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2

어느 지식인의 죽음 - 김질락 옥중수기 2011, 1991

 어느 지식인의 죽음 - 김질락 옥중수기   원제 : 주암산

김질락 (지은이), 행림서원2011-11-01



456쪽


책소개


1960년대 최대의 간첩단사건인 ‘통일혁명당 사건’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던 김질락의 옥중수기이다. 1991년에 발행되었으나, 역사 속에 그대로 묻혀 버릴 뻔한 이 책을 우리는, 20년이 지난 이 시점에 다시 발간하게 되었다. 비록 그때로부터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옥중에서 처절한 후회로 써내려간 저자의 절절한 고백록을 읽게 될 지금의 독자들도 시대를 잘못 읽어간 한 젊은 지식인의 삶과 죽음에 먹먹하고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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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머리말- 나의 시작은 나의 끝이었다

- 아버지 나라도 지금 꽃이 피나요

- 역사의 진실이라는 무게를 느끼며

- 월간 '청맥' 주간 김질락

- 통일혁명당 창당 준비 과정

- 첫 번째 입북 기도

- 마침내 이북행 보트를 타다

- 주암산에서의 20일

- 1970년대의 결정적 시기론

- 대동강은 흐른다


책속에서

“지난 수년간 조국과 민족을 향해 반기를 들고 이웃과 가족들을 기만하며 북괴와 야합함으로써 끝내는 무한한 고뇌의 심연에 빠져 스스로 단죄의 무딘 칼날을 받지 않으면 안 되게 된 나는, 그 역겨운 죽음의 오랜 항로를 통해서 나라를 사랑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올바른 길이 무엇이며 참된 생명의 길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북괴가 무엇을 노리고 있고 우리를 향해 무엇을 어떻게 하려하고 있는가를 똑똑히 알게 되었으며 그네들과의 야합이나 공존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일인가를 보다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접기

“때문에 나는 나의 사망을 매장해 버리는 데 그치지 않고 나의 사망을 증거로 북괴를 고발하고 북괴로 말미암아 무서운 죽음의 길을 헤매고 있는 모든 가엾은 사람들에게 나를 증거하여 경고한다. 특히 북괴로부터 남파되어 숨어 살고 있는 사람들을 비롯, 공산주의 사상이나 사회주의 사상에 야릇한 매력을 느끼고 있는 일부 지식인들, 아직도 북괴를 병적으로 동경하고 있는 전 남로당원들, 그리고 북괴라면 무조건 두려운 존재로만 여기고 유언비어에도 갈팡질팡하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사사로운 이욕 때문에 눈이 멀어 대한민국을 함부로 비방,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이 보잘 것 없는 글이 그들로 하여금 국가이성과 국가이익이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뜻에서 나는 붓을 들었다. 무엇보다 지난날의 나처럼 죽음의 그늘 밑에서 가슴 태우며 죽을 자유마저 미결인 상태에 있는 음지의 사람들에게 이 글이 양지로 향하는 한 가지 길잡이가 되고 한 가닥 빛이 되었으면 하는 염원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나의 무딘 붓끝이 읽는 이들의 마음을 흐리지 않게 하도록 나는 최선을 다하였으나 다소 잘못된 점이 있다 하더라도 나의 이러한 당초의 의도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해 두고 싶다.”  접기

“지옥의 사자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반드시 우리들의 뒤에서 쫓아오는 것도 아니요, 앞에서 달려오는 것도 아니며 옆에서 들이닥치는 것도 아니다. 우리들의 욕망과 교만의 울타리를 타고 언제나 우리들의 생명 가까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간첩이라 해서 특별히 머리에 뿔이 나고 밤송이 같은 턱수염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간첩은 가장 합법적인 인물 가운데도 서슴지 않고 한몫 끼어든다. 간첩이 내 사랑하는 부모, 형제, 처자, 그리고 믿을 만한 친구일 때는 간첩 같지 않다. ‘어이쿠, 큰일 났구나’ 싶었을 땐 그는 이미 깊은 수렁에 빠져 버린 후가 되며, 후회해 봤자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접기

