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8

황대권 아프가니스탄 함락 ·글에 대한 댓글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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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 
댓글을 보고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통해 아프간 사태를 보는 견해를 다양하게 보여주었다. 동의하는 사람, 안타까워하는 사람, 비난하는 사람 등등. 가만히 앉아서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보통 사람들의 인식수준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먼저 ‘민족의 자주권’이라는 말에 대한 해석이다.

민족이라는 말처럼 규정하기 어려운 말도 드물다. 여기서는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사람’을 통칭하는 의미로 썼다. 다민족 또는 부족 연합이라 민족이라는 단어가 적합지 않다는 의견에는 일리가 있지만,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 이래 지금까지 외세의 침탈과 전쟁으로 인해 ‘국민국가건설’이라는 ‘nationalism’의 과제를 완수하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의 상황에 동시에 적용하려고 일부러 ‘민족’이라는 말을 썼다. 민족의 자주권은 영어로 ‘sovereignty of a nation-state’이다. 여기서 nation은 우리 말로 국민, 민족, 국가 등으로 번역되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 달리 쓸 수 있다. 오해를 피하려면 ‘아프가니스탄의 자주권’이라고 써야 했다.

예상은 했지만 ‘민족’ 또는 ‘자주권’ 문제를 철 지난 낡은 개념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 놀랐다. 아마도 분단의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과 디지털 세계화의 영향이 크지 않나 싶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가 분단상태에 있는 한 외면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정확한 통계치는 모르겠으나 차라리 통일하지 말고 남북이 각자 다른 나라로 살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통일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것 같다.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와는 상관없이 분단유지 비용이 너무도 많이 든다는 것이다. 전쟁 대비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사용하면서 민족이나 통일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모순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북한을 설득해 대규모 평화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 경우 동맹국 미국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자주권’ 문제가 제기된다.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나 성주의 사드기지는 분명 우리가 먼저 짓자고 한 것이 아니다.
어떤 분이 요즘의 세계화된 젊은이들에게 민족이나 자주권 얘기를 하면 꼰대 소릴 듣는다고 댓글을 달았는데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도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자주권은 개인 차원에서 시작하여 가정-마을-지역공동체-국가 차원에서 행사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자주권이라 할 수 있다. 젊은시절은 한 생애에 있어 가장 책임의식이 없는 자유분방한 시기이다. 그들은 개인 차원의 자주권에 기초하여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대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가정을 갖고 마을주민이 되고, 지역의 일꾼이 되고 국가의 일원이 되면 자주권 행사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렵다고 하여 더 큰 차원의 자주권을 무시하면 그냥 ‘개인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식민지 시절 제국주의자들은 국가의 자주권을 강탈하고 식민지 백성에게 근대적 의미의 자유를 허용했다. 개인 차원에서 볼 때 봉건시대와 비교하면 확실히 진보요 발전이다. 식민지 통치자들은 그 자유를 미끼로 식민지 백성들이 자기 나라의 전통과 역사를 혐오하게 만들었다. 이슬람 과격주의는 여기에 대한 극단적 저항이다. 사람들은 이슬람이 원래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중세시절에는 이슬람이 서구 기독교보다 훨씬 관용적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다른 종교가 발도 들이지 못했지만 이슬람권에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했다. 이슬람이 과격해진 데에는 19-20세기에 전개된 제국주의 세계분할 통치와 관계가 있다. 그 원흉이 영국과 미국이다. 이들은 공산권의 확대와 아랍권의 단결 등을 견제하기 위해 이슬람 과격분자들을 발굴하여 키우고 지원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만든 사우디 부족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다. 탈레반도 원래는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었다. 미국이 그들에게 무기를 제공하고 테러의 기술을 가르쳤다. 제국주의자들은 이렇게 이슬람 세계에 과격분자들을 양산하여 퍼트려 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이슬람을 ‘악마화’했다. 우리들이 아는 이슬람 세계는 대체로 서방언론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오랜 세월의 세뇌 끝에 우리는 ‘이슬람=근본주의=테러’라는 공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미국은 철군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슬람 과격분자들을 악마화하는데 더 공을 들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탈레반 정권 아래에서 여성과 아동의 인권이 심각하게 유린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저간의 사정을 보면 충분히 우려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 중이다. 전쟁 상황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한국전쟁 당시 우리가 어땠는지 보면 된다. 우리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동족상잔을 저질렀다. 만약 당시에 인터넷이 있어 학살장면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면 한국인들은 세계인들에게 상종하지 못할 야만인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한 가지만 말하면, 남한 땅에서 인민군에 의한 양민학살 보다 국군 또는 토벌대에 의한 양민학살이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쟁 상황에서 동족을 죽였다 하여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갓 태어난 정권을 끊임없이 저주한다고 하여 그 나라의 인권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 불행하게도 한반도의 두 정권은 서로에 대한 악마화를 통해 정권을 유지했고 그런 상태가 70년이나 지나고 있다. 조금 먹고 살만해졌다고 우리가 70년 전에 겪은 일을 지금 겪고 있는 탈레반 정권을 악마화하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같은 싸이클에 머물고 있다는 증거이다. 끊어야 한다!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들과 연대하여 아프간의 신정부가 학살 없이 평화롭게 사회를 재정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회리 and 118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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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석중
