 역사학이 이영훈한테서 질색하고 도망가겠다.) 이영훈이 비판하는 일본군 ‘위안부’ 연구자들도 일본 (내지) 공창제와 식민지 (조선과 대만의) 공창제의 유형, 구조, 역사를 연구한다. 제도의 공시성, 통시성, 연속 속 단절(또는 단절 속 연속)을 비교역사적인 시야에서, 또는 비교사회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한다. 이영훈은 모든 ‘위안부’ 연구자들이 군 ‘위안부’ 제도를 공창제와 절대 비교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위안부’ 연구자들이 ‘위안부’를 순결, 소녀, 민족주의로 진공 포장하고 마치 공창의 창기, 예기, 작부, 여급을 차별하는 것처럼 왜곡되게 주장하려는 듯하다. 세간에 그런 인식이 전혀 없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영훈이 이름을 호명한, 또는 본인의 참고문헌에 올려놓은 연구자들은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이영훈이 짧게 언급하면서 비판한 송연옥 교수의 논의도 개괄적으로나마 살펴보자. 송연옥은 공창제와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연결해서 분석하는 대표적인 연구자 중 한 명이다. 송연옥에 따르면 공창제도 다 똑같지 않다. 연속과 단절이 있다. 당연히 공창제와 ‘위안부’ 제도 사이의 비교도 그런 시각을 견지한다. 다시 말해 내 식대로 표현하면, 일종의 계보적 분석인 것이다. 예컨대 그녀는 일본 공창제와 식민지 공창제의 구조와 특성을 비교하면서 “폐업” 규정의 차이를 주목하고 설명한다. 그녀는 일본 공창제와 달리 식민지 공창제 하의 창기는 자유의지에 따라 폐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이영훈의 반론 방법은 참 단순하다. 자유의지에 따른 폐업 사례가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여성이 업주나 업소로부터 도망친 사례도 자유의지의 폐업으로 확대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반론 방법은 문제가 있다. 구조와 규칙은 여성이 스스로 폐업을 할 수 없게 했더라도, 현실에서는 백프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걸 두고 현실이 그러니까 구조와 규칙은 아무 의미가 없는가? 구조의 구속이나 제약이 작동하지만 행위는 전적으로 구조에 종속되지 않을 때가 있다. 굳이 사회학에서 말하는 구조와 행위의 이중화 이론을 말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이야기와 제도, 장치, 구조를 오가는 방식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연구자라면 다 알 거라고 생각한다. 송연옥이 볼 때, 일본 내지 공창제보다 그것의 식민지적 변형태인 식민지 공창제가, 식민지 공창제의 전시적 변형태인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더 억압적이고 노예적이다. 어떤 제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면, 당연히 의도와 취지에 맞게 참고하는 모델이 있다. 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는 짧게는 중일전쟁, 더 길게는 상해사변(여기까지 주류 연구의 공통된 입장),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서는 러일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는데, 당연히 군과 공창제의 관계가 주목된다. 그래서 이것들을 공창제 계보에 위치시키고 일별할 수 있다. 그러나 하타나 이영훈처럼 그게 다 똑같은 거고, 특히 공창제가 당시 합법이었으니 ‘위안부’ 제도가 합법이고, 따라서 성노예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나가도 한참 나갔다. 특히 이영훈은 ‘위안부’가 하나의 직업적 특성으로 볼 때 업자, 포주, 위안부와의 계약 문제로 환원시켜서 보자고 말한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을 때 또는 일정한 조건을 충족할 때 그녀들은 돌아갈 수 없었습니까”라고 묻는다. 또한 계약에 근거해 있고 자발적이고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성노예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영훈은 노예적 상황을 어떻게 상상하는 걸까? 국제법 상의 노예 용법을 알고 있는 걸까? 좁디 좁은 감옥 같은 장소에 쇠사슬에 묶여 감금당했다고 강제 노동에 동원되고, 채찍으로 맞고, 밥도 잘 못 먹고, 옷도 잘 못 입고, 강제로 관계를 강요 당하고… 꼭 이런 걸 다 충족시켜야 노예적이라고 이해하는 것 같다. 사실 강제연행 또는 강제동원 용법도 마찬가지다. 이영훈이 집중 공격하는 요시다 세이지 증언이나 영화 <귀향> 또는 소설 <아리랑>의 재현처럼 제복을 입은 헌병이나 경찰이 총칼을 차고 저고리를 입은 소녀의 머리채를 붙들어 끌고 가야만 강제연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제법에서 말하는 강제성의 용법을 마치 모르는 것처럼 말한다. 예컨대 그도 ‘취업사기’를 말한다. 그건 강제동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무엇보다 모든 ‘위안부’ 동원이 그런 형태의 강제연행은 분명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례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들이 있다. 이에 대해 이영훈은 기억의 특성을 이유로 들어 증언을 역사 자료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다. 위에서 말했듯 용감무식한 발언이다. 아베 정부가 고노 담화를 검증한다고 나서면서 산케이신문이 전위대로 나서서 증언의 신빙성 검증을 정치적으로 공세할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 #반일종족주의 비판 4회에서는 이영훈이 동원하는 “미군의 심문기록”과 “어느 위안소 조바의 일기”, “문옥주” 사례를 중심으로 비판적으로 검토하려 한다. 미군의 심문기록은 전시정보국(OWI) 버마인도중국 방면 미육군에 배속되었던 ‘레도(Ledo)팀’의 일본계 미군 정보병사 알렉스 요리치가 작성한 보고서다. 일본군 포로 심문 제49호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일본군 ‘위안부’들의 모집, 이동, 위안소 생활, 전쟁 상황, 일본군에 의해 어떻게 버려졌고, 죽었고, 생존자들이 어떻게 포로가 되었는지 비교적 소상하게 정리한 자료라 매우 중요한 문서다. 다만, 요리치가 워싱턴 상부에 선정적으로 읽을 만한 것으로 의도돼 작성된 것이라, 무엇보다 요리치 본인의 선입견이 투영된 보고서라 분석할 때에는 자료의 생산 맥락을 철저히 고려해가며 다른 자료와 교차분석하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이 보고서는 버마 미치나에서 교에이 위안소에 소속되었던 조선인 위안부 20명을 대상으로 심문한 내용을 요리치가 재구성해 쓴 것이다. 그런데 이 위안부들의 업자인 기타무라 부부를 심문한 또다른 보고서가 있다. 인도 델리 소재 동남아번역심문센터(SEATIC)의 번역심문 정보병사들이 작성한 1차 심문 자료다. 요리치 보고서와 비교하면 매우 중요한 대목에서 정반대의 진술들이 있고,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추적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실마리들이 있다. 흥미로운 건 SEATIC 병사들이 요리치 보고서를 그 당시에 검토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 자료들은 영화 또는 소설의 소재가 될만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다음에 소개하기로.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도 마찬가지로 이영훈처럼 자기 주장에 부합하는 것만 뽑아내듯 읽으면 위험하다. 자료가 품고 있는 내용들은 균질적이지 않다. 서로 상충하고 갈등적일 때도 있다. 제일 열받은 것은 문옥주 사례에 대한 왜곡이었다. 이걸 쓰다보면 이 글을 이쯤에서 끝맺을 수 없을 듯하여… 나중에… ------- #반일종족주의_비판_1회 클릭 #반일종족주의_비판_2회 클릭
강성현
2 Jul 2016 · Public · …박유하 선생 쪽도 본인의 후기를 비롯해 어제 박유하 다큐를 찍고 있다던 강의석씨가 4분 30초짜리 영상을 올렸다. 순교자 프레임으로 보기엔 나름 의연한 박유하의 모습이 부각되었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은거다. 나중에 이렇게 후기나 글로 각색하면 되니. 어제 박유하의 말은 학술적 논의가 아니라 선전, 또는 심지어 사상심리전적 요소가 있었다. 수신자는 강연 참석자가 아니다. 나중에 영상으로 편집되어 그 지지자들에게 전달될 말이다. 그리고 내용이 없다고 의아할 필요가 없다. 메시지의 단순 반복이 중요한거다. 그걸 수신하는, 이제는 종교화된 집단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 사이엔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박유하 비판 그룹은 비판의 대상, 정도, 층위와 수준이 조금씩 달랐고 다양했다. 박유하가 해소되면 이후 논의를 거치면서 분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 정영환 선생을 보니 왕년의 연구에 매진했던 시절의 후지이 다케시 선생이 오버랩된다. 사료를 발굴하고, 세심히 들여다보고, 집요하게 확인해 내놓은 분석과 주장. 후지이 선생이 그러했다. 게다가 요즘 쓰는 짧은 칼럼에서도 확인되듯 번뜩이는 감각적 문제제기와 성찰이 묻어나오는 글쓰기가 논문과 책에서도 묻어나오곤 했다. 그래서 "갑"스러운 멘탈에 당당한 아우라가 있는데, 그게 정영환 선생한테도 보인다. 3. 젊은 연구자 말이 나왔으니 30대가 치고 나올 때가 됐다. 정영환 선생은 80년생이며, 국정교과서 반대에 최전선에 섰던 만인만색 연구자들도 30대가 많았다. 고대사 분야에서 사이비과학과 맞서는 연구자들도, 역문연의 "젊은 연구자들"도 30-40대다. 박유하 비판과 해체를 넘어서 새로운 차원의 일본군 '위안부' 연구 및 식민지 전시동원체제에 대한 더 두텁고 층과 결이 다양한 연구, 역사수정주의에 맞서는 사회적 실천과 연구를 위해 "젊은 연구자들"이 나서야 한다. 이미 부글부글 끓고 있고, 분출할 때가 곧 도래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4. 일본의 전후 리버럴의 욕망과 박유하 선생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리버럴의 전향과 뉴라이트의 탄생이 새로운 경향의 역사수정주의 흐름과 맞물리는 시대에 무엇을 놓치지 말고 직시해야 하는지, 어떤 길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간다. <다음편> 없음^^
강성현
19 Jan 2017 · Public · …여가부와 화해치유재단(그 이전에는 박유하 교수)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돈을 받기를 원하는데 지원단체가 이를 반대해 못받게 한다는 주장을 한다. 나눔의 집에 계신 몇 분만 강경할 뿐 할머니와 그 가족들이 보상 받고 이제는 화해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아시아여성기금 때도 일부 그랬지만 지금도 결과적으로 그 돈의 지급, 수령이 이루어졌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설령 지급되었더라도 누가 왜 돈을 수령했는지 그 사정을 조금만 확인해도 기가 막힌 사연들이 펼쳐진다. 이번 녹취록은 그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다. 끌려갔고, 버려졌으며, 우리 앞에 서기까지 50여년이 걸렸다. 김학순 증언 이후에도 '위안부' 피해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적 인식과 말들은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상당히 오래 계속되었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위안부' 피해여성들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건 한일정부, 그리고 박유하 교수 같은 학자만이 아니라 심지어 그 가족의 일부에게까지 있다. 분노가 가슴에 차기 전에 그냥 그렇게 가슴이 아프다. 이 모든 걸 대면해야 하고 응답할 수 있어야 '책임'이라는 말을 할 수 있다. 법적 책임은 없지만 도의적 책임을 지겠으니 보상한다고 하는 것은 이미 책임 있는 행동이 아니다. 한일 정부 뿐 아니라 우리 안에서도 이를 절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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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오디오] 조카가 몰래 받은 위안부 합의금, 김복득 할머니 “우짜긴. 다부(다시) 돌려주야지”
강성현
7 Mar 2020 · Public · …제목이 “제국의 000” 아... 박유하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을 장편소설로 쓴 거구나... 이해가 갔다. 왜 내게도 책을 보냈는지. 몇 장 읽는데 단숨에 나간다. 나 이 사태의 당사자 중 한 명이다. 소설에 한 인물로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지금 읽기가 아까워졌다. 토요일 주말에 오랜만에 나온 연구실이지만, 산적한 행정 처리와 코로나19확산으로 꼬여버린 신학기 준비를 어떻게든 재정리해야 한다. 일을 하면서 중간중간에 이 소설을 읽기가 아까워졌다. 일을 하고 있는데, 궁금해 점점 참기가 여려워진다. 어떻게 하지? 결국 알라딘에 들어가 책 소개를 찾아본다. 방금 나온 뜨끈한 신간이다. 출판사 책소개도 읽는다. ———- “박금산의 8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여성의 언어를 배워가는 남자 이야기” 박금산이 8년 만에 장편소설 <남자는 놀라거나 무서워한다>를 출간했다. 이 소설은 한 마디로 말해 남자가 페미니즘의 세계를 대면하면서 부닥치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소설이다. 소설은 주인공 박 교수가 <제국의 ○○○>라는 책이 사법적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저자의 페이스북의 포스팅에 ‘좋아요’를 누르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책을 둘러싼 논쟁을 살피다 보니 왜 그 책이 형사소송에까지 가게 되었는지 호기심이 생긴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저자가 부드러운 평화주의자와 온건한 페미니스트로 보였는데 막상 독서를 하게 되니 내용에 동의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박 교수는 ‘좋아요’를 누른 것을 후회하며 진지하게 위안부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다. 그 과정에 자신이 대학에서 가르친 제자 혜린이에게 책에서 읽은 개념들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본격적인 사건이 전개된다. 박 교수는 이미 졸업은 했지만 제자인 혜린에게 편하게 질문을 꺼내며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하지만 혜린은 박 교수의 말에서 강한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그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갈등은 증폭되고 박 교수는 교수사회에서조차 궁지에 몰린다. 박 교수는 혜린에게 사과를 하지만 사과조차도 여전히 혜린이를 힘들게 만들기까지 한다. 박 교수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하나하나 점검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언어(言語)에서 오는 문제로 파악하게 된다. <제국의 ○○○>에서도 자신과 혜린이 사이에서도 언어가 서로를 아프게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누구나 자신만의 언어의 영토를 가지고 있는데 무단으로 그 영토에 침입하여 무의식적으로 유린하게 된다는 점을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박 교수는 이렇게 외친다. “그래 알았어!”라고. 이제는 혜린이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본 것이다. 그러면서 페미니즘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떠난 혜린이를 기다리기로 하며 대단원에 이른다. 대강의 줄거리에서 보듯 소설 속의 주인공인 박 교수는 페미니즘 관점이 기껏해야 여성의 몸을 훑지 않고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쩔쩔매는 데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수준인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남성주의적 인물이다. 그가 페미니즘의 세계와 본격 대면하면서 좌충우돌을 겪으며, 혜린이의 ‘눈을 똑바로 맞추고 당신을 존중합니다,라는 뜻을 보내야 한다’는 말에 크게 깨닫고, 여성의 언어를, 그 언어의 영토성을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긍정적인 인물로 변화해 나간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남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번 쯤 일독을 권할 만한 소설이다. ———- 박금산 선생님. 저랑 페친이었네요. 친구 검색하고 깜짝 놀랐어요~^^ 소설 잘 읽을께요. 감사합니다.
