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건너간 언어학자]
1.
해방공간 북에서 남으로 월남한 사람은 약 95만, 역으로 남에서 북으로 월북한 인구는 약 30만 남짓 되었다고 한다.
월북한 사람들 중 김수경이라는 젊은 언어학자가 있었다. 해방 전까지 14개 언어를 익히고, 이 중 7개는 유창하게, 나머지 7개는 ‘직독직해직강'(直讀直解直講)’이 가능한 수준이었다고 하는 김수경은, 월북 후 새로 설립된 평양 김일성대학에 교수로 취임하고, 이후 북조선 조선어학의 토대를 마련한다.
김수경의 삶을 다룬 책 [北に渡った言語学者 (북으로 건너간 언어학자) – 板垣竜太 (이타가키 류타)]을 읽었다. 언어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어린 시절부터, 월북, 한국전쟁으로 인해 이산가족이 되고, 30년이 지나 처자식과 상봉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서술한 책이다.
책을 읽으며 해소되지 않았던 궁금증 하나는, 김수경은 과연 왜 월북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당시 많은 인텔리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김수경 주위에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많았던 반면 그 자신 사상적 경도의 흔적은 없고, 그의 삶의 터전은 남쪽에 있었다. 김수경은 그러나 46년 조선공산당에 입당하고, 같은 해 8월 반바지 등산모 차림으로 홀연히 북으로 넘어가 버린다.
2.
김수경의 삶의 기록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할아버지는 김수경의 거울 이미지로, 함경북도 출신으로 만주에서 대학교를 나오고 해방공간 남으로 내려왔다. 어려서 왜 삶의 터전인 북을 등지고 남으로 오셨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김일성이가 싫어서” 그랬다는 피상적인 대답만 들은 기억이 있다.
어차피 해방공간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제한적이었다. 긴 안목으로 결정하고, 행동에 옮긴 경우보다는,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행동에 옮긴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끊임없는 선택을 강요당했고, 머뭇거림의 순간들은 길 수 없었다. 크고 작은 결정의 대가가 어떤 것인지 그들은 알 길이 없었다.
3.
홍상수의 영화 “해변의 여인”에는 옛 여자친구와 몇 년 만에 해후한 남자가 그녀가 자신과 헤어진 후 다른 남자들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알고 잠든 그녀를 향해 “왜 그 자식들과 잤어?”라고 술에 취해 주절거리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한국남자의 비루함을 묘사한 이 장면을 나는 그러나 한국인의 역사인식을 풍자한 것으로 바꾸어 읽는다. 본인들이 살아보지 않은 - 철저히 단절된 - 공간에 갇혀 있었던 타인의 삶을 단죄, 청산, 파묘하겠다는 의지는 그 자체 넌센스이자 망자에 대한 비겁한 폭력일 뿐이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연민에 눈뜨고, 종국에는 어떤 종류의 이해 혹은 슬픔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일 것이다.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나든 그 누구든 주어진 시대라는 테두리 안에서 발버둥치다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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