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Ph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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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Sound and Fury”가 여전히 “소리와 분노”라는 제목으로 언급되고 있는 걸 보았다.
sound and fury와 같은 방식을 라틴어로 ‘헨-다이-어-디스(hendiadys)’라고 하는데 ‘두 단어로 하나의 의미(one meaning through two)’를 나타내는 수사학적 표현이다. 그냥 말의 기교이다. 헨다이어디스는 주로 명사와 명사, 형용사와 형용사에 쓰는데 동사와 동사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셰익스피어가 그의 후기 희곡 작품들에서 즐겨 썼다. <햄릿>에서만 60개 이상의 헨다이어디스가 발견된다. 포크너가 <맥베스>에서 차용한 ‘sound and fury’는 아내의 자살 후 파국의 순간에 읊조리는 맥베스의 긴 독백 속에 나온다.
……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음향과 분노”라는 제목으로 오랫동안 판매되던 이 소설은 오역으로 흠씬 두들겨 맞은 뒤, “소리와 분노”라는 제목의 개정판이 나왔다. 그러나 ‘음향’이나 ‘소리’나 그게 그거… 둘 다 오역이다.
A and B에서 A와 B가 대등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A와 B는 보편과 특수, 전체와 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럼 왜 이렇게 쓸까? 소리 내어 읽어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개별 속성을 따로 분리하여 나란히 이어놓을 때 생각의 흐름을 늦추고 인식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허공 속에 던져 음미하게 만든다.
다른 예를 들면 이런 표현들…
rain and weather는 ‘비 오는 날씨’라는 뜻이지, ‘비와 날씨’가 아니다.
nice and warm도 마찬가지. ‘따뜻해서 좋다’, 우리말로 ‘따사롭다’ 정도 되려나?
더 흔한 예로는, curry and rice를 ‘카레와 밥’이라고 하지 않듯이.
여기서 앞말은 뒷말의 범위를 한정하는 역할(modifier)을 한다.
그래서 rain amd weather는 rainy weather
nice and warm은 nicely warm이다.
sound and fury는 그러므로, furious sound를 대치한 말이다.
조금 더 확장하자면 복합명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명사+명사’에서 앞 명사는 뒤에 오는 명사를 수식하는 품사적으로 형용사로 바뀐다.
토익, 토플에 단골로 출제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동사에도 적용 가능하다.
go and visit, come and see, try and do 등등.
아무튼 결론은 Sound and Fury는 ‘소리와 분노’가 아니라 ‘분노의 소리’랍니다.
이젠 제대로 번역되어 나올 때도 됐건만…
8 comments
신윤석
분노의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 16 w
Hyeran Park
fury 는 분노이기도 하지만 16세기에는 소음이라는 뜻도 있었던 걸로 알아요. 제가 이해한 맥락은 언어로 구사할 수 없는 무의미와 부조리함을 토로하는 걸로 이해했고요. 그럼에도 Fury를 분노로 옮기는 건 번역자의 선택이라고 봐요. 번역하시는 분들이 아마 다들 알면서 이렇게 두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 16 w
Lee Phil
‘무의미’, ‘부조리’는 그다음 행에 나오는 nothing을 가리키지 않나요? fury는 말 그대로 fury. 라틴어에서도 madness이고 rage이고요. 16세기 이전이나 이후나 의미 변화가 없었던 걸로 보여요.
sound and fury는 철학적, 사변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야말로 ‘(저잣거리에서) 악다구니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리’, 흔히 고단한 세상살이를 표현할 때 쓰는 말로 생각되어요.… See more
· 16 w · Edited
Hyeran Park
예. 저는 다음 행의 signifying nothing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sound and fury에서 sound는 소리이기도 하면서 유해하지 않다는 뜻도 있고. fury는 분노이면서 제정신 아닌 소리를 뜻하기도 했기 때문에 두 단어는 해석의 여지가 많다고 봅니다. 물론 선생님 말씀대로 분노의 소리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예전에는 포크너 소설을 '소리와 소음'이라고 옮기는 연구자도 꽤 있었고요. 번역은 선택과 판단이 필요하다고 봅… See more
· 16 w
Lee Phil
네. 물론 연결해서 읽어야죠 샘. 그런데 파고 들면 갈래갈래 흩어져 갈피를 잡기 어렵겠어요. ^^; 웹스터 사전을 보면 대표적인 hendiadys로 올라와 있어요.
해석할 때 연구자들이 관념적, 사변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데 이 경우, 단순하게 보아도 되지 않나 싶어서요. ^^ 심도 있는 말씀 나누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15 w
Hong Dae Uk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 16 w
백미승
꼼꼼하게 읽고 또 읽어봅니다
시인님 브랜드 아이콘? 시원하고
예뻐요....나홀로 시집 내시면… See more
· 16 w ·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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