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한 장의 사진, 무엇을 담아내고 있는가 >
1. 대통령 후보로 나오겠다는 선언을 한 ‘최재형 캠프’에서 최근 제공한 사진을 보았다. 가족 모임에서 ‘국민 의례를 하면서 애국가를 4절까지 완창하는 게 가족의 전통’이라고 한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지만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온 가족이 태극기를 향해서 국민 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을 보니 서너 살 되는 3명의 아이까지 ‘애국적 예식’을 따라 하고 있다. 이 사진에서 내 마음에 가장 걸리는 부분이다. 이미 큰 어른들은 속으로 불평을 하든 동의를 하든 저러한 ‘예식’을 통해서 이미 형성된 가치체계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층적 가치체계가 구성되고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 이러한 ‘예식’을 통해서 그 아이들이 고착시킬 국가관, 종교관, 그리고 애국의 의미가 어떻게 영향을 받을까. 마음에 걸린다. 이러한 '사적 예식'이 지금도 도처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런데 가족이 모일 때마다 국민 의례를 하고 애국가를 1절도 아닌 4절을 부르는 이러한 ‘가족의 전통’을 누가 설정하고 강요했을까. 가족 구성원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가족의 ‘대표’라고 하는 사람이 ‘선언’을 하고, 모두가 따르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렇기에 저러한 ‘예식’은 지나치기 참으로 어려운 사진이다. 이 사진을 단지 ‘개인적이고 사적인 집안일’이라고 보는 것은, 공적 영역에 들어선 사람의 위치가 무엇인지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단순한 듯한 사진은, 그가 지닌 국가관, 그리고 그에 따른 애국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늠하게 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열린 민족주의·애국주의’가 아닌, ‘폐쇄적 민족주의·애국주의’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3. 공적인 영역에서 정치인으로 일하고자 하는 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낼 때, ‘이것은 단지 나의 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사치’는 이미 사라진다. 그것이 자신의 가정에서 예배를 보는 장면이든, 국민 의례를 하면서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예식이든 사적 공간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우리가 우려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그러한 장면이 의도적으로 공적 영역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 ‘사적 예식’은 ‘공적 토론’의 장으로 전이된다. 개인의 가정에서 ‘가족 전통’이라고 불리면서 오랜 시간 이어 온 ‘예식’이란, 그 집의 중심부를 이루는 사람의 인생관, 종교관, 가치관, 국가관 등 다양한 가치 체계를 담아내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4. 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하는 정치인이 등장하면, 심히 우려스럽다. 그 ‘독실함’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독실함’은 개인의 종교관만이 아니라, 인간관, 국가관 등 모든 것을 왜곡된 도그마로 집약시키는 성향과 연계되어 있곤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한 '장로’였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 독실한 신자라는 황교안 ‘장로,’ 그리고 최재형 ‘장로’만이 아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독실한 신자’였다. 민주주의 정치를 퇴보시키고 파괴한 트럼프 미국 전대통령도 필요할 때마다 성서를 가슴에 들고서 ‘기독교적 예식’을 했다. 그 예식을 하면서, 기자들에게 사진 찍게 하여 근본주의자 기독교인들에게 왜곡된 정치관, 국가관을 주입시키는데에 종교를 이용하곤 하는 ‘기독교 신자’다. 이들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암묵적으로 자신의 종교관을 정치적 프로파겐다의 토대로 이용하곤 한다.
5. 나는 ‘최재형’이라는 한 개인에 대하여는 전혀 모른다. 그렇기에 그를 한 개인으로 우려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적 영역에서 개인적으로는 두 아이를 입양하고 장애인 친구를 돕는 등 여러가지 의미로운 일과 타자를 위한 봉사를 해 온 ‘선량한’ 사람일 수 있다. 그런데 정치의 영역에 들어선 사람은 개인적인 품성이나 선량함에도 불구하고, 그 국가관, 종교관, 인간관 등에서 도그마화된 왜곡된 이해를 지니고 있을 때, 그의 정치적 지도력은 많은 주변부인들의 삶을 파괴하는 폭력적 구조로 이끌 수 있다.
6. 나치 시대에 유대인,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등에 대한 박해와 살상이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가능했던 것은, 그러한 ‘인간에 대한 범죄’를 ‘범죄’로 보지 못하고 그 도그마화된 정치관과 종교관에 동조하고 협조한 ‘선량하고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무수한 개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인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역사적 교훈이다.
한 정치인의 국가관, 역사관, 인간관, 종교관 등은 사적인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이미, 매우 중요한 사회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이 단순한 듯한 한 장의 사진이 내게 우려하게 만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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