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반복’으로 한중관계사를 재구성하기의 위험성에
관하여
요약 : 이 글은 오드 아르네 베스타의 <제국과 의로운 민족>에 관한 서평입니
다. 옥창준 선생께서 감사하게도 책을 보내주셔서 서평을 약속드렸는데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서평글을 적어보았습니다. 서평글의 내용은 옥창준 선생의
학술적 업적과 베스타의 학술업적, 그리고 내용 요약 및 비판으로 되어 있습
니다. 바로 내용으로 들어가실 분은 (3)으로 넘어가시면 됩니다.
내용 포인트 : 제국 - 민족 - 의로움이라는 세 가지의 키워드로 전근대 한중관
계를 '복합주권'적 상태로 재구성했다. 이 제국적 국제질서에 입각한 복합주
권적 상태는 20세기 냉전을 거치며 형해화되었고, 제국이 아닌 "국민국가"적
관계로 변형되었지만 여전히 중국 - 한반도 관계에서 작동하고 있다. 그 결과
제국적 경험과 국민국가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중국의 외교관계에서의
곤란을 낳고 있다. 저자는 북한의 멸망을 필연적인 것으로 전제한 뒤에 북중
관계의 유지가 한국의 반중정서를 낳고 중국의 대국화를 가로막는 장애로 기
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저자는 중국이 제국경험 - 국민국가적 질서
간의 괴리를 해소하려면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좀더 주력해야 한다는 조언을
하고 있다. 그에 대한 비판점으로는 유교적 가치에 입각한 국제질서로 한중관
계를 설명하려다보니 지나친 유교 환원주의가 나타나고 있다. 전통의 재현을
통해 현재를 바라보는 건 환원주의의 위험이 있다.
오드 아르네 베스타의 <제국과 의로운 민족>(옥창준 역, 너머북스, 2022)는
한국인이라면 솔깃할 수밖에 없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왜 한국은 중국의 바
장기지속할 수 있었을까?” 확실히 한국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옆에 두
고도 대단히 오랜 기간동안 나름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며 존속해온 몇
안되는 민족이며, 이는 베스타의 지적처럼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베스타는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인의 위대함이라
든지, 훌륭함이라든지 하는 한국인의 ‘놀라운 성취’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
니다. 그는 중국 연구자에서 출발하여 냉전사 연구자로 크게 이름을 떨친 세
계적인 학자로, 그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중국사 연구의 연장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책은 ‘제국’이었던 중국이 20세기를 거치며 민족국가화 되기는 했지
만, 냉전 이후 다시금 제국적 규모로 성장하는 와중에 청왕조가 겪었던 제국
으로서의 고뇌와 마주하게 되었다는 문제의식에서 현대 중국이 처한 곤란을
한중관계사를 통해 드러내고, 그러한 과정에서 곤란을 해결할 단초를 찾아내
려 한다.
(1)
그렇다면 중국사의 전개를 중심에 두고 중국이 마주하고 있는 곤란을 타파하
기 위해 한중관계사를 되짚어보는 이 책을 한국인인 우리가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역자 옥창준은 옮긴이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다소 길지
만 핵심을 지적하고 있어 인용해본다.
문제는 한반도와 중국에서 모두 민족주의적 시각이 강해지면서 저자가 다룬 시기의
복합 주권과 복합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중국과 관
련된 문제는 ‘사대주의’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쉽지 않으며, 역사와 문화를 공유했던
경험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항상 폭발성을 지닌 쟁점으로 변화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베스타가 줄곧 강조하고 있듯이, 앞으로도 한반도와 중국의
관계는 단순히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단순한 국가 대 국가 관계가 될 수 없을 것이
다. …
혁명 읽는 사람 MY
그렇다면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난 중국 - 한반도 관계사를 폭넓은 시야에서 조
망해볼 필요가 있다. … 또 현실적 차원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중국이 다른 나라에 대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나아가 더 거리가 있는 다른 나라를
두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동향계’라는 사실이다. 우리 역시 이 점을 깊
이 의식하면서 중국을 설득하고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베스타: pp218-219)
다시 말해서 중국과 한국 간의 관계를 단순히 기존 국제정치학의 주권국가적
관점에서 보아서는 민족주의적 대립으로 인해 곤란하고, 그 역사적•문화적•
정치적 복합성을 고려하면서 접근해야 한다. 특히 옥창준은 한국이 이러한 복
합성을 고려하면서 중국을 설득하고, 중국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고 강조한다.
