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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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북한에서의 정의3. 내용4. 비판
5. 지위
5.1. 수령론5.2. 주체사상 형성과정
5.3. 천리마 운동
6. 대한민국에서의 상태
5.3.1. 청산리 방법
5.4. 주체 사상의 변질
5.5. 당의 유일 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
6.1. 국외에서의 주체사상
7. 종교인가?
8. 주체사상과 대한민국 국가보안법9. 기타 주체사상10. 참고/관련문헌1. 개요[편집]
- 브라이언 마이어스[3]
북한의 체제 유지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알려진 통치·정치사상.[4] 마오쩌둥주의를 마오이즘, 마르크스주의를 마르크시즘이라고 부르듯이 김일성주의(Kimilsungism)로 칭하기도 하며,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쪽에서는 수령절대주의 혹은 주체교라고도 부른다.[5] 영어로는 Juche Ideology, 보통은 그냥 Juche라고 부른다. Chaebol[6], Jeonse와 함께 한국어가 그대로 영어에 편입된 고유명사에 속한다.
북한의 1인 독재 권력을 정당화하고 김씨조선 체제를 유지하는 사상. 사회주의의 탈을 쓴 사이비 종교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일부에서는 아예 주체사상을 일종의 종교로 봐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와 같은 종교 국가로도 분류한다.
북한은 주체사상이 공식적으로 김일성이 창시하여, 1930년 6월 열린 카룬 회의에서 처음 발표된 사상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김일성이 18세에 주체사상을 창시했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고, 김일성이 중졸이기는 하지만, 사실 당시 사정을 보면 중졸이라고 다 무식한 것은 아니다. 당시 소학교 졸업자만 해도[7] "지식청년"으로 대접받았던 사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에서는 주체사상을 김일성이 창안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소련의 외교관들의 말에 따르면 실제 창안자는 1950년대 말 북한의 박창만 비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박창만 비서가 창안한 주체사상을 1960년대 들어서 황장엽 비서에 의해 발전되었다고 한다. 주체사상의 실제 창안자
대부분의 주체사상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초반 무렵으로 황장엽이 1960년대 말부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개량하기 위한 새로운 사상을 연구해 1972년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 기고한 '주체사상과 조선로동당의 대내외 정책'이라는 논문을 통해 처음으로 발표했다.
김일성 일가를 비판해 온 황장엽이 쓴 자서전에 의하면, 김일성은 고등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학문적인 소양은 있었다고 한다. 또, 주체사상을 만드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편, 주사파의 대부였다가 전향한 김영환은 90년대에 남파잠수정을 타고 평양에서 김일성을 2번 만났다. 김일성과 주체사상에 대해 토론하려고 했으나 김일성은 주체사상의 기본 논리조차 이해 못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소련과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의 원조 때문에 북한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했다. 1970-80년대 김일성이 "북한이 더 이상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아닌 주체사상만 있는 나라"라고 선언했더라면, 소련은 이것을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배신이라 간주해서 북한에 대한 원조를 많이 줄였을 것이다.
아래 항목에도 자세히 나와 있지만, 또 그럴 수밖에 없지만, 주체사상이 마르크스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막연한 동경이나[8] 막연한 비판을 피할 수 있게 하는 핵심이다. 여기에는 빨간색에 대한 컴플렉스도 포함한다. 이 차이점에는 주체사상의 진행 과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냥 짧게 요약하자면 김씨 일가한테 나대면 죽으니까 잘 섬겨라라고 보면 된다.
주체사상은 분명 스탈린주의의 사생아지만, 스탈린주의가 울고 갈 정도로 개인숭배를 강화했다.
사실상 1974년 2월 19일 김정일에 의해 김일성주의로 북한 내에서 정식 선포되었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불리고 있다.
2. 북한에서의 정의[편집]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 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 대중에게 있다.
여기서 황장엽은 자칭 '인간중심철학'을 집어넣는데, 이게 무엇을 일컫냐 하면, 황장엽은 인간의 생명을 '육체적 생명'과 '사회적 생명'으로 구분지으며 '육체적 생명은 유한하지만 사회적으로 결합된 집단의 생명은 무한하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까지만 보면 장 자크 루소, 한나 아렌트 등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는 나오기는 한다.[11]
주체조선의 첫 수소 핵실험 완전 성공 ! -리춘희(조선중앙TV 아나운서)
인민 대중의 이익은 노동 계급이 대표하므로 인민 대중의 참다운 이익을 옹호하는 입장은 곧 노동 계급의 입장이며 노동 계급의 참다운 이익을 옹호하는 입장은 곧 노동 계급의 당(黨)의 입장이며 노동 계급의 당의 이익을 이상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은 곧 수령의 입장이다.
하지만 이 대목을 읽어보면, 개인의 독재를, 그것도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는 혈통에 의거한 독재를 옹호하는 사고관으로 왜곡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정의가 혼합되면 '사회적 운동의 주체는 인민 대중이다'라는 명제가 슬그머니, 아니 대놓고 '사회적 운동의 주체는 노동 계급이며 노동 계급의 당이며 노동 계급의 수령이다'가 된다. 명백한 논리적 오류이자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개념이다. 전제인 '사회적 운동의 주체는 인민 대중이다'와 그 '인민 대중'을 대변하는 노동 계급을 대변하는 당을 대변하는 수령이 있는 것까지는 타국의 정상적인 민주주의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이지만, 문제는 어느 나라에서든지 지도자의 입장이 전부 인민 대중의 입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당연히 북한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민의 입장은 수령의 입장이다'라는 애매한 문장을 통해 '어차피 수령이 원하는 것은 인민도 원할 것이니 인민은 수령을 따르면 된다'라는 식으로 명제를 거꾸로 뒤집어버려, 수령이 인민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인민이 수령을 대변하는 기묘한 형태를 만들어놓았다.
물론 여기까지 봐도 평범한 독재에 가까워 보이고, 실제로 노동 계급의 독재에 대한 이론은 소련에서 많이 발전을 시켜놓았고 나름대로의 개연성은 있었다. 근데 주체사상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공산당 위에 군림하는 개인이 존재하며, 그마저도 그냥 개인이 아니라 혈통으로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개인이다. 이런 논리는 나치 독일에서나 써왔던 것이었는데, 그들조차도 일개 개인의 혈통이 아니라 집단 전체의 혈통을 보려고 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아리아인과 그렇지 않은 인간을 구분하려는 사이비적인 과학적 시도를 통한 명분확보 노력이라도 있었던 데에 비해, 주체 사상은 그런 거 없이 그냥 김씨 일가는 타고난 지배자의 혈통이라는 전근대적인 논리밖에 없다. 즉, 나치독일조차도 히틀러 개인에게 혈통적인 권위를 주려는 시도는 전혀 안 했다는 말이다.
역사적 공산주의가 가지는 사적 유물론에서 근거한 자기 정당화 논리를 전근대적 혈통주의에 적용하면서 이 중간단계를 설명하기 위한 어떤 과정도 건너뛰고 끝까지 자기 정당화를 추구하는 것은 이것이 공산주의의 연장으로서의 독재 체계가 아니라 사실상 자본주의 가운데 가장 막장적인 경영 세습 체계의 연장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수령의 의지=인민의 의지'를 통해 수령절대주의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인 것.[출처] 이를 둘러싼 과정은 역사 항목에서 기술한다.
3. 내용[편집]
소련이 흐루쇼프 이후 스탈린을 비판하고 서방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자 북한은 소련과 외교적 마찰을 빚게 되었다. 김일성은 소련과 다른 독자적인 공산주의 이론을 개발할 것을 황장엽에게 지시했고 물질과 생산 방식에만 치중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황장엽이 4년 가까운 연구에 의해 내놓은 인간의 창조성과 자주성을 강조한 '인간 중심 철학'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인간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갖추고 있다"라는 참으로 그럴 듯한 가정으로부터 시작한다. 주체사상의 주체라는 표현은 사실 이러한 출발점에서 유래하였다.
충성 경쟁을 펼치던 김정일에 의해서 본래의 '인간중심철학' 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수령과 인민의 관계는 뇌수와 신체의 관계와 같다. 육체적 생명은 저절로 주어지지만 사회적/정치적 생명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인민을 해방시킨 수령 김일성이 부여한 것이다"라는 괴상한 논리로 변질되어버렸다.
간단히 말해 '사람 중심 철학'이라고 할 때의 그 '사람'은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만을 가리키는 것. 나머지 인민들은 육체적 생명만 있지 사회적, 정치적 생명은 없어서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없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침팬지 같은 존재라는 게 주체사상이다. 그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같은 인민들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김씨 일가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4. 비판[편집]
4.1. 마르크스주의와의 모순[편집]
희대의 맑알못인 김일성이라는 오타쿠가 교주 놀이를 위해 만든 근본도 없는 사이비 동인 설정[13]
"인간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갖추고 있다"는 이 가정 자체가 마르크스주의의 전제와 완벽히 상반된다.[14] 마르크스주의는 이데올로기나 정치(상부구조)는 물질적 생산 관계의 변화(하부구조)에 따라 결정된다는 역사유물론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인간 개개인의 의지나 정신력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주체사상은 이와는 정반대의 주장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무조건적인 낙관주의는 역사유물론적으로 열렬한 비판의 대상이다.부카니스탄식 의지드립[15][16]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저런 자유의지와 같은 개념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내지는 경제적 관계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다, 결국 하부구조 위에 구성된 상부구조에 해당한다. 저렇게 대충 끄적여놓고서 "자유의지가 어쩌고 주체가 어쩌고" 하는 건 이론적으로도 터무니없는 소리가 된다.
오히려 다양한 조류의 마르크스주의를 통일하는 이론적 사상 체계의 핵심인 유물론적 결정론의 입장에서 보면[17] 주체사상의 개인 결정론은 우파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이나 할 법한 한량한 뜬구름 잡는 소리다.
마르크스 본인이 공산당 선언을 집필하며 혁명가로서 자신을 동시대의 동업자들과 확실하게 선을 긋기 위해 특별하게 강조한 하나의 정교한 기계 장치처럼 사회와 그 속의 개인이 거대한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대류에 맞물려 돌아가는 필연적, '과학적' 사회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주체사상의 골자는 모험주의적인 철 없는 부르주아나 할 법한 반동적 개인주의이자 레닌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좌익 소아병에 더 가깝다.
이런 비판은 모두 현실에서 저지른 짓과는 별개로 순수한 이론적인 측면에서 기반한 것이며, 이 말은 즉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는 애초에 첫 단추 부터가 사회주의 진영 입장에서도 사이비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 사상이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아니면 황장엽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거나. 황장엽은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에 부족한 정신적인 측면을 보완했다고 자칭했으나, 실상 마르크스주의에서 이론적으로 부정해버린 부분을 억지로 되살린 것에 불과하다.
"인간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갖추고 있다"는 이 가정 자체가 마르크스주의의 전제와 완벽히 상반된다.[14] 마르크스주의는 이데올로기나 정치(상부구조)는 물질적 생산 관계의 변화(하부구조)에 따라 결정된다는 역사유물론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인간 개개인의 의지나 정신력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주체사상은 이와는 정반대의 주장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무조건적인 낙관주의는 역사유물론적으로 열렬한 비판의 대상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저런 자유의지와 같은 개념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내지는 경제적 관계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다, 결국 하부구조 위에 구성된 상부구조에 해당한다. 저렇게 대충 끄적여놓고서 "자유의지가 어쩌고 주체가 어쩌고" 하는 건 이론적으로도 터무니없는 소리가 된다.
오히려 다양한 조류의 마르크스주의를 통일하는 이론적 사상 체계의 핵심인 유물론적 결정론의 입장에서 보면[17] 주체사상의 개인 결정론은 우파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이나 할 법한 한량한 뜬구름 잡는 소리다.
마르크스 본인이 공산당 선언을 집필하며 혁명가로서 자신을 동시대의 동업자들과 확실하게 선을 긋기 위해 특별하게 강조한 하나의 정교한 기계 장치처럼 사회와 그 속의 개인이 거대한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대류에 맞물려 돌아가는 필연적, '과학적' 사회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주체사상의 골자는 모험주의적인 철 없는 부르주아나 할 법한 반동적 개인주의이자 레닌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좌익 소아병에 더 가깝다.
이런 비판은 모두 현실에서 저지른 짓과는 별개로 순수한 이론적인 측면에서 기반한 것이며, 이 말은 즉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는 애초에 첫 단추 부터가 사회주의 진영 입장에서도 사이비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 사상이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아니면 황장엽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거나. 황장엽은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에 부족한 정신적인 측면을 보완했다고 자칭했으나, 실상 마르크스주의에서 이론적으로 부정해버린 부분을 억지로 되살린 것에 불과하다.
4.1.1. 국제 사회주의자 경향(IST)의 입장[편집]
아마 마르크스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강도가 높게 까는 입장일 것이다.[18] 레프 트로츠키의 사상을 재해석[19]했다고 자처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국가자본주의론[20]을 따르는 한국의 국제 공산주의 운동 조직인 노동자연대는 주체사상에 대해, 북한 국가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자들이 체제 위기를 극복하고 인민 대중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한편, 인민 대중을 우민화하여 자기네들 말을 잘 듣고 착취 체제에 고분고분 순종하는, 말이 노동자지 사실상의 '임금 노예'로 만들기 위하여 고안해 낸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분석한다.