    글 잘 읽었습니다.
    아프카니스탄에 참 평화가 깃들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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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h
  • 최정윤
    깊이 공감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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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금남
    많은 걸 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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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준
    크게 공감합니다. 이전 글에 달린 댓글을 보니 끔찍한 것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유행이 돌고 돌아도 과거와 똑같은 유행이 아니듯, 역사도 돌고 돌지만 과거가 되풀이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20년 만에 다시 권력을 쥔 탈레반도 벌써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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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레반, 우리 달라졌어요'…TV서 여성 앵커와 마주 앉아 인터뷰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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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윤순
    아프카니스탄이 현명하게 자주권을 세워가기를 그리고 빨리 평화가 정착되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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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철의
    탈레반이 아프간에서 다시 집권한 것이 그렇게 마음놓고 축하하거나 기뻐할 일이냐,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탈레반에 의한 여성인권 유린이 전쟁중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인가? 서방언론이 탈레반을 일방적으로 매도해서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슬람이 본래 그런 집단이 아니라 하는데 탈레반의 현재나 과거 행적이 어떤가 하는 점을 봐야겠지요.
    저는 탈레반이 어떻게 하는지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9.11테러를 보고 잘했다고 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봤는데 님은 물론 아닐 것입니다.
    악마와 싸운다고 해서 모두 천사가 아니며 싸우다 악마를 닮아서도 안될 것입니다. 탈레반의 과거 행적에 대하여 악마가 있으니까, 악마가 악선동한 거니까, 전쟁중이니까 이러면 안되지요.
    미국에 대하여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미국은 말 그대로 악의 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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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종순
    뭐라해도 스스로 평화로운 나라로 만들어가길 기도합니다. 자주권을 가진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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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niel Lee
    자주라고 쓰고 세뇌라고 읽죠. 명예살인을 반대하는 비율이 27%밖에 안되는건 그들의 민족적 자주에 해당하는 걸까요? 아니면 종교카르텔에 의한 세뇌일까요? 자주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 자주라는 것이 강요되고 세뇌된 것이 아닌지부터 따져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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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m Chimin
    인권이 보장된 노예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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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재수
    페북에서 최근에 성지가 된 곳이네요..성지 순례왔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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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ck Jaekuk Han
    생명평화가 있는 나라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Female mayor in Afghanistan says she's waiting for Taliban to 'come ... and kill me'
    NB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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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석수
    자기 생각을 되돌아보지 않고 가던 길 계속 가며 가르치겠다는 심리가 쓸데없이 길고 긴 글로 나타난다는 생각을 해보는 게 좋을겁니다. 낡은 지식에 바탕한 낡은 논리입니다. 뭔가 켕기는 사람이 이런 저런 조각지식 모아 혹세무민하는 법입니다.진리는 복잡한 게 아닙니다. 그런 자세가 빠르게 흐르는 세상사 진리를 따라잡지 못하는 지적 게으름입니다. 죽어서야 비로소 없어지는 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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