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7

알라딘: [전자책] 책임에 대하여 - 현대 일본의 본성을 묻는 20년의 대화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알라딘: [전자책] 책임에 대하여
책임에 대하여 - 현대 일본의 본성을 묻는 20년의 대화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지은이),한승동 (옮긴이)돌베개2019-10-14 



 9.5 100자평(3)리뷰(9)


책소개

과거를 잊고 미래를 닫은 국가, ‘일본’에 역사의 책임을 묻다. 한일 관계가 순탄한 길을 걸은 적은 거의 없었지만, 요즘처럼 험난했던 적은 드물었다. 2015년 12?28일 위안부 합의, 2018년 한국 대법원에서 내린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의 승소 확정 판결 등 한일 간의 갈등과 반발이 지난 몇 년 간 꾸준히 누적되었다.

급기야 아베 정권이 지난 7월 1일 반도체 소재의 한국 수출 제재를 선언하면서, 한국과의 정치.사회적 갈등을 이유로 현대 세계 경제 체제의 근간인 자유 무역 질서를 뒤흔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은 한국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대화인가, 화해인가, 싸움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굴복인가. 바야흐로 반일과 NO일 외침으로 뜨거운 지금, 일본의 본성과 정체를 밝히고 그 책임을 논파하는 책을 펴낸다.


목차
한국어판 후기 서경식
한국어판 후기 다카하시 데쓰야

1. 전후민주주의는 ‘도금’이었나
응답 책임에서 도피한 일본의 20년 / 가토 노리히로와의 논쟁(1995년) / 내셔널리즘과 일본 리버럴파 / 「국기 국가법」(1999년) / 여성국제전범법정/NHK 프로그램 수정 사건(2000~2001년) / 「교육 기본법」 개정(2006년) / 야스쿠니 문제: 감정의 연금술

2. 일본의 본성
쇼와 천황의 죽음(1989년) / ‘말의 무늬’ 발언(1975년) / 언론 탄압과 공허한 주체 / 고이즈미 방북/북일 평양 선언/일본인 납치 문제(2002년) / 『젠야』 창간(2004년) / 박유하의 『화해를 위해서』 비판 / ‘공감적 불안정’이라는 레토릭 / 자크 데리다의 용서에 대하여 / 리버럴파의 퇴락 / 권력적 침묵이라는 것 / 『제국의 위안부』와 일본 리버럴파 지식인 / 모럴의 문제 / 포스트콜로니얼 연구를 묻는다

3. 희생의 시스템과 식민주의
이 나라의 희생의 시스템이란 / 후쿠시마, フクシマ와 福島 / 사람이 지닌 선성이란 무엇인가 / 왜 미군 기지 철수론을 말하는가 / ‘악마의 섬’은 본토다 / 기지 인수론은 과잉 윤리주의인가 / 핵을 부정할 수 없는 이중 기준의 나라

4. 보편주의의 폭력
일본적 보편주의란 무엇인가 / 중심부 일본 국민의 멍에 / 상징 천황제라는 본성 / 허구의 평화주의

자료편
한 점의 등불―다카하시 데쓰야 / 돌아보니 수치심 없이는…―다카하시 데쓰야 / 이런 시련 없이는…―다카하시 데쓰야 / 적이 몇만 명 있다 해도…―다카하시 데쓰야 / 고야산의 조문상―다카하시 데쓰야 / 데리다와 희생에 대한 질문―다카하시 데쓰야 / 드문 희망―서경식 / 무라야마 담화 / 아베 담화 / 연표 1989~2017년