“‘인간은 인간에 대해서 늑대이다’ 이것은 공산주의자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그만큼 그들은 비정과 함수관계에 있다. 그들에겐 파인 플레이가 없고 완전 패배 아니면 완전한 승리가 있을 뿐이다. 공산주의자들 사이엔 서로가 고발자요, 서로가 배신자다. 그들은 결코 만회하는 일이 없고 소생과 부활이 없다. 그들은 명령 아니면 복종이요, 복종 아니면 가차없는 숙청뿐이다. 그들의 숙청이란 인간 생명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이다. 불쌍한 자요, 그대 이름은 공산주의자다. 오해가 진리로 통하고 명령으로 일관되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독재가 지배하는 사회이며 자기 변호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이기도 하다.”  접기

“나는 미쳐 날뛰는 북괴의 전쟁놀음을 구경하면서 혁명이다 뭐다 하고 이곳까지 찾아온 내가 한없이 미련했다는 회한을 걷잡을 수 없었다. 나는 진정 공산주의자이기 이전에 민족주의자였음을 그때서야 비로소 스스로 깨우칠 수 있었다. 대개의 과격한 민족주의자들의 운명이 그러했듯이 그때는 나도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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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질락 (지은이) 

1934년 6월 4일 경북 영천군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작은아버지인 김종태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1953년 서울대학교 문리대에 입학하여 학내 비밀서클 활동을 하였으며, 

1957년 학교를 졸업하고 『경남매일신문사』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 후 1964년, 김종태의 권유로 상경하여 김진환, 이문규 등과 『청맥』을 발간하였으며 이 잡지의 주간을 지냈다. 동시에 사회주의 이론 서적을 학습하고, 혁명운동에 관한 교육을 받으며 논의를 펴나갔다. 

1965년 11월 초, 김종태, 이문규 등과 통일혁명당 창당을 결의하고 이의 발기인이 되었으며, 1966년 2월 후배인 이진영, 신영복과 함께 민족해방전선을 구성하였다. 

1967년에 월북하여(5월 5일~5월 28일) 평양에서 약 20일간 머물면서 노동당에 입당하고 교양을 받았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된 후, 수기 형식의 『어느 지식인의 죽음(원제: 주암산)』을 집필하였다. 7ㆍ4 남북공동성명 직후인 1972년 7월 15일 사형되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있을 수 있었던 일과 있었던 일은 모두 되찾을 수 없는 것. 이제는 다만 사색의 세계에서만 영원한 가능성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영영 되찾을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을 영원히 매장해 버리려는 나의 이 작업에 대해 산 자들은 나를 고발할 것이요, 죽은 자들은 나를 증언할 것이다.

나는 나의 사망을 매장해버리는 데 그치지 않고 나의 사망을 증거로 북괴를 고발하고 북괴로 말미암아 무서운 죽음의 길을 헤매고 있는 모든 가엾은 사람들에게 나를 증거하여 경고한다.

- 저자의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은 1960년대 최대의 간첩단사건인 ‘통일혁명당 사건’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던 김질락의 옥중수기이다. 1991년에 발행되었으나, 역사 속에 그대로 묻혀 버릴 뻔한 이 책을 우리는, 20년이 지난 이 시점에 다시 발간하게 되었다. 비록 그때로부터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옥중에서 처절한 후회로 써내려간 저자의 절절한 고백록을 읽게 될 지금의 독자들도 시대를 잘못 읽어간 한 젊은 지식인의 삶과 죽음에 먹먹하고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통일혁명당 사건은 한국전쟁 이후 남한 전체의 ‘혁명운동’의 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하는데, 그 사건은 1960년대 최대의 공안사건으로, 관련자 총 158명이 검거되어 그 중 50명이 구속되었다.

통일혁명당은 미제국주의 식민지 통치의 철폐와 자주적 민주정부의 수립, 파쇼독재체제의 소탕과 사회정치 생활에서 민주주의의 실현, 농어촌 세기적 낙후성과 빈곤의 일소 등 12개조의 강령을 제시하였다. 또한, 북한의 중앙당과는 형제당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남한혁명은 남한 인민 자신의 힘으로라는 자주노선을 택했다.

