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1

정상규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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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규
6ihtShpoinsoredd ·



안녕하세요. 정상규입니다.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며, 출국 전 인사 글을 남깁니다.
2021년 3월 하버드대학교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무릎을 꿇고 모든 감사함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왈칵 나옴과 함께
곧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로부터 5개월.
36살의 나이에 그동안의 활동과 노력을 정리하고
다시 유학의 길에 오르며 여러분께 잠시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버트런드 러셀의 3가지 열정에 매료되었던 한 고등학생이
경찰대학교를 준비하다 경제적 이유로 미국 오리건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저는 문화충격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살면서 만들어진 수많은 경계가 깨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 경계는 때로는 차별, 때로는 한계, 때로는 저의 부족함으로
늘 제 곁을 따라다녔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종차별을 겪고, 미국에서 소수민족 중 하나가 되어
한순간에 민족적 ‘약자’가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19살의 나이. 친구들은 힘껏 캠퍼스의 낭만을 즐길 때
저는 ‘국가의 격’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위상이 곧 한국인의 처우라는 생각이 저를 지배했고,
미국에서 만난 이민자들, 교포들, 용산 미군 부대 안에서 자란 SAHS(서울 미국인 고등학교) 친구와 룸메이트를 하며 한인 정체성에 대해 수많은 밤을 대화하며 지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런 경험과 진솔한 대화의 축적이 저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말입니다.
백인들이 왕따를 시키던 소년원 출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저는 정신적, 심리적 상처가 치유되었고, 위험하다고 어울리지 말라는 해당 백인의 집에 초대받아 집에서 직접 오븐에 구운 쿠키를 함께 먹으며 부족하지만 제가 아는 지식을 가르쳐주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꿈이 없던 비관적인 백인 친구의 입에서 커뮤니티 칼리지(2년제 대학)를 진학해보고 싶다는 말에 눈물이 나더군요.
그 친구의 친구들을 모아 수학과 자연과학을 가르쳐주며
미국에서 만들었던 NGO 단체의 이름은
MASA(Mathematics & Science Association)였습니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려 정관, 회의록, 정기총회를 진행했고
미국 오리건 정부로부터 비영리단체로 승인을 받고 펀딩을 받아냈습니다.
백인 우월주의 집단(KKK)가 만들어지고 활동했던 오리건에서,
식당을 들어갔을 때 모두가 식사를 중단하고 저를 불편하게 바라보던 곳에서, 백인들로부터 인종차별을 당했지만 결국 제가 도운 이들은 소외된 백인 약자들이었습니다. 물론 시간이 흘러 제가 더 도움을 받았고 행복을 느꼈지만요.


이때 한국에서는 유학과 관련하여 <7막 7장>이라는 책이 유행했습니다. 조기유학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던 홍정욱 저자의 책이었죠.
당시 민주당 케네디 대통령을 존경했던 그 순수한 마음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을 거라 믿습니다만, 당시 유학 서적은 소위 ‘나처럼 공부하면 하버드 간다’식의 매우 교만한 자전적 에세이, 자서전 같은 책들만 존재했습니다.
미국에서 NGO를 만들자 자매결연 학교여서 교환학생으로 온 연세대 학생들과 어학연수생, 유학생 후배들이 유학 초기에 필요한 핸드폰 개통, 은행 계좌 개설, 집 또는 기숙사 구하기 등의 도움을 어떻게 제 번호를 알았는지 기가 막히게 연락이 오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당시 NGO를 만든 ‘오빠’니까 기꺼이 도와줄 거라는 ‘동포애’가 피어났나 봅니다. 저도 어수룩한 게 속절없이 도와주다가 현지 유학원 수준에 다다르자 안 되겠다 싶어서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23살에 쓴, 제 인생 첫 번째 책
<미국 유학의 모든 것>이 탄생합니다.
말 그대로, 미국 유학을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제가 직접 미국에서 부딪치며 경험한 것들을
다 알려주는 유학 가이드 북이었습니다.
지금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당시 2009년 책을 쓴다는 건
소수의 엘리트 지식인들이 쓰는 거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NGO를 만들며 느꼈던 문장 하나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부족한 나의 지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저는 11개월에 걸쳐 대학원 진학을 1년 늦추고 책을 집필했습니다. 모두가 말렸던 책.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고, 투입한 시간에 비해 돈도 벌지 못하고. 심지어 출판사가 받아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일. 그러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이런 책이 한 권쯤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를 지배했고 그렇게 몰입했습니다. 결국, 이 책은 유학 분야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오리건 대학교 홈페이지에 제 얼굴이 떡하니 실렸습니다. ‘이제 더는 나에게 묻지 말고 이 책을 봐!’ 라는 마음으로 썼는데 학교 홈페이지에 얼굴이 나오니 연락이 더 오더군요.