일본어판 후기 일독의 제거라는 과제―다카하시 데쓰야
일본어판 후기 일본형 전체주의의 완성―서경식
옮긴이 후기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한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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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나는 『전후 책임론』에서 ‘응답 책임‘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만,
알아 버렸다면 응답할 책임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응답 가능한 responsible 이상, 응답할지 말지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모든 것에 응답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것에 응답할... 더보기 - 푸른꽃
데리다에 따르면 무조건 용서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입니다.현실에는 늘 조건부 용서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집단 단위로 용서를 이야기할 경우에 더 분명히 드러납니다. 즉 집단을 단위로 무조건 용서나 일방적인 용서를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며 현실적이지 않다는 말입니다.p.107 - 청공
데리다의 이야기는 아무리 피해자가 납득하는 선까지 접근하더라도 완벽한 해결은 없으며 법적,정치적 결정은 반드시 어딘가에 폭력을 내포한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결정,결단을 내려야만한다, 결정,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정의는 없다는 것이죠...한번 결정이 내려지면 그 정의는 하나의 법으로서 상황을 지배하게 됩니다.그 밑에서 또 상처받거... 더보기 - 청공
전쟁과 차별의 시대를 허용하는 것은 우리의 패배다.
그러나 저항하지 않고 패배하기보다 저항하다 패배하는 쪽이 훨씬 낫다...어떤 어두운 시대에도 어둠에 저항하며 사고하고,말을 만들고,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타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있었다.그런 사고, 말, 목소리에 용기를 얻어 우리도 사고하고, 말을 만들고, 목... 더보기 - 청공
끝없는 사방은 암흑에 갇혀 있지만 천공에는 별 무리가 빛나고 있다.
눈雪을 비추기에는 너무 멀고 약한 빛이지만
기쁘게도 책을 비추는 한 점 등불이 있다.
_ 궈모뤄 - 청공
저자 및 역자소개
서경식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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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1974년 와세다대학 문학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도쿄케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6년부터 2년간 성공회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머물며 한국의 다양한 지식인,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받았고 2000년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으로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민주주의 실현과 소수자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제6회 후광김대중학술상을 받았다. 저자는 1970년대 ‘재일조선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알려진 조작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형들(리쓰메이칸 대학 교수인 서승과 인권운동가인 서준식)의 석방과 한국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이때의 경험은 이후의 사색과 문필 활동, 강연으로 연결되었다.
한국에는 1991년 출간된 『나의 서양 미술 순례』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그 밖에 『청춘의 사신』,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언어의 감옥에서』, 『나의 서양음악 순례』,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나의 조선미술 순례』, 『시의 힘』, 『내 서재 속 고전』,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책임에 대하여』(공저) 등의 책이 소개되어 있다. 접기
수상 :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 1995년 마르코폴로상
최근작 : <책임에 대하여>,<나의 영국 인문 기행>,<[큰글자도서] 나의 서양음악 순례 2 > … 총 48종 (모두보기)
다카하시 데쓰야 (高橋哲哉)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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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후쿠시마현에서 태어났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 중 하나인 도미오카마치 등에서 유소년기를 보냈다. 후쿠시마 고등학교와 도쿄대학교 프랑스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도쿄대학교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를 거쳐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반전, 반차별, 반식민주의’를 내건 NPO ‘전야(前夜)’에서 서경식 등과 함께 활동하기도 했고, ‘헌법 9조’ 수호, 천황제 폐지, 일본의 전쟁 책임론을 주장하고, 지역사회와 종교의 희생 논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으로 명성이 높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전후책임을 묻는다』, 『역사/수정주의』,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등과 같은 전후 일본 체제를 둘러싼 역사 인식과 차별의 구조를 다룬 책들이 널리 소개되어 있으나, 아직 소개되지 않은 『역광의 로고스』, 『쇼아의 충격』, 『데리다-탈구축과 정의』, 『반(反) 철학입문』과 같은 철학적 비평서들도 엄정한 논리로 그 명성이 높다. 『기억의 에티카』는 그의 초기 철학적 비평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접기
최근작 : <기억의 에티카>,<책임에 대하여>,<애도의 정치학> … 총 56종 (모두보기)
한승동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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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서강대 사학과를 다녔다. <한겨레신문> 창간멤버로 참여해 도쿄 특파원, 국제부장과 문화부 선임기자를 거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미국·일본의 패권 게임과 우리의 생존법』, 『지금 동아시아를 읽는다: 보수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생각』이 있으며, 역서로는 『삼국지 그림 기행』, 『1★9★3★7 이쿠미나』, 『우익에 눈먼 미국: 어느 보수주의자의 고백』, 『시대를 건너는 법』, 『나의 서양음악 순례』, 『디아스포라의 눈: 서경식 에세이』,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오키나와』, 『보수의 공모자들: 일본 아베 정권과 언론의 협작』, 『내 서재 속 고전: 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 『재일조선인: 역사, 그 너머의 역사』,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퇴락한 반동기의 사상적 풍경』, 『종전의 설계자들: 1945년 스탈린과 트루먼, 그리고 일본의 항복』, 『책임에 대하여: 현대 일본의 본성을 묻는 20년의 대화』, 『완전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 양심적인 일본 변호사들의 징용공을 위한 변론』, 『정신과 물질』, 『제국의 브로커들』 등이 있다. 현재 출판기획 및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사회를 말하는 사회>,<지금 동아시아를 읽는다>,<대한민국 걷어차기> … 총 5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쟁과 전후의 책임에서 도피한 일본은 어디로 가는가?

지금 일본은 완전히 새로운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2015년 아베 신조 총리 명의로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했고, 올해 새 천황이 즉위하며 연호 역시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아베 정권은 2020년에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여 장기 집권이 가져온 듯한 표면적인 번영을 전 세계에 과시하고, 그 여세를 몰아 자위대를 명실상부한 일본의 군대로 명기하여 이미 퇴색될 대로 퇴색한 평화 헌법의 취지를 완전히 뒤엎는 헌법 개정까지 실현하려 하고 있다. 그렇게 찾아올 ‘아름다운 나라’ 일본은 우리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다른 국가일 것이다.
그러나 실은 그 일본이야말로 새로운 동시에 낡은, 무책임한 일본이다. 아직도 참화의 상처가 생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해 지역들을 외면하고, 본토와 미국의 식민지와도 같은 오키나와, 식민지 시기 위안부나 징용공 강제 동원과 같은 폭력을 행사했던 한반도를 무시한 채 도달하게 될 ‘새로운 일본’은 전후 민주주의 70년의 역사를 거스른 군국주의의 옛 일본 제국에 가까울 것이다. 일본은 패전 이후의 노력에서 도주하여 패전 이전의 망상으로 회귀하려 하고 있다.
『책임에 대하여』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우려하며, 과거 일본이 자행한 식민주의와 군국주의의 폭력을 직시하도록 지치지 않고 호소해 온 두 지식인 서경식과 다카하시 데쓰야의 간절한 대담을 담은 책이다. 현대 일본의 가면과 본성을 드러내는 이 책은 현대 일본이 외면하는 대표적인 주제들인 위안부 문제, 오키나와 미군 기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천황제의 모순을 아우르며 급격히 후퇴하고 있는 현대 일본의 퇴행과 위기를 파헤친다. 일본의 마지막 비판 정신의 광휘를 보여 주는 두 지성은 전쟁 시기 일본 제국이 저지른 범죄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와 우익의 외면과 왜곡은, 패전 후 안보 체제 확립이라는 명분 아래 미국의 군사 기지로 사실상 양도된 오키나와에 대한 일본의 무시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논파한다.
이처럼 근현대사를 관통해 식민지 조선과 오키나와와 같은 타자를 이용해 일본 본토의 안정을 지탱한 식민주의라는 본질을 외면한 결과, 원전 사고를 당한 후쿠시마마저 백안시하는 현재의 일본에 이르렀다. 무뢰한 12?28 위안부 합의에 대한 전가, 강제징용공 보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무역 보복 조치, 그리고 그것이 무역 보복이 아니라는 궤변이야말로 일본의 반복되는 무책임의 표상과 같다. 과거 역사의 책임을 외면한 숱한 말바꿈과 적반하장은 미래의 한일 협력과 공존까지 파국으로 몰고 가는 형국이다.
『책임에 대하여』는 한일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인 식민주의와 전체주의, 보편주의로 위장한 평화주의 등 일본의 본성을 섬세하고 논쟁적으로 짚는다. 과거의 책임을 일방적으로 말소하려는 일본의 무단과 강변을 꿰뚫고, 한국과 일본의 바람직한 대화와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폭력과 착취의 역사를 인식하고 사과하는 노력을 지속하는 것만이 책임의 본디 뜻이라는 사실을 거부하는 일본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나는 이 책에서 일본 국민 다수에 내재한 ‘식민주의적 심성’과 싸우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향후 다가올 시대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며 다음의 전쟁일 것이다. 그 위기를 앞에 두고 우리에게는 각별한 각성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한국인들이 ‘일본’을 더 깊이 이해해 주기 바란다.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일본에 대한 더 깊은 이해는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_서경식

