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의 대가는 트라우마... 그 후론 잠수사는 물속에 들어가지 못했다
입력 2022.04.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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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8주기-인터뷰]
구조·수습한 민간잠수사 공우영 김상우씨
신체·정신적 후유증에 10명이 잠수일 접어
피해보상법 통과됐지만 필수적 질환 제외
세월호 8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 구조활동을 했던 민간잠수사 공우영(왼쪽), 김상우씨가 본지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돈 벌려고 간 현장 아닙니다. 저희가 양심적으로 간 게 죄입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타인한테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정부가 알아서 하셔야 됩니다. 이상입니다.
고 김관홍 잠수사의 2015년 9월 국회 국정감사 증언
그날. 2014년 4월 16일.
그 배가 가라앉고, 사람들이 배에 남아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갇힌 이들을 건져 올리려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시퍼런 맹골수도에 몸을 던진 이들이 있었다.
세월호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실종자 구조에 나선 민간잠수사 25인. 이들은 극심한 공포를 견디며 앞도 보이지 않는 현장에서 수백 구의 시신을 건져 내면서 희생자들을 구한 '영웅'으로 기록되어야 마땅했지만, 실상은 8년간 두고두고 그 용기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구조 작업 중 사망한 잠수사가 있었고,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와 생활고에 시달리다 마흔셋 한창 나이에 비닐하우스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고 김관홍 잠수사)가 있었다.
8년의 고통 겪은 25인 잠수영웅
살아남은 이들의 8년도 순탄치 않았다. 참사 이후 다가온 여덟 번째 그날을 앞둔 14일, 한국일보가 만난 민간잠수사 공우영(67)씨와 김상우(50)씨는 "참사 후 생긴 몸과 마음의 상처를 평생 안고 갈 것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의에서 뛰어든 일은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경력 27년의 베테랑 잠수사 김씨는 세월호 구조 현장을 끝으로 다시 잠수 일을 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수면제 없인 버티기 어려운 정신적 트라우마. 김씨는 당시 자신이 건진 단원고 아이들의 얼굴이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마음뿐 아니라 몸에도 상흔이 남아,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신체적 통증 탓에 여전히 진통제를 달고 살아야 한다.
무너진 몸과 마음은 김씨만의 몫이 아니었다. 서로를 '형제들'로 불렀던 25인의 민간잠수사 모두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었다. 2014년 7월 10일 해경의 일방적 퇴거 통보로 구조 현장을 떠난 이후, 25명 중 18명이 잠수병이나 추간판탈출증(디스크), 각종 트라우마를 얻으며 심각한 후유증을 앓았다. 10명은 아예 잠수사 일을 완전히 접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 구조활동을 했던 민간잠수사 김상우씨는 8주기를 앞둔 현재에도 수면제 등 정신의학과 약을 복용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반쪽 보상과 사회적 편견
대통령이 바뀌고, 국회가 물갈이되고서야 민간잠수사의 노력이 조금은 빛을 보는 듯했다. 2020년 5월 20일 민간잠수사들을 보상하는 내용을 담은 '4·16 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일부 개정안', 일명 '김관홍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마침내 구조·수습활동으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민간잠수사들에 대한 피해 보상이 가능해졌지만, 김씨와 공씨는 이 역시도 '반쪽 보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앞으론 우리를 부르지 말라"고 질타했던 김관홍씨가 세상을 떠난 지 6년. '형제'의 이름을 딴 법 덕분에 의료·심리치료를 받게 됐지만, 정작 잠수사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골괴사(뼈에 혈액이 공급되지 못해 뼈조직이 괴사하는 잠수병)가 지원에서 제외됐다. 법원도 골괴사와 수중 구호의 인과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들의 소송을 기각했다.
민간잠수사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예상치도 못했던 사회적 낙인이다. 공씨는 "세월호 구조현장에서 생긴 병이라고 설명하자, 의사가 나를 적대시하며 치료를 거부한 적이 있다"며 "해경 대신 목숨 걸고 사람을 구했을 뿐 아무 죄가 없는 우리가 이런 시선을 받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예 세월호 현장에서 생긴 질병임을 숨기고 사비로 치료비를 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세월호 8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 구조활동을 했던 민간잠수사 공우영(왼쪽), 김상우씨가 본지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구조자? 우리도 피해자였다
세월호 민간잠수사들에게도 4·16은 여전한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은 21대 국회에 "골괴사를 치료 지원내용에 포함하고, 구조활동에 참여한 잠수사들을 세월호 피해자로 인정해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피해자임을 인정받고자 하는 이유는 뭔가 보상을 바라서 그런 게 아니다. 앞으로 생기게 될 사회적 재난에 투입되는 민간 봉사자들이 다시는 자기들과 같은 찬밥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공씨는 "선진국에선 구조에 투입된 사람이 다치면 재난 피해자에 포함시킨다"며 "법적으로 피해자의 한 축으로 인정받아야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누구든 위험한 재난현장에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혹시 다시 그런 참사가 생긴다면 제가 현장으로 달려갈 거냐고요?" 김씨와 공씨는 망설이다가 입을 모았다. "누군가 해야 하고 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동료들과 현장이 부른다면 가지 않을까요? 안 가면 후회가 더 클 것 같아요."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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