옥창준은 “냉전기 한국 지식인의 아시아 상상”(서울대학교 외교학 석사학위
논문, 2014)를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에서 그는 한국인의 아시아
인식이 냉전을 매개로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추적한다. 한국 - 세계(사실상 미
국)라는 수직적 구도와 한국 - 아시아라는 수평적 구도의 중첩 속에서 한국의
자기인식의 위상을 찾아보려는 시도로, 그 과정에서 한국인이 어떠한 방식으
로 세계인식을 정립했는지뿐만 아니라 그러한 세계인식을 통한 자기인식, 자
기정체성의 형성을 매개로 한국적 근대화가 진행되어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
이 옥창준의 학술적 목표라 할 수 있다. 옥창준에 따르면 전후의 한국의 아시
아 인식은 소련의 ‘인간해방’이라는 진보성과 미국의 ‘경제개발’이라는 발전성
의 대립의 자장 속에서 독자적인 영역에 대한 탐구를 거쳐 결국 경제적 번영
을 통한 국제질서 속에서의 지위 확인이라는 헤겔적 인정투쟁으로 귀결되었
다. 미소대립이라는 냉전의 확산 속에서 독자적인 자기 영역을 탐구하던 한국
이 탈식민화된 다른 복수의 아시아 사회를 인식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들
과 자신의 ‘동등함’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한국의 아시아 인식은 같은 탈식민
적 상황을 전제로 한 국제주의적 연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역설적이게도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스스로를 구별짓고자 하는 욕구의 발현으로 나타났다. 미소
을 시도하는 행위가 다원적인 세계에서 경제적 성취를 통한 스스로의 우월함
을 증명하고자 하는 한국의 욕망이 근대화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모순을 통해
옥창준은 한국적 근대화의 이중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1990년대 이후의 냉전사 연구의 추세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노경덕(“구식 냉전연구와 신식 냉전사”, 역사비평 134, 2021, pp.441-
466)의 지적을 참고한다면 새로운 냉전사 연구의 경향은 미소 양대 초강대국
의 대결을 넘어서 20세기 후반기의 역사적 국면(conjuncture), 또는 시대
(epoch)로서의 ‘냉전기’가 세계사에 있어 어떠한 경험을 제공해주었는지에 초
점을 맞춘다. 따라서 냉전이 포괄하는 범위는 단순히 미국과 소련, 그리고 그
들의 동맹국들의 경험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20세기 후반기의 인류 전체
의 삶과 제도 전반에 걸칠 정도로 광범위하다. 옥창준은 이러한 새로운 냉전
사 연구의 경향을 받아들여 냉전의 경험이 20세기 후반기의 한국인의 아시아
인식에 있어 어떠한 영향을 주었으며, 그것이 한국의 근대화에 있어 무슨 의
미를 지니는 것인지를 섬세하게 읽어내려 시도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있어
오드 아르네 베스타의 일련의 연구는 자신의 학문이 기초하고 있는 새로운 냉
전사 연구의 경향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아시
아 인식과 관련된 중국의 아시아 인식, 중국의 냉전 경험 등에 천착했다는 점
에서도 의미 있을 수밖에 없다. 옥창준이 베스타의 연구를 <냉전의 지구사 -
미국과 소련 그리고 제3세계> - <제국과 의로운 민족>의 순서대로 번역한 것
은 그의 관심사의 반영이라 생각된다.
옥창준은 새로운 냉전사 연구의 경향을 받아들여 20세기 후반 ‘냉전’의 시기
의 경험이 한국인의 아시아 인식과 근대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
보는 학문적 관점의 연장에서, 베스타의 연구들을 번역했다고 할 수 있다. 그
리고 베스타의 연구를 통해 옥창준은 한국이 가져야 할 속물화된 아시아 인식
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아시아 상상을 꾀할 역사적 재료를 얻고자 함을 추측
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베스타의 연구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2)
혁명 읽는 사람 MY
오드 아르네 베스타의 저작 중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냉전의 지구사>, <잠
못 이루는 제국>, <제국과 의로운 민족>인데 흥미롭게도 이 번역서들은 각각
긴밀하게 연관되며 서로를 보완해주고 있다. <냉전의 지구사>는 19세기 후반
기의 자본주의 내에서 창출된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라
는 국가적•세계적 규모의 대립을 매개로 제3세계라 표현되는 비서구적 지역
에서 확장되어 가는 경험을 중심으로 냉전사를 재구성하는 책이다. 미소 간의
세력균형 속에서 유지되던 냉전적 질서가 제3세계에서의 내전, 혁명 등의 발
발로 세력균형이 흔들리며 점차 무너지기 시작하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쿠
바, 베트남, 그리고 앙골라 내전과 에티오피아 혁명, 아프리카의 위기 등을 거
쳐 점차 커져가는 진폭을 감당하지 못하다가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끝내 균
형을 일으며 전복되어 가는 과정을 베스타는 상당히 역동적으로 그리지만, <
냉전의 지구사>는 역설적이게도 중국을 그렇게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 오
히려 베트남과 쿠바, 인도가 중심이 된 비동맹 운동 등을 보다 비중 있게 다루
며, 중국의 냉전 경험이 다소 간략하게 그려졌다는 느낌을 준다.
