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e-Kwa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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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 10편]
뉴욕거주 당시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딸아이를 데리고 예술영화전문관 “The Film Forum”에 찰리채플린의 “City Lights”를 보러 가곤 했었다. 영화 내내 둘이 웃다가도 어김없이 마지막 장면에서 채플린이 연기하는 거지가 자신의 도움으로 눈을 뜨게 된 맹인 소녀와 재회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함께 눈물을 쏟아 붓곤 했다. 어두운 극장을 나와 함께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밝게 뒤덥힌 뉴욕 거리를 걸으며 영화이야기에 여념없던 우리의 모습은 지금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마침 뉴욕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는 딸아이와 영화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딸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무얼까 궁금해져서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아래가 아이가 보내온 리스트이다:
1.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牯嶺街少年殺人事件, 에드워드 양, 1991)
2. 사냥꾼의 밤 (Night of the Hunter, 찰스 로턴, 1955)
3. 밀양 (이창동, 2007)
4. 찰리브라운 크리스마스 (A Charlie Brown Christmas, 빌 메렌데즈, 1965)
5. 러시무어 (Rushmore, 웨스 앤더슨, 1998)
6. 현기증 (Vertigo, 앨프래드 히치콕, 1958)
7. 나생문 (羅生門, 쿠로자와 아키라, 1950)
8. 십계: 1편 (Dekalog, 크리스토프 키에슬롭스키, 1988)
9. 꽁치의 맛 (秋刀魚の味, 오즈 야스지로, 1962)
10. 선셋대로 (Sunset Blvd., 빌리 와일더, 1950)
아이가 자라면서 되도록이면 다양한 국가, 시대의 영화들을 보여주려고 노력을 했다. 여기에는 몇가지 생각의 줄기가 있었는데,
- 우선 아이가 매체에 지배당하지 않고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즉, 매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읽어 내려가고 동시에 자신을 투영해볼 수 있는 능력을 아이가 키워 나가기를 바랬던 것 같다.
- 둘째로는 – 나 또한 그랬듯이 –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채로운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인간애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이가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실직고하자면, 아이가 자라면 자랄수록 ‘교육’이라는 측면보다는 아이의 영화평을 들으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얻는 즐거움이란 부분이 커져갔다. 아이의 생각을 듣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가령 딸아이가 히치콕의 “현기증”을 다 보고나서 뱉은 말들을 지금도 나는 잊지못하는데, 그것은 -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들 중 가장 무서운 귀신 이야기네” – 라는 말들이었다.
즉 딸아이에게 히치콕의 현기증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사랑하는 이를 바꾸려고 하고, 그로 인해 상대방을 잃어버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행동을 무한반복하는 (그러한 저주를 받은) 어느 남자의 욕망에 대한 (귀신) 영화로 읽은 것이고,
나 또한 현기증을 사랑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한 영화로 해석했던 지라 아이의 반응이 반갑고 놀라웠던 것 같다.
아이가 성년이 되어서, 영화에 대해, 음악에 대해, 그리고 우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여러가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교감할 수 있는 친구 같은 부녀지간이 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성탄이다.
*아래는 내가 딸아이에게 보내준 나의 영화 “탑텐 리스트”이다.
1. 거울 (Zerkalo,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1975)
2. 미치광이 피에로 (Pierrot le Feu, 장뤽 고다르, 1965)
3. 복수는 나의 것 (復讐するは我にあり、이마무라 쇼헤이, 1979)
4. 인정지풍선 (人情紙風船、야마나카 사도오, 1937)
5. 안녕, 용문객잔 (不散, 차이밍량, 2003)
6. 현기증 (Vertigo, 엘프레드 히치콕, 1958)
7. 연연풍진 (戀戀風塵, 허샤오시엔, 1986)
8. 올리브나무 사이로 (Through the Olive Trees,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1994)
9. 뮤직룸 (Jalsaghar, 사트야지트 레이, 1958)
10. 멕케이브와 밀러부인 (McCabe and Mrs. Miller, 러버트 알트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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