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문제 관련 왜곡/과장된 일본인식을 20년이상 확산/정착시킨 정대협의 문제는, 잘못된 인식에 반발하는 일본인을 늘려 결과적으로 해결도 못했다는 점에 있다. 그런데 반크 역시 똑같은 과정을 걸어 왔다. 단장도 인정하는 것처럼.
“한국 바로 알리기는 잘했다. 그런데 일본과 중국은…, 우리 성과가 ‘빵점’일지도 모르겠다. 한다고는 했는데 바뀌지 않고 오히려 악화됐으니까. 일례로 2001년에는 일본의 우익 교과서 1종에만 독도가 아니라 ‘다케시마’였는데 2022년에는 모든 교과서가 그렇게 됐다.”(박기태단장)
그런데 “왜” 그런지에 대해선 물음이 없다. 잘못된 인식을 시정한다면서 잘못된 인식으로 대응하기 때문인데, 반성도 없어 보인다. 그런 한 이런 상황은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반크는 1999년에 만들어진 단체. 윤미향씨가 정대협의 중심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
일본이 군사주의적 사고는 조선땅에도 심긴 했지만, 해방이후에도 군사주의적 사고를 이어온 건 일본이 아니라 한국쪽이다. 일본은 전국민 징병제도 아니니 군인이나 군대가 될려야 될 수가 없다.
단장이 일문과 출신이라는데, 일본을 안다고 해서 꼭 올바른 지식/인식을 전하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또하나의 케이스.
그런데도 이런 인식이 쉽게 확산되고 정착되는 토양을, 한국사회는 이 20년동안 만들고 말았다. 단체의 원래 목적이 한국을 알리는 일’이어서겠지만 언론이 좌우가리지 않고 서포트해 온 결과일 것이다.
반크가 잘 하는 건 정대협처럼 동참자 늘리기다. 회원이 벌써 20만이라는데 이제 대학과 직접 연계한다니 이제 곧, 10여년전에 대학마다 정대협의 평화나비조직이 만들어졌던 것처럼 반크조직이 만들어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윤미향씨가 2000년대 중반부터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혼자 정대협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것처럼 반크도 박기태 단장이 20년이상 대표를 맡고 있다. 반크의 활동 검증과, 지원&후원금모금상황 조사가 한번쯤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자국 알리기에 목매던 시절도 이제 지난 듯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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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크, 중·일의 심해진 역사왜곡 대응하며 맷집 세지고 패기 커져”
차준철 논설위원
입력 : 2022.03.01
‘반크’ 박기태 단장
대학 4학년 때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를 만들고 23년째 변함없이 활동하고 있는 박기태 단장(48)이 지난달 23일 서울 성북구 보문동 사무실에서 반크의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지금과 똑같이 한국 알리기 교육에 집중해 해마다 1만명 이상의 청소년 한국홍보대사를 배출하겠다”고 밝혔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반크, 중·일의 심해진 역사왜곡 대응하며 맷집 세지고 패기 커져”
차준철 논설위원
입력 : 2022.03.01
‘반크’ 박기태 단장
대학 4학년 때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를 만들고 23년째 변함없이 활동하고 있는 박기태 단장(48)이 지난달 23일 서울 성북구 보문동 사무실에서 반크의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지금과 똑같이 한국 알리기 교육에 집중해 해마다 1만명 이상의 청소년 한국홍보대사를 배출하겠다”고 밝혔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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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생.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를 설립했다. 1999년 대학 4학년 때 학교 수업 과제로 한국과 외국 청년들이 인터넷으로 교류하는 펜팔 사이트를 만든 게 출발이었다. 외국 지도와 교과서 등에 표기된 ‘일본해’를 ‘동해’로, ‘다케시마’를 ‘독도’로 바로잡은 성과로 널리 알려진 ‘반크’ 활동을 지금까지 23년째 지속하고 있다. 한국 바로 알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을 넘어 세계를 변화시키는 글로벌 인재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아시아 평화를 지키는 반크의 디지털외교혁명> <나는 사이버 외교관 반크다> 등 7권의 책을 썼다.
20년간 외국인에 한국 알리기는 성공
이젠 우리의 올바른 정보 전파에 주력
혐오 대신 세계인이 공감할 팩트로
중·일 공세에 품격있고 우아하게 대응
반크 없어져도 이 일 계속되는 게 목표
연간 1만명의 청소년홍보대사 키우고
메타버스로 ‘10만 사이버 독도관’ 추진
‘반크’(VANK·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라는 이름은 이제 친숙하다. 해외의 잘못된 한국 정보를 바로잡는 활동을 하는 민간단체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권이 넘는 사회·국어 교과서에 나온다. 초·중·고교와 대학에 같은 이름의 동아리도 많다. 반크는 한국을 바로 알리는 ‘사이버 외교사절단’으로 통한다. 근래에는 일본과 중국의 한국역사 왜곡 사건 때마다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반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반크는 1999년 한 청년이 대학 수업 과제로 만든 펜팔 사이트에서 시작됐다. 낮에는 빌딩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야간대학을 다니던 가난한 취업준비생 청년, 그때부터 지금까지 반크에 몸담고 있는 박기태 단장(48)이다. 관광 가이드를 꿈꾸며 영어 공부에 애썼던 그는 관심 주제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드는 숙제를 받은 뒤 한국과 외국의 대학생이 온라인 친구를 맺고 대화하는 사이트를 떠올렸다고 한다. 이듬해 취업에 성공한 그는 회사에서 취미 삼아 사이트를 운영하다 과감히 사표를 내고 반크 일에 전념하기로 결심한다. 소박한 출발에 무모한 도전이었다. 2000년 5월, 반크는 남대문시장 근처의 3평짜리 사무실에 있었다. 직원 3명에 컴퓨터 2대, 회원은 3700명. 이후 반크는 청소년 참여가 늘어나면서 현재 회원이 20만명에 달한다. 그리고 20평 사무실에서 7명이 일한다.
지난달 23일 서울 보문동의 반크 사무실에서 박 단장을 만났다. 22년 만이었다. 26세 청년은 40대 후반의 아저씨로 변했지만 유쾌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파란 후드티에 검정 가죽재킷을 걸친 차림은 그해 5월의 청년 모습 같았다. 그와 반크가 20년 넘게 한길을 걸으며 활동 영역을 넓혀온 비결이 있을까 궁금했다.
- 반크 초창기와 비교하면 한국의 위상이 무척 올라갔다.
“그렇다. 당시에는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냐는 질문이 많았다. 중국이나 일본 근처에 있다고 알면 다행이었다. 지금은 한국을 모르는 외국인이 거의 없지 않나. 글로벌 한류 팬 1억명 시대라고 한다. 해외 교과서나 지도의 표기 오류를 수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의 올바른 정보를 적극 전파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 처음 목표는 무엇이었나.
“초창기 목표는 더 많은 외국인이 한국의 존재를 알게 하는 것이었다. 해외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이 목표는 거의 자동으로 이뤄졌다. 초기에 다짐을 적은 글을 다시 꺼내 봤더니, 한국이 아시아의 중심으로 우뚝 서는 앞날을 꿈꾸는 내용이었다. 그 목표는 계속 유효하다.”
- 반크는 탄탄대로만 걸었나. 위기가 없었나.
“운영 예산 부분이라면, 알뜰히 살기를 택했다. 상근직원 5~6명을 줄곧 유지하며 조직 규모를 키우지 않았다. 대가를 바라고 거액을 지원하겠다는 기업들의 제안은 모두 뿌리쳤다. 홍보물 제작비가 부족하면 웹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했다. 그래서 지금은 5000여명의 정기 후원자들에 힘입어 연간 5억원 예산 규모의 자립 구조를 갖췄다.”
- 후원자와 회원이 많이 늘었다.
“20년으로 치면 1년에 1만명씩 회원이 늘어난 셈이다. 물론 20만명 모두가 계속 활발하게 활동하는 건 아니다. 주로 학생인 회원들은 가입한 해에 한두 달 정도 열심히 활동한다. 입시 부담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짧은 경험만으로도 언제든 반크를 지켜보고 응원하며 큰 힘을 준다는 게 중요하다.”