이 점에서 <냉전의 지구사>는 제3세계의 냉전 경험을 다루면서도 역설적이
지만 그러한 제3세계의 경험이 반대로 미소 양국에게 가했던 곤란을 제한적
으로밖에 드러내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그것은 이 책이 다루는 시기
가 이미 중국이 어느정도 냉전으로부터 벗어나려 시도하는 1970년대 이후의
상황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한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의 경험에 대한 이러한 과소평가는 한편으로 중국 근현대사의 전개가 지
닌 특질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베스타는 전후의 중국
이 국공내전과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등을 거치며 아시아뿐만 아
니라 자신이 속했던 사회주의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갔다고 파악하고 있다. 왜
중국이 그렇게 고립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베스타는 <냉전의 지구사>에서
자세하게 다루지도 않지만 주제를 고려하면 그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베스타는 이 문제를 중국 현대사, 그중에서도 특히 국공내전 연구자로서의 전
문성이 반영된 <잠 못 이루는 제국>에서 중국사의 전개 과정 속에서 고찰해
낸다. 이 책은 1750년 이후의 중국 근현대사의 전개를 통해 중국 제국이 근대
적 국민국가(nation state)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서구 제국주의와 어떠한 상호
작용을 했는지를 주로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황제정과 함께 수천년동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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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존재해왔던 중국은 유럽적 근대국가 질서에 적응하기 상당히 어려워 했
고, 그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20세기의 중국사의 전개는 폭력이 난무하는 상
황의 연속이었다. 베스타는 신랄하게도 그러한 경험 속에서 중국인에게 가장
위험했던 존재는 중국인들의 인식과 달리 서구 제국주의가 아니라 중국인 자
신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서구인들이 중국인을 죽인 것보다도 중국인이 자
기 자신을 죽인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신랄한 그의 평가에는 중국의 혁명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는 현대의 중국이 20
세기를 거치며 근대국민국가의 건설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 문화적•지리
적 경계는 여전히 청왕조가 만들어놓은 제국적 경험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본
다. 국민국가로서의 정체성과 제국으로서의 경험 간의 괴리가 개혁개방 이후
다시금 중국이 지역적 강대국으로 발돋움했을 때 제국의 문화적 토대였던 유
교와 청왕조의 경험을 재해석하게 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베스타는 국공내전과 모택동의 혁명을 통해 중국이 고립되고 약
해졌던 시기에 대한 자신의 통찰에 기초해 다시금 개방된 체제로 나아가고 있
는 현재의 중국이 청왕조의 ‘제국적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이끌어낼 것인가에
대해 포괄적으로 다루고 그 과정에서 한국과의 관계 또한 간략하게 언급되지
만 그것이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그리 길게 다루지 않는다. 중국의 제국
경험이 주변국들, 더 나아가 세계와의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 역할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다루는 저작이 바로 한중관계사를 다룬 <제
국과 의로운 민족>이다.
