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解説>韓国の「道徳的な優越感」と日本教科書の「従軍慰安婦」記述削除=河野家の決断の歴史
9/15(水) 21:46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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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の文部科学省は8日、「従軍慰安婦」という用語について、複数の教科書会社から記述の削除や変更の訂正申請があり、これを承認した。文科省が同日、発表した。 【写真】もっと大きな写真を見る これに先立ち日本政府は今年4月、「従軍慰安婦」という用語について「誤解を招く恐れがある」として、「『従軍慰安婦』または『いわゆる従軍慰安婦』ではなく、単に『慰安婦』という用語を用いることが適切」との答弁書を閣議決定していた。 2014年の教科書検定基準の改正により、中学の社会科や高校の地理歴史・公民の教科書は、政府の統一見解を踏まえた記述とするよう定めている。 閣議決定を受け文科省は5月、教科書会社を対象に異例の説明会を開き、訂正申請を「6月末まで」と求めていた。当時のNHKの報道によると、説明会では教科書会社から「訂正申請をしなければ勧告の可能性もあるか」との質問が出たのに対し、文科省側は「そうした措置もあり得る」と回答したという。 朝日新聞の報道によると、「従軍慰安婦」の記述について訂正申請があったのは山川出版社、実教出版、清水書院の3社だという。 山川出版社は、中学社会科や高校の日本史の教科書から「いわゆる従軍慰安婦」との記述や「従軍」との表現を削除した。清水書院は高校の「歴史総合」の教科書で「いわゆる従軍慰安婦」との記述を維持するも、「政府の談話などを含めてこのように表現されることも多かったが(略)現在、日本政府は『慰安婦』という語を用いることが適切であるとしている」とする注釈を加えた。 教科書会社による申請を文科省が承認したことについて、韓国の外交部(日本の外務省に相当)の当局者は10日、「大変遺憾だ」とした。当局者は「旧日本軍の慰安婦動員、募集、移送の強制性は否定できない歴史的な事実で、被害者の生々しい証言こそがどんな文献よりも、日本軍による慰安婦動員の強制性を立証する明らかな証拠」などと強調した。 韓国メディアも、文科省による承認のニュースを伝えた。朝鮮日報は「日本の教科書から『従軍慰安婦』の記述が消える」とし、「日本政府が従軍慰安婦問題について謝罪するという内容の『河野談話』は28年目にして事実上、死文化したとの声が上がっている」などと伝えた。 河野談話は1993年8月、河野洋平官房長官(当時)が発表した談話。慰安婦問題について「いわゆる従軍慰安婦」との表現を使用し、「(日本)軍の関与の下に、多数の女性の名誉と尊厳を深く傷つけた」と謝罪した。 前述のように、2014年に改正された教科書検定基準では、中学の社会科や高校の地理歴史・公民の教科書は、政府の統一見解を踏まえた記述とするよう定めている。これに関しては、バランスの取れた内容の教科書が求められる中で、画一的な見解の押し付けにつながる恐れもあるとの声もある。 約30年前の河野談話は、慰安婦報道の嵐の中、日本首相の韓国訪問や韓国との関係改善を見込んだ当時の日本政府・河野洋平氏の決断であった。その後の20年間、韓国は日本に対する「道徳的な優越感」を満喫してきた。 「白衣を着て平和で道徳的に暮らしていた半島。異民族の日本に統治されたあげく、20万人の純潔な少女たちが日本軍の関与の下に、慰安婦になって戦場に連れて行かれた」とのストーリーが完成したからだ。 自ら同族の40%を奴婢として所有・売買・相続していたことや、併合までの国際情勢や、日本による半島の近代化は全てが否定され、半島の被害や不幸の全てが「道徳の欠片もない日本の責任」とされてしまったのだ。 韓国伝統の儒教的な世界観で日本を韓国より格下と位置付ける「小中華の意識」にみると、日本による朝鮮半島統治は序列秩序を違反だった。その上、日韓の経済格差で自尊心に傷が付いていた韓国に、この「道徳的な優越感」は劣等感を克服するきっかけとなった。 その間、韓国経済も日本経済を追いつけるかのような勢いを見せた。浦項製鉄(ポハン製鉄・POSCO)や現代自動車(ヒョンデ・HYUNDAI)やサムスン電子(三星・SAMSUNG)などの躍進は、韓国に「道徳」だけでなく「経済」でも優越感を期待させた。 しかし、韓国はその基盤作りに貢献した日本の存在を忘れ、むしろ行き過ぎた反日行動に走った。2010年代からの慰安婦訴訟や2015年の日韓の約束に対する反故は、韓国を自ら嘘つきとしてしまった。これで20年間以上の「道徳的な優越感」は大逆転となった。 2021年の日本は1993年の日本とは違って、韓国に譲歩する「大人の対応」はもうしない。