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8

[CJ Kang 방북기28]만경대협동농장을 찾아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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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Kang 방북기28]만경대협동농장을 찾아서1


CJ Kang 방북기 2015-03-20 Lik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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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순의 해는 길어서 조금 늦은 오후였지만 만경대협동농장을 향하여 출발했다. 우리가 처음으로 지나는 조금 낯선 길가에 찻집도 보이고 영화관도 있는데다 지은 지 좀 된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지나는 지역의 이름을 대변하는 듯 상점의 이름에 창광이 붙기도 했고, 락원이란 명칭이 붙기도 했다. 기차역으로 건국역을 지나나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광복역도 있다.

















이곳 낯선 거리로 우리가 탄 차가 지나게 된 것은 만경대협동농장으로 우리를 안내할 이 지역 담당 여성일군을 광복역 앞에서 태워서 함께 가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안내하는 미향동무가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농장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중앙의 제법 높은 위치에 있는 안내원인 미향동무가 우릴 그냥 데리고 가는것이 아니라 지역의 담당 공무원과 미리 상의하고 그 공무원과 동행해서 찾아가는 것이 북의 방식인 듯하다.



물론 방문객들이 아주 자주 찾는 장소에서 언제든지 방문객을 맞을 준비가 된 곳이라면 이런 절차가 필요 없겠지만 보통 관광객들이 찾지 않는 농업현장을 우리는 찾아가는 것이고, 우리 운전수 영호동무가 이곳은 잘 모르는 듯하니 이곳을 잘 아는 안내해줄 분이 필요한 것이 이치에도 맞는 일이다.

















광복역 광장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여성일군은 키가 크고 시원스런 인상의 말수가 적으면서 아주 겸손한 분이었다. 운전사 영호동무에게 목적지로 갈 방향을 알려준다. 차는 김정은 원수의 지시로 새로 안팎으로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있다는 만경대소년학생 궁전을 지나서 얼마 되지 않아 포장된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길가의 논밭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벼를 비롯하여 콩이나 옥수수 등이 심겨져있다. 협동농장을 찾게 되는 일에 마음이 설렌다.







내가 보았던 북부조국의 어떤 영화에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70년대 쯤의 농촌의 한 가정에서 돌잔치를 하게되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나서서 하는 이야기였다. “아 옛날 같으면 우리가 집도 사고 땅도 사기 위해서 돈을 모으려고 하였겠지만 이젠 그런 걱정이 없으니 이렇게 좋은 날이면 모여서 기금으로 잔치를 열고 함께 즐기게 되어 얼마나 좋습네까?”



그러니까 북부조국은 땅을 사지 않아도 되는 사회이고 집도 사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산골 협동농장의 주민들이 여러가지 난관을 뚫고 온갖 노력을 다하여 가뭄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제쳐놓은 땅에 물을 끌어올리는 이야기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기계화를 이루어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였다. 개인이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큰 사업을 어떤 리더격인 여성이 숱한 고난을 극복하며 먼저 구상하고, 여러 시련 가운데 집단이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고 협동하여 이루어나가는 것이었다.



