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6

알라딘: [전자책] 표트르대제 - 살림지식총서 358

알라딘: [전자책] 표트르대제 - 살림지식총서 358
[eBook] 표트르대제 - 살림지식총서 358 - 강력한 추진력으로 러시아를 일으키다  | 살림지식총서 358
박지배 (지은이)살림2013-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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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정가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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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 96쪽, 약 7.1만자, 약 1.7만 단어

책소개

살림지식총서 제 358권으로, 표트르 대제에 대한 입체적인 조망을 통해 오늘날 리더십에 대한 한 교훈을 찾는다. 미국과 함께 20세기를 양분했던 소련. 냉전 이후 그 영향력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세계의 주요 강대국 중 하나인 러시아. 하지만 러시아는 오랜 시간 동안 농촌공동체 중심으로 소박한 삶을 살아가던 낙후된 국가였다. 이런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틀을 닦은 이가 바로 표트르 대제이다.


목차
고립된 러시아
어린 시절의 기억
북방전쟁과 발트 항구
천국을 여는 열쇠 페테르부르크
대개혁과 귀족 국가
개혁이 가져온 아픔
표트르에 대한 단상

책속에서
표트르의 어린 시절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표트르의 아버지인 차르 알렉세이는 마리야 밀로슬라브스카야와 결혼하여 13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 가운데 두 아들 표도르와 이반이 왕위를 계승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나, 둘 다 병약했고, 더욱이 신체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딸 소피야는 남자로 태어났다면 큰일을 하고도 남을 여걸이었지만, 여자라서 왕위에 오를 수는 없었다. 알렉세이는 첫 번째 아내 마리야가 죽고 나서 나탈리야 나르이쉬키나와 재혼을 했고, 여기서 표트르가 태어났다. 그리고 차르 알렉세이가 죽은 후에 큰 아들인 표도르가 왕위를 계승했다. 표도르가 건강하여 아들을 낳았다면 표트르는 영원히 권력에서 멀어졌겠지만, 이복형 표도르는 상속자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이제 러시아의 차르 가문에서 남은 아들은 이반과 표트르뿐이었다. 당시에는 구체적인 왕위 계승 법률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두 명의 왕비 가문, 즉 이반 왕자를 배출한 밀로슬라브스키 가문과 표트르를 배출한 나르이쉬킨 가문 가운데 승리하는 쪽이 러시아의 차르가 될 수 있었다. 결국 1613년 로마노프 왕조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전국회의’에서 표트르를 새로운 차르로 추대했고, 표트르가 제위에 오르게 됨으로써, 일단 나르이쉬킨 가문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표트르의 이복 누나인 소피야는 유능하고, 강인했으며, 또한 야심만만한 위인이었다. 그녀는 당시 모스크바를 경비하던 스트렐츠이라는 소총 부대를 사주하여 나르이쉬킨 가문을 제거하고, 동생 이반을 표트르와 함께 공동 차르로 선포했고, 자신은 섭정으로서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했다. 당연히 이러한 궁정 내의 권력 투쟁은 피바람을 몰고 왔으며, 당시 만 열 살이었던 표트르는 이 모든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9-10쪽)  접기
표트르는 최고의 야전 사령관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 제국의 군주로서는 뛰어난 지도자였다. 표트르는 유럽 최강의 스웨덴 군대를 상대로 싸우면서 스스로 학습했고, 러시아 군대를 더욱 강하게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상대의 강함을 알았으며, 주어진 상황 속에서 정열적으로 대처한 지도자였다. 사실 칼 12세가 17세기 러시아의 국가 조직, 생산 능력, 군사 조직을 상대로 싸웠더라면, 비록 남부에서 고립되었다고 할지라도 마침내 폴타바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1709년 폴타바 전투 때의 러시아는 1700년 나르바 전투 때의 러시아가 아니었다. 나르바에서 패배한 이후 표트르는 군사?행정?경제 각 분야에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면서 폴타바의 승리를 준비했던 것이다. 그리고 폴타바에서 결정적인 승리 이후에도 표트르의 개혁은 계속되었고, 북방전쟁을 종결하는 시점인 1710년대 말에 표트르는 새롭게 건설한 발트 함대를 출동시켜 스웨덴 본토를 세 차례나 공격하면서, 1721년에는 북방전쟁을 종결짓는 휴전조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이후 18세기와 19세기에도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에 수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스웨덴은 단 한 번도 러시아를 이기지 못했다. 이제 스웨덴은 가진 자원이나 인력으로 볼 때 방대한 영토와 자원 그리고 인구를 가진 러시아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36-37쪽)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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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박지배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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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회경제사 전공.
러시아 국립학술원 역사연구소 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초빙교수.
최근작 : <20세기 서양의 일상과 풍경>,<근대세계체제에서 러시아와 영국의 무역>,<러시아 근대사> … 총 1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미국과 함께 20세기를 양분했던 소련. 냉전 이후 그 영향력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세계의 주요 강대국 중 하나인 러시아. 하지만 러시아는 오랜 시간 동안 농촌공동체 중심으로 소박한 삶을 살아가던 낙후된 국가였다. 이런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틀을 닦은 이가 바로 표트르 대제이다. 표트르 대제에 대한 입체적인 조망을 통해 오늘날 리더십에 대한 한 교훈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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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대제의 시대와 그 유산