강성현
12 Sep 2019 · Public · …수 있다고 말해왔다. 박유하 교수와 <제국의 위안부> 비판을 했던 내게 한국에서도, 심지어 내가 친하게 지냈던 일부 연구자들에게서도 그런 반응이 나오자 생산적으로 토론하려 했던 것이다. 난 초기에 박유하 교수와도 진정성을 보여주고 그리 말하면 서로 오해?가 불식되고 의견 접근이 있을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경험적으로 보면, 나와 그렇게 헤어진 분들은 일본학 연구자들이거나 일본에서 연구한 분들이었다. 분명한 건 그들이 단순히 일본을/에서 연구해서 일본 시각을 중심에 두거니 편을 들었던 건 결코 아님을 질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나도 손쉽게 그들을 친일파라 낙인하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판단이 든다. 그럼 뭐였을까? 3 작년부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씩 찾아나가고 있었다. 정영환 교수와 일본 리버럴에 대한 토론을 한 것이 계기가 되었고, 서경식 선생님의 글과 책들을 읽으면서 희미하던 내 생각을 구체화시켜 나가게 되었다. 나는 서경식 선생님이 “일본 리버럴파의 퇴락”이라고 말하는, 심지어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의 상징인 와다 하루키 선생과도 설전을 섞은 토론들을 검토했다. 그리고 박유하 교수와 그를 지지하는 우에노 치즈코 등 일부 리버럴파 지식인들(논리 없이 감정을 앞세워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진영화한 사람들은 논외)의 논리와 태도를 되새기며 살펴 보았다. 그 일본 리버럴파는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계기로 격증하는 일본의 국수주의적, 국가주의적 내셔널리즘을 직시하지는 않거나, 또는 그걸 의식하고 비판하더라도 천황제를 부인하지 않는 자기 속의 내셔널리즘은 자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얘기하면 한국의 반일 내셔널리즘이 문제라고 되려 비판하며 ‘위안부’ 문제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 여러 차례 사죄(고노, 무라야마 담화 등)했고, ‘위안부’ 피해자들이 생존할 때 ‘화해’하고 치유로 나아가야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다그치듯 반문한다. 그 때의 리버럴파의 언어와 태도는 마치 보편주의적 포지션에 서서 가르치는 것 같다. 식민주의 또는 식민성과 국가범죄에 대한 응답 책임을(특히 법적으로) 물으면, 그런 ‘특수(성)’에만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 가르친다. 또는 그건 이상이지 현실을 너무 모르네... 하며 또 가르침을 준다. 4 일본 극우 부정론자들은 내셔널리즘을 숭앙한다. 천황제 국가와 민주주의가 동거하는 것에 의문을 표하지 않는다. 평화헌법 9조 맥락의 ‘평화’는 배격하고 안보를 위해 전쟁할 수 있는 국가의 억지력으로서의 ‘평화’(이게 평화냐 반문하고 싶지만, 한국도 평화의 섬 제주에 강정해군기지를 옹호할 때의 평화 용법도 그러하다)는 강조한다. 이 모순을 극우 부정론자들은 내셔널리즘으로 엮는다. 그게 보편적이고 정상적이라고 믿는다. 근데 “퇴락”한(또는 전향한) 일부 리버럴파의 역사수정주의는 보편주의라는 포지션에서 특수성인 내셔널리즘을 비판한다. 그리고 일본 천황제 사회의 내셔널리즘에 대해 침묵하거나 내셔널리즘 일반 또는 한국의 내셔널리즘(꼭 반일이라는 접두어를 붙인다)을 비판한다. 서경식과 다카하시 테츠야의 <책임에 대하여>에 여러 시사적인 대목이 있다. 한 단락을 인용하면, 서경식 - “나와 같은 자이니치 조선인들이 그런 억압을 느낀다거나 그런 차별을 받고 있다는 말을 할 때, 일본의 리버럴파 사람들이 “조금도 다르지 않아요. 당신이 누구든 마찬가지에요.”와 같은 반응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자신들은 보편적인 인권에 이미 눈을 뜨고 민주주의자라는 자각을 가진 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의식이 뒤처진 인간을 가르치겠다는 태도지요. 그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 체제의 구성원 중 하나라는 자각은 왜 못하는가. 그런 일상적인 위화감이 학문적인 언설의 장에서 치밀고 올라오는 현상이 1990년대 후반에 이미 나타났어요.” 다카하시 테츠야 - “앞의 심포지엄(97년 9월 28일 내셔널리즘과 위안부 문제를 말함)에서 겪은 일 중, 내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인으로서 책임을 부인할 수 없으며, 적어도 일본 국적이고 일본 정치인의 유권자인 사람은 주권자로서 정부의 행위에 책임이 있으므로 전후 책임을 부정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폈을 때, 우에노 치즈코씨가 “당신, 그런 이야기하면 내셔널리스트라는 말을 들어요.”라고 했던 일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주 인상적이었지요.” 5. 한국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서경식이 “퇴락”한 일본 리버럴파라고 말하는 집단과 목적과 정서를 공유하며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반일종족주의를 부르짖는 이영훈과 낙성대경제연구소를 일본 극우 부정론자들이 이뻐하며 “간택”했다. 이 두 흐름이 세계사적 전환기인 지금, 서로 의도했든 안했든, 한 방향으로 나아가며 합류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리버럴파와 극우파의 내셔널리즘 용법에 합류 지점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이영훈이 그 문으로 들어서는 열쇠를 제공하는 의도치 않은 효과를 만든게 아닐까 상상한다. 한국의 내셔널리즘은 기실 샤머니즘적인 종족주의이고,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서구적인 그것이어서 보편주의 맥락에 있고 정상이다 라고.
강성현
1 Sep 2016 · Public · …흥미를 갖고 갔지만, 동시에 박유하 사태의 그림자 때문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양쪽의 논쟁은 꽤 생산적이었다. 모두 자기 입장에서 나름의 논거들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쟁점에 대해 논거들의 충돌이 있었을 때 서로 접근하는 지점들이 있었다. 각 논자들의 입장을 일별하면서 인상적이었던 내용들을 정리, 소개하고, 이에 대한 비판적 논평들을 추가하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이 놈의 저질 체력이 문제다. 3시간 반 넘게 진행된 밀도 있는 논의, 무엇보다 속이 꽉 막히는 논의로 채할 것 같다가 바로 이어 사이다 같은 논의들이 이어지는 반복 속에서 기력이 완전히 소진되어 버렸다. 다음 기회에 이어가기로 한다. 다만 일감만 먼저 풀어놓으면, 외교 현실을 주되게 논하는 이원덕, 남기정 교수의 논의는 현실이라기보다 상상적 외교 게임의 이상에 구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플로워에서 이 둘에게 극단적으로 낙관적인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오히려 이상주의적 접근을 할 것처럼 보였던 그 반대 진영이 상대적으로 현실에 입각하고 있었다. 무엇이 이런 기이한 광경을 만들어냈는가? #위안부긴급심포참관기
강성현
26 Jul 2017 · Public · …'리버럴' 중에서도 대표적인 박유하 교수의 지지자이다. 우에노 선생은 여혐을 혐오한다는 논의와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지지를 어떻게 '대화' '화해' 시키고 있을까? 얼마 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주최한 우에노 치즈코 강연회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과 답변이 오간 곳으로 안다. Aya Furuhashi 선생의 참관기를 보니 그 분위기가 짐작 간다.
