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영화)
최근 수정 시각:
장준환 감독 장편 연출 작품 |
1987 (2017) 1987: When the Day Comes[1] | |
감독 | |
각본 | 김경찬 |
각색 | 김경찬, 이우정[2], 장준환 |
제작 | 이우정, 장영환 |
기획 | |
촬영 | 김우형 |
조명 | 김승규 |
편집 | 양진모 |
동시녹음 | 정광호 |
음향 | 김석원 |
미술 | 한아름, 김윤석 |
음악 | |
출연 | |
장르 | |
제작사 | ㈜우정필름, 영화사 연두 |
배급사 | |
제작 기간 | |
개봉일 | |
상영 시간 | 129분 |
월드 박스 오피스 | |
북미 박스 오피스 | |
총 관객수 | |
1. 개요[편집]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어?”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이 연출한 역사 드라마 영화.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둘러싸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군상극 영화. 당시 사건을 은폐하려던 상부 지시를 무시하고 법대로 부검을 강행한 최환 부장검사, 영등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전직 기자이자 민주화운동가인 이부영이 옆방에 수감된 고문 경찰관들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뒤 친한 교도관을 통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전달하여 폭로하게 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둘러싸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군상극 영화. 당시 사건을 은폐하려던 상부 지시를 무시하고 법대로 부검을 강행한 최환 부장검사, 영등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전직 기자이자 민주화운동가인 이부영이 옆방에 수감된 고문 경찰관들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뒤 친한 교도관을 통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전달하여 폭로하게 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2. 마케팅[편집]
2.1. 예고편[편집]
▲ 티저 예고편 |
▲ 메인 예고편 |
▲ 캐릭터 예고편 |
▲ 30초 예고편 |
▲ 그날이 오면 |
2.2. 포스터[편집]
3. 시놉시스[편집]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22살 대학생이 사망한다. 증거인멸을 위해 박 처장(김윤석)의 주도 하에 경찰은 시신 화장을 요청하지만,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최 검사(하정우)는 이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인다.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거짓 발표를 이어가는 경찰. 그러나 현장에 남은 흔적들과 부검 소견은 고문에 의한 사망을 가리키고, 사건을 취재하던 윤 기자(이희준)는 ‘물고문 도중 질식사’를 보도한다. 이에 박 처장은 조 반장(박희순) 등 형사 둘만 구속시키며 사건을 축소하려 한다. 한편, 교도소에 수감된 조 반장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은 이 사실을 수배 중인 재야인사에게 전달하기 위해 조카인 연희(김태리)에게 위험한 부탁을 하게 되는데… 한 사람이 죽고,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뜨거웠던 1987년의 이야기. |
4. 줄거리[편집]
5. 등장인물[편집]
자세한 내용은 1987(영화)/등장인물 문서
를
참고하십시오.6. 평가[편집]
6.1. 평론가 평가[편집]
★★★★☆ 그 시간의 의인들과 감독에게 감사드린다 -이용철- ★★★★☆ 역사적 사건을 정조준하며 본질에 육박하는 힘! -황진미- ★★★☆ 전.두.환. 반드시 처벌해야 할 역사 -허남웅- ★★★★ 제목에 값하는 규모와 짜임새, 그리고 울림 -한동원- ★★★★ 87년 6월의 자장을 만든 원자들에 대해서 -임수연- ★★★★ 스필버그 영화처럼, 단단하고 묵직하다 -이화정- ★★★★ 끌고 가지 않는데 끌려들어간다 -송경원- ★★★☆ 뜨겁고 아프다, 감사! -박평식- ★★★★☆ 진실과 자유는 광장에서 만난다 -김현수- ★★★★ 기록하고, 고발한다 -이지혜- ★★★★ 그날이 오면 -김형석- ★★★★ 1987년 6월과 2017년 촛불, 그곳에 광장이 있었다 -정시우- ★★★★ 실화와 픽션의 조각들을 놀라운 세공력으로 맞춰나가다가 1987년과 2017년을 이어내고야 만다. -김도훈- ★★★☆ 희망은 작은 고리들의 연쇄에 있다. -이동진- |
대공처장(김윤석)이라는 악역을 중심으로 인물들이 릴레이 하듯 대립하며 시대의 초상을 그려나간다. 군사정권의 어둠에서 시작해 광장의 함성에서 화면을 멈추는 영화. 서스펜스를 골조로 느와르, 로맨스, 복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한다. 장준환 감독의 밀도 높은 연출이 상이한 장르와 인물 군상을 하나로 엮어내는 비결이다. 모두가 뜨거웠던 그 해의 열기와 차가운 이성, 온탕과 냉탕, 픽션과 논픽션, 역사의 대로와 샛길, 역사를 재현하는 액션과 리액션의 영화. 관객 모두를 그날의 연루자로 만든다. 끝이 아닌 시작이 되어야 할 엔딩.-송경원-
<1987>은 멀지 않은 과거, 아직 청산되지 않은 야만의 시대를 기록하고, 고발한다. 고문, 강제 연행, 언론 탄압 등 일상에 촘촘히 박혀 있는 불의는 권력을 위해 복무하고, 그로 인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속속들이 파괴된다. 영화는 아픔에 그저 분노로 그치지 않는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손을 빌려 이 모든 비극을 유발했으며 아직까지 책임지지 않은 권력자의 민낯을 벗겨낸다. 치장보다는 담담히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전하는데 전력투구한 덕분이다.-이지혜-
'1987년이라는 시간에 한정되어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두 젊은이의 죽음을 기둥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개인’의 의미를 성찰한다.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려 하고, 그 반대편에선 그 힘을 억압한다. 각성하는 사람들이 있고, 누군가는 억눌렸던 양심을 꺼낸다. 그리고 용기를 내며 저항한다. 공교롭게도, 혹은 역사의 법칙인 듯, 지금은 우리 사회와 강하게 공명하는 <1987>.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의 무용담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지금의 젊은 세대들을 위한 가슴 벅찬 드라마다.-김형석-
용감한 기획을 곁눈질하지 않고 뚝심 있게, 그러나 사려 깊은 마음으로 밀어붙인, 올해의 한국 영화다. 장준환 감독은 역사적 무게에 짓눌려 망설이지 않는다. 실존했던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아직 차갑게 식지 않은 역사의 현장을 스크린에 재생시킨다. 악을 대변하는 박처장(김윤석) 얼굴 위로 그 사람 ‘전두환’ 얼굴이 중첩되는 부분에서 영화는 이 비극의 가해자가 누구인지 명명백백 수배하기도 한다. 시대의 공기를 밀도 있게 포섭한 김우형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관객을 그 시간으로 더 깊게 밀착시키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박종철로 시작해 이한열로 끝맺는 이 영화에서 배우들은 한 명 한 명이 작은 횃불이다. 계주하듯 바통을 이어받으며 거대한 바위에 기꺼이 몸을 날리는, 작지만 의미 있는 계란들의 질주. 역사를 바꾸는 건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다수의 민중이라는 점에서, 영화 내내 2017년 광장에 모인 촛불이 동시 상영된다. 이 영화를 ‘1987’로 쓰고 ‘2017’로도 읽을 수 있는 이유.-정시우-
평론가 이동진은 "수많은 인물들을 통해 마치 벽화를 그려내는 듯 하고, 속도감과 긴장감을 동반해 1987년의 격랑을 먹먹하게 담아낸다"고 호평했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 급박하게 뒤얽히며 펼쳐지는 거대한 이야기가 길을 잃지 않은 데에는 보기 드물 정도로 화려한 출연진이 도움을 주었지만, 강동원과 하정우의 스타성이 도리어 영화 자체의 동력을 약화시키며 김태리 친구 역 배우같이 부주의한 관성으로 직조된 캐릭터를 단점으로 보면서 별 3개 반을 주었다. 본문
평론가 박평식은 역사의 무게에 눌리지 않는 뚝심과 통찰에 디테일을 곁들였으며, 스테인드 글라스의 예수 등 상황과 소품으로 의미를 캐는 솜씨가 빼어나다고 평했다.[스포일러] 김태리와 잘생긴 남학생의 관계는 뚝배기에 담긴 콜라를 숟가락으로 떠먹는 듯한 느낌이지만, 항쟁을 이끈 아름다운 기폭제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다지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한국 영화의 역대급 엔딩으로 꼽았다. 본문
LA 타임즈의 로버트 아빌레(Robert Abele)는 HBO의 걸작 드라마 더 와이어에 빗대어, "점(인물이나 사건)을 연결하는 솜씨가 감탄할 만하다"는 호평을 남겼다. 본문
7. 흥행[편집]
7.1. 대한민국[편집]
대한민국 박스오피스 1위 영화 | ||||
2018년 1주차 | → | 2018년 2주차 | → | 2018년 3주차 |
1987 | ||||
대한민국 누적 관객수 | ||||||
같은 주에 개봉하는 작품으로는 1987, 원더(이상 2017년 12월 27일), 고스트 스토리, 극장판 프리파라 모~두의 동경♪ 렛츠 고☆프리파리, 나의 연기 워크샵, 두 개의 사랑, 일주일간 친구, 줄리아, 하이 스트렁, 배틀그라운드 브릿지 전투(이상 2017년 12월 28일)까지 11편이다. 원래는 크리스마스 이전에 개봉해야할 작품들이 많았는데 강철비,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신과함께-죄와 벌, 위대한 쇼맨 등에 밀려서 대거 개봉 연기되었다.
12월 27일(1일차)의 관람 인원은 328,794명으로, 주요 경쟁작인 신과함께-죄와 벌보다 약 17만 명 정도 뒤지며 2위로 출발했다. 이날 스크린 수는 <신과 함께>가 129개 더 많았으나, 상영횟수는 <1987>이 76회 더 많았다. 가족 영화인 <신과 함께>에 비해 조조 또는 심야로 상영되는 횟수가 더 많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수치다. 개봉 다음 날부터는 스크린 수는 물론 상영횟수 역시 <신과 함께>가 더 많았다. 이후 1월 1일(6일차)까지의 스크린 수는 <1987>이 1,000~1,100개 <신과 함께>가 1,600여 개를 점유해, 차이가 더 벌어졌다.
