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빤 세대론’은 권위주의 향한 향수…청년이 세력화해 밀어내고 나가야”
등록 :2022-04-23
조혜정 기자
[한겨레S] 인터뷰
‘그런 세대는 없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
‘기득권 기성세대’ 대 ‘청년 희생자’
박근혜때 만들어진 근거없는 서사
“다양한 경험한 새로운 세대 곳곳에
청년 리더 나설 사회적 토대 존재”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 취재에 응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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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 사이 한국 정치권과 언론 등을 뜨겁게 달군 담론 가운데 하나는 세대 간 불평등론이다. 기성세대, 특히 586세대가 정치·경제·사회적 기득권을 독점하고 있어, 청년세대가 역대 어느 세대보다도 가난하고 미래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얘기는 거의 ‘상식’으로 통할 지경이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586세대 정치인의 ‘양보 선언’도 종종 나온다. 그런데 진짜 이게 현실이고, 그에 기반한 해결책일까?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최근 낸 책 <그런 세대는 없다>는 이를 ‘세대 선정주의’라고 비판하면서, 그 허구성을 여러 측면에서 조목조목 드러낸다. 지난 5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신 교수는 “세대 간에 경제적·정치적 권력자원의 체계적인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의견엔 동의할 수 없다. 특히, 정치적 또는 상업적으로 도구화된 이런 세대론이 최근 몇년 사이 범람하면서 세대 간, 세대 내 삶의 실상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정말 ‘586세대’의 문제인가
―<그런 세대는 없다>에서 ‘기득권 기성세대’ 대 ‘착취당하는 청년세대’는 허위일반화라고 지적했다.
“그런 구도, 세대 간의 불평등 구조가 현재 한국 사회 경제적 불평등의 핵심이라는 주장은 허구다. 지금의 청년층이 중년이나 노년 세대보다 더 불안정한 계층이 많은 집단이라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측면에선 20대가 가장 열악하지만, 다른 측면에선 50대가 가장 열악하다. 같은 청년세대로 불리지만 경제 지표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나은 위치에 있는 게 30대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비율, 빈곤율, 자산 상황 등 어떤 지표를 봐도 하나의 거대 서사 내지 일반 이론으로서, 특정 연령 집단이 가장 열악한 상태에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그래픽 참조)
지금의 청년세대가, 중노년층이 청년기였을 때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있다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1970~80년대 청년들은 한국이 고속 성장을 하고 산업 부문이 계속 팽창하던 상황에 있었던 반면, 지금 청년들은 저성장 시대, 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 건 맞다. 하지만 1970~80년대 청년들은 국내총생산 중 공공복지 예산이 1%밖에 되지 않는, 정부 예산에 ‘복지’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살면서 부딪히는 모든 삶의 위험에 100% 사적 자산으로 대처해야 했다. 말하자면, 특정한 출생 세대가 일반론으로서 ‘불운한 세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사회 다양한 구성원들이 제각기 겪어왔던 그 시대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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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세대론이 쉽게 먹힐 수 있었던 배경엔 정치·경제·사회적 기득권을 가진 ‘586 상층부’ 집단의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그 질문의 전제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득권 기성세대와 희생자 청년세대 구도의 세대론이 그렇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나? 나는 고학력 화이트칼라 전문직, 언론이나 정치권 같은 특정 계층·집단에서 그런 생각을 유달리 많이 한다고 본다. 내가 구해볼 수 있는 최근 몇년간의 모든 자료에서,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과제로 모든 연령대가 꼽은 첫번째가 계층 격차, 두번째가 이념 갈등이었다. 이 두 가지를 합치면 70%가 넘는다. 세대 갈등 또는 세대 간 격차라는 응답은 5% 안팎이었다. 이번 대선 결과도, 청년층이 세대론적인 동기로 정치적 태도를 드러냈다고 볼 수 없다.