 
그 무렵 저는 한국으로 급히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46년생이신 아버지의 당뇨합병증이 심해져서
국제전화로 걸려온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 때문이었습니다.
2013년 30살 언저리의 저는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에 직업군인 장교로 자원입대를 했습니다.
병든 아버지를 부양하기 위해 출퇴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저는 공군임에도 불구하고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에 있는 방공관제부대 중대장으로
발령받게 됩니다. 이곳은 통일전망대 근처로 인근에 화진포호수,
이기붕 별장이 있는 곳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 금강산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저는 군복을 교복처럼 입고 다녔는데 임관하고 얼마 안 된 어느 날 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분을 만납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냄새난다고 인상을 쓰고 심지어 욕도 하더군요. 자세히 보니 목에 목걸이가 있습니다. 더 자세히 보니 무공훈장이었습니다. 제가 뚫어지라 보고 있자 눈이 마주쳤고, 어르신은 저를 부르시더니 주머니에서 꾸겨져 있는 지폐 1만 원을 주셨습니다. 저를 후배 군인으로 보시고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을 주시더군요. 폐지를 주워서 1만 원을 벌려면 온종일 여러 번은 폐지를 팔아야만 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그날 밤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그리고 얼마 후 부대 내에 의열단 권준 선생의 후손을 만났고
또 얼마 후 의열단 윤세주 장군의 후손을 만나며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살아가는 그들의 가족이
연좌제에 얼마나 고통받았는지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때의 충격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저를 괴롭혔습니다. 어느덧 저에게 NGO를 만들 때 했던 질문, 첫 책을 집필할 때 했던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모든 걸 바꿀 수도 없고, 모든 이를 도울 수도 없지만,
내가 이(분)들을 도울 수 있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이 생각이 저를 지배한 지 일주일이 되던 무렵, 저는 독립유공자와 참전용사를 기리는 핸드폰 앱 개발에 착수하게 됩니다.
그렇게 2015년 현역장교 시절, 스마트폰 앱 <독립운동가>가 개발이 되었고 그때부터 저는 지상파에서 독립운동사 전문 방송인으로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이 모든 활동은 제가 바꾸고 싶은
더 좋은 세상을 위한 ‘수단’들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것, 방송에 나가는 것, 언론사 인터뷰를 하는 것,
다른 분야의 재능있는 사람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
영화와 드라마를 만드는 것,
이 모든 것이 저에게는
제가 바꾸고 싶은 세상을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 앱은, 교과서, 한국사 시험, 공무원 시험에 나오지 않는
역사에 가려진 독립유공자를 기리는 앱에서 시작해,
미서훈 유공자를 발굴해 국민에게 알리고
그분들의 역사를 다양한 문화예술콘텐츠로 제작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습니다.
현재 약 50만 명의 국민이 다운로드 받아 사용을 해왔고,
정규적으로 독립유공자의 소식을 전해 받는 회원 수는
현재 2021년 8월 11일 기준 약 4만 명 정도가 됩니다.
지금까지 6년간 광고 하나 없는 완전 비영리 독립운동사 앱입니다.
장교 시절 이 앱을 만들었을 때, 광화문은 촛불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기무사에서는 저에게 전화를 걸어, 좌파 독립운동가를 모두 앱에서 삭제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저는 지금이 박정희 유신체제인지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납니다.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생기던 그 무렵,
기무사에서 그런 명령을 내리고 그 명령을 이수해야 하는 현실이
진짜 ‘헬조선’이라는 생각이 가득해, 결국 명령을 어기고, 쌓아둔 말년 휴가를 전부 결제받은 뒤 저는 소위 말해 ‘잠수’를 타고 전역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독립운동가 앱은 ‘살아’남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500여 명의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유공자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 중에서 국가보훈처에 서훈을 신청하여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으신 분은 100명이 조금 넘습니다.
제가 직접 서훈을 신청한 때도 있지만, 공동의 노력으로 서훈이 통과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위해 살아갑니다. 저는 이것이 명예라고 생각하고, 그 길에 서 있는 모든 고독한 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그들을 사랑합니다.
독립운동가 앱을 만들고, 그것이 방송에 나가면, 수많은 제보가 쏟아졌고, 그 제보를 토대로 인터뷰를 진행한 뒤 저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다시 방송에 나가거나, 영화 혹은 드라마로 제작되고, 언론사 인터뷰를 진행하며 다시 제보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6년간은 이 현상의 반복이었고, 커지는 영향력에 비례해 책임감과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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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봄, 첫 번째 근현대사/해방전후사 책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를 손편지와 함께
청와대로 보냈습니다.
평소에 언론사에 하던 인터뷰 내용과 문재인 대통령님의
현충일 기념사가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였습니다.
가까운 주변에서 먼저 알아채고 저에게 카톡으로
기사와 영상을 보내주더군요.
영상을 보고 눈물이 흘렀습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대통령님은 청와대 직원 분들에게
제가 보낸 편지를 돌려 보게 했고
곧이어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있는 곳, 우리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전화였습니다.
청와대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어 보이스피싱처럼 의심스러웠지만 정말로 집 근처로 찾아오셨고 저는 그동안 제가 제보받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독립운동 관련 문제를 봇물 터지듯 쏟아냈습니다. 그때 저에게 오셨던 분이 청와대에 계신 강병구 서기관님입니다.
 