개봉 후 첫 주말을 맞은 12월 30일(4일차)에 누적관객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변호인, 국제시장과 동일한 흥행 속도. 직전 개봉한 강철비, 신과함께-죄와 벌이 3일 만에 100만 명을 돌파한 것보다 하루가 늦다. 크리스마스 버프는 놓쳤지만, 문화가 있는 날에 개봉하여 방학과 주말 버프를 연달아 받았음을 감안하면 다소 부진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평단과 관객의 호응이 좋아서 보다 장기적인 추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2월 31일(5일차)과 1월 1일(6일차)의 연휴기간에 누적관객수 200만 명을 돌파했다. 좌석점유율도 1~3%의 근소한 차이로 <신과 함께>를 넘어섰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차트 역주행을 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중. 그러나 스크린 수의 차이로, 12월 31일 하루에만 100만 명이 관람하는 기염을 토한 <신과 함께>의 관람 인원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전술했듯이 이 기간 <신과 함께>는 1987보다 1.5배 가량 많은 스크린 수를 보유하고 있었다.[77]
1월 3일(8일차)에 964개를 찍은 스크린 수도 이후 다시 반등해 일일 스크린 수는 1,000개 선을 유지하고 있다. 1월 4일(9일차)에 누적관객수 300만 명을 돌파했으며, 1월 7일(12일차)에는 누적관객수 400만 명을 돌파하여 손익분기점을 넘어섰고, 제작진이 인증샷을 공개했다. # 영화의 소재와 시사성으로 말미암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 뒷심을 발휘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1월 8일(13일차)에 주요 경쟁작인 <신과 함께>의 힘이 빠지면서, 처음으로 일일관객수 1위에 올랐다. 스크린 수는 여전히 <신과 함께>보다 160개가량 뒤처지지만, 좌석점유율에서 안정적으로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1월 11일(16일)부터는 스크린 수에서도 <신과 함께>를 66개 차이로 넘어섰다.
1월 13일(18일차) 오전 7시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월 16일(21일차)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월 28일(33일차)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월 7일(43일차) 720만 관객을 돌파했다.
2월 8일 VOD가 출시되었다.
결론적으로는 평가도 매우 높은 편이고 흥행할 수 있는 여지가 아주 많았지만, 쟁쟁한 경쟁작들이 많았던 탓에 천만은 돌파하지 못했다. 그래도 뛰어난 작품성에 비해 흥행면에서 아쉬웠던[78] 장준환 감독의 첫 흥행 대박작이며, 이 작품을 통해 장준환 감독의 차기작을 쉽게 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경쟁작이 너무 강한데다가, 개봉 당시 좌석점유율이 위대한 쇼맨보다 적었던 걸 감안하면 720만은 상당한 선전이다.[79] 상영하면서 관객이 떨어지긴커녕 스크린 수와 관객 수가 오른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래도 대중성과 작품성을 제대로 갖춘 수작으로서, 천만을 돌파하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12월 27일(1일차)의 관람 인원은 328,794명으로, 주요 경쟁작인 신과함께-죄와 벌보다 약 17만 명 정도 뒤지며 2위로 출발했다. 이날 스크린 수는 <신과 함께>가 129개 더 많았으나, 상영횟수는 <1987>이 76회 더 많았다. 가족 영화인 <신과 함께>에 비해 조조 또는 심야로 상영되는 횟수가 더 많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수치다. 개봉 다음 날부터는 스크린 수는 물론 상영횟수 역시 <신과 함께>가 더 많았다. 이후 1월 1일(6일차)까지의 스크린 수는 <1987>이 1,000~1,100개 <신과 함께>가 1,600여 개를 점유해, 차이가 더 벌어졌다.
개봉 후 첫 주말을 맞은 12월 30일(4일차)에 누적관객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변호인, 국제시장과 동일한 흥행 속도. 직전 개봉한 강철비, 신과함께-죄와 벌이 3일 만에 100만 명을 돌파한 것보다 하루가 늦다. 크리스마스 버프는 놓쳤지만, 문화가 있는 날에 개봉하여 방학과 주말 버프를 연달아 받았음을 감안하면 다소 부진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평단과 관객의 호응이 좋아서 보다 장기적인 추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2월 31일(5일차)과 1월 1일(6일차)의 연휴기간에 누적관객수 200만 명을 돌파했다. 좌석점유율도 1~3%의 근소한 차이로 <신과 함께>를 넘어섰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차트 역주행을 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중. 그러나 스크린 수의 차이로, 12월 31일 하루에만 100만 명이 관람하는 기염을 토한 <신과 함께>의 관람 인원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전술했듯이 이 기간 <신과 함께>는 1987보다 1.5배 가량 많은 스크린 수를 보유하고 있었다.[77]
1월 3일(8일차)에 964개를 찍은 스크린 수도 이후 다시 반등해 일일 스크린 수는 1,000개 선을 유지하고 있다. 1월 4일(9일차)에 누적관객수 300만 명을 돌파했으며, 1월 7일(12일차)에는 누적관객수 400만 명을 돌파하여 손익분기점을 넘어섰고, 제작진이 인증샷을 공개했다. # 영화의 소재와 시사성으로 말미암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 뒷심을 발휘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1월 8일(13일차)에 주요 경쟁작인 <신과 함께>의 힘이 빠지면서, 처음으로 일일관객수 1위에 올랐다. 스크린 수는 여전히 <신과 함께>보다 160개가량 뒤처지지만, 좌석점유율에서 안정적으로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1월 11일(16일)부터는 스크린 수에서도 <신과 함께>를 66개 차이로 넘어섰다.
1월 13일(18일차) 오전 7시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월 16일(21일차)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월 28일(33일차)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월 7일(43일차) 720만 관객을 돌파했다.
2월 8일 VOD가 출시되었다.
- 【동시기 대한민국 주요 개봉 영화 좌석점유율 / 상영점유율】 (펼쳐보기)
결론적으로는 평가도 매우 높은 편이고 흥행할 수 있는 여지가 아주 많았지만, 쟁쟁한 경쟁작들이 많았던 탓에 천만은 돌파하지 못했다. 그래도 뛰어난 작품성에 비해 흥행면에서 아쉬웠던[78] 장준환 감독의 첫 흥행 대박작이며, 이 작품을 통해 장준환 감독의 차기작을 쉽게 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경쟁작이 너무 강한데다가, 개봉 당시 좌석점유율이 위대한 쇼맨보다 적었던 걸 감안하면 720만은 상당한 선전이다.[79] 상영하면서 관객이 떨어지긴커녕 스크린 수와 관객 수가 오른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래도 대중성과 작품성을 제대로 갖춘 수작으로서, 천만을 돌파하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7.2. 대만[편집]
2018년 1월 12일 정식 개봉하였다. 현지 반응을 보면 관객이 가득 들어찬 저녁 상영시간인데도 영화가 끝나고도 상영관 전체가 조용했다거나, 중년의 관객이 눈물을 흘렸다거나 하는 평이 보인다.
대만에서는 1월 17일 수요일에는 타이베이 기준으로는 수요일에만 13.6만 대만달러, 총액 117.7만 대만달러를 벌었다. 순위는 8위로 5일간 벌어들인 액수가 <신과 함께>의 수요일 하루치의 절반 정도로 흥행은커녕 현재로서는 <군함도>나 택시운전사처럼 중박이라 보기도 어렵다.
1월 21일 기준으로 3,319,305 대만달러를 벌었다. 관객수는 14,363명.
2월 4일 기준으로 4,519,662 대만달러를 벌었다. 관객수는 19,659명.
대만에서는 1월 17일 수요일에는 타이베이 기준으로는 수요일에만 13.6만 대만달러, 총액 117.7만 대만달러를 벌었다. 순위는 8위로 5일간 벌어들인 액수가 <신과 함께>의 수요일 하루치의 절반 정도로 흥행은커녕 현재로서는 <군함도>나 택시운전사처럼 중박이라 보기도 어렵다.
1월 21일 기준으로 3,319,305 대만달러를 벌었다. 관객수는 14,363명.
2월 4일 기준으로 4,519,662 대만달러를 벌었다. 관객수는 19,659명.
8. 해외 상영[편집]
8.1. 북미[편집]
8.2. 중국[편집]
중국에서는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등과 마찬가지로 개봉이 막힐 것으로 보인다. 중국 대형 영화포털에서는 이미 "이 영화 관련정보가 언제 당국에 의해 삭제될지 두고 보자"는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이 있었다.(번역글) 하긴 이 영화의 소재가 소재인지라 이런 반응도 대륙에선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삭제되기 전 평점은 무려 9.5/10
실제로 2018년 2월 1일부터 엠타임과 도우반에서 항목이 삭제처리 되었으며, 1987은 검열에 걸려 개봉이 전면 금지된 이후, 1987 관련 검색어들이 모조리 필터링 되고 있다.
그런데 바이두 백과에선 검색 결과가 나온다.
실제로 2018년 2월 1일부터 엠타임과 도우반에서 항목이 삭제처리 되었으며, 1987은 검열에 걸려 개봉이 전면 금지된 이후, 1987 관련 검색어들이 모조리 필터링 되고 있다.
그런데 바이두 백과에선 검색 결과가 나온다.
8.3. 홍콩[편집]
홍콩에선 2018년 3월 1일에 권력에 저항하는 시민이라는 뜻인 역권공민(逆權公民)이라는 부제가 붙어 개봉되었다.
참고로 홍콩에서는 과거 변호인이 권력에 저항하는 변호사라는 뜻인 역권대장(逆權大狀)으로, 택시운전사가 권력에 저항하는 운전사라는 뜻의 역권사기(逆權司機)라는 이름으로 9월 말에 개봉된 바 있다.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 모두 배급사가 한국에서는 다른데도 졸지에 역권 트릴로지가 완성된 셈.[80]실제로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 순으로 시대상이 연결되기는 한다.[81]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과정 중에 이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다.
참고로 홍콩에서는 과거 변호인이 권력에 저항하는 변호사라는 뜻인 역권대장(逆權大狀)으로, 택시운전사가 권력에 저항하는 운전사라는 뜻의 역권사기(逆權司機)라는 이름으로 9월 말에 개봉된 바 있다.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 모두 배급사가 한국에서는 다른데도 졸지에 역권 트릴로지가 완성된 셈.[80]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과정 중에 이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다.
8.4. 일본[편집]
2018년 9월 8일 1987, 어떤 투쟁의 진실(1987、ある闘いの真実)이란 제목으로 개봉했다. 전체 관람가 등급(G)을 받았다.
9. 탐구[편집]
자세한 내용은 1987(영화)/탐구 문서
를
참고하십시오.10. 논란[편집]
10.1. 강동원 출연에 대한 논란[편집]
이한열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의 외증조부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온 친일파로 밝혀지면서 친일파 후손이 출연한다는 이유로 영화가 평점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외증조부인 이종만이 친일파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친일 논란’ 강동원 외증조부 이종만, 그는 노동운동가였다?
