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9

대군의 척후: 일제하의 경성방직과 김성수, 김연수 주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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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의 척후: 일제하의 경성방직과 김성수, 김연수>>, 주익종 지음(2008년)
1. 한국 근대 경제사를 전공한 주익종 박사의 매우 꼼꼼하고도 예리한 통찰이 돋보이는 책이다. 주익종 박사는 Carter Eckert가 쓴 Offspring of Empire를 번역해 2008년에 <<제국의 후예>>로 출간했다. 에커트에게 직접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가 왜 Offspring이라는 단어를 골랐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 역시 자신들이 조선에서 당시 한 행동이 어떤 후과를 가져오기를 의도했거나 또는 오늘날과 같이 되리라고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미가 이 단어에 들어 있다.
2. 에커트는 1960년대 이후 한국의 폭발적인 경제 발전이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개항과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특히 식민지 시기에 출현한 김성수(경성방직), 김연수(삼양사) 같은 이들이 한국 자본가 층의 원류로서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은 이미 일제 시대에 만들어져 상당한 경험을 축적한 경제적 인적 자원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3. 에커트의 주장은 양면의 칼 같은 성격이 있다. 우선 그의 연구는 한국인 자본가 계급이 일본의 제국주의에 많이 의존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원료, 기술, 자본, 설비를 일본에 의존한 것은 물론 노동쟁의가 일어났을 때에는 총독부 경찰 권력의 보호를 받았다. 그는 이러한 점에서 일본의 예기치 않은 기여가 한국 경제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는 점을 밝히는데 문제는 이 점이 예속자본론을 주장하는, 소위 민족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한다는 것이다.
4. 예속자본론자들은 조선총독부에 "영합"한 경성방직과 삼양사가 일본 제국주의의 꼬붕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일본의 방해를 받았음에도' 이런 훼방을 극복하고서 민중이 경제 기적을 이룩했다는 것이 예속자본론자들의 입장이다.
5. "한국 민중이 X 빠지게 노력해서 경제 성장을 이룬 것이다"라는 이들의 주장도 참으로 웃긴 것이 이들은 이런 성과를 이룩했다고 하는 한국 민중이 어디에서 형성되었고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를 뚜렷이 보여주지 못한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일제 시대를 거치는 동안 한국 민중은 일본의 수탈과 억압 때문에 철저하게 무너져 말살된 것인데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바퀴벌레도 아닌 조선인들이 대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짜잔~' 하고 나타날 수 있었을까? 포악한 일제를 거치고 살아남은 민중에 속해 있던 인물이 이병철, 구인회, 최종건... 참 난감하다.
6. 한국인 연구자들은 이럴 때는 꼬~옥 고약한 코쟁이들의 연구를 원용하는데 예를 들어 브루스 커밍스(1984)는 "초대에 의한 발전(Development by Invitation: 한국이 잘나서가 아니라 미국의 주도로 일본과 한국이 참여하는 지역분업체제가 만들어져서 한국의 공업화가 가능했다)"이라고 주장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만 초대는 한국만 받았나?
커밍스의 아내인 우정은(1991)은 한 술 더 뜬다. "사회계급들로부터 초월해 있는 강성국가가 금융을 장악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한국의 공업화가 진행되었고, 그 기원은 일본 그리고 식민지 한국에 있다"라며 남편보다 더 좌측으로 클릭해서 주장했는데 "금융을 장악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으응)은 부카니스탄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 많이 써먹은 방법 아니던가? 아니 지금 민족의 태양 님을 엿 먹이는가?
