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06

강남순 이 한 장의 사진, 무엇을 담아내고 있는가

Facebook

< 이 한 장의 사진, 무엇을 담아내고 있는가 >
1. 대통령 후보로 나오겠다는 선언을 한 ‘최재형 캠프’에서 최근 제공한 사진을 보았다. 가족 모임에서 ‘국민 의례를 하면서 애국가를 4절까지 완창하는 게 가족의 전통’이라고 한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지만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온 가족이 태극기를 향해서 국민 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을 보니 서너 살 되는 3명의 아이까지 ‘애국적 예식’을 따라 하고 있다. 이 사진에서 내 마음에 가장 걸리는 부분이다. 이미 큰 어른들은 속으로 불평을 하든 동의를 하든 저러한 ‘예식’을 통해서 이미 형성된 가치체계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층적 가치체계가 구성되고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 이러한 ‘예식’을 통해서 그 아이들이 고착시킬 국가관, 종교관, 그리고 애국의 의미가 어떻게 영향을 받을까. 마음에 걸린다. 이러한 '사적 예식'이 지금도 도처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런데 가족이 모일 때마다 국민 의례를 하고 애국가를 1절도 아닌 4절을 부르는 이러한 ‘가족의 전통’을 누가 설정하고 강요했을까. 가족 구성원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가족의 ‘대표’라고 하는 사람이 ‘선언’을 하고, 모두가 따르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렇기에 저러한 ‘예식’은 지나치기 참으로 어려운 사진이다. 이 사진을 단지 ‘개인적이고 사적인 집안일’이라고 보는 것은, 공적 영역에 들어선 사람의 위치가 무엇인지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단순한 듯한 사진은, 그가 지닌 국가관, 그리고 그에 따른 애국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늠하게 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열린 민족주의·애국주의’가 아닌, ‘폐쇄적 민족주의·애국주의’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3. 공적인 영역에서 정치인으로 일하고자 하는 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낼 때, ‘이것은 단지 나의 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사치’는 이미 사라진다. 그것이 자신의 가정에서 예배를 보는 장면이든, 국민 의례를 하면서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예식이든 사적 공간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우리가 우려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그러한 장면이 의도적으로 공적 영역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 ‘사적 예식’은 ‘공적 토론’의 장으로 전이된다. 개인의 가정에서 ‘가족 전통’이라고 불리면서 오랜 시간 이어 온 ‘예식’이란, 그 집의 중심부를 이루는 사람의 인생관, 종교관, 가치관, 국가관 등 다양한 가치 체계를 담아내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4. 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하는 정치인이 등장하면, 심히 우려스럽다. 그 ‘독실함’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독실함’은 개인의 종교관만이 아니라, 인간관, 국가관 등 모든 것을 왜곡된 도그마로 집약시키는 성향과 연계되어 있곤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한 '장로’였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 독실한 신자라는 황교안 ‘장로,’ 그리고 최재형 ‘장로’만이 아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독실한 신자’였다. 민주주의 정치를 퇴보시키고 파괴한 트럼프 미국 전대통령도 필요할 때마다 성서를 가슴에 들고서 ‘기독교적 예식’을 했다. 그 예식을 하면서, 기자들에게 사진 찍게 하여 근본주의자 기독교인들에게 왜곡된 정치관, 국가관을 주입시키는데에 종교를 이용하곤 하는 ‘기독교 신자’다. 이들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암묵적으로 자신의 종교관을 정치적 프로파겐다의 토대로 이용하곤 한다.
5. 나는 ‘최재형’이라는 한 개인에 대하여는 전혀 모른다. 그렇기에 그를 한 개인으로 우려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적 영역에서 개인적으로는 두 아이를 입양하고 장애인 친구를 돕는 등 여러가지 의미로운 일과 타자를 위한 봉사를 해 온 ‘선량한’ 사람일 수 있다. 그런데 정치의 영역에 들어선 사람은 개인적인 품성이나 선량함에도 불구하고, 그 국가관, 종교관, 인간관 등에서 도그마화된 왜곡된 이해를 지니고 있을 때, 그의 정치적 지도력은 많은 주변부인들의 삶을 파괴하는 폭력적 구조로 이끌 수 있다.
6. 나치 시대에 유대인,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등에 대한 박해와 살상이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가능했던 것은, 그러한 ‘인간에 대한 범죄’를 ‘범죄’로 보지 못하고 그 도그마화된 정치관과 종교관에 동조하고 협조한 ‘선량하고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무수한 개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인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역사적 교훈이다.
한 정치인의 국가관, 역사관, 인간관, 종교관 등은 사적인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이미, 매우 중요한 사회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이 단순한 듯한 한 장의 사진이 내게 우려하게 만드는 이유다.
May be an image of 5 people and text that says "2019년 최재형 전 감사원장 가족이 명절 모임에서 국민의례를 하는 모습. 맨 뒷줄에 서 있는 사람이 최 전 원장. 가족 모임때는 국민의례를 하고, 애국 가를 4절까지 완창하는 게 최 전 원장 가족의 전통이다. [최재형 캠프 제공]"
Park Yuha, Seokhee Kim and 1.8K others
43 comments
340 shares
Like
Share