당시 제가 언급한 내용은 크게 3가지였습니다.
1. 여성독립운동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서훈법 개정.
2.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의 형평성, 일관성 결여 문제
3.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기초생활수급대상 독립유공자 지원 문제

그리고 이때, 독립유공자 지원 관련 조례를 입법하게 되었습니다.
장교 시절 공무원 문서 기안하던 ‘온나라’ 양식에 맞춰 개정 전과 후를 구별한 뒤 현장 실태조사 사진을 덧붙여 조례를 만드는 입법과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습니다.
결국, 이 조례로 인해, 현충원에 안장되지 않은 독립유공자의 묘소에 벌초비가 지원되었으며 차량 도로판에 독립유공자 안내판이 ‘합법’적으로 설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8년까지 도로에 독립유공자 안내판을
설치하는 것이 불법이었습니다.)

이 조례 입법으로 인해 약 4천 명의 후손분들이 지금까지 3년간 도움을 받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저는 제도권 내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저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으로 이끌었고,
<보훈 문화>를 학위논문으로 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18년 6월, 저는 대통령 직속 3.1운동 100주년 위원회에서 미래희망분과 민간위원으로 2년간 위촉을 받고 보훈 문화를 만드는 데 노력했습니다.
마치 청와대에서 그동안 개인 차원에서 활동가로 해오던 일을
이제 정부 관료들과 함께 진행해보라는 선물 같았습니다.
그렇게 젊은이의 패기로 행안부, 국가보훈처 등
다양한 곳에서 오신 국장님과 서기관님들께
아주 많이, 자주, 수시로 직언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 사료가 존재하지만, 정치적 이유로 정부로부터 독립운동가 훈장을 받지 못한 분들, 연좌제 피해자분들을 인터뷰하며 <독립운동 맞습니다> 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덕분에 일베로부터
“북한으로 가서 살아라”
“김일성도 독립유공자냐”
“조봉암, 김시현, 김원봉 등은 다루면서 왜 이승만 대통령은 안 다루냐?”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도 들었네요.
앞서 말했듯 정부로부터 독립운동가 서훈을 받지 못한
사람들만 다루는 책인데 말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위원회 임기 마지막 행사였던 청와대 영빈관에서
저는 문재인 대통령님과 헤드테이블에 같이 앉게 되었고
이날 건배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tjIZe8Ov3M)


이때 제 삶에서 또 한 번의 변곡점이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저는 보훈이라는 분야에서만 역사에 가려진 운동가를 발굴하는 일, 후손분들의 가슴속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어드리고
선열에 대한 명예를 회복하는 일만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이것만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도움을 드리고, 함께 웃고, 함께 울었던
모든 이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약자여서는 안 될, 약자들을 위해”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독립운동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부족하면 더 다가가고, 더 듣고, 더 공부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여성가족부에서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정책에 목소리를 내었고
특히 유니버셜 디자인 저상버스 도입을 위해 때로는
토론이 격해질 만큼 목소리를 냈습니다.
(저는 여전히 여성가족부 정책 자문위원입니다.
장애인 관련 제 주장의 기준은 미국과 유럽의 정책이었습니다.)

2020년부터 지금까지는 코로나 19로 인해 어린이집 및 학교 휴원 휴교 사태에 직면한 부모들의 돌봄 부담을 완화하는 일과, 경력단절 여성이 경제 활동 참여를 통해 고용안정에 자립해 나갈 수 있도록 함께해왔습니다.
그리고 2021년 저는 여전히 작가로서, 방송인으로서,
NGO 활동가로서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박사 지원이 탈락한 다음 운명의 장난처럼
하버드대학교로부터 합격 연락이 왔고, 입학한 학생 중 가장 학교 성적이 낮다는 뼈아픈 팩트 폭행을 당했지만, 그동안의 제 삶이 지난 10여 년간 약자들을 위한 여정이었다고 하버드 입학사정관 전원 만장일치로 NGO 활동가 부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합격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은, 때로는 비싼 명품을 옷에 걸치는 일이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이 그러합니다. 부끄러운 천민자본주의의 모습이지요. 기회의 평등을 위한 교육기관이 어느덧 보여주기 위한 감투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소수의 국가를 제외한 다른 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이 내 인생의 ‘행운’일지 모르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내가 바꾸고 싶은 세상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지,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될 때 ‘행복’이 찾아온다는 걸 배웠습니다.
아이를 낳은 날보다, 그 후에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이 축복이며
결혼을 한 날 보다, 그 후에 함께 사랑하는 배우자와 살아가는 삶이 축복이듯 하버드에 합격한 날 보다, 그 후에 공동선을 위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지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제 삶이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에 들어온 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많은 사건, 인연, 경험, 도전, 좌절, 축복, 행운이 있었습니다.
 