하지만 본인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였고 영화 개봉 이후에는 강동원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밝혀지지도 않았던 2016년 여름 감독을 제일 먼저 찾아와 불이익을 감수하며 영화에 참여한 것이 알려지면서 호의적인 반응이 늘어났다. 특히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진행 중이라 영화가 엎어질 뻔해서 소자본 독립영화를 고려했던 상황에서 강동원이 용기를 내어 참가하면서 많은 지원을 끌어낼 수 있었다는 점도 영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2017년 4월 언론들이 '친일파 후손 강동원이 1987에 참여해도 되는가' 하고 기사를 내자 이한열기념사업회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가 "강동원이 1987에 나오는 것이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고 그 이후로도 수시로 감사를 표했다. 이한열의 어머니인 배은심은 인터뷰에서 "본인이 성실하게 잘 살아왔고 또 열심히 하겠다고 했으니, 외증조부가 친일파라고 연좌제로 비난하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동원은 단순히 영화만 촬영한 게 아니라 이한열 묘소, 이한열 기념관을 수차례 들르며 본인의 배역에 다가가고자 노력했고 촬영을 마칠 때까지 이한열의 어머니 댁에 수시로 들렀다. 단순한 쇼맨십 정도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촬영에 임했기에 평가가 좋아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내용은 강동원이 1987에 특별출연한 배역이 개봉 직전까지 비공개였기에 개봉 이후에야 기사화되면서 알려졌다. ‘극중 아들’ 강동원에게 김치 선물한 이한열 열사 어머니 이후 2019년 1월에는 이한열기념사업회에 2억을 익명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기사
사실상 대중들이 친일파의 후손들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단순히 매국노의 자식이어서가 아니라 조상의 악행에 대한 반성이 부족한 태도가 문제였기 때문에[82] 강동원의 노력으로 이러한 논란은 거의 없어진 편. 또한 강동원은 독립운동가의 자손[83]이기도 하다.
하지만 본인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였고 영화 개봉 이후에는 강동원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밝혀지지도 않았던 2016년 여름 감독을 제일 먼저 찾아와 불이익을 감수하며 영화에 참여한 것이 알려지면서 호의적인 반응이 늘어났다. 특히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진행 중이라 영화가 엎어질 뻔해서 소자본 독립영화를 고려했던 상황에서 강동원이 용기를 내어 참가하면서 많은 지원을 끌어낼 수 있었다는 점도 영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2017년 4월 언론들이 '친일파 후손 강동원이 1987에 참여해도 되는가' 하고 기사를 내자 이한열기념사업회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가 "강동원이 1987에 나오는 것이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고 그 이후로도 수시로 감사를 표했다. 이한열의 어머니인 배은심은 인터뷰에서 "본인이 성실하게 잘 살아왔고 또 열심히 하겠다고 했으니, 외증조부가 친일파라고 연좌제로 비난하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동원은 단순히 영화만 촬영한 게 아니라 이한열 묘소, 이한열 기념관을 수차례 들르며 본인의 배역에 다가가고자 노력했고 촬영을 마칠 때까지 이한열의 어머니 댁에 수시로 들렀다. 단순한 쇼맨십 정도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촬영에 임했기에 평가가 좋아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내용은 강동원이 1987에 특별출연한 배역이 개봉 직전까지 비공개였기에 개봉 이후에야 기사화되면서 알려졌다. ‘극중 아들’ 강동원에게 김치 선물한 이한열 열사 어머니 이후 2019년 1월에는 이한열기념사업회에 2억을 익명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기사
사실상 대중들이 친일파의 후손들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단순히 매국노의 자식이어서가 아니라 조상의 악행에 대한 반성이 부족한 태도가 문제였기 때문에[82] 강동원의 노력으로 이러한 논란은 거의 없어진 편. 또한 강동원은 독립운동가의 자손[83]이기도 하다.
10.2. 가해자 미화[편집]
5.18 민주화운동 참여자이자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피해자로 14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바 있는 강용주는 이 영화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하였다.
영화에서 원칙주의자로 상관인 박처원에게도 항의하고 이부영에게 사건을 알릴 기회도 주는 의인으로 그려진 교도소 보안계장 안유가, 실제로는 90년대 장기 비전향 수감자들에게 고문을 가한 고문가해자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이전에도 재야 인사와 대학생 등 공안 사범을 감시하던 인물인데 이러한 묘사는 없이 선한 역할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영화 자체에서는 절대선보다는 입장을 바꾸는 방향으로 묘사되었다. 작중에서도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나는 사람'이라고 언급되긴 했다.
이에 안유 본인은 인터뷰에서 “나는 의인이 아니다”고 인정하였다. 그는 “그때 대학생들은 저를 가리켜 ‘전두환의 사냥개’라고 했다.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관하여 이부영 전 의원은 영화 관람 후에 오히려 안유는 자신의 직업 때문에 가혹행위를 용인한 점은 있지만 사안에 대해서 인지하자마자 자신을 찾아와서 '형. 나라가 망하게 생겼어.'라며 영화와 달리 즉시 사실을 전했으며 투옥되어 있는 운동권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사비로 약을 구입해서 나눠주는 사람이라고 언급하였다. 당시 과격파이던 학생들이 옥중에서 구호를 외치고 소란을 일으키려는 조짐을 보이자 학생들이 요구하는 운동권 서적을 정부의 지침을 어겨가면서 반입해 주는 등 익히 알려진 것에 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이라고 얘기하였다.
2018년 1월 11일 방송된 썰전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프로그램의 패널인 유시민 작가와 게스트로 출연한 우상호 의원은 영화를 보고 "최환 검사가 그전부터 공안 검사로 수많은 우리의 선후배들을 잡아 가두었고, 고문이 자행되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보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고 하였다. "물론 그분이 박종철의 시신 화장을 막고 부검을 진행한 것은 잘 한 일이지만, 우리의 눈앞에서 쓰러져 간 후배를 생각하면, 머리로는 이해를 하려 해도 감성적으론 잘 용납이 안 된다"며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그리고 동시에 "그분들이 검사나 교도관이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사람은 살다 보면 한 번 쓰이는 때가 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미워할 만한 99번의 일이 있었더라도 그 99번이 한 번의 일을 위해서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의견도 밝혔다.
이후 유시민 작가는 방구석 1열에 출연하여 최환 검사의 행동에 대해서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겪은 후 이 사건마저 관례대로 처리했다간 검찰조직에 피해가 올거라 생각하여 조직 보호 본능에 따라 행동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작중에서도 그런 논리로 지검장을 설득하는 모습이 나온다.
우상호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과 같이 영화를 관람할 당시 한재동 교도관은 이한열의 모친 배은심에게 "내가 편지를 전달은 했지만, 그 이전부터 수많은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을 가두는 일을 했다. 아들을 잃은 분들 앞에선 차마 할 말이 없다."며 사과했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상술했듯이, 작중에서 최환 검사의 박종철 부검에 대해 묵인하는 역할로 나오는 정구영 서울지검장의 경우, 실제로는 이를 적극적으로 은폐하는 데 힘쓰던 인물이다.
영화에서 원칙주의자로 상관인 박처원에게도 항의하고 이부영에게 사건을 알릴 기회도 주는 의인으로 그려진 교도소 보안계장 안유가, 실제로는 90년대 장기 비전향 수감자들에게 고문을 가한 고문가해자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이전에도 재야 인사와 대학생 등 공안 사범을 감시하던 인물인데 이러한 묘사는 없이 선한 역할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영화 자체에서는 절대선보다는 입장을 바꾸는 방향으로 묘사되었다. 작중에서도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나는 사람'이라고 언급되긴 했다.
이에 안유 본인은 인터뷰에서 “나는 의인이 아니다”고 인정하였다. 그는 “그때 대학생들은 저를 가리켜 ‘전두환의 사냥개’라고 했다.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관하여 이부영 전 의원은 영화 관람 후에 오히려 안유는 자신의 직업 때문에 가혹행위를 용인한 점은 있지만 사안에 대해서 인지하자마자 자신을 찾아와서 '형. 나라가 망하게 생겼어.'라며 영화와 달리 즉시 사실을 전했으며 투옥되어 있는 운동권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사비로 약을 구입해서 나눠주는 사람이라고 언급하였다. 당시 과격파이던 학생들이 옥중에서 구호를 외치고 소란을 일으키려는 조짐을 보이자 학생들이 요구하는 운동권 서적을 정부의 지침을 어겨가면서 반입해 주는 등 익히 알려진 것에 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이라고 얘기하였다.
2018년 1월 11일 방송된 썰전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프로그램의 패널인 유시민 작가와 게스트로 출연한 우상호 의원은 영화를 보고 "최환 검사가 그전부터 공안 검사로 수많은 우리의 선후배들을 잡아 가두었고, 고문이 자행되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보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고 하였다. "물론 그분이 박종철의 시신 화장을 막고 부검을 진행한 것은 잘 한 일이지만, 우리의 눈앞에서 쓰러져 간 후배를 생각하면, 머리로는 이해를 하려 해도 감성적으론 잘 용납이 안 된다"며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그리고 동시에 "그분들이 검사나 교도관이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사람은 살다 보면 한 번 쓰이는 때가 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미워할 만한 99번의 일이 있었더라도 그 99번이 한 번의 일을 위해서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의견도 밝혔다.
이후 유시민 작가는 방구석 1열에 출연하여 최환 검사의 행동에 대해서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겪은 후 이 사건마저 관례대로 처리했다간 검찰조직에 피해가 올거라 생각하여 조직 보호 본능에 따라 행동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작중에서도 그런 논리로 지검장을 설득하는 모습이 나온다.
우상호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과 같이 영화를 관람할 당시 한재동 교도관은 이한열의 모친 배은심에게 "내가 편지를 전달은 했지만, 그 이전부터 수많은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을 가두는 일을 했다. 아들을 잃은 분들 앞에선 차마 할 말이 없다."며 사과했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상술했듯이, 작중에서 최환 검사의 박종철 부검에 대해 묵인하는 역할로 나오는 정구영 서울지검장의 경우, 실제로는 이를 적극적으로 은폐하는 데 힘쓰던 인물이다.