- 규모와 활동이 확대된 것 말고는 어떤 점이 달라졌나.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이 심해지면서 거기에 대응하는 반크의 체급도 점점 높아졌다. 단체의 규모가 아니라 그들과 싸울 수 있는 맷집이 세지고 패기와 용기가 커진 것이다.”
- 일본과 중국은 반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2020년 6월 ‘야후재팬’에 황당한 거짓뉴스가 나왔다. 반크가 한국 정부로부터 연간 200억원 이상의 예산을 받는 기관이고, 단장도 정부가 임명한 장관급 공무원이라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정부 사주를 받는 극단적 반일단체라는 것이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반크가 한국 사회에서 중국에 대한 편견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지난해 초 보도했다. 이후 반크 사이트에 협박 메시지와 악플이 쇄도했다. 어찌 보면 반크의 힘을 두려워하는 증거일 수 있다.”
반크는 갈수록 격화하는 일본·중국의 역사왜곡 공세에 ‘품격 있고, 우아하게’ 대응할 작정이다. 물론 상대가 품격을 잃고 거칠게 달려든다면 더 강하게 비판하고 행동에 나선다. 박 단장은 “오직 명확한 사실에 입각해, 한국인뿐 아니라 세계인도 모두 옳다고 여기는 일에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20여평 사무실에 단장·인턴 포함 7명, 반크 상근직원은 단출하다. 모두가 연구원이고 ‘~님’으로 부른다.
- 반크의 최근 활동이나 프로젝트를 몇 가지 꼽아달라.
“한복이 중국문화라고 왜곡하는 중국에 대응해 ‘한복 입기 챌린지’를 벌였다. 일상생활 속에서 한복을 입은 사진이나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전 세계에 알리는 캠페인이다.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의 꼼수에 대해 디지털로 풍자 포스터를 제작해 배포했다. 3·1절을 맞아 ‘3·1 독립선언서’를 영어로 홍보하는 영상을 만들었다.”
- 이런 캠페인을 하면서 오해나 비난을 사는 경우는 없나.
“물론 있다. 차분한 캠페인을 벌일 때는 싸움에 나서라는 주문이 나오고, 발언 수위가 높아지면 자제하라는 말이 들린다. 양쪽 의견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명백한 사실을 만인에게 납득시키는 게 관건인데 어떤 방식이 최선일지는 단체나 개인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어느 단체의 과격한 행동이 반크의 것으로 오해된 적이 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누구든 불필요하게 혐중·혐일을 부추기는 것은 안 될 텐데.
“맞는 말이다. 반크는 혐중·혐일이나 반중·반일을 내세우지 않는다.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팩트’를 당당한 목소리로 말하는 게 반크의 원칙일 뿐이다.”
- 시쳇말로 ‘국뽕’이나 국수주의에 대한 입장은.
“무작정 한국은 옳고 좋다 하고, 외국은 배척하는 건 명백한 잘못이다. 대마도나 만리장성이 한국 땅이라고 우기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일본과 중국은 이런 유의 주장을 여전히 펼치고 있다.”
- 다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며 폭넓은 연대를 추진하는 일들이 눈에 띈다.
“우선 올해 시작한 ‘역지사지’ 프로젝트가 있다. 한국의 문화유산을 타국의 비슷한 것들과 짝지어 함께 홍보하는 영상이다. 한국 고인돌과 영국 스톤헨지, 한국의 산사와 미얀마의 바간 유적지 등 10곳을 비교 설명했다. 한국 문화유산을 상대국에 친숙하게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는 아시아 디지털 외교 플랫폼 ‘브리지 아시아’를 열어 40억 아시아인이 합심해 글로벌 청원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박 단장도, 반크도 지금까지 쉴 새 없이 달려왔다. 일거리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한국 문화와 자연을 담은 지도·엽서 등 홍보물을 100가지나 만들었다. 건당 1000만원씩 예산을 들였으니 모두 10억원어치다. 예쁜 디자인과 실물 제작은 다양한 ‘협력기관’에서 맡아줬다. 모두 반크를 알고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이 홍보물은 사이버 외교사절 교육을 받는 반크 회원들이 무상으로 받아가 어딘가에서 한국을 알린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시골 학교 교실에 큼직하게 걸린 한국 지도는 대학생이 된 반크 회원이 의료봉사를 하러 가서 붙인 것이다. 이게 반크의 초심인 ‘풀뿌리 한국 알리기 운동’이다. 20여년 세월이 흘렀어도 반크의 초심은 변함이 없었다.
- 지난 20여년의 성과를 돌아본다면.
“한국 바로 알리기는 잘했다. 그런데 일본과 중국은…, 우리 성과가 ‘빵점’일지도 모르겠다. 한다고는 했는데 바뀌지 않고 오히려 악화됐으니까. 일례로 2001년에는 일본의 우익 교과서 1종에만 독도가 아니라 ‘다케시마’였는데 2022년에는 모든 교과서가 그렇게 됐다.”
-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아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 반크가 맡아야 하는 일은 없다는 얘기다. 시민 모두가 할 일이 있을 뿐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사이버 외교사절’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반크가 20여년간 해온 활동 자료는 모두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공개돼 있다. 반크가 당장 없어져도 이 일이 계속되는 게 우리 목표다. 반크는 특별하지 않다.”
- 모두 회원이 되라고 권하지 않는다?
“그렇다. 다들 알아서 했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당연히 어색한데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면 세상을 바꿔 나갈 수 있다.”
- 향후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지금과 똑같이 일할 것이다, 지금껏 했던 대로 매달 반크에서 200명, 외부 특강에서 800명씩 교육해 연간 1만명 이상의 한국홍보대사를 배출할 것이다. 반크는 매달 활기찬 신입생들이 들어와 새 출발을 하는 분위기다. 매일 새로 여는 사이트와 다름없다. 그래서 20여년이 순식간에 지난 것 같다. 하하.”
- 그래도 아쉽거나 부족한 점은 없나.
“메타버스 기반으로 ‘사이버 독도 전시관’ 10만개를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세계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가상공간의 전시관을 세우고 독도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메타버스로 구현한 덕수궁 석조전에 글로벌 회원들이 모이는 이벤트도 추진 중이다. 정보통신, 과학기술계가 한국 바로 알리기에 더 많이 나서주시면 좋겠다. 편지나 공문이 아니라 기술이 움직여야 할 때다.”
“역사왜곡은 당사국이 아닌 세계가 풀 숙제…한국의 ‘옮음’ 지지”
반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는 프랑스 청년 클라라 다느폰. 우철훈 선임기자
반크 근무 프랑스 청년 클라라
‘반크’ 사무실에서 한 청년이 반갑게 인사했다. 클라라 다느폰(24). 프랑스인이다. 직함은 인턴. 1년 정도 반크에서 일하고 싶다며 입국해 자가격리를 마치고 지난 1월24일부터 출근했다고 한다. 먼저 한국어로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프랑스에서 온 클라라입니다. 저는 영어와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알아요. 3·1운동, 독도와 <직지심체요절>을 홍보하는 영상을 만들어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했어요.”
2019년 이어 두 번째 자원 근무
‘직지심체요절’ 불어 동영상 제작
독립선언서 이탈리아어로 번역도
‘전생에 한국인’ 농담 들을 정도
파리 제9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해 파리 제1대학 국제경제학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반크 근무가 두 번째다. 2019년 여름 두 달간 이미 일한 적이 있다. 프랑스에서 온라인으로 반크의 활동을 접하고 지원했다고 한다. 그는 금속활자로 만든 세계 최초의 책인 <직지심체요절>을 알리는 프랑스어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고, 3·1 독립선언서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다. 프랑스에서 보관 중인 <직지심체요절>을 한국에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독도에 직접 가서 보고, 한국 땅 독도를 세계에 알리는 사이트도 만들었다.
