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공동선언실천 해외측위원회
8 September at 15:07 ·
조선신보 2017.09.07 (11:01)
지금 왜 일본군성노예범죄문헌자료집인가
(조선력사학학회 위원장, 일본연구소 상급연구원 조희승)
올해 5월 조선의 사회과학원 사회과학출판사에서는 《일제의 일본군성노예범죄와 조선인강제련행진상규명문헌자료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문헌자료집은 크게 두가지 체계로 되여있다.
하나는 일제의 일본군성노예범죄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범죄편이다.
여기서는 일본군성노예범죄문제만을 거론하려고 한다.
일본군성노예범죄편에는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 고소장》, 《청진에서 감행한 일본군의 성노예범죄에 대한 진상조사보고서》, 《구일본군 조선주둔 라남제19사단에서 감행된 성노예범죄에 대한 진상조사보고서》, 《이전 일본군성노예생존자 박영심의 피해실태와 관련한 진상조사보고서》, 《제13차 일본군성노예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련대회의에 제기한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보고》 등 지난 1990년대와 2000년대초에 걸쳐 발표된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의 고소장, 진상조사보고서 등이 수록되여있다.
부록으로 《2000년 녀성국제전범법정에 제출한 북남공동기소장》이 첨부되여있다.
알다싶이 1990년대에 들어와서 일본정부와 군부가 조선녀성들을 강제련행, 유괴, 랍치하여 《위안소》를 설치운영하는데 깊숙이 관여하였다는것을 립증해주는 문서들과 회고담, 일기, 심문조서 등 숱한 기록들이 당시의 일본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발견되였다.
일본외무성, 경찰청, 후생로동성은 물론 미국립문서보관소에서도 이러한 문서들이 련이어 발굴되였다.
또한 성노예범죄피해자들이 수십년세월 가슴속깊이 묻어두었던 피해사실들을 련속 공개하였다.
성노예범죄에 가담한적이 있는 일본군복무자들까지도 증언마당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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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쯔바라 마사루(松原勝)를 비롯한 여러 일본사람들이 량심의 가책을 누를길 없어 일본군성노예관련증언을 하였다.(도서신문간행 《바다를 건느는 100년의 기억》 2011년 리수경편 등)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자료들앞에서 더는 뻗칠수 없게 된 일본정부는 과거성노예제도운영이 정부의 묵인 또는 관여하에 군부가 직접 조직하고 감행한 범죄행위였다는것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이 1993년 당시의 일본내각관방장관이였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담화이다.(현 일본내각의 외상 고노의 아버지)
특대형반인륜범죄인 일본군성노예제도를 폭로한 자료들은 그후에도 계속 발굴되였으며 오늘날에도 계속 나오고있다
실례로 2017년 7월 5일 미국립문서보관소에서 70년가까이 묵어있던 동영상테프가 공개되였다.
동영상에는 1944년 9월 7일 중국남부의 먄마접경지역에서 그곳에 머물러있던 일본군성노예의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져있었다. 18초짜리 흑백영상속의 녀성들은 사진 등에서 이미 알려진 녀성의 얼굴 그대로였다.
또한 태평양전쟁시기 일본군의 성노예로 중국 절강성 진화시에 끌려갔던 조선녀성들의 명단이 들어있는 문서도 공개되였다.
1944년 4월에 작성된 문서에는 조선에서 끌려간 100여명에 달하는 20대, 30대녀성들의 이름과 나이, 출생지가 기록되여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다른 사람과 달리 직업이 밝혀져있지 않았다. 그들의 주소는 일본군《위안소》들의 주소와 같았다. 당시 이 도시에는 10개의 일본군《위안소》가 있었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발굴된 일본군성노예범죄관련자료들은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당국자들은 일본군성노예문제를 덮어버리려고 체계적으로 훼방을 놀았다.
2001년 NHK의 《재판받은 전시성폭력》의 프로에 당시 경제산업상이였던 나까가와 쇼이찌(中川昭一)와 자민당 간사장대리였던 아베 신조가 방영직전에 《편향내용》이라는 트집을 잡고 압력을 가하였다.
그때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의 증언과 《일본병에 의한 강간이나 위안제도는 <인도에 대한 죄>에 해당하며 <천황>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 민중법정의 결론부분을 대량 잘라낸 사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것은 전시하의 검열을 상기시키며 언론과 보도의 자유를 위협하는 위험행위라고 하여 문제시되였다.
당시 일본정부는 《지적만 했을뿐 개입이나 간섭은 안했다.》고 모르쇠하였다.
얼마전인 2017년 6월말 미국 죠지아주 애틀란타주재 일본총령사라는 사람은 한 신문과의 회견에서 《제2차 세계대전기간 일본군이 녀성들을 성노예로 삼았다고 한 증거가 없다.》느니, 《피해자라고 하는 녀성들은 강제로 끌려간것이 아니라 돈을 받은 매춘부들이였다.》느니 뭐니 하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항의가 비발치듯 하자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올해 들어와 일본국립공문서관에서도 19건에 182점의 성노예문제관련공문서를 내각관방에 보내면서 해당 전문가는 《군의 관여와 강제련행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명백하다.》고 말한데 반발하여 내각관방은 《강제련행을 보여주는 자료가 없다는 정부의 견해에는 변함이 없다.》고 고집하였다.
요컨대 일본정부는 가해자로서의 일본군성노예문제를 어물쩍 넘기고 부인하려 들고있다. 성노예문제에 대한 《한일합의》라는것도 10억엔의 돈으로 해결하려고 오그랑수를 쓴 치사한 행위의 발현이다.
이러한 환경하에서 다시금 과거 일본의 일본군성노예범죄문제가 어떤것이였는가 하는것을 원점에 돌아가서 생각하고저 지난날 신문지상을 통하여 발표된 진상보고서 등을 묶어서 하나의 문헌자료집을 단행본으로 출판하였다.
필자로 말하면 한때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의 상무위원을 한바 있었고 평양의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된 여러차례의 일본군성노예관련회의에 참석하였었다.
현재는 조선력사학학회 위원장으로서 일본군성노예문제가 력사학회가 취급할 문제이기도 하다는 인식하에 평양과 중국 연변대학과 공동으로 여러차례 관련회의를 주최하였다.
함에 넣지 않으면 흩어지고 잃어지고만다는 말이 있듯이 신문지상에 발표되였다 해도 하나의 주제하에 묶어놓지 못하면 기억속에서 망각될수도 있고 찾기도 힘들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 하나의 문헌자료집을 만들어냈다.
진상보고서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위주로 한 귀중한 자료들이므로 앞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도 기여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유감인것은 귀중한 사진자료가 들어가지 못해 생동감이 결여된 감이 나는 아쉬움을 금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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