강성현
11 May 2016 · Public · …사실 정말 쓰기 싫었다. 박유하 책을 몇 번 읽었는지 모른다.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이런 책을 여러번 읽어서 수차례 분해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는 사람들은 내 심경 이해해줄거다). 최근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비판적 서평, 기사, 연구서까지 정말 쏟아져 나왔는데, 이런 상황에서 글 하나 보태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고민했다. 결론은 보탤게 있다는 거였고, 작업했고, 결국 끝냈다. 강의에서 초고를 피드백 해준 대학원생들에게 감사드리며, 글에 대한 과분한 평가를 해주신 김귀옥 선생께도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220매가 넘는 원고를 급하게 투고했음에도 이를 검토하고 게재해주기로 한 황해문화에게 큰 감사를 드린다. 황해문화의 애독자로서 큰 영광 되겠다. ^^ (전 편집장님 스페셜 땡쓰~) 황해문화 여름호가 5월말에 발간되겠지만, 맛보기로 조금 소개한다. ---------------- 1. 들어가며: '박유하 사태'의 비판적 개입. 2. '제국의 위안부'의 의미와 주장들 3. 쟁점들 1) '강제연행'의 의미와 주체 2) 자의적 자료 해석과 오류 3) 동지적 관계? 4) 조선인 '위안부'의 귀환? 4. 해결 1) '국가범죄가 아닌 죄'에 대한 사죄와 보상? 2)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5. 나오며: '12.28 합의'의 파기를 시작으로 ... 이 글은 제국의 위안부의 비판적 독해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쟁점과 해결을 논의한다. 우선 이 책의 주장들을 확인하고, 그 중에서도 ‘강제연행’의 의미와 주체, 자의적 자료 해석과 오류, 동지적 관계, 조선인 ‘위안부’의 귀환에 대한 저자의 논의 내용과 방법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저자가 상정하는 현실적 해결 방안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결론적으로 이 문제를 현재화된 과거사(過去事) 문제로 위치시키고, 이 문제에 대한 대안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대안적 문제 해결의 제언을 바탕에 깔고 이 책이 쟁점으로 삼은 논의들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이 글의 궁극적 목표다. ... 대체로 여러 연구자들의 기존 논의와 비판에서 조금 더 내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보태거나 이어나간 논의들이지만, '끌어감'의 내러티브 못지 않게 '버려짐'의 내러티브를 강조하고 그 의미에 대해 논의, 부각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기존 논의에서 이 글의 기여가 있다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시아여성기금 방식 및 박유하 해결 방식을 '진상규명 없는 보상' 모델로 비판하고, 현재화된 과거사 차원에서 이 문제를 위치시킨 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제언을 제출했다는 점일 것이다. 여기에서 과거사 문제의 차원은 결국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구조적 사법적 진상 규명의 문제이다. 현재화된 문제의 차원은 이러한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 더 나아가 진상 규명을 바탕으로 취해지는 형사적/민사적, 국제적(국가간)/국내적, 국가적/사회적 후속 조치들이 진행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많이 고민했다. 다시 말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 현재화된 과거사를 대면하고 응답하려 할 때 추구할 수 있는 진상 규명의 기본 방향과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글에서는 진상 규명의 기본방향은 역사적 구조적 진상 규명을 제안했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와 법 중심의 진상 규명'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와 사회 중심의 진상 규명'이라는 '투 트랙' 진행을 제안했다. 국가와 법 중심의 진상 규명이 결코 회수할 수 없는 진상 규명의 영역을 한일 그리고 아시아 시민사회가 확보하는 것, 이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실천하기 위한 '아시아 만민공동회'를 발전시키는 것, 이것이 아시아연대회의가 지향해야할 과제가 아닐까... 뭐 여러 논의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
강성현
31 Aug 2019 · Public · …많은 비판이 이루어졌지만, 한국에서는 박유하 교수에 이어 이영훈의 글에까지 이어진다. 하타는 일본군 ‘위안부’가 자신의 자유의지와 의사로 취업 또는 자기영업한 것이며, 그 성적 노동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정확한 대가를 받았으며, 고수익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일본군 ‘위안부’는 성노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타는 “합법적 계약”이었음을 강조한다. 나쁜 업자에게 속아 유괴되거나 납치된 피해 여성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범죄는 민간업자(특히 조선인 업자)가 한 것이며, 일본군이나 정부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이영훈에게 그대로 이어진다. 그는 위안부 “자기 영업”이 “고노동, 고수익, 고위험”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위한 자료 근거와 해석은 하타나 이영훈이나 거의 같다. 따라서 하타는 일본 정부나 군의 죄는 없으며, 이에 대한 책임도 없다고 주장한다. 비난은 오로지 위안소를 경영한 민간업자에게 있다. 설령 “인간사냥”식의 “강제연행” 케이스가 있더라도 그건 점령지에서 군의 하부 조직이나 병사들이 한 것이고, 일본 정부나 군부 중앙의 명령이나 승인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인신매매와 관련해 좀 부연하면, 아베는 2015년 3월 27일 미국 방문 전에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를 했다. 아베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인신매매” 그러니까 ”human trafficking”(휴먼 트래피킹) 당했고,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다고 하면서 “가슴 아프다”고 인터뷰했다. 영어로 휴먼 트래피킹은 국가 등 권위적 기구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라는 뉘앙스가 있지만, 한자로 인신매매는 민간에 의한 범죄라는 뉘앙스가 더 강하다. 아베는 인신매매라는 용어를 선택해 미국 및 해외 여론에게 일본이 반성과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쇼를 했다. 그리고 일본에 와서는 계속 민간 업자의 범죄와 책임으로 돌리고 있으며, 특히 조선인 업자를 강조한다. 이영훈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이라는 글은 이런 시각과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4. 다음 글부터는 이영훈이 쓴 구체적 주장 내용을 들어, 어떻게 자료를 자의적으로 선별 해석했고, 심지어 오독을 넘어 왜곡했는지 주요한 대목을 들어 해설하고자 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영훈 책에 대한 위기의식은 이런 시각, 논리의 내용은 아니다. 1999년 하타 이쿠히코에서 크게 더 나아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런 내용들에 대한 학계의 비판이 폭을 갖추고 깊이 있게 소개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일일이 다 비판적 해제를 달 수는 없지만 주요 대목을 들어 각 유형별로 비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이런 것보다는 이영훈 등의 유투브 강연->여러 파생 채널의 등장->일베로만 치부할 수 없는 구독자들의 확산과 네트워킹->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컨텐츠의 상업성->반일종족주의 책 류의 출간->일본 쪽에서 이런 유투브 채널의 대거 유입과 구독/조회의 확산, 네트워킹—>이영훈 류를 일본과 국제사회의 무대에 초청해 일본을 위한 논리를 대변하게 하는 것 등에 대한 위기의식이 정말 크다. 2019년 7월 책이 출간되었고, 지금 10쇄를 찍었다 한다. 뉴라이트 정치인, 연론인, 학자들이 박근혜의 국정교과서 사태 이후 오랜만에 단단히 뭉치고 있고, 이승만 TV는 일본어 자막을 준비하고 있으며, 주옥순 같은 이가 늘어나고 있다. 광화문에는 나는 친일파다, 나는 토착왜구다, 북한과 중국에 대항해 한미일 삼각 동맹을 위해서 친일파, 토착왜구를 자처하겠다는 류의 외침들이 지금보다 늘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반문’, 돈벌이, 정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거다. 제2, 3의 이영훈, 이우연, 주옥순이 도처에 나타날거다. 자한당 내부에서도 이미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 학기가 시작되고, 강의, 연구, 일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무엇보다 이런 황폐한 책을 읽는게 정말 곤혹스럽다. 이런 위기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선, 이를 분석하고 반박하는 책이나 논문, 대중 교양서 출간 같은 방식으론 역부족이다. SNS 같은 미디어의 속도와 양을 따라갈 수가 없다. 무엇보다 유투브가 정말 중요하다. 유투브가 ‘주전장’이 될 것이다. ’위안부’ 연구의 전문성 확보를 위한 기반(연구자 풀, 자료 아카이브, 연구소, 역사관 또는 기념관, 그 밖에 국가와 법 중심의 트랙과 피해자와 사회 중심의 트랙에서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디어의 특성을 고려한 여론 및 공감 형성과 교육 프로그램의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정의연 등 중앙과 지방의 지원단체들의 운동 방식과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고민이 지금 너무 절실하다. ... 참고로 현재 유투브에서 <반일 종족주의>를 반박, 비판하고 있는 채널은 황현필, 심용환 등이 검색되고 있다.
강성현
4 Feb 2016 · Public · Home 한국사 식민지기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근대와 역사식민지 이후 또는 탈식민한국사식민지기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2016년 2월 3일 3 0 Share on Facebook Tweet on Twitter 사진.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 소녀상이 모든 ‘위안부’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지적, 국가에 의해 동원된 가부장주의적 ‘소녀’의 이미지를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나는 이 ‘소녀상’이 그녀들의 어린 시절, 소녀 시절을 누구에게나 있었던 꿈많은 시절을 그리워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의 기억을 생각해 보… – felivi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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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 FELIVIEW
강성현
28 Aug 2019 · Public · …등의 뉴라이트, 심지어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가 제공하는 컨텐츠로 무장하고, 유투브를 적극 활용한다. 처음에는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소수 일베적 감성의 이용자들이 유투브에 채널을 만들어 역사수정주의, 부정론적 입장의 컨텐츠를 재탕해서 만들다가, 최근에는 조회수가 수만에서 수십만을 찍는 유투브 채널로 진화했다. 월 유투브 광고 수익이 수천만원 대인 경우도 생겨났고, 일본 포털 극우사이트에서나 보이던 부정론 입장의 댓글들이 이 채널 아래에 한국어, 일본어로 합창을 하듯 댓글이 달리게 되었다. 모두 제2, 3의 이영훈, 이우연이 되고 싶어하는 일반인들이다. 이걸 보고 내면화한 어떤 청년들이 소녀상에 모욕을 가했다. 침을 뱉고, 일본어로 “텐노 반자이”를 말하고 혀짧은 외설물에 나오는 일본어를 내뱉었다 한다. 이영훈의 황폐한 정신 세계가 유투브를 매개로 점차 한국 사회로 잠식해들어가는 것일까? 이영훈의 이승만 학당 TV도 최근 일본어 번역 자막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한다. 너무나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8. 유사 역사학의 외양을 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고대사 쪽의 유사 역사학은 울트라 내셔널리즘과 제국적 판타지의 얼굴로 주류 역사학계를 “친일파”, “식민사관”으로 공격하고 있는 반면에, 근현대사 쪽 유사 역사학은 반일 종족주의 및 민족주의 비판, 한미일 동맹과 함께 북한을 악마화하고 탈냉전분단과 평화로의 길을 거짓이라고 선전하며 스스로를 “친일파” “토착왜구”라고 자기 정체화하며 표현하고, 주류 역사학계와 사회학계를 반일종족주의에 편승해왔던 거짓말쟁이로 매도하고 있다. 전우용 선생의 토착왜구 낙인은 부정적 용법이었다. 그런데, 얼마전 박근혜 청와대의 대변인 출신이었던 윤창중이 <반일 종족주의> 책 출간 기념회 자리에 가서 스스로 “난 토착왜구”라는 말을 한 것을 보고 그냥 웃을 수만 없었다. 엄마부대 대표 주옥순의 망언이 일회적인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있다. 이대로 가면 광화문에서 애국당과 함께 박근혜를 위한 통성기도와 시위를 하는 “애국 할배/할매”들이 난 친일파다, 신친일파다 외칠 판이다. 이미 그런 조짐이 있다. 9. 한반도 및 동아시아의 탈 냉전과 탈 분단, 평화로의 길을 못바땅하게 생각하고, 북한과 중국을 적대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익을 담당해 전쟁할 수 있는 “정상국가”를 만들려는 아베에게 No!를 외치고 한일 시민사회가 연대하려는 움직임보다 아베와 일본회의 같은 극우의 사상과 논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한일간에 급속한 접점과 연결선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를 학술적인 수준에서 서평하거나 그럴거리조차 되지 않는다고 가볍게 웃고 넘길 때가 아니다. 역사적, 세계사적 전환기에 발생하는 신보호주의적 파고에 급격히 자라나는 새로운 파시즘적 생각과 행동들이 고립에서 벗어나 서로 급격히 연결되면서 거대한 반동의 흐름을 만들어낼 듯 싶다. 바로 그 때 평화와 인권에 반하는 진정한 위기가 도래하지 않을까?