(3)
베스타는 이 책에서 “한반도는 중국에게 무엇인가?”를 직접적으로 묻기 시작
한다. 조선은 티베트, 신강, 몽골, 대만 등의 다른 주변부들과 달리 청의 직접
적인 지배를 받는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조선과 중국 간의 관계
는 중국이 주변을 어떻게 대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시금석 역할을 하게
된다. 청왕조의 제국으로서의 정체성은 그에게 흡수된 주변부 지역들에 의해
서가 아니라 바로 조선의 존재를 전제로 획득될 수 있는 것이었다. 청왕조가
조선왕조를 대하는 태도를 살펴본다면 20세기 현대사의 전개 속에서 국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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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화된 중국이 주변국들과 거듭 충돌했던 과정을 비판적으로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이 책은 크게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중국과 한반도 관계의 형성
으로 1392~1866년까지의 명청 - 조선 관계사를 재구성한다. 베스타는 크게
1) 제국, 2) 민족, 그리고 3) 의로움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원제국 멸망 이후의
명청왕조와 조선왕조 간의 유교적 국제질서를 재구성한다. 그에 따르면 ‘제
국’이란 몽골 이후에 나타난 세계질서를 설명할 주요한 키워드로 제국적 질서
는 국내를 지칭하는 천하(天下)와 그 천하의 바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 천하와 천하의 바깥을 나누는 경계선은 애매했으며, 이 경계선을 유지하는
제국적 질서 또한 중국과 중국 외부 간의 해석의 차이가 있는 등 상당히 모호
한 측면이 있다. 제국 자체의 성격 또한 팽창주의적일 수도, 상업 중심적일 수
도 있는 등 복잡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찌됐든 제국적 질서 하
에서 중국은 관료제를 중심으로 한 보편적 위계질서를 내외에 강요했으며 그
러한 위계질서 하에 주변부들은 중국과 일정한 형태의 관계를 맺어야만 했다.
중국의 천하와 그 외부를 구별하고, 보편적 위계질서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그 외부를 구성하는 타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집단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것
이 바로 조선왕조라는 타자였던 것이다.
이 조선왕조는 위계질서 하에서 중국과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제국적 질서
내부, 천하로 포섭되지는 않고 독자적인 정체성을 외부에서 형성하고 있는 존
재였다. 베스타는 이 조선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민족(nation)으로 해석한다.
물론 그는 이러한 정체성을 ‘민족(nation)’이라 지칭하는 것의 위험함을 익히
알고 있다. 민족 개념의 이런 전근대로의 투영은 자칫하면 20세기에 형성된
민족주의 신화에 동조하는 행위가 될 수 있으며, 20세기 민족주의와 그 이전
의 민족주의 간의 차이를 사상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베스타는 이러한 문
제점을 인식하면서도 한국인 역사학자 김자현의 주장을 받아들여 전근대 한
반도에 민족주의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서 아시아
의 민족주의는 유럽의 민족주의와 그 역사성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김자현의 논의를 전용해 16세기 임진왜란을 거
치며 조선인들의 집단적인 민족정서, 민족주의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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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집단적 정체성으로서의 민족주의를 구성하는 주요한 내용이
바로 ‘의로움(Righteous)’라 지적한다. 한국인이 다른 민족에 비해 특별히 더
의롭다기보다는 한국의 역사에서 국내외의 억압적인 정권에 대항할 때 소환
되었던 가치로서의 ‘의로움’이 조선인들의 집단적 정체성의 형성에서 주요하
게 작용했다는 주장으로, 그는 그 역사적 근거를 임진왜란과 정묘•병자호란,
심지어 20세기 식민화의 위기 앞에서도 당시 침략군에 대항했던 조선인 군대
가 모두 의병(義兵)으로 불렸다는 점 등을 꼽는다. 베스타가 보기에 비록 교조
화되기는 하지만 유교는 조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초를 제공했으며, 더 나
아가 중국과 조선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이념적 유대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
로 기능했다.
이 세 가지의 요소의 결합 속에서 중국은 한국과 근대 주권국가적 원리와는
대비되는 ‘복합주권(complex sovereignty)’적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조선은
“관례”에 입각해 명청제국에 대해 봉신국(vassal)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웠으
며, 그에 기초해 국내 문제를 스스로 처리했지만 국방과 외교를 제국에 의존
하는 방식의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물론 조선은 제국이 자신들에게 얼마든
지 무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독립 준비를 꾸준히 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관례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편입
의 정도와 주권의 영역을 설정하는 기존의 국제관례는 한반도의 안보를 확보
하고 고도로 문명화된 유교국가로서의 조선인의 정체성의 일부를 형성하였
다. 이러한 관례에 입각해 조선과 중국은 서로 할 수 있는 행위와 할 수 없는
행위를 구별하고 제한했으며 그 복합주권적 관계 속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고 각자의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독자성이 조
선인들이 스스로를 독특하다 여기고 또 중국 또한 한반도는 특수하다고 여기
는 ‘복합 특수성(compound singularity)’으로 이어지며 독특한 자기정체성을
형성했던 것이다.
