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6

인민해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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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기독교가 南기독교보다 발전"? (독립신문)


첩보원2006.01.04

이글루스 블로그 컨텐츠신은희 교수, 이번엔 "주체신학" 역설



"예수는 주체사상가 였다","김정일은 孝心 깊은 정치지도자" 등의 주장으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는 미국 심슨대학 신은희 교수(종교철학 강의, 재미교포)가 이번에는 "주체신학"을 역설하며, '북한의 신학(神學)이 남한의 신학보다 더 발전적'이란 취지의 주장을 하고 나섰다.

매주(또는 격주) 신 교수의 글을 게재하고 있는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는3일 "주체신학, 가능한가?"라는 제목으로 이같은 내용의 주장을 소개했다.

신 교수는 이 글에서 "2006년은 김일성 주석이 1926년 10월 만주에서 결성한 ‘ㅌ.ㄷ´(타도제국주의동맹)가 80주년을 맞이하는 해"라며 "‘ㅌ.ㄷ’운동은 김 주석이 생전에 강대국의 제국주의 노선에 항거하는 ‘저항적 민족주의’ 정신과 함께 출발하였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북의 저항적 민족주의는 2006년 새해를 열면서 다시 한번 새롭게 조명될 북의 정신적 전통"이라며 "이제까지 ‘ㅌ.ㄷ’운동이 정치적 차원의 저항이었다면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에 출현할 ‘ㅌ.ㄷ’ 운동은 문화적 정신적 차원으로까지 확대될 전망"이라고 했다.


이어 "북미간의 갈등은 단순한 정치싸움이 아니라 조선 문화와 서구 제국문화의 갈등이며 ‘문명 충돌’에 가깝다"면서 "미국이 북의 주체문화를 악의 소산으로 보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이며, 북이 서구 기독교를 전폭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역설했다.


아울러 "기독교의 종교 제국주의는 남북관계의 갈등을 더욱 촉발시키는 통일문화의 갈등요소"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신학과 관련해서는 "북의 교회나 성당을 방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의 교회가 주체사상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사실에 대해 많은 반감을 갖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가 ‘상황신학’이라는 종교신학의 쟝르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북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은 어느 정도 희석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중국어 성서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기록하지 않고 태초에 ‘도(道)’가 있었다고 번역하고 있다"며, 이를 "중국문화권에서는 성서를 자신의 문화에 맞게 번역한 것"으로 설명했다.

"그리스 철학에 기초한 요한복음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중국의 토착문화인 유교와 도교문화에 맞게 ‘상황화’ 시켜 주체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란 주장이다.

계속해서 "중국신학은 태초에 로고스가 아니라 도(道)가 존재하였다는 해석으로,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기독교의 세계관에 종지부를 찍었다"며 "북의 문화권에서는 로고스를 ‘주체’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식 성서해석은 요한복음 1장 1절의 경우 “태초에 ‘주체’가 있어...”로 시작할 수 있는 상황신학적 논거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북의 교회와 성당에서 설교를 통하여 접할 수 있는 ‘기독교의 주체화’와 ‘주체의 신학화’ 과정은 북의 신학이 오히려 남의 신학보다 상황신학의 과정을 더욱 발전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부연했다.



마지막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태초에 '도'가 있었고, 태초에 '주체'가 있음으로 기독교의 정신은 세계 모든 민족문화 속에서 늘 새롭게 발견되는 해방전통"이라며 "이러한 해방전통이야말로 남북이 함께 추구해야 할 '신학적 민족공조'" 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신 교수의 관련 글 전문



통일뉴스에서 <신은희의 통일문화 이야기>를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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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희 교수는 주체사상과 기독교사상이 만날 수 있다며 이를 전도(?)하는 흔치않은 학자이다.

그는 주체사상을 ‘종교적 차원’에서 보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방법론으로 해서 기독교와의 접맥을 시도하고 있다.

미 심슨(simpson)대에서 종교철학을 강의하고 있는 그는 북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고 또 여름마다 남쪽에 와서 특별강의도 한다.

신학자이지만 신학에서 벗어나 인본주의로 가고 싶고 또 단순한 학문만이 아니라 실천 활동을 하고 있는 ‘주체문화’의 전도사인 셈이다.

이미 3년 전부터 주체사상과 기독교사상과의 접맥 시도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온 그의 <통일문화 이야기>는 매주(또는 격주) 화요일에 연재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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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ㅌ,ㄷ 제국주의 운동과 신학혁명”



2006년은 김일성 주석이 1926년 10월 만주에서 결성한 ‘ㅌ.ㄷ´(타도제국주의동맹)가 8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ㅌ.ㄷ’운동은 김 주석이 생전에 강대국의 제국주의 노선에 항거하는 ‘저항적 민족주의’ 정신과 함께 출발하였다.