이것을 다시 해석하자면, 주체사상은 본질적으로 자유경제원이 선전하는 '자본전체주의'의 국가자본주의 버전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주체사상과 자유경제원의 사상은 개인의 의지와 노오력을 강조한다[21]. 국가자본주의론에 따르면 북조선의 국가자본주의 체제든, 남한의 시장자본주의 체제든 본질은 인민대중을 착취하여 이윤을 축적하는 계급 사회이고, 그 사회의 지배자들이 효율적인 착취와 그 체제의 유지를 위하여 각각 주체사상과 자유경제원의 사상이라는 관념을 고안해 낸 것이다.[22]
그리고 그것이 유독 타 국가의 국가자본주의나 시장자본주의에 비해 쓰레기 같고 개막장으로 보이는 이유는 각각 북한과 남한의 체제가 가진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아무리 국가자본주의라도 북한처럼 권력을 세습하지는 않고, 아무리 시장자본주의라도 남한처럼 끈끈한 정경유착은 찾아보기 어렵다.[23] 근데 북한의 주체사상은 혁명과업을 갖다가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세습된 지도자가 필요하다[24]라는 논리를, 남한의 자유경제원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정경 협력'이 필요하며 이를 정경유착이라 비판하는 것은 경제를 망치는 지름길이다[25]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다른 국가자본주의나 시장자본주의에서는 납득될 수 없는 사상이, 북한과 남한 체제의 특수성으로 인해 이렇게 정당화되는 것이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사무실에 흔히 붙여 놓는, 기업의 '경영 철학'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개별 기업에서는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여러 선전 수단을 동원해 노동자들의 의식을 통제하려 한다. 그런데 북한은 나라 하나가 통째로 기업이다. 그러므로 전 인민은 그 기업에 소속되어 임금을 받아먹는 노동자들이고, 김씨 일가는 그 기업의 오너들이다. 그러므로 김씨 일가는 자기네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하여[26] 주체사상이라는 무기를 통해 인민 대중의 의식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쪽에서는 사회주의의 필수요소를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상부 구조로 본다. 그래서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다라는 슬로건에 입각하여 주체사상은 진정한 사회주의의 걸림돌이자 시급히 타도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북한 인민들의 민주화 투쟁은 무조건 지지해야 하며, 설령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목적으로 할지라도 일단은 '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독재자를 타도하는 민주주의의 실현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에 설령 그것이 현재의 북한 체제를 완전히 분쇄하고 남한식 시장자본주의 체제를 이식하려는 시도라 할지라도 북한 인민들이 그것을 원한다면 지지해야 하며, 그 이후에 노동자들을 설득하여 민주주의의 기반 위에 사회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IST의 입장이다.[27][28]
이것을 다시 해석하자면, 주체사상은 본질적으로 자유경제원이 선전하는 '자본전체주의'의 국가자본주의 버전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주체사상과 자유경제원의 사상은 개인의 의지와 노오력을 강조한다[21]. 국가자본주의론에 따르면 북조선의 국가자본주의 체제든, 남한의 시장자본주의 체제든 본질은 인민대중을 착취하여 이윤을 축적하는 계급 사회이고, 그 사회의 지배자들이 효율적인 착취와 그 체제의 유지를 위하여 각각 주체사상과 자유경제원의 사상이라는 관념을 고안해 낸 것이다.[22]
그리고 그것이 유독 타 국가의 국가자본주의나 시장자본주의에 비해 쓰레기 같고 개막장으로 보이는 이유는 각각 북한과 남한의 체제가 가진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아무리 국가자본주의라도 북한처럼 권력을 세습하지는 않고, 아무리 시장자본주의라도 남한처럼 끈끈한 정경유착은 찾아보기 어렵다.[23] 근데 북한의 주체사상은 혁명과업을 갖다가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세습된 지도자가 필요하다[24]라는 논리를, 남한의 자유경제원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정경 협력'이 필요하며 이를 정경유착이라 비판하는 것은 경제를 망치는 지름길이다[25]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다른 국가자본주의나 시장자본주의에서는 납득될 수 없는 사상이, 북한과 남한 체제의 특수성으로 인해 이렇게 정당화되는 것이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사무실에 흔히 붙여 놓는, 기업의 '경영 철학'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개별 기업에서는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여러 선전 수단을 동원해 노동자들의 의식을 통제하려 한다. 그런데 북한은 나라 하나가 통째로 기업이다. 그러므로 전 인민은 그 기업에 소속되어 임금을 받아먹는 노동자들이고, 김씨 일가는 그 기업의 오너들이다. 그러므로 김씨 일가는 자기네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하여[26] 주체사상이라는 무기를 통해 인민 대중의 의식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쪽에서는 사회주의의 필수요소를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상부 구조로 본다. 그래서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다라는 슬로건에 입각하여 주체사상은 진정한 사회주의의 걸림돌이자 시급히 타도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북한 인민들의 민주화 투쟁은 무조건 지지해야 하며, 설령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목적으로 할지라도 일단은 '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독재자를 타도하는 민주주의의 실현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에 설령 그것이 현재의 북한 체제를 완전히 분쇄하고 남한식 시장자본주의 체제를 이식하려는 시도라 할지라도 북한 인민들이 그것을 원한다면 지지해야 하며, 그 이후에 노동자들을 설득하여 민주주의의 기반 위에 사회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IST의 입장이다.[27][28]
4.1.2. 트로츠키주의의 입장[편집]
트로츠키 본인의 입장을 따르는 국제볼셰비키그룹(IBT)을 포함한 4인터 계열에서는 북한을 기형적 노동자 국가로 본다. 어쨌거나 꼴에 사회주의가 토대이기 때문에 북한에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가 존재하지 않고, 개인의 이윤 추구가 금지되어 있으니 노동자 국가는 맞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주체사상은 그 퇴보의 한 형태로 해석한다. 관료집단이 노동자 국가의 정치 권력을 장악함으로서 노동자 국가를 퇴보시켰고, 그 결과 자신들의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이런 걸 고안해 냈다는 이론이다.
이쪽은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자들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입장은 부정한다. 관료집단은 이윤 축적 압박에 시달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자들이 아니라, 그냥 어디서 굴러들어와서 사회주의를 향한 여정을 방해하고 나선 잡몹 내지는 저글링 같은 존재라고 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덜 치워진 똥'으로 취급을 한다. 사회주의 체제가 변증법적으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거기에 남아 있는 옛 체제의 잔재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중이라고 본다. 그 덜 치워진 똥이 썩어서 똥내를 풍기는 중(...)
관료집단의 사회적 본질에 대해서는 기생충 취급이다. 노동자 혁명으로 힘들게 만들어진 사회주의적 생산 양식에 기생하여 단물만 쪽쪽 빨아먹고 있는 잉여들이란 뜻이다. 즉 자본가 계급과 마찬가지로 나쁜 놈들이긴 한데, 자본가 계급과는 또 다른 유형의 쓰레기들이라고 본다. 이들을 하나의 사회 계급으로 인정하지는 않고, 특권을 누리는 하나의 계층(카스트)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북한은 사회주의적 생산 양식의 기초가 소련에 의하여 이식되어 있지만, 이 사회주의적 생산 양식이 제대로 작동하여 사회주의의 이상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는 새롭게 만들어진 사회주의적 생산 양식에 기생하여 자기네들의 배때기를 불리고 인민을 배신하는 관료집단 때문이며, 이들이 노동자 민주주의를 짓밟고 자기네들 좋을 대로 생산 수단을 통제함에 따라서 사회주의의 형식은 갖춰졌지만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사회주의적 생산 양식의 기초가 갖추어지기는 한 사회이므로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이 북한을 붕괴시키고 시장 자본주의 체제를 이식하려 한다면 필사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이 정통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그래서 북한 체제를 갖다가 쉴드 치는 건 아닌게... 이쪽에서는 그러므로 북조선에서는 정치혁명이 일어나서 관료집단을 타도하고 진정한 사회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국제 사회주의자 경향과 다른 결론을 내린다. 다만 북한에서 앞으로 일어나야 할 정치혁명[29]은 이미 이루어져 있는 국유화와 국가 계획경제라는 인프라 위에 구축되는 것이기에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사회주의 혁명과는 다르고, 그러므로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가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려 할 때는 이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30] 그러한 차원에서 이쪽에서는 엄연히 현재의 북한 체제를 IST와는 다른 각도로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의 입장을 과수 원예로 비유하자면 소련에서 어린 사과나무를 하나 갖다 심었는데 거기에 온갖 버러지들의 알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그 버러지들이 부화해서는 어린 잎과 꽃봉오리를 갉아먹는 바람에 나무가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사과가 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농약을 갖다가 뿌려서 이 버러지들을 싹 다 죽이고 비료, 주사를 놓아서 사과나무를 키워야 한다. 하지만 사과나무 자체를 뽑아 버리려는 시도는 저지해야 한다. ... 는 것이다.
IST와 4인터의 차이점을 요약하자면 IST는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상부구조를 중요시하고[31], 4인터 계열은 집산화와 국유화, 국가 소유라는 하나의 하부구조를 중요시한다. 그렇기에 IST는 민주주의가 가장 중요하므로 비민주적이라는 점에서 북조선 체제는 전혀 무가치한 체제고 무너져도 상관이 없는 체제란 입장이지만, 4인터 계열은 집산화와 국유화라는 하부구조가 가장 중요하므로 비록 비민주적일지언정 이 체제 자체는 유효하고 그 위에다가 민주주의라는 상부구조를 올려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 관계로 IST는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시장 자본주의 체제로의)에 대해서는 차선(次善)이라는 입장이지만, 4인터는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쪽은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자들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입장은 부정한다. 관료집단은 이윤 축적 압박에 시달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자들이 아니라, 그냥 어디서 굴러들어와서 사회주의를 향한 여정을 방해하고 나선 잡몹 내지는 저글링 같은 존재라고 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덜 치워진 똥'으로 취급을 한다. 사회주의 체제가 변증법적으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거기에 남아 있는 옛 체제의 잔재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중이라고 본다. 그 덜 치워진 똥이 썩어서 똥내를 풍기는 중(...)
관료집단의 사회적 본질에 대해서는 기생충 취급이다. 노동자 혁명으로 힘들게 만들어진 사회주의적 생산 양식에 기생하여 단물만 쪽쪽 빨아먹고 있는 잉여들이란 뜻이다. 즉 자본가 계급과 마찬가지로 나쁜 놈들이긴 한데, 자본가 계급과는 또 다른 유형의 쓰레기들이라고 본다. 이들을 하나의 사회 계급으로 인정하지는 않고, 특권을 누리는 하나의 계층(카스트)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북한은 사회주의적 생산 양식의 기초가 소련에 의하여 이식되어 있지만, 이 사회주의적 생산 양식이 제대로 작동하여 사회주의의 이상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는 새롭게 만들어진 사회주의적 생산 양식에 기생하여 자기네들의 배때기를 불리고 인민을 배신하는 관료집단 때문이며, 이들이 노동자 민주주의를 짓밟고 자기네들 좋을 대로 생산 수단을 통제함에 따라서 사회주의의 형식은 갖춰졌지만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사회주의적 생산 양식의 기초가 갖추어지기는 한 사회이므로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이 북한을 붕괴시키고 시장 자본주의 체제를 이식하려 한다면 필사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이 정통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그래서 북한 체제를 갖다가 쉴드 치는 건 아닌게... 이쪽에서는 그러므로 북조선에서는 정치혁명이 일어나서 관료집단을 타도하고 진정한 사회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국제 사회주의자 경향과 다른 결론을 내린다. 다만 북한에서 앞으로 일어나야 할 정치혁명[29]은 이미 이루어져 있는 국유화와 국가 계획경제라는 인프라 위에 구축되는 것이기에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사회주의 혁명과는 다르고, 그러므로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가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려 할 때는 이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30] 그러한 차원에서 이쪽에서는 엄연히 현재의 북한 체제를 IST와는 다른 각도로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의 입장을 과수 원예로 비유하자면 소련에서 어린 사과나무를 하나 갖다 심었는데 거기에 온갖 버러지들의 알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그 버러지들이 부화해서는 어린 잎과 꽃봉오리를 갉아먹는 바람에 나무가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사과가 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농약을 갖다가 뿌려서 이 버러지들을 싹 다 죽이고 비료, 주사를 놓아서 사과나무를 키워야 한다. 하지만 사과나무 자체를 뽑아 버리려는 시도는 저지해야 한다. ... 는 것이다.
IST와 4인터의 차이점을 요약하자면 IST는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상부구조를 중요시하고[31], 4인터 계열은 집산화와 국유화, 국가 소유라는 하나의 하부구조를 중요시한다. 그렇기에 IST는 민주주의가 가장 중요하므로 비민주적이라는 점에서 북조선 체제는 전혀 무가치한 체제고 무너져도 상관이 없는 체제란 입장이지만, 4인터 계열은 집산화와 국유화라는 하부구조가 가장 중요하므로 비록 비민주적일지언정 이 체제 자체는 유효하고 그 위에다가 민주주의라는 상부구조를 올려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 관계로 IST는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시장 자본주의 체제로의)에 대해서는 차선(次善)이라는 입장이지만, 4인터는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4.1.3. 스탈린주의의 입장[편집]
웃기게도 주체사상의 뿌리인 비주사 스탈린주의자들 역시 북한에서 만든 온갖 선전물들을 갖다가 돌려 보면서 낄낄거리고 웃음거리로 삼은 바 있다(…) 사실 스탈린 생전에는 소련도 북햐 못지않게 막장적인 개인 숭배와 무지막지한 공포정치가 지배하던 사회였다. 스탈린 이후에 흐루쇼프가 집권하면서 스탈린 비판이 봇물을 이루었고, 그 과정에서 그런 것들에 대한 반성과 회의가 나타났다.
그 결과 스탈린 생전의 스탈린주의와는 선을 긋고서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라는 것을 주장하게 되었고, 그 일환으로 스탈린 개인 숭배의 산물들을 갖다가 청산하는 과정에서, 자기네들이 불과 몇 년 전까지 하던 걸 강도만 높여 갖고[32] 그대로 반복하는 북한을 갖다가 낄낄거리며 까게 된 것이다. 거기에 결정타를 먹인 건 스탈린 생전의 스탈린주의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권력 세습에 있다.
대체로 이쪽에서는 주체사상을 권력 세습을 정당화하는 봉건주의라며 비판한다. 권력을 세습하는 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조차도 실현하지 못한 전근대 봉건왕조 사회에서나 하는 것인데, 북한 그걸 하고 있으니 부르주아 민주주의에도 도달하지 못한 낙후되고 후진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스탈린주의 특유의 단계적 혁명론에 의거하여, 북한은 먼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실현하여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해야 하고, 사회주의는 그걸 완성한 후에나 실현 가능하다는 논리가 성립한다.[33][34] 실제로, 소련이 붕괴되기 전 스탈린주의를 받아들이던 시절의 남한 PD 일부는 북한에 대해 이런 입장을 취하며 NL과 입장을 달리한 바 있다.
이 점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스탈린주의적 비판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비판과 맥락을 같이한다. 북한 자본주의 체제보다 못한 중세 봉건왕조 사회라는 논리이니... 그리고 그러니까 북조선 인민 대중이 혁명을 일으켜서, 그런 중세 봉건왕조를 전복시키고, 남한이나 일본 같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며, 사회주의는 그렇게 자본주의가 고도화된 이후에야 실현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다만 스탈린 생전에도 소련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을 이상하게 곡해하여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용도로 선전하기는 했을지언정[35], 자기네들이 왜곡하기 전의 원판인 마르크스나 레닌이 아예 송두리째 부정한 개인의 의지와 노오력이라는 카드를 다시 꺼내들지는 않았다. 마르크스나 레닌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36] 기계적 유물론[37]으로 왜곡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아예 유물론 자체를 폐기하고 관념론을 채택하려는 시도는 소련과 동구권의 스탈린주의 내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모든 스탈린주의자들이 북조선 체제와 주체사상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아니어서, 대놓고 김일성 일가와 뜻을 완벽히 같이 하거나 숭배하지는 않지만 북조선 체제를 모종의 사회주의 체제로 간주하고, 북조선의 세습 권력이 사회주의 실현을 위하여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현재도 활동 중인 전국 노동자 정치 협회(노정협). 이쪽은 반스탈린주의, 트로츠키주의 계열의 북조선 체제에 대한 비판이 우익과 미국 제국주의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깐다(…) [38][39]
결국 스탈린주의자들의 입장은 북한의 김일성 일가를 봉건 왕조 사회의 지배자들로 보느냐, 아니면 소련이나 중국에서와 같은 국가 관료로 보느냐에 따라서 갈린다고 요약할 수 있다. 전자일 경우에는 (사회주의의 선행 조건인)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정착과 발전을 위해 시급히 타도해야 할 대상, 후자일 경우에는 사회주의 체제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할 대상이 된다.
그 결과 스탈린 생전의 스탈린주의와는 선을 긋고서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라는 것을 주장하게 되었고, 그 일환으로 스탈린 개인 숭배의 산물들을 갖다가 청산하는 과정에서, 자기네들이 불과 몇 년 전까지 하던 걸 강도만 높여 갖고[32] 그대로 반복하는 북한을 갖다가 낄낄거리며 까게 된 것이다. 거기에 결정타를 먹인 건 스탈린 생전의 스탈린주의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권력 세습에 있다.
대체로 이쪽에서는 주체사상을 권력 세습을 정당화하는 봉건주의라며 비판한다. 권력을 세습하는 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조차도 실현하지 못한 전근대 봉건왕조 사회에서나 하는 것인데, 북한 그걸 하고 있으니 부르주아 민주주의에도 도달하지 못한 낙후되고 후진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스탈린주의 특유의 단계적 혁명론에 의거하여, 북한은 먼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실현하여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해야 하고, 사회주의는 그걸 완성한 후에나 실현 가능하다는 논리가 성립한다.[33][34] 실제로, 소련이 붕괴되기 전 스탈린주의를 받아들이던 시절의 남한 PD 일부는 북한에 대해 이런 입장을 취하며 NL과 입장을 달리한 바 있다.
