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e-Kwan Kim
[2021년 10권의 책]
코로나와 함께 한 두번째 해, 그 끝자락에 올 해 읽은 책들중 특히 기억에 남는 책 10권을 추려본다.
1. A New World Begins – Jeremy D. Popkin
퇴임을 앞두고 어느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오바마는 기대와 달리 재임중 개혁이 더디었다는 지적에 대해 역사의 진보를 한척의 배에 비유하면서, 민주사회에서 지도자의 역할은 배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는 것, 혹은 배가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을 한다. Jeremy D. Popkin의 프랑스혁명사는 폭력, 선전과 선동, 그리고 반대진영의 악마화가 난무하는 – 역사의 배가 전복 직전까지 가는 - 혁명기 프랑스를 입체적으로 그린다. 프랑스 혁명사에 대해 오랜만에 읽으며 나는 법치주의와 토론이라는 토대 위에 – 무엇보다 인명의 희생없이 – 건설된 미국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상기하고, 다시금 오늘날 한국(적) 민주주의를 우려한다.
2. The Age of Unpeace – Mark Leonard
냉전붕괴, 인터넷의 보급, 그리고 전세계적 공급망의 확충으로 인류가 전례없이 가까워짐과 더불어, 글로버리즘의 조류는 상호간 존중과 이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세기말, 그리고 세기초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Mark Leonard의 책은 그러한 기대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파편화, 블록화되어가는 세계의 모습, 그리고 세계화의 과실이 일부층에 집중되는 현실을 그리면서, 소위 연결성 (connectivity) 그 자체가 분열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고 지적을 한다.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와 국가간 평화에 대해 여러가지 시사점을 주는 책이다.
3.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 – 야마무로 신이치
나의 할아버지는 일제치하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만주국 봉천에서 수학을 하셨다.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셨지만 (흥미롭게도) 일본어를 구사하시는 것을 개인적으로 들은 기억은 없다고 하신다. 장손인 내가 일본에서 자랄 당시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아시고는 아버지를 호되게 질책하신 반면, 내가 대학시절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막연한 – 학습된 - 반감을 드러내자 “일본인들중에 훌륭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말씀하실만큼 일본, 그리고 식민 경험에 대해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셨던 분이셨다. 그리고 나는 언제부터인가 - 보르헤스가 어느 시에서 이야기한 이제는 모래처럼 사라진 도시 – 만주국에 대해서 찾아 읽고 있다. 근대의 빛과 어둠이 선명하게, 치열하게 겹치고, 다투다 사라진 만주국이라는 공간에 나의 할아버지의 발자국이 남아있다.
4. 다케우치 요시미 어느 방법의 전기 – 츠루미 슌스케
다케우치는 전후 일본 사회를 고찰하면서 “일목일초에 천황제가 있다”라는 인상적인 문장을 남긴다. 여기서 그가 말한 천황제란 제도로서의 천황제가 아니라, 중국학자로서 대일본제국의 중국침략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가졌던 그를 어느새 대동아전쟁을 긍정하도록 변모시킨 광기는 온전히 자기자신 안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으로, 체제나 제도에 의해 강요된 천황제가 아니라 다케우치 자신을 포함한 일본인 내면의 천황제를 극복해야한다는 자각이다. 다케우치는 그리고 이러한 자각의 실타래를 루쉰이 말한 내면의 흔들림 - “쩡짜 (挣扎)” - 에서 찾는다. 그에 의하면 쩡짜란, “참다, 용서하다, 발버둥치다, 고집을 세우다 등의 의미를 지니“고 “굳이 일본어로 옮긴다면 ‘저항’에 가깝다’고 한다. 나는 츠루미 슌스케를 통해 다케우치 요시미를 알게 되었는데, 이 두명의 전후지식인들로부터 삶의 방식에 대해 나는 많은 것을 배운다.
