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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反日)에 취한 나라
기사입력 2019-07-31 17:05:00
김병주 |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애주가들 속풀이에는 해장국이 으뜸이다. 해장국이라면 명태국, 명태라면 두들겨야 제 맛이 우러난다. 술꾼인양 자주 이성을 잃고 실언해야 성공하는 정치권에 요즘 단골메뉴가 있다. 일본에서는 혐한(嫌韓), 한국에서는 반일(反日)이다. 두들겨 감성팔이하면 지지도가 올라간단다.
모 법관이 “애국”하는 심정으로 내린 강점기 징용 배상 판결이 있자, 일본은 보복으로 한국에 대한 수출 화이트리스트 제외조치를 결정하고 8월초 곧 실행에 옮길 예정이다. 한국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맞대응하고, 온건한 목소리를 친일파로 매도해 함구시키고 있다. 반도체의 소재·부품인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등은 국내 대체생산이 곧 가능하다지만, 우리 수출 주종품 반도체의 앞날이 험난해 보인다. 일본의 일차 보복을 요행히 넘긴다 해도, 앞으로 자동차 축전지의 소재, 공작기계(선반 등) 연이어 수출제한 품목을 확대, 파상적으로 압박해올 것으로 보면 향후 앞날에 먹구름이 짙다.
정부는 일본에 대한 교역에서 연간 200여억 달러 흑자를 벌고 있었으니 손해가 큰 쪽은 오히려 일본이라고 지적하지만 돈보다 정치계산을 앞세우고 있는 게 일본이다. 1965 한일 협정 당시 청구권 문제가 일괄 해결되었음에도, 이후 위안부 보상 문제, 사죄의 진정성 여부 등 구실로 빈번히 문제 잡히기에 지쳤다는 게 일본 측 입장이다. 현재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중이나 중재경과가 한국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나오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일본의 외교역량을 보면 그러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세치 혀나 트위터 글로 애국자 행세하며 의병 봉기를 말하고, 죽창가를 노래하면 영전하는 세태이다. 의병이라면 죽창, 농기구 들고 일어난 동학농민운동(1894년 발발)을 말하는가? 동학군은 정읍 황토현 마루(4월)의 승리로 기세등등한 것도 잠시, 공주 우금치에서 결정적 패전(11월)을 당한다. 2만여 명의 농민군이 정부군 2천 명과 일본군 200여 명 연합군에 비참히 무너진 것은 부실한 전략과 신무기 게트링 기관총의 위력 때문이었다. 동학봉기를 빌미로 조정의 요청이 있자 청군과 일군이 한반도 진출기회를 잡고 점차 국권을 상실하는 길을 밟게 되었다는 것이 역사이다. 동학운동이 국내 정치사회 사정으로 보면 명분이 있었으되, 약육강식의 국제정치 현실에서는 나라를 먹잇감으로 만드는 지름길을 닦았다는 것이 냉철한 역사교훈이다.
세계경제 가치창조 사슬은 기술, 소재, 부품, 반제품, 완제품 시장 등 얼키설키 이어져 있어 마디마디 접속이 원활해야 한다. 가뜩이나 보호무역 풍조가 팽배한데 우리 스스로 단절의 구실을 제공할 까닭이 없었다.
세계 각국 어디를 가든 이웃나라끼리 매사에 사이좋은 나라는 없다. 크고 작은 일로 아웅다웅하지만 정작 전쟁까지 가지 않고 서로 참고 사는 것이 국가의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터득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백전백승이 최선이 아니고, 싸우지 않고 적의 싸울 의욕을 꺾는 것이 최선이다”(是故百戰百勝, 非善之善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전국시대 손자(孫子) 병법 구절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도 죽창 들고 나서자고?
일본은 국토도 몇 배 넓고 인구(1억 2천만)도 우리(5천만)보다 많다. 이미 2차 대전시 국산 항공모함을 운용한 나라이다. 현재 이름이 자위대일 뿐, 신무기로 무장한 해군, 공군은 한국군보다 강하다. 우금치에서 맞닥뜨렸던 게틀링 기관총의 충격을 벌써 잊었는가? 우리 힘은 아직 미흡하고, 설사 충분하더라도 전쟁은 극력 피해야 한다. 더구나 우리를 노리는 북방국가들과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는.