강성현
11 Feb 2016 · Public · …이제는 두 진영으로 갈라져 버렸다. 박유하 책을 옹호 또는 긍정하는 진영과 이를 비판 또는 부정하는 진영으로. 문제는 이 구도에서 박유하가 여성주의로 대표/재현되고, 다양한 박유하 비판이 싸그리 민족주의로 재현된다는 것이다. 논쟁이 지식장, 공론장을 더 두텁게 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난 논쟁으로 인해 지식장, 공론장이 두 진영으로 갈라지고, 두 진영논리 아래에 정밀한 관점과 논의들이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아니 피어 있는 꽃도 꺾인 채 사라지는 것을 종종 보았다. "나는 <제국의 위안부>의 전반부, 사악한 조선인 포주와 인간적인 일본군의 일화들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위안부 문제의 책임이 가부장적 국가제도에 있다는 주장을 수긍한다.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제발 논쟁을 망치지 말고 조용히 빠지시라. 그게 쟁점이라면 나는 박유하의 편이다. 그러나 <제국의 위안부>는 남성 중심 사회의 연대책임을 묻는 여성주의적 해석에 그치지 않고, 인신매매의 물리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일본 제국만을 면책시키는 법리적 궤변으로 나아갔다. 문제의 대목이다. 작가 박유하나 사료연구자 박유하가 아닌, 박유하 재판관이 판결한 뒤쪽 절반." ---> 처음 읽었을 때는 의아함과 솔직히 언짢음이 밀려왔다. 손아람은 글 초반에 ‘정밀한 관점의 참전’인 것처럼 깔아놓았다. 그런데 왜 그는 박유하 책 1,2부는 ‘박유하 편’, 3,4부는 ‘문제의 대목’으로 갈라치는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했을까? 또 다른 관점이 아니라 전반부는 니가 맞고 후반부는 니가 틀려라는 기계적인 균형감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너무 나간 오해겠지? 내 생각에 문제적인 박의 책 후반부는 책 전반부의 논의 속에 왜 모순되는 진술들이 한 단락, 심지어 한 문장에 동거하는 방식으로 서술했는지의 의도와 목적을 가늠하게 해준다. 그래서 난 <제국의 위안부> 전반부에 대해서는 박유하 편이라고 손아람이 쓴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손아람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칼럼을 공유하면서 포스팅 한 글을 보고, 그 의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강제연행이 존재했는가"를 판단하지 않고, "강제연행은 없다"는 박유하의 사료 판단을 사실로 가정하고도 <제국의 위안부>의 논증구조와 법리 해석이 잘못됐다는 반박을 하기 위해 쓴 글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변으로도 가시지 않는 미묘하게 느껴지는 불편함은 무엇일까?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제발 논쟁을 망치지 말고 조용히 빠지시라. 그게 쟁점이라면 나는 박유하의 편이다.”는 문장이 거슬린 것일까? 그건 아니다. 손아람의 전체 글을 보면, 나름 사이다 수준으로 박유하 논리 전개의 모순을 드러냈으니. 다만... 사악한 조선인 포주 vs. 인간적인 일본군의 일화를 인상적으로 읽었다는 표현, 위안부 문제의 책임이 가부장적 국가제도에 있다는 주장을 수긍한다는 표현의 너머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있는 것일까? 조금은 다른 얘기겠지만, 드라마 <송곳>의 구고신(인내상 역)과 고문기술자의 관계가 떠올랐다. 영화 <변호인>의 박진우(임시완 역)의 고문 장면과 분명 달랐다. 박진우가 당한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고문은 분명 팩트이다. 그런데 구고신이 당한 고문은, 고문기술자와의 관계는 또 다른 팩트를 생각하게 했다. 고문이 일상인 시공간에서 대학생 구고신은 고문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혹시 이번에는 덜 고문당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고문기술자와 정겹게, 인간적으로 일상의 대화를 한다. 고문기술자의 아들 이야기도. 이것을 강제성, 억압성 일변도로 묘사하는 것도 한계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딱 이 부분만 잘라내서 보면서 자발성, 인간적 관계로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박유하는 이런 방식으로 일본군과 ‘위안부’ 간의 인간적, 동지적 관계를 언급한다. 이것의 효과는? 이 효과를 통해 추론할 수 있는 의도와 목적은? 아니 책 3,4부를 통해서 이러한 진술들의 의도와 목적은 무엇일까 충분히 가늠된다. 박유하는 ‘구조적(또는 강제적) 자발성’을 언급했지만, 강제성과 자발성의 동거하게 되는 구조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실상 단순하게 ‘자발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박유하는 강제성과 자발성, 더 나아가 가해와 피해가 얽혀 들어가는 구조와 메커니즘에 대한 주목과 이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아니 않았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가부장제에만 돌린 것도 문제적이다. 위안부 문제가 제국/식민주의의 문제만은 아닌 것처럼 가부장제의 문제만도 아니다.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식민주의와 가부장제가 어떻게 얽혀 들어갔고, 심지어 공모했는지 자발과 강제, 가해와 피해의 구조와 메커니즘 속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기존 연구들에서도 민족 변수만이 아니라 계급과 젠더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분석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유하는 식민주의의 문제를 들어내고 거기에다 가부장제를 위치시켰다. 이런 너머의 생각과 논의들에 대해 손아람은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까?
hani.co.kr
[야! 한국사회] 제국의 궤변 / 손아람
강성현
20 Apr 2020 · Public · …흥미로운 건 이덕일이 박유하 교수를 ‘짝퉁좌파’로 분류 2. 이영훈이 보는 역사학계(사회학계 등 포함) 2-1. 반일종족주의자 2-2. 매국좌파 2-3. 이덕일도 cf. 이영훈은 박유하 교수를 자기 편으로 둘이 직접 서로 이름 걸어 직접 상호적으로 싸운 적 없음. 틈나면 토론하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왜 서로에 대해서는~ 다만 이덕일은 공식적으로 이영훈을 “깐” 적이 몇 번 있음 3. 이덕일-이영훈이 규정하는 나의 진상? 3-1. 식민사관 추종자 대 반일종족주의자? (덕사마가 날 직접 깐 적 없음. 다만 크게 보아 식민사관 계보로 볼 듯) 3-2. 짝퉁좌파 대 매국좌파? 4. 내 대답! 정반대로, 모순적으로 규정 당하는게 처음은 아니니 별로 관심 없음 니들끼리 싸워!!!
기경량's post
약간 뒤늦은 소식.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몇 년 전 동북아역사지도에 독도가 삭제되었고, 점 하나도 없다는 이덕일의 거짓 주장을 폭로하는 글을 쓴 바 있다. 이덕일이 독도가 안보이도록 교묘하게 조작한 지도 이미지를 슬쩍슬쩍 내보이며 허위 사실을 퍼뜨리고 있음을 밝히는 내용이었다. 그랬더니 이덕일 측은 나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을 하였다. 재미있는 건 '고소'가 아닌 '고발'이라는 점이다. 이덕일은 자신의 명예에 관한 일인데도 자기가 직접 나서서 고소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자신이 공동대표로 있는 미사협의 또다른 공동대표 명의로 고발장을 제출했다. 명예훼손죄는 당사자의 의사 표시가 필요하다. 타인이 하는 고발만으로는 성립이 안된다. 이에 남이 만든 고발장 내용에 '동의'하는 행태를 취했다. 어떻게든 법적 문제에 자기가 당사자로서 직접 노출되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왜일까. 당연히 속으로 꿀리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나는 경찰서에 출두하여 동북아역사지도에 정말로 독도가 있는지 여부를 증명해야 했다. 증명하는 건 너무도 간단했다. 조사를 담당했던 경찰관은 내가 제출한 동북아역사지도를 보자마자 '독도가 여기 있네요'라고 인정했다. 증명 끝. 당연히 무혐의로 처리되었다. 다만 이 결과가 공식적으로 나오는 데는 1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무혐의 처분이 나오자 이덕일 측은 검찰이 직접 조사해달라고 항고를 했다. 이번에는 검찰청으로 조사를 받으러 가야 했다. 아, 귀찮아. 조사를 담당했던 검찰 조사관 역시 지도를 보자마자 '응? 여기 독도가 있잖아요.'라고 나에게 반문했다. 내 말이 그겁니다. 다시 증명 끝. 내가 검찰 조사를 받은 게 작년 7월 무렵인데, 며칠 전에 최종 무혐의 처리가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쯤이면 인정할 만도 하지 않나? 동북아역사지도에 독도는 있다. 이게 2년 동안 대한민국 경찰과 검찰이 꼼꼼히 살펴보고 내린 판단이다. 이덕일은 자신이 갖고 있는 동북아역사지도의 독도 부분을 고해상도로 깨끗하게 스캔해서 제시해 보라는 나의 간단한 요구에 수년째 응하지 않고(사실은 못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지도에 독도가 삭제되어 있다! 점하나도 찍혀 있지 않다! 이게 다 지도를 만든 역사학자들이 식민사학자이기 때문이다!' 라는 허황된 소리를 입으로만 열심히 떠들 뿐이다. 이덕일을 상대하기 어려운 건 이 사람이 정말 부끄러움이라는 걸 모르는 자라는 점이다. '독도를 팔아먹고, 우리의 위대한 고대사를 은폐하는 식민사학자' 같은 건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사이비 역사학 신봉자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허수아비이고 망상이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텐가.
강성현
16 Apr 2019 · Public · …무방하다)이 발생한 후, 단지 박유하 교수의 협력자 문제를 넘어서 일본이라는 역사와 공간을 투영하는 리버럴 페미니스트의 주체위치에 대해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여성문학학회가 주최하는 이 학술회의는 여러모로 관심이 크게 간다.
한국여성문학학회's post
▶️ 한국여성문학학회 2019년 봄 학술대회가 다음과 같이 열립니다. . . <페미니즘 지식문화의 동아시아적 유동과 변환> . . ▪️일시 : 2019년 5월 11일 토요일 (13:00 ~ 18:30) ▪️장소 :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 6층 첨단강의실 ▪️모시는 말씀 2017~2018년 한국 문학 장은 ‘페미니즘 문학’에 대한 뜨거운 대중적 호응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 2016)이 밀리언셀러에 등극하고, 많은 여성작가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페미니즘 대중화는 한국만의 상황은 아닙니다. 『82년생 김지영』이 대만과 일본에 소개되면서 ‘동아시아 여성들’의 공통 감각이 형성되고 있으며, 한국의 ‘미투’ 운동 역시 아시아의 여러 여성들, 활동가들에게 참조점이 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 지식문화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 유동하며 로컬리티를 획득해가는 것입니다. . 2019년 한국여성문학학회 봄 학술대회 <페미니즘 지식문화의 동아시아적 유동(流動)과 변환(變換)>은 이러한 페미니즘 지식문화가 동아시아에서 유통되는 방식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여성주의 지식문화장을 입체화하고 그 특성과 방향을 부감하고자 합니다. 본 학술회의는 페미니즘 지식문화의 생성과 갱신의 과정을 학계 및 일반 시민들과 함께 만들고 목격하는 현장이 될 것입니다. . 본 학술대회는 1,2,3부로 기획되었습니다. 1부 <동아시아 페미니즘의 경계넘기와 그 가능성>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페미니즘 지식장에 큰 영향을 끼친 우에노 치즈코를 재검토하고, 한국발 페미니즘 지식이 된 『82년생 김지영』 현상을 살펴볼 것입니다. 2부 <동아시아 페미니즘 대중운동과 대중문화, 로컬리티와 차이>에서는 한국과 일본, 중국의 ‘미투’ 운동의 담론화 과정을 점검해보고, 이 과정에서 ‘미투’라는 트랜스내셔널한 현상이 민족국가의 경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지 확인할 것입니다. 또한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여성 대중문화의 향방 역시 진단해봅니다. 마지막 3부 종합토론에서는 발표자와 토론자, 플로어가 모두 함께 ‘동아시아 페미니즘 지식문화의 위치’에 대해 논의합니다. 최근 이슈에서부터 역사적 맥락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와 페미니즘의 접속에 대해 풍성한 논의가 오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 회원분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 ▪️학술대회 일정 [제1부] 동아시아 페미니즘의 경계넘기와 그 가능성 ✔️사회: 이정숙(서울여대) •13:00~13:10 개회사 | 이혜령(한국여성문학학회 회장) •13:10~13:50 우에노 치즈코와 페미니스트 트랜스/레이션 | 발표: 김주희(서강대), 토론: 류진희(성균관대) •13:50~14:30 동아시아 페미니즘 순환의 (불)가능성: 우에노 치즈코의 ‘위안부’론을 중심으로 | 발표: 임경화(중앙대), 토론: 김명희(경상대) •14:30~15:10 <82년생 김지영> 현상의 동력학 | 발표: 김미정(성균관대), 토론: 허윤(부산외대) . [제2부] 동아시아 페미니즘 대중운동과 대중문화, 로컬리티와 차이 ✔️사회: 장영은(인천대) •15:30~16:10 일본의 미투, 고립과 교차성 사이 | 발표: 조경희(성공회대), 토론: 신지영(연세대) •16:10~16:50 중국의 성추행, 성폭행 사건에 대한 미디어의 보도 분석 | 발표: 김미란(성공회대), 토론: 이선이(경희대) •16:50~17:30 페미니즘의 시대, Boys' Love(BL)의 의미를 다시 묻다: '탈비엘' 담론의 분석 | 발표: 김효진(서울대), 토론: 손희정(중앙대) . [제3부] ✔️사회: 소현숙(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 •17:30~18:30 종합토론
강성현
7 Apr 2019 · Public · …다케시, 내가 한 자리에서 박유하 교수의 책과 소녀상으로 재현된 평화비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한겨레21 연재글에 없던 대목이 들어갔다. "새로운 사료를 발굴한 것도 아니고 역사적 사실에 대해 정밀히 탐구하지도 않고, 폭력 체제의 복합성과 다양한 행위자들의 선택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대한 사유도 부족한 채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민족주의' 인식을 깬다고 덤벼드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못하고 학문적으로 참담하다. 위안부 역사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와 민족주의적 단순화와 과도한 집단감정 동원이 지닌 문제에 대한 비판은 부당하지 않다. 다만 '위안부' 생존자들과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을 비롯한 운동가들의 지난한 투쟁의 역사를 단순히 민족주의적 악용으로 간주하는 것은 왜곡이자 '제2의 역사'(과거사정리 운동)를 일군 행위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민족주의적 단순화를 해체한다고 덤벼들어 맥락을 이탈한 채 단편적 사실의 침소봉대와 과잉해석을 일삼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오히려 폭력 체제, 특히 성폭력 체제의 다양한 메커니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강제와 압박, 유인과 기망이 함께 결합된 폭력기제의 복합성과 행위자들의 다양한 생존 전략 및 동기에 주목해야 한다. 기괴한 담론을 만들어 나름의 '성찰'을 되레 역사의 피해자들에게 강요할게 아니다. 사료를 더 찾고 맥락을 더 더듬어야 한다. 그래야 폭력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럴 때 지키고 확장해야할 사회운동의 결기와 개척해야 할 인식 지평이 함께 보인다." (이동기 2018, 152-153) --- 참고로 한겨레 21 연재글의 해당 단락 "새로운 사료를 발굴한 것도 아니고 역사적 사실을 정밀히 탐구하지도 않고, 폭력 체제의 복합성과 행위자들의 역동성에 대한 사유도 부족한 채, 위안부 문제에 대한 ‘민족주의’ 이미지를 깬다고 덤벼드는 이들이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민족주의 서사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적지 않다. 오히려 폭력 체제, 특히 성폭력 체제의 다양한 메커니즘과 폭력의 행위자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강제와 압박, 유인과 기망이 함께 결합된 폭력 기제의 복합성과 행위자들의 다양한 생존 전략 및 동기에 주목해야 한다. 기괴한 담론을 만들어 나름의 ‘성찰’을 되레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강요할 게 아니다. 사료를 더 찾고 맥락을 더 더듬어야 한다. 그래야 폭력의 실체가 드러난다."