その間のインターネットやSNSの発達で、日本の政治は韓国の被害者意識を撫でることをやめたのだ。 今回の自民党の総裁選で河野太郎氏が首相となる可能性が出来た。1965年、「日韓国交正常化」のために河野太郎氏の祖父・河野一郎氏が決断していた「竹島・独島密約」。そして、1993年、河野太郎氏の父親・河野洋平氏が決断していた「河野談話」は、それぞれその時代の日韓関係に大きな役割を果たしてきた。 何とか「道徳的な優越感」のマウントを取り戻そうとする韓国と、これ以上は韓国に譲歩しない日本。1965年にも1993年にも2021年にも変わらないものは北朝鮮の脅威である。この難しい時代に、河野太郎氏の「決断」は如何なるものになるのだろ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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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終更新:9/16(木) 9:53WoW!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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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해설>한국의 「도덕적인 우월감」과 일본 교과서의 「종군 위안부」 기술 삭제=고노가의 결단의 역사
9/15(수) 21:46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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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wowkorea)
일본 문부과학성은 8일 ' 종군위안부 '라는 용어에 대해 여러 교과서회사에서 설명 삭제 및 변경 정정 신청이 있어 이를 승인했다. 문과성이 이날 발표했다.
【사진】더 큰 사진을 보는
이에 앞서 일본 정부는 올해 4월, 「종군 위안부」라는 용어에 대해 「오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로서, 「『종군 위안부』 또는 『이른바 종군 위안부』에서는 없이 단순히 '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답변서를 각의 결정 했다. 2014년 교과서 검정 기준의 개정에 따라 중학교 사회과나 고등학교 지리 역사·공민 교과서는 정부의 통일 견해를 근거로 하는 설명으로 삼아야 한다. 각의 결정을 받아 문과성은 5월 교과서회사를 대상으로 이례적인 설명회를 열고 정정신청을 '6월말까지'라고 요구했다. 당시 NHK의 보도에 따르면 설명회에서는 교과서회사로부터 “정정신청을 하지 않으면 권고의 가능성도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는데 문과성 측은 “그런 조치도 있을 수 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사히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종군 위안부」의 기술에 대해 정정 신청이 있었던 것은 야마가와 출판사, 실교 출판, 시미즈 서원의 3사라고 한다. 야마가와 출판사는, 중학 사회과나 고등학교의 일본사의 교과서로부터 「이른바 종군 위안부」라고의 기술이나 「종군」이라고 하는 표현을 삭제했다. 시미즈 서원은 고교의 「역사 종합」의 교과서에서 「소위 종군 위안부」라고의 기술을 유지하는 것도, 「정부의 담화 등을 포함해 이와 같이 표현되는 일도 많았지만(약) 현재, 일본 정부는 '위안부'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한다"는 주석을 더했다. 교과서회사에 의한 신청을 문과성이 승인한 것에 대해, 한국의 외교부(일본의 외무성에 상당)의 당국자는 10일, 「몹시 유감이다」라고 했다. 당국자는 “구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 모집, 이송의 강제성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로, 피해자의 생생한 증언이야말로 어떤 문헌보다,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 등을 강조했다.