2013년 미국에서 모든 삶을 정리하고 돌아오기 전 친구들과 나눴던 작별 인사를 2021년 한국에서 다시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한분 한분 모두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려 했는데
저의 무능함과 부족함으로 인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제 4일 뒤, 미국 보스턴 하버드대학교로 떠납니다.
공교롭게도 8월 15일 광복절 밖에 인천-보스턴 직항이 없어
광복절 아침 8시 30분에 출국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버드에 도착하자마자 ‘불평등’, ‘환경 및 기후문제’, ‘국제이론’ 수업을 듣게 됩니다. 불평등에 대한 강의는 마이클 센델 교수의 수업이기도 합니다. 벌써 싸인을 받아달라는 요청이 쇄도합니다.
저를 출판사 직원으로 생각할까 두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출국 전까지
저에게 철학과 통일에 대한 고민을 남겨주신
독립유공자유족회 김삼열 선생님
겨레하나, 민화협, 주권자전국회의, 6.15남측위 조성우 선생님
적십자 총재, 통일원 원장, 부총리 한완상 선생님
민청학련, 영세중립국 선언 이현배 선생님
숙제라는 이름으로 4권의 저서를 보내주신 백낙청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며,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저를 만나준 높은 인격의
모든 지인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늘 가슴속에 보이지 않는 태극기를 달고 있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 촛불을 함께 들었던 그 마음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더 많은 약자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서로 사랑하세요.
고맙습니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꿈꾸며
2021년 8월 11일, 정상규 드림.
[출국 전 마지막 인터뷰]
https://k-water.newsnstory.com/pages/story/MF/cont...




280이은선 and 27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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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정상규 (지은이)
휴먼큐브2017-07-07

책소개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저자는 공군으로 복무하며 ‘독립운동가’ 앱을 제작했다. 앱을 통해 회원들에게 독립운동가의 서거일을 알려주는 것, 이것이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일의 시작이었다.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역시 무명으로 사라진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라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집필한 책이다. 적어도 이분들이 순국하신 날만이라도 생애와 업적을 알아보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과 없이 역사를 왜곡하고 날조하는 일본의 행태를 보며 분개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픈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나라를 되찾겠다는 희망으로 자신을 내던진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일본의 역사 왜곡과 망언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날에는 일본이 왜곡한 역사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것이다.

일본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관심 갖지 않는 것일 것이다.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를 통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목차
- 추천사 _004
- 서문 _008
1992년 1월의 독립운동가 김상옥金相玉 _016
1992년 2월의 독립운동가 편강렬片康烈 _022
1992년 8월의 독립운동가 서 일徐一 _026
1992년 9월의 독립운동가 신규식申圭植 _030
1992년 12월의 독립운동가 나석주羅錫疇 _034
1993년 4월의 독립운동가 노백린盧伯麟 _039
1993년 6월의 독립운동가 윤세주尹世冑 _044
1993년 8월의 독립운동가 남자현南慈賢 _048
1993년 10월의 독립운동가 이장녕李章寧 _052
1993년 12월의 독립운동가 오동진吳東振 _055

[특집 1] 의로울 의! 맹렬할 열! 정의로 뭉친 가슴 뜨거웠던 젊은이들 ‘의열단’
1994년 1월의 독립운동가 이육사李陸史 _063
1994년 2월의 독립운동가 임병찬林炳瓚 _068
1994년 4월의 독립운동가 양기탁梁起鐸 _071
1994년 5월의 독립운동가 신팔균申八均 _075
1994년 6월의 독립운동가 백정기白貞基 _079
1994년 7월의 독립운동가 이 준李儁 _082더보기

