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6

6.15 eur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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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의 「로동신문」에 묻는다 - 신은희
< 통일문화 이야기18> 기독교와 주체사상과의 대화



2006-05-02 오후 11:10:11


신은희 (미국 심슨 대학교 종교철학부 교수)

통 일뉴스에서 <신은희의 통일문화 이야기>를 게재한다. 신은희 교수는 주체사상과 기독교사상이 만날 수 있다며 이를 전도(?)하는 흔치않은 학자이다. 그는 주체사상을 ‘종교적 차원’에서 보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방법론으로 해서 기독교와의 접맥을 시도하고 있다.

미 심슨(simpson)대에서 종교철학을 강의하고 있는 그는 북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고 또 여름마다 남쪽에 와서 특별강의도 한다. 신학자이지만 신학에서 벗어나 인본주의로 가고 싶고 또 단순한 학문만이 아니라 실천 활동을 하고 있는 ‘주체문화’의 전도사인 셈이다.

이미 3년 전부터 주체사상과 기독교사상과의 접맥 시도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온 그의 <통일문화 이야기>는 매주(또는 격주) 화요일에 연재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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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로동신문은 4월 27일 논평에 <다민족 다인종사회>론을 민족말살론으로 규정하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적, 문화적 변화들에 대한 북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전 통적으로 로동신문은 북의 대표적인 정치적 관점을 전달하는 매체이다. 북은 다민족 다인종 사회론을 ‘민족의 독소’로 규정하며 민족을 부정하는 반민족적 행위로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북의 이러한 입장은 이민자가 거의 없고 해외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즉각적 반응으로 보인다.

더구나 북은 미국의 강경정책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총체적인 위협과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남쪽에서 제기되고 있는 다문화, 다인종의 사회적 이슈들이 민족성을 약화시키는 위험한 논리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주제는 현재 북이 처한 현실을 고려해 볼 때 형평성을 가지고 논의하기에는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민족이 서로 이해하고 만나야 한다는 미래지향적 통일문화를 생각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이런 대화는 지난 민족분단의 시간동안 남과 북이 너무도 다르게 살아왔기 때문에 상호 이해를 높이기 위한 우정어린 대화의 초대임을 먼저 밝히고 싶다.

먼저 로동신문의 논평은 혼혈인을 포함한 타민족과 타문화에 대하여 너무도 차별적인 언급을 하고 있다. 혼혈인들을 ‘인종적 잡탕화’로 폄하하면서 순혈주의에 기초한 단일민족 개념만을 강조하고 있다. 로동신문의 이러한 입장은 한국사회와 문화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지 못한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불고 있는 다인종 다문화 논의는 우리 민족을 ‘혼혈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민족의 정체성을 부인하려는 운동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분단의 이유로,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남한 사회에 함께 살고 있는 혼혈인들을 포함한 타인종과 타민족에 대한 우리의 배타적 입장을 좀 더 인도적으로 발전시켜 보자는 건전한 시민운동이다. 북과는 달리 문화적 다양성이 이미 존재하는 한국사회에서 인종적 ‘차이’를 ‘차별’로 여기지 않고 다양성을 수용하고자 하는 평화적 시민의식인 것이다.

사 실,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민중 가운데 민중이다. 경제적 착취는 물론 인종적 차별과 멸시를 당하며 서럽게 살아가고 있다. 이들과 한국인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들 또한 ‘혼혈아’라는 딱지를 붙이고 평생 무시당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비롯된 다인종 다문화 문제가 우리 한민족, 조선민족주의를 희석시키고자 하는 반민족적 정서로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지배문화 속에서 소외되고 핍박받는 소수민족과 문화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민중적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혼혈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그들이 혼혈이라는 이유로 ‘단일민족성’을 지닌 우리민족으로부터 지독한 인종적 차별과 억압을 당해도 무방하다는 것인가. 로동신문의 논평에서처럼 혼혈인들의 존재를 ‘민족의 독소’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약자를 향해 무자비한 인종차별적 언사를 하는 언어폭력이 아닐 수 없다.

또 한 로동신문은 이 논평에서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민족 다인종 운동>이 극우세력과 결탁한 친미세력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은 문화와 인종의 다원주의 논의가 오히려 평화운동을 전개하는 진보세력들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는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원칙이며 소수민족과 문화도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평화적 다원주의의 대명제이다.