이 책의 1장은 이러한 복합주권적 관계가 원제국의 붕괴 이후에 어떻게 형성
되었는지를 다룬다. 흥미롭게도 베스타는 원제국의 전제주의적 통치의 유산
이 제국적 질서의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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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으로 명나라의 이와 같은 황제 중심 체제를 통해 새로운 유형의 대외관계가 가
능해지기도 했다. 비(非)중국 정치체들은 황제와의 다양한 관계를 통해 제국의 중심
과 연결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명제국은 활용할 수 있는 외교적 도구를 더 확보할 수
있었다.
(베스타: 49)
극단적인 중앙집권화는 황제의 개인적 자질에 많은 여지를 주기 때문에 효과
적인 통치를 어렵게 만들지만, 역설적이게도 제국적 질서 속에서 황제 개인과
의 다양한 관계 맺기가 위계질서의 형성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흥미로운
지적이다. 외교적 전례가 존재하지 않는 명제국의 초기 황제 주원장은 외국으
로부터의 경계선을 확실하게 하고 유교적 예에 입각한 국제질서를 형성하고
자 했고 그것이 이후의 관계를 규정짓게 된다.
이 과정에서 명청제국을 규정하는 두 가지의 주요한 요인이 나타나는데 하나
는 주변에 보다 시급한 처리 대상(몽골유목민의 존재 혹은 명나라와의 전면전
등과 같은)이 있어 조선을 굳이 힘으로 굴복시킬 필요가 없다는 점과 다른 하
나는 한반도 왕조와의 관계맺기는 선례(先例)에 입각한 것이었기 때문에 조
선왕조를 제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록 중간에 명청교체 등
으로 인하여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한반도 왕조와 중국 왕조 간의 관계는
유구한 선례와 보다 큰 적의 존재로 인해 한반도 왕조를 굳이 폭력으로 제거
할 필요가 없다는 현실적인 조건으로 인해 유지될 수 있었다. 보다 시급한 과
제가 해결되었음에도 어째서 조선왕조를 남겨두었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
하고 있지 않다는 점과 함께 선례가 현실적 필요성을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
는지에 대한 분석이 부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납득하기 곤란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애당초 순환논리적인 측면이 있다. 조선왕조를 병합하지 않는 것은 그
현실적 필요성이 없기 때문인데, 현실적 필요성이 없는 것은 조선왕조가 병합
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순환논리를 펼치고 있다. 어찌됐든 베스타가 보기에
중국 왕조와 조선왕조는 ‘예의’와 ‘의리’라는 유교적 이념을 매개로 점차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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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졌으며 앞서 지적했듯이 일종의 복합주권적 관계, 내정은 자주적으로 하되
외정은 중국에 의존하는 방식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제2장에서는 이러한 복합주권적 관계가 1866~1992년의 근현대사의 전개 속
에서 제국주의적 질서와 마주하며 어떻게 파탄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특히 청일전쟁의 발발은 청왕조가 복합주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중
국 제국 질서의 핵심 국가인 조선을 일본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없다
는 것은 청나라의 존재 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후에 청제국이 붕괴
하는 상황 속에서 조선왕조는 독립국을 형성하기 위한 시도를 하지만 얼마 가
지 못하고 일본제국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청제국의 멸망과 중화민국의 건설
과정 속에서 중국의 지도자 쑨원은 여전히 한반도에 대한 가부장적인 인식을
유지하면서 동아시아에서의 중국의 중심성을 회복하기를 희망했다. 쑨원은
이를 위해서라면 일본과의 동맹까지도 가능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흥미롭게
도 베스타는 앞서의 중국 - 한반도의 국제질서가 유교를 매개로 유지되었다는
점의 연장에서 쑨원이 제시하는 중국 민족주의의 이상 또한 유교를 매개로 한
아시아주의에 가까웠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반도를 언급하는 일을 최대한 피하면서 쑨원은 서방의 ‘패도(霸道)’를 공격하는 동
시에 일본의 근대화에 찬사를 보냈다. 중국은 약하고 분열되어 있지만, 인의와 도덕
의 ‘왕도(王道)’를 지니고 있다. … 쑨원은 일본에 선택지를 제시했다. “일본은 서방
패도의 주구가 될 것인지 아니면 동방 왕도의 간성(干城)이 될 것인지 여러분 일본인
스스로 잘 살펴 신중히 선택하십시오!”