진보 정치권에 불신이 커지고 그 위선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던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위계에 의한 성추행 사건이었다. 오거돈, 박원순, 안희정, 김종철, 1940년대생에서 70년대생까지 거의 40년 차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586세대의 위선’이라고 한다. 진보 정치권의 도덕적 신뢰를 갉아먹은 여러 사건이 세대적인 특별한 속성을 갖지 않는데도, 우리는 끝없이 이걸 세대론의 프레임 안으로 밀어넣어 기억하고 담론화해 재생산한다. 이렇게 접근하면, 정치 엘리트 전반이 가진 문제나 열성 지지층과의 강력한 결집이 발생시키는 문제 등 구조적인 문제를 놓칠 위험성이 있다.”
―하지만 ‘기득권 586세대’ 비판엔, 그 세대 전체가 아니라 그 세대의 ‘상층 엘리트 계급’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게 아닌가?
“‘586세대’엔 민주당 정치권, 진보 운동진영, 상층부 엘리트, 1960년대 세대 전체 등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다른 의미가 포함돼 있고, 사람마다 자기 맥락에서 각자 다른 식으로 이해한다. 민주당 정치권이 문제라면 왜 민주당 정치권이 문제라고 말하지 않나. 진보 중산층이 문제라면 왜 진보 중산층이 문제라고 말하지 않나. 명확한 언어로 말할 수 있음에도 이질적인 대상을 지칭하는, 정치적으로 오염된 언어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나?
‘586 편집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정치·경제·사회적 모순구조가 있다. 586 운동권 출신들이 ‘우리는 한계가 있었고, 민주화에 기여한 만큼 문제도 많았다’는 식으로 자기성찰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도 자의식 과잉이다.”
―지금 세대론의 가장 큰 문제는, 세대 내 불평등과 세대 간 불평등 세습으로 인한 구조적 격차의 공고화라는 현재 한국 사회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거라고 지적했는데.
“586세대, 기성세대가 운 좋은 세대, ‘꿀 빤 세대’라는 말이 최근 폭증했다. 이건 ‘전에는 그래도 청년에게 희망이 있는 시대였는데, 지금 청년들에겐 미래가 없다’는 전형적인 서사 구조다. 밑바탕에 깔린 정동은 ‘정치적으로는 독재였지만 경제적으로는 그때가 더 나았다’는 권위주의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처음엔 보수 언론·정치권이 이런 담론 생산의 주체였지만, 지금은 그 보수적인 기원이 탈각된 채로 진보 진영 일부로까지 확산돼 주류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
청년 담론의 역동적 변화
―‘흙수저론’ ‘헬조선’ ‘노오력’ 같은, 청년이 역대급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담론이 퍼지면서 여러 청년 지원정책이 나왔다. 이걸 다른 세대의 저소득층을 차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나?
“2010년을 전후해 복지국가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정책 담론은 전체 정부 예산 가운데 복지 예산이 너무 적다, 보육, 청년복지, 노인복지 예산 모두 확보해야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최근 세대 불평등론이 부상하면서 그 틀이 점점 약화되고, 노인한테 많이 갔다, 청년한테 많이 갔다 이런 대결 구도가 형성됐다. 불평등을 경감시킬 재정적·조직적 자원 증대와 법적 근거 마련이 아니라, 있는 예산을 주어진 조건으로 전제한 다음 그걸 누구한테 줄 거냐는 식으로 논의가 이뤄지는 정책 담론 자체에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같은 청년층이라도 결혼을 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소득과 자산이 많은 것으로 분석되는데, 주택 등 여러 정책에서 ‘신혼부부 우대’를 제공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볼 수 있나?
“‘청년세대’라는 뭉뚱그려진 개념으로 접근하면, 그것이 일반론으로 재현하는 삶의 조건과 필요, 욕구가 어느 계층의 것인지 인지할 수 없고, 거기서 배제된 집단의 삶의 조건 등은 제거돼버린다. 각 세대 내의 불평등 현실을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면, 공공자원을 투입할 때 그 세대 내에서 자산, 주거, 고용, 소득, 학력 등의 불평등 구조가 어떤지에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특정 세대 내에서 보다 더 우월적인 위치에 있는 집단이 담론 생산 자원을 갖고 있어 현실을 오인하게 만든다. 그에 토대해 정책을 수립하면 이미 일차경제 안에서 더 많은 자원을 가진 집단에 공공자원을 더 주게 된다.”
