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의 낯선 사이
김건희씨와 페미니즘
정희진 여성학자
입력 : 2021.12.22 03:00 수정 : 2021.12.22 03:00
내가 사는 서울 남서부 지역,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눈이 내린다. 양이 상당하다. 눈은 음소거 기능이 있어 주변을 조용하게 만든다. 2019년 12월 이후의 세계. 고요하고 아늑한 겨울밤을 다시 맞을 수 있을까 싶다. 지속될 기후위기와 대통령 선거가 겁나는 시간. 변화와 기대보다 불안한 심정,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정희진 여성학자
내 친구는 50대 1인 가구 여성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만성 질환을 20년째 앓고 있다. 거래도 없는 서울시에서 가장 공시지가가 낮은 40년 된 연립주택에 산다. 집 소유자, 한 달에 50만원 이상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매달 26만7170원의 지역보험료를 납부해왔다. 지난 8월, 5차 지원금을 받지 못한 대한민국 ‘상위 12%’다. 이달부터 33만3240원 내라는 통지를 받았다. 나나 내 친구는 건강 상태와 일의 성격상 매달 33만원이 넘는 보험료를 계속 납부할 수 없는 노동자다. 반면 김건희씨는 월 200만원 봉급생활자라서 보험료가 7만원이란다. 합법과 비상식이 공존한다.
어려운 계층일수록 선거는 중요하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러시아의 푸틴 같은 깡패 대통령은 남의 나라 일인 줄 알았다. 한국의 대선 후보들이 그렇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은 정책이라도 있다. 이곳은 후보 가족들 얘기로 누가 더 더러운가를 경쟁하고 있다. 과연 “냉소를 부르는 혐오의 대선”(경향신문 12월18일자 1면)이다. 하지만 유력 후보 부부의 성추문, 자녀 일탈, 경력 의혹 등은 동급이 아닐뿐더러 위험한 발상이다. 각각의 문제에는 완전히 다른 구조와 배경이 있다. 이를 무시하고 “모두 더럽다”는 언설은 공동체에 이익이 되지 않고 후보들도 억울하다. 차이가 무엇인지 드러나야 기권도 줄어든다.
김건희씨 검증은 여성혐오 주장
여성주의에 대한 오해다
페미니즘은 모든 여성이
피해자라는 사유 아냐
내 생각에 이번 선거의 결정적 프레임은 윤석열 후보 자체다.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존재성은 가해자든 피해자든 문재인 정권과의 관련성 속에서만 설명된다. 그는 “나는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번 정권의 부산물이다. 윤씨의 생각도 옳지 않다. 자신을 조직의 대변자로 인식하는 망상 리더십이다. 바람직한 업무 방식은 조직보다 사람을 우선하고, 사람보다 상황에 맞게 일해야 한다.
나는 그가 ‘검사(劍士)’ 문화에 익숙한 직업인이라는 사실 외에 아는 것이 없다. 식자(識者)는 분명히 아니고 특별한 이념(개념)도 없는 것 같다. ‘여자 박근혜’ 표현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다. 그녀는 여고 시절부터 정치적으로 훈련받았으며, 한국 사회와 현대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너무 일찍 현실 정치에 노출되어 현실 감각을 상실한 경우다. 한글에 서툰 윤씨와 달리, 저서도 있고 외국어에도 능숙하다.
윤석열씨의 지금까지 발언을 망라해보면 ‘평균 시민’ 이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인도 인정했듯이 그는 선거를 몇 달 앞두고 자신이 일했던 조직과 싸우기 위해 “배워가는 입장”에 있다. 지난 5년간 민주당의 업적 중 하나는 인물도 정책도 없는 지리멸렬 보수 야당에 대선 후보를 만들어준 것이다. 윤씨는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만연한 상태에서 그들로부터 ‘핍박’까지 받는 이미지를 획득했다.