강성현
23 Feb 2016 · Public · 국립타이완박물관과 식민지근대화 대만성 박물관이 국립 타이완박물관이 되었을 때 주된 전시 내용은 무엇이 될까? 자연사박물관+대만 소수민족의 역사가 진열되었을 거란 예상은 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일제에 의한 식민지근대화 프로젝트를 희구하는 전시전이 더 강조되어 배치되어 있었다. 물어보니 얼마되지 않았단다. 국민당 대 민진당을 독재, 수구세력 대 민주화세력, 또는 외성인 대 나머지, 하나의 중국 대 독립으로 단순 치환하지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시의 주제는 완성되지 못한 유토피아. 한국의 뉴라이트들이 일제의 식민지근대화를 평가하는 시각과 같다. 친일이 노골적인 상황에서는 반대급부로 항일, 반일도 더 거세진다. 두 개의 진영이 구축되면 그 사이의 복잡한 결에 대한 진지하게 숙고하고 살펴볼 여지는 없어진다. 두 개의 과잉화된 정치 서사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사회사가 10년 넘게 구축한 식민지근대성 논의는 양 진영에 의해 자칫하면 식민지근대화로 환영/낙인되어 표적이 될 수도 있겠다.) 의도했든 않았든 간에, 박유하, 이덕일이 이를 가속화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뉴라이트가 벌인 짓 못지 않게 그 해악이 크다.
+3
강성현
15 Jan 2016 · Public · …이 글을 보니 참담하다. 박유하 책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그가 보인 말과 행태가 한편으론 참 이해가지 않았다. 그에겐 표현의 자유가 모든 판단의 최종 심급 이었을까? 이 글.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하고, 무지하다. 전쟁터, 그리고 "법과 행정력"이 작용하는 식민지, 이 둘을 구분하면서 전자를 총칼에 의한 협의의 강제성이, 후자를 광의의 강제성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등치시켰다. 그래서 그가 하고픈 말은 전자만이 "강제연행"이다. 의도했든 안했든 간에 이 글의 논리 구성이 그렇다. 참으로 참담하다. 그건 아베의 주장과 뭐가 다른가? 그가 익명으로 기대는 전문 연구자란 누구인가? 확실한 것은 그런 논리 구성에서 요시미 요시아키 선생과 길윤형 기자도 소환돼 결국 비판받고 있다. 장정일이 문제 삼고 있는 최원형 기자의 글을 비판하려면 이런 논리 구성으로 가지 말았어야 했다. 차라리 바타비아 재판 건은 식민지 조선의 강제연행 문제를 간접으로 방증하는 것이니 직접 증명하는 자료와 근거를 가지고 말해라 하던지... 더 근본적으론 "강제연행" 용법에 대해 얘기했어야 했다.(사실 이런 얘기의 구도도 아베가 의도하는 프레임이라 심히 불만스럽긴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20만명의 과장설을 말하며 젊은 연구자들의 간담회 내용을 운운하지 마시라. 역문연 젊은 연구자들이 논의했던 논의의 전체 취지와 의도, 결과의 맥락에서 그 과장의 의미를 평가해야지, 어따대고 뜬금없이 그들를 끌고 오나?
v.media.daum.net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한겨레
강성현
26 Aug 2019 · Public · …바가 없었다. 이우연과 박유하 교수 모두 와세다대학의 아사노 토요미 교수를 참조해 말하고 있었다. 난 이미 몇해 전부터 그의 연구 성과와 한계를 국내외 여러 발표, 논문 등을 통해 학술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둘은 그건 확인하지 못하고 조선인 ‘위안부’ 학살 관련 문서(미중연합군 작전일지)와 미군 촬영 동영상에 대한 짧은 언론 기사만을 보고, 내가 아사노 교수를 표절하고 있고 또는 그보다 수준 낮은 주장을 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줄 알라고 날 꾸짖고 있었다. 아래 YTN 뉴스를 보니 <반일종족주의> 공동 저자이기도 한 이우연이 ‘위안부’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 단체 를 이끄는 후지키 슌이치의 돈과 지원을 받고 유엔인권이사회에 가서 강제동원 문제를 부정하는 발표를 했다 한다. 보아 하니 이우연은 한국판 토니 마라노가 될 듯 싶다. 이에 대한 그의 답변이 변명치곤 참 “재미지다.” “이 씨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와 함께 일제 식민지 지배의 합법성을 강조하는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의 저자. 역사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릴 기회라고 판단해 UN에 가자는 제안에 응했다며, 일본 극우단체의 금전적 지원을 받은 것도 떳떳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우연 / 낙성대경제연구소 박사 : 극우단체이건, 극좌단체이건, 역사적인 사실을 공유하고 그것을 알리는 사람과는 앞으로도 계속 (함께) 활동할 겁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산케이 신문 등 일본 보수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됐고, 학문의 영역을 넘어 한국을 겨누는 일본 극우세력의 칼이 되고 있습니다.”
news.v.daum.net
[단독] '반일 종족주의' 학자의 민낯.."日 극우 지원받았다"
윤태옥
4 Mar 2019 · Public · 누가 나에게 빨갱이냐, 남의 나라 공산당 마오쩌둥의 장정을 답사하게 ...... 라고 물으면 난 주저없이 나는 빨갱이라고 답한다. 누가 나에게 남의 나라 공산당에 입당한 김산 허형식 등등을 조선의 독립운동가라고 하고, 그들의 족적을 찾아가니 빨갱이라 한다면 난 빨갱이가 되겠다. 나는 그들이 조작하고 강박하는 <악의 사전>에 사악하게 올린 표제어 빨갱이에 매이고 붙들릴 생각이 조금도 없다. 빨갱이 발언이 있었다. 논쟁적인 논의도 있었다. 빨갱이 정치학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나의 위안부 피해자 역사 선생님의 글을 공유한다.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정독해보기를 권한다. 꼭 읽어보시라. 내 선생님들은 진짜 학자이고 진짜 선생님이다. 나라는 학생은 부실 덩어리 농땡이꾼이지만 말이다. 뱀발 ㅡ 내 금년 과제의 하나가 강성현 선생님에게 막걸리 한잔 대접하는 거다. 작년에는 어영부영하다 못했다 ㅠㅠ
강성현's post
‘빨갱이’, 그리고 대통령의 말 1. 빨갱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해방 직후다. 1948년 제주4.3사건과 5.10총선거 전후해서 등장 빈도수가 많아졌고,10월 말 여순사건 이후로 더 그렇다. 한 논문에 따르면, 빨갱이는 1948년 가장 유행한 단어 중 하나였다. 해방 직후 빨갱이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를 속되게 폄하하는 말이었지만, 1948년부터는 용법이 질적으로 바뀌었다. 낙인 당하는 사람/집단의 속성, 내용과 상관없이 낙인 찍는 사람/집단에게 전적으로 달렸다. 5.10총선거 전에는 ‘정적’에게 빨갱이 낙인이 남발되었다. 여순사건 직후부터는 “죽여도 되는, 죽여야만 하는 존재”를 의미하게 되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빨갱이어서 죽는 게 아니라 죽어서 빨갱이가 되었다. 2. 조병옥. 그는 한국 정당사에서 민주당의 족보를 그린다면 파운딩 파더 반열에 드는 사람이다. 빨갱이 때려잡는 원조 사냥꾼이다. 해방공간에서, 제주4.3사건과 한국전쟁 동안 그는 수많은 빨갱이를 때려잡았다. 그런 그도 이승만 대통령의 정적이었기에 빨갱이 간첩으로 몰렸다. 선우종원은 어떤가? 그도 빨갱이를 숱하게 때려 잡은 “사상검사” “반공검사”였지만, 그도 빨갱이로 몰려 한국을 떠나야 했다. 일본에서 긴 망명 생활을 해야 했고 4.19 이후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3.1자 중앙일보에서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비판했던 양동안 명예교수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방 후에도 빨갱이란 단어는 공산주의자 및 공산주의자와 함께 행동한 세력들을 빨갱이라 했다. 순수한 민주인사를 빨갱이라 부른 적이 없고 심지어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아서 처벌한 일도 없다.”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순수한 민주인사”라는 표현이 흥미롭다. 조병옥, 선우종원 같은 인사도 그 순수성을 입증할 수 없었음을 알고나 있을까? 3. 바미당 이준석은 한국전쟁 인명 피해 통계를 읊으며 이렇게 말했다 한다.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김일성 일당의 전쟁도발이 그 세대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한(恨)이 주원인”이라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이준석이 읊은 민간인 피학살, 부상 통계보다 더 큰 피해 규모의 통계가 있다. 남과 북 두 정부에 의해 한쪽에선 ‘빨갱이’로, 또 다른 쪽에선 ‘반동분자’로 학살 당했다. 자국민 학살, 동족간 학살이 진행되었다. 전쟁이 그랬다. “김일성 일당의 전쟁 도발” 맞다. 그런데 그 전쟁의 원인못지않게 전쟁 때 양쪽에서 어떤 지옥도를 펼쳐냈는지 주목해야 한다. 이준석은 진실화해위원회의 보고서들을 꼭 읽길 권한다. 4. 문 대통령이 100주년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를 무려 다섯 번이나 언급했을 때 정말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대통령이 빨갱이 때려 잡자는 취지의 말이 아닌 빨갱이 증오정치를 이제 그만 청산하자는 말을 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5. 그런데 이 대목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제 때 빨갱이라는 말이 없었고, 있었더라도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에 국한되었다는 주장이다. 앞서 양동안 교수는 “항일운동하는 사람 중 사회주의 계열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지칭한 것은 맞지만, 그 외는 빨갱이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유하 세종대 교수도 ”빨갱이(일본어는 아카)라는 말은 조선인이 아니라 자국인인 일본인을 탄압하며 생긴 말”이라며 “일본은 1910년 천왕암살 음모를 꾀했다며 일본의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들을 탄압했다. 사회주의ㆍ공산주의자들이 아카(빨갱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그런 과정에서의 일”이라며 “(조선에서의 ‘빨갱이’ 탄압도) 그것은 ‘조선인’을 겨냥한 것이기 이전에 ‘공산주의자’를 겨냥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한다. 좀 어이 없다. 박유하 교수는 일본 말고 식민지 조선의 사상통제는 보이지 않나 보다. 조선인이 아닌 공산주의자를 겨냥했다는 말에는 조선은 안보겠어라는 의지마저 느껴진다. 그랬다. 일제 때 “아카”라는 말이 있었다. 빨갱이도 이 단어에서 유래했다. 둘 다 사람의 속성을 ‘빨강’(赤)이라는 색깔로 지시한다. 이 색깔은 ‘주의자’(主義者), 더 좁게는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가리키지만, 그것에 한정되지 않고 의미가 완전히 열린 채 부정적 낙인으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똑같다. 