(베스타: 125)
물론 조선인들과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일본에 대한 쑨원의 호의에 경악했지
만 유교를 매개로 한 중국 중심성의 회복이라는 쑨원의 이상은 장제스를 비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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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국 지도자들에게로 이어졌다.
1934년 일본과 전쟁이 무르익을 무렵 장제스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대만과 한
반도를 되찾자. 이곳은 한과 당 왕조의 일부였던 땅이다. 그럴 때만 우리는 황제의 자
손으로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베스타: 131)
다시 말해서 쑨원과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청왕조의 한반도 왕조와의 복합
주권적 관계를 국민국가적 상황에서 재건하고자 하는 이상을 품고 있었던 것
이다. 이러한 관념은 공산주의자였던 마오쩌둥 또한 유지하고 있던 것으로 베
스타는 션즈화의 주장을 받아들여 중국 공산당이 아시아의 공산주의 활동에
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다른 국가들의 혁명을 지도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전통적인 관념에 빠져 있었다고 보았다. 사회주의적 외피를 쓴 유
교적 관계의 회복이다.
하지만 냉전적 상황은 그러한 중국의 의도가 원만하게 관철되지 못하도록 하
였다. 한국전쟁은 청일전쟁과 마찬가지로 한중관계를 규정하는 주요한 사건
이었다. 청일전쟁이 기존의 제국적 질서를 붕괴시키는데 기여했다면, 한국전
쟁은 전통적 질서의 ‘현대적’ 회복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베스타에 따르
면 마오쩌둥은 막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중심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전쟁에서 북한을 지원했다. 하지만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곧바로 소련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전략적으로 중국의 지원에 의존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베스타: 153) 북한도, 중국도 모두 민족국가화되고 있었던 것
이다. 북한은 냉전기에 유교적 전통과 잡다한 사상들을 혼합한 주체사상에 기
초해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면서도 소련과 중국의 사이에서 자신만의 방식
으로 번영할 수 있었다. 북한은 중국과 소련의 대립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며 김일성 자신의 권력 강화를 이뤄낼 수 있었지만, 그러한 시도는 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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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붕괴 속에서 더 이상 기능하기 어려워졌다. 비스타는 2장을 통해 20세기의
전반기를 거쳐 붕괴되었던 기존의 중국 - 한반도 관계가 후반기에 새롭게 부
활했지만, 과거와 달리 민족주의적 변형이 가해진 관계였다고 지적한다. 특히
1970년대 이후 개혁개방을 한 중국은 점점 더 제국이 아닌 민족국가로서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었고, 남한의 경제적 번영이 중국을 유인하면서 국익에 맞
게 한반도 관계를 재편해야 한다는 유혹을 강하게 하고 있었다.
마지막 제3장에서는 문재인 정부까지의 최근의 역사를 간략하게 다루면서 북
한의 핵무장 시도가 한반도를 향한 중국의 가부장적인 태도와 책임에도 불구
하고 중국이 북한의 존재를 부담스러워 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중국공산당
은 중화민족이라는 민족국가적 역할과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역사적 유산인 중국 - 한반도 관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
고 있다. 중국은 북한에 분노하면서도 북한의 존재가 없으면 마주하게 될 위
험성을 강렬하게 인식하며 북한을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묵인하는 태도를 보
이고 있다. 베스타는 흥미롭게도 과거 청제국의 관료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조
선왕조의 (유교적 이념에 대한) 후진성과 완고함에 고개를 저었던 것처럼, 현
대의 중국 관료들이 마찬가지로 북한의 (사회주의적 이념에 대한) 후진성과
완고함에 고개를 젓고 있다고 지적한다. 청제국이 조선왕조를 복합주권 구조
속에서 그 후진성과 완고함에도 끌어안고 있었던 것처럼, 현대 중국 또한 북
한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남한은 이러한 중국의 태도에 환멸을 느끼며 반
중정서를 강화시켜나가고 있다.