요즘 자칭 애국자들은 일본과의 군사기밀보호협정(GSOMIA)폐기를 주장한다. 지난 7월 25일 발사한 북한 탄도미사일의 발사거리와 착지점을 정확히 알게 된 것도 일본의 군사정보제공 덕분이 아니던가? 적과 우방을 바로 알고, 다소 이견이 있는 우방이라도 적보다는 가깝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한·미·일 세 나라의 군사동맹이 우리 안보를 지탱하는 힘이다.
현재 시국에서 반대파 인사들을 “토착왜구”로 몰아 반일을 부채질하는 것이 이치(理致)로는 어불성설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기발한 “프레임”일 수 있다. 올가미에 씌워질까 겁나 야당도 군말 없이 동조하고 있는 형국이니까. 집권 세력 시각에서는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 결과도 이미 기울어진 듯 보인다. 친일 “프레임”의 또 하나 노림수는 경제정책 실패 책임 돌리기다. 예상했듯이 문정부의 간판 “소득주도성장”효과가 가물가물하다. 7월 25일 한국은행 발표 경제성장 실적치에 따르면 2분기 경제성장률이 1.1%로 전분기(마이너스 0.4%)에 비해 다소 호전된 듯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정부가 돈 푼 덕분이었다.
정부 부문 성장기여도가 프러스(正)로 돌아섰으나 민간 부문기여도는 마이너스(負)로 돌아섰다. 설비투자가 전분기 엄청난 감소의 기저(基底)에서 다소 반전(2.4%)했으나 민간소비는 여전히 미미(0.7%)했다. 최근 세수감소 추세를 고려하면 재정지출 확대의 경기부양도 곧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정부여당이 목매달고 있는 추경예산도 내용을 보면 경제 활성화와 거리가 있다. 소득주도 성장, 재정주도성장은 국가채무 피라밋 쌓아올리기로 귀착된다. 여의치 않으면 일본 탓으로 돌리면 된다. 일본의 경제보복이란 프레임을 씌우면, 경제실패 책임도 면피하고 총선도 이길 수 있으리라.
정치외교문제는 문 대통령과 아베 수상이 나서서 풀어야 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청와대 무시하기에 대해 문대통령은 묵묵부답했다. 잘도 참는다. 그 인내의 절반이라도 대일본 관계에서 보여주면 대일관계는 개선될 듯싶다. 개인차원의 징용 배상 문제를 정부예산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가? 고민해볼 일이다. 혀끝, 손끝이 아니라 심장 깊숙이 우국충정이 박동하고 있다면 때로는 한 발 물러서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용기 있는 지도자의 애국행위이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몰이성(沒理性)으로 몰아가려 한다. 누가 술꾼이고, 누가 멀쩡한 사람인가? 일본 서점가에서 혐한 제목 서적이 종류가 즐비하고 매상도 높은 반면, 국내 책방에는 반일 타이틀이 빈약하고 인기도 별로이다. 우리 국민이 상대적으로 일본을 잘 극복하고 있다는 징표이다. 두 나라는 싫든 좋든 이웃나라임을 대다수 국민은 알고 있다.
상대방이 억지를 부릴 때 이성을 되찾도록 인내하고 설득해야 한다. 정부가 일본과 북한을 대하는 자세에서 크게 다른 차이를 보인다. 북한에게는 “이제 그만!” 할 때가 지난 지 오래다. 퍼주고도 뺨맞기에 이골이 난 무골호인? 그것은 바보의 별칭일 뿐이다. 여야 구별 없이 대통령에 대한 그런 능멸을 바라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작금 농산물교역 관련 한국의 WTO 개도국지위를 박탈하자는 미국의 제의 소식을 접한다. 농민단체의 반미운동 촉발이 우려된다. 반일, 그것은 반미의 예행연습일 수 있다. 선동선전 꼬드김에 명정대취(酩酊大醉) 부화뇌동(附和雷同) 말고 깨어있는 국민이어야 나라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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