신진욱 교수는 “세대 간 불평등론이 범람하면서 세대 간, 세대 내 삶의 실상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게 됐다”고 말한다. 사진은 지난 2020년 총선 당시 서울 종로구에서 한 후보자 유세를 지켜보는 유권자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 대목에서 신 교수는 지난 10여년 동안 확산된 세대 담론의 세 가지 변곡점과 의미를 자세히 설명했다.
“넓게 보면 세대론, 좁게는 청년 담론은 10여년 동안 역동적인 변화를 겪어왔다. 그 변화의 역사적 층위에 해당되는 내용이 오늘날 청년 담론과 의제 안에서 공존하고 경합한다.
2010년대 초반, 청년유니온, 민달팽이 유니온, 알바노조 등이 상징하는 청년 당사자 사회운동, 여러 복지국가 운동, 촛불 커뮤니티 같은 시민 활동으로 청년 의제와 정책, 담론이 확장됐다. 이는 같은 시기, 이런 논의를 즉각 수용한 박원순 서울시의 혁신적 거버넌스와 맞물려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다른 지역으로도 퍼져나갔다. 그 시기 청년의 당사자성에 기반한 청년 담론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계급·계층적 불평등 현실을 고발하고 사회 개혁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그 운동 참여자 집단은 ‘기득권 기성세대 대 희생자 청년세대’류의 세대 담론을 거부했다.
그런 사회운동과 혁신적 거버넌스가 피땀 어린 노력으로 개척해놓은 청년이라는 의제 영역에 보수 정치권, 기업, 거대 권력이 빠르게 밀고 들어오는 세대론의 두번째 단계가 2015년이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 개혁’을 추진하면서 노동자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노조를 공격하고, 성과 압력을 강화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정당화 담론으로 ‘기성세대의 기득권을 타파해야 청년 문제와 실업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퍼트렸다. 박근혜 정부가 여러 경제지에 돈을 대주면서 목적의식적으로 이런 담론을 확산시켜 기득권 기성세대와 청년 비정규직, 실업 문제가 동시에 거론되는 담론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청년 담론이 뭔가 대단히 논쟁적이고 문제적인 것으로 변한 중요한 전환점으로, 지금의 세대 간 불평등 담론 구조가 그때 만들어진 거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종사자, 노조원과 비노조원의 격차가 불평등의 중요한 구조적 원인이라는 건 상식이지만, 이건 세대적인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세대 간 불평등론이 겨냥하는) ‘50대 대기업 정규직 노조원’은 전체 취업자의 0.7%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를 세대 불평등 구조처럼 담론화해서 청년을 반노동 정책을 지지하는 집단으로 규합하려는 담론을 박근혜 정부가 체계적으로 생산해낸 거다.
2019년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세번째 세대론이 폭발하면서 지금의 세대 담론이 일반화된 것으로 자리 잡게 된다. 주목할 대목은, 이때도 경제지는 보수 언론 못지않게 세대 불평등 담론을 열광적으로 생산·소비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청년 노동운동의 개혁적인 시도와, 노동자를 더 쉽게 해고하려는 경제적 기득권 집단의 이해관계가 이 담론의 장 안에서 격렬하게 경합한다는 얘기다.”
도로 낮아진 청년 투표율과 팬덤정치
―지난 10년간 큰 폭으로 증가했던 청년층 투표율은, 이번 대선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20대 이하는 65.3%, 30대는 69.3%로 지난 대선보다 각각 10.9%포인트, 4.9%포인트 줄었다.