일제 때 조선독립을 추구하는 사상은 그게 공산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민족주의, 심지어 자유주의, 또는 종교적 신념 그 무엇이든 과격위험사상이었다. 독립운동가와 도움을 주었던 모든 이는 어떤 사상을 갖고 있든 상관없이 사상범이었다. 덮어놓고 고문했고 “투옥”시켰다. 1935년 이후에는 질적으로 아카와 사상범의 용법에 변화가 생겼다. 한 사상검사는 “공산주의자가 합법적으로 대중을 빨아들이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주의는 공산주의의 온상”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1935∼36년이 지나면서 ‘아카’(赤)라는 적(敵)이 만들어졌다. 과거 용법과 달리 ‘주의자’에 강조점이 있지 않고, 이들이 합법 영역으로 “침투하고 섞여버려 구별할 수 없다”는 인식이 투영되었다. ‘아카’는 더 이상 정의될 수 있는 용어라기보다 부정적인 낙인의 정치가 되었다.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뿐 아니라 반전주의자, 평화주의자, 자유주의자 등도 ‘아카’의 낙인을 피하지 못했다. 6. 해방 전 특히 아시아태평양 전쟁기 ‘아카’와 1948년 ‘빨갱이’ 용법에서 유사점과 차이점이 무엇일까? 아니 다시 질문하면 그 둘 간에 연속과 단절은 무엇일까? 포섭을 거부하는 아카(비전향자)는 예방구금을 통해 격리시키는 방식으로 배제했다.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이들에 대해 ‘배제’와 ‘박멸’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것이 실제 아카로 낙인된 조선인 비전향자들을 죽음으로 동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조선이 전장화될 것에 대비한 학살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45년 4월 초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일선 경찰서에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 ‘요시찰인’(要視察人)을 예비검속하고 “적당한 방법으로 처치”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는 미수로 그쳤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유예되었을 뿐이다. ‘제주 4·3사건’ 이후 “제주도에 거주하는 사람은 전부 빨갱이”로 몰렸다. ‘여순사건’ 직후에는 빨갱이가 “잔인무도하고 천인공노할 귀축, 짐승, 마귀”로 비인간화·악마화되었고, ‘손가락총’으로 낙인되면 학살되었다. 지역(민) 자체가 죽여도 되고, 죽여야만 하는 빨갱이로 호명되었고, 이는 ‘반공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의 구심력으로 작동했다. 절멸해야 할 절대적 적을 호명하는 빨갱이 증오정치는 한국전쟁 때 절정에 달했다. ‘보도연맹 사건’은 그런 맥락에서 발생한 자국민 대량학살 사건이었다. 7. 이와 관련해 한 사례만 짤막하게 얘기하고 싶다. 진화위 조사로 발굴된 한 보도연맹원 명부가 있다. 결과적으로 살생부로 작용했다. 그 명부의 표지는 여러 장으로 합쳐져 있었다. 다 분리해 보니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알고 보니 보도연맹원 명부는 그 지역의 식민지 시절 요시찰인 명부이기도 했다. 명부 표지의 시간성을 분석해보니 식민지 시절부터 시작되어 해방후, 정부수립, 한국전쟁, 그 이후까지 말그대로 지층들이 되어 하나의 표지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의 시각에서도 그렇다. 유족이 떠올리는 피해자의 삶의 이야기, 시간성은 학살 시점 전후가 아니라 식민 시절 때 피해자의 역할과 활동에서 출발할 때가 많다. 8. 대통령의 말은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색을 말하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 완전히 그 누구로부터 인정되는 사실, 진실만을 대통령이 말해야 권위가 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런가? 대통령의 입에서 가짜뉴스가 나와서는 안된다는 점에는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이번 기념사의 내용이 그런건가? 이미 한국근현대사에서도 논의가 상당히 진행되어 정립되어가는 내용들이다. 사실의 논리적 구성과 뉘앙스의 차이는 논해볼 수 있겠다. 대통령의 말은 정치이자 통치 행위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말은 정부와 집권여당에게 정치와 정책 방향을 설정해준다. 이에 대한 민주적 토론들이 벌어질 수 있고 갈등적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그걸 정치와 통치의 차원에서 수렴해가는 힘이 작동할 것이다. 구심력일 수도 있고, 원심력일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다루어지는 역사적 사실 중 아주 오랫동안 금기시되어왔던 빨갱이로 몰려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 족보를 “작정하고” 끄집어냈다. “친일 반성, 독립운동 예우, 정의로운 공정한 나라”세우기 라는 맥락에서 친일잔재를 청산하고 지금도 계속되는 빨갱이 죽이자 혐오/증오 타령을 그만하자는 호소였다. 그런 의도하에 새로운 100년을 구상하며 종전과 항구적 평화를 위한 신한반도체제를 선언했다. 엄청 추상적이긴 하지만 기미독립선언서에서 펼쳐지는 한반도 및 아시아의 평화론에 기댄 것이다. 이걸 위협하고 있는게 무엇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9. 2008년 이후 9년 내내 대대적인 ‘종북몰이’가 계속되었음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신종 빨갱이 증오정치가 유령처럼 활개쳤다. 여기저기 빨갱이 감별사들도 등장했다. “자나 깨나 나라 걱정만 하는 애국자” 고영주는 그 중에서도 최고였다. 친북 반국가행위 인명사전도 편찬했고, 전교조도 ‘이적단체’로 몰았으며, 통합진보당 해산에도 큰 공을 세웠다. 백미는 감별 주특기를 잘 살려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공산주의자로 몰이한 것이었다. 2017년 초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이 타오르던 광화문광장 저편에서 ‘태극기집회’가 연이어 열리고,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선동과 집단폭력이 발생했다. 짧게는 9년 동안, 길게는 반세기 작동한 빨갱이 증오정치의 결과가, 퇴적된 지층들이 마치 단층작용처럼 튀어나온 것이다. 대한민국의 겨울을 환하게 밝힌 촛불은 빨갱이 증오정치의 적폐를 청산할 수 있을까? 난 이 질문을 2017년 여름에 하면서 “빨갱이 증오정치의 청산은 언제쯤”이란 글을 경향에 투고했다. 지금이 그 때보다 어떤 면에선 더 암울하다. 광화문에 저 태극기부대 뿐 아니라 공당인 자한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태들을 보라! 공안정치와 적폐의 상징인 황교안이 제1야당의 대표가 되어 다음 총선의 공천권을 쥐었다. 김진태와 극우 백래쉬 경쟁을 하는 것을 이미 목도했다. 당선된 최고위원들의 면면은 어떤가? 얼핏 보면 광주 5.18마저 부정하는 자들이 판치고 있다. 10. 난 100주년 3.1절 기념사가 작전상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의도한 것이라 판단한다. 작년 3.1절, 제주4.3, 광주5.18, 광복절 등 여러 대통령 기념사와 비교해보아도 후퇴로 보인다. 현재화된 과거사의 내용이 바뀔리는 없으니 기념사가 놓인 국내외 정치, 외교,안보 환경이 달라서일거다. 단적으로 이번 2차 북미회담의 결과가 기념사 톤과 초점의 수정에 영향을 주었을 거라 추정한다. 그러나 난 나중의 이보 전진을 확신할 수 없기에 당장의 일보 후퇴한 이 기념사가 다소 아쉬울 따름이다. * 강성현, 2013, “아카(アカ)와 "빨갱이"의 탄생 -"적(赤-敵) 만들기"와 "비국민"의 계보학”, 한국사회사학회, <사회와 역사> 100호. * 강성현, “빨갱이 증오정치의 적폐청산은 언제쯤”, <주간경향> 2017.8.9
강성현
26 Jul 2017 · Public · …<대화를 위해서>라는 아이러니. 박유하 교수와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 그리고 그 지지자들이 말하는 '대화', 더 나아가 화해, 차유, 정의 등이 용어가 얼마나 원래의 용법에서 벗어나 있는지 많은 이들이 알게 될 것이다.
Aya Furuhashi's post
우에노 치즈코 강연회 소감① '위안부'문제 편 오늘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우에노 치즈코 씨 강연회가 있었음. 주제는 '여성혐오'. 이야기를 열기 위해 자신들이 경험/극복해온 여성혐오에 대한 발제를 3명이 하셨는데 모두 인상 깊고 좋은 이야기들이었다. 우에노 씨의 강연 내용은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 나온 이야기를 기본으로 해서 진행되며, "진정한 적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미리 모집한 질문을 사회자가 정리해서 물어보는 형식에서 질의응답이 진행되었고, 마지막에 『제국의 위안부』에 관련한 질문을 하셨다. 우에노 씨는 "나올거라고 생각했던 질문이 나왔다"면서 "하나의 주장을 마치 사상조사(踏み絵) 같이 되어 버리고 있는 상황은 안 된다. 우리는 대화를 원하기 때문에 『대화를 위해서』를 썼다. 읽어보시기 바란다" 정도만 대답을 했다. 그 후 플로어에서 질문을 받았는데 내가 첫 번째로 질문하게 되었다. (꼭 질문을 하고 가야 되겠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서^^;;) 내가 한 질문의 주지는 1) 최근에 '위안부' 문제가 한국에서 큰 이슈가 되는 것은 페미니즘 흐름과도 관계가 있다. 한국 젊은이들은 '위안부' 문제를 과거의 문제라기보다 강남 사건과 같은 맥락으로 내가 당할지도 모르는 피해로 보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알고 계시냐, 어떻게 생각하시냐, 2)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대화를 위해서』에서 몇 명 논자들이 한국 운동은 지나지게 신랄하게 비판을 하고 있다. 오늘 강연에서 진정한 적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나는 그 책에서 하는 논의가 '위안부'문제에 있어서의 진정한 적을 못 보게 하는 효과를 갖는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 는 것이었다. 우에노 씨의 대답 요지는 1) 무거운 질문이다, 2) '위안부' 문제가 처음에 나왔을 때 한국 가부장제가 가장 억압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3) 여성에 대한 폭력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일본을 고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발을 받을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 고발의 목소리가 국내나,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 있는 성폭력에는 향하지 않았더라면 일면적인 것에 불구하고, 그것을 우리는 내셔널리즘이라고 부른다, 4) 우리는 보다 보편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에서 일본과 한국의 문제도 생각하고 싶다. 나는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를 연구주제로 하고 있다, 5) 그것을 위해서 흑백이 아닌 가운데 있는 문제를 대화를 통해서 생각해 나가야 한다고 강력히 생각한다, 는 것이었다.