책속에서
P. 11 서문 中
나 역시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로서, 같은 하늘을 보고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조금은 있습니다. 첫째,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영웅들, 그리고 소리 없이 사라져 우리에게서 잊혀진 영웅들, 그들은 모두 ‘평범한’ 국민이었습니다. 좋은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랐으나 독립운동에 뛰어든 독립운동가는 몇 손가락에 불과합니다. 이회영, 이상룡, 허위 선생 등이 그런 분들입니다. 그 외에는 대부분 일찍 부모를 여의거나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농부거나 백정 출신이거나 기생이거나 장애인이거나 노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음 한구석에서 거리감을 느끼는 바로 그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둘째, 처음 앱을 개발하던 2015년 겨울 당시 가장 큰 이슈는 국정 역사 교과서였고 나는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는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꼭 알려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16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또 다른 정치적 소용돌이에 국민들이 아파하고 분열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이민 가고 싶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퇴색해버린 요즘, 이 책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접기
P. 20 1992년 1월의 독립운동가 김상옥 中
보통 독립운동가의 의거를 기리는 행사를 할 때 ‘의거 기념식’이라는 표현을 쓰고, 사망자의 경우 순국‘추모식’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김상옥의 경우 사망일이 1월 22일임에도 ‘순국 추모식’이라는 말 대신 ‘시가전 승리 기념식’ 또는 ‘독립활동 기념식’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비록 일본 경찰과 서울 시내 총격전을 벌이고 마지막 남은 한 발로 자결했으나 ‘시가전’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혁혁한 공로를 세웠고 당시 일제에 준 충격이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어떤 역사가들은 그의 활약으로 일본에 억눌려 있던 우리 민족이 저항의지를 되찾았고, 이후 항일 무장투쟁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현재 생존하신 애국지사 한 분은 어릴 적 신문에 난 김상옥의 투쟁을 보고 “일본 놈들은 수천 명인데 왜 저분 혼자 싸우시는가?”라며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섰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접기
P. 316 에필로그 中
독립운동과 의병활동을 했던 분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그분들의 희생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남긴 정신은 민주화운동, 독일 광부와 간호사 파견, 새마을운동, 한강의 기적, 이민자들의 성공 사례, 국제 스포츠경기에서의 활약으로 이어져 전 세계에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휘날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의지를 이어받아 우리 후손들을 위해 이 나라를 더 아름답고 더 정의롭고 더 따뜻한 세상으로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정의롭게 행동했던 일은 눈부시게 빛난다는 것을,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더럽고 추악한 짓은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친일파와 위안부 할머니 문제 같은 반민족적·반인륜적·반윤리적 행위에 대해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가 있어야 합니다. 피해 할머니들이 한 분이라도 살아 계실 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이 나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해자는 “어쩔 수 없었다. 시대가 그랬다. 확실한 증거가 있느냐”는 식의 망언을 되풀이하고 과거의 잘못을 ‘정당화’할 테니 말입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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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잘못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을 희생하며 고군분투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면 해방된 조국에서 마땅히 보훈을 받아야 하건만, 대한민국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몇몇 이름 있는 인물은 국가 차원의 대우를 받았지만, 다수는 잊혀졌다. 이런 기현상은 대한민국을 건국한 주체세력에 친일파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세의 개입과 이념의 분열이 합작한 남북분단이라는 국내외 정세도 한 몫 하였다. 또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던 1950~60년대 상황은 독립운동을 차분히 돌아보고 되새김할 겨를조차 앗아갔다. 이런 요인들이 어우러져, 우리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대우하지 못하였다. 독립유공자의 자식이 오히려 학교에서 조롱당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였다. 그래도 1990년대부터 독립운동에 대한 국가의 보훈이 본 궤도에 올랐고,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도 빛을 보기 시작하였다. 특히 1992년부터 국가보훈처에서는 매달 “이 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하여 홍보하였는데, 이제 어느덧 4반세기를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소개하였는데, 대개 일반인이라면 들어본 적도 별로 없을 법한 ‘숨은’ 독립운동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는 이들 가운데 67명을 골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역사 전공자라 해도 생소한 이름일 이원대나 한징 등,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조국의 광복을 위해 꽃처럼 떨어져 간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간결하게 편집하여 엮었다. 67명의 이야기가 개별적으로 펼쳐지지만, 김구 선생처럼 유명하지는 않으나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음으로 양으로 분투하던 사람들을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접할 수 있다. 광복 72주년을 맞는 이번 여름에 손에 들고 단숨에 읽기 좋은 책이다. -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이 책이 일반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오랫동안 잊혀져온 분들을 알리고, 보훈업무의 중요성과 국가관에 대해 다시 한 번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현역 공군 장교 시절, 정상규 예비역 중위는 독립운동가 앱을 만들어 젊은이들의 국가관과 애국심을 고양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더 커진 애국심과 개인적인 신념을 담은 이 책의 출간을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이억수 (현) 25대 공군 전우 회장) 

나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며,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대한민국의 국방을 책임지고 있다. 내가 지금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을 맞대며 웃을
수 있는 것은 내 조국이 독립된 국가로 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일제 치하에 있었다면 지금의 일상적인 기쁨은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바친 분들의 노력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배우고 지켜야 할 것이다. 그분들의 희생은 그 무엇보다 강하고 숭고한 것이다. 어느 누가 자신의 재산을 그리 쉽게 버릴 것이며, 자신의 목숨을 걸고 어떤 대가도 없이 그토록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유명CEO나 유명 학자의 주장, 생각이 아니라 독립운동가의 숭고한 정신일 것이다.
나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지만 나라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우리 국민들이 가슴속에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존경심을 간직하길 바라고, 가벼운 말 한 마디로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그리고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를 통해서 한 번쯤은 그분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 - 의열단 창립 멤버의 고손자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는 독립운동가 이전에 평범한 국민이었고 아버지였고 어머니였다. 하지만 조국의 위기 앞에 그들은 조국을 지키는 등불이 되었다.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이분들의 ‘향기’를 다시 불러일으킨다. 그들의 젊음이, 그들의 희생이, 그 위대한 결단이 지금 우리 눈앞에 다시 펼쳐진다. - 유삼남 (전 해군 참모총장, 전 해양수산부 장관) 
독립의 역사는 결코 오래된 과거의 일이 아니다. 이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는 배울 점이 많다. 군대, 국가관,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점점 퇴색되어가는 오늘날, 이 책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큰 울림이 되리라 확신한다. - 김영후 (전 병무청장) 


저자 및 역자소개
정상규 (지은이) 

역사에 가려지고 숨겨진 위인들을 발굴하여 다양한 역사 콘텐츠로 알려왔다. 최근까지 500명이 넘는 독립운동가 후손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들의 보건 및 복지문제를 도왔으며, 오랜 시간 미 서훈(나라를 위하여 세운 공로의 등급에 따라 훈장을 받지 못한)된 유공자를 돕기 위해 중국, 일본, 러시아를 넘나들며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 업무를 맡아왔다.