10.3. 자유한국당의 소유권 주장[편집]
“대통령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그거 보고 울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그거 누가 밝혔습니까? 보수 정부에서 밝힌 거다”1월 8일 신년인사회#
1월 9일#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자유한국당 내에서 황당한 주장이 나왔다. 곽상도 의원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보수정권이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혔는데 왜 문 대통령이 우느냐"는 주장을 내놨다. 김성태 원내대표 역시 "문재인 정부가 1987년을 독점하려 한다"며 "적폐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배하고 있는 문 대통령의 독단적 국정운영 방식이 과연 국민을 위하고 대한민국을 위한 길인지 되돌아봐야 할 영화"라고 평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1987>과 큰 연관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약칭 국본)가 결성되었는데, 부산 지역 상임집행위원이 바로 문재인이였다. 즉, 이 당시 문재인 변호사는 저 현장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이다. 당연하게 이러한 자신의 과거가 생각날 수밖에 없는 일인데 "왜 우느냐"고 말하는 것은, 몰라서 하는 소리거나 알면서도 망언을 하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규명된 전두환 정권은 보수 정권으로 보기에는 정통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리고 보수 정권이라고 쳐준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 시기가 맞기는 하다. 6월 항쟁으로 전두환이 당장 물러난 것도 아니고 그 뒤 87년 대선에서도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진 않았으니까. 문제는 죄 없는 박종철을 고문해 죽이고 그걸 은폐하려고 든 것이 바로 그 전두환 정권이며, 진상 규명도 도무지 발뺌할 여지가 없는 사건이었기에 국민적 요구를 못 이겨 규명당한 것이라는 자명하고 제일 중요한 사실을 쏙 빼놓고 저딴 언급을 하니 시민들의 어이가 날아간 것이다. 무엇보다 해당 사건을 알리려 노력한 사람은 당시 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 열사들과 기자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었지, 정부 차원에서 진실을 밝혀낸 것이 아니다! 부검을 밀어붙인 최환 검사나 있는 그대로 부검을 한 국과수 황적준 박사가 있지만, 그들은 엄연히 정부 수뇌부가 사건을 은폐하려는 중에 이를 거부한 양심적인 개인일 뿐, 절대 정부의 업적이 아니다.
정작 자유한국당은 <1987>은 관람하지 않고 뜬금없이 강철비를 안보영화랍시고 관람하는데, 강철비는 자유한국당 코드의 영화가 절대 아니다. 영화의 주제나 줄거리를 살펴보면 진보나 보수 어느 성향에 편협되어 있지 않고 특정 사상을 최대한 배제된 연출을 사용한, 중립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강철비의 주요 인물인 곽철우만 보더라도 대한민국 핵무장에 동조하는 보수적인 안보관을 가지고 있는 듯 하나 반대로 '분단 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이용하려는 자들에 의해 고통받는다'라는 주요 대사를 통해 은근히 보수 진영을 비판하기도 한다. 애초에 강철비 감독의 전작부터 홍준표 자유한국당 당대표가 좌파영화라고 규정한 변호인(영화)이며 덕분에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까지 오른 인물로, 후안무치도 이런 후안무치가 없는 셈. 따라서 자유한국당의 '강철비' 언급은 그저 단순히 자기들이 밀고있는 안보에 관련된 이야기라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유로 행해진 것이다.
위에서 소개 된 곽상도 의원은 ‘박종철 고문치사’ 의혹은 보수정권이 밝혀”라고 했는데 일단 전두환 정권이 밝혔다는 것부터 심각한 역사왜곡이건 위에 소개된 바 있다.
이런 식으로 특정 층들이 좌/우라는 잘못된 이분법을 보여주고 있다. 친전두환 측은 1987 영화나 민주화 측을 좌익이라 단정하고 있는데 ## # '좌익 = 민주주의'가 아니다. 당장 5.18 민주화운동 문서의 '항쟁 주체의 성향과 이념' 문단만 봐도[84] 5.18 광주항쟁이 우익 성향, 우익 진영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규명된 전두환 정권은 보수 정권으로 보기에는 정통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리고 보수 정권이라고 쳐준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 시기가 맞기는 하다. 6월 항쟁으로 전두환이 당장 물러난 것도 아니고 그 뒤 87년 대선에서도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진 않았으니까. 문제는 죄 없는 박종철을 고문해 죽이고 그걸 은폐하려고 든 것이 바로 그 전두환 정권이며, 진상 규명도 도무지 발뺌할 여지가 없는 사건이었기에 국민적 요구를 못 이겨 규명당한 것이라는 자명하고 제일 중요한 사실을 쏙 빼놓고 저딴 언급을 하니 시민들의 어이가 날아간 것이다. 무엇보다 해당 사건을 알리려 노력한 사람은 당시 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 열사들과 기자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었지, 정부 차원에서 진실을 밝혀낸 것이 아니다! 부검을 밀어붙인 최환 검사나 있는 그대로 부검을 한 국과수 황적준 박사가 있지만, 그들은 엄연히 정부 수뇌부가 사건을 은폐하려는 중에 이를 거부한 양심적인 개인일 뿐, 절대 정부의 업적이 아니다.
정작 자유한국당은 <1987>은 관람하지 않고 뜬금없이 강철비를 안보영화랍시고 관람하는데, 강철비는 자유한국당 코드의 영화가 절대 아니다. 영화의 주제나 줄거리를 살펴보면 진보나 보수 어느 성향에 편협되어 있지 않고 특정 사상을 최대한 배제된 연출을 사용한, 중립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강철비의 주요 인물인 곽철우만 보더라도 대한민국 핵무장에 동조하는 보수적인 안보관을 가지고 있는 듯 하나 반대로 '분단 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이용하려는 자들에 의해 고통받는다'라는 주요 대사를 통해 은근히 보수 진영을 비판하기도 한다. 애초에 강철비 감독의 전작부터 홍준표 자유한국당 당대표가 좌파영화라고 규정한 변호인(영화)이며 덕분에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까지 오른 인물로, 후안무치도 이런 후안무치가 없는 셈. 따라서 자유한국당의 '강철비' 언급은 그저 단순히 자기들이 밀고있는 안보에 관련된 이야기라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유로 행해진 것이다.
위에서 소개 된 곽상도 의원은 ‘박종철 고문치사’ 의혹은 보수정권이 밝혀”라고 했는데 일단 전두환 정권이 밝혔다는 것부터 심각한 역사왜곡이건 위에 소개된 바 있다.
이런 식으로 특정 층들이 좌/우라는 잘못된 이분법을 보여주고 있다. 친전두환 측은 1987 영화나 민주화 측을 좌익이라 단정하고 있는데 ## # '좌익 = 민주주의'가 아니다. 당장 5.18 민주화운동 문서의 '항쟁 주체의 성향과 이념' 문단만 봐도[84] 5.18 광주항쟁이 우익 성향, 우익 진영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10.4. 여성계의 '여성 민주화운동 과소평가' 주장[편집]
연희를 제외한 주요 배역이 모두 남성이라는 이유로, 일각에서는 여성의 민주화운동 참여를 외면한 영화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 경향신문 칼럼
일각에선 <1987>의 인물들 중 여성의 비중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도 있다. 김태리 씨가 맡은 연희는 이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 중 거의 유일한 여성이다. 실제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여성이 많았음에도 <1987>에서 여성의 역할이 ‘연희’로 한정되는 점이 아쉽다는 것이다.
<1987> 개봉과 함께 당시 민주화의 성취를 특정 세대와 계층이 독점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의 민주화가 대학생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엘리트 계층, 검사, 종교인 등 특정한 인물들의 노력만으로 얻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6월 이후에도 ‘7·8·9 노동자 대투쟁’ 등 사회 각계에서 민주화 성취를 위한 노력이 계속됐다.
천정환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영화를 보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는 586들은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면서 “이 영화를 보며 감동을 느끼면서 불편해하기도 하는 여성·청년세대·노동자들, 또 그들이 ‘586 헤게모니’에 대해 가진 분노에 대해서도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커버스토리 - 1987 그리고 나]“엘리트의 노력만으로 얻어진 건 아니다…불편해할 여성·노동자를 생각하자” #
그러나, 우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관련자가 모두 실제로도 남성이므로 실화를 바탕으로한 이 영화도 주요인물 대부분이 남성일 수밖에 없다. 만약 이 주장이 타당성을 가지려면, 실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관련된 주요 여성들 중 배제된 인물이 있든지 하는 실제 사례가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비판은 페미니즘에 기반한 일반론적 주장만이 있을 뿐 구체적인 예시가 전혀 없다.
운동권 서사를 운운하는 것도 이한열, 김정남, 이부영을 제외하면 영화 내에 운동권 비중이 높지도 않다. 주요 인물들 중 최환은 검사, 한병용은 교도관, 윤상삼은 기자이며 주요 인물들 중 유일한 여성인 연희는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새내기 대학생이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위를 밝혀내는" 부분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한병용, 연희, 윤상삼 3인방이며, 김정남은 영화 내내 안절부절하며 소식을 기다리는 모습만 나오고 실제로 사건의 진위를 추정해 그림을 그렸던 이부영의 역할은 오히려 축소되어 있다. 이한열 역시 반전을 위해서였지만 이름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주연이 아닌 철저히 조연에 그친다.
물론 민주화운동에서 여성들이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며,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닌 대중들의 노력을 묘사하는 이 영화에서도 이를 반영하기 위해 주연급 배역이 아닌 조연 내지 단역에서는 당시 여성의 민주화 운동 참여를 다각도로 반영하고 있다.
작중 등장한 미도파 백화점 앞 3·3 평화대행진[85], 연세대학교 정문 6·9 궐기대회, 서울시청 앞 6월 항쟁 시위에서 모두 여성들의 적극적인 시위 참여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3·3 평화대행진에서 연희를 숨겨준 신발가게 주인, 5·18 다큐 상영회를 주관한 만화사랑 동아리의 부장, 한병용과 통화하면서 김정남의 소재를 알린 연락책, 6·10 항쟁에서 버스 위에 있던 방송 선창자(문소리)가 모두 여성으로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동조했던 여성들의 모습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박처원이 한병용을 취조하러 가는 장면에서 들리는 비명소리를 잘 들어보면 여자들의 비명소리도 섞여 있으며 이 장면에서 얼굴에 검은 포대자루가 씌워진 채 취조실로 끌려가고 있는 사람도 비명소리와 체격으로 미루어 젊은 여성임을 알 수 있다.[86]
더욱이 장준환 감독도 성비 문제를 인식하고 주연급에서도 김정남의 배역을 여성으로 바꾸려는 생각까지 해봤지만, 실화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판단했기에 어쩔 수 없이 많은 남성들이 나오는 영화가 되었다고 밝혔다.# 엄연한 실존인물인 김정남의 배역을 만약 정말로 여성으로 바꿨다면, 1987은 시대배경을 무시한 역사왜곡물이 되었을 수도 있다.
운동권 서사를 운운하는 것도 이한열, 김정남, 이부영을 제외하면 영화 내에 운동권 비중이 높지도 않다. 주요 인물들 중 최환은 검사, 한병용은 교도관, 윤상삼은 기자이며 주요 인물들 중 유일한 여성인 연희는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새내기 대학생이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위를 밝혀내는" 부분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한병용, 연희, 윤상삼 3인방이며, 김정남은 영화 내내 안절부절하며 소식을 기다리는 모습만 나오고 실제로 사건의 진위를 추정해 그림을 그렸던 이부영의 역할은 오히려 축소되어 있다. 이한열 역시 반전을 위해서였지만 이름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주연이 아닌 철저히 조연에 그친다.