이번에 와서는 한국의 경제 발전이 기적이나 행운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 전통과 문화 저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3·1절 전날에는 3·1 독립선언서를 영어로 직접 소개하는 영상을 찍어 반크 블로그에 올렸다. “3월1일은 한국인들이 독립을 위해 맞서 싸웠던 증거입니다. 저는 독립선언서 중에서 ‘오직 자유 정신을 발휘할 것이고,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는 대목에 감동받았습니다.”
그는 반크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를 “옳고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하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왜곡이 나라 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시민 모두 풀어야 할 숙제라고 했다.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고 한국의 ‘옳음’을 지지한다는 그는 전생에 한국 사람이 아니었느냐는 동료들의 농담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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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CIA 지도에 ‘동해’ 표기 넣는 데 인생 걸었다” 박기태 '반크' 단장
단국대 HK+사업단 연속 기획 ‘한국사회와 지식권력’6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1-12-08
● 지도는 세계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한다
● 평범한 대학생, 해외 펜팔 사이트 만들었다 ‘한국 알리기’ 활동 시작
● 해외 지도 ‘일본해’ 표기 바로잡으며 ‘사이버 외교’ 중요성 깨달아
● 역사학자, 지리학자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
● 1999년 3%에 불과하던 ‘동해’ 표기, 20년 만에 40%로 증가
● 스마트폰 하나면 나도 외교관, 한국 정보 바로잡아야
● 독도 너머 광활한 바다 영토를 보자
‘신동아’는 단국대 일본연구소 HK+ ‘동아시아 지식권력의 변천과 인문학’ 사업단과 함께 ‘한국사회와 지식권력’을 주제로 연쇄 인터뷰를 진행한다.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개인을 통해 삶과 지식, 권력의 연관관계를 살피고 지식과 권력의 미래상 또한 모색하려는 기획이다. 〈편집자 주〉
‘반크’가 제작한 한국 지도 앞에 선 박기태 단장. 최근 반크는 해외 지도의 잘못된 표기를 바로잡는 것을 넘어, 잘 만든 한국 지도를 세계 각국에 배포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홍중식 기자]“지도는 세계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한다. 사람은 자신이 묘사하는 것을 보는 경향이 있으며 그 반대 경우는 성립하지 않는다.”
미국 정치학자 아서 클링호퍼의 책 ‘세계지도에서 권력을 읽다’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유럽이 위, 아프리카는 아래쪽에 있는 지도를 보며 자랐다.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 지리를 익혔다. 그 경험이 우리 가치관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될까.
클링호퍼는 계속 말한다. “지도에는 언제나 제작자의 주관적인 인식이 들어가 있다. 지도를 분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 제작자의 의도를 밝혀내는 일이다.” 박기태 ‘반크(VANK)’ 단장을 만나러 가는 길, 계속 이 문장을 곱씹었다.
반크는 ‘사이버 외교사절단(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의 약자다. 디지털 공간에서 한국을 제대로 알리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세계 지도에 등장하는 한국 관련 오류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활동을 해왔다.
잠시 시곗바늘을 20여 년 전으로 돌려보자. 반크 창립 전, 세계 지도 제작사 대부분은 한반도 동쪽 바다 위에 ‘일본해’라는 이름을 적었다. 1999년 기준으로 지도에 ‘동해’가 단독으로 표기되거나 ‘일본해’와 병기돼 있는 사례는 약 3%에 불과했다. 지금은 세계지도의 약 40%에 ‘동해’라는 이름이 나온다. 그 중심에 반크, 그리고 박 단장이 있다. 박 단장은 “반크 초기엔 이미 출판된 해외 지도 표기를 바꾸는 데 집중했다. 요즘엔 우리가 직접 지도를 만들어 세계에 배포하는 일도 한다”며 “이런 활동을 통해 독도를 지키고, 한국을 세계에 제대로 알리는 게 우리 목표”라고 밝혔다.
- 반크 활동을 시작한 때와 비교하면 최근 한국 위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나.
“그렇다. 현재 반크에는 외국인 인턴이 4명 있다. 반크에 스스로 찾아온 이들이다. 우리는 그들과 한국어로 대화한다. 영어를 쓸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며, 심지어 한국을 해외에 알리는 활동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외국인이 많다. 반크 창립 당시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그때는 외국인에게 한국에 대해 얘기하면 대부분 ‘한국이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다.”
- 우리나라 위상이 달라지는 과정을 생생히 지켜봤으니 기분이 남다르겠다.
“기쁘다.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옛날엔 외국 교과서에 독도가 ‘다케시마’라고 적혀 있어도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제는 다르다. 한국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진 만큼, 잘못된 정보가 퍼질 가능성도 더 크다. 나는 지금이 우리에게 기회이자 위기라고 본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얻은 지명도를 바탕으로 잘못 기록된 지명, 역사를 고치고자 더욱 노력해야 할 때다.”
- 반크가 할 일이 더 많아진 건가.
“그렇게 말씀하는 분이 적잖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니요’라고 답한다. ‘반크가 할 일’은 없다. 우리 모두가 할 일이 있을 뿐이다. 이 시대엔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잘못된 지명, 역사 정보 바로잡기에 나설 수 있다. ‘사이버 외교사절’은 특별한 누군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역사학자도, 지리학자도 아니다”
박기태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단장. 그는 1999년부터 ‘한국 바로 알리기’ 활동을 해왔다. [홍중식 기자]박 단장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는 이 대목에서 “반크를 과대평가하지 말아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요즘은 해외 사이트를 보다 한국이 잘못 소개돼 있는 걸 발견하면 ‘이것 좀 고쳐주세요’ 하면서 반크를 찾는 분이 꽤 계신다. 사실 우리는 ‘이것 좀 고쳐주세요’ 하는 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건 좀 과장된 표현처럼 느껴진다.
“아니다. 나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반크 활동을 하기 전까지 역사나 지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다른 반크 구성원도 마찬가지다. 인턴을 제외하면 반크 멤버는 나까지 딱 5명이다. 우리 모두 역사학자도, 지리학자도 아닌 평범한 시민이다.”
박 단장에 따르면 반크가 태어난 1999년, 그는 서울 한 대학 일문과 학생이었다. 교양과목으로 ‘홈페이지 만들기’ 강의를 들은 뒤 “뭐라도 해보자” 싶어 ‘해외 펜팔 사이트’를 만든 게 반크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 해외 펜팔 사이트가 어떻게 사이버 외교사절단이 됐나.
“시작은 단순했다. 당시는 인터넷이 막 대중화되던 때다.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외국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펜팔 사이트를 만들고 거기에 ‘저는 2002년 월드컵이 열리는 대한민국 사람입니다’라는 소개 글을 올렸다. 이후 내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 거의 대부분이 ‘한국이 어디 있나요?’라고 묻더라. 위치를 알려주려고 포털사이트에서 ‘Korean Map(한국 지도)’을 검색했다. 그때 처음 본 지도가 내 삶을 바꿨다.”
- 어떤 지도였나.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만든 지도였다. 앞서 말했듯 나는 당시 역사나 지리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런 내 눈에도 그 지도는 뭔가 이상했다. 일단 동해 자리에 일본해라고 적혀 있었다. 또 독도에는 ‘리앙쿠르 암초’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리앙쿠르 암초(다케시마)는 1950년 한국이 점령했다. 그래서 일본이 분노하고 있다’라는 주석까지 달려 있었다. 순간 갈등이 됐다. 이 지도를 그대로 외국인 친구한테 보내면 그는 동해를 일본해로, 독도는 다케시마로 알게 되지 않겠나.”
- 그래서 어떻게 했나.
“포토샵 프로그램을 이용해 지도에 표기된 지명을 고쳤다. 한국 위치를 묻는 사람들한테 그 지도를 보냈다. 그러다 문득 ‘이러면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한국이 어디야?’라고 묻는 사람 수는 얼마 안 됐다. 외국인 대부분은 한국에 관심이 생기면 직접 ‘Korean Map’을 검색할 테고, 그중 상당수가 나처럼 잘못된 내용이 적힌 지도를 보게 될 것 아닌가.”
