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 뭉친 고애신과 주인공들... 당시 조선 상황은 완전 달랐다
[사극으로 역사읽기]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역사와 다른 부분은
김종성(qqqkim2000)
18.09.30
▲ 유진 초이(이병헌 분). ⓒ tvN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를 다룬 tvN 사극 <미스터 션샤인>이 9월 30일 24부를 끝으로 종영된다. 이 드라마는 조선이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뒤얽혀 사는 여러 인간 유형들을 주요 등장인물로 내세웠다.
노비인 부모가 주인집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을 목격한 뒤 태평양을 건너 달아났다가 미군 장교가 되어 돌아온 유진 초이(이병헌 분), 항일운동 중에 숨을 거둔 부모의 딸로 태어나 낮에는 명문 양반가 규수로 살고 밤에는 쾌걸 조로 같은 복장으로 항일 총잡이가 되는 고애신(김태리 분).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고초를 지켜본 뒤 현해탄을 건넜다가 일본 무사가 되어 돌아와서는 경제적 침략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구동매(유연석 분), 친일파 이완익의 딸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와 전혀 다른 삶을 추구하며 서양식 글로리 호텔을 경영하는 이양화(김민정 분), 유진 초이의 부모를 죽인 양반가의 아들로 태어나 고애신과 정혼했지만 두 사람과 애증 섞인 우정을 쌓아가는 김희성(변요한 분).
언뜻 볼 때 이 다섯은 화합하기 힘들어 보인다. 얼마든 원수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설령 원수가 안 된다 해도 충분히 반목할 만한 사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마음이 서서히 하나로 모아져 갔다. 애(愛)와 증(憎)이 뒤엉키는 가운데,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향해 이들의 마음은 모아졌다.
다섯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수렴시킨 요인 중 하나는 핏줄이다. 외세 일본의 침략을 받는 한 민족이라는 사실이 이들의 마음을 한 방향으로 끌어당긴 요인 중 하나다. 물론 이완익(김의성 분) 같은 악질 친일파는 끝끝내 회개하지 않다가 총 맞아 죽었지만, 다섯 명의 주요 인물은 물론이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무수한 조선 백성들은 항일이라는 공동 목표 하에 하나로 단합했다. 이로 인해 드라마 분위기가 상당히 훈훈해진 측면이 없지 않다.
<미스터 션샤인>과 당시 조선의 실제 상황, 차이점은 '이것'
▲ 고애신(김태리 분). ⓒ tvN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 우리 민족이 신분과 계층의 벽을 뛰어넘어 하나로 응집하는 극중 분위기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기는 하지만, 시청자들이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조선이 1910년 멸망한 것은 바로 그 훈훈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초반부터 조선은 여러 갈래로 찢겨져 있었다.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으로 민생경제가 피폐해져 19세기 초중반 내내 전국적 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시대를 실질적으로 통치한 안동 김씨, 풍양 조씨, 경주 김씨 같은 세도 가문들은 국가 분열을 치유하기보다는 가문과 정파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만 심혈을 기울였다. 찢겨진 대중의 마음을 '힐링'하고 추스르기 위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세도가문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19세기 후반에도 국론 분열은 더욱 심해져 갔다. 대중이 1882년 임오군란과 1894년 동학혁명을 일으킨 것은, 무장투쟁 방식을 동원하지 않고는 안 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미스터 션샤인> 등장인물들처럼 마음이 하나로 수렴되어 가는 게 아니라 온 나라의 마음이 제각각 찢겨나가는 양상이 갈수록 심해져 회복불능 상태가 됐기에, 대화보다는 투쟁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시대에는 어느 외세와 손을 잡을 것인가를 놓고도 분열이 심했다. 이런 양상은 대중보다는 지배층에서 더 많이 나타났다. 지배층 역시 문제 해결을 무력투쟁에 의존했다. 청나라의 힘을 원하는 세력은 임오군란 중에 청나라 군대를 은밀히 불러들였고, 청나라의 간섭을 싫어하는 세력은 1884년 갑신정변 때 일본군의 힘을 빌렸다. 지금 같으면 국회에서 멱살 잡으며 따질 수 있는 문제를, 그때는 총칼을 갖고 해결하려 했다. 지배층 내부의 분열도 회복불능에 가까웠던 것이다.