“청년층 투표율이 낮아진 건 정치적 무관심 때문이 아니다. 정치적 효능감과 관심이 가장 높은 세대인데도 투표 불참이 늘어난 건, 기성 정치권에 강한 실망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제도 정치권과 청년세대 다수 구성원 사이의 긴장 관계는 앞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많다. 청년세대 다수는 특정 정당에 정치적 일체감이나 충성도가 높지 않아, 지지 변동성이 대단히 크다. 정치에 적극적이고, 비당파적이고, 이슈에 따른 지지 변동성이 크다는 건, 인구학적 비중과는 달리 앞으로 이들이 상당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성 정당들이 이들을 지지층, 투표층으로 끌어낼 전략적인 목표가 중요해질 거다.”
신진욱교수가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대선 이후 이재명 전 후보를 지지한다며 민주당에 입당하는 청년 여성들이 다수 생겼다. 청년 여성 유권자들이 윤석열 당선자가 이기는 걸 막으려고 ‘울며 겨자 먹기’로 이 후보를 찍었다는 분석에 비춰보면, 이들이 같은 부류인지 의구심이 든다. 새로 입당한 청년 여성 당원들이 ‘검수완박’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면 이들이 기존의 팬덤정치와 다를 게 있나 싶다.
“대선 막바지 이재명 후보를 찍기로 결정한 청년 여성 유권자 다수는, 윤석열 당선자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반여성적 선거 전략으로 인해 느끼는 위기감이 너무나 컸다. 그게 사회 주류의 흐름이 되지 않게 만들려고 이 후보에게 투표한 거지, 지지의 뜻으로 투표한 게 아니다. 이런 여성 가운데, 대선 이후 민주당에 가입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할지 회의적이다.
이른바 ‘개딸’이라는 이 전 후보 열성 지지층 청년 여성의 팬덤 정치는, 대선 당시 2030 여성 유권자들의 전략적 투표와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이런 양상이, 오히려 대선 때 이 후보를 찍은 청년 여성 유권자를 민주당 지지층으로 끌고 오는 데 부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기존 민주당의 본질적인 문제는 586세대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엘리트층과 열성 지지층 사이에 형성된 두터운 결속 구조가 민주당의 문제를 인지하고 교정하지 못하게 하는 거다. 이런 구조가 안 바뀌면, 행위자나 청년의 팬덤이 바뀐다고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동안 한국에선 정당정치의 기반이 빈약해, 시민들이 정당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오지 않았나?
“정치학계에선 전통적으로, 정치에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민주주의에 생명력이 있다고 봤다. 그런데 참여가 엄청나게 늘어난 지금은, 참여 자체가 아니라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어떤 사람들이냐가 문제가 됐다. 여러 정치학자들의 분석을 보면, 참여도가 높고 지지 정당이 분명한 사람일수록 경쟁 정당이나 반대 의견에 극단적인 거부 태도를 보이는, 적대적인 양극화 정치의 양상이 두드러진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 사회학자 슈무엘 아이젠슈타트는 <민주주의의 역설>이라는 책에서,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공화주의적인 참여에 의해서만 생명력이 유지될 수 있는데, 그 참여가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열성 지지층이 자기와 다른 견해를 가진 시민들한테 다원주의적인 관념을 갖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아서 그렇다는 거다.
궁극적인 문제는 정치권 내부에서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집단들이 너무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열성 지지층의 말만 들으면 자기 자리는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문제에 관해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
청년정치, 그리고 계급정치
―책에서, 유권자들 사이 소득, 주거, 자산 등의 차이에 따른 계급 균열을 제시하면서 계급정치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계급정치의 경험이 없는 한국에서 이게 구체적으로 구현될 수 있나?