한국 언론도 문과성에 의한 승인 소식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일본의 교과서에서 '종군위안부'의 기술이 사라진다”며 “일본정부가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한다는 내용의 “ 고노 담화'는 28년 만에 사실상 죽음 문화했다는 목소리가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고노 담화는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당시)이 발표한 담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소위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을 사용해 “(일본)군의 관여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깊이 손상시켰다”고 사죄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2014년에 개정된 교과서 검정 기준에서는 중학교 사회과나 고등학교 지리 역사·공민 교과서는 정부의 통일 견해를 근거로 하는 설명으로 하기로 정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균형 잡힌 내용의 교과서가 요구되는 가운데, 획일적인 견해의 가압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는 소리도 있다. 약 30년 전의 고노 담화는 위안부 보도 폭풍 속 일본 총리의 한국 방문과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전망한 당시 일본 정부 고와 요헤이 씨의 결단이었다. 그 후 20년간 한국은 일본에 대한 '도덕적인 우월감'을 만끽해 왔다. “백의를 입고 평화롭고 도덕적으로 살고 있던 반도. 이민족의 일본에 통치된 가운데, 20만명의 순결한 소녀들이 일본군의 관여하에 위안부가 되어 전장에 데리고 했다”는 스토리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동족의 40%를 노예로서 소유·매매·상속하고 있던 것, 병합까지의 국제 정세나, 일본에 의한 반도의 근대화는 모두가 부정되어, 반도의 피해나 불행의 모두가 “도덕의 조각 없는 일본의 책임”이라고 되어 버린 것이다.
한국 전통의 유교적인 세계관에서 일본을 한국보다 격하로 자리매김하는 '소중화의 의식'으로 보면 일본에 의한 한반도 통치는 순서 질서를 위반했다. 게다가 한일의 경제 격차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 한국에 이 '도덕적인 우월감'은 열등감을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한국 경제도 일본 경제를 따라잡는 것 같은 기세를 보였다. 포항제철(포항제철·포스코)과 현대자동차(현대현아)와 삼성전자(삼성·삼성) 등의 약진은 한국에 '도덕'뿐만 아니라 '경제'에서도 우월감을 기대시켰다.
그러나 한국은 그 기반을 만드는 데 기여한 일본의 존재를 잊고 오히려 지나간 반 일행동에 달렸다. 2010년대부터 위안부 소송과 2015년 한일의 약속에 대한 반고는 한국을 스스로 거짓말쟁이로 삼았다. 이로써 20년간 이상의 '도덕적인 우월감'은 대역전이 되었다. 2021년 일본은 1993년 일본과 달리 한국에 양보하는 '어른의 대응'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 사이의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일본의 정치는 한국의 피해자 의식을 쓰다듬는 것을 그만둔 것이다. 이번 자민당 총재선에서 고노타로 씨가 총리가 될 가능성이 생겼다. 1965년, 「일한국교정상화」를 위해 고노타로씨의 할아버지·카와노 이치로씨가 결단하고 있던 “다케시마·독도밀약”. 그리고 1993년 고노타로 씨의 아버지 고노 요헤이 씨가 결단하던 '고노 담화'는 각각 그 시대의 한일관계에 큰 역할을 해왔다. 어떻게든 '도덕적인 우월감'의 마운트를 되찾으려는 한국과 더 이상 한국에 양보하지 않는 일본. 1965년에도 1993년에도 2021년에도 변함없는 것은 북한의 위협이다. 이 어려운 시대에, 고노 타로씨의 「결단」은 어떤 것이 되는 것일까. 이다. 이 어려운 시대에, 고노 타로씨의 「결단」은 어떤 것이 되는 것일까. 이다. 이 어려운 시대에, 고노 타로씨의 「결단」은 어떤 것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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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해설> 일본 정부가 '종군 위안부'가 아니라 '위안부'라는 표현이 적절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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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9/15(水) 21:53非表示・報告
>日本の存在を忘れ、むしろ行き過ぎた反日行動をしてしまった
この一見、謙虚な言動に騙されては日本はまたぞろバカを見る
彼らに甘い顔を見せて、結果、自分の首を絞めることになった戦後の日韓関係を、
日本はよく肝に銘じるべき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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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 | 9/15(水) 21:58非表示・報告
慰安所の経営者と慰安婦は儲かるから日本軍について行ったのでしょう。そして慰安婦には日本本土出身の女性もいたし経営者にも本土出身の人がいたと思う。