2018년 6월부터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으며, 2020년 현재는 새롭게 발굴한 숨겨진 위인들을 웹툰, 게임, 드라마, 영화, 소설 등으로 제작하는 일들을 기획, 자문하고 있다.

현재 독립유공자 지원 비영리단체 '포윅스' 대표이며,
문화예술분야 협동조합 '위인유니온'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고,
각종 보훈단체(기념사업회) 이사직을 역임하고 있다.

대표 저서: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독립운동 맞습니다』 접기
최근작 : <대전자령 전투, 어느 독립군의 일기>,<독립운동 맞습니다>,<잃어버린 영웅들, 청년들이여 깨어나라!> … 총 4종 (모두보기)
SNS : //instagram.com/laurentio_r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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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제공 책소개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운동가, 2만여 명
그중 서거일이 알려진 독립운동가, 207명
‘독립운동가’ 앱에 기록된 독립운동가, 186명
이 책에 기록된 독립운동가, 67명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운동가 2만여 명
그중 서거일이 알려진 독립운동가 207명
‘독립운동가’ 앱에 기록된 독립운동가 186명
이 책에 기록된 독립운동가 67명

아직도 어딘가에 잠들어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가 있습니다.
그분들을 기억하기 위한 작은 시작,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입니다.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자신의 삶과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누군가의 아들, 딸이었고, 한 가정의 아버지, 어머니였습니다. 평범한 학생이거나, 시골의 촌부였고, 혹은 공무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라의 위기 앞에 이들은 한 순간의 망설임 없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불과 백년도 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이름조차 기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생기면 제일 먼저 그 사람의 이름을 묻고, 기억합니다.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관심의 시작을 뜻합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이들의 이름을 기억해야하는 이유입니다.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의 저자 정상규 역시 무명으로 사라진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라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책을 집필했습니다. 거기에 작은 욕심을 하나 더 보태 적어도 이분들이 순국하신 날만이라도 생애와 업적을 알아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저자는 공군으로 복무하며 ‘독립운동가’ 앱을 제작했습니다. 앱을 통해 회원들에게 독립운동가의 서거일을 알려주는 것, 이것이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과 없이 역사를 왜곡하고 날조하는 일본의 행태를 보며 분개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픈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나라를 되찾겠다는 희망으로 자신을 내던진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일본의 역사 왜곡과 망언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날에는 일본이 왜곡한 역사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일본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관심 갖지 않는 것일 겁니다.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를 통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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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들의 앞에 서면 한없이 부끄럽다.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 중심의 국회에서 출발했다면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이상하게 우리 국회의 보수는 친일, 독재, 부정부패, 자유 억압, 헌법 유린, 민주화 탄압, 온갖 거짓말들과 가깝다. 보수란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가까워야 하는 것 아닌가?  구매
청아한아이다 2019-04-29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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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정상규- 새창으로 보기

최근 독립운동가들을 재 조명하는 영화가 끊임 없이 나오고 있다 가장 최근에 개봉한 2017년 10월 19일 개봉 <대장 김창수>는 어린 김구의 모습을 2017년 6월 28일 개봉 <박열>은 청년이자 조선 최초의 대역죄인의 모습을 2016년 09월 07일 개봉 <밀정>에서는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에 대해서 나오고 2015년 07월 22일 개봉 <암살>은  한국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를 중심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영화가 개봉 될 때마다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해서 끊임 없는 재 조명과 영화와 현실의 차이점에 대해서 역사적 논쟁이 일어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너무나 고맙고 인상 깊지만 한편으로는 일회성으로 끝나버려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했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 영주권 취득을 포기하고 공군장교로 자원 입대했다 그는 2015년 9월 26일 KTX를 타고 서울로 가던 중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유관순 열사의 사진과 문장 하나를 발견 한다 ‘1920년 9월 28일 유관순 열사 서거’ 그는 문득 왜 이러한 인물들을 기억을 못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독립운동가’ 앱을 만들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당시 현역 장교였던 신분으로써 수 많은 자료와 인문들을 어떻게 정리 할지 몰라 막막했지만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첫째, 훈장 수여 등급의 우선순위와 서거일이 기록된 역사 자료가 있는 애국지사들의 명단을 추려서 찾아낸 인물은 총 207명이었다고 한다 2016년 8월 15일 KBS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 <독립군의 길을 가다>의 주인공으로 방송이 나간 후 2016년 12월 기준으로 약 10만명이 앱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가 만든 비영리 국민 애국앱을 설치하기만 하면 애국지사의 서거일에 문자 알림을 받고 앱을 실행하면 애국지사의 사진과 약력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김상옥, 편강렬, 서 일, 신규식, 나석주, 노백린, 윤세주, 남자현, 이장녕, 오동진, 이육사, 임병찬, 양기탁, 신팔균, 백정기, 이 준, 양세봉, 김학규, 김지섭, 이종일, 민필호, 송종익, 양기하, 송병조, 김창숙, 민긍호, 이원대, 김마리아, 안희제, 이윤재, 강우규, 유인석, 양진여, 김한종, 오성술, 김규식, 나창헌, 곽재기, 송학선, 김경천, 채기중, 권기옥, 김병로, 이애라, 문양목, 김복한, 채응언, 박차정, 박 열, 구춘선,  박재혁, 남상목, 윤기섭, 박찬익, 이종희, 권 준, 심남일, 신현구, 어윤희, 차희식, 김대지, 이석용, 한 징, 오면직, 송헌주, 이준식, 차리석, 이화림, 동풍신, 김알렉산드라, 박자혜, 부춘화, 정칠성, 주세죽, 이희경, 홍범식, 황현, 장태수, 이회영, 허위, 이상룡]