박 단장은 “문제의식을 갖고 좀 더 검색해 보니 내셔널 지오그래픽사(社)가 만든 지도에도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돼 있었다”고 회상했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지도가 마찬가지였다. 일본해와 리앙쿠르 암초, 다케시마에 대한 정보는 수없이 많은데 동해나 독도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이렇게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지도 제작 기관 가운데 특히 영향력이 클 것으로 보이는 두 곳, CIA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편지를 보내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 편지에는 뭐라고 썼나.
“내 소개를 한 뒤 ‘귀 기관에서 만든 지도에 ‘일본해’라고 적혀 있는 바다를 한국 사람은 ‘동해’라고 한다. ‘일본해’는 일본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름이다. 이름이 두 개인데, 일본 이름만 적는 이유가 있느냐’라고 물었다. 또 이런 말도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일제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다. 그 시절 일본인이 한국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강제로 일본 이름을 써야 했다. 그 시절을 거쳐왔기에 우리는 한국 이름에 더욱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양쪽 상황을 다 살펴보기 바란다.’”
- 편지에 ‘당신들 지도 표기가 잘못됐다’고 썼을 줄 알았는데.
“당시 나는 뭐가 잘된 것이고 잘못된 것인지 몰랐다. ‘이름이 두 개인데 하나만 적는 건 이상하지 않나’라고 느꼈을 뿐이다. 그 생각을 진솔하게 적어 보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 기적이라면?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답장이 온 거다. 심지어 ‘일본해 단독 표기를 바꾸겠다’는 내용이었다. 깜짝 놀랐다. 내가 받은 편지를 당시 운영하던 펜팔 사이트에 올리자 다른 회원들도 하나같이 ‘신기하다’ ‘놀랍다’고 했다. 돌아보면 운명적인 사건이었다.”
- 처음 쓴 편지에 답장이 오지 않았다면 삶의 방향이 지금과 달라졌을까.
“그랬을 것이다. 그럭저럭 취업을 하고, 동해나 일본해 등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인으로 살지 않았을까. 그런데 편지를 받은 이후, 더는 그렇게 살 수 없게 됐다. 그전까지 나는 ‘세계인이 한국을 모르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답장을 받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우리가 세계인한테 한국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게 문제였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니 세상이 우리에 대해 알 수 없었구나.’ 이 깨달음이 ‘사이버 외교사절단’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박기태 '반크' 단장이 '반크'가 제작한 지도를 앞에 놓고 설명하고 있다. 한반도 주위로 광활한 바다 영토가 보인다. [홍중식 기자]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변화박 단장은 이때부터 펜팔 사이트 친구들과 함께 세계 여러 지도 제작사에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답장’이 큰 무기였다.
“당시 내가 e메일에 쓴 문장을 지금도 기억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내게 일본해 표기를 바꾸겠다고 약속했다’고 적었다. 그 회사가 실제로 지도를 고치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렸다. 하지만 수정 약속 편지를 첨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지도 제작 분야에서 가진 권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세계 많은 지도 회사가 그 영향을 받았다. 자사 지도에 일본해와 더불어 동해라는 이름을 적는 곳이 하나둘 늘어났다.”
반크는 이후 DK라는 세계 최대 교과서 출판사에도 일본해 단독 표기를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DK가 자사 교과서에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한 것 또한 세계 수많은 교과서 출판사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박 단장은 “반크 활동을 시작하던 시절, 나와 친구들은 모두 평범한 청년이었다. 권력도 자본도 없었다”며 “다만 우리에겐 누구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용기, 무시당해도 좌절하지 않는 혼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때 우리가 편지를 보낸 대상은 하나같이 거대한 존재들이었다. 세계 최고 정보권력 집단 CIA를 비롯해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지도제작사, 출판사 등을 수신인으로 삼았다. 그쪽에서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해서 상처받을 이유가 있었겠나. 오히려 내셔널 지오그래픽처럼 반응을 보여주는 곳이 있으면 뛸 듯이 기뻤다. 그런 성공을 발판 삼아 힘을 얻고, 세계 곳곳에 더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
반크 활동이 만들어낸 변화는 전문가들까지 움직이게 만들었다. 박 단장은 “반크의 노력으로 세계 여러 나라 지도와 교과서 내용이 바뀌자, 그때부터 우리 역사 및 지리를 전공한 학자들이 하나둘 반크를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연구해 온 자료를 우리에게 내줬다. 그걸 통해 우리는 독도가 역사적으로 왜 한국 영토인지 등을 더 잘 알게 됐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좀 더 설득력 있는 편지를 쓰자, 점점 더 많은 지도 제작사와 교과서 출판사가 우리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박 단장은 “세상을 바꾸는 건 지식이 아니라 용기”라는 걸 믿게 됐다고 한다. 그가 대중을 향해 “외국 정보 사이트에서 한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접하면 반크를 찾지 말고 직접 수정을 위해 나서달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 그래도 반크에는 20년 넘게 활동하며 쌓아온 노하우가 있지 않나.
“우리는 그것을 독점할 생각이 없다. 반크 홈페이지(prkorea.com)에 접속하면 누구나 반크가 축적해 온 모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외국어로 만든 자료 또한 업로드해 뒀다. 그것을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해외 기업 등에 e메일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편지를 보낸다고 바로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수 있다. 그건 반크도 마찬가지다. 처음 한 명이 나서고, 그 뒤에 두 명이 거들고, 세 명 네 명이 함께하면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는 거다. 그게 반크가 해온 일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CIA 지도 수정에 인생 걸었다
CIA ‘월드팩트북’에 실린 한국(위)과 일본 지도. ‘일본해(Sea of Japan)’ 표기가 선명히 보인다. 또 한국 지도는 땅 위주로 그려진 반면, 일본은 광대한 바다 영토를 가진 것으로 표현돼 있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잘못된 지명 표기를 바로잡는 것과 더불어 우리나라 지도도 바다 영토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다시 그려야 한다”고 밝혔다. [인터넷캡처]지난해 6월, 일본 1위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 메인 페이지에 반크 관련 기사가 노출된 일이 있다. 일본 한 시사경제지가 보도한 것으로, 반크가 한국 정부로부터 연간 20억 엔(약 228억 원) 이상을 지원받으며, 연구원을 100명 넘게 두고 ‘거짓 역사’를 퍼뜨리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기사는 일본 네티즌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댓글도 1000개 이상 달렸다. 박 단장은 “그 무렵 일본 언론사 여러 곳이 비슷한 보도를 쏟아냈다. 이후 NHK 방송이 반크 사무실에 취재를 오는 등, 현지에서 우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가 기자를 향해 씩 웃으며 “어디 한번 보시라. 여기가 한 해 수백억 원씩 사용하는 단체 사무실 같은가”라고 물어온 건 바로 이때다.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한눈에 봐도 66㎡ 남짓한 크기 공간에 100명 넘는 사람이 모여 일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반크가 제작한 각종 ‘한국 알리기’ 자료조차 둘 곳이 없어 복도에 쌓여 있는 판이었다.
“반크 운영비는 1년에 5억 원 정도다. 그것도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회비와 후원금을 합쳐 마련한다. 같이 일하는 사람도 인턴 제외하면 5명이 전부다. 이런 사실을 투명하게 밝혀도 사람들이 잘 믿지 않는다. ‘그 적은 인원이, 겨우 그 돈으로 그 많은 일을 해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 용기와 혼이다.”
박 단장은 인터뷰 내내 이 말을 강조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각자 자리에서 한국을 세계에 바로 알리는 일에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크게 높아진 지금도 ‘사이버 외교사절단’이 할 일이 남아 있나.
“물론이다. 나를 처음 이 일에 뛰어들게 한 CIA 지도만 해도 20년 넘게 그대로다. CIA는 매년 한 번씩 ‘월드 팩트북’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각국 정보를 담은 자료를 발간한다. 1999년 내가 ‘Korean Map’을 검색했을 때 처음 눈에 띈 게 바로 거기 실린 지도다. 그때 이후로 나는 매년 CIA에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 달라는 편지를 쓴다. 그러나 여전히 CIA는 한국 동쪽 바다 위에 ‘일본해’, 독도 옆엔 ‘리앙쿠르 암초’라고 쓴 지도를 펴내고 있다. 나는 어쩌면 그 지도를 바로잡는 데 인생을 걸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서두에 말했듯,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더 열심히 한국을 제대로 알리고자 노력해야 할 때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일에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사이버외교사절단 #박기태단장 #리앙쿠르암초 #CIA월드팩트북 #신동아
신동아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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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태 반크 단장, 국립한국전통문화대 교수 됐다
송고시간2021-12-14
왕길환 기자기자 페이지
박기태 반크 단장
[연합뉴스 DB 사진]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 박기태 단장이 충남 부여군에 있는 국립한국전통문화대 교수로 강단에 선다.
