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3
누구도 보지 못했던 북한의 속살 – 시사IN
누구도 보지 못했던 북한의 속살 – 시사IN
누구도 보지 못했던 북한의 속살
문정우 기자 woo@sisain.co.kr 2018년 11월 03일 토요일 제581호
지구 반대편에서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
‘갑근세 제로 시대’를 꿈꾸다
[어린 왕자]의 비밀을 아시나요
다시 듣게 된 그 이름 ‘헨리 조지’
ⓒ한성원 그림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백 마디 말보다 나은 법이다. 동영상이 판치는 인터넷 세상에서도 특파원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건져낸 현장 사진은 여전히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막강한 힘을 과시하곤 한다. 그러나 단 한 곳. 북한을 찍은 사진에서만은 좀처럼 그런 영감을 받기 힘들다. 숱하게 많은 기자와 작가가 북한에 다녀왔지만 언뜻이라도 저 사회의 속살을 보여줬다고 느끼게 만드는 작품은 보질 못했다. 아마도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그동안 북한 당국이 얼마나 정보를 가리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왔는지 말해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의 방패에도 금이 가는 중이다.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 수가 500만명을 넘어서고, 남한 체류 탈북자가 3만명을 돌파한 와중에 남·북·미 평화의 시대가 열려가기 때문이다. 이제 그 틈새로 북한의 진면목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저 사회는 무지막지한 독재자가 국민을 숨도 못 쉬게 옭아매는 단순한 동토가 아니었다. 변화를 갈망하며 내부가 용광로처럼 들끓는 역동성을 간직한 사회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는 맹수의 등에 올라탄 듯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결코 드러나지 않았던 북한 사회의 뒤편으로 우리를 이끄는 가장 훌륭한 안내자는 역시 탈북자이다. 변경에서 배고파서 탈출한 경우가 아니라 북한의 고위 관료나 상류층, 지식인 계층에 속했던 이들이 우리를 평양 시민의 안방까지 데려다놓을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를 지녔다. 남한에서 경험과 지식을 축적해가면서 그들은 이제 비로소 자기들이 탈출한 북한 사회를 거리를 두고 바라볼 힘이 생긴 것처럼 보인다. 올해 탈북 16년차인 주성하씨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다.
평양 김일성대학 외국어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행정대학원을 나와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하는 그는 최근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북돋움 펴냄)라는 책을 펴냈다. 현재 평양에 사는 시민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인터뷰 대상에는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의 상위 0.01%급 부자도 포함돼 있다. 그는 2018년 10월 현재 북한의 현실을 가장 잘 표현한 책이라고 자찬하는데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겉과 속이 다른 사회이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권도 주민도 이중적이다. 입만 열면 혁명을 말하고 지도자의 은덕을 칭송하지만 실제 삶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당도 인민도 안다.
환율이야말로 북한이 앓는 병이 얼마나 깊은지 말해주는 적나라한 수치이다. 북한 공식 환율은 1달러당 102~112원(북한의 화폐 단위는 우리와 같은 원이다)이다. 그런데 장마당(시장)을 비롯한 시중 상점에선 1달러당 8400원(올해 7월 기준)을 쳐준다. 외국인이 멋모르고 공식 환전소에서 100달러를 바꾸면 5000원짜리 달랑 두 장을 받지만 시장에 가면 84만원, 5000원짜리 지폐 168장을 받는다. 북한 인민 가운데는 코흘리개도 그런 실수는 하지 않는다. 수차례 화폐개혁으로 환율 관리에 실패한 참혹한 결과이다. 달러는 평양 시내의 거의 모든 상점, 식당에서 자유롭게 유통된다. 국제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돼 있으면서도 외화 없이는 시장 거래 자체가 불가능한 기이한 곳이 바로 북한이다. 국민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돈거래가 국가의 역량 밖에 있다.
북한에서 내각의 상(장관급)이 받는 생활비(월급)는 월 8000원. 교수 박사의 생활비는 월 9000원 정도다. 겨우 쌀 2㎏을 살 수 있는 돈이다. 장마당 환율로 치면 월 1달러를 넘나든다. 국가가 사회적 약자나 빈민은 고사하고 공무원조차 부양하기를 포기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그래도 가족까지 부양하며 위세 좋게 잘들 산다. 이 기묘한 수수께끼를 풀어야 북한 사회에 다가설 수 있다.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 이후 북한에서는 국가 무상 배급 시스템이 무너지고 말았다. 1990년 중반 숱한 아사자를 낸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며 인민은 국가와 당이 결코 자기들을 먹여 살리지 못한다는 걸 뼈저리게 절감했다(우리 사회도 환란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하고 가치관이 급격히 변했다). 그들은 1960년대에 생겨난 농민시장의 전통을 살려 스스로 열어젖힌 장마당에서 필요한 물품을 거래하고 이익을 남기면서 악착같이 버텼다. 국가의 법이나 사회주의 가치보다는 생존이 먼저였다.