朝鮮半島出身慰安婦だけが誤ったクローズアップのされ方をしているが、当時の環境を理解して合理的に考えよう。「韓国の道徳的優位性」なんて超不自然だと分かるはず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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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狐蘭丸 | 9/15(水) 22:01非表示・報告
河野洋平氏の媚韓路線を息子の河野太郎候補が踏襲するとは限らないが、何らかの形で妥協する可能性の高い河野氏に彼の国側が期待するのは分かる。だが、総理は日本人が決める事であり、国民の意思を無視する政権は維持が難しくなるので期待しない方が良いと思います。ただ、反日国に対する強硬姿勢の維持だけを考えるなら、岸田候補や高市候補の方が日本人としては安心でき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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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 9/15(水) 22:03非表示・報告
> 被害者の生々しい証言こそがどんな文献よりも、日本軍による慰安婦動員の強制性を立証する明らかな証拠
彼の国では証言さえあれば、物的証拠がなくても人を有罪にできるのでしょうか?恐ろしいです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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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 9/15(水) 22:00非表示・報告
仮にこの先何かの間違いで韓国が日本に感謝するような雰囲気になっても、時すでに遅し。日本はいずれまた手のひらを返すことを学んだので韓国に手を差し伸べることはない。
未来の世代のためにも、日本は竹島を取り返す以外は無視を貫き通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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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o***** | 9/15(水) 22:03非表示・報告
北に強気に出るわけにもいかず、旧宗主国である中国に至っては頭が上がったためしがなく、安全保障の命綱である米国の機嫌を決定的に損ねることもできず。
そんな外交関係で連日、面子を蹂躙される韓国にとっては、使い減りしない道徳的優位とやらで好きなだけ罵倒できて金銭まで引き出せる唯一の関係は、さぞ心地良かったことでしょう。が、日本の堪忍袋にも限度というものがありました。
ある意味、感心しますよ。うちの国はちょっとやそっとでは強硬な対応に出ないことで有名なのに。
もうたくさんです。自分たちが使い減りしないと信じ込んで傲慢な振舞いを重ねるうちに、日本国内における親韓派とやらは見るも無残なほどに消え去りました。日本国内での話で彼らが防壁になっていたから、今までは韓国に直接ダメージが届かなかっただけ。
これからは「信用されていない普通の国」としてのもてなしが韓国を待っ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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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 | 9/15(水) 22:05非表示・報告
>>日本の政治は韓国の被害意識を撫でることをやめたのだ。
気づくのが遅すぎると思いました。「戦後の精算」を標榜した安倍政権だけの一時的な政策ではなく、もはやこれは多くの日本人の民意です。被害者意識を撫で回すことで日本にリターンがあった時代は終わったので、もはやメリットの無い撫で回しは国益に適いません。次世代の教育をはじめとして、国策としての反日で日本から得られるものはもう何もないとご理解頂くことが、「未来志向の両国関係」の第一歩だ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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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a***** | 9/15(水) 22:05非表示・報告
対韓国に対する日本の思想も行動も大きく変わっていることに気づいているはず。時の総理が誰になろうとも 日本国民の対韓国に対する意識は完全に定着したと思われる。昔のように何を言われようがそれにおもねるようなことはあり得ず、冷静に判断する国民の意識は確立された。
政権が立憲か共産に変わらない限り、国としてブレることはありえ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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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k***** | 9/15(水) 22:06非表示・報告
記事に書かれている通り、日本政府が「いわゆる従軍慰安婦」と呼称し、「従軍慰安婦」という呼称を今まで一貫して公式に認めてこなかったのは確かであり、教科書の表記はその日本政府の見解を反映しただけにすぎない。
「従軍慰安婦」という単語は、1974年に刊行された千田夏光の『従軍慰安婦 声なき声 八万人の告発』という本が初出であり、それ以前に使われていなかったので千田氏の造語でしかなく、歴史用語として用いるのは適切ではない。
ただそれだけの話なのに、道徳的優越感がどうだとか、この記事はあまりに見当違いな事を言いすぎではなかろ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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旭日旗 | 9/15(水) 22:15非表示・報告
韓国のマスコミが東北大震災の時、〝日本沈没”と表現し、まるでお祝い事のように書き立てたこと絶対に忘れません!この国に期待したらダメです。安倍さんの一番の功績は従来の弱腰外交に終止符を打ったことだと思います。是非次の内閣も踏襲してくれることを期待し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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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Taro Kono is elected the next prime minister of Japan...
