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말로 나라가 아니니이다>
임진왜란 전후 조선 인구는 대략 500에서 700만 사이로 추정된다. 동시대 일본이 1500만에 육박했던 것과 확연히 차이난다. 천만이 넘는 왜의 인구는 조선처럼 심플한 하나의 통치 체제 밑에서 일사분란히 지배받던 숫자가 아니었다. 전국시대라는, 힘있는 다이묘들의 합종과 연횡 밑에서 갈갈이 나뉘고 쟁투하며 제 살길을 찾았던 인구다. 이를테면 항구적 전쟁 속에 생존에 맞도록 체질을 물갈이해 온 인민들이라는 얘기. 일본인이라는 정체성하면 흔히 떠올리는, 뭔가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잔혹스러운, 속을 알 수 없는 묘한 질감. 생각건데 이들이 조형해온 전쟁기 세계관의 한 반영이었던게 아닐까.
상시적 쟁투 속 플레이어들은 아귀다툼 가운데 나름의 생존을 도모하고자 내부에 두가지 계급적 축을 길러낸다. 하나는 잘 정비된 무사 계급, 다른 하나는 기술과 산업의 물적 기반이 될 안정적 농민층. 다시 말해 병농의 계급적 분리를 명확히 했다는 얘기다. 조선처럼 병사들이 농사짓고, 농민들이 병력으로 호출되길 여러번이었던 상황과는 확연히 다른 체제다. 이러한 신분적 분화는 시사점이 크다. 수백년의 상시 전쟁 속에서도 일본 농민층은 전쟁과는 거리를 두고 상당히 양호한 삶을 살았다는 얘기니까. 어느 다이묘, 누구 수하의 사무라이가 새로 주인행세를 하든 수탈이나 착취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기 영지 아래에 물산이 발전하지 않으면 무인들 역시 궁극에 가선 버텨낼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농민이 생산해낸 물자를 유통하기 위해 각 지역들은 경쟁적으로 인프라를 갖추고 산물들을 거래할 시장과 도시를 키워갔다. 도시의 시끄러움과 혼란 속에서 신문물이 개발되거나 수입되고 유행을 타며 사라지길 여러번. 혁신의 맹아인 도시와 시장을 잘 육성해 몸집을 키운 다이묘만이 쟁패의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었다. 전쟁국가였지만 놀랍게도 실상은 안정적인 시장의 풍요가 형성되는 기묘한 아이러니다.
이와 정반대의 역설은 현해탄 건너 옆나라에서 벌어졌다. 일찍부터 평화 시대를 누린 조선은 중앙에서부터 밑바닥 농민들에 이르는 체계적 착취의 체인망을 꼼꼼히 구축했다. 일종의 내부폭력 시스템이다. 오랜 외적 평화 가운데 내부의 폭력이 일상화된, 서글픈 아이러니다. 조선조 농민들은 중앙정부, 지방토호, 지방관에 이르는 몇겹의 착취 밑에 예종되어 있었고, 양반 사대부는 몇몇 관념적 당쟁을 제외하고는 전 국토에서 지배자로 이해 관계를 철저히 같이 했다. 농민은 어디에도 숨구멍을 만들 수 없었다. 착취에 지친 이들이 종종 울릉도나 도서벽지로 숨어들곤 했는데, 이마저도 공도정책으로 섬을 수시로 소개해버린지라 착취체제를 뚫을 수 없었다.
요는 일본 같은 상시 전쟁 국가는 거의 모든 면에서 조선이 겪은 평화 시대의 내부 폭력상과 체질을 달리했다는 얘기다. 그들에겐 승과 패, 사와 생이라는, 결과값이 또렷한 전쟁기의 산술적 합리성이 뼛속 깊이 베어 있다. 이런 류의 인간들에게 ‘명분’이란 잘 쳐줘 봤자 병법서에나 나오는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 상무정신이며 실용정신이다. 한창때 일본 영토 내 조총이 전 유럽의 조총 숫자보다 많았다니 말 다한거다. 반대로 전쟁을 체질화하지 않는 조선은 다 무너져가는 사대의 의리나 명분 따위에 몰두했다. 조선은 당위의 세계, 윤리의 엄숙에만 익숙했다. ‘라이샤워’가 말했듯, 조선 유교의 극단화, 경직화는 모든 논의를 도덕적 사악함으로 몰아갔다. 합리는 숨 막혀 죽어버린지 오래였다.