중앙 준비위원들은 북한을 왕래하는 등 활동을 펴 나가다가 1968년 검거되었다. 그 중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 등이 사형되었다. 통일혁명당 사건은 당시의 언론과 방송의 보도태도에서 보여 주듯이 사회여론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청맥'은 당시의 지식인들이 필자로도 많이 참여했고, 학사주점 또한 토론의 장이었던 곳이라는 점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적잖이 충격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은 김종태, 이문규의 사형소식에 큰 슬픔을 느껴 그들의 이름을 딴 거리와 학교 공장을 짓고 영웅칭호를 하사하였으며 그들의 가묘를 통일열사릉에 안장하였다. 물론 공산주의자임을 뉘우친 김질락은 북한정권으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마이리뷰 


1]  신념이 무너졌을 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물음의 근저엔 사람마다 다른 그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나 사회적 환경,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다름이 아니라 한 사람을 오롯이 그 사람이게 만드는 그 무엇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역사의 변화무쌍한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자신이 믿고 지향하던 삶을 목숨과 바꿔서라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우리는 그들의 삶 속에서 그토록 믿고 싶었던 사람의 신뢰를 보고자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지만 스스로를 배신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역사는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며 다만, 옳지 못한 사례의 교훈으로 삼는 것이리라. 


한국전쟁 후 우리나라 1960년대는 극히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그 혼란은 국민들의 실생활이 피폐하여 살기 힘든 것만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두고 치열한 사상적 투쟁을 벌려나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좌우 이념대립이 극에 달하여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일도, 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을 통일에 대한 염원에 대해서도 안개 속에 빠져들던 그런 때였다. 그런 시대 민족의 앞날을 열어갈 희망으로 지하투쟁을 벌였던 세력들 중에 ‘통일혁명당’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은 세간의 관심을 받다가 이내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통일혁명당’은 미제국주의 식민지 통치의 철폐와 자주적 민주정부의 수립, 파쇼독재체제의 소탕과 사회정치 생활에서 민주주의의 실현, 농어촌 세기적 낙후성과 빈곤의 일소 등 12개조의 강령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을 결성한다. 북과의 관계를 북한의 중앙당과는 형제당이라 설정하고 남한혁명은 남한 인민 자신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자주노선을 택했다. 주요활동으로는 ‘청맥’지를 발간하고 학사주점을 중심으로 동조세력을 모으고 하부조직을 구성하였다. 통일혁명당 중앙 간부였던 김질락과 이문규는 1967년(5월 5일~5월 28일)에 목포를 거쳐 서해를 통해 월북하여 평양의 주암산 안거에서 약 20일간 머물면서 노동당에 입당하고 교양을 받았다. 주요 인물로는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 이진영, 신영복 등이며 김종태와 이문규, 김질락 등은 사형이 집행되었다. 


지식인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떨어질 수 없다. 그것도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고 살아서는 지식인이라 마f할 수 없는 것이다. 한때 시대의 사명을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며 치열한 삶을 살았던 지식인이 그 길을 걸었던 자신의 삶을 부정한다는 것은 분명 지식인의 삶을 포기한다는 것이리라. 그 순간 그가 걸어왔던 길은 분명하게 후회가 따른다는 것은 자명하다. 무슨 말로 자신의 삶을 후회하던 그 후회 속에서 사람들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 책 ‘어느 지식인의 죽음’은 사형이 집행된 김질락의 옥중수기로 1991년 발행되었던 것을 재발간한 책이다. ‘비록 그때로부터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옥중에서 처절한 후회로 써내려간 저자의 절절한 고백록을 읽게 될 지금의 독자들도 시대를 잘못 읽어간 한 젊은 지식인의 삶과 죽음에 먹먹하고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재발간한 의도가 분명한 것이다. 변절한 지식인의 모습 속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지, 이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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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無盡 2011-11-20 공감(1) 댓글(0)