“불평등이나 계급 문제가 지금처럼 폭발적인 이슈였던 적이 없다. 지난 10여년 동안 많은 연구에서 주거, 자산, 소득 등과 같은 경제적 지위 차이에 따라 정책에 대한 태도나 투표 성향이 달라지는 계급 균열이 점점 진하게 나타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일관성 측면에서 보면, 자산 효과가 제일 세다. 자산이 많으면 보수, 적으면 진보 성향을 나타낸다. 그다음이 주거로, 자가면 보수, 세입자면 진보 성향이다. 소득 효과는 이 가운데 가장 약하지만, 그럼에도 저소득일수록 진보를 지지하고 고소득일수록 보수를 지지한다. 계급정치의 토대는 분명히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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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진 ‘계급 배반 투표’라는 관찰도 많았지만, 이건 연령 변수를 통제하지 않은 단순 기술통계를 본 결과다. 저소득층이 보수 정당을 찍는 것처럼 보이는 건, 고령층 투표율이 매우 높은데, 이들 가운데 저소득층 비율이 다른 세대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당들은 정치 전략을 수립할 때 계급 분석을 하지 않는다. 이상적인 당위론이 아니라, 실제 정당의 지지층 획득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데도, 정당들은 연령이나 지역, 성별에는 많은 공을 들이면서 지지 기반이 누구이며 어떤 노선을 취해야 유권자를 최대화할 수 있느냐의 근거로 계급엔 면밀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어느 한쪽의 이해관계를 절대화하거나 특화시키는 게 아니라, 조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치 노선과 담론 전략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민주당이 자영업자, 고자산층뿐만 아니라 중간계급, 세입자 집단한테 제각기 어떤 이유로 표를 잃었는지를 알려면 계급 분석이 필요하다. 각 계급의 ‘이해관계 조정’이라는 개념 없이, 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는 정책을 내면 다른 집단이 격렬하게 반발하고, 그걸 무마하려고 다른 정책을 내면 또 다른 집단이 반발하는 식의 좌충우돌을 보여준 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아닌가?”
―계급정치와 청년세대의 새로운 정치는 어떻게 조응할 수 있나?
“단순노무직과 비정규직이 압도적으로 많은 고령층, 소수의 중간계급과 상당한 정도의 노동자로 구성된 50대와 달리 20~30대 취업자의 절반은 4년제 대졸 이상 고학력 화이트칼라다. 이 중엔 페미니즘, 기후 위기와 같은 탈물질주의적 가치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정당이 제시하는 정책적 접점에 따라 우파로도, 좌파로도 나아갈 수 있다. 가령, 보수 정당이 탈물질주의적 가치에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노동과 계급에 보수적인 지지층으로 이들을 끌어당길 수 있다.
진보 정당의 경우엔 조금 더 복잡한데, 청년층의 계급 구성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에 기존에 해온 것처럼 제조업 중심의 노동계급에 호소하는 담론이나 집단주의적 행동양식, 문화적인 코드는 이들에게 세대적인 낡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구 진보’로 어필이 되지 않는 부분에 있어 진보 정당이 ‘이게 진짜 진보’라는 공감을 어떻게 얻어내고, 동시에 이를 전통적인 노동계급과 저소득 빈민층을 끌어들이는 정치와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시킬지가 새로운 시대적 과제가 된 거다.”
―지금은, 지방정부의 혁신적 거버넌스가 새로운 청년 담론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던 2010년대 초반과는 정치적 환경이 달라졌다. 그런데도 청년정치의 주체가 등장하고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새로운 세대에 핵심 의제는 노동, 주거, 부채 같은 전통적 복지 의제와 페미니즘, 기후 위기다. 정부나 지방정부의 재정 지원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운동이 다수로, 정치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자생적인 사회적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론, 2010년대 복지 의제를 제기했던 청년 주체들 중엔 여전히 사회운동을 계속하는 사람도 있고, 행정, 정치, 기업 등 다양한 방면으로 진출한 이들도 많다.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두루 하고 있는 새로운 세대의 리더들은 변화된 정치 환경에서 보다 더 자율적이고 활성화된 에너지를 보여줄 수 있다. 기성 정치권의 ‘간택’과 ‘초대’로 일부 청년 개인이 발탁되는 방식이 아니라, 이 새로운 청년 주체들이 하나의 집단으로서 스스로 정치세력화해서 기존 세대를 밀고 나가는 변화가 정말 필요하다. 그럴 수 있는 사회적 토대는 이미 존재한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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