43 comments

  • 김진영
    교수님~ 저도 이 사진을 보면서
    목회자로서 인간관에 대해 생각했고
    목회도 결국 인간론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3
    • Like
    • 1 d
    • Edited
  • 문아경
    저도 이 사진 보고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이렇게 정리해주시니 생각 보다 심각하네요.
    3
  • Won Suk Choi
    교회장로시니 전도나 하고 사는게 맞을듯합니다. 자신이 구원자인양 대한민국이 악의 구렁텅인양 인식하는 최재형. 얼굴과 음성에 독선과 고집이 배어있네요.
    12
  • Jeongwoo Lee
    저도 독실한 신자라는 정치인를 보면 걱정이 드는데, 그 이유를 잘 적어주셨네요.
    11
    • Like
    • 1 d
    • Edited
  • 송요훈 
    Follow
    가부장 독재, 전체주의적 사고... 숨이 막힙니다. 주입식 세뇌교육, 외골수 엘리트의식의 심각한 부작용을 보는 것 같습니다.
    31
    • Like
    • 1 d
    • Edited
    • 강남순
      송요훈 네, 전형적인 '가부장'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란 한 가정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가부장, 그리고 국가의 가부장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네요.
      12
  • 구기욱
    감사합니다 ~
    2
  • SiChan Lee
    한 페친은 이 사진을 보고 '괴랄하다'는 묘한 표현을 하시더군요. 저 또한 저 사진을 보고 '기괴'하고 '지랄'스럽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저 가족의 어린 구성원일수록 지극히 편향된 가치관을 지니고 평생을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파시즘'의 굴레에서 어렵사리 빠져나온 우리 사회의 한 구석에 아직도 저런 풍경이 남아 있다는 것이 실로 '괴랄'스러울 따름입니다.
    14
    • Like
    • 1 d
    • Edited
    장병선 replied
     