윤석열씨가 현 정권의 산물이라면, 그의 성분(成分)의 99.9%는 김건희씨와의 관계에서만 분석 가능하다. 검사와 피의자 가족으로 만난 두 사람이 부부가 된 구조를 혁파하는 것이 검찰 개혁이다. 윤씨 부부는 검찰 제도의 산물이다. 이 진실을 왜 말하지 못하는가. 인종과 젠더가 격전을 치르는 미국의 법정에서 피의자의 인종, 젠더, 외모에 따라 배심원과 판사의 판단이 달라진다는 사례 연구는 수없이 많다. ‘예쁘고 어린 백인 여성’ 피의자는 형량을 덜 받는다.
여성성을 자원으로 활용한
그녀의 과거는 젠더 문제가 아닌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는가 증거
이재명 후보와 달리 윤석열 후보는 배우자가 주된 리스크가 되다 보니, 초점은 엉뚱하게 성차별(젠더)로 이동했다. 사실 이 글의 목적은 김건희씨 이력 검증을 두고, 일부 진보 인사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혐오”라며 그녀를 가부장제의 피해자로 만드는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터 한국 사회가 이렇게 여성에게 우호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김씨의 문제를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옹호하는 이들의 발상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김씨의 과거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성격이다. 열두 번 결혼을 했든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상대방이 같은 직업을 가졌다면, 여성이나 남성이나 결혼이 비즈니스와 관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정확히 인식, 분석하기보다는 “여성혐오는 안 된다”니, 이번 선거에서 페미니즘의 ‘가장 큰 수혜자’는 김건희씨인 듯하다.
“성형 수술을 한 여성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여성의 과거를 문제 삼으면 안 된다, 유산 경험을 들춰서는 안 된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녀의 섹슈얼리티를 문제 삼는 것은 당연히 여성혐오다. 그러나 성차별 사회의 작동 원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여성에게 성(性)은 억압이자 자원이다. 돈과 실력 있는 의사를 확보해야만 가능한 성형 시술이 피해인가. 공식 석상에서 기자를 “오빠”라고 부르는 ‘여성스러운 태도’도 비판해서는 안 되는가.
여성혐오는 대통령조차 ‘여성’으로 ‘격하’시킬 수 있는 남성 문화를 말한다. 여성혐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정(失政)을 벗은 몸으로 공격한 경우다. 당시 나는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공적 영역의 지위가 성역할로서의 여성으로 환원되는 문화에 반대했다.
김건희씨는 경제력을 기반으로 가부장제가 원하는 규범적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자원을 확보해왔다. 외모와 교양이 그것인데, ‘교양 확보’는 조금 복잡하다. 미술계나 대학원 생활을 조금만 해 본 이들은 그녀의 경력이 모두 위조라는 것을 안다. 그녀만 모르는 듯하다. 그러니 “당신들은 돋보이고 싶은 욕망이 없습니까” “(기자에게) 당신도 털면 안 나올 것 같습니까”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윤근혁 오마이뉴스 교육전문기자의 인터뷰를 참고하길 바란다).
일주일 연수 기록을 학력란에 기재하는 사람은 없다. 국내외 석·박사 취득 과정은 천차만별이지만, 최소한 그녀와 같은 경우는 없다. 김씨는 학교를 안 다닌 듯하다. 동료의 정보라도 있었다면, 최소한 번역기를 돌린 ‘Yuji’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경제력이라면 논문 영문 제목과 요약 번역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필 업체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우석, 신정아씨 사건의 기시감이 있지만, 그들은 대권을 노린 사람이 아니었다. 여성을 옹호하면 무조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신종 자부심은 실상 여성주의적 관점이 무지한 사회의 풍경이다. 김건희씨를 둘러싼 의혹을 규명하자는 요구가 왜 여성혐오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김씨 모녀에 대한 사법적 판단뿐이다.