이러한 북의 저항적 민족주의는 2006년 새해를 열면서 다시 한번 새롭게 조명될 북의 정신적 전통이다.

이제까지 ‘ㅌ.ㄷ’운동이 정치적 차원의 저항이었다면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에 출현할 ‘ㅌ.ㄷ’ 운동은 문화적 정신적 차원으로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끊임없는 북미간의 갈등은 단순한 정치싸움이 아니다.

이는 조선 문화와 서구 제국문화의 갈등이며 ‘문명 충돌’에 가깝다.

미국이 북의 주체문화를 악의 소산으로 보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이며, 북이 서구 기독교를 전폭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기독교의 종교 제국주의는 남북관계의 갈등을 더욱 촉발시키는 통일문화의 갈등요소이기도 하다.

2006년 ‘ㅌ.ㄷ’운동의 80주년을 맞이하면서 오늘날 북에서 진행되고 있는 ‘타도신학’으로서의 주체신학, 저항신학으로서의 주체신학의 상황신학(contextual theology)적 성격을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태초에 말씀 (logos)이 있어, 태초에 도(道)가 있어”




북의 교회나 성당을 방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의 교회가 주체사상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사실에 대해 많은 반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상황신학’이라는 종교신학의 쟝르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북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은 어느 정도 희석될 수 있을 것이다.

신약성서에 있는 요한복음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기독교의 신학적 핵심논리는 ‘말씀’이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이 ´말씀´이 되었다는 ‘말씀’과 ‘하나님’의 동질적 관계에 기초하고 있다.

신약성서는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말씀’은 그리스 철학에 등장하는 ‘로고스(logos)’의 번역어이다.

로고스라는 단어는 처음부터 성서에만 등장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 철학에서 빌려온 용어였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성서에 등장하는 로고스의 개념이 중국문화권에 소개되면서 색다른 변신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중국어 성서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기록하지 않고 태초에 ‘도(道)’가 있었다고 번역하고 있다.

즉, 중국문화권에서는 성서를 자신의 문화에 맞게 번역한 것이다.

그리스 철학에 기초한 요한복음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중국의 토착문화인 유교와 도교문화에 맞게 ‘상황화’ 시켜 주체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스 철학에서 로고스란 물질과 분리된 정신만을 나타내는 개념이었다.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초기 기독교는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것을 구분하였고 육신의 삶과 영적인 삶을, 신과 인간을 철저히 구분하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중국신학은 태초에 로고스가 아니라 도(道)가 존재하였다는 해석으로,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기독교의 세계관에 종지부를 찍었다.

중국신학에서 로고스라는 분리개념은 더 이상 의미를 지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도란 무엇인가?

중국문화에서 도는 신도 포함하고 인간도 포함한다.

도는 성스러움도 포함하고 세속적인 것도 포함한다.

도는 영적인 것도 포함하고 육적인 것도 포함한다.

즉, 중국신학에서 도는 중국인들의 세계관이었고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이었고 삶을 지탱하는 문화적 원리 그 자체였다.




“태초에 ‘주체’가 있어”


중국의 성경이 요한복음의 로고스를 도의 개념으로 이해하였다면 북의 문화권에서는 로고스를 ‘주체’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식 성서해석은 요한복음 1장 1절의 경우 “태초에 ‘주체’가 있어...”로 시작할 수 있는 상황신학적 논거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신학의 논리가 북의 ‘주체신학’을 궁극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북의 교회와 성당에서 설교를 통하여 접할 수 있는 ‘기독교의 주체화’와 ‘주체의 신학화’ 과정은 북의 신학이 오히려 남의 신학보다 상황신학의 과정을 더욱 발전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ㅌ.ㄷ운동의 정신을 신학적으로 조명해보면 처음부터 주체신학이라는 북의 상황신학의 원리를 찾을 수 있다.

주체신학이란 자신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그대로 지키고자 하는 주체적 본능과 열망을 조선식으로 표현한 ‘신학적 인간학’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 기독교의 신학형태는 이러한 상황신학과 함께 억압받는 고유문화 속에서 다시금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의 ´말씀´이 각각의 문화권 속에서 이방문화의 침략자가 아니라 해방적 메시지가 되기 위해서 주체신학과 같은 상황신학의 이해는 필수적이다.

자아 없이 신의 이해가 불가능하듯이 주체성 없이는 어떠한 신학도 북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북의 상황신학인 주체신학을 이해하는 것은 남북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21세기 통일신학의 출발점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태초에 ‘도’가 있었고, 태초에 ‘주체’가 있음으로 기독교의 정신은 세계 모든 민족문화 속에서 늘 새롭게 발견되는 해방전통이다.

이러한 해방전통이야말로 남북이 함께 추구해야 할 ‘신학적 민족공조’인 것이다.


independent@independe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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