강성현
3 Jul 2016 · Public · …것이다. 정영환 선생의 책은 박유하 책을 비판하고 이를 해체한데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다양하고 풍부한 학술적 논의들의 시작이라는데 있음을 이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hani.co.kr
박유하 VS 정영환, ‘위안부’ 평가 두고 화상 격돌
강성현
11 Jun 2016 · Public · …있는 의도(아사노 교수는 박유하 옹호, 마이니치는 일본 정부의 엄호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가 매우 고약해 보인다. 자료를 선별적으로 착취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자료를 새로 발굴했다고 공표하면서, 과연 그러한가 그 옆을 살피지 않는 것도, 결과적으로 의도했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이런식으로 마이니치에 기사화한 것은 연구 윤리에서 책임질 부분이 있다고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일본군 '위안부' 연구자로서 언론에 공표된 한국의 자료 조사 발굴 상황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연구자로서 불성실하다는 증거이거나 아니면 한국 정도는 보지 않는다이다. (혹은 만약 한국에서 조사 발굴된 것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3월 자신이 발굴했다고 말한 것이라면, 이는 더 심각한 문제이다. 그렇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아래의 문서 자료는 아사노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자료임. (이렇게 공공에 자료를 공개한 것은 매우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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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yomi Asano's post
2016年6月10日、毎日新聞一面で紹介された資料です。私が見つけてから20年近く、埋もれていた資料です。たった一人の孤独な作業でした。お金のない大学院生時代に、女性基金からの調査委託を受けていったのですが、資料委員会が、まだ、正式には始まるか、始まらないかというときでした。時代が変わると、史料から見えてくる意味も違ってくること、この資料の再発見と関連資料から実感しました。 就業詐欺や家父長制の問題とからめて、強制性の問題を論じる上で、どのような結論を主張するにせよ(秦郁彦先生であれ、朴裕河先生であれ、吉見義明先生であれーという意味です-お名前を出して恐縮です)、この資料(の解釈)を避けて通れない(でしょう。それ)ほど、大事なものと思います。 内容は、是非読んで欲しいですが、現代人がまるでタイムスリップしたかのように、聞きたいことを全て聞いているような尋問です。(なお、補足すると、毎日新聞の報道となったのは、申し訳ないですが、この史料自体ではなく、この資料と関連する、一人一人の尋問記録です。それは、別な雑誌で公表予定です。一人一人の尋問の中に、連合国捕虜よりも悪い待遇に朝鮮人の徴用工が置かれていたことが、赤裸々に語られています。これは、いずれ、それが活字化されたときに、フェースブックに公表する予定です。毎日新聞記事の中身をじっくりと読まないで、何か政治的な意図を持って批判される方のために補足させていただきました。 追加の追加ですが、ここに掲げた尋問調書は、秦郁彦『戦場の性』P380でも、きわめて恣意的(連行そのものを否定する根拠として★)に、引用されています。韓国で人権センターと国史編纂委員会の方が、2015年2月に、質問項目だけを見つけておられたことは今回初めて知りました。しかし、毎日新聞の記事で紹介いただいた新発見史料とは、尋問の答えをまとめた調書とそれに関連した一人一人の尋問記録です。 ひとりひとりの尋問には、テニアンの洞窟での朝鮮人母子の射殺目撃体験、徴用工時代の捕虜以下の体験などが語られています。それとセットで慰安婦問題が語られていると、毎日は触れているのです。質問項目と質問の答えは、全く別の箱に入っています。韓国側はそれは見つけていなかったように報道されていました。たとえ見つけていても、発表していないのですから、「先に見つけた」云々をいえば言いがかりですし、また、質問項目と同時に答えも見つけていたとしたら、意図的に答えの方だけ隠して(アメリカ軍の慰安婦問題への関心が存在したこだけに絞り★)ゆがめて報道したことになります。) 二つの★、左右、全く対照的に、この史料が使われていることが、実は大きな問題なのです。特定の政治的な立場を克服して、新たな対話の道を開くために、この史料が役に立つことを祈ります。
2016年6月10日、毎日新聞一面で紹介された資料です。私が見つけてから20年近く、埋もれていた資料です。たった一人の孤独な作業でした。お金のない大学院生時代に、女性基金からの調査委託を受けていったのですが、資料委員会が、まだ、正式には始まるか、始まらないかというときでした。時代が変わると、史料から見えてくる意味も違ってくること、この資料の再発見と関連資料から実感しました。
就業詐欺や家父長制の問題とからめて、強制性の問題を論じる上で、どのような結論を主張するにせよ(秦郁彦先生であれ、朴裕河先生であれ、吉見義明先生であれーという意味です-お名前を出して恐縮です)、この資料(の解釈)を避けて通れない(でしょう。それ)ほど、大事なものと思います。
内容は、是非読んで欲しいですが、現代人がまるでタイムスリップしたかのように、聞きたいことを全て聞いているような尋問です。(なお、補足すると、毎日新聞の報道となったのは、申し訳ないですが、この史料自体ではなく、この資料と関連する、一人一人の尋問記録です。それは、別な雑誌で公表予定です。一人一人の尋問の中に、連合国捕虜よりも悪い待遇に朝鮮人の徴用工が置かれていたことが、赤裸々に語られています。これは、いずれ、それが活字化されたときに、フェースブックに公表する予定です。毎日新聞記事の中身をじっくりと読まないで、何か政治的な意図を持って批判される方のために補足させていただきました。
追加の追加ですが、ここに掲げた尋問調書は、秦郁彦『戦場の性』P380でも、きわめて恣意的(連行そのものを否定する根拠として★)に、引用されています。韓国で人権センターと国史編纂委員会の方が、2015年2月に、質問項目だけを見つけておられたことは今回初めて知りました。しかし、毎日新聞の記事で紹介いただいた新発見史料とは、尋問の答えをまとめた調書とそれに関連した一人一人の尋問記録です。
ひとりひとりの尋問には、テニアンの洞窟での朝鮮人母子の射殺目撃体験、徴用工時代の捕虜以下の体験などが語られています。それとセットで慰安婦問題が語られていると、毎日は触れているのです。質問項目と質問の答えは、全く別の箱に入っています。韓国側はそれは見つけていなかったように報道されていました。たとえ見つけていても、発表していないのですから、「先に見つけた」云々をいえば言いがかりですし、また、質問項目と同時に答えも見つけていたとしたら、意図的に答えの方だけ隠して(アメリカ軍の慰安婦問題への関心が存在したこだけに絞り★)ゆがめて報道したことになります。)
二つの★、左右、全く対照的に、この史料が使われていることが、実は大きな問題なのです。特定の政治的な立場を克服して、新たな対話の道を開くために、この史料が役に立つことを祈ります。
강성현
10 Feb 2019 · Public · …'표현의 자유'라는게 더 고민이다. 박유하 교수의 사례로 이 문제를 지긋지긋하게 대면해야 했다. 밖으로 눈을 돌려도 '샤를리 에브도 사건'이 참 고민스러웠다. 나도 한 때 내 페북 계정에 그걸 추모하고 지지하는 표시를 한 적 있다.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표현의 자유를 들어 이를 옹호한 것이 혐오 정치를 재생산했다는 점이다. 일본 재특회의 재일조선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혐오정치와 행동도 표현의 자유로 강변되기도 한다. 이쯤되면, 표현의 자유는 약자의 권리 보호가 아니라 강자와 기득권의 자기 정당화와 약자 및 피해자에 대한 폭력의 알리바이로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5.18 피해자 및 유족을 마치 강자이고 권력인 것처럼 떠들어대는 자한당의 저 의원들. 이 기득권과 누가 질새라 말과 글로 떠들어대는 지만원 같은 "지식인?"들. 이들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의 활용도가 딱 그런 수준이다.
강성현
10 Jun 2016 · Public · …있다. 아사노 교수는 박유하 주장의 옹호를 위해, 마이니치 신문은 일본 정부의 주장을 지원하는 입장에서 자료들을 편향적으로 착취, 더 나아가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번 자료의 질문지가 왜 중요한지는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들이 30개 항목의 질문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특히 미국이 친일파 조선인 포로를 제외하고 심문해 동향을 파악하려 했던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무엇보다 미국 전쟁부 군정보대(MIS)에서 최고위층의 결정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질문을 엄선한 것이다. 이 질문지를 가지고 포로 심문 대상이 된 조선인 포로들은 많다. 최소한 약 100명 이상이라는 얘기인데, 그 많은 답변 중에 이번 기사에서 선택된 것이 바로 1번 자료인 것이다. 아사노 교수와 마이니치 신문은 자신들의 주장을 확실히 뒷받침 하려면, 최소한 이 답변 자료들을 다 확인하고 말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65년 한일협정 수준으로 저열하게 봉합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이루어지는 이 시점에서 1번 자료의 답변을 앞뒤 맥락 자르고 이런 방식으로 보도한 것은 매우 악의적이다. 나는 일단 아사노 교수와 마이니치 신문의 연구 윤리 및 보도 윤리를 문제 삼고 싶다. 그 동안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자료들을 새로 발굴하고 언론에 공표하면, 어떨 때에는 수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이미 그런 자료들을 일본이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 연구자들이 그것도 확인하지 못하고 마치 새로운 것인 것 마냥 공표한다며 비판하곤 했다. 그런데 마이니치와 아사노 교수의 이번 기사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자신들이 그 동안 했던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1번 자료는 아시아여성기금 자료위원회가 조사 발굴한 자료라 할 수 있어도, 2번 자료는 이미 본 조사팀이 2015년 1월에 발굴해 한국 언론에 공표했다. 이것을 가지고 마치 올해 3월 자신들이 새롭게 발굴된 것처럼 쓰고 있는 것은 이 중요한 시점에 의도적이었든 비의도적이었든 왜곡이다. 그 내용도 악의적이다. 이 기사의 원제목인 “조선인 포로, 미국의 심문조서 발견... 일본 지배의 가혹함 기록” 대신에 마이니치 홈페이지 메인에서 “위안부, 지원 또는 부모에 의한 양도”로 바꾸어 게제하는 이유와 그 의도가 무엇이겠는가? Myungsuk Yun Hyein Han 길윤형 정진성 Jeong-eun Lee 전갑생 곽귀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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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관련 미국자료 (2) 1번 자료의 제목은 "조선인 포로들에 대한 특별 질문"이다. 이 자료를 소개하기 위해 배포한 보도자료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서울대 인권센터와 국사편찬위원회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조사를 통해, 태평양전쟁기에 미군이 식민지 조선의 억압 상황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했으며 ‘위안부’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문서를 새롭게 발굴하였다. - 태평양전쟁 시기 미군은 일본군의 군사 정보를 알아내고, 삐라, 확성기 등을 통한 심리전을 수행하기 위해 일본군 포로에 대한 심문을 광범위하게 진행하였다. 미군은 이러한 포로 심문을 통해, 일본군 위안소가 운영되고 있고 조선인 여성이 ‘위안부’로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이미 1942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 미군의 ‘위안부’ 관련 자료 중, 가장 큰 비중과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일본군 포로들에 대한 심문 보고서이다. 태평양전쟁기에는 포로를 전문적으로 심문하는 조직이 각 지역별 또는 戰區(Theater)별로 있었다. 예컨대 남서태평양지역은 ATIS, 버마-인도 전구에는 SEATIC, OWI 분소와 전술심리전팀, OSS 101파견대 등이 활동하였다. ※ ATIS : Allied Translator and Interpreter Section, 연합군 번역통역부 SEATIC : South East Asia Translation and Interrogation Center, 동남아시아 번역심문센터 OWI : Office of War Information, 전시정보국 OSS : Office of Strategic Service, 전략첩보국 - 전장에서 포로가 된 일본군 가운데 중요한 기술적, 전략적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포로는 미 캘리포니아주 트레이시(Tracy) 기지로 이동되어 본격적인 심문을 다시 받았다. - 이번에 발굴한 <조선인 포로들에 대한 특별 질문> 자료는 미 전쟁성(War Department)이 트레이시 기지의 지휘관에게 조선인 포로를 심문할 내용을 30개 문항으로 정리하여 지시한 메모 문서이다. - 자료 서두에는 “최근에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활발”해졌으며, 조선인들을 일본 통치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관점에 따라 분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비록 조선인이 일본군으로 징집되었지만,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별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 이 문서는 일제의 조선인 노동력 강제 징용에 대한 질문(제 3, 5, 6항), 식량 배급문제(제7, 8, 10항), 군 징집 문제(제12, 13, 14, 15항) 등을 구체적으로 물은 다음, - 제18항에서는 조선인 소녀들을 ‘위안부’로 '충원'(recruitment)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를 물어보고 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조선인들은 일본군이 위안부로 일하도록 조선 소녀들을 충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 프로그램에 대한 보통의 조선인 태도는 어떠한가? 포로는 이 프로그램 때문에 발생한 어떤 소란이나 저항을 알고 있는가?" "Do Koreans generally know about the recruitment of Korean girls by the Japanese Army to serve as prostitutes? What is the attitude of the average Korean toward this program? Does P/W know of any disturbances or friction which has grown out of this program?" - 총 30개 항목 중 ‘위안부’와 관련한 질문 항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미군이 이미 ‘위안부’ 제도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축적하고 있으며, 이 문제를 중요하게 취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또한 전장에 있는 일본군 ‘위안’을 위해 조선인 소녀를 동원하는 것에 대해 조선인의 저항이 있었는가라고 물어 본 것은, 조선인이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 있으며 그렇다면 대일본군 심리전에서 조선인과 일본인 간의 갈등을 활용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상이 배포된 보도자료의 내용이다. 이 자료의 생산 맥락, 특히 의도와 목적에 대해 조금 더 보충하면 다음과 같다. 이 자료의 생산자는 전쟁부 정보대 '포로 및 노획자료과'이다. 포로 심문(통역이 요구됨)과 노획 자료의 번역은 정보, 특히 적 정보를 확보하는 주요 수단이다. 캘리포니아주에 소재한 트레이시 기지는 맥아더의 남서태평양(SWPA)전구, 니미츠의 남태평양(SOPAC)전구, 영미중연합군의 버마-인도-중국(CBI)전구에서 생포된 포로들 가운데 가치 있는 중요한 정보를 가진 포로들을 선별해 미국으로 보냈을 때 구금되었던 곳이다. 그 가운데 조선인 출신 일본군 포로에게 미국(군)이 30개의 특별 심문 항목을 만든 것이다. 18번 항목은 일본군 위안부로 조선 소녀들을 충원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며, 이에 대해 조선인 태도를 묻고 있다. 이 문제로 발생한 소란과 저항에 대해서도 묻고 있다. 이 질문지는 18번 항목 뿐만 아니라 나머지 29개의 질문 속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1번과 2번은 창씨개명과 조선의 지방행정체계에 대해, 3-6번은 이주와 강제징용에 대해, 7-10번은 조선의 식량과 의복 사정에 대해, 12-15번은 강제 징집에 대해 묻고 있다. 그 밖의 질문들은 조선의 민심과 여러 사정들을 확인하고자 던지는 질문들이다. 그리고 미국의 한반도 점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반응을 묻고 있는 질문들이 후반에 깔려 있다. 국무-전쟁-해군 삼부조정위원회(SWNCC) 보고서 76, 77, 78, 79, 101번 보고서와 연결되는 질문들이다. 다시 말해 미국이 전후점령, 특히 대한 정책과 대일 정책을 입안할 때 자료로 활용되었던 자료들이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미국의 한국 점령과 통치와 관련한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할 때 고려된 중요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 간의 갈등과 분란의 주요 요소로 보고 접근했다는 것이다. 이 자료가 생산된 1945년 4월 4일이라는 시기는 미국(군)이 일본군 위안소 제도와 위안부 문제를 전쟁범죄로 인식해갔던 시기이기도 하다. 맥아더 총사령관에게 제출되었던 <일본군의 편의시설>이라는 리서치 리포트의 초고가 45년 2월에 이미 완성되었다. 이후 윌로비의 G-2내 ATIS는 이 리서치 리포트를 더 보완해간다. 참고로 질문지 앞에 첨부되어 있는 내용을 소개한다. "최근에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활발해졌다.(주어는 미국이다.) 따라서 모든 포로들에게 이뤄지는 일반적인 질문 외에 조선인 포로들이 관련 정보에 관한 증거를 제공할 수 있는 경우,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사용된다. ... 중략... 심문자는 또한 개별 조선인을 일본 통치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조선인의 관심에 따라 분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음 질문들 중 일부는(25-30번 포함) 친일파 조선인에게는 제공되지 않을 것이다." 그 밖에도 많은 중요 사항들을 얘기하고 싶지만, 지면상 줄인다.