이 점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스탈린주의적 비판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비판과 맥락을 같이한다. 북한 자본주의 체제보다 못한 중세 봉건왕조 사회라는 논리이니... 그리고 그러니까 북조선 인민 대중이 혁명을 일으켜서, 그런 중세 봉건왕조를 전복시키고, 남한이나 일본 같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며, 사회주의는 그렇게 자본주의가 고도화된 이후에야 실현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다만 스탈린 생전에도 소련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을 이상하게 곡해하여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용도로 선전하기는 했을지언정[35], 자기네들이 왜곡하기 전의 원판인 마르크스나 레닌이 아예 송두리째 부정한 개인의 의지와 노오력이라는 카드를 다시 꺼내들지는 않았다. 마르크스나 레닌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36] 기계적 유물론[37]으로 왜곡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아예 유물론 자체를 폐기하고 관념론을 채택하려는 시도는 소련과 동구권의 스탈린주의 내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모든 스탈린주의자들이 북조선 체제와 주체사상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아니어서, 대놓고 김일성 일가와 뜻을 완벽히 같이 하거나 숭배하지는 않지만 북조선 체제를 모종의 사회주의 체제로 간주하고, 북조선의 세습 권력이 사회주의 실현을 위하여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현재도 활동 중인 전국 노동자 정치 협회(노정협). 이쪽은 반스탈린주의, 트로츠키주의 계열의 북조선 체제에 대한 비판이 우익과 미국 제국주의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깐다(…) [38][39]
결국 스탈린주의자들의 입장은 북한의 김일성 일가를 봉건 왕조 사회의 지배자들로 보느냐, 아니면 소련이나 중국에서와 같은 국가 관료로 보느냐에 따라서 갈린다고 요약할 수 있다. 전자일 경우에는 (사회주의의 선행 조건인)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정착과 발전을 위해 시급히 타도해야 할 대상, 후자일 경우에는 사회주의 체제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할 대상이 된다.
4.2. 지도자 원리와 정신론[편집]
인민대중은 혁명의 주인이고 동력이지만 저절로 혁명과 건설에서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인민대중은 옳은 지도에 의하여서만 혁명과 건설에서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지키고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주체사상 같은 의지드립 운운, 정신력 운운은 빼도 박도 못하는 극단적인 관념론적 사고방식으로서 나치 독일이나 일본군이 매우 질질 빨았던 정신론의 일종이며 당연하게도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에서는 극혐하는 것이다.
또한 수령론은 뻔하게도 지도자 원리의 영향이다.
주체사상이 '철학적으로 대단한 의의'를 지녔다는 평가도 있지만,
황장엽은 수령절대주의를 제외한 주체사상을 뭔가 대단한 업적인것처럼 자화자찬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령절대주의를 제외한' 주체사상 역시 낭만주의 시대부터 계속나타났던 기존의 흔한 정신론의 재탕에 불과하고, 세계 철학계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4.3. 일제의 영향[편집]
과거 일본 제국은 한반도를 35년동안 지배했던 나라이기 때문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해방이 되자 친일파 숙청과 일제 잔재 청산을 철저히 했다고 주장해 왔다. 북한은 이와 함께 김일성과 김정일 가계를 항일 투쟁의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다.
그러나 미국 코네티컷 대학교의 김일평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최고의 지도자로 군림하고 주민들에게 김부자에 대한 충성과 희생을 강요하는 북한의 주체사상은 오직 덴노의 권위 아래 모든 국민이 복종해야 했던 일본의 천황숭배와 제국주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 일본에서는 학교 교실마다 덴노의 어진(御眞)을 걸어두고 조회시간마다 묵념을 하였다. 북한에서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을 고이 모셔두는 것이 인민의 의무나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교실에까지 걸어놓고 묵념한다.[41] 심지어 룡천역 폭발사고 당시, 불바다가 된 학교에서 사진을 구하다 죽은교사가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학생을 구하다 죽은 게 아니라 사진을 구하다 죽은거다.[42] 더욱 심각한 것은 구호나무라는, 김일성 찬양문을 새겨놓은 나무를 지킨답시고 북한 해군 육전대 병사를 동원했다가 17명이 불 타 죽었다. 김일성 사진도, 친필도 아닌 나무에 새긴 김일성 찬양문[43] 때문에 사람이 죽은 것이다. 이쯤가면 일본제국과 비교하기도 무색한 지경이다.
1945년 9월까지 일본에서는 황실에 대한 사소한 비판을 하는 자에게조차 징역형을 내렸다.[44] 지금까지도 북한에서 김씨 일가에 대한 일체의 언급을 하는 자들을 요덕 같은 정치범수용소에 감금해오고 있다.
북한 미사일 부대에서 10여년간 복무한 바 있는 탈북자 김춘애 씨는 북한의 군대에는 상명하달의 명령을 듣는 것 외에는 의사전달 방식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는 완전한 위계질서 하에 덴노의 권위를 철처히 떠받들었던 일본 제국주의의 군대와 흡사한 모습이다.
일본에서는 제국의 신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경찰을 키우고 헌병을 곳곳에 배치하는가 하면, 심지어 특별고등경찰, 약칭 특고라는 비밀경찰집단을 만들기까지 하였다. 특고는 ‘불순분자’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체포하고 고문을 일삼았다.
북한 역시 사회안전부가 인민보안성으로 승격하였고 일종의 경찰에 해당하는 안전원과 더불어 경무원[45]들을 배치하여 주민들을 통제하고 있다. 특히 경무원들에게는 살인 면허가 주어져 항상 따발총을 들고 다닌다.[46] 또 모두 알다시피 국가안전보위부라는 KGB 뺨치는 조직을 만들어 반동분자를 수용소나 교화소에 처넣는다.
북한군의 군가에도 일본군의 것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 발견된다. 일본 군가 ‘천황을 위하여’를 ‘장군님을 위하여’로 가사만 조금 바꾼 북한 군대가 불리고 있다. 다시 말해 대동아 공영을 외치면서 아시아인들의 주권을 짓밟았던 일본군의 군가를 인민을 위한다는 북한군이 부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저서인 ‘김정일의 요리사'에서 김정일이 주도한 술자리에서 김정일과 그 측근들이 일본 군가를 자주 불러 놀라기도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북한의 직장이나 기업소에서도 일본식 통치 방식이 일본보다 더 엄한 형태로 남아 있기는 마찬가지다. 북한의 직장은 최고 지도자에게 절대 복종하는 충성스러운 노동자를 위해 철저한 서열식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미국 코네티컷 대학교의 김일평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일성-김정일 체제에 대해 반대하는 무리는 모두 숙청하고 주민들을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는 북한 사회의 모습은 결국 북한이 청산했다고 주장하는 일제의 잔재가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의 근원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 코네티컷 대학교의 김일평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최고의 지도자로 군림하고 주민들에게 김부자에 대한 충성과 희생을 강요하는 북한의 주체사상은 오직 덴노의 권위 아래 모든 국민이 복종해야 했던 일본의 천황숭배와 제국주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 일본에서는 학교 교실마다 덴노의 어진(御眞)을 걸어두고 조회시간마다 묵념을 하였다. 북한에서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을 고이 모셔두는 것이 인민의 의무나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교실에까지 걸어놓고 묵념한다.[41] 심지어 룡천역 폭발사고 당시, 불바다가 된 학교에서 사진을 구하다 죽은교사가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학생을 구하다 죽은 게 아니라 사진을 구하다 죽은거다.[42] 더욱 심각한 것은 구호나무라는, 김일성 찬양문을 새겨놓은 나무를 지킨답시고 북한 해군 육전대 병사를 동원했다가 17명이 불 타 죽었다. 김일성 사진도, 친필도 아닌 나무에 새긴 김일성 찬양문[43] 때문에 사람이 죽은 것이다. 이쯤가면 일본제국과 비교하기도 무색한 지경이다.
1945년 9월까지 일본에서는 황실에 대한 사소한 비판을 하는 자에게조차 징역형을 내렸다.[44] 지금까지도 북한에서 김씨 일가에 대한 일체의 언급을 하는 자들을 요덕 같은 정치범수용소에 감금해오고 있다.
북한 미사일 부대에서 10여년간 복무한 바 있는 탈북자 김춘애 씨는 북한의 군대에는 상명하달의 명령을 듣는 것 외에는 의사전달 방식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는 완전한 위계질서 하에 덴노의 권위를 철처히 떠받들었던 일본 제국주의의 군대와 흡사한 모습이다.
일본에서는 제국의 신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경찰을 키우고 헌병을 곳곳에 배치하는가 하면, 심지어 특별고등경찰, 약칭 특고라는 비밀경찰집단을 만들기까지 하였다. 특고는 ‘불순분자’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체포하고 고문을 일삼았다.
북한 역시 사회안전부가 인민보안성으로 승격하였고 일종의 경찰에 해당하는 안전원과 더불어 경무원[45]들을 배치하여 주민들을 통제하고 있다. 특히 경무원들에게는 살인 면허가 주어져 항상 따발총을 들고 다닌다.[46] 또 모두 알다시피 국가안전보위부라는 KGB 뺨치는 조직을 만들어 반동분자를 수용소나 교화소에 처넣는다.
북한군의 군가에도 일본군의 것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 발견된다. 일본 군가 ‘천황을 위하여’를 ‘장군님을 위하여’로 가사만 조금 바꾼 북한 군대가 불리고 있다. 다시 말해 대동아 공영을 외치면서 아시아인들의 주권을 짓밟았던 일본군의 군가를 인민을 위한다는 북한군이 부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저서인 ‘김정일의 요리사'에서 김정일이 주도한 술자리에서 김정일과 그 측근들이 일본 군가를 자주 불러 놀라기도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북한의 직장이나 기업소에서도 일본식 통치 방식이 일본보다 더 엄한 형태로 남아 있기는 마찬가지다. 북한의 직장은 최고 지도자에게 절대 복종하는 충성스러운 노동자를 위해 철저한 서열식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미국 코네티컷 대학교의 김일평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일성-김정일 체제에 대해 반대하는 무리는 모두 숙청하고 주민들을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는 북한 사회의 모습은 결국 북한이 청산했다고 주장하는 일제의 잔재가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의 근원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4.4. 전근대적 전제왕조의 영향[편집]
일제의 잔재를 청산했다는 북한의 주장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데, 남한의 초기 사법제도가 상당히 일제 사법제도를 모방했고[47] 일제 때 사법계에서 활약했던 인물들이 남한의 사법제도의 큰 틀을 만드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은 일제의 사법제도를 완전히 청산하고 옛날 전제 왕조보다도 못한 시절로 돌아갔다. 즉, 반정부 운동했을 시에 '니 죄를 니가 알렷다' 한마디면 인생 나가리되는, 옛날 전제 왕조보다 못한 시절로 회귀한 것이다.[48] 또한 조선 혹은 그 이전시대의 연좌제까지 그대로 부활시켰다.
그리고 일제의 잔재만이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의 근원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전세계에서 우상화가 없었던 왕들은 한 명도 없었고, 사이비 종교는 물론 모든 종교 역시 우상화를 내포하고 있다.[49]
그리고 일제의 잔재만이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의 근원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전세계에서 우상화가 없었던 왕들은 한 명도 없었고, 사이비 종교는 물론 모든 종교 역시 우상화를 내포하고 있다.[49]
4.5. 악의적으로 왜곡시킨 기독교 교리[편집]
주체사상은 기독교 세계관에서 예수를 빼고 그 자리에 김일성을 집어넣었다고 할 수 있다.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예수를 믿으면 육체적 생명과는 별개의 새 생명을 얻게 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주체사상에서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얻어지는 새 생명이라는 기독교적 논리를 가져다가 김일성에게 충성하면 새 생명이 주어진다는 이론으로 바꿔치기를 했다. 공산주의를 진작에 포기하고 국수주의 파시즘으로 돌아선 주제에 이 놈들이 종교를 금지하고 처벌했던 이유가 자기네 수령숭배사상과 충돌할까봐 그랬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을 정도. 북한에서는 인간은 육체적 생명과 사회적, 정치적 생명이 있다고 하면서 육체적 생명은 부모가 주지만 사회적, 정치적 생명은 당과 수령이 준다고 떠드는데 중요한건 육체적 생명보다 사회적, 정치적 생명이 위라고 하는거다.
거기에 '10계명'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숭배 행위는 일종의 예배 의식처럼 순서를 갖추고 있다.
북한에서 대사까지 지내다 탈북한 외교관 고영환에 의하면 주체사상은 기독교에서 많은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도 김일성의 친가와 외가는 모두 기독교 집안이었는데, 김일성의 어머니 이름은 베드로에서 따온 강반석이며 기독교 중 개신교의 한 종파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자였다. 사실 일제강점기 시대 김일성의 고향인 평양은 '조선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정도로 개신교의 세가 강한 지역이었다. 평양뿐 아니라 함흥, 원산 등 이북지역의 기독교 전도율이 이남에 비해 훨씬 높았다.[50]
사실 이러한 현상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와 주체사상이 모두 플라톤 사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의 유대교 및 기독교는 크든 작든 플라톤적 개념과 깊숙히 엮여있는데, 기독교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가 플라톤적 철인 왕, 혹은 '지혜'를 비롯한 덕성에 해당하는 위치로 해석한다. 이를테면 요한복음서의 경우 시작부터 스토아적 개념에서 나온 로고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며, 본문 전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 빛 등에 대응되는 '철인 왕'으로 고백한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51]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군주 숭배의 종교는 아니기에 당대의 군주제와 공존할 수 있으면서도 종교적 군주숭배와는 선을 그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론>에서 설명한 개념이 이후 기독교적 국가관의 (최소한 서방에서는) 기초가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류의 역사의 전개를 '하느님의 도시'와 '인간의 도시'라는 두개의 면모로 파악하였다. 여기서의 도시는 도시국가에 가까운 개념인데, 국가, 혹은 더 나아가 문명이라는 의미로도 파악할 수 있다. <신국론>은 그 어떤 '인간의 도시'도 영원불멸할 수는 없고, 진정한 의미에서 제대로 된 완전한 도시는 '하느님의 도시' 뿐이라 주장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근동을 호령하던 고대의 강대한 제국들도, 킹왕짱 강한 로마 제국도 영원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로마의 황제이든 페르시아의 왕중왕이든 이집트의 파라오든 '언젠가는 망할' 불완전한 집단의 수장에 불과한 것으로 설명된다. 그리스도인의 보호자 등등의 수식어구는 붙여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언젠가는 망할' 나라의 수장이라는건 변하지 않는다. 반면 '하느님의 도시'와 그곳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도시(국가)의 진정한 왕이며, 지상의 교회는 '하느님의 도성'의 지상 순례자들의 집단으로 해석된다. 즉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이 이데올로기는 '하느님의 도시 = 진정한 도시 >>>>>넘사벽>>>>인간의 도시 = 불완전한 짝퉁들'로 설명하게 되면서, 군주 숭배와는 명확히 선을 긋게 되었다. 물론 이 '하느님의 도시'라는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상에서 군사력의 우위를 쥐고 있는건 군주들이기에, 교황과 군주가 이루는 균형이 탄생한 것이다.