14일 반크에 따르면 박 단장은 이 대학에서 학기 또는 방학 기간에 학생들이 한국의 유구한 역사를 전 세계에 알리는 다양한 실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디지털 한국 문화유산 홍보대사'로 활동하도록 돕는 특임교수로 활동한다. 급여를 일정하게 받는 것은 아니고 봉사 형식으로 강의한다.
13일 특강을 시작으로 앞으로 한국 바로 알리기 특강과 함께 반크의 여러 프로그램을 대학에 접목한다.
이 대학은 2000년 문화재청이 설립한 특수 대학으로, '민족자존과 문화창달'을 교훈으로 삼고 있다. 문화재관리학과, 전통조경학과, 전통미술공예학과, 전통건축학과, 융합고고학과, 보존과학과, 무형유산학과 등 7개 학과를 운영한다.
박 단장은 전 세계 한류 팬이 1억 명이 넘는 상황에서 한국전통문화대 학생들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가장 능동적으로 알릴 주역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크는 오는 27일 이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1기 디지털 한국 문화유산 홍보대사' 교육과 발대식을 할 계획이다.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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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생.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를 설립했다. 1999년 대학 4학년 때 학교 수업 과제로 한국과 외국 청년들이 인터넷으로 교류하는 펜팔 사이트를 만든 게 출발이었다. 외국 지도와 교과서 등에 표기된 ‘일본해’를 ‘동해’로, ‘다케시마’를 ‘독도’로 바로잡은 성과로 널리 알려진 ‘반크’ 활동을 지금까지 23년째 지속하고 있다. 한국 바로 알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을 넘어 세계를 변화시키는 글로벌 인재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아시아 평화를 지키는 반크의 디지털외교혁명> <나는 사이버 외교관 반크다> 등 7권의 책을 썼다.
20년간 외국인에 한국 알리기는 성공
이젠 우리의 올바른 정보 전파에 주력
혐오 대신 세계인이 공감할 팩트로
중·일 공세에 품격있고 우아하게 대응
반크 없어져도 이 일 계속되는 게 목표
연간 1만명의 청소년홍보대사 키우고
메타버스로 ‘10만 사이버 독도관’ 추진
‘반크’(VANK·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라는 이름은 이제 친숙하다. 해외의 잘못된 한국 정보를 바로잡는 활동을 하는 민간단체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권이 넘는 사회·국어 교과서에 나온다. 초·중·고교와 대학에 같은 이름의 동아리도 많다. 반크는 한국을 바로 알리는 ‘사이버 외교사절단’으로 통한다. 근래에는 일본과 중국의 한국역사 왜곡 사건 때마다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반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반크는 1999년 한 청년이 대학 수업 과제로 만든 펜팔 사이트에서 시작됐다. 낮에는 빌딩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야간대학을 다니던 가난한 취업준비생 청년, 그때부터 지금까지 반크에 몸담고 있는 박기태 단장(48)이다. 관광 가이드를 꿈꾸며 영어 공부에 애썼던 그는 관심 주제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드는 숙제를 받은 뒤 한국과 외국의 대학생이 온라인 친구를 맺고 대화하는 사이트를 떠올렸다고 한다. 이듬해 취업에 성공한 그는 회사에서 취미 삼아 사이트를 운영하다 과감히 사표를 내고 반크 일에 전념하기로 결심한다. 소박한 출발에 무모한 도전이었다. 2000년 5월, 반크는 남대문시장 근처의 3평짜리 사무실에 있었다. 직원 3명에 컴퓨터 2대, 회원은 3700명. 이후 반크는 청소년 참여가 늘어나면서 현재 회원이 20만명에 달한다. 그리고 20평 사무실에서 7명이 일한다.
지난달 23일 서울 보문동의 반크 사무실에서 박 단장을 만났다. 22년 만이었다. 26세 청년은 40대 후반의 아저씨로 변했지만 유쾌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파란 후드티에 검정 가죽재킷을 걸친 차림은 그해 5월의 청년 모습 같았다. 그와 반크가 20년 넘게 한길을 걸으며 활동 영역을 넓혀온 비결이 있을까 궁금했다.
- 반크 초창기와 비교하면 한국의 위상이 무척 올라갔다.
“그렇다. 당시에는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냐는 질문이 많았다. 중국이나 일본 근처에 있다고 알면 다행이었다. 지금은 한국을 모르는 외국인이 거의 없지 않나. 글로벌 한류 팬 1억명 시대라고 한다. 해외 교과서나 지도의 표기 오류를 수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의 올바른 정보를 적극 전파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 처음 목표는 무엇이었나.
“초창기 목표는 더 많은 외국인이 한국의 존재를 알게 하는 것이었다. 해외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이 목표는 거의 자동으로 이뤄졌다. 초기에 다짐을 적은 글을 다시 꺼내 봤더니, 한국이 아시아의 중심으로 우뚝 서는 앞날을 꿈꾸는 내용이었다. 그 목표는 계속 유효하다.”
- 반크는 탄탄대로만 걸었나. 위기가 없었나.
“운영 예산 부분이라면, 알뜰히 살기를 택했다. 상근직원 5~6명을 줄곧 유지하며 조직 규모를 키우지 않았다. 대가를 바라고 거액을 지원하겠다는 기업들의 제안은 모두 뿌리쳤다. 홍보물 제작비가 부족하면 웹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했다. 그래서 지금은 5000여명의 정기 후원자들에 힘입어 연간 5억원 예산 규모의 자립 구조를 갖췄다.”
- 후원자와 회원이 많이 늘었다.
“20년으로 치면 1년에 1만명씩 회원이 늘어난 셈이다. 물론 20만명 모두가 계속 활발하게 활동하는 건 아니다. 주로 학생인 회원들은 가입한 해에 한두 달 정도 열심히 활동한다. 입시 부담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짧은 경험만으로도 언제든 반크를 지켜보고 응원하며 큰 힘을 준다는 게 중요하다.”
- 규모와 활동이 확대된 것 말고는 어떤 점이 달라졌나.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이 심해지면서 거기에 대응하는 반크의 체급도 점점 높아졌다. 단체의 규모가 아니라 그들과 싸울 수 있는 맷집이 세지고 패기와 용기가 커진 것이다.”
- 일본과 중국은 반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2020년 6월 ‘야후재팬’에 황당한 거짓뉴스가 나왔다. 반크가 한국 정부로부터 연간 200억원 이상의 예산을 받는 기관이고, 단장도 정부가 임명한 장관급 공무원이라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정부 사주를 받는 극단적 반일단체라는 것이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반크가 한국 사회에서 중국에 대한 편견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지난해 초 보도했다. 이후 반크 사이트에 협박 메시지와 악플이 쇄도했다. 어찌 보면 반크의 힘을 두려워하는 증거일 수 있다.”
반크는 갈수록 격화하는 일본·중국의 역사왜곡 공세에 ‘품격 있고, 우아하게’ 대응할 작정이다. 물론 상대가 품격을 잃고 거칠게 달려든다면 더 강하게 비판하고 행동에 나선다. 박 단장은 “오직 명확한 사실에 입각해, 한국인뿐 아니라 세계인도 모두 옳다고 여기는 일에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20여평 사무실에 단장·인턴 포함 7명, 반크 상근직원은 단출하다. 모두가 연구원이고 ‘~님’으로 부른다.
- 반크의 최근 활동이나 프로젝트를 몇 가지 꼽아달라.