범법행위 옹호가 여성주의로 둔갑했다. 김씨 이슈는 성인지 감수성 차원의 젠더 문제가 아니다. 여성스러움이라는 젠더와 검찰 적폐의 합작품이다. 그가 우리가 모르는 개인이라면 그의 섹슈얼리티와 학력, 경력 위조는 범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피의자의 권리 차원에서 대중의 관심사가 되어서도 안 된다.
이 글을 마무리할 무렵 페미니스트 신지예씨가 “윤씨가 조폭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는 뉴스가 들린다. 신씨의 말이 맞다. 개혁되지 않은 검찰은 ‘합법적’ 조폭이다. 조폭과 수백억대 경제사범이 부부가 되어, 공정과 상식을 외치고 있다. 공정과 상식? 이 역시 민주당 작품이다.
김건희씨페미니즘여성혐오여성성젠더
박수치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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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12220300015?fbclid=IwAR3nEnwzPX4B5P7lS1_QMLLzQZg60Zh0C35O1i6RX9SohL6-EVEfiLqQJ1M#csidx0816b83737cc3fda4a92c5f65672890 =
(i)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경계가 어디인지, 그리고
(ii) 윤리와 법 사이의 경계는 또 어디에 그어야 하는지,
이 두 가지가 핵심이고 젠더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층위라고 나는 생각.
사과쥬스와 오렌지쥬스를 섞어 놓은 후 이 둘을 다시 분리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이렇듯 모든 사회 현상/이슈는 오만 가지 것들이 화학적으로 완전히 섞여 있어서 물리적 엉킴에 불과한 실타래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리해서'도' 보려 하는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
인간의 뇌는 효율성의 측면에서 최적이지 비판적 합리적 사고에 최적은 아닌지라 가방끈의 길이, 굵기나 직업의 종류 등과 무관하게 그 누구의 시각도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 없으므로,
맞든 틀리든 누구나 자기 생각을 얘기하고 그렇게 시끄러운 '난장판'을 통해 시스템을 보완해 가는 것이 아마도 민주주의일 텐데..
상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와 배경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려는 노력 이전에
당신은 한남이므로, 혹은 일부일처제에 복무하고 있는 기혼자이므로 반동이며, 그래서 조동연/김건희 씨를 비판하는 것일 뿐이라는 식으로 상대의 얘기를 최대한 납작하게 만들면서 낙인부터 찍고 들어가는 거,
여성이 중심인물인 사건/사안에서는 무조건 여성 편을 들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여혐이라고 단정하는 거.
민주주의뿐 아니라 여성주의의 발전에도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으려나 나는 우려된다.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위법/탈법/편법도 옹호받아야 한다면, 만약 그런 것이라면, 단지 여성이라서 차별받는 일과 똑같건만 - 무수한 정체성과 특징을 동시에 지니는 한 인간을 오직 성별만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이런 말조차 '가부장제에서 정상가족으로 살고 있는 반동/구닭다리라서 하는 얘기'로 치부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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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옹호하면 무조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신종 자부심은 실상 여성주의적 관점이 무지한 사회의 풍경이다. 김건희씨를 둘러싼 의혹을 규명하자는 요구가 왜 여성혐오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김씨 모녀에 대한 사법적 판단뿐이다. 범법행위 옹호가 여성주의로 둔갑했다. 김씨 이슈는 성인지 감수성 차원의 젠더 문제가 아니다." —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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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씨의 과장/허위 이력을 정리한 기사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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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옹호하면 무조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신종 자부심은 실상 여성주의적 관점이 무지한 사회의 풍경이다. 김건희씨를 둘러싼 의혹을 규명하자는 요구가 왜 여성혐오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김씨 모녀에 대한 사법적 판단뿐이다. 범법행위 옹호가 여성주의로 둔갑했다. 김씨 이슈는 성인지 감수성 차원의 젠더 문제가 아니다." —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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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씨의 과장/허위 이력을 정리한 기사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2325...
Park Yuha 엘리트적 정의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541788657157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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