내가 북부조국 방문기를 쓰는 동안 평양에 비해서 시골은 훨씬 못살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 그럴지도 모른다. 평양이 수도인데 당연히 잘 살고 인민이 문화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도 많을 수 있다. 땅이 좁고 평야보다 산악이 많은데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농촌인구가 총인구의 40% 정도 된다는 북부조국의 농촌이 잘 살 수 있다면 그건 정말 기적같은 일이 될 것이다. 땅이 기름진 남한의 농촌도 농사를 계속할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는데 그 조건이 더욱 열악하다고 여기는 북한의 농촌은 아주 못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북의 지방도시나 농촌을 우리의 지방처럼 여기고 우리식으로 판단하는 것은 오류다. 위의 영화에서처럼 땅에 대한 지대를 내지 않고 집세도 내지 않는데다 자식들 교육비도 들지 않는다. 거기다 국가에서 무료로 비료도 지원하고 기계도 무료로 제공한다면 우리의 농촌과 그 상황은 아주 다르지 않겠는가? 북의 농촌이 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미리 판단하고 지레짐작을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남의 농촌에서 농부로 살아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먼저 생각하면서 그것에 비해서 북의 농촌의 형편은 어떠한지를 이 글을 읽으면서 함께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북부조국 농촌의 현실과 농촌에 대한 제도적인 국가의 지원에 관하여 나의 관심이 남달리 큰 것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내가 미국에 이민 온 후 대부분의 남한에서 온 이민자들과는 달리 20년 동안 미국 땅에서 농업에 종사했기 때문이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그걸로 생계를 유지하고 돈을 잃기도 하고 벌기도 하면서 주변의 여건이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때까지 젊은 시절을 농장에서 보냈었다. 그런 연유로 자본주의 제도 아래서의 농사일이 어떻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그것과 비교하여 사회주의 북부조국의 협동농장은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를 비교해서 살펴보고 싶었고, 북에 도착하였을 때 바로 협동농장 방문을 꼭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그렇게해서 방문하게 된 만경대협동농장의 이야기는 나의 방북기 가운데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아마 독자들도 나만큼 북부조국의 농촌이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할 것이다. 평양방직공장을 답사하면서 노동자들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한 것으로 북의 수많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대략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곳 협동농장의 방문을 통해서 북의 농민들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북부조국의 농촌을 바로 알게 됨으로 북부조국 정부는 농촌을 어떻게 대우해왔고, 수많은 인민들은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게 되리라 여겨진다.



우리를 태운 차가 만경대협동농장에 도착하자 이곳에서 25년간 일해왔다는 아주 잘 생기고 훤칠한 분이 우리를 맞이한다. 생활구현농장이란 직책을 가진 김태현 씨다. 우리를 환영하면서 잠깐 주변을 둘러보게 한다. 이곳 만경대협동농장은 다른 이름으로 만경대남새전문농장으로 부른다고 한다. 논 농사와 밭 농사는 반반 정도라고 했다. 남새란 말은 북부조국에서 채소를 부르는 말이다. 이곳에도 영생탑이 세워져있고 주변은 아주 넓은 광장으로 조성되어 있다. 잠깐 걸어서 이동하는 동안 살펴보니 이곳도 주위에 힘찬 구호들이 적혀있다.












우리가 찾은 곳은 농장회관으로 문화회관이라고 적힌 건물이다. 입구에서 들어서니 아주 큼직하게 백두산 천지의 벽화가 우리를 반겨준다. 열려진 문을 통하여 들여다보니 아주 넓은 강당이 있는데 그 안에서 갑자기 와하고 한꺼번에 외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잠깐 살펴보니 강당 앞쪽에 백여 명의 젊은이들이 주욱 앉았는데 거기서 나는 소리였다. 모두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데 하얀 운동복에 흰 모자를 쓰고는 조화로 된 꽃을 들고 있다. 안내원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물어보니 지금 응원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장의 젊은 청년들이 논밭에 나가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응원연습이라니 참 이상한 일이다고 생각하는데 천천히 그걸 설명해주었다.












이곳 농장의 전체 농장원은 950여 명인데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어울려서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실력이 보통이 아니어서 주변의 다른 농장들과 시합을 하곤 하는데 이곳 만경대남새전문농장은 그 시합에서 축구와 농구, 그리고 씨름을 특별히 잘했고 이제 곧 추석이라 그 세가지 종목의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그래 농장원들이 이렇게 모여서 결승전에서 할 응원을 미리 연습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응원 연습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바로 사진만 멀찍이서 찍고 대강당을 나오며 살펴보니 응원연습에 참여하고 있는 농장원들이 대부분 20~30대 남여 청년들로 보인다. 북부조국의 농촌은 젊은이들의 삶의 터전이다. (201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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