     

2] 시대를 잘못 읽어간 어느 지식인의 안타까운 죽음  

우리에게는 씁쓸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조국에서 사상과 체제가 서로 달라 남북분단이 된 이후 지금까지 50여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동족으로서 선의적인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정치, 군사적으로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 있음을 볼 때, 이는 국민의 처지에서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국가차원에서 화해의 장을 위한 수많은 대화의 노력들이 있었지만, 최근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사건에서 보듯, 남과 북은 평화라는 단어를 생각하기 무색케 할 만큼 첨예한 대립의 관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듯해 보인다. 더욱이 국민의 처지에서 우려되는 것은, 일촉즉발의 그러한 생각지 못했던 걷잡을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 처해 질수도 있는 불안한 작금의 현실을 목도하면서도, 공산주의 이념에 사로잡혀 우리 사회에 갈등을 부추기거나 조장하는 일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고, 특히 이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반정부사상을 선동하는 등의 이해하기 힘든 악의적인 행위에 대해, 때로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느 개인이 신념을 가지고 어떠한 생각과 사상을 추구하든 간에, 그러한 개인의 자유에 대해 이를 두고 탓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점에 있어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어떠한 경우에라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강제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에 크게 반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제고되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1960년대 국내 최대 간첩단 사건이 되어버린 통일혁명당 사건의 주요 핵심 인물 이었던 김질락이, 북한의 대남공작부서로부터 지령과 자금을 받아 국내에서 비밀리에 활동을 해오던 자신의 삼촌 김종태에 포섭되어 그 세력을 확장해오다가, 마침내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기간 동안, 당시의 자신의 행적이 낱낱이 밝히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담담하게 써내려간 옥중 수기다. 이 책 그의 수기에 따르면 자신을 포함한 통일혁명당을 구성하고 주도한 세력은, 겉으로는 ‘청맥’이라는 잡지사를 만들어 마치 건전한 단체인 것처럼 포장하고, 부족한 자금을 채우고 비밀스런 회동을 갖기 위한 목적으로 학사주점을 운영해왔으며, 결정적으로 국가 전복에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그 규모나 성격에 있어서 국내 최대의 조직사건으로, 그 구성원을 살펴보면 지식층이었던 문화예술인과 학생들 청년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연루된 사람만 해도 자그마치 150여명에 이를 정도로 우리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수기 당사자인 김질락은, 북한의 대남사업총국장으로부터 지령과 공작금을 받고 남파된 김종태의 사촌동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사상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 결국 포섭되어 공산주의자로서 길을 걷게 되지만, 훗날 북한 정권으로부터 자신이 이용되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당시 자신의 행적을 상세하게 담아내고 있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와는 달리 이념과 사상이 다른 남북분단이라는 쓰라린 아픔을 안고 있다. 문제는 남과 북이 서로 협력하고 공존하는 것이 아닌, 서로를 적대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판단할 것인가에 여러 혼란스러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상황에서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할 것은, 오늘날 북한이 남북분단 이후 지금까지 여전히 대화나 타협보다는 자신들의 체제가 우월함을 강조하며 적화통일로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어떻게 해서든 이를 과대포장 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북한의 실체를 교묘하게 왜곡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음을 볼 때,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책 저자의 경우를 보면 애초부터 공산주의 사상에 동의 했던 것은 아니다. 일부 정부의 정책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여 이에 불만을 품었던 것이 조금씩 쌓이고 쌓이면서, 결국은 스스로를 합리화 하는 방향에서 반정부사상을 고취하는 흐름으로 선회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산주의 체제는 세계 여러 국가의 예에서 보듯 이미 실패한 이념이다. 하지만 여전히 북한은 이러한 자신들의 잘못된 체제와 이념을 인정하고 개선하려 하기보다, 스스로의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다. 어떤 사안을 두고 때로 반목과 질시를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국가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반정부적인 그릇된 망상에 빠져서는 안 될 일이다. 시대를 잘못 읽음으로서 자신의 젊은 청춘을 마감해야 했던 이 책의 저자의 가슴 아픈 회고를 통해, 북한의 실체를 제대로 직시하고, 우리의 안보의식이 흔들리지 않도록 스스로 일깨우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늘처럼 2011-12-03 공감(1) 댓글(0)