“한복이 중국문화라고 왜곡하는 중국에 대응해 ‘한복 입기 챌린지’를 벌였다. 일상생활 속에서 한복을 입은 사진이나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전 세계에 알리는 캠페인이다.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의 꼼수에 대해 디지털로 풍자 포스터를 제작해 배포했다. 3·1절을 맞아 ‘3·1 독립선언서’를 영어로 홍보하는 영상을 만들었다.”
- 이런 캠페인을 하면서 오해나 비난을 사는 경우는 없나.
“물론 있다. 차분한 캠페인을 벌일 때는 싸움에 나서라는 주문이 나오고, 발언 수위가 높아지면 자제하라는 말이 들린다. 양쪽 의견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명백한 사실을 만인에게 납득시키는 게 관건인데 어떤 방식이 최선일지는 단체나 개인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어느 단체의 과격한 행동이 반크의 것으로 오해된 적이 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누구든 불필요하게 혐중·혐일을 부추기는 것은 안 될 텐데.
“맞는 말이다. 반크는 혐중·혐일이나 반중·반일을 내세우지 않는다.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팩트’를 당당한 목소리로 말하는 게 반크의 원칙일 뿐이다.”
- 시쳇말로 ‘국뽕’이나 국수주의에 대한 입장은.
“무작정 한국은 옳고 좋다 하고, 외국은 배척하는 건 명백한 잘못이다. 대마도나 만리장성이 한국 땅이라고 우기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일본과 중국은 이런 유의 주장을 여전히 펼치고 있다.”
- 다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며 폭넓은 연대를 추진하는 일들이 눈에 띈다.
“우선 올해 시작한 ‘역지사지’ 프로젝트가 있다. 한국의 문화유산을 타국의 비슷한 것들과 짝지어 함께 홍보하는 영상이다. 한국 고인돌과 영국 스톤헨지, 한국의 산사와 미얀마의 바간 유적지 등 10곳을 비교 설명했다. 한국 문화유산을 상대국에 친숙하게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는 아시아 디지털 외교 플랫폼 ‘브리지 아시아’를 열어 40억 아시아인이 합심해 글로벌 청원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박 단장도, 반크도 지금까지 쉴 새 없이 달려왔다. 일거리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한국 문화와 자연을 담은 지도·엽서 등 홍보물을 100가지나 만들었다. 건당 1000만원씩 예산을 들였으니 모두 10억원어치다. 예쁜 디자인과 실물 제작은 다양한 ‘협력기관’에서 맡아줬다. 모두 반크를 알고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이 홍보물은 사이버 외교사절 교육을 받는 반크 회원들이 무상으로 받아가 어딘가에서 한국을 알린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시골 학교 교실에 큼직하게 걸린 한국 지도는 대학생이 된 반크 회원이 의료봉사를 하러 가서 붙인 것이다. 이게 반크의 초심인 ‘풀뿌리 한국 알리기 운동’이다. 20여년 세월이 흘렀어도 반크의 초심은 변함이 없었다.
- 지난 20여년의 성과를 돌아본다면.
“한국 바로 알리기는 잘했다. 그런데 일본과 중국은…, 우리 성과가 ‘빵점’일지도 모르겠다. 한다고는 했는데 바뀌지 않고 오히려 악화됐으니까. 일례로 2001년에는 일본의 우익 교과서 1종에만 독도가 아니라 ‘다케시마’였는데 2022년에는 모든 교과서가 그렇게 됐다.”
-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아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 반크가 맡아야 하는 일은 없다는 얘기다. 시민 모두가 할 일이 있을 뿐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사이버 외교사절’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반크가 20여년간 해온 활동 자료는 모두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공개돼 있다. 반크가 당장 없어져도 이 일이 계속되는 게 우리 목표다. 반크는 특별하지 않다.”
- 모두 회원이 되라고 권하지 않는다?
“그렇다. 다들 알아서 했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당연히 어색한데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면 세상을 바꿔 나갈 수 있다.”
- 향후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지금과 똑같이 일할 것이다, 지금껏 했던 대로 매달 반크에서 200명, 외부 특강에서 800명씩 교육해 연간 1만명 이상의 한국홍보대사를 배출할 것이다. 반크는 매달 활기찬 신입생들이 들어와 새 출발을 하는 분위기다. 매일 새로 여는 사이트와 다름없다. 그래서 20여년이 순식간에 지난 것 같다. 하하.”
- 그래도 아쉽거나 부족한 점은 없나.
“메타버스 기반으로 ‘사이버 독도 전시관’ 10만개를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세계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가상공간의 전시관을 세우고 독도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메타버스로 구현한 덕수궁 석조전에 글로벌 회원들이 모이는 이벤트도 추진 중이다. 정보통신, 과학기술계가 한국 바로 알리기에 더 많이 나서주시면 좋겠다. 편지나 공문이 아니라 기술이 움직여야 할 때다.”
“역사왜곡은 당사국이 아닌 세계가 풀 숙제…한국의 ‘옮음’ 지지”
반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는 프랑스 청년 클라라 다느폰. 우철훈 선임기자
반크 근무 프랑스 청년 클라라
‘반크’ 사무실에서 한 청년이 반갑게 인사했다. 클라라 다느폰(24). 프랑스인이다. 직함은 인턴. 1년 정도 반크에서 일하고 싶다며 입국해 자가격리를 마치고 지난 1월24일부터 출근했다고 한다. 먼저 한국어로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프랑스에서 온 클라라입니다. 저는 영어와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알아요. 3·1운동, 독도와 <직지심체요절>을 홍보하는 영상을 만들어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했어요.”
2019년 이어 두 번째 자원 근무
‘직지심체요절’ 불어 동영상 제작
독립선언서 이탈리아어로 번역도
‘전생에 한국인’ 농담 들을 정도
파리 제9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해 파리 제1대학 국제경제학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반크 근무가 두 번째다. 2019년 여름 두 달간 이미 일한 적이 있다. 프랑스에서 온라인으로 반크의 활동을 접하고 지원했다고 한다. 그는 금속활자로 만든 세계 최초의 책인 <직지심체요절>을 알리는 프랑스어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고, 3·1 독립선언서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다. 프랑스에서 보관 중인 <직지심체요절>을 한국에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독도에 직접 가서 보고, 한국 땅 독도를 세계에 알리는 사이트도 만들었다.
이번에 와서는 한국의 경제 발전이 기적이나 행운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 전통과 문화 저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3·1절 전날에는 3·1 독립선언서를 영어로 직접 소개하는 영상을 찍어 반크 블로그에 올렸다. “3월1일은 한국인들이 독립을 위해 맞서 싸웠던 증거입니다. 저는 독립선언서 중에서 ‘오직 자유 정신을 발휘할 것이고,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는 대목에 감동받았습니다.”
그는 반크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를 “옳고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하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왜곡이 나라 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시민 모두 풀어야 할 숙제라고 했다.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고 한국의 ‘옳음’을 지지한다는 그는 전생에 한국 사람이 아니었느냐는 동료들의 농담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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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CIA 지도에 ‘동해’ 표기 넣는 데 인생 걸었다” 박기태 '반크' 단장
단국대 HK+사업단 연속 기획 ‘한국사회와 지식권력’6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1-12-08
● 지도는 세계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한다
● 평범한 대학생, 해외 펜팔 사이트 만들었다 ‘한국 알리기’ 활동 시작
● 해외 지도 ‘일본해’ 표기 바로잡으며 ‘사이버 외교’ 중요성 깨달아
● 역사학자, 지리학자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
● 1999년 3%에 불과하던 ‘동해’ 표기, 20년 만에 40%로 증가
● 스마트폰 하나면 나도 외교관, 한국 정보 바로잡아야
● 독도 너머 광활한 바다 영토를 보자
‘신동아’는 단국대 일본연구소 HK+ ‘동아시아 지식권력의 변천과 인문학’ 사업단과 함께 ‘한국사회와 지식권력’을 주제로 연쇄 인터뷰를 진행한다.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개인을 통해 삶과 지식, 권력의 연관관계를 살피고 지식과 권력의 미래상 또한 모색하려는 기획이다. 〈편집자 주〉
‘반크’가 제작한 한국 지도 앞에 선 박기태 단장. 최근 반크는 해외 지도의 잘못된 표기를 바로잡는 것을 넘어, 잘 만든 한국 지도를 세계 각국에 배포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홍중식 기자]“지도는 세계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한다. 사람은 자신이 묘사하는 것을 보는 경향이 있으며 그 반대 경우는 성립하지 않는다.”