이 이름들을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독립 운동가이다 이 이름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고개를 제대로 들 수 가 없을 지경이다 제대로 아는 이름은 고사하고 난생 처음 보고 듣는 이름도 적지 않다 얼마 전 현직 고등학교 선생님이 저술한 <그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을 책을 통해서도 김원봉, 김익상, 오성륜, 이종암, 안중근, 김구, 신채호, 이동녕, 신규식, 여운형, 최중호, 윤봉길, 조완구, 조계진, 이회영, 이봉창, 김두봉, 백정기, 박열, 이시영, 백정기, 차리석, 조성환, 이육사, 윤세주, 장진홍, 김산, 김학철, 정율성, 윤동주등등 수 많은 이름을 접했고 가을에는 아이와 함께 “서대문형무소”에 다녀오면서 다시금 저들의 이름 중 상당수는 보았겠지만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지만 책을 통해서 직접 눈으로 보았던 기억이 전혀 남아 있지 않는 나의 모습에 좌절을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책을 통해서 독립운동가 라는 앱도 알게 되고 더 많은 독립운동가의 삶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또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지겠지만 두고두고 읽어서 계속 저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혀야 겠다



400:1 전투의 김상옥, 전설적인 의병장 편강렬, 25일 단식한 신규식, 공군의 초석이 된 노백린 장군, 의열단 창설 멤버 윤세주, 여자 안중근 남자현, 댄한독립군단 참모총장 이장녕, 시인 이육사, 언론인 양기탁, 아나키스트 백정기, 헤이그 밀사 이준, 광복군 최전방 장군 김학규, 왕궁에 폭탄 김지섭, 흥사단 설립 송종익, 3.1만세시위 주도 목사 송병조, 성균관대학교 창립자 김창숙,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국어학자 이윤재, 임시정부 부주석 김규식, 최초 여성 파일럿 권기옥,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김원봉 아내 박차정, 신흥무관학교 교장 윤기섭, 유관순 열사의 멘토 어윤희등 수 많은 독립 운동가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소개를 하는 글로만 책은 채워져 있다 또한 3번에 걸쳐서 조국을 위해 기득권을 버린 위대한 가문을 소개 한다 나를 비롯한 요즘 젊은 이들은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친일을 한 사람들을 너무나 쉽게 비난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목숨을 걸고 가문의 존폐를 두려워 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서 너무나 칭찬이 야박한 것은 아닌가 되돌아 보게 된다 

현동이아빠 2017-12-1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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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말자!

우리는 독립운동가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저 영웅, 아니면 유별난 사람. 과연 이들은 왜 죽음의 길을 선택했을까?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의 시작은 을미사변 이후 전국에서 일어난 을미의병을 기원으로 한다.
이후 비폭력 민주적 독립운동인 3.1운동으로 민족의 염원이 타올랐지만, 비폭력 방식의 한계를 절실히 드러내고 말았다.
이때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해외로 망명하여 무장 투쟁 및 의열 투쟁을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들 수 있다.
암울한 일제시대를 지나 열강의 분할통치를 받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또한 미국의 군정으로 인해 일제 청산이 되지 않은 채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며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발굴과 교육이 안됐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가보훈처에서 매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하여 기리고 있다.
하지만 캠페인에 불과하다 보니 그들의 업적이나 활동 상이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안타까이 여겨 '독립운동가 앱'을 개발하여 독립운동가들의 서거일을 기준으로 알림을 보내주고 있다.
그날만큼은 독립운동가들의 피와 땀이 섞인 노력을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한다.
우리는 왜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하는가?
우리가 지금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모두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 앱'과 '이달의 독립운동가 카페'에 가입하여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을 남겨보자!

- 접기
이화준 2018-12-0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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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들에게 빚진 사람들입니다 새창으로 보기
요즘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영화가 있다.