     

3] 어느 지식인의 죽음   

이 책을 읽으며 정치적이지 않고 편견없이 읽으려고 노력했다. 이 책이 왜 이 시점에서 다시 재출간 되었는가 혹은 출판사의 말처럼 반공의식의 고취를 의한 목적으로 재발간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똑똑하다고 해서 이론에 박식하다고 해서 나라를 이끄는 것도 아니고 힘이 있고 권력, 명예가 있다고 나라를 좌지우지 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허나, 그 권력의 중심에 있다보면 욕심이 생기고 그 욕심은 과욕을 부르게 됨을 어느나라 역사를 봐도 알 수가 있다.

 신영복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너무나 감동적으로 보았기에 그 분이 생각한 감옥안에서의 사색과 김질락님이 느끼는감옥에서의 사색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싶어 펼쳐들었다

허나 신영복님의 책은 극히 제한된 공간에서 본인 스스로의 느낌과 가족애,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느꼈던 회한과 감정을 극히 절제하면서 쓴 글이었고 무엇보다 방대한 지식을 꺼내 들여다 보는 계기를 마련한 책이었다면, 이 책은 김질락 본인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짙고 방북했을 때의 내용을 상세히 적어 놓고 있다.

서슬퍼렇던 70년대 반공의식이 투철하지 않으면 사상범이나 빨갱이로 몰리던 시절, 더군다나 통혁당 사건으로 감옥에 있으면서 쓴 글이어찌 자신의 이야기가 100% 반영되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서울대를 나온 엘리트지만 가난의 문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즈음 삼촌 김종태의 권유로 < 청맥> 이라는 월간지의 발행자로 일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에 노출이 되고 지하당을 구축하게 된다. 김질락이 사회주의에 물들고 그 주축이 되는 과정을 보면서 예전 책에서 보았던 내용이 생각났다. < 내 이름은 이레네 >라는 유대인을 구한 폴란드 여인의 이야기인데 자신도 누구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목적이 있어 일을 시작한 게 아니라 작은 일을 하다보니 그 것이 커지면서 뜻하지 않게 사건의 중심에 서 있게 돼 있더라고.


이 사람또한 북한을 동경하고 시작했다기 보다 궁핍한 생활의 연속에서 사회주의 사상에 매료되고 정국이 시끄러운 나라를 혁명을 통해 국민이 이끄는 나라로 만들고자 했음이었던 것 같다. 이론과 현실은 언제나 괴리가 있는 법.

사상가로써 혁명운동의 선두에 선 처지가 됐지만 북으로 가는 날 집을 떠나기 전, 아내와 아이들을 바라보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과 자신의 심정을 읊조리는 내용은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비극을 알기에 가슴이 쓰렸다.

북으로 가는 배 안에서도 끊임없이 갈등하고 자신의 내면과 싸우는 대목은 나약한 한 인간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평양방문기에서 혁명적 사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현실과 동포들의 고달픈 삶에 회의를 느끼고 민중을 위한 일이어야 하는데 계급과 독재만 존재할 뿐 민중을 위한 사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지식인으로서의 후회를 보여주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나야 한갓 불평분자지. 암, 그렇고말고. 혁명가라니 될 말인가. 그렇다. 서울의 지식인들이 불평불만 하는 것 - 그것은 자유를 맘껏 누리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그 불평불만 그 자체를 자유라고 착각하는 데서 인텔리의 비극은 시작된다.


