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익의 광저우 책갈피]시대를 사랑하면서 거부했던 사상가 루쉰 - 경향신문
김유익의 광저우 책갈피
시대를 사랑하면서 거부했던 사상가 루쉰
김유익 재중문화교류활동가
입력 : 2022.04.15
첸리췬(錢理群) 편저
<첸리췬의 새로운 루쉰작품선집 魯迅作品選讀, 錢理群新編>
“중국인들은 평화로운 시기엔 루쉰을 읽지 않습니다. 진실(無眞相), 컨센서스(無共識), 분명한 것들(不確定)을 찾을 수 없는 지금과 같은 환란의 시기에 그를 찾죠.” 이미 팔순을 넘긴 첸리췬(錢理群) 선생이 작년 연말, 새 <루쉰선집(魯迅作品選讀)>과, 평론집(錢理群講魯迅)을 출간했다. 2015년부터 양로원에서 생활한 그는 2019년 부인과 사별했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한동안 사람들을 접촉할 수 없어 외로움에 시달렸지만, 루쉰 탄생 140주년이었던 작년부터는 책의 출간과 함께 비리비리(중국판 유튜브)에도 강연을 올리고 있다. 인생을 달관하고 보니 창의력이 샘솟는다는 지금은 양로원 생활에 대한 글을 집필하고 있다.
마오쩌둥에 의해 문학가·사상가·혁명가로 박제됐던 루쉰은 중국 인민에게 신처럼 추앙받았지만 대륙의 지식인에게 오히려 오랜 기간 외면받았다. 1980년대부터 루쉰 연구에 전념한 첸리췬은 중국의 청년들과 루쉰을 잇는 다리 역할을 자신의 인생 사명으로 삼아왔다. 2002년 베이징대학 정년퇴임 후에도 청소년들에게 루쉰을 알리는 자리라면 지역을 마다하지 않고 강연 요청에 응해왔다.
루쉰은 “귀여운 면도 있는 사람”이었고, 심지어 동화를 쓰고자 하기도 했지만 시대의 무게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대표작은 에세이(雜文)들인데 세상의 변화를 신속히 캐치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은 마치 지금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같다. 당대의 이단아였던 그의 생각은 지금 돌아봐도 신선하다. 자식과 아내에게 전제군주로 군림하던 가부장에 대해, 대물림 목적과 성적 욕망의 결과일 뿐인데 무슨 얼어죽을 어버이의 은혜를 찾냐고 일갈하면서, 자녀가 행복하고 합리적인 인간이 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면 족하다고 말한다.
그는 친일파로 몰렸던 동생 저우줘런(周作人)에게 일제를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애국자였지만, 맹목적인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중화는 무조건 최고”라는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우린 숫자가 많아 절대 멸망하지 않을 테니 무슨 짓을 저질러도 상관없다”라는 후안무치한 이들을 꾸짖었다.
루쉰의 생각은 모순적이고 복잡하며 다차원, 다면성을 가진 살아 있는 유기체여서, 언제나 현재 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는 주로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삶의 오랜 시간을 보냈다. 고독과 전통문화를 사랑하기에 베이징을 그리워하면서도, 고독을 증오하고 시대에 뒤처질 것이 겁나 재미있고 생기 있는 상하이를 떠나지 못했다. 하지만, 동서양의 속물 문화가 혼재한 상업도시 상하이는 여전히 그에게 번잡스러운 ‘양아치’들의 놀이터였다. 100년 후의 모습도 큰 차이는 없다.
은퇴 후 첸 선생이 활발히 참여한 또 다른 캠페인은 청년 자원봉사활동이다. 루쉰 사상의 정수는 실천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1940년대생부터 1980년대생까지 청년들과 밀접히 교류했던 그의 가르침이 자신이 “섬세한 이기주의자”라고 부르는 1990년대생 현실주의자들에게도 먹힐지는 의문이다. 그의 천진난만한 할아버지 미소는 매력있지만 여전히 청년들이 “큰 뜻을 품어야 한다(樹雄心 立壯志)”라는 그의 가르침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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