    3 replies
  • Kyeounghee Lee
    저는 이 사진이 우스꽝스럽다고 느낍니다. 애국가가 필요한 건 나라가 형체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결속력을 갖게 하는 의식행위 아닌가요?
    가족은 존재하고 실존하고 혈연으로 확실하게 저렇게 많이 모여 있는데 어떤 더 확증이 필요해서 애국가를 아이까지 서서 4절까지 부르게 가족에게 압박을 가하는 걸까요?
    최재형 가족은 누구라도 이걸 왜 해야 하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도 없나본데요~~ 지독한 독재를 이루는 가족일 뿐 아닌가요?
    국민학교 졸업장만을 가진 사람도 저렇게 민주주의가 실종된 가정을 이루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 웃픕니다.
    14
    • Like
    • 1 d
    • Edited
  • Jee-Young An
    제 주변에도 저런 분위기를 가진 가정이 있었지요. 한 마디로 가장의 말 한 마디에 모든 식구들이 이의를 달 것 없이 따라야 하는 분위기 말이죠. 아주 오래된 과거이지만 숨 막힐 것 같던 느낌은 여전히 생생하답니다.
    7
  • JaeHwa Noh
    아..숨 막히는 장면, 군대 열병식 같네요. 참 기독교신자면(할 수도 있겠지만) 저렇게 온가족이 모여 국기에 경례 할 정도는 아닌것같은데. 정당도 아니고..ㅠ..국가에 충성하는게 아니라 그 너머를, 하느님나라를, 생명을 봐야하는데. 국민, 시민,생명보다는 국가주의자인거 같아 우려가됩니다.
    4
    • Like
    • 1 d
    • Edited
  • Susanna Jeong
    사진 한 장에 담긴 수 많은 함의를.이렇게 잘 풀어주셨군요. 고맙습니다. 미처 생각치 못한 의미들을 이렇게.상세하게 풀어주셔서요. 또한 한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배우게됩니다.
    9
  • Sungae Kim
    늘 글을 통해 정리해 주셔서 표현을 할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니 감사해요. 애국이 국민의례에서 나오는것이 아니지요. 인간의 인간됨이 회복 되길 바랍니다.
    7
    • Like
    • 1 d
    • Edited
  • Yoona Kim
    공감 동감 100입니다^^ 저도 사진을 보며 모골이 송연했는데 선생님께서 일목요연하게 써주셨네요. 감사합니다.
    7
    강남순 replied
     
    1 reply
  • 박산호
    너무너무 공감합니다, 선생님!
    1
  • 박장용
    교수님 감사합니다~^^>
    2
  • 김양훈
    완장만 차면 되겠네!
    2
  • Keun Reu 
    Follow
    슬픕니다. 교수님 옆집으로 이사가고 싶어요.ㅠㅜ
    12
    Jong-il Park replied
     
    2 replies
  • 허윤정
    독재 빨갱이가 아니고서야...
    1
  • Jong-Seong Park
    잘 읽었습니다. 교육과 의례를 통해 도그마를 구축하는 일그러진 풍경입니다.
    4
    강남순 replied
     
    1 reply
  • 신동현
    며칠 전 저 사진을 보고 뭔가 '섬짓함'을 느꼈었는데요. 교수님께서 잘 풀어주셨네요. "나치시대 '인간에 대한 범죄'를 보지 못하게 하는 도그마화된 정치 종교관"... 글 공유합니다.
    9
    강남순 replied
     
    1 reply
  • Young-kyoung Yoo
    이전부터 최근까지 최재형, 윤석열이 하는 말과 행동들을 보면.. 왠지 파시스트같은 냄새가 피어 오릅니다.. 정치에 대한 철학은 물론이고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도 없고, 오로지 천박하고 구태의연한 일그러진 엘리트주의로 충일한 시대의 퇴행적 모습이 보입니다. ㅠㅠ
    16
    • Like
    • 1 d
    • Edited
  • 김원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겠지요. 하나님의 자리에 버젓이 앉아서요.
    6
    강남순 replied
     
    1 reply
  • Young Mae Kim
    가족 명절 모임하면서 나중에 꼭 쓸 데가 있을테니 증명으로 남기자며 찍었을까요? 애국가가 스피커로 나오면 가던 걸음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어야했던 80년대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4
  • Eun Y. Park
    걱정되지요. 아직도 이런 의식구조를 가진자들이 판치는 현실이라니.. 윤석렬도 거의 같은 정신구조더군요..
    이런자와 최근 3-4년동안 광화문과 테헤란로 일대의 폭력적인 태극기부대가 만나고 기레기들이 같이 떠들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정도만이 아니라 극우 파쇼이즘이 현실화 될 겁니다.
    7
    • Like
    • 1 d
    • Edited
  • 정은진
    사진을 보고 너무 답답했어요
    4
  • 민성식
    저걸 자랑이라고 내세우는 게 정말 역겹습니다. 보통의 집이라면, 아이들이 싫다고 뛰쳐나갔을 것입니다...
    5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