물론 민주화운동에서 여성들이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며,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닌 대중들의 노력을 묘사하는 이 영화에서도 이를 반영하기 위해 주연급 배역이 아닌 조연 내지 단역에서는 당시 여성의 민주화 운동 참여를 다각도로 반영하고 있다.
작중 등장한 미도파 백화점 앞 3·3 평화대행진[85], 연세대학교 정문 6·9 궐기대회, 서울시청 앞 6월 항쟁 시위에서 모두 여성들의 적극적인 시위 참여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3·3 평화대행진에서 연희를 숨겨준 신발가게 주인, 5·18 다큐 상영회를 주관한 만화사랑 동아리의 부장, 한병용과 통화하면서 김정남의 소재를 알린 연락책, 6·10 항쟁에서 버스 위에 있던 방송 선창자(문소리)가 모두 여성으로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동조했던 여성들의 모습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박처원이 한병용을 취조하러 가는 장면에서 들리는 비명소리를 잘 들어보면 여자들의 비명소리도 섞여 있으며 이 장면에서 얼굴에 검은 포대자루가 씌워진 채 취조실로 끌려가고 있는 사람도 비명소리와 체격으로 미루어 젊은 여성임을 알 수 있다.[86]
더욱이 장준환 감독도 성비 문제를 인식하고 주연급에서도 김정남의 배역을 여성으로 바꾸려는 생각까지 해봤지만, 실화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판단했기에 어쩔 수 없이 많은 남성들이 나오는 영화가 되었다고 밝혔다.# 엄연한 실존인물인 김정남의 배역을 만약 정말로 여성으로 바꿨다면, 1987은 시대배경을 무시한 역사왜곡물이 되었을 수도 있다.
10.5. 동아일보의 자화자찬[편집]
동아일보는 이 영화를 인용하여 자신들이 6월 항쟁에 업적을 세웠다며 연신 자화자찬을 하다가, "너희들이 그럴 자격이 있냐"고 빈축을 사기도 했다.#
실제로 동아일보 소속이었던 윤상삼 기자가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며, 당시 동아일보에서 큰 역할을 한 것 자체는 사실이다. 하지만 동아일보사는 전두환 측근을 비롯한 인사들이 대표를 역임하고, 신문은 권력 비판적인 논조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등 급속하게 변질되었다. 또한 1980년대 당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기자들을 비롯하여 당시 동아일보 해직 기자였던 이부영 전 의원, 5공의 보도지침에 반발하여(동아투위 사건) 해직된 기자들을 영화가 개봉된 2017년 12월 27일 시점까지도 복귀시키지 않는 등 당시와는 반대되는 길을 계속해서 걷고 있다.
현재 논조나 평가 등을 떠나서 사실 역사를 제대로 따져보면, 이 영화로 자화자찬할 언론사는 한겨레 신문사이다. 독재 정권과 펜으로 싸우던 기자정신이 투철한 기자들이 동아일보로부터 해직되고, 이 해직기자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신문사가 바로 한겨레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동아나 한겨레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1987에 나온 동아일보 기자들의 헌신은 실질적으로 한겨레에 이어져 있다.
실제로 동아일보 소속이었던 윤상삼 기자가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며, 당시 동아일보에서 큰 역할을 한 것 자체는 사실이다. 하지만 동아일보사는 전두환 측근을 비롯한 인사들이 대표를 역임하고, 신문은 권력 비판적인 논조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등 급속하게 변질되었다. 또한 1980년대 당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기자들을 비롯하여 당시 동아일보 해직 기자였던 이부영 전 의원, 5공의 보도지침에 반발하여(동아투위 사건) 해직된 기자들을 영화가 개봉된 2017년 12월 27일 시점까지도 복귀시키지 않는 등 당시와는 반대되는 길을 계속해서 걷고 있다.
현재 논조나 평가 등을 떠나서 사실 역사를 제대로 따져보면, 이 영화로 자화자찬할 언론사는 한겨레 신문사이다. 독재 정권과 펜으로 싸우던 기자정신이 투철한 기자들이 동아일보로부터 해직되고, 이 해직기자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신문사가 바로 한겨레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동아나 한겨레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1987에 나온 동아일보 기자들의 헌신은 실질적으로 한겨레에 이어져 있다.
11. 여담[편집]
- 박근혜 대통령 시절 제작이 시작된 영화여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투자자와 주요 배역 캐스팅이 난항을 겪었다고 한다. 때문에 제작사는 저예산 영화로 제작할 계획까지 세웠지만, 때마침 강동원이 출연하겠다고 나서면서 투자자를 모을 수 있었고, 지금의 <1987>이 완성될 수 있었다. 이에, 강동원이 배역을 맡은 인물의 기념사업회[스포일러2]는 강동원에게 감사를 전했다. 특별히 감사 인사를 전할 분이 있습니다. 스포일러 역을 해낸 강동원 배우입니다. 참고로 해당 비화에 대해 감독 본인은 JTBC의 영화 예능 방구석 1열에 출연해서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결혼을 잘못해서 그런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말하면서[88] 아마 독심술을 하는 사람이 거기 있지 않았겠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래도 본인은 후에 "이래서 기를 쓰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해서 관리하려고 했구나"라는 댓글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 2015년 당시에 감독이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의 제목은 <보통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똑같이 1987년을 다룬 영화 <보통사람>이 앞서 2017년 3월 개봉하면서 제목을 바꿨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When the Day Comes>다. 엔딩크레딧에서 나오는 그날이 오면은 이한열 합창단[89]과 대건챔버콰이어가 불렀다.
- 대전 엑스포 회장을 밀어버리고 재개발한 대규모 세트장인 스튜디오 큐브의 사실상 첫 대관 촬영작으로 여겨진다. 정식 개관 전부터 찍은 것이라고.
- 초반 대한뉴스에 나오는 음악은 Badenweiler Marsch로, 실제론 우리나라에서 잘 쓰지 않은 매우 독특한 선곡이다. 이 곡은 아돌프 히틀러가 굉장히 좋아한 음악인지라, 해당 곡을 유튜브에 검색하면 대부분 2차대전 나치 독일 시절 영상이 주로 나올 정도. 곡 자체는 1차대전 때 작곡한 곡이긴 하나 이 나치 색채가 강해서 독일에서도 공식 금지까지는 아니지만 연주를 상당히 꺼릴 정도이다. 따라서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된 선곡인 듯 하다. 대한뉴스의 삽입에 대해 감독은 "다큐처럼 시작해서 진짜 다큐를 보게 되길 바랐다"고 밝혔다.
- 영화 소품용 차량대여를 해주는 업체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차량 1대로 여러 장면을 돌려 쓰거나 도색만 바꿔서 쓰는 장면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만섭"이 몰았던 '브리사' 택시(패밀리아를 갖고 와서 개조한 그 소품차)가 그 모습 그대로 장면에 나오기도 하였다.
해당영상 5분 37초경 등장.윤 기자가 탄 은색 포니2는 전면부는 포니2 픽업의 그릴과 헤드라이트를 장착하고 있는 부분 복원차량. 차량을 대여한 업체 2곳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포니2는 "인아트웍" 업체의 차량으로 추정된다. 소품 사정상 1987년에 생산되지 않았던 차량도 어쩔 수 없이 나오는데, 그 예로 대우 BS106(1988년식), 대우 BF105(1989년식)[91] 기아 뉴 콩코드(1992년식), 현대 1세대 후기형 그랜저(1989년식),[92] 뷰익 6세대 르세이블(1987년식)[93] 등이 있다. 3세대 현대 포터(1996년 생산)의 적재함 후미등이 달린 2세대 현대 포터도 나온다.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룬 사실상 첫 번째 작품이다.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도 이 사건을 다루기는 하지만, 극으로 재현된 장면은 얼마 없고 대부분 영상 자료와 내레이션으로만 나온다. 그리고 여기서는 최환 검사보다 안상수 검사의 활약이 더 많아 이후 밝혀진 사실과는 다소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 하정우의 또 다른 주연작 신과함께가 1주 먼저 개봉함으로써, 자신이 출연한 영화 둘이 경쟁하는 묘한 상황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두 영화의 활약 덕분에 2,000만 배우로 등극하였다. 다만, 두 영화를 병행하다보니 영화 시사회에 종종 빠지는 경우가 있다.
- 초호화 캐스팅이긴 하나 영화 자체가 군상극인지라, 배역별 분량 수준은 대부분 조연이나 단역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캐스팅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서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을 다룬 영화에서, 동시대를 살았던 386 연배의 배우들이 당시 자신이 주역은 아니었지만 영화를 통해서라도 일익을 담당하고 싶어하는 부채의식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감독 본인은 이같은 초호화 캐스팅에 대해 "계란으로 바위를 끝없이 쳐서 결국 깨트리는 서사"를 연출하면서 국내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이름있는 배우들을 기용했다고 밝혔다.
- 호헌 선언 방송이 나올 때 만화사랑 동아리방에서 한 학생이 "저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다른 학생 중 하나가 장난처럼 "너 연세대 어떻게 왔냐, 너 쁘락치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장난스럽게 묘사되었지만 당시 운동권의 프락치에 대한 감정을 고증함[95]과 동시에, 실제로 그 동아리방 안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대사다. 해당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관람객에게는 소름 돋는 대사.
- 작중에서 연희의 신발이 한 짝 벗겨지는 장면이 2번 나올 때 이한열의 신발이 같이 부각되고,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신문 기사가 나오는 장면에서도 신발이 부각되는데, 이한열이 신었던 한 짝 남은 신발은 현재도 이한열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2015년에 복원 작업을 하기도 했다. 같은 사건을 다룬 최규석 만화가의 수작 100도에서도 시위 다음날 집회에서 총학생회 관계자가 "이 신발 누구 거냐"며 주인을 찾고, '신발 주인'이란 글귀와 함께 중태에 빠진 이한열의 모습이 등장한다.
- 김윤석은 연기를 위해 실제 박처원의 사진을 구해 똑같은 스타일링을 시도했다. 일부러 이마를 넓혀 M자 모양을 만들고, 머리카락을 올백 스타일로 넘기고, 마우스피스를 해서 하관 쪽을 두껍게 하는 작업을 거쳤다. 다만 마우스피스를 착용하면 침이 자꾸 고이는 탓에 발음에 제약이 와서 고생했다고. 참고로 방구석1열에 출연했던 장준환 감독이 밝힌 바로는, "수사관이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대사 당시 김윤석의 연기는 애드립이었다고 한다.