역사를 보건데 사상이 없고 혁명이 없다면 문명의 발전은 없다. 그 도가 지나쳐 독단적인 지배가 되고 세력을 구축할 때 거기서부터 악의 씨앗이 싹트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한 인재가 너무나 허무하게 사라진 게 가슴이 아프고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한 인간의 잘못이 아니라 어쩌면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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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mine 2011-11-30 공감(1) 댓글(0)

 

4] 어느 지식인의 죽음  

수기라고 하면 사춘기 적에 읽었던 사랑의 체험수기가 떠오른다. 그 시절엔 읽을거리가 부족해서 갱생지에 펜팔할 수 있는 주소들이 적힌 삼류잡지나 체험수기만을 모아 따로 펴낸 책들도 촌구석에서는 귀했다. 그리고 그 때는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들에게 사랑의 체험수기들은 제법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옥중수기라고 하여 감옥에서 일어난 일이나 감옥에서의 체험담을 담은 <야생초>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같은 책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옥중 체험수기가 아니라 옥중에서 직접 쓴 북한 공산주의 체험수기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것도 성장소설형식의 장편소설이라 할 만큼 훌륭한 글솜씨를 자랑하고 있는 소설같은 수기이다.


   정치 경제적으로 혼란했던 1960년대 지은이 김질락(가명 이영수)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다 친삼촌 김종태의 권유로 서울로 올라와 <청맥>의 주간이 되고,  통일혁명당 발기인이 되었으며, 학사주점을 운영하던 이문규와 같이 입북하여 북한의 실상을 보고 돌아온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두가지 관점에서 궁금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자신이 믿는 사상을 위해 죽음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는 인간정신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어떻게 가능한가였고, 두번째는 그렇게 생명과 맞바꿀 수 있는 확고한 사상을 가진 지식인이 어떤식으로 변화되었고 어떻게 새로운 생각이 가능한가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초반부는 성대했으나 그 마지막은 미약했다. 특히 북한을 다녀온 것으로 수기가 아쉽게 끝나버려 맥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북한의 실상을 직접 본 것을 계기로 사상의  직접적인 변화가 일어 났는지, 그렇다면 검거되기 전에 왜 자수하지 않았는지, 사형이 선고되고 난 후에야 살기위해 전향을 했는지 그런 이후의 애기가 빠져 있다.  그런 면에서 혹시 이런 반공 수기를 써야만 사형을 면할 수 있다는 유혹이 있었거나  예상치 못했던 사형집행때문에 북한을 나녀온 이 후의 이야기를 쓸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우리나라 근대사와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 마음 한구석에 울분과 화가 치밀어 온전하게 사물들을 대면하고 있을 수 없다. 특히 815부터 625와 419사이는 차라리 외면하고 모른 척하는게 속편할 정도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망국과 동족간의 이념전쟁이라는 비극의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그 흔한 노벨문학상이 한번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미약한 국력이나 언어의 장벽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싶다. 살아야 할 사람은 다 죽어 버리고 죽어야 할 사람만 살아 남아서 부끄러움조차 사라져버린 이 땅에  무슨 의리가 살아 있고 무슨 진리가 남아 있겠는가. 요즘 세대는 공산주의 자체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불온서적이 있을 리 없고 주암산에 다녀온 어느 지식인의 죽음엔 더욱 더 관심이 없는 것이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오로지 색과 욕과 술이 있을 뿐이다.


" 유물론적 변증법은 시간과 공간의 연관성에서 우연을 인정한다. 변증법의 기본 이론은 물질을 정의하되 물질을 물건이나 물체와 구별하고 모든 물체의 궁극적 구성인자를 물질이라 정의한다. 그것은 분명 인식론의 영역이며 과학은 아니다. 그들은 모순이 격화되면 투쟁의 상태가 일어난다는 유물론만 알았지 모순도 투쟁도 맥을 못추는 반야의 세계는 모른다. 무수상행식하고 무안이비설신의하며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하고 오장이 개공인 상태를 깨달을 만한 큰 지혜가 없다. 공산주의자들이 종교를 가리켜 아편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종교가 현세적인 권위를 결코 영원을 지배하는 권위 위에 두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사회에는 사랑을 주고받고 사람을 용서해 주는 관용의 창구가 없다. 다만 지령의 창구가 있을 뿐이다. - 122P, 329P에서 발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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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g5519 2011-11-2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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