러시아 문학을 강의하면서 작가들 외에 내가 가장 많이 들먹이는 이름이 근대 러시아의 건설자 표트르 대제다. 그를 빼놓으면 근대 러시아사는 물론 한 세기 뒤에 만개하는 러시아문학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표트르 대제와 그의 시대를 다룬 책을 다수 소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주에 그 목록이 하나 늘었다(원서를 포함하면 둘이다). 번역서 가운데서는 가장 두툼한 평전이 소개됐기에. 린지 휴스의 <표트르 대제>(모노그래프)가 그것인데 이 분야의 한정된 독자를 고려하면 역자와 출판사의 노고를 평가할 수밖에 없다. 한정된 독자라지만 혹여 러시아여행을 계획하는 분이라면 페테르부르크 건설자이자 청동기마상의 주인공, 표트르 대제의 평전 정도는 필독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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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17-09-22 공감 (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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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1세 알렉세예비치(Пётр I Алексеевич) 새창으로 보기




공정히 말하자면 우리는 러시아를 '표트르 나라'라고 불러야 하며, 러시아인은 '표트르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책 88쪽)





  다른 책을 읽다가 문득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이 눈에 띄어 슬쩍 읽어 보았다.

  레닌그라드는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되었는바, '제2의 암스테르담'을 꿈꾸며 페테르부르크를 세운 이야기가 조금은 더 궁금했다.





최신 유행의 모범적인 추종자가

옷을 입었다 벗었다 다시 입는

한적한 내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 볼까?

끝없는 변덕을 만족시키기 위해

런던의 잡화상이 팔아먹는 모든 것,

목재나 수지와 맞바꾸기 위해 발트 해의 물결을 헤치고 우리에게 들여오는 모든 것,

탐욕스러운 빠리의 취향이

수지 타산이 맞는 장사인가 싶으면

오락과 사치와 유행하는 호사를 위해

발명해 내는 모든 것

이 모든 것이 열여덟 살 난 청년 철학가의

내실을 장식해 주었다.



- 푸슈킨, 『예브게니 오네긴』 중에서 (책 53쪽)





  무협지 느낌이 나는 짧은 역사서로, 술술 쉽게 읽힌다.

  열 살 무렵 겪은 권력투쟁과 살육이 자유로운 영혼을 몽그리게 하였을 것이다.



  정신분석학적 접근이 이루어질 법도 하여 찾아 보았더니, Vasily Osipovich Klyuchevsky라는 러시아 사학자와 다음 논문 정도가 검색된다.

  https://en.wikipedia.org/wiki/Vasily_Klyuchevsky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Vasily-Osipovich-Klyuchevsky

  https://biography.yourdictionary.com/vasily-osipovich-klyuchevsky

  https://www.encyclopedia.com/people/history/historians-european-biographies/vasily-osipovich-klyuchevsky





  Daniel Rancour-Laferriere, "The Couvade of Peter the Great: A Psychoanalytic Aspect of The Bronze Horseman." Puškin Today , ed. D. Bethea, Indiana University Press: Bloomington (1993), pp. 73-85.



  Daniel Rancour-Laferriere는 UC데이비스 명예교수로(2004년 정년 퇴임), 브라운대에서 슬라브어, 문학을 전공하고, 푸슈킨, 레르몬토프, 고골, 톨스토이, 파스테르나크, 솔제니친 등 러시아 작가들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연구를 수행하셨다. 다음 블로그를 참조. https://www.rancour-laferriere.com/





 





  통치기간 중 1724년 단 한 해에만 전쟁이 없었다거나, 러시아를 북방의 패자로 떠오르게 한 스웨덴과의 북방전쟁에서 4만 명이 목숨을 잃었던 반면 페테르부르크 건설에만 무려 7만 명의 생명이 필요했다는 기록처럼, 표트르 대제의 대두리들은 러시아인들에게도 뒤숭숭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오 나의 하느님! 저는 인민의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죄를 지었는데 용서해 주실 줄 믿습니다.



- 표트르, 1725. 1. 27. 사망 전날 병자성사를 받고서 (책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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