문제는 주체사상의 경우인데, 주체사상은 이러한 플라톤 사상의 또 다른 변종으로서 철인이 김씨 일가로 바뀌어 있다. 게다가 신국론적 논리에서는 '지상 순례자'들의 집단, 다시 말해 교회의 수장인 교황은 군주와는 다른 사람이다. 게다가 '하느님의 도시'의 수장인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의 사람이 아니다. 반면 주체사상에서는 김씨 일가의 수장이 군주+교황+예수의 역을 모두 겸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굴에 갇힌 상태인 인민들은 이데아의 세계를 깨달은 위대한 철인인 혹부리우스의 령도를 따라서 이데아의 세계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 주체사상의 결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모든 법률과 헌법보다 우위에 있는 샤리아같은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같은 엉터리 강령과 쓰레기같은 헌법이 있고, 헌금(세금)을 거두면서 찬송가(김씨 왕조 찬양가)를 부르고, 유일신(김씨 왕조) 숭배사상이 있으며, 금수산기념궁전을 성지로 삼고 있고, 김씨 일가의 초상화를 우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사이비 종교로 보는 견해가 있다. 실제로 북한 주민들은 현재도 기독교인들의 주일 예배처럼 매주 주말마다 생활총화를 갖고 김씨 3부자에 대한 충성심 고백과 자아비판(간증) 등을 하고 있으며, 북한 조선중앙TV에서도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구절을 김일성의 일화와 곁들여 해설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마치 기독교방송의 성경구절 해설 프로그램을 그대로 빼닮았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어디까지나 외형상의 유사점을 근거로 한 도식적 접근일 뿐이며, 이것을 근거로 섣불리 '주체사상=종교'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아무리 김일성 일가에 대한 병맛스러운 개인숭배 선전과 맹목적 충성 요구가 주체사상의 핵심 레퍼토리라지만, 그 어느 부분에서도 김일성 일가를 일반적인 종교에서 숭배, 예배의 대상이 되는 초월적 존재로까지 격상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은 사상 자체는 관념론적일지언정, 신의 존재나 사후세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맹목적 '충성심'과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앙'은 외형상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엄연히 다른 것이다. 주체사상을 내세우는 북조선 관료집단이 김일성 일가를 아무리 똥구멍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빨고 또 빨도록 강요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 하여 신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김일성 일가의 절대권력을 확립하기 위해 기독교적 모티프나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스킬들을 가져다 썼다'는 진술은 유효하지만, 주체사상을 '기독교를 패러디하여 만든 모종의 사이비 종교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주체사상에 대한 논리적 비판이 아닌 맹목적 공격과 악마화라는 오류로 빠져들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굳이 사이비 종교로 규정하지 않더라도 주체사상에 대한 이성적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안 그러면 그건 더 이상 주체사상이 아닐 것이다.
골 때리는 것은 김일성 본인이 외형상으로는 무신론자 코스프레를 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모종의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정황들이 이따금 포착되었다는 점이다. 가령 1981년에 남한의 김성락 목사가 바이블과 찬송가 책을 들고 북조선을 방문했을 때 식사 자리에서 기도를 부탁했다든가, 말년에 수술을 앞두고 기독교식 기도를 했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거기에 '10계명'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숭배 행위는 일종의 예배 의식처럼 순서를 갖추고 있다.
북한에서 대사까지 지내다 탈북한 외교관 고영환에 의하면 주체사상은 기독교에서 많은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도 김일성의 친가와 외가는 모두 기독교 집안이었는데, 김일성의 어머니 이름은 베드로에서 따온 강반석이며 기독교 중 개신교의 한 종파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자였다. 사실 일제강점기 시대 김일성의 고향인 평양은 '조선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정도로 개신교의 세가 강한 지역이었다. 평양뿐 아니라 함흥, 원산 등 이북지역의 기독교 전도율이 이남에 비해 훨씬 높았다.[50]
사실 이러한 현상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와 주체사상이 모두 플라톤 사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의 유대교 및 기독교는 크든 작든 플라톤적 개념과 깊숙히 엮여있는데, 기독교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가 플라톤적 철인 왕, 혹은 '지혜'를 비롯한 덕성에 해당하는 위치로 해석한다. 이를테면 요한복음서의 경우 시작부터 스토아적 개념에서 나온 로고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며, 본문 전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 빛 등에 대응되는 '철인 왕'으로 고백한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51]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군주 숭배의 종교는 아니기에 당대의 군주제와 공존할 수 있으면서도 종교적 군주숭배와는 선을 그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론>에서 설명한 개념이 이후 기독교적 국가관의 (최소한 서방에서는) 기초가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류의 역사의 전개를 '하느님의 도시'와 '인간의 도시'라는 두개의 면모로 파악하였다. 여기서의 도시는 도시국가에 가까운 개념인데, 국가, 혹은 더 나아가 문명이라는 의미로도 파악할 수 있다. <신국론>은 그 어떤 '인간의 도시'도 영원불멸할 수는 없고, 진정한 의미에서 제대로 된 완전한 도시는 '하느님의 도시' 뿐이라 주장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근동을 호령하던 고대의 강대한 제국들도, 킹왕짱 강한 로마 제국도 영원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로마의 황제이든 페르시아의 왕중왕이든 이집트의 파라오든 '언젠가는 망할' 불완전한 집단의 수장에 불과한 것으로 설명된다. 그리스도인의 보호자 등등의 수식어구는 붙여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언젠가는 망할' 나라의 수장이라는건 변하지 않는다. 반면 '하느님의 도시'와 그곳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도시(국가)의 진정한 왕이며, 지상의 교회는 '하느님의 도성'의 지상 순례자들의 집단으로 해석된다. 즉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이 이데올로기는 '하느님의 도시 = 진정한 도시 >>>>>넘사벽>>>>인간의 도시 = 불완전한 짝퉁들'로 설명하게 되면서, 군주 숭배와는 명확히 선을 긋게 되었다. 물론 이 '하느님의 도시'라는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상에서 군사력의 우위를 쥐고 있는건 군주들이기에, 교황과 군주가 이루는 균형이 탄생한 것이다.
문제는 주체사상의 경우인데, 주체사상은 이러한 플라톤 사상의 또 다른 변종으로서 철인이 김씨 일가로 바뀌어 있다. 게다가 신국론적 논리에서는 '지상 순례자'들의 집단, 다시 말해 교회의 수장인 교황은 군주와는 다른 사람이다. 게다가 '하느님의 도시'의 수장인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의 사람이 아니다. 반면 주체사상에서는 김씨 일가의 수장이 군주+교황+예수의 역을 모두 겸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굴에 갇힌 상태인 인민들은 이데아의 세계를 깨달은 위대한 철인인 혹부리우스의 령도를 따라서 이데아의 세계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 주체사상의 결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모든 법률과 헌법보다 우위에 있는 샤리아같은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같은 엉터리 강령과 쓰레기같은 헌법이 있고, 헌금(세금)을 거두면서 찬송가(김씨 왕조 찬양가)를 부르고, 유일신(김씨 왕조) 숭배사상이 있으며, 금수산기념궁전을 성지로 삼고 있고, 김씨 일가의 초상화를 우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사이비 종교로 보는 견해가 있다. 실제로 북한 주민들은 현재도 기독교인들의 주일 예배처럼 매주 주말마다 생활총화를 갖고 김씨 3부자에 대한 충성심 고백과 자아비판(간증) 등을 하고 있으며, 북한 조선중앙TV에서도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구절을 김일성의 일화와 곁들여 해설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마치 기독교방송의 성경구절 해설 프로그램을 그대로 빼닮았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어디까지나 외형상의 유사점을 근거로 한 도식적 접근일 뿐이며, 이것을 근거로 섣불리 '주체사상=종교'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아무리 김일성 일가에 대한 병맛스러운 개인숭배 선전과 맹목적 충성 요구가 주체사상의 핵심 레퍼토리라지만, 그 어느 부분에서도 김일성 일가를 일반적인 종교에서 숭배, 예배의 대상이 되는 초월적 존재로까지 격상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은 사상 자체는 관념론적일지언정, 신의 존재나 사후세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맹목적 '충성심'과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앙'은 외형상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엄연히 다른 것이다. 주체사상을 내세우는 북조선 관료집단이 김일성 일가를 아무리 똥구멍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빨고 또 빨도록 강요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 하여 신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김일성 일가의 절대권력을 확립하기 위해 기독교적 모티프나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스킬들을 가져다 썼다'는 진술은 유효하지만, 주체사상을 '기독교를 패러디하여 만든 모종의 사이비 종교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주체사상에 대한 논리적 비판이 아닌 맹목적 공격과 악마화라는 오류로 빠져들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굳이 사이비 종교로 규정하지 않더라도 주체사상에 대한 이성적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골 때리는 것은 김일성 본인이 외형상으로는 무신론자 코스프레를 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모종의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정황들이 이따금 포착되었다는 점이다. 가령 1981년에 남한의 김성락 목사가 바이블과 찬송가 책을 들고 북조선을 방문했을 때 식사 자리에서 기도를 부탁했다든가, 말년에 수술을 앞두고 기독교식 기도를 했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4.6. 모호성[편집]
주체사상은 굉장히 난해하고 복잡한 사상으로 실질적으로 애매모호한 말잔치 같은 사상이다. 사실 북한에도 '외우는' 사람은 많지만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난해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다기보다는 내부 모순이 워낙 심해 원리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한 사상에 가깝다. 그래도 그 동네에서 나름 머리 좋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일 텐데 신기할 지경. 아니 오히려 머리가 좋기에 그런 거겠지
솔직히 이해가 필요한 사상인지도 의심스럽다.그래서 모두를 세뇌시키는건가 이해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사실상 '수령과 그의 의지를 잇는 후대 통치자들에게 절대 복종하라'는 것만 잘 알면 끝인 사상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주체사상 자체는 말장난 투성이로 단지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모순을 가지고 복잡하게 만들어진 '학습 그 자체를 위한 사상'으로 추측한다. 말하자면 일부러 쓸데없이 어려운 말을 많이 써서 배우는 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게 만들어 딴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52]
실제로 1986년 지하팜플렛 강철서신으로 남한에 주체사상을 처음 전파했던 최초의 주사파 김영환(1963)도 1991년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했을때 김일성과 주체사상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작 김일성 자신은 주체사상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전혀 없어 실망했다고 한다.# 김영환은 그때부터 주체사상과 북한 체제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었다고 하며 결국 1996년 시대정신을 창간하면서 북한민주화운동가로 전향하였다.
솔직히 이해가 필요한 사상인지도 의심스럽다.
실제로 1986년 지하팜플렛 강철서신으로 남한에 주체사상을 처음 전파했던 최초의 주사파 김영환(1963)도 1991년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했을때 김일성과 주체사상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작 김일성 자신은 주체사상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전혀 없어 실망했다고 한다.# 김영환은 그때부터 주체사상과 북한 체제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었다고 하며 결국 1996년 시대정신을 창간하면서 북한민주화운동가로 전향하였다.
5. 지위[편집]
5.1. 수령론[편집]
마르크스는 철저한 유물론자였고 그래서 자본의 문제를 핵심으로 다루고 정신적인 면을 강조한 주장한 헤겔을 엄청나게 비판하였다.[54] 그 때문에 놓친 이 부분을 스탈린이 악용하여 수령론을 내세웠다. 물론 단순히 마르크스가 그 부분을 놓쳤기 때문에 스탈린이 수령론을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러시아 혁명 이후에 일어난 독일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혁명이 고립되고, 내전을 거치면서 러시아 혁명을 주도하였고 노동자 민주주의의 필수요소인 노동계급이 작살나고, 이 과정에서 극심한 경제난과 빈곤 속에 차르 시기의 지배자들이[55] 은근슬쩍 공산당에 입당하여[56] 등장한, 스탈린을 위시한 관료집단이 성장하면서 혁명이 타락하는 상황이 있었다. [57] 스탈린의 정적인 트로츠키는 물론이고 심지어 중풍으로 쓰러져서 오늘내일 하는 레닌까지도 휠체어 끌고 나와서는 관료집단 못 때려잡으면 큰일날 거라며[58]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었지만, 결국 레닌은 죽고 트로츠키는 쫓겨나면서 스탈린을 위시한 관료집단이 소련을 장악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스탈린은 관료집단을 앞세워 일국 사회주의 이론을 정립하면서 다음과 같은 공식을 내세운다.
- 인민 대중→노동 계급→노동계급의 당[59]→당 수령
위와 같은 상향식 위계 관계를 설명하자면 모든 인민의 이익은 자본 계급보다 선진 계급인 노동 계급에 의해 대표되고 노동 계급 이익은 그를 통솔하는 당인 공산당이 주도하여 만드는 것이며 공산당은 탁월한 공산주의 지도자인 수령에 의해 지도되어야 한다는 이론이다.[60] 이를 통해 스탈린에 의해 '공산주의' 체제를 이식받은 세계 공산 국가들은 '공산주의'의 원조이자 총아인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의 카리스마 하에 하나로 묶여갔다.
주체사상은 이것을 더욱 악화시켜 아예 인민 대중을 대표하기 위한 수령이 아니라 사회유기체설과 결합시켜서 혁명의 뇌수이자 노동계급의 대표자인 수령이 없으면 전체 인민들의 육체적/정신적 삶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주 괴악한 논리로 변질시켜 버렸다.
5.2. 주체사상 형성과정[편집]
5.2.1. 어원[편집]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 김일성이 화성의숙 재학시절 만들었던 청년 공산주의자 모임인 타도제국주의동맹(약칭 ㅌ.ㄷ)에서 처음 주장했고 1930년 지린성 창춘에서 열린 카륜회의에서 발표한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논문에서 최초로 천명되었다고 주장하나, 이는 북한의 주장이 으레 그렇듯이 역사 왜곡이다.
최초로 주장된 것은 1950년대가 되어서 였으며, 김일성은 1955년 12월 28일 당 선전부 간부들 앞에서 '사상 사업에서 교조주의[61]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연설은 한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62]
최초로 주장된 것은 1950년대가 되어서 였으며, 김일성은 1955년 12월 28일 당 선전부 간부들 앞에서 '사상 사업에서 교조주의[61]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연설은 한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62]
우리 당 사상 사업에서 주체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다른 나라의 혁명도 아닌 바로 조선 혁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조선혁명이야말로 우리 당 사상 사업의 주체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상 사업을 반드시 조선혁명의 이익에 복종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소련공산당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나 마르크스/레닌 주의의 일반적 원리를 연구하는 것이나 다 우리 혁명을 옳게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명백히 소련과 중국 눈치 보지 말고 우리 식대로 하자는 북한식 사회주의 주장이었다. 소련 공산당에서부터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까지 멋대로 바꿔보자는 김일성 식의, 즉 김일성 주체 주장이었다. 이 시점에서 김일성의 사고방식은 이미 공산주의를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데 김일성은 외부의 간섭을 물리치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욕망으로 '조선의 특별성'을 내세우면서 '마르크스 주의'를 부정하게 된다.
자신들은 공산주의의 한계를 극복했다고 자칭했으나, 실상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지도자 원리를 이용하여 세계 인류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공산주의를 배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것이 공산주의의 탈을 쓴 파시즘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당시까지 주체사상이라는 용어는 확립되지 않았다.
1955년 연설은 주체사상을 창시하거나 한 시기가 아닌 '주체를 세우는 데 대한 문제'를 제기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 이 연설은 북한의 방향성에 큰 틀을 제시한 중요한 연설이었고 이 '주체를 세우는 데 대한 문제'를 이론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언어인 듯하다고 한다. 황장엽의 말에 따르면 당 대회 문서에도 주체사상이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았고 1961년 4차 당 대회가 끝난 뒤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5.2.2. 자주적, 창조적 노선[편집]
- 창조적 - 다른 나라의 시스템을 무조건 모방하는 것[65]을 그만두고 자기 나라의 현실에 맞는 창조적 노선을 지향한다.
5.2.2.1. 4대 기본노선[편집]
- 사상에서의 주체 - 사대주의와 교조주의를 배격하고 자기 인민의 이익, 자기 나라 혁명 실정을 반영한 자기 당 지도사상에 충실하여야 한다.
- 정치에서의 자주 - 외국의 간섭을 일체 배격하고 자주독립의 원칙을 견지한다.
- 경제에서의 자립 - 외국에의 경제적 예속을 반대하고 자체의 힘으로 자기 나라 실정에 맞는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한다.
- 국방에서의 자위 - 다른 나라의 무력에 의존치 않고 자주독립과 국가 권익을 자체 국방력으로 수호한다.