■일본의 민주주의는 한낱 ‘도금’에 불과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전체 대담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단연 ‘도금’(メッキ·鍍金)과 ‘본성’(地金)이다. 두 저자는 1945년 패전 이후 전후 민주주의라는 도금이 과거의 식민주의, 군국주의, 제국주의라는 일본의 본성을 덮고 있었다 말한다. 1990년대 후반 이후의 지난 20여 년 동안 일본이 보인 우경화와 과거사 인식의 퇴행은, 바로 전후 민주주의의 껍질이 벗겨지면서 드러난 본성이라는 것이다. 지난 70년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일본 사회에 안착하지 못한 채 한낱 ‘뺑끼’, 도금에 불과했다는 비판의 의미도 찾을 수 있다.
먼저 1부 「전후민주주의는 ‘도금’이었나」에서는 일본이 자국의 과거사에 응답해야 하는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전후 민주주의 체제의 균열과 어떤 관계인지 살펴본다. 두 저자는 제국주의 시대의 과거사 책임을 부정하며 일본 보수 세력이 추진한 역사 수정주의 캠페인이 힘을 얻고, 북한이 인정한 일본인 납치 사건을 무기로 삼아 역으로 위안부 문제 등 한반도에서 자행한 식민주의적 폭력을 회피한 ‘응답의 실패’가 1990년대 후반 이후로 지난 20년 간 일본의 우경화를 가속화시킨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역사 수정주의가 일본에서 세력을 얻으면서 일장기와 <기미가요>를 국기와 국가로 지정하는 「국기 국가법」이 제정되고, 과거와 같은 국가주의를 교육 제도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으로 「교육 기본법」이 개정되었다.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들이 이런 식으로 정책화됨으로써, 시민 개개인의 비판적 정신을 강조하고 국가의 독주는 통제하는 사회를 만들려 했던 일본 전후 민주주의의 목표가 퇴락한 것이다.
2부 「일본의 본성」에서는 히로히토 천황의 죽음에서 일본의 언론들이 보여 준 과거사 인식의 한계와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및 그에 동조한 일본 리버럴파 지식인들의 모순을 주로 이야기한다. 2000년에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 위안부 문제의 최종 책임자로 선고되기도 했던 히로히토의 사망 이후, 일본 언론이 그가 평화주의자였으며, 전후 일본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기여한 바가 컸음을 강조한 사실을 이 책은 통렬히 비판한다. 천황제에 대한 문제 인식이 미약한 일본 언론의 태도는, 바로 히로히토가 통치자로서 주도한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는 현대 일본의 본성과도 직결된다. 일부 위안부의 사례를 근거로 삼아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변호하는『제국의 위안부』의 저자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에 의미를 과잉 부여하는 일본 리버럴파 지식인들의 무책임한 태도도 함께 지적한다. 박 씨의 주장처럼 위안부 피해자 중 일부에게 어떤 모순이 있더라도 그것이 이 전쟁 범죄의 책임을 희석할 이유는 될 수 없다는 두 저자의 입장은 명확하다.

이념을 말해야 할 사람들이 맥없이 이념을 내버릴 때에 자신은 나약했다는 아픔이 수반되는 자기 부정이라면 또 몰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거나 이것이 현실주의라거나 거기에 집착하는 놈이 바보라는 식으로 자기 정당화를 하는 것, 여기에 지금 이 대담의 주제 중 하나인 일본 리버럴파가 지닌 문제점이 있다고 봅니다. _서경식

제노사이드나 전시 성폭력 등의 심각한 범죄는 일단 그것이 일어나 버리면 돌이킬 수 없어요. 그 돌이킬 수 없음은 영원히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런 가운데서도 가능한 한 최선의 결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모든 법적 정치적 결정은 원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며, 부단한 비판과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말이죠. _다카하시 데쓰야

■보수와 리버럴을 가리지 않는 일본의 식민주의와 ‘희생의 시스템’!