▲ 구동매(유연석 분). ⓒ tvN
분열의 심각성은 동학혁명 시기에도 표출됐다. 동학군은 조선왕조의 봉건 통치도 문제 삼았지만, 그보다는 외세의 경제적 침략을 더 크게 문제 삼았다. 동학혁명의 주된 목적이 외세로부터 조선을 지키는 데 있었는데도, 양반 지배층은 그런 동학군을 향해 총칼을 겨냥했다. 동학군의 주류는 그 시대의 최대 직업군인 농민이었다. 그중에서도 소작농이 많았다. 이들이 정치개혁을 부르짖자, 지주층인 양반들이 이들을 막겠다며 나섰던 것이다.
동학군으로 참전했던 김구의 <백범일지>에 따르면, 황해도에서는 양반들의 민병대가 의려소(義旅所)란 이름으로 등장했다. 여(旅)는 오늘날엔 여행의 이미지로 많이 쓰이지만, 옛날에는 군대의 이미지로 많이 쓰였다. 그래서 의려소는 지금 말로 바꾸면 의병대가 된다. 외세에 맞서는 동학군을 그냥 지켜보지는 못할망정 의려소 같은 것을 만들어 동학군의 뒷덜미를 잡는 행태를 양반 지주층이 보여줬던 것이다.
분열상은 동학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극명하게 표출됐다. 정부는 동학군을 진압하고자 일본군과 공동 작전을 벌였다. 나당동맹이 아니라 한일동맹으로 동학군을 진압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동학혁명에 참가한 대중은 물론이고 이를 응원했던 대중도 더 이상 조선왕조를 좋게 보아줄 수 없게 됐다. 대중의 가슴 속에 광범위한 앙금이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성공하고 대한제국 때의 의병은 실패한 이유
▲ 이양화(김민정 분). tvN ⓒ tvN
동학혁명 실패 직후에 서구식 개혁을 표방하며 등장한 독립협회 운동 과정에서도 그런 문제점이 나타났다. 독립협회 운동의 결과로 왕정체제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고종은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 진압했다. 이처럼 나라를 염려하는 백성들을 공권력으로 짓밟는 일이 한없이 되풀이됐으니, 왕실과 나라를 위해 자신을 던질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성공하고 대한제국 때의 의병은 실패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미스터 션샤인> 속의 이완익(김의성 분)은 "임진왜란 때 의병 했던 자의 후손이 지금도 의병 한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두 시기의 의병은 확연히 달랐다.
임진왜란 때는 대중과 양반의 응집이 빨랐다. 거의 다 빼앗길 뻔했던 국토를 금세 회복한 데는 이 점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대한제국 시기에는 의병운동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임진왜란 때 같은 응집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대중의 참여와 지지 면에서 임진왜란 때를 따라가지 못했다.
일본은 청나라와 러시아는 전쟁으로 격파했지만, 조선과는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그러고도 조선을 손쉽게 장악했다. 조선이 그 정도로 약한 나라가 아니었다는 점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쉽게 망한 것은, 국론이 분열돼 있어서 백성들이 왕실을 위해 목숨을 걸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김희성(변요한 분). tvN ⓒ tvN
조선 멸망으로부터 불과 9년 뒤인 1919년 3월 1일부터 2개월간, 2천만 한민족의 최대 10%가 일본에 맞서 조직적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 정도 역량을 갖춘 대중이, 왕조가 망하던 1910년에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19세기 초중반 내내 끊임없이 민란을 일으키고, 19세기 후반에는 임오군란도 일으키고 동학혁명도 일으키고 독립협회 운동도 일으켰던 대중이 1910년에는 관망 자세를 취했다.
이는 백성들의 마음이 갈래갈래 찢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시대 사람들이 악(惡)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나라를 구하고자 일어섰지만, 공권력을 가진 왕실과 정부는 그때마다 총칼로 진압했다. 힘이 부족하면 외세를 불러서라도 진압했다. 그래서 일반 대중 입장에서는 나라에 애착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이것은 1910년에 조선이 허무하게 무너진 이유 중 하나였다.
이런 실제 양상이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완익을 뺀 등장인물들은 애국심과 항일심을 매개로 점점 더 하나가 되어갔다. 이 드라마 속의 조선 백성들은 하나의 마음으로 똘똘 뭉쳐 있다.
물론 아름다운 장면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조선 멸망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설정이다. 역사를 그저 멋있고 재미있게만 묘사하는 게 아니라, 역사 속 아픔을 드러내고 지혜를 찾아내는 것도 사극의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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