강성현
4 Feb 2020 · Public · 이번 새학기에 성공회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역사와 운동>(강성현) 교과목을 개설해 운영합니다. 성공회대학교 재학생뿐 아니라 타대학 학점교류 협약을 맺은 서울 소재 대학 학생들도 각자의 학교에서 수강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타대학 학생들은 소속 대학 교무과에 문의해 안내 받으세요. (건국대, 광운대, 명지대, 삼육대, 상명대, 서강대, 서울과학기술대, 서울시립대, 서울여대, 세종대, 이화여대, 중앙대, 추계예술대, 한국외대, 한성대, 홍익대, 케이씨대학) 페친 대학생과 교수님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주변 분들에게 추천해주세요. . 1. 교과목 개설 배경 -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민적·국제적 관심사이며, 단지 역사에 국한되지 않고 인권, 평화, 여성을 교차하는 핵심 주제임 -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에 국한하는 특수 주제가 아니라 세계가 관심 갖고 공감하는 보편 주제임 - ‘홀로코스트 교육’이 하나의 브랜드화된 세계적인 인권평화 교육의 주제이자 모델이듯, 일본군 ‘위안부’ 교육도 한국의 여성인권평화 교육과 민주시민 교육을 묶을 수 있는 하나의 주제임 - 최근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도 역사수정주의가 힘을 얻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교육해 장기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이해하고 대응할 인재 양성의 필요성이 대두됨 - 성공회대학교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역사와 운동이라는 교양 교과목을 개설하는 것은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라는 모토에 잘 부합함 - 성공회대학교와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회(이하 연구회)가 협약을 체결해, 성공회대학교는 교과목 개설과 운영, 연구회는 국내외 최고 강사진과 강의 콘텐츠를 제공함. . 2. 교과목 개요 본 교과목은 ‘현재화된 과거사’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역사와 운동을 역사학, 법학, 사회학, 여성학, 기록관리학의 시각과 방법으로 폭 넓고 깊이 있게 다룬다. . 3. 학습 내용 -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는 일제의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의 역사, 식민지하 여성의 삶, 국가가 여성의 성을 관리하는 공창제의 역사를 종합할 때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 일본군 ‘위안부’ 운동은 1991년 8월 김학순의 증언 이후 1992년 수요시위로 본격화되었고, 한국의 반성폭력운동 및 여성운동과 함께 성장했다. 이후 이 운동이 어떻게 국제인권레짐과 만나고, 국제적인 여성 및 시민연대 운동, 미투와 위드유 운동으로 심화되면서 진행되어 왔는지 이해한다. - 역사수정주의적 백래쉬에 맞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대면하고 응답할 것인가를 현재화된 과거사와 계승된 책임의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 이상을 위한 자료 발굴과 해제, 증언 수집과 해석, 참여관찰 등 연구 과정과 방법론을 익힌다. . 4. 주별 학습 목표와 내용 - 총 15회 강의, 수요일 오후 3-6시 - 3학점 교양과목 - 수강 정원 60명 내외 3/4 강의 소개 – 강성현(성공회대) 3/11 (총론)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현재성 – 강성현 3/18 일제 식민지배의 역사와 법적 구조 – 조시현(민족문제연구소) 3/25 민족/계급/젠더 교차성 관점으로 본 식민지 조선과 여성의 삶 – 조경희(성공회대) 4/1 아시아 태평양 전쟁과 일본군 – 강성현 4/8 일제 공창제와 식민지 공창제, 그리고 현재 – 박정애(동북아역사재단) 4/22 일본군 ‘위안부’ 제도사 – 김부자(동경외대) 4/29 자료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 김득중(국사편찬위원회) : 연합군 및 일본 자료 5/6 일본군 ‘위안부’ 증언과 기억 문제 (1) – 양현아(서울대) : 증언집 5/13 일본군 ‘위안부’ 증언과 기억 문제 (2) - 김동희(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장) : 증언의 재현과 기억 5/20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 김창록(경북대) : 51년체제와 65년체제, 2015년 12.28 합의와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5/27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역사 (1) - 이나영(중앙대) : 운동의 발아: 1991년 김학순 증언과 국제인권레짐의 변화 6/3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역사 (2) - 이나영(중앙대) : 운동의 성장: 기억의 계승을 위한 국내외 시민활동과 확산 6/10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백래시’와 역사수정주의 –정영환(메이지가쿠인대) : 제국의 위안부와 반일 종족주의 사태 6/17 총정리 - 강성현
강성현
17 Apr 2019 · Public · 동경에서 묻자 체증이 도졌다? 한국에서 이 글을 보니 토가 나온다! 지난 이명박근혜 정부 때 구애하던 모습까지 떠오르니 더 그런다. 일관된거 같긴 하다. 아베정부와 일본의 미래가 부러워 동경에서 묻는 저 정신세계는 둘째치고, 버닝썬, 승리, 김학의, 장자연 같은 민망한 사건... 누추한 사건이 미래담론을 짓밟고 창의적 사고를 훼손한다는 저 말은 곧 도처에서 공분을 살듯~ 잊혀질까봐 두려우신건가? 이번엔 이 분 많이 걱정된다. ㅡㅡㅡ “동경에서 바라본 오늘의 한국은 갑갑했다. 문재인정권이 내건 ‘나라다운 나라’는 무엇인가. 반문은 자꾸 이어졌다. ‘정의로운 나라’는 무엇인가? 백성의 현실에 닿지 않는 정권의 정의(正義)는 여전히 정의인가? 우리는 희망을 갖고는 있는가, 누가 미래를 얘기하는가? 원호(元號)에 환호하는 이웃 일본처럼 소록소록 희망을 샘솟게 하는 정치를 펴고 있는가? 세간의 담론이 왜 버닝썬, 승리, 김학의, 장자연 같은 민망한 사건에 쏠리는가. 저 남부 지청쯤에서 해결해도 될 누추한 사건들이 미래담론을 짓밟고 창의적 사고를 훼손하도록 조장하는 옹졸한 행태에 한숨만 나왔다. 미래 한국을 눈물로 호소하는 청와대 참모는 없는가? 탁현민은 연출에 능한 곡예사였고, 사회수석 김수현은 부동산 감시센터장, 여기에 중국과 일본은 나 몰라라 북쪽만 응시하는 외교책사들. 그러다 ‘오지랖 넓은 짓 그만 하시라’는 핀잔을 들었다. ‘위안부합의 파기’는 하수(下手)였다. 100억 원에 팔아치운 박근혜의 무지한 결재가 적폐 중 으뜸이었지만, 그래도 국제관례를 무시하고 국가 간 합의를 일방 폐기하면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따져봐야 했다. 과격한 무효선언이 일본의 도덕적 양심을 일깨웠나? 일본 TV는 혐한프로를 종일 방영한다. 외려 일본인에게 한국은 ‘믿기 어려운 나라’로 낙인찍혔다. 동경에서 바라본 한국은 ‘불신 국가’며 미래담론이 증발한 ‘과거회귀 국가’였다. 동경에서 묻자 체증이 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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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동경에서 묻다
강성현
14 Aug 2016 · Public · 10억엔의 이름 "일본정부 예산 10억엔". 일단 한일 정부가 이렇게 부르는 데에는 10억엔이 정부예산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를 두고 배상금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화해치유재단 이사장인 김태현 교수가 일본정부의 10억엔은 배상금이 아니라 치유금이라고 했다가 그 발언을 취소하고 배상금이라고 번복한 적이 있다. 어디 이뿐인가? 얼마전 이원덕 교수도 국민일보에서 치유금이 핵심이 아니며, "누가 봐도 사죄반성금이요 사실상의 배상금"이라고 했지만, 바로 뒷 문장에서 "치유금으로서의 성격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상호모순적인 주장을 했다. 참 안타깝기 그지 없다. 10억엔의 성격을 드러낼 이름을 붙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정부의 입장에서는 배상금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일본정부는 한사코 배상금을 부정하고 치유금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고 있으니 약 20년 전 아시아여성기금의 '쓰구나이킨'을 둘러싼 상황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에서는 '쓰구나이킨'을 '위로금'이라 불렀고, 진실 규명 없는 금전적 해결이라 생각해 반대했다. 이에 반해 일본에서는, 특히 와다 하루키는 이것이 '속죄금'이며 사실상의 보상금이라고 주장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쓰구나이킨'은 다수 '위안부' 피해자들에 의해 사실상 거부되었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한국 정부가 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활 지원 등 여러 차원에서 보상에 나섰다. 이렇게 놓고 보니 현재의 한국 상황은 심히 심란하기 짝이 없다. 일본 정부가 치유금으로 못박은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화해치유재단이 이것은 사실상의 배상금이며 치유금이기도 하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 정부 예산이더라도 이게 진실규명과 법적 책임이 없는, 그래서 사죄하는 대신에 적당히 툭 던진 '돈질'임은 변하지 않는데, 이원덕 교수는 한국 정부와 재단의 입장을 대변하고자 마음 먹은 듯 예전의 자신이라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을 말들을 논리랍시고 주절주절 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정부가 가해 사실과 책임을 인정했고, 아베가 사죄 반성을 표명했으며, 배상금이기도 치유금이기도 한 이 돈과 상관없이 위안부역사기념관을 만들어 조사, 연구, 추모, 기억을 하면 된다고 있는 말 없는 말 다 주워담고 있다. 가해 사실, 책임 인정과 아베의 사과라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다시 반복해서 말해야 하나? 치유금 지급하고 위안부 문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애써 해결했다고 봉합한 것을 한일정부가 조사, 연구, 추모, 기억하게 할 것 같은가? 화석화된 방식으로 조용히 하면 허락해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면, 그걸 허락할리가 없다. 한일 외무장관의 '12.28합의' 이후 한국에서 '위안부' 관계 사업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유네스코기록등재 사업 뿐 아니라 위안부 백서 사업, 자료 조사 사업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고 하는 말인가? 최소한 이원덕 교수는 이 사업들에 직간접적으로 관계했거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아래의 길윤형 기자의 기사는 이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일본정부 예산의 10억엔의 이름은 어떻게 명명될까?
hani.co.kr
양국 10억엔 명칭 의도된 ‘OOO’ …일본 일관되게 “배상금은 아니다”
End of resul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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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of resul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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