5. The Gate of Heavenly Peace – Jonathan Spence**
최근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조나단 스팬스의 대표작 중 하나로, 중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캉유웨이, 루쉰, 딩링등 개인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묘사한다. 서구열강과 일본의 침략, 그리고 국공내전을 시대적 배경으로 중국 지식인들은 끊임없는 선택을 강요당하고, 어떤 이는 미국으로, 또 다른 이들은 소비에트 러시아, 일본 그리고 중국의 산속으로 향했다. 그 자신 젊은 나이 일본에서 의술을 공부하다 귀국한 루쉰은 그러나 그러한 역사를 향한 발버둥질의 근본적인 (무)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의문을 표한다: “창문없이 쇠로 만들어진 집이 있고, 그 안에서 수많은 이들이 자고 있습니다. 이들은 머지않아 숨이 막혀 죽을 텐데, 깨지 않는 상태로 이들이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나을까요, 아니면 그들을 깨워 확실한 죽음 전 죽음의 공포감을 잠시라도 맛보게 하는 것이 나을까요?” 루쉰은 이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았다.
6. Great State – Timothy Brook
다케우치 요시미를 읽으며 갖게 된 중국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은 조너선 스펜스, 그리고 티모시 브룩과 스티븐 플랫 (Stephen Platt)의 저작들로 이어졌다. 브룩은 중국=대국이라는 인식이 원나라에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러한 인식의 흔적은 그 이후 이어진 중국의 국호에서도 – 대원, 대명, 그리고 대청 -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21세기 중국의 대국으로서의 자기 인식은 일대일로, 약소국에 대한 약탈적 차관, 주변국에 대한 위협과 파괴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의 근린국 중 하나로 중국의 실질적/잠재적 위협에 항시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그러한 위협이 무시/은폐되는 한국은 아이러니하게도 동아시아에서 유알하게 국호에 여전히 ‘대’자를 쓰는 나라이다.
7. Hold Tight Gently – Martin Duberman
8-90년대 뉴욕과 워싱턴 디씨에서 동성애 인권운동가로 일하다 AIDs로 사망한 음악인 Michael Callen과 시인 Essex Hemphill에 대한 전기이다. 특히 Hemphill의 삶 – 보다 정확하게는 그의 시들 – 이 내게는 인상깊었는데, 흑인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의 교차점에서 그는 동료들과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애정이 담긴 시들, 그리고 AIDs 팬더믹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시들을 여럿 남겼다. 너무나 많은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병마와 구조적 편견의 불길 속에서 산화해갔다.
8. Sex and the Floating World – Timon Screech
춘화가 일본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명치유신 이후라고 한다. 탈아입구의 일환으로 서양인의 눈에 야만으로 비춰진 다른 일본의 문화들과 함께 – 가령 혼탕이 그 중 하나이다 -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히려 인간의 성에 인위적인 제제를 가한 유럽 기독교 문화가 야만이지는 아니었을까. 춘화는 책의 형태로 주로 출판되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책들을 살펴보면 이성간의 성관계가 주이나, 동성간의 성관계도 자연스럽게, 빈번하게 묘사된다는 점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생전 에도시대 동성애 춘화를 대량 보유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의 자살 후 미망인은 미시마의 춘화들을 한점도 남김없이 불태웠다고 한다.
9. 安い日本 -中藤玲 (싼 일본, 나카후지 레이)
최근 일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직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 연봉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 내게 제시된 연봉은- 일본 측 회사가 ‘파격적 조건’이라고까지 말한 – 십 몇 년 전 내 변호사 초임보다 조금 높은 액수였다. 그러던 와중 올해 일본에서 화제가 되었던 나카후지의 책을 읽고 일본의 임금 수준/물가가 30년전과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충격을 받았다. 같은 시기 미국은 평균 임금은 3%, 물가는 2% 올랐으니 일본은 국가 자체가 빈곤 국가화되고 있다는 일본 미디어의 볼멘 소리가 괜히 나오는 소리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버블붕괴 후 지속된 디프레이션의 늪에서 과연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10. ネジ式・夜が掴む -つげ義春 (나사식, 밤이 잡다 – 츠게 요시하루)
츠게 요시하루의 상상력은 기묘하고 폭력적이며, 외설적이다. 그의 만화는 오늘날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여혐’ 또는 ’안티-PC 주의적’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나는 그러나 이러한 표현도 얼마든지 발화되어야 한다 – 보호되어야 한다 - 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사람의 생각을, 표현을 제한하는 모든 법률은 열린 사회의 근간을 해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한국에는 표현 그리고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률이 도처에 깔려있고 – 나날이 늘고 있고 - 옳고 그름이 정답과 오답의 형태로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사회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나는 츠게 요시하루의 책을 펼치면 무엇보다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Liberal-in-Chief”, New Yorker 05/15/2016
**”천안문” 정영무 역으로 한국에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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