- 2017년 12월 28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박상기 법무부 장관, 문무일 검찰총장, 이철성 경찰청장 4인이 검찰과 경찰의 흑역사를 다룬 이 영화를 동반 관람하였다. 법무부 인권국장의 기획과 박상기 장관의 제안으로 성사되었다고 한다. 김부겸 장관의 경우, 6월 항쟁에서 몸소 뛰며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만큼, 감회가 남다르다고. 김 장관은 "나는 원래 영화 보면 10분이면 잠들지만, 이 영화는 끝까지 다 봤다"고 한다. 박상기 장관은 당시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강사로 재직 중이였고, 문무일 총장은 사법연수원에서 연수생으로, 이철성 청장은 순경으로 재직 중이였던 때라고 한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1987이 경찰 최고 흑역사를 다룬 만큼 음흉한(?)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기자들이 실제로 이 질문을 하자, 김 장관은 "박상기 장관이 그럴 사람도 아니고, 영화에서도 검찰들의 부실수사로 수사결과가 3번이나 바뀌지 않았냐"고 답했다.[96]
- 정부 인사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단체 관람을 추진하였다. 2018년 1월 2일에는 정의당이 단체관람을 행하였고 다음 날인 3일에는 국민의당이 단체관람을 행하였다. 더불어민주당은 본래 2017년 12월 28일에 단체관람을 추진했으나 국회 본회의 개회 문제로 순연하고 1월 9일에 우원식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단체관람을 행하였다. 합당을 진행 중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도 함께 관람하였다. 또한 1월 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부부가 영화를 관람하였다. 이 자리에 최환 검사 등 실제사건에 핵심역할을 했던 인물들도 다수 함께 하였으며, 장준환 감독과 김윤석, 강동원 등 주요 배역들도 같이 관람하였다. 관람 중 김정숙 여사는 여러 번 눈물을 보였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가장 인상적인 대사로 연희의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를 꼽았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렵지만 함께한다면 세상이 바뀌고 그렇게 착실히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평하였다. 이날 배은심 여사도 영화관에 왔으나 영화 관람은 차마 하지 못하였고, 대신 관람 후의 환담 자리에 참석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를 만났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아들 이한열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고. 또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단체관람을 신청한 시민들과 함께 1월 14일에 영화를 관람하였다. 마침 이날은 박종철 열사의 31주기 기일이다.
- 이철성 경찰청장의 관람 이후 경찰 간부들도 단체 관람하였고, 청장과 고위 간부들의 공개 관람으로 부담감이 없어져서인지 경찰 내부망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현직 경찰들의 감상평도 올라오는 등, 경찰의 흑역사를 다룬 영화에 대한 경찰의 관람도 이어졌다. 조현배 부산지방경찰청장은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 씨[97]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 문병하고 유가족에게 사과한 후 부산경찰청 수뇌부와 영화를 단체관람했다. #
-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타이틀 시퀀스 제작자 중 한 명의 이름이 노태우다. 다들 알다시피 영화에 배경이 된 사건 이후에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선자와 이름이 같다.
- 레 미제라블의 마지막 무대가 되는 1832년 6월 봉기과 한국의 6월 항쟁을 비교해보게 됐다는 평가도 있었다. 영화의 말미를 장식하는 노래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의 마지막 가사가 'Tomorrow Comes!이고'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한국 민중가요도 그날이 오면이기 때문.(영문판 부제도 <When The Day Comes>다.) 바리케이드를 두고 시민과 진압군이 대치하는 장면도 기시감을 일으킨다. 1832년 6월 봉기로 시작해, 1848년 2월 혁명을 일으켰으나, 그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루이 나폴레옹이 당선, 보수 반동에 따른 왕정 복고라는 결과를 목도한 것과 5.18 민주화운동에서 6월 항쟁으로 이어졌지만 이후 선거에서 양김의 분열로 군부 출신 노태우가 당선된 것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 우현은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84학번으로 87년 당시 투쟁의 최전선에서 활동한 걸로 익히 알려져 있다.[100]
그런데 이 영화에서 그들의 투쟁 대상이었던 경찰(강민창 치안본부장) 역할을 맡은 것은 아이러니하다. 장준환 감독이 영화 기획부터 어떤 식이든 참여시키려고 하였으나 연배에 맞는 역할이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우현은 그 사건에 서 있던 당사자이자, 한명의 배우로서 정반대의 입장에 서서 연기하는 기회를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했다.
- 김윤석도 자신이 "책상을 탁! 하고 치니 학생이 억! 하고 죽었다" 라는 말을 대사로 할 것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김윤석은 박종철과 같은 혜광고등학교 동문후배기도 하다.
- 실제 역사와 혁명 과정을 그린 시대극이자 민주화를 중점적으로 다룬 영화이지만, 일부 영화팬들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같은 갱스터 장르 영화로 보거나, 혹은 남한산성 같이 패배의 역사를 다루는 영화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101]
- MBC에서 2019년 설날 특선영화로 방송된다. 날짜는 2월 6일 밤 8시 40분이었다.
12. 수상 내역[편집]
- 제3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최우수작품상(1987), 음악상(김태성 음악감독), 영평11선(1987)
- 제27회 부일영화상 - 촬영상(김우형)
- 제18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 올해의 감독상(장준환), 올해의 각본상(김경찬), 올해의 특별언급(1987)
- 제38회 황금촬영상 - 최우수작품상(1987), 감독상(장준환), 남우주연상(김윤석)
- 제9회 올해의 영화상 - 작품상(1987), 감독상(장준환)
- 제19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 기술상(최은아 음향 편집기사), 홍보마케팅상(앤드크래딧)
- 제5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 작품상(이우정), 각본상(김경찬)
- 2018 한극극예술학회 - 올해의 작품상(1987)
- 제7회 마리끌레르 영화제 - 특별상(장준환), 특별상(이우정)
- 제1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 JIMFF OST(김태성)
- 제23회 소비자의 날 문화연예 시상식 - 관객이 뽑은 올해의 영화(1987)
- 제11회 시네마아시아 영화제 - 최고감독상(장준환)
- 제20회 우디네극동영화제 - 관객상(1987), 블랙 드래곤 관객상(1987)
- 제17회 뉴욕아시아영화제 - 아시아스타상(김윤석)
- 제13회 파리한국영화제 - 작품상(1987)
13. 관련 문서[편집]
[1] 그 날이 오면이라는 뜻으로, 엔딩 부분에 등장하는 전태일의 추모곡이자 민중가요의 제목이다.[2] 나영석 사단의 작가 이우정과는 동명이인[3] 전에 부산행과 남한산성을 수입 및 배급했다.[4] 현 남포시. 박처원은 진남포 출신이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평안남도 용강군이 아니라 남포시 출신이다.[5] 월남해 온 실향민들은 보통 임진각에서 제사를 지낸다.[6] 얄궂게도 명동성당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폭로한 김승훈 마티아 신부 역시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이다.[7] 영화에서는 남영역 지하차도를 빠져나온 구급차가 남영역사거리에서 급박하게 좌회전을 해서 골목길로 올라가면 정면에 남영동 대공분실이 보인다. 하지만 사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위치는 그곳이 아니다. 그리고 남영역 지하차도를 나와서 남영역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면 철도와 붙어서 가는 큰 길(청파로)가 나온다.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에서 나온 구급차가 남영동 대공분실로 가려면 남영삼거리에서 좌회전한 후 지하차도를 들어가기 전에 다시 좌회전해야 한다. 아니면 남영삼거리에서 유턴한 후에 우회전해도 바로 대공분실로 들어갈 수 있다.[8] 영화에서는 남영동 대공분실의 담벼락을 구급차의 왼쪽에 끼고 달리다 좌회전해서 대공분실로 들어간다. 하지만 남영역은 대공분실의 북쪽이라서 남영역에서 오려면 이렇게 오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공분실의 남쪽은 미군부대(캠프킴)로 막혀있어서 앞 장면에 나온 도로(대공분실에서 철도 건너편)와 연결될 여지가 없다.[9] 정확하게는 "태우라우."[10] 즉 야당과 민주화운동 세력을 일망타진하고자 김정남을 중심으로 민주화운동 세력, 김대중, 김영삼을 엮어 간첩으로 몰려는 '큰 그림'을 그리려 하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 조직도까지 다 만들어놓고 맨 위에는 김일성과 연결시켰다.[11] 압류물 캐비닛에서 꺼내 마신다. 즉 밀수품이다.[12] 과거에 판사나 검사 등의 고위직을 높여 부르는 호칭이자, 범죄자들이 검사를 칭하는 호칭이다.[13] 공안당국에서 전화가 계속 오는 걸 계속 씹었는데, 처음엔 공안당국에서 사람을 보내어 '니가 도장 안찍으면 X발 내가 찍는다'라고 협박했다. 이후 전화가 다시 오자 전화선을 뽑아버렸는데, 사무실에서 화장동의서를 기다리던 공안경찰이 눈치 없게 전화선을 연결해 주는 바람에 빡이 쳤다.[14] 이때 시신보존명령서를 보고는 벙찐 공안경찰을 보고 "시신에 손만 대 봐. 공무집행 방해혐의로 족친다."라고 말하며 의자로 문을 봉인해 공안경찰을 자기 사무실에 가둔다.[15] 대검 공안부 제4과장.[16] 영화상에서도 묘사되지만, 실제로도 당시 검사 측은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등의 공안사건에서 경찰이 원인 제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뒷처리는 항상 검찰의 몫이어서, 자존심 부분은 물론 '똥은 경찰 쪽에서 쌌는데 욕은 우리만 먹는다'며 경찰과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17] 극중에서도 최환에게 "너 장인 빽 믿고 이러냐?"고 다그치는 대사가 많이 나온다. 최환의 장인은 광복 직후부터 검사직을 해오면서 검찰의 주요 요직 및 박통 시절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까지 역임했던 이봉성이다. 그야말로 법조계의 거물이자 원로였고 당시에도 생존해 있었다. 