'1987'.

그 해에 어떤 일들이 있었고,

그 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었고,

그 해에 얼마만큼 엄청난 인파가 도로에 쏟아져 나왔었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왜냐면 우리는 그들의 노력, 그들의 희생, 그들의 땀, 그들의 피.

그 위에 세워진 민주화하라는 터전 위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간의 추를 조금만 앞으로 당겨보면 어떨까?

채 100년을 거스르지 않더라도

1945년이 오기까지 우리는 일본의 압제하에서

너무나도 큰 고통을 당해 왔다.

감정 담아 그들을 비난하지 않고,

사실위주로 나열만 하여도

우리는 눈물을 흘려야 한다.

광복의 감동에,

자유의 소중함에.

그러나 이 대목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그런 광복과 자유가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졌는가이다.

결단코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무료로 값없이 주어진 것이 아닌

그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 뒤에 쟁취된 것이라는 사실.

이 책의 제목이 '잊혀진 영웅들,독립운동가'여서

더욱 가슴 아프다.

우리에게 어느 순간 잊혀져버린 영웅들이 너무 많다.

현재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운동가가 2만여명이라고 한다.

그중 서거일이 알려진 독립운동가가 207명.

(개인적으로 이 데이터도 나를 뭉클하게 했다)

'독립운동가'앱에 기록된 독립운동가가 186명.

그리고 이 책에는 67명의 독립운동가가 기술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거의 알지 못하던 분들이다.

부끄러운 맘으로 읽는 내내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자문 자답의 형태를 취하더라도,

결코 쉬운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이 시절에,

내가 이러한 상황 가운데 있다면,

나는 이 분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개발자가 사비를 들여 제작,운영하고 있는

'독립운동가 앱'을 설치해 두면

애국지사의 서거일에 문자 알림을 받아 볼 수 있으며,

앱을 실행하면 애국지사의 사진과 약력을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이분들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돌아가신지 그리 오래되신 분들을 기억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찌 현재가 있을 수 있는가.

현재가 오롯 바로 서지 않는다면

결코 미래는 우리 생각처럼 바른 모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우리 함께 나라와 동포를 더 사랑하고

세계 속에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애국심'의 작은 물결은

점점 그 파동이 커지고, 멀리까지 그 물결이 미칠 것이다.

1992년 1월의 독립운동가 김상옥님으로부터 출발해서

2015년 9월의 독립운동가 이준식님,차리석님까지

모든 분들의 이야기 자체가 한 편의 영화이며, 한 편의 소설이다.

아니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처절함과

그 숭고함이 그대로 나에게 전달되어 오는 것 같다.

맨 뒤에 특집으로 엮여 제시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경우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알 수 있어

의미있는 것 같다.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는 것.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지켜야할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2018년 첫 날. 내 가슴에 쿵. 소리를 내며 내려앉는 문장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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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력긍정주의자 2018-01-01 공감(0) 댓글(0)

     
잊혀진 영웅 독립운동가 새창으로 보기
잊혀 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작은 애가 두 해 전 교육지원청에서 주관한 주제발표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주제는 여성 독립 운동가의 삶이었다. 그 때 아이가 가진 자료 중 남 자현 여성독립 운동가를 처음 접했다. 독립투쟁에 남녀가 따로 있었겠느냐만 사실 여성 독립투사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비단 여성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남성 독립 운동가들도 마찬가지 현실이다.

조정래 소설 아리랑을 보면 식민지 당시 조선동포 이천만 중 독립운동 오백만 친일 부역자 오백만이란 대목이 나온다. 오백만 독립운동가 중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이라도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가? 문서상에서만 존재하는 독립운동가 진정 그분들이 원했던 것일까?

[잊혀진 영웅, 독립운동가]는 우리들의 무관심을 꾸짖는 소중한 책이다.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는 독립운동가 예순일곱 분의 소중하고 고귀한 삶이 소개되어 있다. 그래도 조금의 관심이 있었다면 알만한 분들도(김상옥, 나석주, 이준 등) 있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분들도 있다. 이 책에 소개 된 예순일곱 분 영웅적인 투쟁을 펼치지 않은 분들이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네 역사교육이란게 큰 성과를 이룬 삶들만 조명한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음으로 양으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진 고난을 감수한 소중한 삶인데 그 본 모습을 생생하게 알 수 없어 안타까울뿐이다. 더 늦기 전에 사라져가고 있는 그 분들의 삶을 세세하게 찾고 기록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지나버린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나라만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를 제대로 반성하고 치유하지 못하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명박정권에서부터 논의된 1948년 8월15 건국절 논란이 우리 사회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음을 알 수 있다.

일제 친일 반역자들의 후손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독립투사들을 기억하고 찾아내 그분들을 기리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확신한다.

- 접기
손세학 2017-12-2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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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책 맛보기, 

소록도의 잊혀진 영웅 이춘상, 중국의 영화황제 김염, 유관순의 멘토 어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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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1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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