3부 「희생의 시스템과 식민주의」에서 위안부 문제와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후쿠시마를 관통해, 일본의 역사적 책임과 식민주의의 문제를 논하는 두 석학의 비판적 시야는 과연 깊고 넓다. 현재 일본은 위안부와 징용공을 비롯해 과거에 식민지 조선 등에서 저지른 폭력과 과오를 의도적으로 망각, 은폐하고 있다. 이런 태도야말로 일본 본토가 패전 직후부터 자신들의 방어를 위해 감당했어야 할 미군 기지들을 오키나와에 몰아넣고, 지금까지도 그런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은 채 무작정 외면하는 무책임성의 근원이라고 이 책은 지적한다. 보수 세력은 과거에는 소련, 현재는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미일 군사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리버럴파는 미일 군사 동맹의 해소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차이는 있지만, 오키나와의 현상을 먼저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점은 동일하다는 사실도 이 책의 문제의식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평화주의를 표방한 리버럴파가 오키나와 내셔널리즘이라고 비판하며 오키나와 미군 기지의 본토 이전론을 반대하는 모순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이 저지른 폭력에 희생된 오키나와, 위안부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는 것이 특정 집단, 민족의 입장만 내세운 내셔널리즘이라고 말하는 일본 리버럴파의 협소한 관점을 이 책의 저자들은 깊이 우려한다. 이렇게 소수자와 약자를 착취하고 그들의 존재를 지워 버리는 일본의 뿌리 깊은 식민주의는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의 원전에서 일어난 사고로 엄청난 희생을 당한 후쿠시마에 대한 멸시와 외면으로 이어진다.
4부 「보편주의의 폭력」에서는 보편주의라는 이름 아래 현대 일본이 취해 온 양면성의 모순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일본은 중국이나 북조선을 비판할 때는 항상 자신들이 ‘법의 지배’, ‘자유’, ‘인권’, ‘민주주의’ 등을 지키는 유럽적 보편주의 그룹의 구성원임을 강조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상징 천황제를 정점으로 한 일본식 보편주의를 강화하고 있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특히 아베 정권이 집요하게 추진하는 헌법 개정에서도 과거 전후 헌법에 도입된 “국민 주권, 기본적 인권, 평화주의”와 같은 유럽적 보편주의 이념들을 미국이 주입한 비일본적인 것으로 배격하며, 천황을 명실상부한 국가의 상징으로 “받들어 모시는” 과거 제국 헌법의 일본적 보편주의를 되살리려 한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현재의 상징 천황제는 일본이 얼마든지 ‘대동아 공영권’과 같은 과거의 일본적 보편주의로 회귀할 수 있는 도구인 동시에, 일본 사회가 전쟁 범죄, 식민주의와 같은 과거사의 책임을 회피, 망각하는 수단임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의 저자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정치적 반동의 국면에 저항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추구하는 양국의 시민들이 연대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일본인들이 한국의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하려는 쪽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려는 쪽, 오키나와에 대해서도 미군 기지의 오키나와 내 존치, 이전을 반대하는 쪽과 연대해야만 일본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호소는 지금 한국인들도 일본 내에서 자신들의 과거사 책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인들과 협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책의 마지막 자료편에서는 서경식과 다카하시 데쓰야가 잡지 『젠야』前夜에 기고했던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다룬 여러 에세이들과 지난 20년 간 일본 정부의 변화한 과거사 인식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공식 문서인 ‘무라야마 담화’와 ‘아베 담화’의 번역문을 실어서 독자들이 이 책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도움이 되고자 했다.
최근 개봉한 미키 데자키의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主戰場이 다양한 인물들을 담은 영상으로 일본의 무책임한 과거사 인식을 논박했다면, 이 책은 일본의 비판 정신을 대표하는 두 지식인이 현대 일본의 본성인 식민주의와 역사적 무책임의 근원을 언어로 파헤친 주전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의 과거사 인식이 급격히 퇴행하고, 한일 간의 갈등이 격화되는 지금, 일본의 무책임한 본성을 예리하게 논파한 『책임에 대하여』를 권한다.

나는 오키나와의 역사를 보았을 때, 너무 가혹했던 식민 지배, 식민주의 권력이 오키나와에 오랫동안 행사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기지 문제는 식민주의의 현재적 형태이며, 오키나와는 일본, 미국의 이중 식민주의에 노출된 것입니다. 일본을 이용한 미군의 지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미군이 필요한 일본의 지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_다카하시 데쓰야

원전 사고가 가해 행위라는 점을 더욱 명확히 해 두어야 합니다. 같은 국민 가운데 누군가 불행한 사람이 피해를 당했지만 그 사람이 참고 견디는 것은 국가 때문이다―. 그런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것은 자국민만이 아니라 지구 환경이나 다른 민족, 미래의 세대에 대한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가해 행위이며, 그 행위는 지금도 계속된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해야 합니다. 타자에 대한 책임의 인정과 사죄, 보상이 없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런 구도는 예컨대 ‘위안부’ 문제나 오키나와 기지 문제 등과도 그 밑바탕에서 상통通底합니다. _서경식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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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편의 내각총리대신 담화, ‘아베 담화‘를 읽어보면 패전 70년(74년), 지금 현재 그리고 앞으로 일본이 어디로 갈지가 상상이 된다. 전쟁과 차별 그 끝은 결국 일본을 포함한 인근 아시아 또는 전세계 수천 또는 수억명의 무고한 희생과 고통이다.  구매
moon 2019-09-14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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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명예혁명.프랑스의 혁명.미국의 독립선언서 에 나온 인권.민주.평등의 보편적 가치는 막부에서 천왕제라는 전제강화속에 산업혁명을 이루었고 대동아 공영이리는 식민주의 이대올로기로 1945패전이후 반성과새로운 출발을 잃은 일본의 본성에대해서...  구매
청양 2020-08-1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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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에 대하여》

: 현대 일본의 본성을 묻는 20년의 대화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대담 |  한승동 옮김 |  [돌베개]

 

‘일본의 책임에 대한 오랜 물음의 대화’

 

얼마전 일본에서 전시되고있던 ‘위안부 소녀상’ 작품의 전시 중단 소식을 접했다. 이 뉴스와 후속 기사를 보면서 이 사건의 양상이 내게는 이전과는 다른 맥락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최근에 서경식 교수의 저서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를 읽고난 후 이런 뉴스가 내게 달리 보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뉴스에서는 이 사건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 보도되고 있었다. 일본 내에서 소위 진보적이라고 자인하는 사람들도 뉴스에 보도되는 맥락만을 따져본다면 소위 ‘예술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되었다’는 방향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한 사회의 시민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는 일은 응당 중요한 사안이다. 그리고 시민이 가진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는 사회 존립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쉽게 제한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문제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음을  그리고 이 사태가 또 하나의 우려를 재확인하는 사례임을 알게 되었다.