주성하씨에 따르면 그 힘들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견뎌내면서 북한은 ‘갈라파고스적인 시장경제 체제’로 진화했다. 국제경제 체제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환경에서 일어난 결과였다. 과거의 소련과 동유럽처럼 사회주의 체제가 완전히 붕괴한 상태에서 이행된 시장경제 체제와는 달랐다. 경제를 철저히 정치에서 분리한 중국과 베트남과도 또 다르다. 정치를 경제가 견인해가는 꼴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민간경제에 정치가 기생하는 모양새이다. 철저한 봉쇄 속에서도 경제성장을 이룩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뉴욕 대학 폴 로머 교수가 주창한 내생적 경제 이론에 가까운 모델이기도 하다. 로머 교수에 따르면 외부 영향 없이도 경제 단위는 내부 기술과 지식의 축적에 따라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6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3.9%로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제가 정치를 끌고 간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2009년 김정은 체제로 이행하기 직전 전임자인 김정일 위원장은 인플레이션을 억누르기 위한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구화폐 100원을 신화폐 1원으로 바꿔주었는데 1인당 교환 한도를 10만원으로 제한했다. 개인이 장롱에 보관하고 있던 돈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려는 심산이었다. 한국으로 망명한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 태영호씨에 따르면 북한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 벌어졌다. 상점들이 문을 닫고 시장에서 물건이 사라졌다. 대대적인 저항이었다. 인플레이션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김정일 위원장은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을 간첩으로 몰아 공개 처형하고 주민에게 사과했다. 북한에서 정치가 경제에 무릎을 꿇은 최초의 사건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일생일대의 수모였다. 그 뒤로 금융은 국가의 손아귀에서 놓여났다. 지금 김정은 위원장은 그의 아버지보다 힘이 있을까. 아버지의 실패를 목격했기 때문에 섣불리 힘겨루기를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힘의 배후에는 바로 장마당이 있다. 장마당은 현재 한국의 신라면부터 독일 벤츠까지 파는 대형 마트로 변신하는 중이다. 북한 연구자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세대를 장마당 세대라고 부른다. 가장 사망률이 높고 발육이 부진한 불행한 세대이다. 하지만 국가나 조직이 문제를 해결해주리라고 믿지 않는 최초의 세대이기도 하다. 자신의 운명을 체제에 걸지 않는다. 자본순환의 원리를 익히고 독자 생존의 지혜를 체득했다. 이들이야말로 장마당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북한 주민 3분의 1 이상이 수입의 3분의 2 이상을 장마당에서 올려
2018년 2월 현재 공인된 종합시장만 480여 개에 달한다. 대규모 장마당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소규모 위성 장마당이 존재한다. 골목시장, 야시장 등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는 중이다. 인민은 생활 수요의 80~90%를 이곳에서 해결한다. 북한 주민 3분의 1 이상이 수입의 3분의 2 이상을 장마당에서 올린다. 북한에서 휴대전화 가입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바로 이 장마장이 활기를 띠면서부터다. 상인들은 상품 거래 정보를 모두 스마트폰을 통해 주고받는다.
장마당에서 수완을 발휘해 자본을 축적한 이들을 ‘돈주’라고 하는데 이들은 김정일 기금, 김정은 기금에 돈을 바치면서 외화벌이꾼과 같은 노력 영웅의 반열에 올랐다. 이들에게는 인민의 생활 경제를 책임지는 외에 중요한 역할이 또 있다. 바로 국가를 대신해 은행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기관투자가가 없는 북한에서 무시할 수 없는 큰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취임한 후 국내 개인투자자들에게도 국영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돈주는 날개를 달았다. 이들은 설비가 낡고 기술 경쟁력을 잃어서 빈사 지경이었던 국영기업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돈주들과 중앙당 간부의 대리인 혹은 그들의 친인척인 게 분명한 투자자들이 돈을 댄 기업들이 무소불위의 특혜를 누리며 덩치를 불려가는 중이다. 이들은 별로 상관도 없는 분야로 마구 촉수를 뻗는다. 과거 국가의 보호무역 장벽과 금융 지원 특혜에 힘입어 경쟁 없이 불사의 대마로 자랐던 한국의 재벌을 여러모로 많이 닮았다. 이들은 경제제재 덕분에 독점 지위를 만끽한다.
최근 북한에서 떠오른 기업 중 ‘내고향’은 같은 이름의 소주와 김정은 위원장이 즐겨 피운다는 담배 7.27이 주력 상품이지만 그야말로 문어발이다. 게임 카드, 위생 타월, 스포츠용품,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손을 대지 않은 곳이 없다. 북한에서 인기가 높은 여자 축구팀을 후원하며 이 팀이 뛰는 경기장에서 제품 광고를 한다. 7.27과 경쟁하는 북한 담배 ‘항공’은 국적기인 고려항공이 만든 제품이다. 이 비행기 회사는 병에 든 꿩고기, 고등어 캔도 만들며 택시와 주유소 영업에까지 뛰어들었다. 전화 회사, 승마 클럽, 스키 리조트 등도 앞다퉈 택시 사업에 덤벼들었다.
민간 자본의 축적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중산층이 두꺼워지면 북한은 정상국가를 향해 한발 더 다가설 게 틀림없다. 하지만 시장경제를 향한 묻지 마식 속도전이 초래한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다. 기업의 공룡화, 부동산 투기, 부패의 만연 등등. 어느덧 뇌물이 북한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되고 말았다. 인민의 삶은 국가법이나 가치와 철저히 따로 논다. 북한 인민은 불행하게도 남쪽의 형제가 고도성장과 개발독재 시대에 겪었던 자본주의의 폐해를 놀랍게 유사한 형태로 경험하는 중이다(제583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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