미국 정치학자 아서 클링호퍼의 책 ‘세계지도에서 권력을 읽다’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유럽이 위, 아프리카는 아래쪽에 있는 지도를 보며 자랐다.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 지리를 익혔다. 그 경험이 우리 가치관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될까.
클링호퍼는 계속 말한다. “지도에는 언제나 제작자의 주관적인 인식이 들어가 있다. 지도를 분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 제작자의 의도를 밝혀내는 일이다.” 박기태 ‘반크(VANK)’ 단장을 만나러 가는 길, 계속 이 문장을 곱씹었다.
반크는 ‘사이버 외교사절단(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의 약자다. 디지털 공간에서 한국을 제대로 알리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세계 지도에 등장하는 한국 관련 오류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활동을 해왔다.
잠시 시곗바늘을 20여 년 전으로 돌려보자. 반크 창립 전, 세계 지도 제작사 대부분은 한반도 동쪽 바다 위에 ‘일본해’라는 이름을 적었다. 1999년 기준으로 지도에 ‘동해’가 단독으로 표기되거나 ‘일본해’와 병기돼 있는 사례는 약 3%에 불과했다. 지금은 세계지도의 약 40%에 ‘동해’라는 이름이 나온다. 그 중심에 반크, 그리고 박 단장이 있다. 박 단장은 “반크 초기엔 이미 출판된 해외 지도 표기를 바꾸는 데 집중했다. 요즘엔 우리가 직접 지도를 만들어 세계에 배포하는 일도 한다”며 “이런 활동을 통해 독도를 지키고, 한국을 세계에 제대로 알리는 게 우리 목표”라고 밝혔다.
- 반크 활동을 시작한 때와 비교하면 최근 한국 위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나.
“그렇다. 현재 반크에는 외국인 인턴이 4명 있다. 반크에 스스로 찾아온 이들이다. 우리는 그들과 한국어로 대화한다. 영어를 쓸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며, 심지어 한국을 해외에 알리는 활동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외국인이 많다. 반크 창립 당시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그때는 외국인에게 한국에 대해 얘기하면 대부분 ‘한국이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다.”
- 우리나라 위상이 달라지는 과정을 생생히 지켜봤으니 기분이 남다르겠다.
“기쁘다.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옛날엔 외국 교과서에 독도가 ‘다케시마’라고 적혀 있어도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제는 다르다. 한국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진 만큼, 잘못된 정보가 퍼질 가능성도 더 크다. 나는 지금이 우리에게 기회이자 위기라고 본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얻은 지명도를 바탕으로 잘못 기록된 지명, 역사를 고치고자 더욱 노력해야 할 때다.”
- 반크가 할 일이 더 많아진 건가.
“그렇게 말씀하는 분이 적잖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니요’라고 답한다. ‘반크가 할 일’은 없다. 우리 모두가 할 일이 있을 뿐이다. 이 시대엔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잘못된 지명, 역사 정보 바로잡기에 나설 수 있다. ‘사이버 외교사절’은 특별한 누군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역사학자도, 지리학자도 아니다”
박기태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단장. 그는 1999년부터 ‘한국 바로 알리기’ 활동을 해왔다. [홍중식 기자]박 단장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는 이 대목에서 “반크를 과대평가하지 말아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요즘은 해외 사이트를 보다 한국이 잘못 소개돼 있는 걸 발견하면 ‘이것 좀 고쳐주세요’ 하면서 반크를 찾는 분이 꽤 계신다. 사실 우리는 ‘이것 좀 고쳐주세요’ 하는 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건 좀 과장된 표현처럼 느껴진다.
“아니다. 나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반크 활동을 하기 전까지 역사나 지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다른 반크 구성원도 마찬가지다. 인턴을 제외하면 반크 멤버는 나까지 딱 5명이다. 우리 모두 역사학자도, 지리학자도 아닌 평범한 시민이다.”
박 단장에 따르면 반크가 태어난 1999년, 그는 서울 한 대학 일문과 학생이었다. 교양과목으로 ‘홈페이지 만들기’ 강의를 들은 뒤 “뭐라도 해보자” 싶어 ‘해외 펜팔 사이트’를 만든 게 반크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 해외 펜팔 사이트가 어떻게 사이버 외교사절단이 됐나.
“시작은 단순했다. 당시는 인터넷이 막 대중화되던 때다.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외국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펜팔 사이트를 만들고 거기에 ‘저는 2002년 월드컵이 열리는 대한민국 사람입니다’라는 소개 글을 올렸다. 이후 내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 거의 대부분이 ‘한국이 어디 있나요?’라고 묻더라. 위치를 알려주려고 포털사이트에서 ‘Korean Map(한국 지도)’을 검색했다. 그때 처음 본 지도가 내 삶을 바꿨다.”
- 어떤 지도였나.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만든 지도였다. 앞서 말했듯 나는 당시 역사나 지리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런 내 눈에도 그 지도는 뭔가 이상했다. 일단 동해 자리에 일본해라고 적혀 있었다. 또 독도에는 ‘리앙쿠르 암초’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리앙쿠르 암초(다케시마)는 1950년 한국이 점령했다. 그래서 일본이 분노하고 있다’라는 주석까지 달려 있었다. 순간 갈등이 됐다. 이 지도를 그대로 외국인 친구한테 보내면 그는 동해를 일본해로, 독도는 다케시마로 알게 되지 않겠나.”
- 그래서 어떻게 했나.
“포토샵 프로그램을 이용해 지도에 표기된 지명을 고쳤다. 한국 위치를 묻는 사람들한테 그 지도를 보냈다. 그러다 문득 ‘이러면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한국이 어디야?’라고 묻는 사람 수는 얼마 안 됐다. 외국인 대부분은 한국에 관심이 생기면 직접 ‘Korean Map’을 검색할 테고, 그중 상당수가 나처럼 잘못된 내용이 적힌 지도를 보게 될 것 아닌가.”
박 단장은 “문제의식을 갖고 좀 더 검색해 보니 내셔널 지오그래픽사(社)가 만든 지도에도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돼 있었다”고 회상했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지도가 마찬가지였다. 일본해와 리앙쿠르 암초, 다케시마에 대한 정보는 수없이 많은데 동해나 독도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이렇게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지도 제작 기관 가운데 특히 영향력이 클 것으로 보이는 두 곳, CIA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편지를 보내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 편지에는 뭐라고 썼나.
“내 소개를 한 뒤 ‘귀 기관에서 만든 지도에 ‘일본해’라고 적혀 있는 바다를 한국 사람은 ‘동해’라고 한다. ‘일본해’는 일본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름이다. 이름이 두 개인데, 일본 이름만 적는 이유가 있느냐’라고 물었다. 또 이런 말도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일제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다. 그 시절 일본인이 한국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강제로 일본 이름을 써야 했다. 그 시절을 거쳐왔기에 우리는 한국 이름에 더욱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양쪽 상황을 다 살펴보기 바란다.’”
- 편지에 ‘당신들 지도 표기가 잘못됐다’고 썼을 줄 알았는데.
“당시 나는 뭐가 잘된 것이고 잘못된 것인지 몰랐다. ‘이름이 두 개인데 하나만 적는 건 이상하지 않나’라고 느꼈을 뿐이다. 그 생각을 진솔하게 적어 보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 기적이라면?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답장이 온 거다. 심지어 ‘일본해 단독 표기를 바꾸겠다’는 내용이었다. 깜짝 놀랐다. 내가 받은 편지를 당시 운영하던 펜팔 사이트에 올리자 다른 회원들도 하나같이 ‘신기하다’ ‘놀랍다’고 했다. 돌아보면 운명적인 사건이었다.”
- 처음 쓴 편지에 답장이 오지 않았다면 삶의 방향이 지금과 달라졌을까.
