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1

2016 잊힌 강제징용자 800만…이제 8천명 남았다 - 매일경제

잊힌 강제징용자 800만…이제 8천명 남았다 - 매일경제

잊힌 강제징용자 800만…이제 8천명 남았다
日해군부대 끌려갔던 선태수 옹의 눈물
예산없다, 피해입증 힘들다…평균 90세, 생존자 점점 줄어
"우리도 비극적 역사의 피해자, 日정부·기업 꼭 사과했으면"
연규욱 기자입력 : 2016.08.14



◆ 광복절 71주년 ◆


벌써 70여 년이 훌쩍 지나버렸지만, 1944년 대구직업학교(현 대구공업고등학교)를 다니던 18세 청년 선태수 씨는 꿈 많던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해 1월 20일 일본군의 포차에 강제로 실린 뒤 일본 규슈 가고시마현행 배를 타면서 소박한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훈련소에서는 일본 교관들한테 매일같이 두드려 맞기 일쑤였고, 이후 배속된 해군 정비부대에서는 1년간 힘겨운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그는 "힘든 노역에서 일본인 교관 눈 밖에 나면 내무반 전원이 밥을 굶고 얼차려를 받는 게 다반사였다"고 말했다. 기지에 갑자기 미군 폭격이 떨어지면 조선인 동료들 시신이 사방으로 조각나 튀었고 이런 공포를 이기지 못해 끝내 스스로 목을 맨 동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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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은 해방 이후에도 순탄하지 않았다. 해방을 한 달 앞둔 상황에서 부대 내 비행기 폭발사고로 인한 머리 부상 후유증은 그를 오랜 시간 괴롭혀왔다. 또 대부분 심각한 전후 후유증을 겪었던 탓에 정상적인 직장생활이 버거웠다.

선씨처럼 강제로 군부대에 징용되거나 일본 군수기업에 징용돼 착취당했던 노동자는 무려 800만명에 이른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이행에 따라 일본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았던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 사망·부상 피해자들에게 1인당 30만원씩 위로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이때 혜택을 받은 이들은 전체 강제징용자의 0.1% 남짓한 8500여 명에 불과했다. 일본이 보상금으로 내놓은 돈 3억달러(약 3300억원) 가운데 단 24억원만 징용 피해자들에게 돌아갔고 나머지는 국가 기간산업 육성에 사용됐다.

뒤늦게 정부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마련해 2008년부터 강제징용 피해자 신고를 다시 받아 총 11만3000여 건을 접수했다. 이 중 피해가 입증된 7만3000여 명에게 위로금이 지급됐다. 강제징용 중 사망자는 2000만원, 부상자는 장해 정도에 따라 300만~2000만원을 유족에게 위로금으로 지급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모든 피해자들에게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관계자는 "강제노역으로 인한 부상임을 직접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전체 부상자의 단 0.1%만이 위로금을 지급받았다"고 설명했다. 선씨와 같이 강제징용을 당했더라도 특별법이 정한 장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부상인 경우에는 아예 위로금 신청 대상에서 제외됐다.

선씨과 같은 생존자들이 정부로부터 받고 있는 것은 '의료지원금' 명목으로 1년에 한 번 80만원이 전부다. 그나마 2008년 당시 2만5000명이었던 생존자 수는 2016년 현재 8000명으로 줄어들었다. 나이가 들어 매해 수천 명씩 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현재 평균연령은 약 90세다.



선씨는 "보상은 둘째치고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월급'이라도 다시 되찾았더라면 우리 같은 강제노역 피해자의 삶이 이렇게 피폐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제노역자들의 임금은 복무 당시 일본 은행에 강제적으로 공탁됐고 해방 후 대다수는 빈손으로 고향 땅을 밟았다.

선씨는 "질긴 목숨이 지금껏 살아남아 또 한 해를 맞았지만 누구도 우리가 지옥 같은 곳에서 겪었던 피해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도 '일본군 위안부'처럼 일제의 강압에 의한 또 다른 비극적 역사의 '피해자'임을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꼭 인정하고 사과를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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