땅크와 대포와 전투기는 소련제를 쓰더라도 말이지
5.3. 천리마 운동[편집]
5.3.1. 청산리 방법[편집]
김일성이 강서군 청산리에 직접 강림하시어 현지지도하며 만든 이 방법의 특징은 "당 소속 지도 일꾼이 군중과 함께 고생해가며 일하면서 군중의 사상을 각성시키고 그들의 창조적 지혜와 적극성을 발동시켜 당 정책 관철에 혁신을 일으키도록 한다"는 것.
놀랍게도 이 방법은 한 몇 년 간은 꽤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생산이라는 목표만 가지고 채찍질을 가한 게 아닌 당 직원[67]과 함께 일하며 사상 교육을 겸하며 받아가는 관료주의의 극복과 대중의 자발적 참여와 창조성 유도라는 목적을 잘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68]
그래서 정말로 경제적으로 잘 발전되기 시작했고[69] 사회 도덕 규범도 잘 세워져 나름 괜찮은 나라가 되려고 했었다. 탈북자의 실제 증언에 의하면 한 마을 사람들끼리 문도 안 닫고 지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청산리 방법을 바탕으로 작사 및 작곡된 노래가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놀랍게도 이 방법은 한 몇 년 간은 꽤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생산이라는 목표만 가지고 채찍질을 가한 게 아닌 당 직원[67]과 함께 일하며 사상 교육을 겸하며 받아가는 관료주의의 극복과 대중의 자발적 참여와 창조성 유도라는 목적을 잘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68]
그래서 정말로 경제적으로 잘 발전되기 시작했고[69] 사회 도덕 규범도 잘 세워져 나름 괜찮은 나라가 되려고 했었다. 탈북자의 실제 증언에 의하면 한 마을 사람들끼리 문도 안 닫고 지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청산리 방법을 바탕으로 작사 및 작곡된 노래가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5.4. 주체 사상의 변질[편집]
알다시피 스탈린주의 체제는 일시적으로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는 있을지언정, 계속되는 이윤율 저하 경향[70] 때문에 그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끌고 나가기는 어렵다. 북한의 황금기도 5~6년이 한계였다. 선전과 대중동원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의 피로가 쌓여갔으며 실적은 저조해졌지만 한 번 재미를 보고 맛들린 북한은 대중 동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다.
대략 1960년대 후반부터 생산성 저하와 경제 성장 둔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북 내에서도 경제개혁 논쟁이 불거진다. "천리마" 등의 잡지를 통해서 일군의 젊은 경제학자와 당간부들이 인센티브와 독립채산제(자주관리) 등을 중심으로 한 경제개선 조치를 주장했고 헝가리와 소련의 사례가 많이 소개되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최소한 당 내에선 어느 정도의 발언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혁명전통계승, 주체사상 등을 내걸고 후계자 투쟁에서 승리하면서 이런 논쟁은 박살나고 대신 극도로 중앙집권화한 유일 수령제로 귀결되면서 하부단위에 일말의 자율성도 부여하지 앉고 3대혁명소조 운동 같은 대중 동원이 극도로 강화된다.
이 하향곡선은 김정일과 김영주가 다음 권력을 승계받기 위해 병림픽을 벌이며 더욱 가속화된다.
대략 1960년대 후반부터 생산성 저하와 경제 성장 둔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북 내에서도 경제개혁 논쟁이 불거진다. "천리마" 등의 잡지를 통해서 일군의 젊은 경제학자와 당간부들이 인센티브와 독립채산제(자주관리) 등을 중심으로 한 경제개선 조치를 주장했고 헝가리와 소련의 사례가 많이 소개되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최소한 당 내에선 어느 정도의 발언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혁명전통계승, 주체사상 등을 내걸고 후계자 투쟁에서 승리하면서 이런 논쟁은 박살나고 대신 극도로 중앙집권화한 유일 수령제로 귀결되면서 하부단위에 일말의 자율성도 부여하지 앉고 3대혁명소조 운동 같은 대중 동원이 극도로 강화된다.
이 하향곡선은 김정일과 김영주가 다음 권력을 승계받기 위해 병림픽을 벌이며 더욱 가속화된다.
5.4.1.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대북 압박[편집]
1966년 중국의 문화대혁명 바람이 북한에도 몰아쳤다. 당시 소련은 마르크스의 이상에 발맞춰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끝나간다는 과도기에 들어서 있었으나 중국 측에서는 그러한 수정주의를 비판하며 더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위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중국은 마오쩌둥 독재지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아니다.
덩샤오핑 등과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발생한 문화대혁명을 북한이 공식 지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중국이 딴지를 걸었는데[71] 이에 대해 김일성은 1966년 8월 당 기관지 로동신문을 통해 '마르크스-레닌 주의는 행동 지침에 불과하다'는 주체설을 바탕으로 중국과 소련에 대한 완전한 '사상 독립'을 선언했다.
덩샤오핑 등과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발생한 문화대혁명을 북한이 공식 지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중국이 딴지를 걸었는데[71] 이에 대해 김일성은 1966년 8월 당 기관지 로동신문을 통해 '마르크스-레닌 주의는 행동 지침에 불과하다'는 주체설을 바탕으로 중국과 소련에 대한 완전한 '사상 독립'을 선언했다.
5.4.2. 당 개편[편집]
중국의 압력을 비판한 김일성은 그 해 10월 당 중앙지도기관 직제개편을 단행했다.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에서 총비서로 명칭이 바뀌었고 당연히 총비서는 김일성. 부위원장제가 폐지되고 비서국이 새로 설치돼 담당비서제로 바뀐다. 이로써 비서국 조직비서와 조직지도부장 자리가 김일성 다음의 권력의 핵이 되었다.
5.4.3. 갑산파 숙청과 유일사상체계[편집]
5.4.3.1. 갑산파[편집]
갑산공작위원회는 항일 투쟁을 벌이던 단체로 갑산파의 리더 박금철은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그 자리가 순식간에 통째로 사라지면서 박금철은 권력을 상당수 잃었고 김일성 동생 김영주가 정치국 후보위원 및 당 조직비서 겸 조직지도부장의 자리에 임명되면서 권력 판도가 뒤바뀐다. 당시 박금철은 김일성, 최용건, 김일에 이은 당 서열 4위였다.
박금철은 이에 김일성에게 반발하였고 항일투쟁 당시의 박금철을 과대선전하는 <일편단심>이라는 영화까지 제작되었는데 김일성을 제외한 개인숭배가 용납되지 않던 시대에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이었다.
당시 갑산파는 김일성의 중공업정책을 비판하며 국방비를 줄이고 외국의 원조를 받아 인민들의 실생활 수준을 높일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경제에 관해서도 청산리 방법을 부인하면서 당의 간섭을 줄이고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당 독재를 약화시킬 만한 발언을 계속하고 있었다.
박금철은 이에 김일성에게 반발하였고 항일투쟁 당시의 박금철을 과대선전하는 <일편단심>이라는 영화까지 제작되었는데 김일성을 제외한 개인숭배가 용납되지 않던 시대에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이었다.
당시 갑산파는 김일성의 중공업정책을 비판하며 국방비를 줄이고 외국의 원조를 받아 인민들의 실생활 수준을 높일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경제에 관해서도 청산리 방법을 부인하면서 당의 간섭을 줄이고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당 독재를 약화시킬 만한 발언을 계속하고 있었다.
5.4.3.2. 유일사상체계[편집]
1967년 3월 비밀리에 당중앙위원회 회의가 열려 김일성은 갑산파의 숙청을 결정한다. 이 회의에서 처음 '유일사상체계'라는 말이 나왔다.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 것은 당 건설에서 나서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당 안에 유일적인 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지 않고서는 도대체 사상의지 통일을 보장할 수 없고 당을 전투적 조직으로 만들 수 없으며 따라서 혁명과 건설을 성과적으로 령도해 나갈 수 없다.
이 단어는 김영주가 김일성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고안한 말인데 김정일이 당 사업에 뛰어들면서 둘의 권력[72]을 얻기 위한 경쟁이 심화되었다.
5.4.3.3. 김정일 득점[편집]
황장엽의 회고록에 따르면 갑산파 주요 간부 중에는 김영주의 지인이 몇 있었다. 갑산파 선전비서 김도만과 국제비서 박용국 등. 숙청은 중견지방간부 공무원의 2/3가 공석이 될 만큼 엄청난 규모였는데 김일성의 애널써킹에 정신이 팔려있던 김영주는 자기 양 날개를 스스로 잘라낸 셈이었다. 결국 이는 자신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김정일의 서열 상승에 영향을 끼쳤고 김영주는 이후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5.4.4. 5.25 교시[편집]
5.4.4.1. 황장엽의 논문[편집]
당시 당 서기 겸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이었던 황장엽은 1966년 10월 대학창립 20주년 기념논문집에 <사회발전동력>이라는 논문을 게재한다. 논문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73]로의 과도기는 경제 시스템 수립 뿐만이 아닌 그에 상응하는 생산력으로써 우월함을 보여줄 때에만 끝난다. 남한의 경우 남북이 통일될 때에 그 과도기가 끝나며 그때까진 남북간 계급이 계속될 터이니 프롤레타리아 독재 정권은 계속 존속하여야 한다. 그리고 사회 발전에는 인텔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므로 인텔리들을 출신 성분이 아닌 사회발전기여도에 따라 평가하여야 한다.
논문 발표 후 김일성대학에서는 독창적 견해라며 높게 평가됐는데 김일성대와 경쟁 관계에 있던 중앙당학교 교장 양형섭[74]이 이를 읽고 딴지를 걸었다. 그는 황장엽의 논문이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약화시키는 수정주의 논문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2인자였던 김영주도 과도기 문제라는 민감한 글을 좋게 봐줄 수가 없었다.
5.4.4.2. 김일성의 황장엽 비판[편집]
김일성은 1967년 5월 25일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문제에 대하여'라는 연설을 통해 김영주와 황장엽의 두 대립된 이론을 모두 씹었다. 그러나 김일성이 내심 더욱 우려한 것은 논문 말미의 '인텔리 역할론'이었다. 그는 당 연설 말미에서
사회주의 사회에서 계급투쟁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되면서 형식이 바뀔 뿐이다. 지금 일부 인텔리들은 자유 운운하며 당 생활을 비롯한 조직 생활 강화에 비협조적이고 잘 참여하질 않는다. 당 간부도 그렇고 이런 애들이 당 정책을 잘 어기고 그런다. 인텔리는 늙은이든 젊은이든 자유주의와 부르조아 사상을 없애고 혁명가로 단련되기 위해 당 조직 생활 등 여러 조직 생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5.4.4.3. 북한판 문화대혁명: 도서정리사업[편집]
도서정리사업 항목 참조.
5.5. 당의 유일 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편집]
북한에선 김일성과 김정일의 교시 및 지시가 곧 법이며 이것은 기존의 어떤 법도 초월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는 일견 초법적인 권한으로 보일지 모르나 이 행위는 당의 유일 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76]에 의해 합법화되고 있다.
10대 원칙 5조 1항에 의하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를 곧 법으로 지상의 명령으로 여기고 사소한 이유나 구실도 없이 무한한 헌신성과 희생성을 발휘하여 무조건 철저히 관철해야 한다'라고 되어있다. 따라서 북한에서 김정일의 교시가 헌법이나 당 규약에 위배된다고 거부하거나 반대할 경우 해당자는 처벌을 받게 된다.
사상의 씨앗은 이미 60년대에 뿌려졌다. 중-소 분쟁과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으며 공산주의 진영의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자 북한 고위층은 '아 이거 소련만 믿고 있다가는 쿠바처럼 낙동강 오리알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긴장감을 다잡게 된다. 이러한 위기감에 체제도 강화하고 대내외적인 자주성도 드높이고자 꺼낸 카드가 주체사상이었다. 이에 1972년에는 북한에서 6차 헌법 개정이 이루어져 그야말로 헌법이 새로 제정되는 것에 가까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3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북한의 현실은... 역시 높으신 분들은 뜨거운 맛을 보기 전까지는 반성을 모른다 수십 수백 만 명이 굶어죽고 왕정에 비견될 권력이 세습되는 마당에도 이북이 조용한 걸 보니 역시 사상의 힘은 무서운 것 같다?
위의 '5.25 교시' 항목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주체사상이 확립되면서 이전까지 남한과 그 수준이 비슷하거나 일부 분야에선 오히려 남한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던[77] 북한의 모든 학문 체계는 말 그대로 박살났다. 모든 것이 김일성-김정일 유일사상 체제에 종속된 마당에 중립성과 객관성이 생명인 학문 체계가 유지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78]
10대 원칙 5조 1항에 의하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를 곧 법으로 지상의 명령으로 여기고 사소한 이유나 구실도 없이 무한한 헌신성과 희생성을 발휘하여 무조건 철저히 관철해야 한다'라고 되어있다. 따라서 북한에서 김정일의 교시가 헌법이나 당 규약에 위배된다고 거부하거나 반대할 경우 해당자는 처벌을 받게 된다.
사상의 씨앗은 이미 60년대에 뿌려졌다. 중-소 분쟁과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으며 공산주의 진영의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자 북한 고위층은 '아 이거 소련만 믿고 있다가는 쿠바처럼 낙동강 오리알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긴장감을 다잡게 된다. 이러한 위기감에 체제도 강화하고 대내외적인 자주성도 드높이고자 꺼낸 카드가 주체사상이었다. 이에 1972년에는 북한에서 6차 헌법 개정이 이루어져 그야말로 헌법이 새로 제정되는 것에 가까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3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북한의 현실은...
위의 '5.25 교시' 항목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주체사상이 확립되면서 이전까지 남한과 그 수준이 비슷하거나 일부 분야에선 오히려 남한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던[77] 북한의 모든 학문 체계는 말 그대로 박살났다. 모든 것이 김일성-김정일 유일사상 체제에 종속된 마당에 중립성과 객관성이 생명인 학문 체계가 유지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78]
6. 대한민국에서의 상태[편집]
남한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극도로 높아졌고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의 존재로 인해 주체사상이 뿌리내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사실 이 시기엔 단순히 정부에 쓴소리하는 수준도 빨갱이로 매도당하는 때였는데 주체사상이 뿌리내릴 일이 있었던 것 자체가 이상한 상황이었던 것. 다만 일부 학자들이나 소수의 운동권들 사이에서 존재 자체만 암암리에 전해지는 수준이었다.
남한에서 북한식 사회주의, 다시 말해 김일성과 그 일파를 추종하는 재야 운동권은 소수지만 언제나 존재했긴 했다. 이는 남한 운동권의 흐름상 사회주의가 유입되기 어려웠기 때문에 크게 확산될 수 없었던 것이다. 1970년대까지의 운동권은 오로지 매판자본 비판 수준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것.[79] 1970년대가 다 지날 때까지 운동권들의 입장은 김일성의 항일 운동 경력이나 정통성을 인정하는 정도였지 김일성의 학문적인 성과라든가 노작들을 숭배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한국의 스탈린정도로 평가하는 수준. 하긴 주체사상 자체가 스탈린주의 표절에 가깝다 과거 20세기 국제주의 운동들이 소련을 '좀 이상하긴 하지만 어쨌든 사회주의 국가'라고 실드치던 모습과 비슷하다.[80] 이 시기의 북한 관련 조직 사건은 통일혁명당 사건이 있다. 이 당시에는 북한의 남파 간첩과 연계가 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10월 유신 이후 대한민국의 사회가 강력한 반공 체제로 전환되면서 망했어요.