 

뉴스에 보도된 이 사건의 배경은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작품 ‘앉아있는 소녀상’이 일본 내에서 전시되는 가운데, 일부 일본인들의 반발과 주최측에 가해진 압력으로 이 작품의 전시가 중단된 것이었다. 내가 느낀 위기감은 ‘표현의 자유’ 문제에 국한되어 해결의 초점이 맞추어지면, 일본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식민주의’의 영향으로 결과한 사건의 본질이 회피되고 심지어 무화(無化)되는 상황으로 종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일본의 입장에서는 식민주의라는 본질을 건드리지도 않고, 표현의 자유를 위해 ‘양보’할 필요가 있는가의 논쟁으로 소비될 수 있기에, 아베 정부에 동조하는 세력들에게는 편리한 변명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과 반성으로 이어지는 길을 차단하는 구실이 마련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보도된 뉴스는 ‘표현의 자유 억압’문제에 관심이 맞추어지다보니 보다 본질적인 면이 소홀하게 다루어지거나 회피되고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읽게 된 서경식 교수와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대담짐 《책임에 대하여》에서 바로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서경식 교수와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 두 대담자들은 일본의 보수세력에 대항했던 리버럴파 지식인들이 보여준 식민주의에 대한 ‘인식’을 외면하는 상황을 ‘응답 책임의 회피’로 표현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의 비판적인 집단임을 자처하던 리버럴파가 몰락 내지는 자폭한 상황은 결국 아베 신조를 비롯한 강경파가 착실하게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기회가 되었다. 소녀상 전시 중단과 같은 사건이 일본 사회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이유는 일본 사회가 왜곡된 역사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강경파세력이 너무 비대해짐과 동시에 제한적이나마 비판적인 기능을 담당해왔던 일본의 리버럴파 지식인들의 붕괴에 가까운 무기력으로 비판기능이 제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일본의 리버럴파 지식인들에게는 보다 근본적으로 넘어설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바로 ‘천황제’의 존재다. 일본사회는 ‘천황’을 중심으로 어느 시기나 국민통합을 이루어내던 국가였기에, 천황에 대한 강력한 인정 정서에 기반하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 책 《책임에 대하여》에서 두 교수는 ‘일본국의 본성에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식민주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일본 사회에서 ‘천황’이라는 단어가 수반하는 힘은 특별하다. 일본 국민과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천황=국가’라는 도식 속에 스스로가 ‘신민’이 되는데 이견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분명히 정치와 종교를 헌법상에서 분리하고 명시하고 있음에도, 일본의 패전 7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천황에 대한 비판은 매국노가 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전 후 제정된 헌법 상에 명시되어 있는 개인적 자유의 보장이 일본인들 스스로 간절히 원하여 누리게 된 시민적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얻어낸 경험없이 연합군에 의해 ‘주어진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진정한 의미에서 제대로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후에 그나마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경험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이 기회를 여러 번 놓쳐 버린 것이 오늘의 전체주의적인 일본의 모습에 이르게 된 큰 원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천황은 평화주의자였다’라며 본질을 흐리는 발언을 하거나, ‘요새 그런 이야기(민족, 식민주의)를 하면 내셔널리스트라고 비난 받아요’라는 말을 리버럴파로부터 듣게되는 상황이 된 것으로 보인다.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가 지적하는 ‘희생의 시스템’에는 과거로부터 여전히 지속되는 위안부나 조선인 징용공 문제 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중인 후쿠시마 원전사고 및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가 있다. 대담자들은 이 모든 사례가 바로 식민주의의 과거 및 현재의 형태에 다름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이 사례들에 공통적인 특징은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희생에의 강요’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서경식 교수는 한결같이 해당 문제의 이면에 잠재되어 있는 ‘식민주의’를 지적하고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두 대담자는 일본국의 본질적인 ‘식민주의’의 척결을 할 수 있었던 여러 시기를 일본 사회는 놓쳤다고 한다. 패전 이후 연합군에 의해 ‘주어진 자유’이긴 하지만 자국민 스스로가 천황제를 폐지하고 자주적인 국민으로서의 인식과 행동으로 이어졌다면, 아직까지도 이어져오는 여러 ‘희생의 시스템’을 목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상당수의 진보적인 일본 지식인들은 ‘천황’제라는 장벽을 극복하지 못했고, 이런 정서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의 ‘전체주의’ 시대가 도래하는데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풀이해볼 수 있다. 여기에는 일본의 정당 혹은 기타 정치 집단이나 매스 미디어 그리고 학계의 저항이 거의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카하시 교수가 “그 결과로 늘 저항자는 가장 마이너인 입장으로 내몰리고 고립되어 버리는 것”이라고 한 말에서, 일본 내에서도 극소수인 이 두 대담자의 고립감과 어려움을 간접적으로나마 읽어낼 수 있었다.

 