베스타는 북한이 멸망을 피할 수 없는 국가라는 인식 하에 서둘러 북한을 버
리고 남한을 택할 것을 은근히 권유한다. 그는 현상유지를 꾀하는 중국의 태
도가 상당히 낙관적인 전제조건에 기초해 있다고 지적한다. 북한이 중국식의
개혁개방을 할 가능성도, 그렇다고 핵무장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상황
의 장기적인 안정을 꾀하는 중국의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식 질서 내에 어느정도 포섭되어 있는 북한마저도 핵무장을 포기
하라는 중국의 요구에 저항하며 중국의 위신을 깍고 있다. 베스타는 동맹국인
북한조차도 중국의 말을 무시하는데 도대체 다른 국가들이 왜 중국의 말을 들
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장기적으로 북한을 비호하는 중국의 태도는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며, 한국의 반발을 사고, 중국을 수동적으로 만들어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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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를 무너뜨린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한국 주도의 통일된 한반도가 도래
하는 것을 베스타는 사실상 필연적인 일로 상정한 뒤에 그러한 통일된 한반도
의 도래를 중국이 막으며 현상유지하는 것이 향후 중국의 세계적 강대국으로
도약하는데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베스타는 청제국과 조선왕조의 관계가 20세기 국민국가화를 거쳐 21세기
현재에 이르러 재현되었을 때 그것이 장기적으로 현대 중국의 발전에 있어 부
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국인들이 지닌 제국적 경험과
중화민족국가로서의 국가적 이익 간의 괴리가 현대 중국의 곤란으로 작용하
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은 필연적으로 통일될 수밖에 없으며, 그 통일을
주도할 한반도의 한국을 점차 분노케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대단히 잘못된 길
을 걷고 있다. 중국 - 한반도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지 않는 한 명청제국의 경
험과 중국의 세계적 강대국으로의 도약이라는 미래 간의 대립을 현대 중국이
해소할 길이 없다.
(4)
이 책은 현대 중국의 곤란을 중국 - 한반도 관계를 통해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
우 의미 깊은 저작이라 할 수 있다. 한반도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저자의 인식
자체는 크게 동의할 수 있다. 저자는 전근대 중국의 압도적인 우위에도 불구
하고 어째서 한반도 왕조를 병합하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한중관계
사의 독특함을 규명하고, 그에 입각해 20세기 현대사를 통해 제국적 경험이
국민국가적 질서 속에서 어떠한 모순을 배태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모순이
현재의 중국의 곤란을 낳으며 중국의 강대국화를 가로막고 있는지를 선명하
게 보여준다. 이 책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들은 이러한 저자의 논지를 고려했
을 때 상당히 지엽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을 수 있다.
첫째로 임진왜란에 대한 저자의 인식의 불충분성이다. 1990년대 이후의 임진
왜란 연구사를 보면 이수건의 연구(“月谷 禹拜善의 壬辰倭亂 義兵活動”, 민족
문화논총13, 1992)에서 드러나듯이 의병을 민족적 정체성에 입각해 자발적
으로 일어난 군대라기보다는 관군으로부터 낙오된 군병인 이른바 “산졸(散
卒)”이 새롭게 조직되어 나타난 군대라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노영구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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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임진왜란 초기 경상우도 의병의 성립과 활동 영역 - 金沔 의병부대를 중심
으로”, 역사와현실 64, 2007)이나 장준호(“임진왜란시 朴毅長의 경상좌도 방
위활동”, 군사 76, 2010) 등의 연구들이 보여주듯이 의병의 주력은 낙오된 관
군들이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준군사적인 속성에 기초해 조선왕조 지방군사
제도인 진영체제를 바탕으로 군수물자, 군지휘 등을 받으며 활동하였다는 점
이 속속 밝혀졌다. 즉 이전과 달리 새로운 의병인식은 의병을 민족의 국난에
대응한 민간의 자발적인 활약으로 보기보다는 지방군사체제와 의병활동을
연결시켜서 파악하는 준(準)정부 성격을 지닌 군사집단으로 보는 경향이 있
다. 이와 같은 경향은 한말의 의병을 다룬 오영섭의 <고종황제와 한말의병>
(도서출판선인, 2007)에서도 나타난다. 오영섭에 따르면 의병은 민족주의에
입각해 일어난 자발적인 군사활동이 아니라 고종황제를 비롯한 조선왕조 지
도부의 지원으로 고용된 용병집단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렇게 본다면 베스타의 주장처럼 조선왕조 하에서의 집단적 정체성으로서
의 ‘민족’의 존재는 사실상 가치절하될 수밖에 없다. 조선인들이 독자적인 세
계관과 집단정체성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겠으나 그것이 근대적 민족
주의와 어느정도 유사성을 지닐 수 있을지, 그리고 임진왜란 등의 사건 속에
서 그러한 집단적 정체성이 획득되었다는 저자의 설명에 동의하기 어려운 지
점이 많다.