아무튼 이 시기의 운동권들은 주체사상과는 거리가 있다.주체사상이 발명되기 전부터 활동하던 사람들도 있으니 당연하지
80년대 들어 주체사상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1986년 봄에 김영환 저작 <강철서신>이 배포되면서 자생적 종북 세력이 등장한 것. 이들은 "미지의 세계"였던 북한에 대해 단순한 호기심 반, 동경심 반으로 북한 방송을 들으며 북한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생각보다 북한이 상당히 개발된 현대적인 국가[81]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반공주의 교육에 대한 반동으로 주체사상으로 전환하게 된다. 까가 빠를 양산 이들은 대학 내 지하조직들을 통해 전파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기존의 민족주의적 기풍과 결합한 NLPDR 이론이 80~90년대 운동권을 풍미하였으며 이들을 주사파라고 한다. 이들은 앞서 말한 대로 북한과의 연계가 없었고 북한과의 연계는 나중이 되어야 생겼다고 한다.
80년대 소위 '강철서신'으로 불리우는 일련의 불쏘시개 저작들로 주체사상 도입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던 김영환조차 91년이 되어서야 실제로 북한에 가봤다고 한다. 주사파와 북한의 연계가 얼마나 없었는지에 대한 하나의 일화로 주사파에게 고정 간첩이 접근했는데 '우리의 북한쨩이 이렇게 치졸하게 남파 간첩 같은 거 보낼 리 없다. 안기부의 간첩이다'라며 이 간첩을 안기부(국정원의 전신)에 신고한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북한 관련 저작물이나 라디오 녹음 테잎을 돌려 들으면서 열심히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것(…). 이들의 존재에 북한 당국도 놀랐다(…)고 한다. 참고로 이 사건은 민혁당 사건 참조.
이 같은 사례를 보면 주체사상은 강력한 '사상 무기'였던 것은 틀림없다. 이는 사실 의도한 바는 아니고 소 뒷 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거나 다름 없는 수준이기는 한데, 일단 그 내용은 실존주의, 낭만주의 짝퉁이지만 다른 공산주의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주체사상의 존재는 국민을 억압하는 군사독재정권에 반감을 가진 청년들에게 상당히 '흥미'를 불러일으켰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북에서 자기들 스스로 사상을 만들어냈다고 선전하면서 기존에 사회에 깔려 있던 '민족주의 자주의식'과 쉽게 호응을 이룰 수 있었다. 즉, 대학생들이 "우리 민족만의 사상이 있었네?"라고 착각하게 되었다는 것. 물론 실상은 정신승리적 낭만주의의 짝퉁에 불과하여 별다른 값어치가 없지만 군부독재에 대한 반감과 어릴때부터 주입식으로 키워진 반일의식, 민족주의 정서가 어우러지면서 민족자주를 외치는 북한의 선전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 결과 학생운동이 결과 민족주의의 주화입마에 걸리게 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신승리적인 낭만주의가 가지는 보편적인 호소력에 있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정신승리론은 시크릿 류의 자기개발서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시장성(?)은 확보하고 있다. 현대, 특히 여가가 많은 대학생은 공허함을 느끼기 쉽고 뭔가 그럴듯한 소리로 철학적 빈곤함을 채우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이들은 주로 주체사상에서 '품성론'과 '수령론'을 받아들여 비판과 논쟁의식만 가득찬 지하서클 중심 학생운동권에 내리꽂아 의장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대중운동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에서 갈라서면서 민주노동당 당내 주사파들의 횡포를 분당 이유 중 하나로 들었다. 흠좀무.
주사파는 현재도 존재하는 걸로 추정이 된다. 하지만 1996년 한총련 사태 이후 세력이 꺾이기 시작하여 97년 두 차례 구타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거기에 한총련에서 많은 단체[82]가 떨어져 나가면서 현재는 세력이 미미한 상태긴 하다. 게다가 남한 경제가 발전하고 북한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대부분의 주사파가 전향을 했으며 남아있는 주사파들도 자주민보급이 아닌 이상 주체사상을 대놓고 말하지는 않고 있다. 위에 나온 주체사상 도입의 선구자 김영환도 북한을 다녀오곤 북한의 모습에 실망하곤 전향하여 뉴라이트[83] 활동을 하고 있다고.
참고로 앞서 언급했다시피 주체사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 황장엽이 탈북한지라 북한으로선 그를 껄끄럽게 생각하는 듯. 실제로 2010년 4월 20일 간첩이 황장엽을 암살미수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조금 웃기는 점은 황장엽의 주체사상도 남한 쪽에서 보기엔 그다지 민주주의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84] 그는 남쪽으로 내려온 후 "3권 분립을 넘어서 인민의 정치 향상을 돕는 부가 추가되어야 한다"는 발언이나 사회유기체설을 옹호하는 발언들을 여러 차례 하면서 자신의 주체사상도 결국 김일성이란 한 개인을 엘리트 층으로 바꾼 차이밖에 없지 않느냐라는 비판을 샀다.
여담이지만 흔히 남쪽의 진보 세력들을 한데 묶어서 주사파라고 보는 경향이 주로 보수 세력 사이에 만연한데 물론 여전히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세력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는 자기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엄청난 병크에 속한다. 그러니 아무나 붙잡고 주사파라고 말하는 병크는 저지르지 말자. 오히려 주체사상은 수령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말한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전제하에 정치, 경제적 불평등과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없애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주장하는 진보, 좌파와는 정반대 개념이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진보 진영에서 자초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멀리 갈 것도 없이 2012년 총선에서만 해도 노회찬, 유시민, 심상정 등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진보 인사들이 사상의 계열이 달라서 갈라져 나온 뒤에 또다시 진보 세 확장을 위해 NL계열이 득세했던 민주노동당과 합당하여 통합진보당을 창당했으며 제1야당인 민주당 또한 통합진보당과 연대하여 총선을 치른 탓에 진보 세력이 주사파와 한 묶음으로 인식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뒤 유시민, 노회찬, 심상정 등은 결국 NL과 격렬히 갈등을 겪다가 폭력사태 이후 정의당으로 다시 갈라져나왔지만.
이후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에서 통진당이 해산되어 헌법상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기본정책, 기본정책과 유사하거나 동일한 취지를 내세우는 대체정당의 창당이 원천적으로 금지되었기에 더이상 주체사상을 들고나오는 정당이 없게되었다.
남한에서 북한식 사회주의, 다시 말해 김일성과 그 일파를 추종하는 재야 운동권은 소수지만 언제나 존재했긴 했다. 이는 남한 운동권의 흐름상 사회주의가 유입되기 어려웠기 때문에 크게 확산될 수 없었던 것이다. 1970년대까지의 운동권은 오로지 매판자본 비판 수준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것.[79] 1970년대가 다 지날 때까지 운동권들의 입장은 김일성의 항일 운동 경력이나 정통성을 인정하는 정도였지 김일성의 학문적인 성과라든가 노작들을 숭배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한국의 스탈린정도로 평가하는 수준.
아무튼 이 시기의 운동권들은 주체사상과는 거리가 있다.
80년대 들어 주체사상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1986년 봄에 김영환 저작 <강철서신>이 배포되면서 자생적 종북 세력이 등장한 것. 이들은 "미지의 세계"였던 북한에 대해 단순한 호기심 반, 동경심 반으로 북한 방송을 들으며 북한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생각보다 북한이 상당히 개발된 현대적인 국가[81]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반공주의 교육에 대한 반동으로 주체사상으로 전환하게 된다.
80년대 소위 '강철서신'으로 불리우는 일련의
이 같은 사례를 보면 주체사상은 강력한 '사상 무기'였던 것은 틀림없다. 이는 사실 의도한 바는 아니고 소 뒷 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거나 다름 없는 수준이기는 한데, 일단 그 내용은 실존주의, 낭만주의 짝퉁이지만 다른 공산주의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주체사상의 존재는 국민을 억압하는 군사독재정권에 반감을 가진 청년들에게 상당히 '흥미'를 불러일으켰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북에서 자기들 스스로 사상을 만들어냈다고 선전하면서 기존에 사회에 깔려 있던 '민족주의 자주의식'과 쉽게 호응을 이룰 수 있었다. 즉, 대학생들이 "우리 민족만의 사상이 있었네?"라고 착각하게 되었다는 것. 물론 실상은 정신승리적 낭만주의의 짝퉁에 불과하여 별다른 값어치가 없지만 군부독재에 대한 반감과 어릴때부터 주입식으로 키워진 반일의식, 민족주의 정서가 어우러지면서 민족자주를 외치는 북한의 선전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 결과 학생운동이 결과 민족주의의 주화입마에 걸리게 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신승리적인 낭만주의가 가지는 보편적인 호소력에 있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정신승리론은 시크릿 류의 자기개발서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시장성(?)은 확보하고 있다. 현대, 특히 여가가 많은 대학생은 공허함을 느끼기 쉽고 뭔가 그럴듯한 소리로 철학적 빈곤함을 채우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이들은 주로 주체사상에서 '품성론'과 '수령론'을 받아들여 비판과 논쟁의식만 가득찬 지하서클 중심 학생운동권에 내리꽂아 의장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대중운동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에서 갈라서면서 민주노동당 당내 주사파들의 횡포를 분당 이유 중 하나로 들었다. 흠좀무.
주사파는 현재도 존재하는 걸로 추정이 된다. 하지만 1996년 한총련 사태 이후 세력이 꺾이기 시작하여 97년 두 차례 구타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거기에 한총련에서 많은 단체[82]가 떨어져 나가면서 현재는 세력이 미미한 상태긴 하다. 게다가 남한 경제가 발전하고 북한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대부분의 주사파가 전향을 했으며 남아있는 주사파들도 자주민보급이 아닌 이상 주체사상을 대놓고 말하지는 않고 있다. 위에 나온 주체사상 도입의 선구자 김영환도 북한을 다녀오곤 북한의 모습에 실망하곤 전향하여 뉴라이트[83] 활동을 하고 있다고.
참고로 앞서 언급했다시피 주체사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 황장엽이 탈북한지라 북한으로선 그를 껄끄럽게 생각하는 듯. 실제로 2010년 4월 20일 간첩이 황장엽을 암살미수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조금 웃기는 점은 황장엽의 주체사상도 남한 쪽에서 보기엔 그다지 민주주의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84] 그는 남쪽으로 내려온 후 "3권 분립을 넘어서 인민의 정치 향상을 돕는 부가 추가되어야 한다"는 발언이나 사회유기체설을 옹호하는 발언들을 여러 차례 하면서 자신의 주체사상도 결국 김일성이란 한 개인을 엘리트 층으로 바꾼 차이밖에 없지 않느냐라는 비판을 샀다.
여담이지만 흔히 남쪽의 진보 세력들을 한데 묶어서 주사파라고 보는 경향이 주로 보수 세력 사이에 만연한데 물론 여전히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세력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는 자기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엄청난 병크에 속한다. 그러니 아무나 붙잡고 주사파라고 말하는 병크는 저지르지 말자. 오히려 주체사상은 수령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말한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전제하에 정치, 경제적 불평등과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없애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주장하는 진보, 좌파와는 정반대 개념이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진보 진영에서 자초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멀리 갈 것도 없이 2012년 총선에서만 해도 노회찬, 유시민, 심상정 등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진보 인사들이 사상의 계열이 달라서 갈라져 나온 뒤에 또다시 진보 세 확장을 위해 NL계열이 득세했던 민주노동당과 합당하여 통합진보당을 창당했으며 제1야당인 민주당 또한 통합진보당과 연대하여 총선을 치른 탓에 진보 세력이 주사파와 한 묶음으로 인식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뒤 유시민, 노회찬, 심상정 등은 결국 NL과 격렬히 갈등을 겪다가 폭력사태 이후 정의당으로 다시 갈라져나왔지만.
이후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에서 통진당이 해산되어 헌법상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기본정책, 기본정책과 유사하거나 동일한 취지를 내세우는 대체정당의 창당이 원천적으로 금지되었기에 더이상 주체사상을 들고나오는 정당이 없게되었다.
6.1. 국외에서의 주체사상[편집]
어디에나 일부 변태 매니아 계층은 존재하기 마련이라, 다른 나라에도 주체사상을 연구하는 단체가 조금씩은 있긴 한것으로 파악된다. 미국, 영국, 일본을 비롯한 국가들 외에도 과거 북한이 제3세계에 외교전을 꽤나 많이 펼쳤기 때문에 비교적 여기저기 있는 편이다. 아일랜드, 영국 손군 폴리틱 평양의 주체사상탑에는 이런 단체들이 보낸 석판들이 잔뜩 붙어있다.# 그러나 이런 단체들이 막상 본국에서 특별히 인기가 있다거나 영향력이 있는가 하면 전혀 아니다. 안습. 주체사상은 전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사상[85] 중에서도 굉장히 마이너한 사상이고, 현재는 스탈린주의와 마오이즘 모두 다 개발살이 난 상황에서 개인 숭배 사상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분류된다. [86]이런 단체들은 그저 간판걸고 북한 서적 몇권 읽는거라고 쓰고 덕질이라 읽는다 말고는 하는게 전혀 없다(…). 이들은 가끔 조선중앙방송 뉴스에 등장한다. "외국의 무슨무슨 선군사상 학습모임이 조선로동당에 축전을 보내왔다"거나 "외국의 주체사상 연구회가 축전을 보내왔다"는 식으로 보도가 나가는데, 이러한 보도는 철저히 북한 내부단속을 위해 이용될 뿐, 실제로 이들은 자기들 나라에서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단, 네팔 같은 경우엔 실제로 주체사상을 당 이념으로 삼는 네팔노동자농민당이란 원내정당이 있다. 그리고 통일교를 이념으로 삼는 원내정당 역시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다른 나라보단 상황이 좀 낫다라는 뜻이지 정국을 주도적으로 이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애초에 우리나라에서 통진당이 가지는 미미한 영향력을 생각해봐라.
주체사상을 하나의 사상으로 받아들인 단체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흑표당이 있긴 하지만, 이들은 주체사상을 일종의 민족자결권이나 자주성을 강조하는 정신으로서 받아들였을 뿐[87], 수령중심주의나 김일성 우상숭배는 그냥 패스했다(…).
단, 네팔 같은 경우엔 실제로 주체사상을 당 이념으로 삼는 네팔노동자농민당이란 원내정당이 있다.
주체사상을 하나의 사상으로 받아들인 단체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흑표당이 있긴 하지만, 이들은 주체사상을 일종의 민족자결권이나 자주성을 강조하는 정신으로서 받아들였을 뿐[87], 수령중심주의나 김일성 우상숭배는 그냥 패스했다(…).
7. 종교인가?[편집]
7.1. 종교로 보는 견해[편집]
김일성을 창시자이자 신으로, 김정은을 교주로 하는 종교처럼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주체사상을 종교로 봐야 한다는 관점이 존재하고, 보수 기독교계일수록 이러한 시각이 강하다. 예를 들어 프레스턴 헌터라는 프로그래머가 운영하는 개인 웹사이트 애드히어런츠 닷컴에서는 '주체이즘' 혹은 '김일성교'는 종교 사회학의 관점에서 보면 엄연한 종교라고 말한다. 종교 딱지만 안 붙었다 할 뿐 종교의 필수요소인 교리문답도 있고[88] 성지와 의식체계 및 숭배의 대상을 명확히 갖췄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경희대학교 신은희 종교학 교수 등 아예 대놓고 "주체교"라고 부르면서 종교로 취급한다.
사실 비정상적인 정치 사상[89]이나 다름없는 주체사상은 김씨왕조를 위해서 2,500만 북한 주민이 노예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이비 종교와 비슷하다. 이슬람 극단주의의 모체인 이슬람은 그래도 정상적인 종교의 하나이지만 주체사상은 그 자체가 사이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북한에서는 제대로 된 종교를 전파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 학계에서는 아예 주체사상을 일종의 종교로 봐서 북한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와 같은 사이비 종교 국가로도 분류한다.
결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절대왕권체제와 이란의 신정체제를 합친 것과 같다.
사실 비정상적인 정치 사상[89]이나 다름없는 주체사상은 김씨왕조를 위해서 2,500만 북한 주민이 노예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이비 종교와 비슷하다. 이슬람 극단주의의 모체인 이슬람은 그래도 정상적인 종교의 하나이지만 주체사상은 그 자체가 사이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북한에서는 제대로 된 종교를 전파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 학계에서는 아예 주체사상을 일종의 종교로 봐서 북한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와 같은 사이비 종교 국가로도 분류한다.