대표적 사례가 병자호란의 참화다. 이 전쟁은 그야말로 어떤 바보도 피할 수 있는 사건이었으나 멍하게 앉아 옳음과 대의나 논하면서 패망을 자초하고 말았다. 폭력적 세계의 실감을 모르는, 요컨대 책으로 세상을 품평하는 조선의 문약한 지도자들은 필히 제 나라를 전쟁에 휩쓸리게 하고야 만다. 관념론자들이 지배하는 세계의 숙명이다. 이 비극의 프로세스를 일찍이 파악한 율곡 같은 이는 ‘기둥을 바꾸면 서까래가 내려앉고 지붕을 고치면 벽이 무너지니 이야말로 나라가 나라가 아니옵니다’라고 상소했다.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을 얘기다. 전국토를 점거한 양반 사대부에게 ‘경쟁’이나 ‘혁신’이니, rebuilding이니, 다 식겁할 소리들이다.
시계를 오늘날로 돌려보자. 한국의 대통령은 언젠가 일본 총리 면전에서 ‘일본은 동맹 아니’라고 선언했다. 자신감으로 가득찬 적대이며, 우호의 종언, 선전포고 같은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같은 못 말리는 괴짜도 그런 소리는 트위터에서나 쏘아붙인다. 남의 나라 면전에서 못한다. ‘넌 내 벗이 아니다’라는 식의 말이라니. 그리고 난 얼마 후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 국가', 그러니까 무역 우대국 리스트에서 제외시켜버렸다. 충격은 즉각 왔다. 보복의 논리는 너무나 깔끔하여 무서울 지경이다. 한국 측이 동맹이 아니라고 야박한 소리를 했으니, 그렇담 무역과 인허가에서 누리던 뭇 동맹의 특혜도 없다는. 심플하고 쿨하다. 멀찍이 제 3자인 남의 나라에서 보면 so what?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하다. 경우의 수를 다 따지고 돌려보고 내놓는 한방은 너무나 아프다. 솔직해지자. 우리는 예상을 못했다. 그리고 나는 글로써 지금 묻는다. 왜 우리의 문약한 리더들은 예상을 못했는가. 율곡과 류성룡의 물음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누구라도 답해달라.
설마설마하며 느긋이 호기 부리다 타격을 입고서야 뒤늦게 분통하고 허겁지겁 수를 찾는 광경. 나는 이런 느긋함과 무대책의 프로세스가 참으로 익숙하다. 조선조 사대부들의 우중충한 멘탈리티에 한껏 들어있는 정신성이다. 합리, 현실감, 효율과 정밀, 정확성에 관해 하염없이 무심했던, 그저 느린 붓글씨나 쓰며 공맹의 도를 논하던 망상가들의 제스처 아닌가. 반대로 일본이라는 지독한 리얼리스트들로 가득한 나라는 뭇 갈등상을 쥐죽은 듯 참으며 전략적 수를 셈하는데 익숙하다. 상대의 아픈 곳을 일격에 베어버리는 서늘과 잔인, 침착한 싸움의 질성은 상시 전쟁국가의 특질이다. 그들은 싸움을 체질화한 이들이며 질 법한 게임에는 넙죽 엎드리고, 반대로 이길 상대에게는 가장 정확한 타이밍까지 기다려 일격을 가한다. 전쟁에 사력을 다하고 죽어서야 멈춘다. 이들은 지독스런 무한동력장치들이다.
나는 일본이라는 전쟁국가가 내재한 잔혹성, 극단의 미학인지 광기인지를 경계하고 싫어한다. 자유주의자의 질성과 근본적으로 달라서 그렇다. 하지만 느긋하고 무대책의 상태로 관념의 전쟁만 치르다 백성의 삶을 파국으로 모는 조선조 사대부적의 지독한 느긋함 또한 경멸한다.
오늘 청와대 민정수석이 동학 때의 ‘죽창가’를 인터넷에 올렸다고. 목 뒤로 닭벼슬 같은 소름이 돋는다. 나 같은 밑자락의 인생도 아닌 거창한 민정수석의 자리에 있는 분께서 그런 소리를 한다. 세계관 자체가 150년전 인식이다. 유시민이라는 이는 ‘아베가 좋으면 일본으로 가라’고 으름장을 했다. 호시절, 똘레랑스니 사회적 자유주의니 온갖 에펠탑 곡선 같은 우아한 관용을 뽐내던 이가 갑자기 스탈린에 마오쩌둥으로 돌변했다. 배척과 순혈론의 20세기적 전체주의자 흉내를 내는 자칭 자유주의자시라니. ‘모든 시대는 그 시대의 신이 있다’는 랑케의 말을 나는 공포스럽게 곱씹는다. 지금 이 시대가 섬기는 신은 누구인가. 그 신은 과연 어떤 표정과 낯을 지닌 존재인가.
뭐든 궁지에 몰리면 씻어 선명해진 본색이 드러내는 법이다. 요새 나는 내 머리 위의 군상들이 내비치는 화장기 없는 민낯에 깜짝깜짝 놀란다. 어쩜 우리는 너무도 위험한 무언가를 머리 위에 얹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이 시대를 겪는 한국인으로서 실존적 위기감을 돋아나게 한다.
나는 요근래 공포가 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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