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18. 00:03
1 핵심 김덕영 선생님은 단적으로 한국의 자본주의 정신은 박정희국가가 주조하고 정주영기업이 구현
했으며 한국 개신교가 성화聖化시켰고 이 상징의 정점에는 산업개발현대출신장로 이명박이 있다고 하
십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정신은 책의 제목인 에리식톤 콤플렉스로 규정되는데 이는 그리스신화에서 걸신
이 들려 영원한 배고픔에 빠져버린 에리식톤의 지칠 줄 모르는 허기가 한국의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겁니
다 에리식톤한국 자본주의 정신을 만들어낸 기아의 여신 리모스국가재벌교회를 탐구하는 것이 주제입
니다
2 저자 이 책은 김덕영 선생님께서 이론없는 사회학을 비판하시면서 이론을 통해 한국사회의 근대성을 분석
한 <환원근대>근대화의 다양한 영역이 모두 경제로 환원되고 근대화의 주체도 시민이 아닌 국가와 민족으
로 환원된 근대성 그리고 루터와 종교개혁을 통해 서구 근대의 시원始原에 관해 다룬 <루터와 종교개혁>
의 연장선에 있는 연구라는 점을 기억하시면 좋으실 것 같고요 저 책들을 읽지 않으셨어도 이 책을 읽으시는
데 무리는 없습니다만 읽으시면 더 풍성하게 책을 보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3 내용 한국사회의 근대화와 근대성에 관한 고찰이 목적인 이 책은 강박적 성장에 긴박된 한국의 자본주
의 정신을 탐구합니다 준선진국에 되었음에도 여전히 배고픈 이명박은 에리식톤 콤플렉스의 전형이며 허
기의 근원은 국가재벌개신교입니다
서론의 가설을 사회학계보학적으로 논증하기 위해 1부사회학 1장에서는 연구의 기반이 되는 막스 베버
의 자본주의 이론을 간략하게 설명합니다+프로텐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관한 요약으로 매우 훌
륭해요 그리고 여기서는 자본주의 정신자본주의적 경제체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채색하고 추동하는 의
식 사고방식 윤리규범 행위유형 생활양식 사회관계를 포괄이 연구대상임을 구체화하죠 이어지는 2장에
서는 한국 자본주의와 그 정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본격적으로 탐구합니다 역사적인 사료를 가지고 식
민근대 시기의 자본주의를 다루고 한국 자본주의 정신이 만들어진 1960년대 이후의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
의 탄생을 그려내고 이를 통해 한국 자본주의 정신의 개념을 구성합니다
계보학으로 이어지는 2부에서는 가진 연구의 한계로 인해 국가재벌기독교를 다 다루지 못해 박정희정주영
을 중심으로 다루고 개신교에서는 조용기를 중심으로 다루기는 하지만 그만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습니
다 이 부분에서는 한국 자본주의 정신의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박정희와 정주영에 관한 케이스 스터디가 진행
되고 순서대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됩니다 개신교는 경제주체가 아니기에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를 정당화
하고 신성화하며 그 자체가 국가를 통해 기업화되며 성장하는 과정을 추적합니다 이것이 책의 중심이고 맺
음말을 통해서는 간략하게 해결책을 논합니다
5 느낀점 이 책의 경우에는 김덕영 선생님이 서론에서 한계를 밝히시듯 아직은 완성된 이론이기보다는 앞
으로의 연구를 위한 예비적 고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여러 사람들에게 읽히고 논쟁
되고 비판도 받으며 보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자본주의는 보통 맑스주의에서 규명하곤 했는
데 베버를 통한 한국 자본주의 정신의 규명이라는 데에 큰 의의가 있을 거라고 보고요 저는 참 훌륭한 책이
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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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식톤 콤플렉스
바람의 전설
2020. 2. 20. 21:10
이웃추가
그리스∙로마신화에 에리식톤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신들의 저주를 받아 먹어도 먹어도 배고픔이
꺼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자신의 전재산을 다 팔고 심지어는 자신의 딸까지도 팔아서 먹을 것을 챙
겨도 그는 만족할 수 없었다. 결국 에리식톤은 자신의 몸까지 다 뜯어먹어 죽음에 이르면서도 허기
를 채워야 한다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독일 카셀대학의 김덕영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의 정
신을 에리식톤에 빗대어 에리식톤 콤플렉스라고 한다. 지난 날 우리는 못 살고 허기진 시절을 극복
하기 위해 ‘잘 살아보세!’라는 표어를 내걸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열심히 뛰고 뛰었다. 그리
하여 애초 목적하였듯이 허기를 채우고 가난을 극복하였지만 한 번 발동된 욕망은 멈추지를 않는다.