전체주의 일본이 형성된 결과는 다시 일본인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오게 된다. 예를 들면 미일 안보체제는 일본의 헌법을 초월한 존재인 듯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미군이 기지를 아무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것에서 나아가, 미군들의 일본인들에 대한 우월적인 태도는 오키나와 대학에 떨어진 미군 헬기 수습 과정이나 미군에 의해 자행된 오키나와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에서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한 이후 미군측은 일본 검찰과 경찰이 수사에 접근도 하지 못하게 했는데, 더 놀라운 것은 일본 정부가 이런 미국 측의 대처방식에 대해 항의나 사고 수습에 대한 의지 조차 없어 보였다는 점이었다. 내게는 이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이에 대한 피해는 결국 자국민인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돌아가버리는 구조가 되었다. 자국민인 오키나와의 재산과 인명이 피해를 봤는데 뒷짐지고 구경만 하는 본토 일본인들과 정부의 행보는 충격적이었다. 그 결과 오키나와인들은 본토 일본인들에 의해 ‘버린 돌’취급을 받으며 또 다른 차별과 희생을 떠안게 되어 버렸다. 이 정황을 다시 정리해보면, 일본 사회의 ‘식민주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문제는 다시 자국민의 인권이 온갖 형태로 침해 받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서경식 교수는 이 책의 일본어판 후기에서 2017년 <치안 유지법>이 “‘적법하게 제정’되었으므로 손해 배상도 사죄도 실태 조사도 하지 않겠다”라는 법무대신의 국회 답변을 보고 ‘일본은 마침내 올 데까지 왔다’라고 판단했다. 1990년대 부터 일본의 긴 반동기(리버럴파의 몰락과 강경파의 장기집권)에 들어선지 사반세기가 지나자 이제는 국민과 국제적인 시선은 아랑곳 없이 자신들의 속내를 시원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런 말을 언론 앞에서 하기까지 그동안 얼마나 갑갑했을까.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아직 해결된 것은 없고,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할 더 큰 문제와 마주하는 일이 남았다. 이 문제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이나 일본여행을 취소하는 문제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최근 한 일간지의 뉴스를 보니 일본의 관광객이 크게 줄어 위기의식을 느낀 여당 정치인(자민당 간사장)이  “우선 일본이 손을 내밀어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양보할 일"이라고 말하며 동시에 “우리(일본)는 더 어른이 돼 한국의 주장을 잘 듣고 대응해 나가는 도량이 없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출처: 중앙일보] "한국에 양보할 건 하자"…관광객 급감에 日온건파들이 움직인다   (2019년 09월 29일자 기사)

 [ https://news.joins.com/article/23589845 ]

 

우선 총재 다음 자리인 자민당 간사장 니카이 도시히로( 二階俊博·80)의 이면에는 이번에 읽은 대담집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이 과거 식민주의 행보의 가해자라는 인식을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 아울러 한국에 대한 유아적인 우월의식에 젖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양보’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로 ‘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함’을 의미하는데, 그가 사용한 맥락에서의 양보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가 열등한 존재에게 관대함을 베푸는 행위의 맥락으로 감지된다. 나는 물론 양국의 경제적 교류가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입장이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그 여파가 일본인들에게 보다 근본적인 국면에 대한 이해나 깨달음을 주는 데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언젠가  끝나게 되겠지만, 일본인들이 전후 이래 학습된 ‘사고 정지와 (천황제로의) 자발적 예종의 습관’으로 공고화된 일본의 전체주의적인 본성에 일말의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는 회의적이다.

 

책을 읽으며 한 가지 더 주목하게 된 것은(서경식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1990년대 들어 그나마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될 수 있었던 리버럴파의 몰락으로 시작된 ‘일본 사회의 반동기’로 오늘날 ‘일본형 전체주의가 이제 완성되었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이었다. 여기에 아직 역사적인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내가 배운 점은 오늘날 일본의 전체주의 형성에 미국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것은 서경식 교수가 “미국이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자국의 정책에 맞추기 위해 천황제를 잔존시켰기 때문”(255면)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전후 일본사회 재편의 양상이 해방을 맞은 대한민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양상과 그 궤를 같이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 공통적으로 미국의 존재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해방을 맞았을 때, 도망갔던 한국인 검찰·경찰 세력이 ‘미군정’의 국내 장악과 함께 다시 복귀한 사실, 이들이 해방된 공간에서 다시 정치적 역량을 확보한 사례는 일본의 경우와 매우 유사함을 발견한다. 이런 정국에서 우리는 친일파에 대한 파악과 처벌 과정에 중요한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되었다. 이 상황은 일본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이 두 유사한 패턴의 배후에 미국이 보인 행보를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패전 후 일본 내의 정치적 상황은 역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본다.

 

“1947년 트루먼 독트린 이후 냉전 태세를 굳혀 가던 미국은 중국 공산화와 한국 전쟁을 계기로 일본 재무장을 핵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냉전적 대결 체제를 본격화하면서, 군국주의 일본의 전쟁 범죄 처벌과 ‘평화 국가 일본’으로의 개조라는 기존 정책을 전쟁 범죄자 재기용과 일본 재무장, 이를 위한 일본 경제의 재건이라는 방향으로 급회전시켰다. 이것이 일본 패전 후 지금까지 70여 년간 동아시아의 정세 흐름을 결정지었다.”(302면)

 

일본 사회 역시 패전 직후 미국은 천황제를 존속시키면서 전범자를 재기용하도록 방관하여 식민주의가 오늘날에도 건재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미구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의 특수를 일본이 누리게 해주면서 일본 사회의 전체주의화에 눈을 감았다. 그러므로 미국은 직·간접적으로 아시아의 평화유지에 악영향을 주었다는 점과 일본 사회의 전체주의 형성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앞서 서경식 교수는 일본이 이제 아베 정권의 장기 집권으로 일본적인 전체주의를 완성했다고 했다. 동시에 데쓰야 교수는 ‘제국 시기의 식민 지배 책임을 계속 부인’함으로써 과거의 ‘단절’을 극복하지 못하고 ‘국제 지도 속에서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를 데쓰야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15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은 그 계속되는 식민주의를 통해, 근린 민족들과의 신뢰 관계를 구출할 수 없게 된 현실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284면)

 