(참고로 우정은의 아버지는 1954년부터 1975년까지 경제기획원 차관보 등을 거치면서 개발경제의 최선두에 있었던 우용해)
7. 주익종 박사의 연구가 뚜렷하게 돋보이는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주 박사는 한국이 19세기 말부터 자본주의 경제에 전면 개방된 이후로 경제 사회가 전면적으로 개편되면서 경제 성장을 경험했고 그 비결 중 하나로 꼽는 것은 한국인들이 자본주의시장경제에 매우 뛰어나게 적응하며 자기 개발에 성공했다는 점을 발굴했다. 에커트와 마찬가지로 김성수 김연수 형제를 주제로 다루었지만 에커트의 연구가 놓친 부분을 매우 세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8. 주 박사의 실증적이고 분명한 발견은 결국 "독립운동 제일주의"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들면서 동시에 역사를 보다 냉정하게 바라보도록 이끈다. 거대담론이 갖는 대외적인 명분에 집착하는 한국의 풍토상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일제를 상대로 독립운동"을 했다는 딱지는 사실상 모든 곳에서 제한 없이 통하는 만능 출입증이자 무제한 까방권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나타났듯이 식민 모국을 상대로 가열차게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이를 기반으로 집권한 신생 독립국가들 중 한국의 성과를 이룩한 나라는 전무하다.
9. 한국이 해방되고 독립하기 이전부터 이 땅에는 일본이 도입해 이식해 준 시장경제체제가 40년 이상 자리를 잡았고 이는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근본 질서로서 자리를 잡았다. 일본이 화폐제도와 재정제도를 개혁하여 안정적인 통화제도를 만들어 주었고, 수탈이나 다름 없던 조세 제도를 법률에 입각한 조세 제도로 바꾸었고, 교통통신망, 토지소유권제도의 근대화처럼 사회 질서를 뿌리부터 바꾸어버린 역할이 있음을 쿨 하게 인정해야 한다. 김수영 시인이 1960년에 지은 "김일성 만세"의 문구처럼 일본이 도입해 준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만 하면 혀가 안 꼬이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하니 마음에 마구니까 낄 수밖에.
10. "일본이 좋은 뜻으로 한 것은 아니잖냐!"는 별 시덥지 않은 소리를 하시는 분들이 자주 있는데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을 완성한다는 성리학의 숭고한 이념으로 만든 조선은 뜻이 좋았는데 왜 그 모양입니까? 의도가 좋으면 결과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세상에 수많은 사람을 구원하고 목숨을 살린 의학, 기술, 제도 중에 처음부터 좋은 뜻으로 개발되고 만들어진 게 몇 개나 있겠습니까? 하물며 당하는 이들에게는 비극적이라고 하는 전쟁도 사회적으로 예기치 않게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것이 현실인데요."
11. 김성수나 그의 동생인 김연수는 모두 고창 대지주의 아들이다. 사실 아버지의 돈이 아니었더라면 20대의 팔팔한 패기를 백 번 강조한다고 해도 경성방직을 일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설립하고 6개월 만에 자본금을 절반이나 까먹는 적자를 냈을 때에 김성수는 아버지, 그것도 양아버지를 다시 찾아가서 한참을 설득한 끝에 돈을 추가로 얻어온다. 그렇게 얻어온 돈으로 회사를 살리고, 중앙고등학교와 보성전문학교를 일구어 낸 김성수의 역할은 당대에 수많은 대부호들의 그것과 분명히 차이를 보인다. 소위 말해 2등 양반 출신(전라도 고창)임에도 주색잡기로 인생을 허랑방탕하지 않았고, 어려울 때에 용감하게 도전했으며, 기술과 기업이 조선 민족의 힘을 기르는 데에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 행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힘을 모았다.
12. 이 책의 제목은 1935년 4월 14일 조선일보에 <실업과 정신수양>이라는 이광수의 글 중에서 따왔다.
"상업에서 화신(박흥식이 세운 화신), 공업에서 경성방직의 확장과 발전은 결코 한낱 사실만이 아니요, 뒤에 오는 대군(大軍)의 척후(斥候)임이 확실하다."
13. 비록 경성방직은 사양산업으로서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김연수가 남긴 삼양사는 식품회사를 거쳐 화학회사로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일제 시대에는 비교도 안 되는 중소상인이었던 이병철, 김성수의 보성전문 건물을 세울 때에 막노동으로 참여했던 정주영 등은 이광수가 예견했듯이 삼성과 현대라는, 정말 세계와 싸워 이기는 거대한 군대를 만들고 오늘날 한국을 먹여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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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宇衍 and 4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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