그런 인물이 장인이니 주변 인물들이 최환에게 함부로 못 하는 것이고, 최환도 믿는 바가 있으니 당당히 나서는 것.[18] 이것 역시 실제 있었던 일과 거의 같다.[19] 이때 정차순이 "어이구, 내 새끼, 어이구 내 새끼!!"하면서 목 놓아 우는데 구슬픈 음악과 함께 슬픈 장면이다.[20] 실제로도 치안본부장이 '억 소리를 지르며 죽었다'고 발표를 한 후, 배석해 있던 박처원이 부연설명으로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를 덧붙였다.[21] 입단속 정도가 아니라, 진상을 요구하는 기자들 뒤에 있는 공안경찰들이 총까지 은밀히 보이며 위협을 해댔다.[22] 이때 그는 손에 쥔 호두를 꽈드득 깨트려버린다.[23] 이때 총을 꺼내는 줄 알고 처원의 부하들이 총을 허둥지둥 꺼내려 하는 게 백미이다. 참고로 하정우 뒤에서 총을 겨누는 인력은 공안검사측이 아니라 대공수사처 소속 경찰들이다. 검찰수사관이라면 하정우가 박처장을 불러낸 뒤 건물 뒤에서 만나려고 할 때 감히 직속상사인 검사 등을 거칠게 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박처장이 철수할 때 같이 철수한다. 그리고 검찰수사관은 권총을 소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공안직 공무원 중 권총을 소지할 수 있는 직렬은 경찰(해경포함), 교정직, 국정원, 대통령경호처와 군 밖에 없다.[24] 남과 다름없는 사람이니 그냥 외국언론에 뿌리겠다는 뜻이다.[25] 이때 힙 플라스크를 던지는 게 소각장인데, 영화 후반부에 진실이 까발려지고 남영동이 수사받는 지경에 이르자 같은 소각장에서 고문의 증거들을 불태운다.[26] 정확히는 조한경에게 얻어맞은 윤상삼 기자가, 쓰러지면서 바닥의 턱에 오른팔을 부딪힌 것. 이 때문에 한동안 깁스 신세를 진다. 남영동의 위세를 믿고 막 나가는 조한경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면. 하지만 상황이 혼잡했기에 아무도 조한경과 윤상삼기자에게 신경쓰지 못해서 그렇지 엄연히 경찰공무원이 아무 죄 없는 민간인을 폭행해 상해를 입힌 것으로 아무리 군사정권 치하라도 걸려서 공론화 됐으면 징계, 심각하면 해직감이다.[27] 연출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하늘에서 이 장면을 내려다 보면서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그와 동시에 박종철의 유해가 뿌려지는 모습으로 바뀐다.[28] 실제로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가 한 말과 행동을 극적으로 재구성한 장면이다. 이 말은 당시 시위하던 이들의 플래카드로 옮겨졌다. 또한 당시 퇴직을 앞둔 공무원이었던 박정기는, 이 사건으로 미행과 협박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고 한동안 칩거했다. 그러나 박종철 사후에 민주화운동을 위해 힘쓰다 돌아가신 분들의 유가족들로 이뤄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일원으로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이들에 대한 진상규명 활동에 힘썼다고 한다. 그리고 2016년 촛불시위에도 참석했다고.# 그리고 이 장면에서 김종수 씨의 오열하는 연기에 극장이 울음바다가 되었다는 증언들이 많다. 사실 영화 연출할 당시에 눈이 내리는 건 의도하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딱 마침 촬영 시작할 때 눈이 왔고, 촬영이 끝나자 눈이 그쳤다고 한다. 제작사는 이를 '자연이 만들어준 미장센'이라고 표현했다.[29] 앞서 박처원 처장과 맞닥뜨렸을 때 박처원은 "사냥개끼리 싸우다가 사냥감 놓치면 주인이 가만히 있간? 나랑 내기하자우. 우리 둘 중에 가마솥에 들어가는 게 누구갔어?"라면서 최환 검사를 조롱한다. 이때 최환은 본인을 '족보도 없어서 아무나 물어뜯는 똥개'로 자칭했다. 윤 기자를 바라보며 "똥개 한 마리 추가요."라고 말한 것도, 그 장면의 연장선인 셈.[30] 치안본부는 박종철의 사인을 심장마비로 발표했으나, 부검 결과에는 '경부 압박으로 인한 질식'으로 쓰여있었다. 다시 말해, 고문이 있었다는 증거이면서, 치안본부가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는 증거인 셈.[31] 극 초반부에 "받아쓰기만 하면 되는 세상에서 글 잘 써서 뭐하냐?!"는 투의 대사가 나오는데, 이 장면 역시 그 대사의 연장선인 셈. 그동안 독재정권의 입맛대로 조작된 내용을 기사로 받아썼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된 내용을 받아쓰라는 뜻이다.[32] 전부 가죽점퍼를 입고 있어 남영동 형사들과 구분하기가 쉽다.[33] 아마 이문동 파트에서 일한 적이 있던 것 같다.[34] 그간 여러 악역 연기로 다져진 김윤석의 열연이 돋보이는 장면 중 하나다.[35] 박종철 사망기사가 처음 나가고 나서 박처원이 안기부장을 찾아가 독대하는데 경찰 두명을 석방시켜 달라는 박처원의 말에 짜증을 내며 과실치사로는 바꿔주겠다는 장면이 나온다.[36] 이때 나오는 찬송가는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이다. 특히 노래 중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라는 가사가 그들의 상황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박처원을 믿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상황을 볼 때 그렇다. 누가 봐도 '꼬리 자르기'란 게 명확하지만, 한 줄기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기에 박 처장을 믿자고 애써 자기최면을 거는 것에 가깝다. 배우 인터뷰에 따르면, 조한경은 실제로 교회 집사라고 한다. 나중에 나오는 박종철을 고문하는 장면을 보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그런 주제에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어겼다.[37] 두번째는 <선데이 서울>이다.[38] 풋풋한 대학생인 연희가 운동권과 관계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듯. 참고로 배우 김태리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수수한 이목구비의 인물이지만, 군생활에 시달리던 전경들은 여자면 다 이뻐보여서 단체로 그녀를 넋 놓고 쳐다보다 쿠사리를 먹는다.[39] 이때 연희는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신부에게 비꼬듯이 "자수해서 광명 찾으세요."라며 불교식 합장 인사(...)를 하고 떠난다. '이런다고 달라지는 거 없으니, 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그만두라'는 소리를 빙 돌려서 말한 것이다. 작품 중후반부에 연희가 왜 그렇게 민주화 운동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이유가 밝혀진다.[40] 정확하게는 3·3 평화대행진이 벌어진 시점(박종철 49재)에 그보다 앞서 있었던 2·7 추도회가 전경과 충돌한 장소(미도파 백화점 앞)를 결합한 장면이다. #[41] 이때 한 성격 하는 연희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도망치다 말고 뒤돌아서 쓰러진 백골단의 머리를 발로 밟아댄다. 당대 백골단이 공포의 대상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정말 간 큰 행동이다.[42] 이때 복면을 벗자 나온 강동원의 모습에, 극장에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관객들의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김정남 역을 맡은 설경구와 마찬가지로 강동원 역시 비중 있는 역할이지만, 특별출연으로 되어 초기 마케팅에서는 철저히 가려졌다. 포스터나 간단한 정보만 보고 하정우, 김윤석, 유해진 정도가 나오는 영화라고만 생각했는데, 강동원이 나오자 주위에서 "저거 강동원이야?" 하는 소리들이 계속 들리기도.[43]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단순 협조만 했다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쓴 사람처럼 보이지만 후반부, 박종철 고문상황을 보면 자신도 적극적으로 고문에 가담하고 있었다. 게다가 다리만 잡고 있었다는 말도 알고보니 다리를 부여잡고 하늘높이 치켜 올려 아예 물구나무를 세우고 있었다.[44] 이때까지는 면회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교도소의 규정을 지키려는 의지였을 것이다.[45] 이후 안유 보안계장이 나갈 때 옆 칠판에 써 있는 방문자 중 감독인 장준환의 이름이 잡힌다(...). 검사라고..[46] 이 당시 1억은 국내 고급아파트 건물 1채를 통째로 살 수 있을 만큼의 거액이었다. 이미 조한경은 앞서 왔던 다른 부하들에게 토사구팽 당하지 않으려고, '너희들 모가지는 내 혓바닥에 달렸다'고 협박까지 한 상태이다.[47] 이 협박을 하며 "너도 해봐서 잘 알잖냐?"고 덧붙이는데, 이런 식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이 더 있음을 드러내는 셈.[48] 신입생이라, 아직 학생증이 발급되기 전인 듯.[49] 만화사랑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있다. 그 당시는 공개적으로 운동권 동아리를 만들었다간 코렁탕을 마시기 때문에, 이렇게 만화 동아리 등으로 위장해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대학에 현존하는 서브컬쳐 동아리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사실 이런 운동권 동아리인 경우도 있다.[50] 정미는 처음엔 '그래 봤자 운동권'이라고 시큰둥해 하다가, 그 남학생을 보고는 "저 정도 얼굴이면 간첩이라도 사귀겠다!!"라며 감탄한다.[51] 처음에 이 말을 듣자마자, 상영하기도 전에 학생 2명은 불쾌감을 드러내며 바로 빠져나가 버린다.[52] 이 영상에 나오는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군이 시민을 바닥에 끌고 가는 장면은,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에도 나온다.[53] 4개월 전에 개봉한 택시운전사는, 광주에서 바로 이 영상을 촬영하고 세상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의 이야기를 다뤘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보도한 영상은 독일에서 유학 중이던 한국인 신부들이 국내로 들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을 중심으로 성당과 대학가에서 비밀리에 상영되었다.[54] 삭발을 하고 스님으로 위장해서 도피한다.[55] 김정남을 찾기 위해 사방을 주시하고 있었고, 교도소도 종종 드나들었던 남영동 팀의 눈에는 굉장한 거수자였다.[56] 왜 연희가 지금까지 민주화 운동에 회의적이었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단순히 귀찮아하는 것으로만 보였지만 사실 그 안에는 매우 아픈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57] 물고문을 당한 뒤에 전기고문이 가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고문을 하던 형사들이 무려 6바퀴를 넘어 7바퀴를 돌리려 했다.[58] 만화사랑 회지에 실린 노래 그날이 오면의 악보를 보고 한 말.[59]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이니 꼭 전달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60] 묘하게도 연희의 엄마를 쳐 연희와 시비가 붙은 전경과 연희와 다른 가족들을 연행한 백골단원 모두 연희보다 겨우 몇살 정도 많을 젊은 청년들이다.