김교수는 자신의 책 <에리식톤 콤플렉스>에서 이를 목포에서 서울로 가는 열차 여행에 비유하며 이
렇게 말한다.
목포에서 익산, 대전, 조치원, 천안 등에 도착하면 해당 도시와 그 주변 지역을 관광하면서 자연, 역
사, 문화, 예술 또는 특산물을 체험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오로지 도착 그 자체가 목표이며, 따라
서 한 역에 도착하면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다음 역을 향해 출발해야 한다.... 중단 없는 전진과 휴식
없는 노력을 통해 100달러 역, 200달러 역으로, 300달러 역으로 달려야 한다. 종착역에 도착하면
다시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데, 이때에는 역명이 1,000달러 역, 2,000달러 역, 3,000달러 역 등으
로 바뀔 것이다. 결국 열차를 타고 목포에서 서울로 가는 개인들의 존재는 철저하게 생산적 노동과
그 결과의 양적 표현, 즉 돈으로 환원되었다. 이렇게 해서 한국 자본주의에 독특한 에토스, 즉 한국
자본주의의 정신이 생성되었다. 에리식톤 콤플렉스가 생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에리식톤 콤플
렉스는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극복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1960년대에는 100달러
정도에 불과하던 욕망이 1970년대에는 1,000달러로 커졌다. 그리고 김영삼 정권에서는 1만 달러
로, 노무현 정권에서는 2만 달러로 그리고 이명박 정권에서는 급기야 4만 달러로 커졌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국가는 물론 개인들도 이 에리식톤 콤플렉스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닐까? 욕망은 멈
출 줄을 모른다. 그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깨어있는 정신이 없다면 우리 모두는 욕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욕망에 미쳐 돌아다니는 것이다.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과 대립도 결국은 상대를
더불어 사는 존재로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한 수단이나 욕망 충족을 위해 배
척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러한 욕망을 제어하고 영적으
로 깨우쳐주어야 할 종교도 이런 세속적인 욕망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 같다. 그렇기에 종단 내 이권 1 1
에만 집착하여 싸움을 벌이고, 교회의 크기와 교인들의 숫자에만 집착하며 물질적 축복을 구하는 교
인들에 영합한다. 그래서 김교수는 교회가 돈과 물질적 재화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신의 축복으로
정당화하고 신성화하며 에리식톤 콤플렉스를 성화(聖化)한다고 한다. 종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
래 세대를 올바로 이끌어야 할 교육도 성적 지상주의에 경쟁에서 살아남는 교육만 중시하지, 이런
거대한 욕망의 흐름에서 깨어있는 자아에 대한 교육에는 소홀히 한다.
혹자는 그럴지 모른다. 이 치열한 국가 경쟁 시대에 자칫 방심하면 우린 선진국가로 향하는 대오에
서 탈락하는데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느냐, 아니? 벌써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 아니냐
등등.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달려야 하는 것은 언제쯤이나 멈출 수 있을까? 에리식
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경주는 죽어서야 멈춘다. 에리식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라
는 것은 나태해지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 욕망의 노예가 아닌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간,
깨어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글을 접으려는 순간, 문득 요즘 사회를 공포에 물들게 하는 신종 코
로나 바이러스도 결국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괴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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