일본이 이렇게 무모하게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처하면서도 자신만의 행보를 유지하는 것은 그 배후에 미국과의 유착 혹은 상당한 정도의 대미 의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상황은 결국 우리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도 적신호가 켜져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만 잘 살려고 노력해도 그럴 수 없는,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일본 정부는 전근대적인 천황제를 폐지하고, 식민주의를 극복하여 일본인들이 헌법에 보장된 바 대로, 자유로운 개인적인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천황제의 종언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일본 국민의 다수는 기꺼이 자발적으로 ‘신민’으로 회귀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발언대로, 자유민주주의의 이념과 천황제는 원리적으로 서로 양립하기 힘들다. 일본 사회에서는 일본정부를 비롯한 대다수 일본인들이 회피해왔던 ‘책임’을 다시 바라보고 인식하는 과정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역사 수정주의’의 문제나 일본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고 있는 ‘모럴의 붕괴’가 계속 진행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 국내에서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것은 이미 옛날의 일이다. 과거의 허물을 그만 들추라’는 논리로 대응하곤 한다. 이런 논리는 가해자, 기득권자가 가장 좋아하는 레토릭이라고 서경식 교수는 말한다. 보다 밝고 건강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이 언제나 함께하는 가운데 과거사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사건의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알려져야 하며, 후세는 또 이를 알아야만 한다.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는 행위는 미래에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마무리 – 대담자들을 다시 보며】

 

다카하시 교수의 가차없는 일본 정부 비판을 보노라면 일본 사회에서 매우 보기 드문 인물임을 알게 된다. 과연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다수가 이야기하는 논리에 정면으로 반박을 하는 학자라면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일본 내에서도 이렇게 극소수에 속하는 학자에 대해 서경식 교수의 평가는 남다르다.  

      

“(다카하시 선생은) 대단히 중요한 장면에 서 있는 사상가라고 생각해요. 일본이라는 곳에서 그런 사람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른바 아카데미즘과 현장이라는 것의 경계를 오가며 생각하는 것, 소수파와 다수파의 경계에 서서 생각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205면)

 

서경식 교수에 대한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신뢰와 평가 또한 남다르다.

 

“서경식 선생은 언제나 나에게는 스승과 같은 벗이자 벗과 같은 스승이었다.”(286면)

 

20년 넘은 대화와 고민의 세월을 지내며 두 대담자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지닌 ‘도반’이 된 셈이다. 그리고 소수의 입장이나마 끊임없이 소수의 입장에서 다수를 비판하고 의견을 개진하며,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의 왜곡된 시선을 갖는 이들이 펼쳐 놓은 문제점들을 지적해왔다. 이번 대담집 《책임에 대하여》에서는 일본 사회에 만연해있는 책임 회피 기작을 분석 비판하고 ‘응답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 이 두 지식인의 입장이 소수이긴 하지만 두 사람은 식민지 종주국으로서 일본 국민 다수에 내재되어 있는 식민주의적 심성과 싸우는 일에 오랜 시간을 바친 이들이기도 하다. 이들의 다음 세대에 이분들의 역할을 이어갈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더 많이 나와 한일간의 연대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데쓰야 교수가 후기에서 인용한 오키나와 이시가키지마의 시인 야에 요이치로의 시로 마무리를 해보려고 한다.  

 

▶ 야에 요이치로의 새 시집(2017) 《일독(日毒)》에 나오는 시 재인용.

 

‘대동아 전쟁 태평양 전쟁

300만의 일본인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2,000만 아시아인을 괴롭히다 죽이고는 그것을

모두 잊었다는

의지 의식적 기억 상실

그 교활함 야비함 그 거무칙칙한

광기의 공포 그리고 나는

확인한다

실로 이것이야말로 지금 일본의 암흑을 통째로 표상하는 한마디

‘일독’(日毒)

 

 

▶서경식 교수: 여기서 ‘일독’(日毒)은 스스로 중독되어 제정신을 잃은 채로 타자에게 계속 재앙을 뿌려대는 모습을 의미한다.(11면)

▶데쓰야 교수: 여기서 시인이 과제로 삼은 ‘일독의 제거’는 메이지 유신 150년을 관통하는 일본의 식민주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의미한다.(28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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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19-10-01 공감(1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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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책임에 대하여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일본 교토에서 자이니치 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 대학을 거쳐 현재 도쿄게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중인 서경식 선생과 일본 후쿠시마 출신으로 도쿄대 프랑스과를 졸업하고 현재 도쿄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교수이자, 일본 내에 자크 데리다에 관한 권위자로 명성을 얻은 대표적 리버럴 지식인 다카하시 데쓰야의 대담집 ‘책임에 대하여’를 일독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특히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를 꽤 인상깊게 읽었는데요. 이 책에서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소수의 희생으로 이익을 얻는 자들의 행태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서경식 선생과 관련해서는 2017년 번역 출간된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를 읽고 일본에서 선생이 겪은 경험들을 통해 실로 비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소회를 갖고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현대 일본의 본성을 묻는 20년의 대화’라는 부제는 우리에게는 실로 의미심장하며, 두 사람이 엮은 대화는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 국민의 가감없는 실체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18년 8월 처음 일본어로 출판되었고, 국내에는 2019년 8월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서경식 선생이 이 책의 서문에 쓴 한 문장을 먼저 언급하고 싶습니다. “국민 다수가 자숙하며 예속의 정도를 점점 심화시킬 때, 전체주의의 완성된 행태를 목도할 것이다.” 이것은 단연코 현재의 일본인들을 지칭한 문장입니다. 특히 “자신들의 역사를 판단하고 응답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무시했던 일본인들로서는 그 끝의 결과가 어떤식이 될지는 매우 자명합니다. 아마도 자신들의 역사를 판단하고 응답하게 될 때 아베 신조와 같은 인물은 설 땅을 잃게 될 것입니다.