둘째로 강화도 조약에 대한 저자의 이해이다. 저자는 제국적 경험의 핵심으로
유교적 위계질서의 존재와 그 질서를 뒷받침하는 유교적 이념을 들고 있다.
그런 저자에게 있어 강화도 조약은 단순하게 근대화된 일본에 의해 강요된 개
항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태진의 연구(<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태학사, 2005)를 참고해보면 알 수 있듯이 조선왕조의 개항은 서구 제국주의
의 침략에 저항해 청왕조가 곤란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본 조선왕조가 능동적으
로 먼저 과거의 일본과의 외교적 관계, 선린관계를 회복하여 제국주의적 침략
에 대응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베스타가 지적하는
제국적 경험의 유산이 작동하고 있는 과정이었다. 조선왕조는 청왕조에 의존
하면서 동시에 동요하고 있는 유교적 질서를 새롭게 재구성함으로써 동아시
아 국제질서를 안정시켜 안보를 튼튼하게 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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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사에 치우치는 바람에 한일관계 또한 기존의 유교적 위계질서 내에
서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을 놓쳐버리는 우를 범했다.
셋째로 북조선의 주체사상에 대한 유교적 이해의 현실성이다. 저자는 주체사
상을 유교적 전통이 반영된 것으로 파악한다. 북한학계의 수령제의 성격에 관
한 논쟁은 대단히 유구한 것으로 북조선의 수령제를 유교적 전통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것으로는 일본의 학자 스즈키 마사유키의 <김일성과 수령제 사회주
의>(랜덤하우스코리아, 1994)가 대표적이다. 이 책은 사회주의적 질서와 유
교적 전통이 ‘공명(共鳴)’한다는 관점에서 북조선의 수령제 사회주의를 이론
화 하는데 이에 대해서 와다 하루키와 그의 제자인 서동만의 비판이 있다. 특
히 서동만은 “북조선 유교담론에 관하여”(<북조선 연구>, 서동만저작집간행
위원회, 창비, 2010)에서 북조선의 유교 담론은 변동하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임기응변적으로 나타난 담론 구성물이라는 점을 논증하는 것으로 마사유키
의 수령제 사회주의론을 비판한다. 굳이 이런 학술계의 논의를 가져오는 이유
는, 한중관계사의 전개를 유교적 질서를 중심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이 자
칫 유교 환원주의에 빠지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중국 간의
관계를 기존의 제국적 경험에 기초하여 바라보는 과정에서 유교적 왕조인 조
선왕조와 주체사상의 김씨왕조를 동일시하려는 욕망이 발현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우기 힘들다.
이 세 가지의 오류는 모두 유교적 전통을 축으로 한중관계를 일관적으로 파악
하려는 저자의 시도에서 비롯되고 있다. 저자는 조선인의 집단적 정체성을 유
교에 입각한 것으로 상정한 뒤에 20세기 제국주의적 질서의 도래 속에서 그
러한 집단적 정체성에 입각한 제국적 경험이 어떻게 붕괴되었고 형해화되었
는지를 강조하다보니 일본과의 관계를 근대국가적 주권 대 복합주권의 관계
로 독해했으며, 현대의 북중관계 또한 그 연장에서 독해하려 북조선의 주체사
상을 유교적 전통에 기초한 것으로 파악하려 한 것이다. 하나의 관점으로 수
미일관되게 역사를 파악하려는 욕망은 모든 역사학자들이 지니고 있는 것이
지만, 동시에 그 위험성은 아무리 지적해도 부족하지 않다. 특히나 저자의 작
업처럼 과거의 경험을 재구성하여 현재를 바라보는 틀로 삼을 때는 전통의 외
피를 쓴 현재가 과거에 투영되어 과거 자체가 왜곡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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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글 모음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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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뛰어난 연구에 공연한 트집잡기라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전통의 재현
을 역사해석의 틀로 삼을 때 빠질 수 있는 오류가 가져올 수 있는 폐해를 지적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근본적인 문제의식, 즉 현
재의 한반도가 한국 중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될 때 중국은 그것을 어
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까지 무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
자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이되 서두에서 말한 옥창준의 새로운 아시아 상상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곁들인다면 보다 나은 대안을 역사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시아 상상을 위해서도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대단히 의미 있는 것이다. 구독자 분들의 일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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