[61] 늑대의 유혹에서 강동원의 우산신은 수 차례 패러디되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런데 정작 장 감독은 전혀 생각지 않았다고. 옛날 느낌이 나는 파란 비닐 우산을 준비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밝혔다.[62] 아버지, 어머니, 교복을 입은 박처원 본인, 여동생, 동이. 영화 초반부에서 박처원이 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던 사진이다.[63] 사연을 말하면서 박처원의 눈에 눈물까지 고이는데 취조자 앞임에도 감정이 올라올 정도로 고통스러운 기억임을 보여준다. 감옥에서 조한경을 굴복시켰을 당시에도 가족을 임진강에 던져버리고 월북 중 죽은걸로 조작하겠다며 협박한 것 또한 가족이 죽는데 아무것도 못한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64] 보통 물고문을 이런 식으로 하진 않는데 젊은 청년인 박종철이 온몸을 흔들며 거세게 저항하는 완력이 너무 쎄서 고문형사 세명이 달라붙어 제압해도 역부족이라 다리까지 잡은 것으로 묘사된다.[65] 애국가를 부르는 동안 얼굴을 물에 강제로 넣는 물고문을 하는 것이다.[66] 현재는 명동성당 마당에 공중전화 박스들이 없다.[67] 기자들을 잘 보면 외신 기자들도 여럿 있다. 발표문을 받아적자마자 우와아아 하고 뛰어나가는 기자들의 장면이 아주 볼만하다. 공중전화 박스에서 마구 뒤엉켜 전화하는 장면도 지금의 시대에서 보기에 아주 색다른 장면.[68] 이 장면은 인위적으로 연출되어 있는 의미있는 장면이다.[69] 이때 경찰 무전기에서 갑호비상령이 발령됐다는 언급이 나온다. 이는 실제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추모집회 때 발령됐던 것이다. 여기서 갑호비상령이란, 경찰청장이 대규모 집단사태로 치안질서가 극도로 혼란해지거나 계엄이 선포되기 전 등의 상황에서 경찰 전원에게 비상근무를 명령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비상령을 말한다. 비상령은 가장 높은 단계부터 순서대로 갑·을·병호 비상령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중 갑호비상령은 가장 높은 군 경계수준인 '진돗개 하나'에 해당된다.[70] 이때 연희와 연희 엄마의 사진, 그리고 날조된 간첩 조직도가 허무하게 불에 타는 장면이 나온다. 이로써 연희네 가족은 군사정권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또한 박처원이 작품 초반에 별일 아니라는 듯이 박종철 군의 시신을 태우라고 명령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이번엔 진지하게 수사 자료를 태우라고 명령한다. 태워서 증거를 인멸하라는 명령도 똑같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나 자신이 날조한 공안사건들이나 둘 중 하나라도 까발려지면 자신이 끝장나는 것도 똑같지만, 초반에는 여유롭게 은폐하려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후반에는 매우 다급하게 은폐하려는 모습을 보인다.[71] 하필 안유가 근무 중이던 구치소였다. 박처원과 최환, 안유의 입장이 역전된 셈. 참고로 박처원보다 먼저 내린 두명의 번호는 518이다.[72] 남은 공안경찰들은 중반부에 폭행당한 상사가 점심 식사 중인 곳에 들러 "밥 잘 먹고 있냐?"라면서 다른 형사들을 동원해 모조리 체포한다. 이때 "오래간만이야."라고 말하는데 박처원에게 폭행당한 사적 원한까지 있는지 묘하게 비웃는 듯한 표정이다. 다만 다른 청렴한 인물이 아닌 고문과 꼬리 자르기에 가담했던 인물이라는 것이 매우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물론 영화적으로 앞서 등장한 인물을 다시 등장시키는 유기적 연출이기도 하지만, 실제 6월 항쟁과 1987년 체제의 대표적인 한계가 군사독재 부역자와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그 당사자들이 체제 안정의 주도자 격의 자리를 꿰찬 점이라는 걸 생각하면 시사하는 바가 있다.[73] 이때 잠시 시점이 과거로 돌아가, 이한열이 격렬하게 시위를 하는 장면과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경위를 보여준다. 최루탄 발사 장면을 보면 군인들이 조준을 위로 하였다가 상관의 질책에 다시 내리는 장면이 있다. 윗선은 어쨌거나 군인들도 이게 잘못된 거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는것을 감독이 의도적으로 보여준 것이다.[74] 보통 영화 타이틀은 도입부에 나오는 게 일반적이란 걸 생각하면 타이틀을 영화 끝에 노출시키는 건 6월 항쟁, 더 나아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항쟁은 이후 영화가 만들어진 현재까지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연출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비슷하게 타이틀을 영화 끝에 노출시켜 호평을 받은 작품으론 다크 나이트를 꼽을 수 있다.[스포일러] 스테인드 글라스 너머로 김정남이 밧줄을 타고 내려가는데, 안기부 요원들은 스테인드 글라스에 그려진 예수의 모습에 가려 이를 보지 못한다. 즉 신은 억압받고 투쟁하는 사람들의 편이라는 암시이다.[76] ~ 2018/02/07 기준[77] 1987은 일일 스크린 수 1,100여 개에 일일 상영횟수 5,000여 회였으며, <신과 함께>는 일일 스크린 수 1,600여 개에 일일 상영횟수 8,000여 회였다.[78] 그래도 전작인 화이에서 얼추 대중성과 흥행성이 보여줘서 장준환 감독도 흥행작을 내놓을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다. 장준환 감독의 문서에도 적혀져 있듯이, 의외로 흥행 운이 나름은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지구를 지켜라!만 빼면 흥행이 꽤 준수하다. 이거 빼면 200만은 넘었으니...[79] 요즘들어 관객수가 600만 정도 되는 영화 중에서도 오프닝 스코어가 30만이면 적은 편이다. 초반의 반짝 흥행하고 마는 영화가 대부분인 반면 이 영화는 흥행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720만을 돌파했다.[80] 사실 예전에 한국에서도 수입된 외화중에 별개의 작품인데도 이런 식으로 트릴로지화 된 작품들이 종종 있었던걸 생각하면(...)[81] 실제로 변호인은 1978년 배경, 택시운전사는 1980년 배경, 1987은 1987년 배경이니 당연하다.[82] 아버지가 친일파임이 분명히 밝혀졌음에도 이를 감추고 변명하기에만 급급했던 국회의원 김무성 같은 사례가 대표적.[83] 외조모가 구포 만세운동 노원필의 장손녀라고 한다. 즉, 노원필의 후손인 강동원 외할머니는 이종만의 며느리이다.[84] 이 문단은 독자연구가 아니라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가들의 논문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더더욱 김영택 박사는 대표적인 전문가다.[85] 정확하게는 3·3 평화대행진이 벌어진 시점(박종철 49재)에 그보다 앞서 있었던 2·7 추도회가 전의경과 충돌한 장소(미도파 백화점 앞)를 결합한 장면이다. #[86] 물론 이 여성들이 배역 이름조차 없고 비중이 낮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성차별이 심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적었던 당시 시대상, 여성을 들러리 삼았던 87세대의 한계를 비판할 일이고, 그러한 관점으로 현실적 한계를 반영한 영화까지 비판하는 것은 논리 비약이다. 때문에 이 영화를 기존의 운동권 서사와 동일시한다면 평론가로서는 저급한 감식안을 드러내는 일이 될 것이다. 더욱이 굳이 시대적 한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창작의 자유'라는 측면 또한 엄연히 존재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해리 포터 시리즈도 주연 3인방 중 2명이 남자지만 여성의 비중이 적다고 비판받지는 않는다.[스포일러2] 이한열기념사업회.[88] 문소리가 운동권 출신에 진보정당의 당원이었던 경력 등을 두고 나온 이야기인 모양.[89] 연세대 86학번 졸업생들로 구성된 합창단. 녹음 당시 86학번 합창단(이한열 합창단)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재학 중이던 학번의 합창단(84학번 합창단, 85학번 합창단 등) 중 일부도 함께 하였다.[90] 일단 공식적으로는 하정우가 맡은 최환 검사가 김윤석의 박처원 처장이랑 투탑 주연이긴 한데,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모티브의 군상극 형태의 본작 특성상 초반부만 나오고 중후반은 잊혀질만 하면 언급되는 수준으로 비중이 박살나는지라 주인공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등장인물란에 서술된 대로 김윤석이 맡은 박처원 처장이 오히려 극의 주인공 급이라 할 정도로 압도적인 출연과 비중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한 최환 검사는 이 영화 이전에 공안 검사로서의 악명도 좀 있는 편이였다.[91] 1989년식 BF105를 원형 헤드라이트로 개조한 버스.[92] 초기형은 리어 라이트가 일자형이지만, 1989년형부터는 윗부분이 살짝 파여 있다.[93] 1987년 페이스리프트된 차량. 금호렌터카의 차량은 1988년식이고, 무엇보다 치안감의 1983년식 토요타 크라운과 같이 경찰 관용차로 수입될 수가 없는 차량. 청와대 일부 차량 이외엔 대부분 국산차였다. 영화 속에선 결국 치안감이 대형세단인 흑색 도요타 크라운을, 상관인 치안정감이 은색 중형세단을 타는 것으로 나와 버렸다.[94] 이에 하정우는 "이번에는 둘이 같이 뭔가를 해결하고 힘을 합하여 (김)윤석이 형 뒤를 도와주고 싶었으나 면가와 구남의 대립 관계처럼 이번에도 서로 반대 진영에 서서 아쉽다."라는 말을 하였다.[95] 운동권 내부의 정부 프락치는 엄청난 분노와 경멸의 대상이었으며, 당시의 학생 운동은 어느 정도 과격한 성향이었기에 프락치로 의심되는 학생에게 가한 흑역사 사건도 여러 번 있었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 이종권 치사 사건, 이석 치사 사건 등.[96] 이낙연 국무총리와 서훈 국정원장도 같이 관람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에 대한 문책성 경질된 기관장들이 노신영 국무총리, 장세동 안기부장, 정호용 내무장관, 김성기 법무장관, 서동권 검찰총장, 이영창 치안본부장이었기 때문이다.[97] 이 분은 영화가 개봉한지 6개월 후인 7월 28일에 보고싶은 아들 곁으로 떠났다.[98] 이 블로그 글의 사진 중 한 장에서 확인[99] 음력상 나이로 하면 17살 더 많다.[100] 이한열의 영정을 들고 있는 우상호 의원 옆에서 태극기를 들고 서있던 학생으로 유명하다.[101] 민주화 혁명이 성공을 거두고 드디어 민주정인 대한민국에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는데 했지만 결과적으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태우가 당선되었고, 전두환도 사면 후 자유롭게 살다가 자연사했기 때문. 또한 민주주의 시스템 상 혁명을 통한 완연한 승리와 성공만을 가져오는 것은 실질적으로 힘들다는 점을 고려하면 1987이 패배의 역사를 다루는 것도 맞는 말이 된다. 그리고 전자의 경우에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02] "일본도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뭘하는지 모르겠다"며 쓴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당시 출연했던 예능프로에서 패널들이 <올드보이>를 최고로 꼽자 "야, <1987>도 뽑아 좀!"이라고 외칠 정도로 애착을 갖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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