Author: Ksliu Date: 2021-09-17 Source: Old Master's Shop
Kono's new work published on August 27, 2021: "Pushing Japan Forward" (Photo courtesy of Ksliu)
There are now two weeks left before the Japanese Liberal Democratic Party elections on September 29. Taro Kono is the loudest voice, followed by Shigeru Ishiba, and then Fumio Kishida and Sanae Takaichi.
The latest news is that Ishiba may abandon the election and switch to supporting Kono. If it is true, then Kono may lead by a large margin, and the probability of winning is greatly increased. It seems that he is the prime minister.
If Kono is elected, how will he handle future Japan-China relations? According to online information, it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There are many factions in the Liberal Democratic Party in Japan, and competition is fierce. However, "hard-line against China" and "pro-US, anti-China, and friendly to Taiwan" seem to have become the consensus of all factions. No matter who is elected, they will take the stage as "hawks". Kono is no exception .
Kono’s father, Yohei Kono, once served as the president of the Japanese Liberal Democratic Party. He published a famous "Kono Talk" in 1993, acknowledging the existence of "comfort women" during World War II. On June 27 this year, the old Kono also celebrated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Chinese Communist Party. A congratulatory message was sent on the anniversary. Taro Kono himself has not expressed support or opposition to this, but he does not visit the war criminals in the Yasukuni Shrine (but he will visit his relatives who died in the Second World War in the shrine). This has enabled him to win the favor of both China and South Korea. Good impression. During his tenure as Japan's Minister of Foreign Affairs from 2017 to 2019, he was praised by the Chinese side, and he himself did actively advocate improving the relationship between Japan and South Korea.
When he was young, Taro Kono insisted on going to college in the United States despite his father's objections. In 1985, he was 22 years old and graduated from the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 at Georgetown University in the United States. He became a bilingual "net celebrity" on social media, his Twitter account tweeted in both Japanese and English, and his followers reached 2.3 million. He holds a press conference almost every two weeks, and he uses the media to promote himself, especially among young people.
Kono's current specific duties within the Japanese government are in charge of fighting the epidemic and promoting vaccines. Prior to this, he was the Minister of Foreign Affairs (2017-2019) and the Minister of Defense (2019-2020) of Japan. He said: "When I was Minister of Foreign Affairs, I was very cautious. I did not say that China is a threat... But as the Minister of Defense, I must say that China has become a security threat to Japan."
If you browse his Twitter account since the beginning of this year, you can find that besides vaccines, his most topic is to forward the news of the Japanese Air Force Self-Defense Force every time it takes off to respond to foreign invasions. During his tenure as Minister of Defense, he often personally ordered Japanese fighter planes to fight. It can be seen that he was very disgusted with the invasion of Chinese and Russian fighters. He was the first senior official in the Japanese government to use the term "China threat". He once claimed that Japan would fight to defend the Diaoyu Islands and believed that the United States would help.
Another topic that often appears on his Twitter account is the joint military exercise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Japan.
Kono published a new book " Move Japan Forward " (Move Japan Forward) on August 27 this year , expounding his political ideas in the fields of Japan's security and energy. He believes that in order to cope with the rapidly expanding military power of China, it is necessary to maintain and strengthen the Japan-US alliance, and seek to establish alliances with Asian countries that share common values. Obviously, Kono is a strong supporter of the US-Japan military alliance. He also praised this year's joint military exercises between the United States, Japan, Australia, and France. It is certain that he is also a staunch supporter of the "quartet mechanism."
But Kono is not a simple "follower". He has his own ideas and goals. He once said that to realize his ideas, it is best to be the Prime Minister of Japan. He is a "rebel" within the Liberal Democratic Party. Because he likes to eat durians, which have spiny shells, he won the nickname "Durian". During his tenure as Minister of Defense, he suddenly announced the abandonment of the plan to deploy the Aegis Ashore missile interception system (the plan has been changed to the Aegis Ashore system in the new defense budget).
Taro Kono entered Japanese politics as early as 1992 and became a member of the 15th district of Kanagawa. He belongs to the "Aso faction" within the party. Taro Aso is a "hardliner" on the Taiwan issue and advocates joint defense of Taiwan by Japan and the United States. Kono's attitude on the Taiwan issue is still uncl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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