정확하게 같은 원리가 북의 주체문화에도 적용된다. 한국사회의 많은 이들은 북의 주체문화가 제거되어야 한다고 믿지만 진보세력들은 북의 주체문화 또한 국제사회에서 소수문화로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할 것을 주장한다. 한국사회 일각에서 주체문화를 북의 고유한 문화로 해석하고 문화 다원적 범주에서 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있듯이, 북도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민족 다인종 현상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진지한 자세가 필요하다.

특별히 한국에 사는 혼혈인들은 사회적 약자이며 소외된 집단이기에 더욱 많은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한다. 어떤 민족이 혼혈전통을 지녔다고 해서 그 문화와 인종이 열등하게 취급받는 것은 우리 모두가 그토록 몸서리치게 싸워온 강대국의 제국주의 논리와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이는 또한 우리 인류사회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다양성이 존중받는 평화주의 정신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GDP 10위권에 진입한 한국사회는 이제 ‘나누어주는 나라’로, ‘포용하는 사회’로 성숙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사회의 다민족 다인종 현상을 북의 관점에서만 일방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음을 북은 깨달아야 한다.

또한 로동신문이 밝힌 다민족 다인종 문제에 관한 논평은 북에서 정의한 <조선민족제일주의> 개념과 모순되는 내용이 많아 보인다. 전통적으로 북의 사상과 문화는 김일성 주석과 그의 유훈을 이어받은 김정일 위원장의 사상에 기초하여 발전해 왔다. 그리고 두 수령의 사상과 문화는 북의 인민들의 심성 속에 절대적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북의 사회를 움직이는 사회적 동력이 되고 있다. 북의 민족주의 이해도 같은 맥락에 서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자신의 민족주의에 대한 입장을 <조선민족제일주의를 높이 발양시키자>라는 주제의 연설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1989년 12월 28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 앞에서 한 이 연설은 오늘날까지 북을 대표하는 민족주의이다.

“조선민족제일주의 정신은 한마디로 말하여 조선민족의 위대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조선민족의 위대성을 더욱 빛내어 나가려는 높은 자각과 의지로 발현되는 숭고한 사상감정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 그는 <조선민족제일주의>라는 표현이 줄 수 있는 오해의 소지를 먼저 해결한다.

“우 리가 내세우는 민족제일주의는 인종주의나 민족배타주의와 아무런 인연이 없습니다. 민족의 우렬을 생물학적인 인종적 특징에 따라 규정하는 것은 반동적인 부르죠아 인종론입니다... 반동적 인종론은 제국주의자들에 의하여 인종차별정책과 민족말살정책의 사상적 도구로 리용되여 왔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1980년대부터 북의 민족제일주의는 타인종이나 민족을 차별하는 인종차별주의나 배타적 민족주의를 배격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혀왔다. 그는 백인들이 자신들의 인종과 문화를 우수한 것으로 규정하고 힘없는 소수민족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한다.

따라서 조선민족제일주의란 조선민족이 세계 어떠한 민족보다 우월하니 모두 ‘조선민족화’ 하자는 것이 아니라 ‘조선사람에게는 조선문화가 최고다’라는 뜻으로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자는 뜻이다. 이러한 북의 민족주의는 타민족을 멸시하거나 평가절하하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소수민족과 인종을 존중하며 보호해야 한다는 평화적이고 포괄적 민족주의 정서가 녹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로동신문의 논평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제시한 포괄적 민족주의의 성격을 찾아보기 어렵다.

강대국의 제국주의와 반세기 이상 싸워온 북은 마땅히 국제사회의 다른 약자들을 포용할 수 있는 높은 국가적 도덕성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닐까? 북이 미국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을 더욱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는 도덕적 자격을 지키려면 타민족의 설움과 아픔을 품을 수 있는 포용적 민족주의 정신을 회복해야만 한다. 타민족의 한 많은 절규를 무시하면서 우리민족의 아픔만을 보상받으려는 것은 민족적 이기주의일 수 있다. 민족이기주의에 힘이 더해지면 결국 제국주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북의 저항적 민족주의 정신은 우리민족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 흩어져 억압받는 다른 소수민족들과의 포용과 연대를 통하여 더욱 위대한 민족주의와 아름다운 평화주의로 그 빛이 발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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