7.2. 종교로 보지 않는 견해[편집]
주체사상을 종교로 보는게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종교의 필수요소인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빠져 있다는 점에서 허점이 존재한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개인숭배를 내세운다 해도 김일성 일가를 초월적 존재로 떠받들지는 않기 때문에 김일성 일가에 대한 개인숭배만으로는 주체사상을 종교라 규정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김일성 일가에 대하여 충성을 바치면 사후에 보상을 받는다거나, 김일성 일가가 인간을 초월한 신적 존재로서 인민에게 (단순한 정치적 차원을 뛰어넘는) 어떤 신성한 은총을 내려 준다는 레퍼토리는 주체사상의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삼는다.
물론 김일성 일가에 대해 축지법을 쓴다거나 가랑잎으로 보트를 만들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는 어이없는 선전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종교적인 요소가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러한 선전이 김일성 일가를 기독교의 야훼 신이나 이슬람교의 알라 같은 초월적 존재로 격상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기에, 이것만 가지고 섣불리 '종교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과도한 비약이다. 종교는 (꼭 인격신은 아니더라도) 초자연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와의 소통을 전제로 하는데, 아무리 김일성 일가에 대한 병맛스러운 개인숭배와 맹목적 충성을 요구한다고 해도 그런 부분이 없으면 종교라고 할 수는 없다. 주체사상은 분명히 기독교의 야훼 신이나 이슬람교의 알라 같은 초월적 인격신이나 기타의 초월적인 신적 존재에 대해서는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김일성 일가를 아무리 격상하더라도 그 위치에까지 올려놓지는 않는다. 또한 인간에게 불멸의 영혼이 존재한다거나 천국, 연옥, 지옥과 같은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중세적 세계관에 대해서도 철저한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김일성 일가에 대한 병맛스러운 개인숭배 선전을 늘어놓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섣불리 '종교'라 규정하는 것은 과도한 비약일 수 있다.
그냥 북한판 왕권신수설이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편하다. 왕권신수설이 신은 모든 것을 지배하며 왕은 신의 대리인이니 절대 복종하라는 논리라면 주체사상은 인민대중은 국가의 주인이며 그 인민대중의 대리자인 주석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논리로 전혀 다른게 없다. 근데 왕권신수설이 차라리 더 말이 된다. 국가의 주인인 인민까지 인민대표자가 지배한다고?? 왕권신수설로 따지면 신의 대표가 신까지 지배하겠다는 거[90] 아니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던 유럽에서는 그래도 왕권을 견제할 수 있는 귀족 등이 있었지만 북한은 그마저도 없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물론 김일성 일가에 대해 축지법을 쓴다거나 가랑잎으로 보트를 만들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는 어이없는 선전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종교적인 요소가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러한 선전이 김일성 일가를 기독교의 야훼 신이나 이슬람교의 알라 같은 초월적 존재로 격상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기에, 이것만 가지고 섣불리 '종교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과도한 비약이다. 종교는 (꼭 인격신은 아니더라도) 초자연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와의 소통을 전제로 하는데, 아무리 김일성 일가에 대한 병맛스러운 개인숭배와 맹목적 충성을 요구한다고 해도 그런 부분이 없으면 종교라고 할 수는 없다. 주체사상은 분명히 기독교의 야훼 신이나 이슬람교의 알라 같은 초월적 인격신이나 기타의 초월적인 신적 존재에 대해서는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김일성 일가를 아무리 격상하더라도 그 위치에까지 올려놓지는 않는다. 또한 인간에게 불멸의 영혼이 존재한다거나 천국, 연옥, 지옥과 같은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중세적 세계관에 대해서도 철저한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김일성 일가에 대한 병맛스러운 개인숭배 선전을 늘어놓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섣불리 '종교'라 규정하는 것은 과도한 비약일 수 있다.
그냥 북한판 왕권신수설이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편하다. 왕권신수설이 신은 모든 것을 지배하며 왕은 신의 대리인이니 절대 복종하라는 논리라면 주체사상은 인민대중은 국가의 주인이며 그 인민대중의 대리자인 주석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논리로 전혀 다른게 없다.
8. 주체사상과 대한민국 국가보안법[편집]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반국가단체로 보며 찬양고무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 대한민국의 현행 국가보안법상 대한민국 국민이 주체사상을 어떠한 형태로 '건드리는가'에 따라 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다.
국가보안법의 존속에 대해서는, 다른 법(특히 형법의 제2편 제1장 내란의 죄 이하 및 동편 제2장 외환의 죄 이하의 각 조항)으로 처벌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며 반대하는 입장과 안보 환경상 폐지는 시기상조라며 찬성하는 입장이 맞선다.
다만 주체사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순수 학문연구[91]의 목적으로 북한에서 발간한 자료를 취득하였다고 하자. 이는 국가보안법 제 7조 제 5항에 명시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할 목적"이 아니므로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로 처벌할 수 없다. 즉, 남한에서 당연히 합법적으로 출간된 주체사상 연구서를 구입해 읽거나, 북한자료센터를 통해 합법적으로 김일성저작집을 읽더라도 문제될 바 없다.
국가보안법의 존속에 대해서는, 다른 법(특히 형법의 제2편 제1장 내란의 죄 이하 및 동편 제2장 외환의 죄 이하의 각 조항)으로 처벌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며 반대하는 입장과 안보 환경상 폐지는 시기상조라며 찬성하는 입장이 맞선다.
다만 주체사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순수 학문연구[91]의 목적으로 북한에서 발간한 자료를 취득하였다고 하자. 이는 국가보안법 제 7조 제 5항에 명시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할 목적"이 아니므로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로 처벌할 수 없다. 즉, 남한에서 당연히 합법적으로 출간된 주체사상 연구서를 구입해 읽거나, 북한자료센터를 통해 합법적으로 김일성저작집을 읽더라도 문제될 바 없다.
대법원 94도135 판결 요지
대학생들이 구입, 독서한 책들이 용공성향의 표현물인 사실은 인정되나 공산주의나 사회학에 대한 일반이론서로서 정치외교학 또는 사회학을 전공하는대학생들의 학문연구와 결코 무관하지 아니한 내용이므로, 대학생들이 이러한 표현물을 단기간 동안 소지, 독서, 토론한 것만으로써 북괴의 활동에 동조하였다거나 이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 소지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또한 주체사상은 파시즘과 다를 바 없거나 오히려 그보다 더한 천하의 쓰레기 같은 사상이라 판단하든 아니면 주체사상은 지상락원 건설에 제일 적합한 반석이자 내 삶의 나침반이라고(…) 생각하든 이 자체로는 아직 내심의 판단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 더 좁게는 양심 형성의 자유로 보호된다. 표현의 자유에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을 소극적 자유도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 역시 그러한 내적 사상을 보호해준다.
문제는 만에 하나 주체사상에 깊은 감동을 먹은 뒤(…) 길거리에 나가 "주체사상을 아십니까?" 하거나 혹은 온라인에서 주체사상을 옹호하는 등의 의견을 표명하는 경우. 이 지경이 되면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죄에 저촉될 수 있다.
근데 사실 주체사상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나 동경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원인이 국가보안법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가보안법이 없어서 주체사상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자유롭게 토론하고 설득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북조선에서 만든 온갖 쓰레기 같은 선전물들을 자유롭게 돌려 보고 접하면서 주체사상의 문제점을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는데,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니까 북조선 체제에 대한 막연하고 해괴한 동경과 오해가 생겨나고 주체사상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국가보안법으로 탄압 대상이 된 NL 중에서도 골수 주사파들은 자신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피해자라는 것만 과도하게 강조하다 보니까, 자신들의 입장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92][93]
주체사상에 대해 궁금한 사람은 각 대학교의 생활도서관이나 '노동자의 책' 같은 사이트에서 열람 가능하다.
9. 기타 주체사상[편집]
10. 참고/관련문헌[편집]
- 주체사상의 형성과 변화 - 손광주 저.
- 주체사상 비판 - 이진경, 진중권, 조국 공저.
[1] 명목상은 극좌다. 물론 공산주의 국가로 시작해서 극좌 딱지가 붙는거지(그것조차 김씨 왕조로 변질되어버렸다) 실질적으론 아나키즘이랑은 상극인게 아이러니지만.[2] 실질적인 행태나 내용은 극우로 보는 사람도 있다. 주체사상의 파시즘, 전체주의 성향 때문이다.[3] 동서대학교 교수.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북한학과 교수를 역임했다.[4] 강철서신이란 서적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주사파의 거두 김영환은 김일성을 만난 이후 정작 그(김일성)도 주체사상이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고 평한 바 있다.[5] 온갖 종류의 약어를 사용하던 NLPDR 운동권 일부에선 주체사상을 Identity Theory로 번역해서 줄임말인 IT로 칭하기도 했다.[6] 다만 이쪽은 국가별로 콘체른(독일), 자이바츠(일본) 등으로 여러가지 명칭을 사용한다.[7] 일제 시절에는 소학교조차 의무교육이 아니었다.[8] 그것이 마르크스주의를 타깃으로 하든, 주체사상을 타깃으로 하든[9] 문구만 봐도 알겠지만, 대표적인 전체주의의 표어다. 원래 삼총사의 표어인데 어느세 전체주의를 설명하는 데 최고의 문구가 되었다.[10] 사실 이것도 실존주의 짝퉁에 불과하다.[11] 참고로 오해할까봐 덧붙이자면, 한나 아렌트는 대표적인 전체주의 비판자이다. 주체사상 따위에 엮으니까 많이 미안해진다 주체사상이 아렌트의 사상을 빌려왔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적 삶과 공적 삶을 구분하고는 사적 삶의 무상성을 극복하기 위한 공적인 '결속'과 '활동'이라는 개념을 호소하는게 주체사상의 고유한 무언가는 아니라는 의미다..[출처] 북한의 진실과 허위, 황장엽.[13] 실제로 김일성은 박헌영을 위시하여 본인의 정적인 맑잘알들은 물론이고, 나름대로 체계적인 자생적 사회주의라 할 수 있는 정약용 사상을 따르던 갑산파까지 싹 다 숙청을 한 후에 마르크스, 레닌, 정약용 등등의 사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주체사상을 개발하였다.[14] 초기 마르크스주의를 보면 인간의 의지를 중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중에는 바뀌지만.[15] 실제로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을 보면 노오력을 강조하는 내용이 나와 있기도 하다.[16] 북조선의 선전물 중에 하나를 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계란이 깨지지만, 계란에 사상이 들어가면 바위를 깨트릴 수도 있다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내용이 나온다. 마르크스주의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노오력만 하면 무엇이든지 잘 할 수 있다는 자유경제원 같은 자본가 계급의 관념일 뿐이다. 근데 웃기는 건 본문에서 서술했듯 자기네들은 이걸 갖다가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에서 놓친 부분을 보완했다고 주장한다(…)[17] 마르크스주의에 익숙하지 않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다수 대중들의 귀에야 경악스럽게 들릴지 몰라도[18] 사실 남한에서 그 많은 정통 트로츠키주의 단위들을 다 제치고, 본인들을 트로츠키주의라 정체화하지도 않는 IST가 반스탈린 레닌주의 조직 가운데 가장 큰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19] 남한의 정통 '트로츠키주의' 운동권이 하도 입지가 약한 관계로 이쪽을 트로츠키주의라 오해하는 경향이 강한데, 물론 국제 사회주의자 경향도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와 노동계급 국제주의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범(凡) 트로츠키주의 계열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본인들은 그렇게 정체화하지 않는다. 트로츠키는 그냥 여러 혁명가들 중에 하나일 뿐이고, 우리는 그냥 '마르크스주의'라는 것이다.[20] 국가자본주의론 자체는 트로츠키의 작품이 아니다. 트로츠키의 노선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며, 트로츠키 사후에 팔레스타인 출신의 마르크스주의자 토니 클리프가 트로츠키의 계승을 자처하면서 내놓은 것이다.[21] 북조선에서 헌법보다 상위법이라 할 수 있는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보면 제 7원칙 3, 4항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3) 혁명의 주인다운 태도를 가지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모든 일을 책임적으로 알뜰하고 깐지게 하며 부닥치는 난관을 자체의 힘으로 뚫고나가야 한다. 4) 노쇠와 침체, 안일과 해이를 반대하고 왕성한 투지와 패기와 정열에 넘쳐 언제나 긴장하게 전투적으로 일하며 소극과 보수를 배격하고 모든 사업을 대담하고 통이 크게 벌려나가야 한다." 어디서 많이 보던 이야기다.[22] 물론 남한이 북한보다 현상적으로는, 그리고 피지배 대중들 입장에서 체감하기에는 분명 낫기는 한 것이 남한에는 북한과 달리 부족하나마 착취로 인한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복지와 법적 제도가 있고(하지만 이것조차도 경제위기 상황에선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또 정치적인 차원 한정이지만 대중들이 잘못된 것을 아는 순간 곧바로 정정을 요구할 수도 있고(물론 이것조차도 정치의 차원이고, 직장과 학교에서는 그것이 없다. 직장과 학교는 자본가와 학교 당국에게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이 주어진 독재체제이다), 심하면 국가원수를 갈아버릴 수도 있다(역시 이것도 정치적인 차원이다. 사장과 학교 교장/총장은 교체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1987년의 6월 민주 항쟁과 이어진 7~9월의 노동자 대투쟁으로 어렵게 쟁취해 낸 것이지, 처음부터 남한 체제에 그러한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남한이 북한보다 그래도 나은 것은 멀리는 4.19 혁명, 가깝게는 6월 민주 항쟁을 통해 얻어낸 소정의 성과인 것이며, 원래 본질적으로는 남한이나 북한이나 똑같은 체제라는 것이 IST의 입장이다. 북한이 남한보다 더 비민주적으로 보이는 것은 국가 하나가 통째로 기업이기 때문인데, 남한에서 국가 차원에선 정정을 요구하거나 국가원수를 갈아버리는 것이 가능하지만 개별 기업에서는 사장이 무소불위의 독재권력을 휘두르고 마음에 안 든다 그래서 교체할 수도 없는 것이 북한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통하기 때문이다.[23] 사실 정경유착은 자본주의 사회라면 어느 곳에서나 어느 정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시장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그리고 시장 자유주의의 이상인 국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24] 세습된 지도자가 없어서 동구권과 중국, 베트남은 혁명과업을 일관성 있게 수행하지 못해 몰락한 것이라는 개소리를 지껄인다.[25] 실제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이 자들이 내세운 논리다. 역시 전경련한테 돈 받아먹는 위장 계열사답다.[26]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여기에서 말하는 이윤 압박은 국제적 압박과 경쟁 압력 속에서 더 많은 부를 축적해야 한다는, 그러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그런 것이다. 특히 군비경쟁 면에서. 예를 들어 남한에서 박정희가 대포를 만드는데 100억이 든다면, 북한의 김일성은 같은 성능의 대포를 90억에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박정희는 그보다 더 강화된 성능의 대포를 80억에 만들어야 하고, 김일성은 전투기를 갖다 끌고 와서 100억에 만든다. 그러면 박정희는 또 같은 성능의 전투기를 90억에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군비경쟁에서 밀려서 작살난다. 이것이 국가자본주의 체제의 이윤 압박이다. 이거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27] 이러한 이유 때문에 IST는 1989년의 동구권 붕괴와 1991년의 소련 붕괴를 갖다 쌍수를 들어 환영했으며, 2011년에는 이집트에서 무려 무슬림 형제단이 정권 잡아야 한다고 논평을 내기까지 했다.