“그랬을 것이다. 그럭저럭 취업을 하고, 동해나 일본해 등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인으로 살지 않았을까. 그런데 편지를 받은 이후, 더는 그렇게 살 수 없게 됐다. 그전까지 나는 ‘세계인이 한국을 모르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답장을 받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우리가 세계인한테 한국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게 문제였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니 세상이 우리에 대해 알 수 없었구나.’ 이 깨달음이 ‘사이버 외교사절단’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박기태 '반크' 단장이 '반크'가 제작한 지도를 앞에 놓고 설명하고 있다. 한반도 주위로 광활한 바다 영토가 보인다. [홍중식 기자]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변화박 단장은 이때부터 펜팔 사이트 친구들과 함께 세계 여러 지도 제작사에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답장’이 큰 무기였다.
“당시 내가 e메일에 쓴 문장을 지금도 기억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내게 일본해 표기를 바꾸겠다고 약속했다’고 적었다. 그 회사가 실제로 지도를 고치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렸다. 하지만 수정 약속 편지를 첨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지도 제작 분야에서 가진 권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세계 많은 지도 회사가 그 영향을 받았다. 자사 지도에 일본해와 더불어 동해라는 이름을 적는 곳이 하나둘 늘어났다.”
반크는 이후 DK라는 세계 최대 교과서 출판사에도 일본해 단독 표기를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DK가 자사 교과서에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한 것 또한 세계 수많은 교과서 출판사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박 단장은 “반크 활동을 시작하던 시절, 나와 친구들은 모두 평범한 청년이었다. 권력도 자본도 없었다”며 “다만 우리에겐 누구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용기, 무시당해도 좌절하지 않는 혼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때 우리가 편지를 보낸 대상은 하나같이 거대한 존재들이었다. 세계 최고 정보권력 집단 CIA를 비롯해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지도제작사, 출판사 등을 수신인으로 삼았다. 그쪽에서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해서 상처받을 이유가 있었겠나. 오히려 내셔널 지오그래픽처럼 반응을 보여주는 곳이 있으면 뛸 듯이 기뻤다. 그런 성공을 발판 삼아 힘을 얻고, 세계 곳곳에 더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
반크 활동이 만들어낸 변화는 전문가들까지 움직이게 만들었다. 박 단장은 “반크의 노력으로 세계 여러 나라 지도와 교과서 내용이 바뀌자, 그때부터 우리 역사 및 지리를 전공한 학자들이 하나둘 반크를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연구해 온 자료를 우리에게 내줬다. 그걸 통해 우리는 독도가 역사적으로 왜 한국 영토인지 등을 더 잘 알게 됐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좀 더 설득력 있는 편지를 쓰자, 점점 더 많은 지도 제작사와 교과서 출판사가 우리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박 단장은 “세상을 바꾸는 건 지식이 아니라 용기”라는 걸 믿게 됐다고 한다. 그가 대중을 향해 “외국 정보 사이트에서 한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접하면 반크를 찾지 말고 직접 수정을 위해 나서달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 그래도 반크에는 20년 넘게 활동하며 쌓아온 노하우가 있지 않나.
“우리는 그것을 독점할 생각이 없다. 반크 홈페이지(prkorea.com)에 접속하면 누구나 반크가 축적해 온 모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외국어로 만든 자료 또한 업로드해 뒀다. 그것을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해외 기업 등에 e메일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편지를 보낸다고 바로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수 있다. 그건 반크도 마찬가지다. 처음 한 명이 나서고, 그 뒤에 두 명이 거들고, 세 명 네 명이 함께하면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는 거다. 그게 반크가 해온 일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CIA 지도 수정에 인생 걸었다
CIA ‘월드팩트북’에 실린 한국(위)과 일본 지도. ‘일본해(Sea of Japan)’ 표기가 선명히 보인다. 또 한국 지도는 땅 위주로 그려진 반면, 일본은 광대한 바다 영토를 가진 것으로 표현돼 있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잘못된 지명 표기를 바로잡는 것과 더불어 우리나라 지도도 바다 영토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다시 그려야 한다”고 밝혔다. [인터넷캡처]지난해 6월, 일본 1위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 메인 페이지에 반크 관련 기사가 노출된 일이 있다. 일본 한 시사경제지가 보도한 것으로, 반크가 한국 정부로부터 연간 20억 엔(약 228억 원) 이상을 지원받으며, 연구원을 100명 넘게 두고 ‘거짓 역사’를 퍼뜨리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기사는 일본 네티즌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댓글도 1000개 이상 달렸다. 박 단장은 “그 무렵 일본 언론사 여러 곳이 비슷한 보도를 쏟아냈다. 이후 NHK 방송이 반크 사무실에 취재를 오는 등, 현지에서 우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가 기자를 향해 씩 웃으며 “어디 한번 보시라. 여기가 한 해 수백억 원씩 사용하는 단체 사무실 같은가”라고 물어온 건 바로 이때다.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한눈에 봐도 66㎡ 남짓한 크기 공간에 100명 넘는 사람이 모여 일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반크가 제작한 각종 ‘한국 알리기’ 자료조차 둘 곳이 없어 복도에 쌓여 있는 판이었다.
“반크 운영비는 1년에 5억 원 정도다. 그것도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회비와 후원금을 합쳐 마련한다. 같이 일하는 사람도 인턴 제외하면 5명이 전부다. 이런 사실을 투명하게 밝혀도 사람들이 잘 믿지 않는다. ‘그 적은 인원이, 겨우 그 돈으로 그 많은 일을 해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 용기와 혼이다.”
박 단장은 인터뷰 내내 이 말을 강조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각자 자리에서 한국을 세계에 바로 알리는 일에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크게 높아진 지금도 ‘사이버 외교사절단’이 할 일이 남아 있나.
“물론이다. 나를 처음 이 일에 뛰어들게 한 CIA 지도만 해도 20년 넘게 그대로다. CIA는 매년 한 번씩 ‘월드 팩트북’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각국 정보를 담은 자료를 발간한다. 1999년 내가 ‘Korean Map’을 검색했을 때 처음 눈에 띈 게 바로 거기 실린 지도다. 그때 이후로 나는 매년 CIA에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 달라는 편지를 쓴다. 그러나 여전히 CIA는 한국 동쪽 바다 위에 ‘일본해’, 독도 옆엔 ‘리앙쿠르 암초’라고 쓴 지도를 펴내고 있다. 나는 어쩌면 그 지도를 바로잡는 데 인생을 걸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서두에 말했듯,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더 열심히 한국을 제대로 알리고자 노력해야 할 때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일에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사이버외교사절단 #박기태단장 #리앙쿠르암초 #CIA월드팩트북 #신동아
신동아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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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태 반크 단장, 국립한국전통문화대 교수 됐다
송고시간2021-12-14
왕길환 기자기자 페이지
박기태 반크 단장
[연합뉴스 DB 사진]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 박기태 단장이 충남 부여군에 있는 국립한국전통문화대 교수로 강단에 선다.
14일 반크에 따르면 박 단장은 이 대학에서 학기 또는 방학 기간에 학생들이 한국의 유구한 역사를 전 세계에 알리는 다양한 실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디지털 한국 문화유산 홍보대사'로 활동하도록 돕는 특임교수로 활동한다. 급여를 일정하게 받는 것은 아니고 봉사 형식으로 강의한다.
13일 특강을 시작으로 앞으로 한국 바로 알리기 특강과 함께 반크의 여러 프로그램을 대학에 접목한다.
이 대학은 2000년 문화재청이 설립한 특수 대학으로, '민족자존과 문화창달'을 교훈으로 삼고 있다. 문화재관리학과, 전통조경학과, 전통미술공예학과, 전통건축학과, 융합고고학과, 보존과학과, 무형유산학과 등 7개 학과를 운영한다.
박 단장은 전 세계 한류 팬이 1억 명이 넘는 상황에서 한국전통문화대 학생들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가장 능동적으로 알릴 주역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크는 오는 27일 이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1기 디지털 한국 문화유산 홍보대사' 교육과 발대식을 할 계획이다.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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