우선, 이 글은 전체 4장의 주제와 한 분량의 자료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2장인 ‘일본의 본성’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여겨졌습니다. 1장에서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전쟁 책임, 전후 책임, 식민 지배 책임 중 어느 것이든 1945년에 끝난 일본 제국 체제에 대한 책임을 불문에 붙여 왔다는 점, ‘중심부 일본 국민’이 그에 대한 판단을 회피해 왔다는 점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문제 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일본 국민이 스스로 시민이 되기 보다는 범접할 수 없고, 건드릴 수 없는 전통적인 일왕의 신민이 되기를 자처하면서 그리고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판단하고 응답하는 어떠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이를 통해 일본 사회의 곳곳에 왜곡과 불철저함을 만들어냈다는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결론에 매우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뒤이어 200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더반에서 있었던 과거 아프리카 대륙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유럽 종주국들의 도의적 책임을 도출한 ‘더반 회의’와 유사한 ‘여성국제전범법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NHK가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한 내용을 포함해 일본 내에서 역사문제를 다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밝혀내는 등의 비판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요. 여기에는 자학 사관이라는 얼토당토 되지 않는 입장과 일본 지식인들이 정치에 전면에 나서 비판을 가하는 것을 금기시 하는 풍토가 한몫을 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2장은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박유하 씨의 최근 논란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박유하 씨의 ‘제국의 위안부’는 읽지 못했으나, 그의 법정 공방과 관련해 류시민, 김규항, 홍세화, 고종석 씨 등이 박유하 형사 기소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사상적 자유를 옹호한 움직임으로 비록 박유하씨가 꽤 논란이 될 만한 주장을 해왔지만 개인 자유의 원칙적인 측면에서 법원에 의한 판단을 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 책에서도 박유하 씨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데요. 특히 박유하 씨의 ‘화해를 위해서’와 관련하여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주요 논점으로 조선인 업자들의 책임을 강조하고, 일본군 내지 일본군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입장이 명확하다.”며 자신은 이것에 설득당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일전에 어떤 일본 지식인은 우선 자국민들을 용서하고 구제해야 비로소 다른 나라의 피해자들을 돌아볼 수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다분한 것과 같습니다. 또한 박유하 씨가 지난 1995년에 발족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 조성으로 일본이 사과한 것과 같다는 식의 주장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즉, 국민 기금이 있으므로 일본의 사죄의 자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인데요. 사실 박유하 씨의 ‘제국의 위안부’와 ‘화해를 위해서’는 그 주장의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일본내의 우익과 한국의 사과 요구에 비판적인 이들의 논리로 교묘히 매개되어 왔다는 부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전체적인 맥락에서 서경식 선생은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매우 곤란한 화해가 가능하냐는 이야기를 아마도 의도적으로 끊임없이 혼동하면서, 화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개개의 피해자들에게 국가 간의 화해를 막는 존재라는 위치를 부여했다”고 해석합니다. 더불어 일본내의 리버럴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인 우에노 지즈코와 같은 사람이 이러한 한국의 태도와 정대협과 같은 단체를 내셔널주의적이다고 오도하는 것은 매우 큰 문제임은 자명합니다. 역사 문제와 관련해 개인이 한 국가를 상대로 진실과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매우 지난한 일이며, 이것을 한국인의 민족주의적 태도라고 우회 비판하는 것은 그만큼 유감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하물며 일부 위안부 할머니들이 정치적이다 라고 언급하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박유하는 일본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방향의 논리를 세우고 있다”는 주장을 가볍게 들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재 나무위키에도 올라와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만, 박유하 씨의 ‘화해를 위해서’의 국내판에는 없고 일본판에만 있는 내용중에 “일본 지식인들이 스스로에 대해 물어 온 정도의 자기비판과 책임의식을 한국은 아직도 가져본 적이 없다”는 한줄이 대체 무슨 의도인지는 명확하게 이해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저도 역사의 고통을 저울질을 하는 것을 무엇보다 비판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행위자의 범죄를 여러 수단으로 가리는 것은 피해자를 두 번 욕보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오늘날 일본이 2001년 더반 회의를 거울 삼아 도의적 책임 이외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수단을 강구해 오지 않았나 유추해 보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박노자 교수가 언급한대로 일본이 저지른 위안부 범죄는 ‘제네바 협약’, ‘헤이그 협약’, ‘국제 여성 인신매매 방지 조약’ 등에 대한 위반이므로 그것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근거는 매우 명확하다는 것을 여기에 남겨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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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라이프 2019-08-06 공감(1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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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시의적절한 책 새창으로 보기 구매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로 촉발된 한일간의 경제갈등이 시작된 지도 3개월째로 접어들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한국 측의 지소미아 종료와 일본 측의 화이트 리스트 제외조치 시행으로 사태는 점점 장기화하는 조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 문제를 경제문제로 보복하는 행동은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래서인지 서점에는 일련의 사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 있다. (반일종족주의는 제외하고…) 그중에서 자이니치 조선인인 도쿄게이자이 대학의 서경식 교수와 도쿄대학의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대담을 엮은 ‘책임에 대하여’를 골랐다. ‘현대 일본의 본성을 묻는 20년의 대화’라는 부제답게 두 석학의 오랜 연구가 녹아있는 진솔한 대화를 들을 수 있다.

 

우리말로 책임이란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라는 뜻이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responsibility로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물음이나 요구에 응답해야 하는 것이 곧 책임이다. 우경화된 일본은 역사의 책임에 대한 주변국의 요구에 얼마나 응답의 책임을 지고 있는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는 과거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삭제하여 전후 세대들에게 더 이상 침략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 일본의 젊은 세대는 관동대학살과 난징대학살을 기억하기보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폭으로 희생된 일본인을 기억하는 듯하다. 원폭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일본인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게 가해국은 피해국으로 전환된다.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박유하의 저서인 ‘화해를 위하여’와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 리버럴파 언론인과 지식인 사이에서 높이 평가받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스스로를 리버럴파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면서도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은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어렵다.

 

책은 역사 수정주의와 위안부 문제 외에도 다양한 일본의 사회적 모순을 다루고 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천황제의 모순 등 현재 일본이 직면한, 하지만 외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점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일본의 무책임한 본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책임에 대하여’는 지금 시점에 한 번 쯤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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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랑 2019-09-03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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