[28] 당연하겠지만 다른 레닌주의 정파에서는 IST의 이러한 입장을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한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상부 구조이고 더 중요한 것은 집산화와 국유화(+트로츠키주의 계열에서는 노동자 통제)라는 하부 구조인데, 역사유물론의 기본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라는 상부 구조를 물신화한다는 것이다.[29] 북한 체제의 성립은 노동자 혁명의 직접적인 결과라 보기는 어렵다. 물론 해방공간에서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과 1946년의 10.1 항쟁을 비롯한 다양한 좌파적 대중운동이 존재하긴 했으나, 현존하는 북한 체제는 이러한 대중의 열망을 갖다가 소련 관료집단이 자기네들 입맛에 맞게 이용하여, 대중의 열망에는 한참 못 미치는 체제를 한반도 북쪽에 떨궈 놓고 간 것이다.[30] IST의 일반적인 입장은 자본주의 국가가 현존하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갖다가 무너뜨리려 들거나 말거나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들 간에 팀킬 벌이는 진흙탕 개싸움이므로 신경 끄고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실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에 의해 현존하는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무너지는 걸 환영한다는 건 아니다.[31] 4인터 계열에서는 이러한 정세 인식의 바탕은 IST 운동이 중간계급과 중간계급적 사고에 젖은 미조직 노동계급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32] 트로츠키주의적 입장에 따르면 이렇게 강도가 높아진 건 북한 체제의 특수성에서 비롯된다.[33] 재미있는 것은 남한의 (주사파를 포함한) NL들 역시 스탈린주의의 일파이기 때문에 남한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먼저 완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고 지금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NL들이 민주당 같은 부르주아 야당과 손을 잡거나, 아니면 투표소 수개표 운동 혹은 18대 대선 부정선거 진상규명 운동 같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요구들을 갖다가 중요시하는 것이다.[34] 놀랍게도 혹부리우스 역시 해방공간에서 활발하게 벌어지던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과 같은 자생적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 지금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먼저 완성할 시기이므로 때가 아니라는 입장을 내려, 기껏 불 붙었던 자생적 사회주의 운동을 전부 다 나가리시키는 만행을 저지른 바 있다.[35] 예를 들어 민주 집중제의 경우는 먼저 자유롭고 민주적인 토론과 대화 과정을 거쳐서 그걸 통해 얻은 결론을 실천할 때 행동을 갖다 통일하여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앞부분은 쏙 빼놓고 관료집단의 탁상행정에 의한 의사 결정을 갖다가 통일된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식으로 곡해하였다. 또 다른 곡해로는, 레닌은 몇 번이고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관료집단이 아닌 무장한 인민 대중, 특히 노동계급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고 <국가와 혁명>에서 강조했는데, 스탈린은 관료집단이 프롤레타리아를 '지도'하는 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주장하였다.[36] 여기에서는 인류 역사가 자동으로 자본주의를 거쳐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며, 혁명정당과 노동계급 운동이 얼마나 제대로 굴러가느냐에 따라 사회주의로 이행하거나 아니면 자본주의 체제의 막장화와 인류 전체의 멸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로자 룩셈부르크, 발터 벤야민이 대표적인 사례다.[37] 여기에서는 인류 역사가 자본주의를 거쳐 자동으로 사회주의, 더 나아가서는 공산주의로 이행하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잘 발전해서 고도화된 단계에 이르기만 하면 자동으로 사회주의가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인민은 사회를 갖다가 발전시키고 지상락원을 건설해 주실 위대한 지도자님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38] 미국의 트로츠키주의자들 상당수가 후에 극우로 전향하여 반공 선전에 협력했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다고도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트로츠키주의자들 입장에서는 그냥 배신자들일 뿐이다.[39] 다만 노정협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요구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노정협은 다양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것을 문재인 정부를 향해 요구하는 논평을 5.18 광주 민중항쟁 37주년을 맞이하여 내놓았으며, 여기에는 스탈린주의자들이 부정하던 성소수자 인권도 포함되어 있다. 노정협의 모순은 그러한 '자유'와 '권리'를 짓밟는 북한의 지배자들을 옹호한다는 점이다.[40] 대중적으로 유명한 지식인 중에는 도올 김용옥이 그런 류의 평가를 내렸다. 그래서 진중권 의 책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41] 관공서에 국가원수의 사진을 게시하는 국가는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대한민국도 1998년 조례 제정 이전까지는 관공서에 대통령 사진을 게시했었다. 그러나 교실에까지 걸어놓고 심지어 묵념하는 미친 짓은 없었다.[42] 캐나다 등 영연방 국가들은 영국 여왕의 사진을 걸어놓지만, 진짜 국왕을 모시는 나라에서도 이런 짓은 안한다.[43] 구호나무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나마도 조작된 것이 절대다수.(다만 1961년 백두산 청봉지역에서 발견된 구호나무 19그루는 진위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44] 지금도 덴노에 대한 비판을 하면 곤란해진다. 극우들 테러 위협도 있고.[45] 헌병에 해당한다.[46] 이 정도면 악명높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종교경찰에 맞먹거나 오히려 능가하는 수준이다.[47] 대한민국은 헌법을 제정하고 건국할 때 조선총독부의 법령을 정말 문제가 되는 일부만 폐지하고 그대로 유지했다. 심지어 이 당시에는 법률 번역도 안 되어 한국어가 국어인 나라에서 법률 조문은 일본어인 경우도 있었으며, 이 법률들은 점점 하나씩 한국어 법률로 바뀌어 갔지만 그것도 처음에는 어설픈 일본식 한자어로 떡칠된 직역이었다.[48] 일제 때만 해도 사법제도가 도입되어 단순히 반정부 운동했다고 끔살당하진 않고 사법판결을 받고 복역하고 풀려나거나 고문을 받고 풀려나거나 하는 정도였고 실제 3.1운동 가담자들도 대부분 몇년형을 받고 출소했다. 남한의 독재정권 시절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었기에 반정부 운동이 싹틀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하지만 현재 북한은 반정부 운동 기미만 보여도 끔살+연좌제로 싸그리 씨를 말려버리는 시스템이라 반정부 운동 세력이 커지는 것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토양이다. 현재 북한이 일제 때의 인권만 보장되도 지하에서 희미하게나마 반정부 운동이 싹트고 있었을 것이다.[49]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성스러운 가톨릭 행사를 보여주면서 시작되는데 '이들에게 지도자가 나쁜 명령을 내리면 어떻게 될까?'란 반문으로 시작된다. 자살테러를 일삼는 광신도들도 결코 본인은 '악'을 행한다고 생각하며 행하는게 아니고 자기딴엔 '살신성인'이라고 믿고 행하는 것을 상기해보자.[50] 이 기독교인들은 지주 계급이었던 관계로 분단 이후로 토지개혁 과정에서 기반을 모조리 상실하고 다 이남으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서북청년단을 결성하여 제주도에서 또 학살을 저지른 것이고...아직까지도 한국의 주류 기독교가 극단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강한 반공/반북 성향을 보이는 이유가 이러한 원한 때문이다. 종교와 권력이 유착된 상태에서 누릴 거 다 누리다가 소련을 등에 업은 김일성 패거리들에 의해 권력을 빼앗기고 기반 지역에서 축출되자 이를 빠드득빠드득 갈게 된 것이다. 한편 평양에서 정권의 통제 하에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두 개의 교회 가운데 하나인 칠골교회는 재림교회 타이틀을 걸고 있다. 나머지 하나는 장로교회 타이틀을 건 봉수교회.[51] 심지어 이미 구약의 후기 경전, 이를테면 지혜서 등에서도 이러한 그리스적 개념들이 발견된다.[52] 근본주의 기독교의 이른바 조직신학이라는 게 딱 이런 식이다. 애매모호한 말잔치와 어거지 끼워맞추기만 조낸 늘어놓고, 결론은 예수가 킹왕짱이니까 잘 섬기라는 이야기.[53] 오히려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이론상 정통 공산주의에 대한 논의가 가능한 정도.[54] 정확히 말하면 물질이나 경제 같은 형이하학적인 문제가 철학이나 이념, 윤리 같은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을 규정한다고 주장한 것이 마르크스의 입장이다. 이를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55] 이 자들을 적백내전 때 싹 다 쳐죽였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문제는 레닌을 주축으로 한 볼셰비키가 이 자들을 반성문 한 장 받고 사면시켜 줬다는 점이다. 근데 이렇게 면죄부를 받은 자들이 스탈린을 앞세워 대형 사고를...[56] 적백내전으로 인해 죽거나 귀농한 노동자들 때문에, 공산당의 쪽수가 많이 모자랐던 관계로 개나 소나 다 받아 주는 사태가 벌어졌다.[57] 이들은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시대에는 노멘클라투라라는 지배계급으로 고착화되었고 소련 붕괴 이후에는 올리가르히라는 신흥 재벌 집단으로 돌변하였으며 급기야는 레드 마피아와 손을 잡는 지경에 도달한다.[58] 사실 레닌은 <국가와 혁명>을 집필할 당시부터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관료집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무장한 노동자들 스스로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59] 공산당[60] 이 이론은 2번 항목에서처럼 김정일에 의해 다시 이용되었다.[61] 공산주의 맹주격인 소련의 방침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62] 이 연설은 1940년대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마오쩌둥이 한 정풍운동의 연설과 비슷하다고 지적된다. 스탈린 열화카피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모택동 열화카피[63] 소련[64] 이때까지는 남조선(남한) 개입에 대한 의사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65] 교조주의[66] 분리주의 페미니즘에 영향을 받은 신좌파, 포스트모더니즘 신봉자들 때문에 왜곡되고 곡해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최소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매우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갖고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이런 것들을 극복하고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67] 당 소속이면 누가 뭐래도 상위 계층.[68] 물론 당시 공산진영 특유의 내부출혈을 감수하는 막대한 경제적 지원덕도 있었지만.[69] 실제 공업생산이나 각종 경제통계를 살펴보면 1950년대에서 60년대 중반까지는 북이 남한을 경제적으로 압도하였다. 그러다가 60년대 중반부터 남이 고도성장을 하고 북의 성장률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1970년대 초·중반경에 따라잡아 대략 1970년대 후반에 북을 추월하였다. '남에게 따라잡힌다'는 북한 정권의 위기감, '북을 넘어서겠다'는 남한 정권의 경쟁의식이 만나면서 온갖 종류의 병림픽을 벌였다. 결국 체제경쟁 승리를 위해서 전국력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명분하에 북한의 김일성은 1972년 사회주의 헌법 개정을 통해서 수령제라는 1인독재체제를 만들었고, 남한의 박정희는 같은 해 10월 유신을 단행해서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70] 상당히 어려운 개념인데, 결론만 말하자면 축적된 이윤을 갖다가, 과거의 노동을 통해 생산된 새로운 생산 설비나 기계 도입에 투자함으로서, 이윤의 원천이 되는 현재의 노동량이 줄어듦에 따라 지속적으로 이윤율이 저하되고, 경제 성장률이 둔화되는 현상이다. 이윤량 증가(돈을 더 버는 것)이 이윤율 감소(투자한 만큼 이자가 안 나옴)을 초래한다는 것이며,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지적한 자본주의의 모순 중 하나이다. 이것을 가리켜 과거에 경제성장의 비결이었던 것이 지금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71] 심지어 이 시기에 북한과 인접한 중국의 도시들에서는 홍위병들에 의한 반 김일성 데모도 자주 벌어졌다.[72] ==김일성의 신임[73] 공산주의[74] 김영주와 김일성의 고종매부(姑從妹夫) 또는 내종매부(內從妹夫)[75] 이때부터 주체사상의 가장 큰 특징인 반지성주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독재는 독창적인 사고와 학술활동에 적개심을 드러내면서 지식인(인텔리)를 억압하는 반지성주의에서 출발한다. 그래야 독재를 합리화할 수 있으니까.[76] 이하 10대 원칙[77] 한 예로 고고학이 있다. 본래 북한의 고고학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분단 이후 북한의 고고학을 주도했던 인물인 도유호와 한흥수는 각각 비엔나 대학과 프라하 대학에서 유학 경험이 있던 엘리트였고 이들의 주도로 관련 인력 및 제도가 정비된 북한 고고학계는 남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78] 학술 활동의 가장 기본 요소인 '논문'에서도 주제를 막론하고 서론에 김일성 부자에 대한 찬양 문구가 먼저 기록될 지경이다. 이를테면 신부님이나 목사님께서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난 후 강론, 설교를 시작하는 것처럼, 김일성 일가의 어록에서 조금이라도 해당 학문 분야에 관련이 있는 문장을 찾아 먼저 거론하고 나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 당연히 논의의 폭이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고, 학문적 객관성은 안드로메다로 가게 된다. 애초에 김일성 일가의 독재자들이 제 가문 독재와 관련된 사안 외에는 딱히 깊이 아는 분야가 없는지라, 실제로 북한 학자들의 논문에 기재된 김씨 일가 어록들을 보면 정말 초보적인 내용의 문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 유치한 소리에 끼워맞춰 연구를 진행해야 할 북한 학자들 지못미.[79] 이게 또 김일성으로 하여금 "남조선 인민들은 스스로 해방 투쟁을 할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무장공비를 지속적으로 침투시켜서 해방구를 만들고 봉기를 시켜야 한다"고 믿는 원인이 되었다. 아니 그것보다 너네한테 관심이 아예 없는데...이 무슨 얀데레[80] 트로츠키주의의 직계 계승자인 제 4인터내셔널에서는 소련을 '퇴보한 노동자 국가'로 규정한다. 이는 같은 트로츠키주의를 표방하지만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는 국제 사회주의자 경향(IST)과는 일정 부분 차이를 보인다.[81] 197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의 북한은 지금과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나가고 있었다. 무려 음식이 남아서 버리는 수준 (!) .[82] 행진, 전학협, 다함께, 한대련 등등. 다만 행진, 전학협은 PD 계열이고 다함께는 IS 계열이다.[83] 북한 민주화운동도 여기에 포함된다.[84] 그러고 보면 보도연맹 사건의 주동자인 오제도하고 의형제를 맺기도 했다.[85] 사회주의 사상으로 분류되는 것들[86] 현재 사회주의의 주류는 세계적으로 볼 때 '좌파 개량주의'라 하여 기존의 사회민주주의보다는 왼쪽인 의회주의 노선이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노선도 세계적으로 볼 때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대부분인데 이쪽이야 개인 숭배와는 철천지 원수들이니...[87] 게다가 이 시기인 1960년대는 주체사상이 막 체계화되던 시기여서 정리가 덜 된 상태였다.[88] 다만 교리문답형 명제는 공산주의 태동기 부터 있던 것이다. 민중이 받아들이기에 익숙한 기독교식인데다 기억하기도 편하기 때문.[89] 극좌계열처럼 보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극좌성향도 아니다.[90] 북한학자 브라이언 마이어스는 스탈린이나 모택동처럼 수령을 '모든 학문의 통달자'라고 하기 보단 차라리 김일성처럼 '민족 중 가장 순수한 자'로 하는게 더 논리적으로 유리할 것(애시당초 증명이 불가능하니 반박도 없다)이라 평한 적 있다.[91] 여기서 말하는 '연구'는 무슨 거창한 학위 논문 이런 것이 아니라 개인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행위.[92] 실제로 금기가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사례는 믾다. 성인의 청소년과의 연애나 성관계에 대한 금기적 시각이 그것에 대한 도착적 판타지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그 한 예이다.[93] 국가보안법 존치론자들은 국가보안법을 없애면 국가 보안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함부로 없앨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해당 항목에 나와 있듯이 국가보안법은 일제 치안유지법의 잔재로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논란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UN에서도 폐지 권고를 오랫동안 해 오고 있는 법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형법에는 내란 및 외환의 죄에 관한 조항이 있기 때문에 이 조항으로 얼마든지 보완이 가능하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을 철폐한다고 해서 국가 보안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이 폐지론자들의 입장이다.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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